[세상읽기] 스타트업·대학의 새로운 행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와 한미 협상 팩트시트 발표 이후 한미 통상 환경은 한층 선명해졌다. 미국이 제조·첨단기술·공급망을 자국 내로 끌어들이기 위해 제시한 보조금과 규제 개편은 단순한 산업정책을 넘어 국가전략에 가깝다. 최근 한국 스타트업들이 유독 미국을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내수 포화, 인력 불균형, 기술 경쟁 심화 속에서 미국은 새로운 선택지가 아니라 사실상 ‘첫 번째 시장’으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창업 초기부터 해외 진출을 전제로 태어나는 ‘본 글로벌(Born-global)’ 기업의 패턴이 한국에서도 뚜렷해지고 있다. 이들은 속도보다 국제화 준비도를 중시한다. 문제는 미국 시장이 기회의 크기만큼 진입장벽도 높다는 점이다. 주마다 다른 법무·세무 제도, 기술 기업이 마주하는 FDA·HIPAA 등 규제 장벽, 시장 신뢰 확보를 위한 검증 과정까지미국 진출은 본질적으로 다시 ‘0에서 1을 만드는 과정’에 가깝다. 이 지점에서 한미 네트워크를 가진 대학의 역할이 새롭게 주목받는다. 대학의 강점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제도적·공공적 신뢰성으로 초기 시장 진입의 문턱을 낮출 수 있다. 둘째, 연구·기술 검증 인프라를 통해 기술 기업이 요구받는 객관적 신뢰를 제공한다. 셋째, 지속가능하고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보유해 스타트업이 스스로 확보하기 어려운 연결성을 제공한다. 즉, 대학은 기업이 단독으로 만들기 어려운 ‘국제화의 기반 시설’을 이미 갖춘 셈이다. 최근 한국에서도 이러한 기반을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그중 한 예가 조지메이슨대가 보유한 한미 캠퍼스 연계와 현지 생태계를 활용한 소프트 랜딩 프로그램들이다. 조지메이슨 한국캠퍼스의 혁신창업센터는 워싱턴DC 인근 북부 버지니아의 NISA(Northern Virginia International Soft-Landing Accelerator)와 연계해 한국 스타트업의 미국 시장 안착을 지원한다. NISA는 미국 공공기관과 대학이 공동 운영하는 프로그램으로 매년 전 세계 15~20개 기업을 선발해 사업전략, 규제·법무 준비, 투자자 매칭을 지원한다. 이후 최종 선정된 기업은 6개월간 현지 혁신지구에서 실험실과 오피스를 무상 제공받으며 미국 시장에 필요한 검증·네트워킹을 집중적으로 확보한다. 이는 단순한 비용 절감이 아니라 미국 시장이 요구하는 제도적 신뢰와 초기 내재적 리스크를 줄여주는 ‘착륙 플랫폼’에 가깝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특정 기관의 활동을 넘어 하나의 흐름을 시사한다. 즉, 글로벌 진출을 희망하는 스타트업이 정교하게 설계된 국제화 플랫폼을 통해 제대로 미국에 착륙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의미다. APEC 이후의 통상 환경은 한국 스타트업에 분명한 기회다. 그러나 그 기회는 준비된 이들에게만 열린다. 미국으로 향하는 한국 스타트업 2.0 시대, 이제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구조다. 그리고 그 구조 속에서 대학은 글로벌 기업의 출발선을 함께 설계하는 든든한 동반자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이만종의 클로즈업] ‘핵잠 논의’ 기대 높지만 과제 산더미

한미 양국이 원자력 추진 잠수함(SSN) 건조 추진에 뜻을 모았다는 발표는 국내 안보 논의를 단숨에 뜨겁게 달궜다. 전략자산 확보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정부 발표의 무게만큼이나 그 이면에 숨겨진 현실적 변수를 국제 전략 환경과 국내 여건을 모두 고려해 냉정히 검토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낙관이나 우려의 극단이 아니라 기대와 현실을 동시에 견디는 전략적 시각이다. 첫째, 합의의 구체적 범위는 아직 불명확하다. ‘뜻을 모았다’는 표현이 원칙적 공감대인지, 정책적 승인인지, 기술·연료 이전에 대한 실질적 합의인지 공개되지 않았다. 외교·안보 분야에서 문구의 작은 차이가 향후 협력 폭과 기술 이전 범위를 결정할 수 있다. 미국과 호주의 원잠 협상 사례(AUKUS)에서도 원칙적 합의에서 실제 기술 이전까지 수년이 걸린 바 있어 현재 단계에서 지나친 기대는 경계해야 한다. 둘째, 우라늄 농축·재처리(ENR) 문제는 구조적 한계를 지닌다. 미국의 비확산 정책(NPT)과 관련 법령은 ENR 기술 이전에 극도로 신중하다. 정부가 협의 공간이 넓어졌다고 설명하지만 이는 기술 이전이나 단독 재처리 승인으로 직행하는 신호는 아니다. 현실적으로 이번 발표는 단순히 기회를 확보했다는 의미에 가깝다. 출발 신호는 의미 있으나 목적지 좌표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셋째, 핵잠 확보는 전략적 효용과 부담을 동시에 수반한다. 원자로 운용 인력 양성, 정비·안전관리 체계 구축, 방사능 대비 인프라, 예산 투입 등은 단기간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핵잠은 단순한 전력 보강이 아니라 국가 시스템 전체의 업그레이드를 요구한다. 즉시 전력화라는 인식은 현실과 거리가 멀며 비유하면 차를 사는 것이 아니라 ‘도로·정비소·운전학교’를 동시에 만드는 일과 같다. 프랑스와 영국 사례에서 초기 인력 양성만 5~7년이 소요된 점도 참고할 만하다. 넷째, 미국 함정의 국내 건조 논의는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 미국의 자국 선박 건조 원칙(Jones Act)과 ‘군함 애국조항(Buy American)’ 유지 정책은 수십년간 변하지 않았다. 한국 조선업의 역량을 고려해도 단기간 내 제도 장벽을 넘는 것은 쉽지 않다. 현재 단계는 어디까지나 논의 시작 수준으로 기술·인력·법적 절차 모두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다섯째, 한미 간 경제·군사 교환의 균형과 비용 구조도 살펴야 한다. 관세 인하 등 긍정적 효과가 예상되지만 대규모 무기 구매는 국방 예산 구조에 영향을 준다. 장기적 부담과 이익 구조를 종합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국제 사례를 참고하면 호주 핵잠 프로그램의 총비용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2~3% 수준으로 평가되며 장기간 재정 부담 우려도 나온다. 마지막으로 국내 정치 환경과 초당적 협력 구조가 중요하다. 외교·안보 의제가 정치 쟁점화될 경우 협상력과 정책 일관성 모두 흔들릴 수 있다. 핵잠 확보와 확장 억제 강화는 국가 전략 핵심축이므로 정치적 유불리보다 안정적 추진을 위한 협력 체계가 중요하다. 결국 이번 발표는 중요한 논의를 공식 테이블에 올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발표만으로 안보가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기술 협력, 인력 양성, 예산 마련, 국제정치 변화, 한미 간 조정 과정 등 실제 과제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분명 핵잠은 한반도 안보의 큰 축이 될 수 있으나 그 힘은 현실적 준비와 전략적 냉정 위에서만 발휘된다. 기대는 높되 과장은 경계하고 속도는 조절하며 방향은 명확히 해야 한다. 정부, 정치권, 산업계, 국민 모두가 이러한 균형 감각을 공유할 때 우리의 안보는 단단한 체계를 갖출 수 있다. 핵잠보다 중요한 것은 핵잠을 다룰 국가 시스템의 정비다.

[천자춘추] K-소비재 성공조건

K—콘텐츠의 확산과 함께 한국 소비재가 세계시장에서 새로운 기회를 맞고 있다. 글로벌 소비 트렌드는 고물가에도 불구하고 ‘가치 중심 소비’가 확대되고 온라인 플랫폼 확산으로 브랜드 교체 속도는 빨라졌다. 이러한 흐름은 한국의 기술력, 디자인, K—컬처가 결합한 K—소비재에 좋은 조건을 제공한다. 실제로 미국, 일본, 동남아 등 주요 시장에서 K—뷰티와 K—푸드의 점유율은 꾸준히 상승하고 있으며 글로벌 유통망에서도 한국 브랜드 전문관이 확대되는 추세다. 부천시 소재 A기업은 K—푸드를 중심으로 한 소비재 수출의 변화를 잘 보여준다. 과거 국내 시장 위주로 떡과 면류, 가정간편식(HMR) 제품을 생산했던 이 기업은 한류 확산 이후 해외에서 떡볶이·밀떡 제품에 대한 수요가 늘며 미국 바이어의 요청으로 밀떡볶이 원산지를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한미 FTA는 기업이 자율 발급할 수 있지만 실제 원산지증명서 작성·관리·사후검증 대응은 중소기업에 쉽지 않은 과정이다. 이 기업 역시 원산지 관리, 제조공정 분석, 원재료 소명 등 복잡한 절차에서 난관을 겪었다. 이때 경기지역FTA통상진흥센터의 컨설팅은 중요한 전환점이 됐고 특히 한미 FTA, 한—아세안 FTA 등을 적극 활용해 관세 부담을 줄이고 현지 인증·통관 절차를 사전에 대비하면서 시장 진입 속도를 높였다. 이 기업의 밀떡은 한류 드라마·예능을 통해 자연스럽게 노출되며 현지 소비자들의 관심을 얻었고 이제는 한미 FTA를 비롯해 아세안, 베트남, 호주 등으로 인증수출자를 확보하며 수출국이 멕시코, 독일, 카타르까지 확대됐다. 나아가 유럽과 중동시장 진출을 위해 할랄·유럽연합(EU )인증까지 취득하며 K—푸드 수출의 신뢰도를 높이며 수출 확대 성과로 이어졌다. 그러나 한류가 만든 기회가 항상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코로나19 당시 마스크 수출 붐은 짧은 시간 수많은 기업을 해외로 뛰어들게 했지만 품질·인증 미흡으로 해외 신뢰를 잃은 사례도 적지 않았다. 앞으로 요구되는 것은 선택과 집중, 그리고 준비다. K—소비재의 상승기류는 지금이 절정이지만 그 파도를 오래 타기 위해서는 더욱 정교한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경기지역FTA통상진흥센터는 중소기업이 한류의 기회를 일시적 매출이 아니라 장기적 경쟁력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FTA 활용과 해외 인증, 시장조사 지원을 강화해 나갈 것이다. 준비된 기업만이 한류 소비재의 상승기류를 지속가능한 성장으로 연결할 수 있다.

[경기만평] 여기서 이러시면...

[사설] 신차출고센터 체증, 여주시 혼자 못 푼다

기업 사업장 유치는 지자체의 숙원이다. 부득불 리스크가 수반되기도 한다. 이 모순을 잘 절충해야 성공한 기업 유치다. 여주시가 한창 추진 중인 현대차 신차출고센터가 그렇다. 조성 지역이 여주시 점봉동 255-1번지다. 영동고속도로 여주IC와 가깝다. 이 때문에 유치가 가능했다. 11만여㎡ 크기로 2028년 완공된다. 연간 7만9천여대, 하루 평균 400~600대를 출고한다. 물류 거점화, 지역경제 활성화, 고용 창출이 예상된다. 교통이 장점인데 그 교통이 문제다. 여주IC 진출입로 상황이다. 해당 부지는 여주IC에서 직선거리 1㎞도 안 된다. 여주IC는 안 그래도 혼잡지역인 ‘레드존’이다. 여주프리미엄 아웃렛, 프리미엄 빌리지 등으로 교통량이 상당하다. 연간 수백만명이 찾는다. 최근에는 반려마루 여주까지 문을 열었다. 이곳에 신차출고센터가 들어서는 것이다. 하루 400~600대는 신차만 따졌을 때 물량이다. 관련 교통량 증가가 상당히 커질 게 분명하다. 가동되지 않는 지금, 교통 대책이 나와야 한다. 여주시민의 걱정이 괜한 게 아니다. 비슷한 상황을 증명한 선례가 있다. 울산 현대차 출고센터다. 일반 차, 화물차, 물류 트럭이 거리를 뒤덮었다. 여기에 차량 출고가 특정 시간대에 몰리기까지 했다. 자랑스러운 사업 유치가 한순간 교통지옥의 원흉으로 몰렸다. 똑같은 형태의 사업장이 여주 신차출고센터다. 이용해야 할 고속도로 IC는 이미 ‘레드존’이다. 여주시민의 우려가 과하지 않다. 전문가들이 조언하는 일반적인 해결책이 있다. 도로 구조 개선이다. 회전 차선 확장, 신호 조정, 보행자 안전시설 강화 등을 주문한다. 출고 시간 분산도 제시한다. 출고 예약 시스템을 통해 특정 시간대 집중을 피하는 방안이다. 물류 차량 스케줄링도 있다. 부품 트럭이나 딜리버리 차량의 출입 시간을 조율하는 것이다. 대중교통 연계도 얘기된다. 센터 직원들의 자가용 사용 억제 노력이다. 하지만 지금 준비할 건 보다 근본적이어야 한다. 교통영향평가를 통한 체계적 대책 마련이다. 그래야 근원적 대처가 된다. 하지만 예산이 수반된다. 도로 관리자 자격도 있다. 고속도로 관련 문제를 여주시 혼자 처리할 수 없다. 결국 정부와 지자체가 머리를 맞대야 하는 상황이다. 우리가 자주 듣는 구호가 있다. 기업 하기 좋은 환경 만들기. 바로 이 구호를 실천해야 할 상황에 왔다. 현대차동차 출고센터를 유치했으며 잘 운영될 환경도 만들어야 한다. 정부와 경기도가 도울 일 아닌가. 여주시 혼자 힘으로는 버거워 보인다.

[사설] 연희공원 사업 특혜 논란... 시민들에 제대로 밝혀야

민간사업자가 부지 70%를 공원으로 지어 지자체에 기부한다. 나머지 30% 부지에 아파트 등을 지어 사업비를 충당한다. 도시공원 특례사업이다. 인천 서구 연희공원이 이 방식으로 개발 중이다. 현재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다. 내년 11월 입주 예정이다. 그런데 인천시가 이 곳 초등학교 부지를 사업지에서 뚝 떨어진 곳에 마련토록 해 시끄럽다. 관련 규정이나 관계기관 협의도 무시했다. 덕분에 사업자는 100가구 이상 아파트를 더 분양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특혜 논란이다. 호반건설 계열의 연희파크㈜는 24만7천667㎡(7만5천여평)에 1천370가구의 아파트를 지어 판다. 나머지 73% 부지에는 공원을 개발, 인천시에 기부한다. 그러나 최근 감사원 감사에서 중대한 하자가 드러났다. 인천시가 이 사업부지에 학교용지(초등학교)를 제대로 마련하지 않은 것이다. 감사원은 이를 민간사업자의 수익 보장을 위한 것으로 봤다. 처음 인천시는 학교용지를 사업부지에서 2㎞ 떨어진 시립 양묘장 일원으로 결정했다. 학교부지는 원칙적으로 공동주택 개발사업지 안에 확보해야 한다. 2018년 인천시도시계획위원회도 조건부로 이 사업을 통과시켰다. 학교용지와 관련, 인천시교육청과 충분히 협의하라는 조건이었다. 그러나 인천시는 관계기관 협의에서 인천시교육청은 배제했다. 인천시교육청은 2019년부터 통학로 위험 등을 이유로 인천시에 부적합 의견을 여러 차례 보냈다. 그러나 매번 묵살 당했다. 결과적으로 민간사업자는 사업부지 안에 1만1천㎡(3천300여평)의 학교용지를 확보하지 않아도 됐다. 감사원은 최소 100가구 이상의 아파트를 추가로 분양할 수 있었다고 봤다. 결국 이 학교용지는 교육부 중앙투자심사를 넘지 못했다. 인천시는 지난 9월 뒤늦게 사업부지 바깥이지만 좀 더 가까운 곳으로 변경했다. 그러나 아직 공사 시작도 못해 개교가 한참 늦어질 전망이다. 감사원은 인천시 도시계획 담당 4명을 지목했다. 도시계획위 의결 사항도 무시하고 사업을 인가해 특혜를 줬다고 했다. 인천시에 ‘엄중한 인사조치’를 통보했다. 그러나 인천시 관계자 멘트는 딴판이다.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추가 분양 이익이 크지 않아 보인다’ 등이다. 그냥 넘어갈 사안이 아닌 것 같다. 꼼수도 아니고 정면으로 관련 규정과 시민 편익을 외면했다. 아이들 통학 안전 문제나 학부모들 노심초사가 보이지 않았던 것일까. 이번 특혜 논란에 혹여 보이지 않는 권력의 힘이라도 작용했다면 엄중한 문제다. 인천시가 명명백백히 밝혀 시민들에게 해명해야 할 일이다.

[지지대] AI의 발전과 언론의 본질

얼마 전 구글이 생성형 AI 제미나이 3(Gemini 3)를 선보였다. 구글의 자신감 넘치는 표현을 빌리자면 제미나이 3는 모든 제미나이의 역량을 집대성해 어떤 아이디어든 실현할 수 있도록 돕는 가장 똑똑한 모델이다. 제미나이 3를 써본 사용자와 개발자들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반응 중엔 AI 발전으로 대체될 직업군을 다룬 어두운 예상도 있었다. 이미 미국에선 AI 기술의 영향으로 컴퓨터 프로그래머들이 일자리를 잃고 있다는 수치가 나왔다. AI 대체 직업군 중엔 기자도 심심찮게 포함됐다. AI에게 보도자료 등 텍스트를 나열한 정보로 기사를 쓰게 했더니 예상보다 잘 썼다는 얘기는 이미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그러니 기자도 AI에 대체될 거란 전망이다. 맞는 말일까. 기자의 본질로 들어가보면 해답이 나온다. 기자는 취재, 편집 등의 일을 한다. 취재는 현장을 가고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단순히 듣기만 해서는 기사를 쓸 수 없다. 일어난 일의 전모, 본질을 파악하려 애쓴다. 이 과정에서 교차 검증은 필수다. 기사 작성은 단순히 보도자료를 텍스트로 변화시키는 작업이 아니다. 오랜 기간 사람을 만나고 현장에서 나오는 게 기사다. AI가 아닌 사람의 영역이다. 얼마 전 경기언론인클럽이 주최한 ‘생성형 AI시대, 취재·보도 준칙’ 좌담회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AI를 어디까지 활용할지, 활용했다면 어느 선까지 공개할지 등 고민이 많았다. 그러다 눈길이 간 곳이 신문윤리강령 및 실천요강이다. 실천요강의 보도준칙은 언론의 본질을 잘 설명하고 있었다. “언론인은 보도기사를 작성할 때 사안의 전모를 충실하게 전달함을 원칙으로 하며, 출처 및 내용을 정확히 확인해야 한다.” 그렇다. 정확하게 확인하려면 사람이 직접 나서야 한다. 그러면 기자는 왜 이런 일을 할까. 역시 실천요강에 잘 나와 있다. “사회정의와 공익을 실현하기 위해 진실을 적극적으로 추적, 보도해야 한다.” 시대가 변했어도 언론은 우리 사회의 공익을 위해 존재한다. 그 일은 사람이 직접 하는 데는 변함없다.

[천자춘추] 서울기상관측소, 100년과 미래

대한민국의 심장부, 서울 종로구 송월길 언덕 위에 자리한 서울기상관측소는 단순한 관측 시설을 넘어 한 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이 땅의 하늘과 바람, 비와 눈을 지켜온 산증인이다. 1907년 대한제국의 정부 산하 관측소로 첫걸음을 내디딘 이래 서울기상관측소는 우리 민족의 근대사와 희로애락을 함께하며 날씨의 기록을 이어왔다. 1913년 낙원동 시절을 거쳐 1932년 송월동 현재 위치에 정착한 서울기상관측소는 지금까지 변함없는 자리에서 하늘을 우러르고 땅의 숨결을 헤아려 왔다.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4년 ‘국가등록문화재 제585호’로, 2017년에는 세계기상기구(WMO)로부터 ‘100년 관측소’로 지정됐다. 100년 관측소는 100년 전 설립, 비활동 기간 10년 미만, 환경정보의 보존, 지속적인 자료 품질관리, 관측자료 공개 등 WMO의 촘촘한 기준을 모두 통과한 경우에만 선정되는 것으로 기상 분야의 유네스코 문화재라고 불린다. 하지만 서울기상관측소의 진정한 가치는 수치와 데이터에만 있지 않다. 송월동 언덕 위, 단풍나무와 벚나무 그늘 아래 흐르는 시간은 우리에게 한 가지 진리를 일깨워 준다. 자연은 늘 변하고, 그 변화를 기록하고 기억하며, 다가올 또 다른 변화에 대비하는 일은 인류의 몫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오늘날 인류는 기후위기라는 거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지구 평균 기온 상승, 잦아진 국지성 집중호우, 재난 수준의 가뭄, 예측을 벗어나는 폭염과 한파는 우리의 삶과 경제를 뒤흔들고 있으며 지난 세기 동안 서울이 겪은 극한의 날씨들은 서울기상관측소의 기록으로 남아 있다. 기후위기 시대, 과거와 현재의 기록들은 이제 미래 세대를 위한 지혜로 승화돼야 하며 서울기상관측소의 100년 기록은 우리가 과거를 해석하고, 현재에 대응하며, 미래를 예측하는 데 나침반 역할을 해 줄 것이다. 서울기상관측소는 앞으로도 변함없이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하늘을 관측할 것이다. 하늘을 관찰하는 일은 곧 시민의 안전과 행복을 지키는 일이며 나아가 인류 공동체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보장하는 길이다. 기상청은 앞으로 새로운 기록을 써 내려가는 것과 동시에 한 세기 넘게 쌓인 소중한 기록을 디지털 기술과 접목, 정밀하고 신뢰성 높은 기후 예측 체계를 구축하며 과학과 역사, 전통과 미래를 연결해 기후위기라는 도전 과제에 맞설 것이다.

[기고] 주소지로 막힌 운동장... 도민체전 ‘시대 역주행 중’

경기도민체전의 선수 출전 자격은 오랫동안 ‘해당 지자체에 일정 기간 거주한 주민’으로 제한돼 왔다. 이 규정은 1970~80년대 지역 공동체의 결속을 강화하고 생활체육과 엘리트체육이 지역 기반으로 운영되던 시대의 산물이었다. 그때는 지역 학교와 기업체 운동부가 활발했고 지역 선수라는 개념이 명확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다양한 이유와 예산 축소로 전국의 운동부가 급속히 사라지고 있다. 대학들도 학생 수 감소와 구조조정으로 체육특기생 선발을 중단하거나 운동부를 유지할 여력이 없다. 그럼에도 경기도민체전은 여전히 ‘주소지 기준’만을 적용하고 있어 관내 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이더라도 주소지가 다른 지역이면 출전이 불가능하다. 이로 인해 지자체와 대학의 연계가 단절되고 지역 스포츠 생태계는 더욱 위축되고 있다. 반면 타 시·도는 시대 변화에 발맞추고 있다. 충북은 관내 대학 재학생에게 출전 자격을 부여하고 있고 전남은 체육특기생의 경우 대학 소속으로 출전할 수 있도록 인정한다. 경북 역시 관내 대학 학생을 해당 시·군 소속으로 간주해 지역 대학 운동부의 유지와 활성화를 유도하고 있다. 이러한 유연한 제도 덕분에 대학은 지역 체육의 중심으로 다시 서고 체전은 지역 청년들의 무대가 되고 있다. 경기도는 전국에서 대학이 가장 많은 광역지자체다. 그럼에도 도민체전 출전 자격이 거주지로만 묶여 있어 대학의 참여가 차단되고 있다. 이제 경기도체육회는 제도를 재정비해야 한다. 관내 대학 재학생도 해당 지자체 소속으로 인정하는 규정을 신설한다면 지자체는 대학 운동부에 대한 지원의 명분을 얻고 대학은 경기 출전의 기회를 통해 운동부를 재건할 수 있다. 나아가 이는 지역사회가 대학을 중심으로 스포츠 문화를 함께 만들어가는 계기가 될 것이다. 도민체전은 단순한 대회가 아니다. 그것은 지역 체육의 뿌리이자 청년 스포츠의 희망을 가늠하는 척도다. 더 이상 주소지만을 기준으로 한 낡은 규정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이제 경기도가 먼저 변해야 한다. 지역 대학을 체육의 동반자로 인정하고 대학 운동부 활성화를 통해 지역 스포츠 생태계를 다시 살려야 할 때다. 체육은 지역의 얼굴이며 대학은 그 지역의 자랑이다. 경기도민체전이 그 연결의 첫걸음이 되기 바란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경기시론] 행복은 바로 내 옆에 있다

우리나라는 국내총생산(GDP) 기준 세계 13위에 달하는 경제대국이다. 객관적인 경제력만 놓고 보면 분명 선진국 반열에 올라 있다. 그러나 정작 국민들이 체감하는 행복 수준은 그렇지 못하다. 세계 143개국을 대상으로 한 행복지수 조사에서 우리나라는 58위를 기록했고 이는 전년도보다 6단계나 하락한 수치다. 특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는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어 경제 성장은 이뤘지만 국민 개개인의 마음 건강과 정서적 만족도는 오히려 황폐해지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경제적 수준이 높다고 행복이 자동으로 따라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통계에 따르면 우리 국민은 객관적인 생활 수준과 달리 주관적으로 느끼는 행복감이 상당히 낮다. 이는 단순한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가 가진 구조적 특성과 문화적 분위기와도 깊이 연결돼 있다. 어려움이 찾아왔을 때 기댈 만한 친구나 가족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비율이 OECD 국가 평균보다 높게 나타나고 사회적 고립감, 혼밥·혼자 생활의 증가, 과도한 경쟁 분위기, 불안정한 고용 환경, 실패가 용납되지 않는 사회 분위기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외적으로는 화려해졌지만 내면은 점점 더 메말라 가는 셈이다.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어김없이 새로운 계획을 세운다. 운동하기, 돈 모으기, 자기계발 등 다양한 목표가 있지만 사실 그 바탕에는 “조금 더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공통된 소망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막상 “행복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많은 사람이 정확하게 말하지 못한다. 행복을 과정이 아닌 결과로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치 특정 목표를 달성하거나 어떤 조건을 갖추면 행복이 ‘완성’되는 것처럼 여긴다. 하지만 행복은 미래의 어느 시점에 도착해야 얻을 수 있는 목적지가 아니다. 행복은 지금 이 순간, 일상 속에서 느끼는 감정이며 과정이다. 필자의 경우 정성스럽게 준비한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나누며 따뜻한 대화를 나눌 때 큰 행복을 느낀다. 거창한 사건이 아니더라도 좋은 이야기와 긍정적인 기운이 오가는 그 순간에 내가 살아있다는 의미와 소중함을 느낀다. 이런 경험이야말로 행복이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눈앞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행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을 살펴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그들은 명품을 소유하거나 비싼 물건을 사는 데 집착하기보다 ‘경험’을 쌓는 데 시간을 쓴다. 낙관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작은 일에도 감사하며 미래에 대한 불안보다 현재의 순간에 집중한다. 무엇보다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영역에 집중하고 변화 가능한 부분을 스스로 실천하는 태도를 지닌다. 결국 우리 삶에서 진정으로 통제할 수 있는 시간은 바로 ‘지금 이 순간’뿐이다. 멀리 있는 누군가에게 큰 선물을 보내는 것보다 곁에 있는 사람에게 따뜻한 미소와 눈빛, 진심 어린 한마디 인사를 건네는 일이 더 큰 변화를 만든다. 그 작은 행동 하나가 오늘 하루를 조금 더 포근하게 만들고 마음속에 미세하지만 분명한 행복감을 남긴다. 행복은 거대한 목표나 특별한 사건에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소소한 일상, 작은 감사, 순간의 의미 부여가 쌓일 때 비로소 우리의 삶은 풍요로워진다. 우리 사회가 자꾸 더 빠르게, 더 높게, 더 치열하게만 나아가려 한다면 행복은 멀리 도망칠 것이다. 그러나 속도를 잠시 늦추고 지금 이 순간을 바라본다면 행복은 이미 우리의 곁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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