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안’, ‘강태완’, ‘속헹’, 이 이름을 아는가. 누군가에겐 낯설 수도 있는 이름, ‘뚜안’, ‘태완’, ‘속헹’으로 불렸던 청년들은 죽음을 맞이하고서야 이름이 알려졌다. 그들이 꿈꾸던 미래와 수고로웠던 일상, 사랑하는 이들과 나눴던 희망과 좌절의 이야기도 죽음의 소식 뒤에 우리에게 다가왔다. 뚜안은 10월28일 대구 성서산업단지 안의 자동차부품공장에 들이닥친 대구출입국·외국인사무소의 강제 단속으로 목숨을 잃었다. 25세의 여성, 대학 졸업 후 다른 대학으로 편입까지 해 학사 학위를 두 개나 받고 취업을 준비하던 청년, 사랑하는 가족, 친구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살아왔다는 것까지만 들으면 주변 여느 사람들과 별다를 것이 없다. 좋아했다던 볼 터치, 늘 덮었던 무릎담요는 평범함 속에서도 자신만의 다름으로 빛났을 뚜안을 상상케 한다. 뚜안은 단지 공장에서 일했다는 이유만으로 불안에 떨다 고통 속에서 죽음에 이르렀다. 대구출입국은 무작위로 사람들을 체포한 뒤 ‘명단’을 대조해 미등록 노동자로 확인된 34명을 골라내 끌고 갔다고 한다. 그 무자비한 현장에서 ‘뚜안’이라는 이름은 제압해 붙잡고, 감금하고, 추방해도 되는 존재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만 불렸다. 그날 붙잡혀 간 34명의 미등록 노동자들은 단속 과정의 공포와 동료의 죽음이라는 충격적인 소식 앞에서 애도할 시간도 없이 구금되고 추방됐다. 목격자들은 그렇게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증언자로서의 자격조차 얻지 못하고 이 땅에서 사라졌다. 강태완, 다섯 살에 한국에 와서 20여년간 미등록 이주민 신분으로 살다 천신만고 끝에 안정적 체류 자격을 얻은 지 4개월여 만에 산업재해로 작년 이맘때쯤 사망한 서른두 살 청년의 이름이다. 속헹, 2020년 난방이 되지 않는 농장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한파 속에서 사망한 채 발견된 청년 여성 노동자의 이름이다. 이들의 안타까운 죽음 이후 한국 사회에서 강태완은 미등록 이주 아동을, 속헹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열악한 환경에서 살고있는 농촌 이주노동자를 상징하는 이름이 됐다.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며 우리는 그 존재의 고유함을 인정하고 사회적 존재로, 의미 있는 존재로 자리 매긴다. 뚜안과 강태완과 속헹은 출입국통계월보 속 데이터의 숫자 더미로 존재하는 체류 외국인, 미등록 체류자, 난민, 외국 국적 동포 중 하나가 아니다. 누군가의 곁에서 다정하게 이름 불리며 관계맺고 살아왔던 고유한 존재인 것이다. 11월6일 밤 세종로에서는 고(故) 뚜안을 추모하고 죽음을 초래하는 강제단속을 규탄하는 추모집회가 열렸다. 그 자리에는 고인 또래로 보이는 청년들이 다수 참석했다. 학업과 취업을 위해 애쓰며 살아가는 자신들과 다를 바 없는 뚜안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보였다. 11월5일 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국어 교원들은 ‘우리가 가르친 학생 중 하나’라며 뚜안의 죽음을 애도하며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체류권을 보장하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대구출입국의 단속 대상 명단이 차별과 분리,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한 호명이라면 그 반대편에는 내 곁에서 살아 숨 쉬는 존재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며 말 거는 다정한 호명이 있다. 피부색으로, 성별로, 나이로, 종교로, 성적 지향으로, 그 어떠함으로도 차별하거나 차별받지 않고 모두가 평등하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힘차게 외치는 이름 부름이 있다. ‘아픈 내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는 시인 박준의 시구처럼 뚜안, 강태완, 속헹, 이 이름은 차별과 혐오로 병들고 아픈 한국 사회를 치유하고 일깨우는 이름일지도 모른다. 이들의 이름으로 밥을 짓고 약을 짓고 집을 지어 든든히 연결된 존재들이 만드는 새로운 세상, 그것이 우리의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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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일보
2025-11-20 1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