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실내악이 알려준 ‘삶의 기술’

오랫동안 무대와 강단에서 활동하며 필자는 실내악이 음악가를 성장시키는 데 빼놓을 수 없는 핵심 과정이라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됐다. 실내악은 듣기와 반응, 그리고 함께 존재하는 법을 경험하게 하는 예술이다. 그리고 이 세 가지는 음악의 영역을 넘어 삶의 중요한 원리이기도 하다. 먼저 실내악은 ‘듣기’의 깊이가 중요하다. 일상에서 듣는다는 행위는 종종 형식적일 수 있다. 우리는 말을 들으면서도 다른 생각을 하고 상대의 감정과 맥락은 놓친 채 겉만 받아들이며 무심히 지나칠 때가 많다. 그러나 실내악의 무대에서는 겉핥기식 듣기로는 완성도 있는 음악을 만들어낼 수 없다. 동료의 활이 지나가는 미세한 속도, 프레이즈를 시작하는 찰나의 호흡, 음악적 전환점의 미묘한 순간까지 모두 음악의 흐름과 완성도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실내악은 단순히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마음과 의도를 헤아려 반응하는 ‘진정한 듣기’가 무엇인지를 일깨워준다. 듣기와 더불어 중요한 것은 ‘반응’이다. 실내악은 계획대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연습에서 수없이 다듬은 부분도 무대에서는 전혀 다른 긴장감으로 다가온다. 연습한 내용뿐 아니라 무대에서는 그 순간의 플러스알파, 즉 무대 위의 영감이 더해진다. 누군가 한 음을 조금 길게 잡으면 전체 호흡이 달라지고 예상보다 빠르게 움직이면 나머지 파트가 그에 반응하며 조율에 들어간다. 이 과정은 누가 틀렸는지를 따지는 문제가 아니다. 상황에 맞게 음악을 자연스럽게 완성하는 능력이 바로 실내악의 힘이자 매력이다. 삶도 크게 다르지 않다.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예기치 않은 순간마다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관계의 형태와 깊이가 달라진다. 필자는 1991년 창단해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는 현악4중주단콰르텟21과 실내악단코리아나 챔버뮤직소사이어티에서의 오랜 경험을 통해 실내악의 이런 원리를 점점 더 명확하게 이해하게 됐다. 해석을 놓고 논쟁하고, 의견이 엇갈리는 과정이 없으면 음악은 완성도가 없고 서로 맞춰지지 않은 해석은 설득력이 약하다. 실내악은 개인의 완벽함을 증명하는 과정이 아니다. 서로 다른 해석, 기질, 이질적인 내용이 어떻게 균형을 이뤄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되는지를 보여주는 집단의 예술이다. 이 예술행위가 얼마나 큰 희열과 풍요를 경험케 하는지는 더 말할 나위 없다. 이 배움은 학생들을 지도할 때도 마찬가지다. 처음 실내악을 시작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자신의 파트에만 집중한다. 다른 파트의 내용이 아직 잘 파악되지 않고 음악의 전체 구조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표현해내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나 조금씩 귀가 열리고 상대의 소리를 듣고 반응하는 방법을 터득하면서 그들은 한 곡을 ‘함께 완성한다’는 성취감과 실내악의 매력을 경험한다. 이 변화는 기술적 능력만으로는 만들어낼 수 없다. 듣고, 이해하고, 반응하며, 함께 책임지는과정의 축적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결국 실내악은 인생의 축소판이다. 실내악은 혼자서는 음악을 온전히 완성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잘 듣고, 충실히 반응하며,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반응할 줄 아는 능력. 이 세 가지는 실내악의 원리이자 매력이고 동시에 인생을 함께 살아가는 방식이기도 하다. 실내악이 내게 남긴 가장 큰 선물은 함께 만드는 기쁨이다.

[기고] 11월은 불조심 강조의 달, ‘내 가족, 내 이웃의 안전은 나부터’

매년 11월은 ‘불조심 강조의 달’이다. 추워지는 날씨와 함께 난방기 사용이 늘어나면서 화재 위험이 높아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달만큼은 가정과 직장에서 한번 더 안전을 점검하고 작은 부주의가 큰 피해로 이어지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주택 화재의 대부분은 부주의로 인해 발생하며 화재 초기 대응 여부가 피해 규모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이에 따라 소방청은 모든 주택에 주택용 소방시설(소화기와 단독경보형감지기) 설치를 의무화했다. 그러나 아직도 설치율이 낮거나 설치 후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가정이 적지 않다. 소화기는 ‘내 손안의 소방차’라 불릴 만큼 초기 화재 진압에 큰 힘이 된다. 또 주택용화재경보기(단독경보형감지기)는 연기를 즉시 감지해 경보를 울려 대피 시간을 확보해 주는 생명의 장치로 거실과 부엌, 침실 등 주요 공간에 반드시 설치하고 정기적으로 점검하는 것이 중요하다. 9월23일 의왕시 오전동에서 차량 화재가 발생했을 때 인근을 지나던 의왕소방서 소속 의용소방대원들이 소화기로 신속히 진화한 사례가 있다. 차량 엔진룸에서 연기가 발생하자 대원들이 침착하게 소화기를 사용해 불길을 초기 단계에서 진압했으며 그 덕분에 인명과 재산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이 사례는 ‘소화기 한 대가 대형 화재를 막을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불은 한순간의 방심에서 시작되지만 예방은 평소의 습관에서 비롯된다. 가정에서는 가스밸브를 잠그고 전열기구의 문어발식 사용을 피하며 난방용품 주변의 가연물을 치워야 한다. 또 주택용 소방시설을 점검하고 차량에도 소화기를 준비하는 작은 실천이 화재 없는 안전한 겨울을 만드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의왕소방서는 시민 여러분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불조심 강조의 달을 맞아 ‘내 가족, 내 이웃의 안전은 나부터’라는 마음으로 화재 예방에 적극 동참해 주기 바란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경기만평] 6년 걸렸으나...

[사설] ‘성희롱 피고인’이 ‘성희롱 피해 집단’ 감사한다니

수사 사건이 모두 기소되는 것은 아니다. 형사 사건 접수 대비 42.6%만 기소된다. 형사 범죄만 놓고 보면 33.1%에 불과하다. 2023년 기준 통계다. 무혐의나 기소유예 등의 처분이 많다. 바꿔 말하면 기소 결정이 그만큼 엄중하다. 소송법상 신분도 하늘과 땅이다. 신원 공개 기준이 ‘기소’로 나뉜다. 공판 제기 이후에는 실명 공개가 허락된다. 경선, 공천 등의 정치 행위에서 ‘기소 여부’가 주요 기준으로 등장하는 것도 그래서다. 이런 ‘기소’를 둘러싼 논쟁이 생겼다. 경기도가 경기도의회 행감을 거부했다. “양우식 의원이 끝내 행정사무감사 의사봉을 잡겠다고 한다.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 도의회 양 의원은 최근 성희롱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도의회 운영위원장직은 유지하고 있다. 여전히 위원회를 관장하고 통제한다. 이게 적절치 않다는 도의 주장이다. 도의회 의장은 지방의회 감사권 부정이라며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김동연 지사 사과’도 요구했다. 살펴보자. 경기도가 도의회의 감사권을 무시한 것인가. 행감 거부는 도 집행부의 결정이다. 정확히 말하면 경기도 구성원 전체의 뜻이다. 이미 수차례 공표된 바 있다. ‘위원장직 사퇴’도 공직 사회의 요구였다. 하지만 양 의원은 사임하지 않았다. 경기도의회 역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피고인이 된 상황에서 행감을 하겠다는 것이다. ‘피고인’ 양 의원 앞에 피해 집단이 서야 할 판이다. 부적절하니 부적절하다는 것 아닌가. 양 의원의 성범죄의 대상은 공무원이다. 그 천박한 단어를 재삼 활자로 옮길 필요는 없다. 양 의원 주변의 입장은 이랬다. ‘악의’, ‘왜곡’, ‘모함’ 등이다. 해명의 기회가 충분했고 시간도 넉넉했다. 결과는 재판 회부다. 경·검도 ‘범죄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런데도 책임지는 모습은 없다. 이제 ‘재판 결과’를 얘기할 건가. ‘대법원 판결’로 미룰 건가. 성 비위 사건이 갖고 있는 통념이 있다. 성 비위 가해자와 피해자의 격리다. 이 기준에는 맞나. 경기지사 사과 요구도 어울리지 않는다. ‘피고인 위원장 부적절’은 집행부 주장이었다. 도지사보다는 공직 사회 입장이다. 피감기관 본연의 의무를 거부한 것도 아니다. ‘피고인 교체’되면 성실히 받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왜 도지사가 사과해야 하는지 확 와 닿지 않는다. 오히려 눈에 들어온 건 동료 도의원의 SNS 글이다. “경기도 공직자들의 선택을 지지한다. 파행 책임은 성희롱 가해자 양우식 의원에게 있다.” 이 주장에 동의한다.

[사설] 휴대폰에 빠진 항해사, 흔한 일이라는 얘기 있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대형 여객선이 무인도에 절반쯤 올라탔다. 200명이 넘는 승객이 가슴을 졸였다. 국민들에게는 세월호의 악몽을 떠오르게 했다. 수사 초기 원인이 밝혀졌는데 황당하다. 항해사가 딴짓을 하고 있었다. 휴대전화로 뉴스 검색 중이었다고 한다. 선장의 위치도 규정을 위반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사고가 참변으로 이어졌다며 어쩔 뻔했나. 이보다 더한 인재의 출발이 있을까. 해경 발표가 이렇다. 퀸제누비아2호가 사고를 낸 것은 19일이다. 오후 4시45분께 목포를 향해 출발했다. 승객 246명, 승무원 21명이 타고 있었다. 오후 8시16분께 신안군 족도와 충돌했다.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였다. 선체가 워낙 커 족도에 절반가량 올라탔다. 좌초 상태는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다. 승객 30여명이 좌초 당시 충격으로 통증을 호소했다.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큰 부상은 아니다. 해경이 승무원들을 상대로 사고 원인을 조사했다. 이 배의 1등 항해사인 40대 A씨를 긴급 체포했다. 조타수인 인도네시아 국적 30대 B씨도 체포했다. 해경이 밝힌 혐의 내용이 어이없다. 휴대전화를 보느라 선박 변침 시점을 놓쳤다는 것이다. 규정대로면 무인도 1천600m 앞에서 변침(방향 전환)을 해야 했다. 이걸 100m 앞에 이르러서야 알아챘다고 한다. 해당 구간은 위험한 협수로였다. 수동으로 전환해 운항해야 하는 곳이다. 처음에는 ‘조타기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조사 과정에서 “뉴스를 검색하다가 조타 시점을 놓쳤다”고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경은 B씨 역시 제 역할을 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 두 사람의 휴대전화는 압수됐고 정밀 감식에 들어갔다. 선장 C씨도 입건해 조사하고 있다. C씨는 사고 당시 조타실에 있지 않았다고 한다. 근무 시간이 아니었다는 변명이다. 하지만 해경의 설명은 다르다. 협수로 등 위험 구간을 지날 때는 선장이 조타실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그런데 이런 황당한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근무 교대를 안 해서 조는 경우, 항로도 모르는 초보가 조타를 하는 경우, 전자해도를 업데이트 안 한 경우, 고장 난 계기를 방치하는 경우 등이 보고돼 있다. 이번처럼 뉴스 검색, 드라마 시청은 자주 있는 일이라고 한다. 정말 심각한 문제다. 이번 사고를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 같다. 엄격한 교육, CCTV 감시, 법적 엄단을 제언한다.

[지지대] ‘울고 넘는 박달재’의 소환

비탈길을 오를 때면 힘들다. 숨도 턱턱 막힌다. 눈물이 쏙 빠진다. 우리 산하에는 그런 고개가 지천이다. 사연들도 많다. 충북 제천시 봉양면에서 백운면 사이에 걸쳐진 천등산에도 그런 곳이 있다. 인근에 박달나무가 많다고 해서 박달재로 부른다. 안타까운 사연도 수두룩하다. 마을 처녀를 짝사랑하다 상사병으로 세상을 떴다는 청년의 이름에서 연유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고개의 사연을 담은 유행가도 있었다.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난 지 3년 뒤인 1948년이었다. 타계한 가수 박재홍이 불렀던 ‘울고 넘는 박달재’ 이야기다. 얼마나 안타까운 서사가 많았길래 울면서 넘었을까. 작사가 반야월이 만든 노랫말을 들여다보자. “천등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 님아/물항라 저고리가 궂은비에 젖는구려/왕거미 집을 짓는 고개마다 구비마다/울었소 소리쳤소 이 가슴이 터지도록/부엉이 우는 산골 나를 두고 가는 님아/돌아올 기약이나 성황님께 빌고 가소/도토리 묵을 싸서 허리춤에 달아주며/한사코 우는구나 박달재의 금봉이야.” 그로부터 강산이 두 차례 바뀌면서 같은 이름의 영화도 만들어졌다. 1968년이었다. 고(故) 심우섭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줄거리는 가사와 비슷했다. 이런 가운데 외교 무대에서 뜬금없이 이 노래가 소환됐다. 무려 77년 만이다. 그것도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골든’ 등 요즘 한창 뜨고 있는 케이팝이 아니라 흘러간 유행가가 말이다. 그 사연은 이렇다. 이재명 대통령이 국빈방문한 아랍에미리트(UAE)가 이 대통령을 맞이하면서 대형 태극기 조명과 함께 음악대가 이 노래를 연주했다. 김남준 대통령실 대변인의 설명은 이랬다. “정상회담 이후 열린 오찬에선 한국 식재료를 활용한 메뉴가 준비됐고 UAE 음악대가 영부인의 고향인 충북의 박달재를 소재로 한 노래로 ‘울고 넘는 박달재’를 연주했습니다.” 케케묵은 유행가도 세계인들에게 아낌을 받을 수 있을까. 장르 구분 없이 우리의 대중가요들도 사랑받길 기대한다. 그게 케이팝의 힘이 아닐까.

[생각 더하기] 당신의 이름으로 짓는 미래

‘뚜안’, ‘강태완’, ‘속헹’, 이 이름을 아는가. 누군가에겐 낯설 수도 있는 이름, ‘뚜안’, ‘태완’, ‘속헹’으로 불렸던 청년들은 죽음을 맞이하고서야 이름이 알려졌다. 그들이 꿈꾸던 미래와 수고로웠던 일상, 사랑하는 이들과 나눴던 희망과 좌절의 이야기도 죽음의 소식 뒤에 우리에게 다가왔다. 뚜안은 10월28일 대구 성서산업단지 안의 자동차부품공장에 들이닥친 대구출입국·외국인사무소의 강제 단속으로 목숨을 잃었다. 25세의 여성, 대학 졸업 후 다른 대학으로 편입까지 해 학사 학위를 두 개나 받고 취업을 준비하던 청년, 사랑하는 가족, 친구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살아왔다는 것까지만 들으면 주변 여느 사람들과 별다를 것이 없다. 좋아했다던 볼 터치, 늘 덮었던 무릎담요는 평범함 속에서도 자신만의 다름으로 빛났을 뚜안을 상상케 한다. 뚜안은 단지 공장에서 일했다는 이유만으로 불안에 떨다 고통 속에서 죽음에 이르렀다. 대구출입국은 무작위로 사람들을 체포한 뒤 ‘명단’을 대조해 미등록 노동자로 확인된 34명을 골라내 끌고 갔다고 한다. 그 무자비한 현장에서 ‘뚜안’이라는 이름은 제압해 붙잡고, 감금하고, 추방해도 되는 존재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만 불렸다. 그날 붙잡혀 간 34명의 미등록 노동자들은 단속 과정의 공포와 동료의 죽음이라는 충격적인 소식 앞에서 애도할 시간도 없이 구금되고 추방됐다. 목격자들은 그렇게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증언자로서의 자격조차 얻지 못하고 이 땅에서 사라졌다. 강태완, 다섯 살에 한국에 와서 20여년간 미등록 이주민 신분으로 살다 천신만고 끝에 안정적 체류 자격을 얻은 지 4개월여 만에 산업재해로 작년 이맘때쯤 사망한 서른두 살 청년의 이름이다. 속헹, 2020년 난방이 되지 않는 농장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한파 속에서 사망한 채 발견된 청년 여성 노동자의 이름이다. 이들의 안타까운 죽음 이후 한국 사회에서 강태완은 미등록 이주 아동을, 속헹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열악한 환경에서 살고있는 농촌 이주노동자를 상징하는 이름이 됐다.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며 우리는 그 존재의 고유함을 인정하고 사회적 존재로, 의미 있는 존재로 자리 매긴다. 뚜안과 강태완과 속헹은 출입국통계월보 속 데이터의 숫자 더미로 존재하는 체류 외국인, 미등록 체류자, 난민, 외국 국적 동포 중 하나가 아니다. 누군가의 곁에서 다정하게 이름 불리며 관계맺고 살아왔던 고유한 존재인 것이다. 11월6일 밤 세종로에서는 고(故) 뚜안을 추모하고 죽음을 초래하는 강제단속을 규탄하는 추모집회가 열렸다. 그 자리에는 고인 또래로 보이는 청년들이 다수 참석했다. 학업과 취업을 위해 애쓰며 살아가는 자신들과 다를 바 없는 뚜안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보였다. 11월5일 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국어 교원들은 ‘우리가 가르친 학생 중 하나’라며 뚜안의 죽음을 애도하며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체류권을 보장하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대구출입국의 단속 대상 명단이 차별과 분리,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한 호명이라면 그 반대편에는 내 곁에서 살아 숨 쉬는 존재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며 말 거는 다정한 호명이 있다. 피부색으로, 성별로, 나이로, 종교로, 성적 지향으로, 그 어떠함으로도 차별하거나 차별받지 않고 모두가 평등하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힘차게 외치는 이름 부름이 있다. ‘아픈 내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는 시인 박준의 시구처럼 뚜안, 강태완, 속헹, 이 이름은 차별과 혐오로 병들고 아픈 한국 사회를 치유하고 일깨우는 이름일지도 모른다. 이들의 이름으로 밥을 짓고 약을 짓고 집을 지어 든든히 연결된 존재들이 만드는 새로운 세상, 그것이 우리의 미래다.

[경기시론] 노송로를 떠올리며 본 ‘검찰개혁’

어린 시절 서울에서 수원으로 내려오던 옛길을 떠올려 보면 한적한 시골길 양옆으로 늘어서 있던 노송들의 자태가 아른거린다. 그 길은 아마 정조 임금이 수원화성으로 행차할 때 지나던 길이었을 것이다. 오래 세월을 버틴 소나무들이 병풍처럼 뻗어 있는 풍경은 참으로 아름다웠던 기억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목동과 정자동 일대에 일부 노송만이 그 시절의 흔적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서울과 수원을 잇는 국도가 개설되면서 대부분의 노송이 베어 졌기 때문이다. 편리한 도로를 개설하는 것은 분명 필요한 일이었지만 그와 함께 또 하나의 아름다운 문화유산을 지킬 방법은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최근 검찰의 권력화된 행태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면서 검찰개혁 논의가 한창 뜨겁게 진행 중이다. 필자 역시 검찰개혁의 필요성에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러나 개혁은 또 다른 문제점을 낳을 수 있다는 점에서 다각적인 검토와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이 같은 문제의식 속에서 검경 수사권 조정이 이뤄졌고 그 결과 수사권 대부분이 검찰에서 분리돼 경찰로 이관됐다. 원론적으로 수사권의 분리와 독립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실행 과정에는 여러 현실적인 어려움이 나타났다.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 것은 바로 경찰의 전문성 부족 문제였다. 수사권 독립을 추진하기에 앞서 이러한 문제가 충분히 보완돼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던 것도 그 때문이다. 특히 사기죄나 배임죄처럼 민사 법리가 깊이 얽혀 있는 사건에서 한계가 종종 드러났다. 경찰이 혐의를 충분히 입증하지 못한 채 검찰로 사건을 송치하면 검찰은 보완수사를 요구하며 사건을 다시 경찰로 돌려보낼 수밖에 없다. 반대로 경찰이 혐의가 불분명하다는 취지로 불송치 결정을 내릴 경우 피해자는 이의신청을 하게 되고 이의신청된 사건은 다시 검찰의 보완수사 명령과 함께 경찰로 내려온다. 이렇게 사건이 양 기관 사이를 오가다 보면 검찰에는 이의신청 사건이 쌓이고 경찰은 보완수사 부담에 시달린다. 양 기관은 업무 과중을 호소하지만 결국 피해를 입는 쪽은 시간만 흘려보내는 국민이 될 수밖에 없다. 모든 문제는 결국 경찰의 전문성 부족에 기인한다. 이러한 현실적인 문제와 관련, 검찰의 주요 기능을 전면적으로 경찰에 이관하는 방안에 크게 두 가지를 지적하고 싶다. 첫째, 앞서 언급했듯 경찰의 전문성 부족 문제다. 현재도 경찰의 수사 역량은 검찰의 법리 검토와 보완을 통해 완성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경찰이 모든 법리적 판단까지 맡게 되면 실무적으로 큰 어려움이 닥칠 가능성이 있다. 둘째, 경찰 권력의 비대화 문제다. 검찰이 과거 권력기관으로 변질된 것처럼 경찰 역시 같은 길을 걸을 우려가 있다. 권력은 언제나 감시받지 않으면 부패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경찰에 전문가들을 충원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경찰의 권력화를 막기 위해서는 새로운 기구가 필요하다. 국민에 대한 본연의 수사 임무를 적절히 수행하기 위한 수사기관으로서 검찰과 경찰이 서로를 견제하며 균형을 이루는 구조를 만들 수는 없는 것일까. 검찰이 경찰을 지휘하는 구조는 이제 이미 깨졌다. 나아가 이제 이전 모습의 검찰청은 폐지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 한편 경찰 수사 실무는 아직 보완이 필요해 보인다. 그렇다면 경찰에 대한 검찰의 법리적 보완 기능을 이용해 실무에서 전문성을 보충하고 경찰의 권력화를 막는 방책으로 활용하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수원에서 더 이상 노송로는 볼 수 없다. 편리한 도로는 얻었지만 아름다운 자연과 역사는 잃었다. 좀 더 신중히 고려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마찬가지로 검찰개혁이 개혁이라는 대의명분과 함께 국민을 위한 공정한 수사가 이뤄질 수 있는 실질적 수사 개편으로 완성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기고] 돌봄통합 시대 앞당기자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가장 빠르게 변화하는 국가 중 하나다. 각종 언론매체를 통해 홍수처럼 쏟아지는 사회적 이슈와 갈등을 접하고 있다. 또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다양한 사회적 과제가 산적해 있다.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고령화와 저출생, 돌봄 공백, 세대 갈등, 다문화 확산 등이 국가 발전과 지속가능성에 많은 우려를 낳고 있는 과제들이며 이는 개인의 능력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로 결국 사회적 연대와 공동체적 해법이 요구되는 과제라 할 수 있다. 특히 급속한 초고령화와 질병 구조의 변화로 의료·돌봄의 수요와 욕구가 증가하고 이로 인해 사회적 비용도 급속도로 늘고 있다. 일상생활이 어려운 사회적 약자에 대한 돌봄 지원은 국민적 관심사로 더욱 절실한 해결 과제가 됐다. 이에 발맞춰 돌봄통합지원법이 제정됐고 내년 3월부터 돌봄통합 정책이 본격적으로 시행될 예정이다. 현재는 제도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전담조직을 구축하고 협력 체계를 갖춰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대상자 발굴과 통합판정, 적시에 욕구에 맞는 서비스 제공, 재정 및 전문인력 확보 등 인프라 구축과 선제적 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돌봄통합은 보건의료와 요양서비스를 국가가 통합적으로 제공함으로써 일상생활이 어렵고 돌봄이 필요한 사람이 살던 곳에서 계속 건강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사회적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 막중한 과제다. 또 우리나라 복지제도의 근간이 되고 획기적 발전을 가져올 수 있는 중요한 정책이다. 돌봄은 더 이상 특정 계층이나 가족의 책임만으로 여길 수 없는 사안으로 국가와 사회 전체가 함께 짊어져야 할 공동의 책무이자 삶의 질을 지탱하는 기본 조건이다. 공공돌봄의 기대는 나날이 높아지고 있으나 현실은 여전히 열악하고 국민이 체감하고 만족할 만한 서비스 체계 구축에 풀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 돌봄통합은 선택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필수적 투자로 국가와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인간다운 사회를 만드는 조건이다. 국민적 관심을 통해 돌봄통합이 하루빨리 정착돼 미래를 지키는 사회안전망이 되도록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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