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High Level을 목표로 한 삶’ 꿈꾼 옛 사람들
[데스크칼럼] ‘High Level을 목표로 한 삶’ 꿈꾼 옛 사람들
  • 김신호 인천본사 경제부 부국장 shkim@kyeonggi.com
  • 입력   2016. 08. 11   오후 8 : 35
  •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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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천 년 전 부터 불교에서는 우리들의 생명이 지닌 경계를 10가지로 나누었다. 지옥(地獄)·아귀(餓鬼)·축생(畜生)·아수라(阿修羅)·인간(人間)·천상계(天上界)와 성문(聲聞)·연각(緣覺)·보살(菩薩)·불계(佛界)의 십계가 그것이다.

이 중 앞의 지옥~천상계 6가지를 육도(六道)라 하고 뒤의 성문~불계를 사성(四聖)이라고 한다.
‘육도’는 인도에서 발생한 브라만교 이래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것으로 원래는 생명이 윤회 유전하는 세계를 여섯가지로 분류한 것이다. ‘사성’은 이러한 윤회와 번뇌를 벗어나기 위해 인간이 불도수행으로 깨닫는 경애의 단계라고 한다.

육도는 삼악도(三惡道 지옥, 축생, 아귀계), 삼악취(三惡趣 아수라, 인간, 천상계)로 다시 나눠진다.

지옥계는 원래 ‘지하 감옥’이라는 뜻으로 괴로움에 속박되어 있는 최저의 경애다.

아귀계의 ‘아귀’의 본 뜻은 ‘죽은 사람’이다. 탐하는 것, 즉 끝없는 욕망에 휘둘려 그 때문에 마음이 자유롭지 못하고 괴로움을 만드는 경우다.

축생계는 성질이 무지하여 식욕과 색욕만이 강하고 부자 형제의 차별이 없이 서로 잡아먹고 싸우는 본능 그대로의 상태이다.

삼악취 중 ‘수라’는 원래 ‘아수라’ 라고 하며 싸움을 좋아하는 인도의 신 이름이다. 자신과 타인을 비교해 항상 타인에게 이기려고 하는 승타(勝他)의 생각을 강하게 갖고 있는 것이 수라계의 특징이라고 한다. 겉으로는 덕망을 모두 갖춘것 처럼 보이는 선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나 남과 자신을 비교해 자신이 뛰어나고 남이 열등하다고 여겨지면 만심을 일으켜 남을 업신여기고, 남이 뛰어난 경우에도 그것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 특징을 갖는 경애다.

이 수라계는 번뇌나 본능에 휘둘리는 지옥, 아귀, 축생의 삼악도와 달리 자아의식이 강한 만큼 삼악도를 넘어섰다고 한다.

인간계는 온화하고 평정한 생명상태이며 사물의 선악을 판별하는 이성의 힘이 분명하게 작용한다.

천상계는 원래 천인이 사는 세계라는 뜻으로 욕망을 충족시켰을 때 느끼는 경지다. 그러나 4성(성문, 연각, 보살, 불계)에 못 미치며, 진실한 행복 경애라고는 할 수 없다고 한다.

4성 중 우리가 자주 접하는 말이 ‘보살’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따르면 ‘보살’은 가장 이상적인 수도자의 표본으로, 깨달음을 추구하는 사람이며 남을 깨우치고자 노력하는 존재이다.

보살은 터득한 이익을 타인에게 나누어 주는 ‘이타(利他)’의 실천이 특징이다. 자비를 근본으로 타인의 괴로움을 함께 아파하고, 기쁨은 항상 나누는 마음이다.

그런데 이 6도와 4성은 고정불변이 아니라, 변화하는 개념이기도 하다고 한다. 지옥계의 중생도도 불계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생명은 하나의 고정된 틀에 갇혀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항상 괴로움에 허덕이지만 그 상태를 이겨 내려고 하지 않고 원망만 하는 상태가 지옥계인데, 이런 고뇌에 빠져 있더라도 연(緣)이 닿으면 불계를 용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돈과 출세, 시험공부 등으로 괴로워하는 우리들은 6도와 4성 중 어느 한 단계에 머물러 있을 까? 4성은 커녕 삼악도와 삼악취 등 하위레벨에서 바둥거리며 안타까운 현실을 지내고 있을 지도 모른다.

옛날 사람들은 지금보다 High Level을 목표로한 삶을 꿈꿨다. 이러한 때 내 자신의 경향을 보다 높은 경애로 끌어 올리는 것을 삶의 목표로 한다면 어떨까? 필자도 내 자신이 항상 한심하다. 그렇기에 이같은 내면의 변혁이 요원하다.

김신호 인천본사 경제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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