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김영란법 시행과 2016년 추석
[데스크 칼럼] 김영란법 시행과 2016년 추석
  • 정일형 지역사회부 부국장 ihjung@kyeonggi.com
  • 입력   2016. 09. 08   오후 7 : 19
  •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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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많던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금지법)이 지난 6일 국무회의에서 시행령이 의결돼 28일부터 시행된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지난 2012년 8월 처음 김영란법을 발표한 지 4년1개월 만에 법적 절차가 마무리된 것이다.

주요 내용은 그동안 알려졌고 정부 부처에서 논의됐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공직자와 언론인 등이 원활한 직무수행 또는 사교·의례, 부조의 목적 등으로 받을 수 있는 음식물·선물·경조사비의 상한액이 각각 3만 원, 5만 원, 10만 원 그대로다.

국민권익위원회가 공개한 기준에 따르면 적용대상 기관은 총 4만919개이고 관련인원도 대략 400만 명 안팎으로 추산되고 있다.

공공 분야에서는 국회(국회의원 일부 조항 제외), 법원, 헌법재판소, 감사원, 선관위, 인권위, 42개 중앙행정기관, 광역·기초지방자치단체, 시·도교육청, 국공립 및 사립학교 등이 총망라됐다. 공직자윤리법에 따른 공직 유관단체 982개,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른 공공기관은 321개도 포함됐다.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의 적용을 받는 언론사도 1만7천210개가 적용대상이다.

김영란법 시행령이 발표되자 여기저기서 난리다. 예측을 못 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 여파가 피부에 와 닿으면서 걱정은 더욱 심각한 듯하다.

Y시에서 수백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기업을 운영하는 친구놈이 전화해 왔다. 이 친구는 10여 년을 넘게 인연을 맺어 그동안 명절 때면 서로 나이에 맞게 선물을 주고받으며 정을 돈독히 해온 터다. 그런데 첫 마디가 “올해는 그냥 넘어가자”였다. 그놈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괜스레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서운함과 동시에 뭔지 모를 찜찜함이 사라지는 개운함이 함께 몰려왔다.

또 다른 중학교 동창생 녀석은 “언제 법이 국민사정 봐줬느냐? 난 보낼 테니 버리든 말든 네놈 맘대로 해”하며 퉁명스럽게 전화를 끊는다.

서로 당사자이니 참으로 혼란스럽다.
추석을 앞두고 선물세트를 준비하던 유통 전 분야는 더욱 아우성이다. 지역 곳곳에서 송고해 오는 기사를 보면 그 실상이 짐작 간다.

과천 화훼농가는 김영란법이 시행도 되지 않았는데 그 여파로 7~8월 인사철 매출이 이미 10분의 1로 떨어졌다 하고, 한과제조업체는 10만 원 이상 고급품에 대한 주문량이 거의 없어 단가를 크게 내렸는데도 문을 닫을 판이라 한다. 지역 특산물을 가공한 건강보조식품 역시 ‘받지도 말고 주지도 말자’는 분위기가 확산하면서 그저 실수요자만 찾고 있을 정도다.

아마도 2016년 추석, 아니 앞으로 돌아올 모든 명절은 ‘온정’보다는 법을 피하는 ‘걱정’이나 아예 이도 저도 하지 않는 ‘매정’을 나누는 명절이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행이라고 생각되는 것도 있다. 젊은이들의 사고다. 엊그제 군대를 제대한 아들 녀석과 친구들에게 제대 턱을 내는 자리에 동참했는데, 이놈들 모두 “김영란법을 왜 하느냐?”고 묻는다. 기존 법만 잘 지켰으면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일반 서민 생각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맞는 말인지라 왠지 부끄러움도 없지 않다.

김영란법 적용 대상자는 이유가 어떠하든 이 사회의 기득권층이나 특권층이 대다수다. 만만치 않은 저항을 했던 언론 역시 예외일 수는 없다.

이해당사자는 이런저런 걱정과 불만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첫 시행되는 김영란법을 준수해 제2의, 제3의 김영란법이 나오지 않도록 하는 나름의 자기성찰을 해야 할 때다. 이번 추석을 기점으로 등 뒤에 와 닿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지 않도록 해보자.

정일형 지역사회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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