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경기도 박물관ㆍ미술관 다시보기] 38.고양 ‘중남미문화원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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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아즈텍·잉카, 신비의 세계로 여행
다양한 상상 속 동물을 조각, 화려하게 채색한 멕시코 전통 조각품 ‘알레브리헤’. 윤원규기자

고양시 덕양구에 자리한 중남미문화원박물관은 미술관과 종교관, 연구실, 벽화, 4천여평의 정원을 갖춘 복합문화공간이다.
중남미문화원박물관에는 마야·아즈텍잉카 고대문명과 스페인 식민시대 유물 3천여점을 비롯해 중남미 역사와 문화 관련 자료가 집대성돼 있다.


●중남미 2천년의 찬란한 역사가 숨 쉬는 곳

중남미로 불리는 라틴아메리카는 북미대륙의 남단에 위치한 멕시코에서부터 남미대륙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이다. 카리브해에 흩어져 있는 작은 도서 국가들을 포함하여 총 33개국의 나라가 있다. 마야 왕국을 비롯하여 멕시코 고원지대에 터를 잡았던 아즈텍, 안데스의 광대한 영역을 지배했던 잉카 제국을 이룩했던 이 지역은 17세기 제국주의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만다. 영국이 선점했던 북미지역을 앵글로아메리카로 구분하면서,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지배했던 남미지역을 라틴아메리카라고 불렀다. 300년에 걸친 식민지배가 끝나고 중남미의 여러 나라들은 19세기 초에 대부분 독립했다. 현재 세계는 중남미의 잠재력을 주목하고 있다. 중남미문화원박물관은 라틴아메리카를 공부하기에 가장 좋은 곳이다.

중앙홀에 들어서면 스페인 양식의 돌로 만들어진 분수대를 볼 수 있다. 중남미에서는 스페인식 성당이나 큰 저택에 중앙홀을 만들고 그 가운데에 분수대를 즐겨 만들었다. 홀을 둘러가면서 사면의 벽에는 성화와 성물들, 조각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중앙홀에 놓인 120년 된 스타인웨이 그랜드 피아노는 문화원에서 열리는 음악제 때 사용하고 있다. 중앙홀 천정에는 나무로 조각한 금빛 태양상이 있다. 태양은 중남미 사람들에게 신앙의 대상이었다.

박물관 가면실의 멕시코가면들. 인디오들은 가면으로 얼굴을 덮음으로써 일상생활로부터 잠시 자신의 정체와 영혼을 해방시키고자 했고 가면을 씀으로써 새로운 인간성과 영혼을 대신한다고 믿었다. 윤원규기자

제1전시실은 토기실이다. 기원전 3천년 무렵, 멕시코와 페루고원지대에 정착한 인디오들 중 일부가 구운 토기를 사용하면서 신석기시대 문화를 열고 초기 토착문화를 정착시킨다. 금ㆍ동을 이용한 금속문화, 피라미드 건축, 모직, 면직 및 염색기술에서 뛰어난 예술성을 발휘했다. 인디오 문화는 기원전 1천년 전쯤 매우 세련된 토기를 생산했는데, 전시관에는 주로 멕시코-중미 일대의 토기가 전시되어 있다.

석기와 목기실로 구성된 제2전시실은 더욱 흥미롭다. 사람모양을 한 조각 석기인 쎄미 도끼, 방망이 같은 석기가 있다. 날개가 달린 뱀의 형상을 한 껫살꼬아뜰은 인디오들의 영혼과 물질을 혼합한 신비의 상징이다. 15세기 말 스페인이 정복할 당시에 도미니카 공화국 일대에서 수준 높은 문화를 꽃피웠던 따이노족의 의례용 의자인 ‘두호’도 여러점 전시되어 있다.

제3전시실 가면실에 들어서면 남미의 뜨거운 숨결이 한층 더해진다. 멕시코의 가면문화는 인디오들의 상징적 가면들을 영혼과 직결하는 문화로 발전시켰다. 인디오들은 일상생활로부터 잠시 자신의 정체와 영혼을 해방하고자 가면을 만들어 썼다. 나무, 가죽, 천, 토기 등 온갖 재료와 화려한 색으로 장식한 가면을 만들어 카니발 의식에 사용했다. 신, 마귀, 동물, 인어, 2중 가면, 천사, 나비 등 다채로운 가면들에서 그들의 생각과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입이 없는 가면이 있는데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뜻을 담고 있다.

제4전시실은 생활공예실은 농기구를 비롯해 다리미, 가구, 재봉틀과 같은 생활용품들과 악기가 전시되어 있다. 구리가 많이 생산되는 지역답게 구리 제품이 눈에 띈다. 표면에 망치로 두드린 자국이 무늬처럼 남아있는 물 항아리가 우리나라의 방짜유기처럼 정이 간다. 대나무를 엮어서 만든 바호네스, 아코디언처럼 생긴 반도네욘 같은 악기에서 중남미인의 뜨거운 기질이 느껴진다.

 

고양시 덕양구에 위치한 중남미문화원은 1992년 중남미에서 30여년간 외교관 생활을 했던 이복형 대사와 그의 부인인 홍갑표 이사장이 그 지역의 풍물을 수집해 설립했다. 중남미 문화원 박물관 전경. 윤원규기자

●꿈을 현실로 만들다

중남미문화원박물관은 전 멕시코 대사 이복형 홍갑표 부부가 뜻을 모아 설립했다. 하지만 주역은 역시 홍 이사장이다. 팔남매 중 막내딸로 태어난 홍 이사장은 중학교 1학년 때 학비를 벌기 위해 신문팔이에 나섰던 당찬 소녀였다. 신혼 초, 국비 장학생에 선발되어 호주로 공부하러 떠난 남편을 지원하기 위해 걸레를 만들어 해군에 납품하고, 70년대에는 가발과 속눈썹 장사로 큰돈을 벌었던 수완가였다. 이때 사 들인 부동산은 중남미문화원을 건립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이 무렵부터 홍 이사장은 고양향교 옆에 마련한 땅을 개간하기 시작했다. 문화원의 아름드리 큰 나무는 당시 홍 이사장이 심고 가꾼 것이다. 이 무렵 시골을 돌아다니며 반닫이, 경대, 삼층장, 고서화 같은 고미술품을 수집했던 그의 경험과 취미는 남편이 중남미 외교관으로 활동하게 되면서 중남미의 유물 수집으로 이어졌다. 이복형 원장은 아내 홍갑표 이사장이 골동품을 수집하던 때의 모습을 이렇게 회상한다. “골동품 시장에 가면 뛰는 것이 아니라 날아다니더라.”

중남미의 고급 예술품들이 내전과 경제난으로 거리에 내몰리던 시절이었다. 유물을 구하려고 목숨을 잃을 뻔했던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내전 중인 엘살바도르에 많은 유물을 가지고 있던 미국인이 위험을 피해서 유물을 처분한다는 소식을 듣고 게릴라전이 벌어지는 도시 가운데를 지나갔던 것이다.

물론 홍 이사장이 유물 수집에만 열을 올렸던 것은 아니다. 홍 이사장은 외교관의 부인으로서도 충실했다. 남편이 코스타리카 대사로 있을 때 그의 헌신적 활동으로 교민사회가 튼튼하게 결속된 사실이 청와대에 보고되어 대사의 부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정부에서 표창을 받은 주인공이다.

1993년에 오랜 숙원이던 비영리재단 중남미문화원박물관을 설립하고 1997년에는 박물관 옆에 미술관을 세워 중남미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그림과 조각들을 전시하게 되어 문화원은 더욱 풍성해졌다. 그러나 곧이어 터진 IMF사태로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는다. 한국에서 개인 재산으로 문화 사업을 벌인다는 일이 얼마나 무모한 결정인지 뼈저리게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30년 공직생활을 했던 남편의 퇴직금도 일시불로 받아 박물관 건립에 모두 써 버렸으니 연금도 없었다.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내던 때 홍갑표 이사장은 이런 글을 떠올렸다고 한다. ‘그대 진정으로 원하는가?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을 잡아라. 무엇을 하든 무엇을 꿈꾸든 지금 이 순간부터 시작하라.’

새로운 꿈을 꾸면서 절망에서 벗어나게 된 그는 남편에게 놀라운 제안을 한다. 박물관과 미술관을 설립하여 중남미의 문화와 위상을 높이는데 기여했으니, 이제 중남미 국가들이 나설 차례라면서 각국의 조각을 기증받자고 한 것이다. 대사관에 협조 공문을 보내자 곧 반응이 왔다. 12개 나라에서 조각 작품을 기증하겠다고 약속했다. 배송 문제도 해결되었다. 한진해운에서 중남미로 수출하는 물량이 가고 오는 빈 컨테이너에 조각 작품을 실어 비용을 받지 않고 운송해 주었던 것이다. 조각공원이 완성된 2001년 11월 9일, 김대중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를 비롯한 많은 내빈이 참석해 축하해주었다. 이때의 일화. 청와대 경호실에서 보안문제로 오전부터 관람객 입장을 금지하도록 요청했다. 그러자 홍 이사장이 나섰다. “영부인의 내방도 중요하지만, 어린이를 비롯한 일반 관람객의 입장도 소중하니 관람을 막을 수 없다. 정부에서 나에게 시멘트 한 포대 준 적이 있느냐.”며 끝내 자신의 뜻을 관철했던 사람이 홍 이사장이다.


 

중남미의 다양한 미술작품을 만날 수 있는 미술관의 모습. 윤원규기자

●문화는 나눔, 중남미문화원은 나눔의 증거

이복형 원장과 홍갑표 이사장 부부는 문화원을 설립한 후 10여년을 미술관 지하에서 생활하다가 2011년 연구소를 건축하면서 비로소 지상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이 원장은 자가용이 있지만 기름 값이 아깝다며 잘 타지 않고 버스나 전철을 이용할 정도로 검소하다. 그의 아내 홍 이사장은 더하다. 인터뷰 도중 자신의 옷을 가리키며 말한다. “이건 7천원, 겉옷은 1만원을 주고 산 것이에요.” 이 원장은 89세의 고령이지만 오전에는 정원사, 오후에는 청소부가 되어 아이들이 흘린 휴지를 줍는다. 일을 마치면 연구실로 자리를 옮겨 인터넷으로 외신을 검색하고, 중남미 관계 서적과 자료를 찾아 읽는다. 외국 국빈이나 손님이 방문하면 능숙한 외국어(영어ㆍ스페인어ㆍ일어)로 박물관과 미술관, 종교관과 조각공원을 안내한다. 중남미문화원을 통해 민간 외교사절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이 원장은 2002년 한일월드컵 유치 집행위원으로 활동했으며, 2004년 세계 150여개국 회원으로 구성된 세계박물관대회 총회가 서울에서 열렸을 때 관계자들을 문화원에 초대하여 만찬을 열었다. 이러한 공로로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문화훈장 보관장을 받았다. 홍갑표 이사장은 새벽 3시가 되면 어김없이 일어나 묵상의 시간을 갖는다. 이때 되새기는 그의 좌우명은 중남미문화원박물관의 설립 정신이기도 하다.

“문화는 나눔이다. 결코 소유가 아니다. 중남미문화원은 그 나눔의 결과물이고 증거다.”

종교전시관에 설치된 주제단 은 라틴아메리카 최고의 바로크 종교미술가 A. PARRA의 대표작으로 그의 작품들은 실제로 교황청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라틴아메리카 종교미술 전시관이기도한 이곳은 개인 종교의 구분 없이 명상과 휴식, 그리고 중남미 종교관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윤원규기자

김영호(한국병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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