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그곳&] 폐지 줍는 노인도 누군가의 ‘어버이’
[현장, 그곳&] 폐지 줍는 노인도 누군가의 ‘어버이’
  • 장희준 기자 junh@kyeonggi.com
  • 입력   2021. 05. 06   오후 7 : 04
  • 1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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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 날을 이틀 앞둔 6일 수원시 장안구 영화동의 한 골목에서 정숙례 할머니(91ㆍ가명)가 폐지를 나르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더욱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있는 누군가의 ‘어버이’에게 따뜻한 인사말을 건네는 건 어떨까. 조주현기자
어버이 날을 이틀 앞둔 6일 수원시 장안구 영화동의 한 골목에서 정숙례 할머니(91ㆍ가명)가 폐지를 나르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더욱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있는 누군가의 ‘어버이’에게 따뜻한 인사말을 건네는 건 어떨까. 조주현기자

어버이날을 이틀 앞둔 6일 오전 수원시 권선구 서둔동의 한 골목길. 남루한 행색의 김태석 할아버지(82)는 어김없이 손수레를 끌고 나타났다.

이곳저곳을 샅샅이 돌아다녀도 손수레는 좀처럼 채워지지 않았고, 삐걱거리는 바퀴는 김 할아버지의 고된 삶을 짐작케 했다. 2시간 만에 말문을 연 그는 “어버이날이라고 별다를 거 있겠느냐”며 “그런 거 떠올려봐야 괜스레 마음만 울적해진다”고 말했다.

기초생활수급자인 김 할아버지는 홀로 산 지 올해로 23년째다. 한때 아내와 아들로 이뤄진 가정의 번듯한 가장(家長)이었지만 더는 아니다. 아내는 불혹(不惑ㆍ40세)의 나이에 일찍이 곁을 떠났고, 대학까지 뒷바라지한 아들은 사업에 실패하고 집을 나가더니 연락이 끊겼다.

김 할아버지는 사는 게 점점 힘들어진다고 했다. 폐지를 주워 근근이 생계를 이어왔는데 지난해부터 값이 뚝 떨어졌기 때문이다. 3~4년 전 ㎏당 150원씩 하던 폐신문지의 값은 지난해 70원으로, 폐골판지(박스류)도 130원에서 60원까지 반 토막 났다.

폐지 값은 중국을 비롯한 주변국의 수출 상황과 맞물려 쉽게 오르내린다. 지난해부터 큰 폭으로 가격이 떨어진 건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보인다. 손수레를 한가득 채워야 100㎏ 정도인데 요즘은 5천원도 안 쳐준다는 게 김 할아버지의 말이다. 온종일 폐지를 주워도 국밥 한 그릇 사먹기 어려운 셈이다.

어버이날이 더 팍팍하게 느껴지는 건 정숙례 할머니(91ㆍ가명)도 마찬가지다.

장안구 영화동 그의 집앞엔 온갖 박스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새벽 5시부터 열심히 수레를 끌고 모아온 것들이다. 소주병은 병당 100원씩 쳐줘서 쏠쏠하지만, 고물상에서 하루 40병까지만 받아준다며 설명을 이어가던 정 할머니는 “이런 게 다 무슨 소용이야. 오랜만에 이야기할 사람이 생기니 노인네가 별소릴 다 하네”라고 말끝을 흐렸다.

이따금 사회복지사가 찾아와 말동무를 해줬지만, 코로나19로 대면이 어려워지면서 일주일에 한 번 전화로 안부를 묻는 게 전부가 됐다. 경로당을 찾아 이웃 소식을 듣던 소소한 낙(樂)도 사라졌다. 감염 우려로 굳게 닫힌 문은 다시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정 할머니는 “쓸쓸해도 어쩌겠어. 이제 그러려니 하며 사는 거지”라며 “소일거리 삼아 박스라도 줍고 다니면서 그렇게 사는 거야”라고 읊조렸다.

경기도엔 김 할아버지와 정 할머니 같은 ‘홀몸노인’이 28만명 살고 있으며, 그 수는 해마다 2만명씩 늘고 있다. 단지 혼자 사는 독거노인과 달리 홀몸노인은 배우자나 자녀 없이 혹은 오랜 시간 가족과 연락이 두절된 채 살아가는 이들로, 코로나19는 물론 고독사를 비롯한 다양한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부모님의 소중함을 돌아보는 어버이날, 우리 주변에선 누군가의 ‘어버이’였던 이들이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안부 인사를 건네보는 건 어떨까.

장희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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