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고려의 도읍, 개성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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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땅의 개성은 수원에서 서울 정도의 거리에 있다. 2007년 개성이 열린 적이 있다. 당일 버스 투어였다. 박연폭포, 선죽교, 고려박물관, 왕건릉, 공민왕릉 등을 돌아보고, 개성 특산물로 차려진 11첩 반상의 점심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해설원의 설명이 제공됐다. 가격도 비싸지 않았는데, 이용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다. 차일피일 미룬 게 죄일까…. 그렇다고 가보지 못한 것은 아니다. 필자가 다녀온 개성은 학술 모임이어서 제한적이었고, 그 때문에 아쉬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

개성 문화유산의 대표주자는 단연 고려궁궐이다. 이곳은 해동천자인 고려황제를 상징하는 공간이었다. 조선의 경복궁과 같은 명칭 없이 <고려사>에 ‘궁궐’, ‘본궐(本闕)’로 기록돼 있다. 우리에게 ‘만월대’로 알려졌다. 사실 만월대는 고려궁궐의 정전인 연경궁 앞에서 달을 볼 수 있게 다져놓은 곳이다. 하지만 이것도 보름달인 ‘만월(滿月)’과 관련한 조선시대의 명칭이었고, 고려시대에는 망월대(望月臺)로 불렸다.

2007년부터 시작해서 2018년까지 12년간 남북은 만월대를 발굴조사했다. 수차례 중단되기도 하고 다른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남북문화교류를 대표하는 이정표다. 조사지역은 전체 약 25만㎡ 중 서쪽에 있는 건물터 3만3천㎡였다. 사실 고려궁궐 동쪽이 문관과 관련한 관청이 많았던 것과 비교해서 서쪽은 무인과 관련이 있는 곳이다. 무신집권기였던 1180년(명종 10) 무신들의 최고 권력기구였던 중방 바로 동쪽에 있던 강안전 향복문(嚮福門)의 음이 ‘항복(降服)’과 비슷해 “문신이 무신을 누르려는 의도라고 그 이름을 중방의 ‘중(重)’자를 써서 ‘중희전(重禧門)’으로 고친 일이 있었다.

또 어떤 사람이 밤에 궁궐 서쪽 회랑기둥에 구멍을 뚫는 일이 일어나자 무인들 사이에서 동반이 서반을 해하려는 짓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1198년(신종 1)에는 대궐 서쪽의 민가에 방앗간을 짓지 못하도록 했고, 1207년(희종 1)에는 산 서쪽의 고위관리들이 많이 죽는 원인을 동반의 저주로 지목하기도 했다.

이곳에서는 40여동의 건물터와 금속활자·청자·도자기 등 약 1만7천900여점의 유물이 발굴됐다. 경기도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고려궁궐 만월대에 오르다’는 그 결과를 정리한 특별전시다. 격동의 현대사를 겪기 이전에 경기의 옛땅이었던 개성과 한반도 최초의 통일국가였던 황제국 고려의 정체성을 되새기려는 목적이다. 출토유물 전체가 북측에 있어 관련유물의 비교 전시로 그 아쉬움을 해소하려고 했다.

어디로 떠나고 싶은 지금. 코로나19가 막아버린 지금. 북한국보유적 제122호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개성역사유적지구 만월대로의 여행을 권한다. 한걸음에 역사현장으로 달려갈 그날을 고대하며 말이다. 개성박물관 한 편에서 팔던 고추장 맛을 잊을 수 없다. 그때가 다시 오기를 왕건상(王建像)에게 빈다.

김성환 경기도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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