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일곱송이 수선화
[지지대] 일곱송이 수선화
  •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heohy@kyeonggi.com
  • 입력   2021. 07. 27   오후 7 :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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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의 제주 유배 시절이었다. 길섶에서 함초롬히 핀 꽃을 발견했다. 뭍에선 볼 수 없었던 식물이었다. 벗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꽃 얘기를 했다. “천하에 큰 구경거리입니다. 마을마다 땅마다 없는 곳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의 편지는 계속된다. “한줄기에 많게는 10여 송이에 꽃받침이 8~9개나 5~6개에 이릅니다. 산과 들, 밭두둑 사이가 마치 흰 구름이 질펀하게 깔려 있는 듯, 흰 눈이 광대하게 쌓여 있는 듯합니다. 그런데 토착민들은 수선화가 귀한 줄 몰라 소와 말에게 먹이고 함부로 짓밟아버립니다.”

▶추사는 이 꽃이 보리밭에 잡초처럼 많이 피어 장정이나 아이들이 보자마자 호미로 파내 버린다며 안타까워했다. 파내고 파내도 다시 나기 때문이다. 그처럼 생명력도 질긴 꽃이었다. 흔히 서양 꽃으로 알고 있는 수선화(Daffodil) 얘기다.

▶한문으로는 물에 핀 신선이란 뜻으로 水仙花다. 공식적인 기록은 없지만, 수선화는 추사에 의해 뭍에 처음 알려졌다. 당시 한양의 선비들 사이에서도 수선화는 생소했다. 여기서 반전이 있다. 조선시대 선비의 절개를 나타내는 꽃은 매화였다. 하지만 추사는 수선화를 통해 선비의 지조를 표현했다. 무릇 선비가 정치적 양심을 갖추려면 학문의 깊이도 있어야 하지만 곱고 의로운 것에 대한 신념이 있어야 한다. 학문을 통한 철학적 깊이와 정치적 양심은 선비들이 갖춰야 할 으뜸 덕목이다.

▶추사의 편지 속에서 수선화는 당파와 아무 관련이 없었다. 그저 선비의 지조와 절개, 신념 등을 상징적으로 드러냈을 뿐이다. 조선시대에서 학문적 신념과 정치적 양심을 지키는 건 반드시 고통만 뜻하진 않았다. 정치적 탄압을 받을 때도 선비는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백성을 아끼는 고운 심성도 의로운 선비의 몫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정치권이 곱씹어 봐야 할 대목이다.

▶1960년대 포크그룹 브라더스 포(Brothers Four)의 ‘일곱 송이 수선화(Seven Daffodils)’ 첫 소절이 생각난다. “당신께 손에 쥘 지폐 한장 대신, 소담스런 일곱 송이 수선화를 드리겠습니다” 폭염에 코로나19로 힘들고 고단하겠지만 눈을 크게 뜨고 다시 바라보면 우리 가슴에도 수선화 일곱송이가 활짝 피어 있지 않을까.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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