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고생했다, 그리고 고생하셨습니다
[데스크 칼럼] 고생했다, 그리고 고생하셨습니다
  • 박정임 문화부장 bakha@kyeonggi.com
  • 입력   2012. 11. 08   오후 8 : 34
  •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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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정문을 들어선 딸아이의 뒷모습이 보이질 않습니다. 부담줄까 고생했다, 힘내라는 말도 못했는데. 한참을 바라보다 돌아서는데 괜히 눈물이 납니다. 불현듯 28년전 똑같은 심정이었을 엄마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관공서와 기업체의 출근 시간이 1시간 늦춰졌습니다. 수도권 전철과 지하철은 운행시간을 오전 7~9시에서 오전 6~10시로 늘리고 35회나 증회 운행했습니다. 시내버스는 등교 시간대에 집중 배차됐습니다. 개인택시의 경우 부제운영도 해제됐습니다. 교과부는 시험 시간 버스, 열차 등 운송수단은 시험장 주변에서 서행하고 경적을 자제할 것을 당부했습니다. 언어영역 듣기평가가 실시된 오전 8시40분~53분, 외국어영역 듣기평가가 실시된 오후 1시10분~30분에는 아예 항공기 이착륙마저도 금지했습니다. 참 이상한 나라라고 할 수 있는데, 바로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시행된 8일 대한민국의 풍경입니다.

사실, 우리나라서 고3으로 산다는 건 너무나 힘든 일입니다. 그런데 고3엄마로 산다는 건 경험해 보지 않고서는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는 걸 체득했습니다. 7시 전에 집을 나서는 아이를 챙기려면 적어도 6시 전에 일어나야 했고, 밤 11시는 돼야 돌아 오는 아이가 잠들 때까지 기다리다 보면 어느새 새벽 한두시를 훌쩍 넘깁니다.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아이가 언제면 공부를 시작할까 신경을 곤두세우는 동안 눈치9단이 다 됐습니다. 기침소리라도 들릴라치면 제대로 보살피지 못한 것 같은 자책감에 보일러 스위치를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했습니다. 아이 방을 지날 때면 나도 모르게 까치발을 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신경쓰일까 싶어 전화벨소리를 죽여놓은 걸 잊어버리고는 전화 한통 안 걸려 온다며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했습니다. 음소거를 해 놓은 TV로 드라마를 봐서인지 이젠 입모양만 보고도 무슨 말을 하는 지 알 정도가 됐습니다.

올들어 미역국은 손도 안댔던 것 같습니다. 식구들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생일에는 무국으로 대신하며 고3 가족으로서의 희생을 강요했습니다. 죽은 죽쓸까 멀리하면서 나름 고3엄마답다고 자부했는데, 아이들을 방치해 길렀다는 경기도 모 국장이 고3때 계란도 안 깼다는 말에 ‘한참 멀었구나’ 하며 반성도 여러차례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고3엄마는 말그대로 ‘고생엄마’였습니다. 학교별 전형방법이 달라 인터넷 사이트를 뒤지고 각종 인맥을 동원해 입시 관련 정보를 얻어내느라 동동거렸지만 도통 어려운 입시제도에 절망했던 때도 있었습니다. 수시에 정시, 가군, 나군, 다군에 표준점수는 뭐고 원점수는 뭔지…. 도대체 알아들을 수조차 없는 언어들을 이해해 가며 수험생보다 더 먼 길을 달려오는 동안 ‘고3엄마는 교통순경도 안잡는다’는 말이 왜 나왔는지 알게 됐습니다.

유명하다는 사찰을 찾아다니며 보낸 1년이지만 아쉬움은 남습니다. “대구 팔공산에 갓바위라고 있는데, 한번 다녀 오세요. 하나는 들어준데이~” 지난 여름의 끝자락에서 조재현 경기도문화의전당 이사장이 점심을 같이하며 들려준 정보입니다. 대구에 공연차 갔는데 한 선배가 ‘한가지는 꼭 들어준다’며 갓바위행을 권했고, 당시 고3이던 아들 대학합격을 소원했는데 이뤄졌다는 부연설명은 설득력을 갖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런데 갓바위는 가지 못했습니다. 날을 잡았는데, 하필 그날 태풍 볼라벤이 한반도를 강타했습니다.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한가지 핑곗거리는 남겨둔셈입니다.

올해 수학능력시험 응시자는 66만8천여명이었다고 합니다. 시험은 끝났지만 아직 갈길은 멉니다. 오히려 마음이 더 무거워질 수도 있습니다. 혹여 아이가 엄마의 바람만큼 채워주지 않는다 해도 너무 실망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수험생보다 더 고단했던 엄마들에게 고통을 함께했던 한 사람으로서 고생하셨다는 말을 전합니다. 어떤 때는 누군가 같은 처지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때가 있으니까요.

 

박정임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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