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현장체험] 건설현장 일용잡부

신문사에 입사한 지도 10여 년이 됐다. 지난 2005년 회사에 입사해 정말 물불 안 가리고 미친 듯이 일한 것 같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 많이 나태해졌다. IMF를 지내고 어려운 취업 환경 속에서 어렵사리 입사해 굳은 각오로 일하자고 다짐했던 초심은 오간 데 없다. 그 초심을 찾고 싶다. 이번 1일 체험 현장으로 진정한 땀의 의미를 되새겨 보자는 의미에서 공사판 막노동으로 정했다. 부동산ㆍ건설 담당 기자다 보니 평소 잘 알고 지내는 건설사 대표에게 현장체험 부탁을 했다. 소위 말하는 일용잡부 노가다 현장에 투입됐다. 지난 16일 평택시 진위면 봉남리 진위배수지 확장공사 현장. 오전 7시30분까지 도착해야 했는데 시간이 많이 지나버렸다. 배수지 진입로 주변에 잔디를 식재하는 아주머니들이 눈에 띄었다. 내가 오늘 할 일이 이건가 하는 생각을 하는 찰라 ㈜장안건설 조성훈 현장 소장이 작업 지시를 하기 위해 마중을 나왔다. 조 소장은 오전에 잔디 식재를 한 뒤 조경과 비탈면 마감을 위한 자연석을 쌓고 배수지 건물 벽돌 작업을 완료하면 된다고 지시했다. 현장 체험 부탁을 할 때 홍정욱 ㈜장안건설 대표가 일당을 주겠다고 한 말이 기억나 조 소장에서 일당이 얼마냐고 물었다. 조 소장은 아주머니들이 일하는 잔디 식재는 하루 4만원이고 대형 자연석쌓기는 기술이 필요해 25만원 정도 받는다고 설명했다. 잡부 일당은 8만~10만원 정도고 목수나 미장 등은 경력이나 기술에 따라 일당에 차이가 있단다. 지난 1994년 대학 재학시절 등록금 마련을 위해 당시 혜화전화국 증축공사 현장에서 전기공사 일을 한 적이 있다. 한 달 일하고 140만원 정도 받았던 기억이 난다. 등록금도 보태고 일부 유흥비(?)로 탕진했다. 당시 일용 잡부 일당이 4만~5만 정도 했는데 방학 때면 대학생들이 용돈 마련을 위해 많이들 공사 현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조 소장은 요즘은 그런 아르바이트 학생들을 찾아보기 어렵다며 일자리가 많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아무래도 기술과 경력이 있는 사람을 쓰는 게 우리도 편하다고 말했다. 기존 도로에서 배수지까지 연결하는 도로 주변 비탈면에 토사 유출을 막고 미관상 좋게 잔디를 식재하는 작업에 투입됐다. 일단 아주머니들이 줄을 맞춰 앉으면 가로세로 18㎝ 잔디를 조금씩 나눠 던져주는 일이었다. 여기저기서 아주머니들이 빨리빨리 던지라고 독촉이 잇따랐다. 도로주변으로 280m를 심어야 되는데 끝이 보이지 않았다. 조 소장은 잔디 식재 일은 인부를 매일 쓸 수 없어 최대한 빠른 시간에 작업을 마쳐야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며 요령 피우지 말고 열심히 하라고 독려했다. 한 50여m 식재를 마쳤을 때 쯤 새참이 왔다. 새참은 오전 10시, 오후 3시 하루 두 번 나오는데 빵과 우유가 제공됐다. 술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공사판 새참 하면 시원한 막걸리에 한 사발 들이킬 거로 생각했는데 사실 좀 실망했다. 조 소장은 현장에서 안전사고를 막고자 술을 못 마시게 한지 오래됐다며 막걸리 마시면서 일하는 게 사라진 지 한참 됐다. 아주머니들 같은 경우에는 개인적으로 간식을 가져와 드시기도 한다고 말했다. 새참을 먹은 뒤 자연석쌓기 현장으로 투입됐다. 배수지 위에 미니 파크 골프장을 조성하는데 비탈면 조경을 위해 자연석을 보기 좋게 쌓는 작업이었다. 굴착기 한대와 2명의 작업자가 있었다. 경력 10년 이상의 작업자였는데 수백㎏의 자연석을 쇠사슬로 묶어 굴착기로 옮겨 쌓을 위치 정확히 놓은 뒤 마감 작업을 하는 것이었다. 별로 어려워 보이지 않는데 일당을 25만원씩이나 주는 걸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이게 그냥 하는 게 아니었다. 수백㎏의 자연석을 쌓는 일이다 보니 위험한 것은 물론이고 굴착기 작업자와 호흡도 중요했다. 특히 모양이 맞는 돌을 찾아내는 경험과 자연석을 내려놓을 지점에 쌓기 위해 쇠사슬을 묶는 위치를 정하기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작업자들은 기자가 옆에 있는 것에 신경이 많이 쓰이는듯했다. 작업자 A씨는 이거 하려면 최소 경력이 10년은 돼야 한다며 자연석을 쌓은 뒤 토사 유출을 막기 위해 마감 작업을 꼼꼼히 하는데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쇠사슬을 자연석에 한번 걸어보고 싶었지만 초짜에게 그런 기회는 주지 않았다. 자연석이 내려지면 작은 돌로 구멍을 메우고 흙을 다져 마무리하는 작업을 했다. 일을 하다보니 뜬금없이 자연석 가격이 궁금했다. 조 소장은 톤당 6만5천원 정도 한다고 했다. 무거운 자연석은 1개에 1톤이 넘는 것도 있단다. 기자는 최근 건설자재가 도난되는 사건이 종종 있는 것 같은데 돌 가격이 만만치 않아 밤에 몰래 훔쳐가지는 않느냐고 물었다. 조 소장은 훔쳐가는데 장비 투입하려면 모르긴 몰라도 돈이 더 든다.라며 웃었다. 조 소장은 점심 먹으러 가자며 식당으로 안내했다. 아파트라든지 대형 공사 현장에는 소위 함바식당이 있기 마련인데 이번 현장은 현장 인부가 많이 투입되지 않는 소규모 현장이다 보니 주변 식당을 이용한다고 조 소장은 설명했다. 매일 점심때 뭐 먹을까 고민하는 것도 일인데 반나절 빡세게(?)일하고 나니 거짓말 좀 보태 돌도 씹어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오랜만에 땀 흘려 일하는 뒤 먹은 밥은 정말 꿀맛이었다. 식사 후 달콤한 휴식시간. 조 소장은 사람들이 사업에 실패하거나 인생 막장에 하는 일이 막노동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며 우리나라도 건설현장의 노동자들을 엔지니어로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건설 현장의 노동자들도 다들 서로의 직무가 다르다 그냥 잡부와 미장, 목수, 타일, 전기 등 전문 일꾼들은 그들 사이에서 레벨이 있다며 정상급 기술자들을 보면 정말 장인 정신을 가지고 자신이 건설한 현장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대단하다고 말했다. 커피 한잔 마시고 건물 벽돌 쌓기에 투입됐다. 시멘트가 배달되지 않아 작업자들이 대기하고 있는 상태였다. 작업반장은 기자 양반 대충대충 할 거면 일 방해하지 말고 다른 곳으로 가보쇼라며 엄포를 놨다. 잠시 뒤 시멘트가 배달됐다. 대수롭지 않게 시멘트 포대(40㎏)를 들었는데 이거 쉽지 않았다. 점점 허리가 아파지기 시작했다. 한 열 포대 정도 날랐을까 허리가 아파 요령을 피우는 사이 작업반장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작업반장은 대충대충 흉내만 내려면 뭐 하러 왔냐고 호통쳤다. 이를 악물고 시멘트 포대 40여 개를 하차했다. 작업 반장은 돈 벌기가 그렇게 쉬운 게 아니다며 여기서도 성실하게 일 잘하는 사람이 대접받는다고 말했다. 벽돌을 쌓고 조 소장과 함께 4천톤 규모의 배수지 내부로 들어갔다. 배수지는 정화과정을 거쳐 깨끗해진 물이 가정에 공급되기 전에 마지막으로 거치는 연못을 말하는데, 급수량을 조절하면서 안정적으로 물을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배수지는 물을 많이 사용하는 시간대에는 많은 물을 공급하고, 물의 사용이 적은 새벽에는 물의 공급량을 줄이는 등, 급수량을 조절하면서 안정적으로 물을 공급하는 시설이다. 진위배수지가 준공되면 평택 진위면과 송탄면 일대 주민들은 생활용수과 공업용수가 원활하게 공급될 수 있다. 또 배수지 위는 골프파크와 산책로 등을 만들어 시민들의 휴식공간을 이용된다. 조 소장은 공원 조경 공사를 올해 안으로 마무리할 계획이라며 현장에 있다 보면 많은 일이 생기지만 좋은 구조물. 건축물을 완공한 뒤 보람과 자부심 때문이 이 일을 계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땀의 의미를 되새겨 보자고 도전했던 공사판 막노동 일이 10년차 기자의 초심을 찾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무슨 일을 하든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나의 초심이다. 무작정 최선을 다하던 10년 전보다 지금은 많이 노련해졌지만 그 노련함을 핑계로 나태해 지지 않기로 했다. 일한 만큼의 대가를 받고 기자로서의 보람과 긍지, 자부심을 느끼고자 초심으로 돌아간다. 최원재기자 chwj74@kyeonggi.com 사진=전형민 기자

[1일 현장체험] 감각통합치료사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상생활을 하면서 평행을 유지한 가운데 소리를 듣거나 걷고 뛰는 데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인간이 일상의 평범한 일들을 쉽게 할수 있다는 건 몸의 감각기관들을 통해 들어오는 수많은 정보들을 잘 받아들이고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능력이 감각통합 혹은 감각정보처리 능력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과정을 쉽게 생각하지만 이는 신경학적으로 아주 복잡한 일련의 과정을 거친다. 뇌는 신체나 외부환경으로부터 정보를 받고 신호를 해석해 반응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유아기에 감각기능의 형성이 잘 이뤄지지 않을 경우 다양한 문제행동을 보일 수 있으며 자기의 몸을 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조절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아이들의 경우 성장하면서 사회성에 문제점이 발생하는 등 또다른 장애와 상처들이 생길 수 있다. 이같은 문제점을 미연에 방지하고 어린이의 행동발달을 도움으로써 학습능력과 사회성의 발판을 마련하도록 돕는 직업이 감각통합치료사이다. 지난해 겨울, 지인으로부터 감각통합치료사가 하는 일에 대해 설명을 듣고 호기심을 갖게 된 기자는 1일 현장체험 순서가 돌아오면 반드시 체험해보기로 스스로 다짐했다. 특히 명절마다 조카들의 인기를 한몸에 독차지 할 정도로 평소 어린이들과 놀아주는 데 일가견이 있는 만큼 기자는 자신 있게 감각통합치료 프로그램이 이뤄지고 있다는 평택시 독곡동에 위치한 한 유치원으로 향했다. ■ 감각통합 능력은 집중력과 학습의 기초 유치원에 들어서자 1일 사수인 문경업 감각통합치료사(30)가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일이라 큰 무리는 없을 것이라며 함박웃음을 띤 얼굴로 기자를 반겼다. 문 치료사는 교육열이 높은 우리나라의 경우 유치원에 들어가면서부터 학습을 강요하지만 정작 원활한 학습을 위해서는 촉각, 시각, 청각, 고유감각, 전정감각 등의 발달이 필요하다며 기본적으로 감각이 발달해야 운동실행계획 능력과 집중력 등이 생기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어 예컨대 아이들에게 바르게 앉은 자세를 한번 보여주고 따라하라고 하면 이를 따라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다. 이러한 아이들은 운동 계획 능력이 없어 따라하고 싶어도 자신이 원하는 신체상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 치료사는 특히 운동 계획에 어려움을 겪는 어린이들의 경우 선생님의 말을 잘 따르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감각통합 이상으로 인한 것일 수 있다며 따라서 선생님들이 이런 어린이들을 심하게 꾸짖거나 때리면 과잉행동이 동반된 주의력 결핍장애(AD/HD)가 나타나는 등 문제를 겪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문 치료사는 하지만 감각통합 놀이를 통해서 한글, 수 관련 기초학습에서 이해력이 향상되고 정상적인 지능 발달을 이룰 수 있으며 친구와 놀거나 사귀는 데 어려움이 없어지는 등 적극적인 사고와 행동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접촉은 사회성 형성의 시작 교육이 시작되자 20여명의 어린이들이 일제히 선생님, 안녕하세요를 외치며 병아리떼처럼 달려 왔다. 어린이들과 마주 앉아 배꼽 인사를 한 뒤 본격적인 수업에 들어가자 문 치료사에게 배운대로 어린이들에게 눈ㆍ코ㆍ손가락으로 인사하기와 음악을 튼채 각자의 귀를 잡아 당기도록 지도했다. 그러자 어린이들은 이내 장난기어린 표정으로 옆에 앉은 친구들과 눈을 마주치며 코를 부비기 시작했다. 이는 어린이들이 친구들과 눈을 마주치고 코와 손가락, 어깨 등을 접촉하며 상대방에 대해 인식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어 기자는 어린이들에게 친구와 두명씩 짝을 지어보자고 안내했다. 하지만 이때, 문 치료사가 수업 진행을 잠시 멈추는 이상한 상황이 벌어졌다. 문 치료사는 한참을 앉아 미소 지으며 아이들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낯선 상황에 기자가 당황하자 문 치료사는 조금만 기다려보라며 아이들을 바라봤다. 잠시 후 수업이 재개됐고 이유를 묻는 기자에게 문 치료사는 친구들과 짝을 짓는 과정에서 사회성에 대한 적극성을 볼 수 있다며 일부 어린이들은 서로 만지는 걸 싫어해서 친구를 만들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이를 관찰해 고쳐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면서 짝을 찾지 못한 친구들은 주변 친구들이 짝을 짓는 모습을 보며 어떻게 친구를 사귀어야 하는가를 스스로 깨닫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 모든 운동 계획 프로그램 설계는 스스로 이날 이뤄진 교육은 운동 계획 기르기. 프로그램에 따라 어린이들은 둘씩 짝을 이뤄 뜀틀과해먹타기, 좁은 구멍 통과, 암벽 오르기, 회전그네 타기 등을 경험한다. 프로그램이 체육활동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지만 분명하게 차이가 있다고 한다. 체육활동이 손과 발을 사용해 경쟁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면 감각통합 놀이는 체육활동에서 사용하지 않는 근육들을 사용하며 경쟁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자주 사용하지 않는 다양한 기관을 움직여 자극을 머리로 전달해 궁극적으로 뇌의 발달을 돕게 되는 것이다. 문 치료사는 체육활동 시간에는 경쟁이 수반되기 때문에 어린이들이 울고 다투기도 하는 반면 감각통합 놀이는 자율적인 분위기 속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화기애애하다. 아이들은 설사 넘어지더라도 절대 울지 않는다고 말했다.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기자가 첫번째 도전에 나선 어린이들의 손을 꼭 붙잡고 외나무 다리를 건너도록 도와주자 문 치료사가 도와주면 안 된다며 제지했다. 정해진 시간 내에 교육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도와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의구심을 나타내자 문 치료사는 감각통합 프로그램은 아이들 스스로 운동방식을 계획하는 것도 중요한 교육목표이기 때문에 먼저 나서서 도와주는 것은 오히려 방해가 된다. 마찬가지로 아이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하라고 지도하거나, 무엇을 하라고 강제할 필요도 없다고 설명했다. 이후 수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해먹 위에 누워 있던 한 어린이가 기자에게 어떻게 나가는지 모르겠다며 도움을 청했다. 드디어 기자가 나설 차례.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어린이를 안아 번쩍 들어올리자 문 치료사는 기자를 제지하며 다치지 않는 수준에서만 도움을 주면 된다며 이런 경우, 어린이들은 마음으로는 나가고 싶지만 뇌에서는 계획을 세우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것이어서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도움만 줘야 한다고 말했다. ■ 어린이들의 반응 관찰하는 것 역시 중요한 요소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일부 어린이들은 코스를 다 돌지 않고 돌아오거나 아예 참여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어린이들의 경우 감각통합 이상의 가능성이 있는 만큼 주의와 관심이 요구된다. 특히 이런 반응을 보인 어린이들은 실제로 선생님의 질문에 답변을 회피하거나 수업 중 교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였다. 문 치료사는 아직 어리기 때문에 감각통합 이상으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한다면서 학부모와 담당 교사에게 알려주는 일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기자는 놀이과정에서 도움을 청한 어린이들의 상황을 일일이 체크하고 담당 교사에게 이를 전달하면서 이날의 교육 일정을 모두 마쳤다. 이날 체험을 통해 그동안 TV 등에서만 봤던 주의력 결핍 장애 등 어린이들의 행동발달 장애가 쉽게 치부돼서는 안 된다는 점을 깨달았다. 특히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감각통합 놀이를 활성화한다면 우리나라가 향후 더욱 발전하는 주춧돌 역할을 하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갖게 됐다. 송우일기자 사진=전형민기자

[1일 현장체험] LED전등 제조사 ‘생산직’

일일 체험 순서가 돌아왔다. 마감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올 때까지 무얼 할지조차 정하지 못한 채 골머리만 앓고 있었다. 그러던 지난 20일, 두 돌도 안 된 아들놈이 광명(?) 같은 아이템을 선사했다. 이제 막 문장을 이어서 말을 하기 시작한 아들놈이 불이란 말은 어디서 배웠는지 요즘 가로등, 차량전조등까지 밝은 것만 보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불, 불 켜졌어하고 말하곤 한다. 이날 저녁에도 집에 돌아와 지친 몸을 소파에 기대고 있는데 아들 녀석이 소파 위로 기어올라 전등 스위치를 연신 껐다 켰다 하는 것이었다. 하지마세요 하고 아이를 제지하며 천장을 바라보다 뇌리에 전구가 탁 켜지는 것을 느꼈다. 바로 저거야! 어둠을 밝혀주는 전등. 전등공장에서 제조 공정을 체험해보기로 했다. 아이템이 정해지자 발걸음이 분주해졌다. 다음날 곧바로 시청의 담당 직원을 만나 광주시내 전등 생산업체를 수소문하기 시작해 LED전등 전문 생산업체인 썬래이를 찾아냈다. 곧바로 이승기(57)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취지를 설명하고 허락을 구했다. 이 사장은 흔쾌히 허락해줬지만, 막상 일정이 잡히니 한편으로는 미지의 일에 대한 두려움도 슬슬 피어올랐다. 하지만 많은 중소기업이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다 청년 구직난까지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시점에서 이번 체험기사가 중소기업은 물론, 일자리를 찾는 청년들에게도 좋은 정보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다시금 용기를 줬다. ■ LED전등 전문 생산 업체 썬래이 생산직 체험을 약속한 지난 22일 아침, 평소보다 30분 빨리 집을 나섰다. 전날까지도 비를 뿌리던 궂은 하늘도 언제 그랬냐는듯 쾌청하게 갰다. 성남 분당에서 3번국도를 1시간30분 정도 달려 차 한대만 간신히 지날 수 있는 진입로를 지나 광주시 곤지암읍 썬래이에 도착했다. 썬래이는 SED특허(낙뢰로 단축되는 전등의 수명을 연장하고 전자파를 감소시키는 기술)를 가지고 일반 전등보다 약 40~70% 이상 높은 에너지 효율을 자랑하는 LED등 수십가지를 생산하는 국내 LED등 시장 선도업체다. LED등은 얼마 전만 해도 일반 등보다 가격이 유난히 비싸 가정보다는 관공서나, 대형상가, 기업체사무실, 공장에서 주로 사용돼 왔으나, 최근에는 단가가 많이 낮아져 가정용 제품도 활발하게 출시되고 있다. 카드키 시스템으로 보안이 철저히 유지된 진입로를 지나 사무실에서 신분을 밝히자 전상모(42) 연구소장이 반갑게 맞이하며 공장견학을 권했다. 전 소장을 따라 작업장에 들어서자 상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펼쳐졌다. 시끄러운 기계음과 고약한 화학약품 냄새를 예상했지만, 깔끔하게 정돈된 생산라인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전 소장은 LED등은 한 공장에서 전 공정이 이뤄지기는 쉽지않다며 연구소에서 신제품을 개발해 설계와 디자인, 회로도 등을 각 부품별로 외주업체에 발주하고, 외주업체에서 생산한 각 부품을 조립해 제품을 완성한다고 설명했다. 작업장은 LED전등의 깜박임을 수 시간에서 수십시간에 걸쳐 테스트하는 에이징기와 항온 항습기, 암실, 수치 측정실 등 각종 기계가 설치돼 있고, 중앙으로는 제품 조립과 포장을 하는 작업대가 자리잡고 있다. 작업이 용이하도록 ㄷ자 형태로 놓인 생산라인은 자재 창고로 이어진다. 번갯불에 콩 볶듯 10여분에 걸친 공장 전반에 대한 설명을 마친 전 소장은 곧이어 현장관리와 자제발주 책임을 맡고 있는 이웅노(43) 부장을 소개했다. 그날만큼은 이 부장이 직속상관이었다. ■ 단순한 일이 가장 어려운 것 15년째 조명 제조업에 종사하며 완제품 출고장과 자재 창고를 관리하고 있는 이 부장은 현장 애로사항을 묻자 한여름에도 시원한 에어컨 바람에 더운 줄 모르고 겨울 역시 난방이 잘 돼 있어서 작업 환경은 좋다며 하지만 굉장히 단순한 작업이 반복되다 보니 오히려 이직률이 높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부장은 이왕에 오셨으니 제조업 현실을 제대로 경험하고 가셔야죠라며 10여명의 직원들이 작업을 하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겨갔다. 처음 주어진 임무는 천장 매립형 평판매입 LED전등 완제품 조립이다. 대학에서 체육학을 전공하고 사회경험을 쌓고 싶어 일을 배우는 중이라는 김태성씨(24)가 먼저 시범을 보이고, 바로 옆에서 작업에 참여했다. 작업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평판 케이스 앞면에는 LED칩이 박혀있는 4개의 PCB판을 24개의 고정볼트로 고정하면 된다. 이어 케이스 뒷면에는 라벨지를 붙이고 하네스선을 꼽은 후 PCB모듈과 컨버터, SED(썬래이 특허)를 평판에 부착, 앞면의 PCB판과 선을 연결하면 되는 작업이다. 글로 풀어 설명하니 복잡하지만, 막상 쉽게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다. 집에 있는 가전제품 건전지 갈아끼우는 정도로 우습게 생각하고 전동 드릴을 청했다. 평판 케이스 위에 4개의 LED칩을 올려 놓고 전동드릴을 돌렸는데 볼트가 생각처럼 잘 들어가지 않고 헛돌았다. 지켜보던 김씨가 너무 힘이 많이 실리면 PCB판이 손상 될 수 있으니 적정한 세기로 작업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긴장 속에 케이스 앞면을 24개의 볼트로 PCB판을 고정하고 이제는 뒷면 파워 및 커넥터 연결할 차례였다. 라벨지를 붙이고 후렉시볼을 끼우는 일까지는 순조로웠지만, 하네스선을 꼽는 순서에서 다시 문제가 생겼다. 케이스에 난 구멍을 지나는 하네스선이 손상되는 일을 막아주는 고무바킹을 제대로 끼우지 않은 것이다. 김씨는 작지만 우습게 보시면 안된다. 혹시라도 선의 피복 부분이 벗겨지면 합선이 발생할 수 있으니 신경써야 한다고 주의를 줬다. 고무바킹을 고정하고 PCB모듈과 컨버터, SED(썬래이 특허)를 평판에 부착, 선을 연결하고 모듈케이스와 확산판커버를 조립해 첫 작품을 완성했다. 이제 한개를 만들었을 뿐인데 벌써부터 다리가 저려오고 목이 뻣뻣해졌다. 김씨는 작업과정은 단순하지만 어느 것 하나 무심코 지나칠 수 없는 부분이라며 웃었다. 제품의 조립이 끝나자 전력 조정 및 내전압시험이 진행됐다. 미리 설정값을 정해놓은 장비에 전력을 연결, 설정치 이하로 떨어지지 않으면 합격이다. 각 공정에는 반드시 주의해야 할 부분이 있지만 완제품 전 마지막 공정에서 기겁을 했다. 전력이 연결되자 PCB칩에서 엄청난 빛이 발산됐다.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전원을 넣은 상태에서 마지막 상태를 점검해야 하는데 이를 무시하다 혼이 난것이다. 조립에 대한 일련의 작업을 마무리한 뒤에는 완제품을 포장하는 작업이 돌아왔다. 늘상 마트에서 장 본 물건을 박스에 담는 일이 숙달된 것만 믿고 쉽게 달려들었다가 이번에도 여지없이 혼나고 말았다. 박스 바닥면을 가지런히 하고 테이핑을 하는데, 삐뚤어지게 붙여진 것이다. 그렇다고 다시 떼면 박스 표면이 일어나 불량이 돼버리니 여기서 신중함이 필요했다. 미리 출고가 예정돼 있는 제품 600개에 대한 박스 작업을 마무리하고 완제품을 포장하기 시작했다. 조립을 마친 제품은 한 개에 박스에 평판 LED등 2개가 들어간다. 먼저 박스 바닥에 발포지를 깔고 그 위에 제품을 넣고, 다시 발포지를 깔고 제품을 넣고 테이핑을 하면 끝이다. 포장이 마무리된 제품은 미리 준비해 놓은 파렛트에 차곡차곡 쌓아 지게차를 이용해 차량으로 옮긴다. ■ 중소기업 옥죄는 인증제도 등 개선 시급 완제품을 차량에 싣는 작업을 끝낼 때쯤 이승기 사장이 현장을 보셨으니 내부도 보셔야죠라며 2층 회의실로 이끌었다. 회의실에는 회사 대표를 맡고 있는 전현수(54여) 대표가 회계와 영업담당 이혁준(32) 실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자리에 앉아 중소기업의 애로 사항을 묻자 이 사장은 조명관련 제조업 공장들은 인천이나 부천 쪽에 많이 몰려 있어 인력 수급이 용이한 편이지만 광주는 관련 인력 모집도 힘들다면서 갈수록 현장일을 기피하려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는 현실이 문제가 아니겠냐고 말했다. 작업 환경이나 근로여건은 중요치 않다. 대기업만큼은 아니더라도 좋은 급여에 기숙사를 제공하는 등 각종 복지를 보장해 줘도 주위의 시선을 중요시하는 사회현상이 문제라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 공장에도 외국인 근로자가 간혹 눈에 띄었다. 이마저도 이직이 잦아 항상 직원고용을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이어 아직까지는 대기업이 이쪽 시장에 깊숙이 개입한 것은 아니지만 시장이 커지면 자연스럽게 대기업이 사업에 뛰어들지 않겠냐며 지금도 LED칩 생산은 LG나 필립스 등 대기업들이 생산을 전담하고 있고, 중소기업의 설 자리는 더 좁아지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특히, 일반등에 적용하는 기준에 수치가 조금만 바뀌어도 새로운 인증을 받게 하는 제도 역시 중소기업을 어렵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6개월에 한번씩 신제품이 출시되는데도 새로운 인증을 받으려면 수개월씩 걸리고, 비용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는 밀려드는 저가 중국산 LED등으로부터 국내 중소기업들을 보호하고 LED등의 국내활성화를 위해서도 반드시 제도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의 체험은 단순한 일이 가장 어려운 일이라는 교훈을 남겼다. 우리나라 중소기업들에 대한 사회적 이미지 변화로 대기업처럼 인력 걱정 없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기대하며 자신들의 꿈을 이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소기업 종사자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광주=한상훈기자 사진=추상철기자

[1일 현장체험] 농어촌공사 평택지사 양수장 관리

70년대 끝자락에 세상의 빛을 처음 접했지만 농사를 짓지 않는 가정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농업과의 인연이 크게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최근 경제부로 자리를 옮기면서 소위 농(한국농어촌공사, 농협, 농촌진흥청 등)자기관을 전담하게 되면서 농업에 대한 관심이 급속도로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1일 기자 체험을 하게 됐다. 고민 중이던 필자에게 농사 짓는 어려움을 몸소 체험해 보겠냐는 농어촌공사 직원의 제안이 솔깃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무작정 던진 네 한마디로 정해진 체험. 나의 양수장 관리는 그렇게 시작됐다. 고속도로를 타고 한국농어촌공사 평택지사로 향했다. 운전석 넘어 보이는 탁 트인 전경에, 아직은 이곳지역 농민들을 위해 관련 기관들이 해야 할 일이 많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삼성 등 대기업의 투자가 이뤄져 앞으로 산업 도시로 변모할 평택이지만, 현 시점에서 농업이 아직은 큰 역할을 해야 할 곳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1시간여를 달려 지사에 도착했다. 김성화 농어촌공사 노동조합 평택지부장이 반갑게 마중 나와 있었다. 김 지부장은 쉽고 편하게 체험할 직업도 많은데 왜 굳이 여기까지 오셨냐며 웃음 짓는다. 솔직히 그때까지 무엇을 해야 할 지 몰랐던 기자도 알 수 없는 미소로 화답했다. 수차례 전화를 걸던 김 지부장 뒤로 한 직원이 헐레벌떡 뛰어 오고 있었다. 농어촌공사 평택지사내 양수장 관리를 총괄하는 김재형 과장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평택지사내 최대 양수장인 길음 양수장으로 향했다. ■ 작은 빗소리에도 웃음이 절로 가뭄은 싫어요 농사는 하늘의 뜻이라지만, 조금이라도 농민들에게 보탬이 되고자 저희가 존재하는 겁니다. 수줍은 미소로 김재형 과장이 첫마디를 던진다. 그리고 도착한 길음 양수장 뒤로 광활한 평택호가 펼쳐진다. 일도 시작하기 전에 마음만은 확 트인다. 상쾌한 기분으로 1일 체험 일정을 시작해본다. 김 과장은 나를 양수장 안으로 데려갔다. 본격적인 일에 앞서 양수장의 상황을 설명해주기 위해서란다. 길음 양수장은 먼저 3개의 간선을 지니고 있다. 연화(4대, 1000㎖)와 청북(2대, 900㎖) 그리고 숙성(2대, 900㎖). 모두 평택 관내 지명이다. 이 지역들로 평택호의 물을 끌어올려 농민들에게 물을 보내 주는 것이 길음 양수장의 주된 임무다. 물론 최근에는 모든 시스템이 전산화돼 육체적인 일이 많이 없어졌지만 몇해 전까지도 수작업으로 해야할 일이 많았다고 김 과장은 설명한다. 그는 양수장 관리가 전산화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육체 노동이 줄었지만 작은 빗소리에도 양수기 작동을 줄여야 할 지, 가뭄이 계속돼 양수기를 몇 개월 동안 지속적으로 돌려야 할 지 결정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선택이라며 한번의 잘못된 선택은 농민들을 큰 어려움에 처하게 할 수 있는 만큼 모든 판단이 신중해진다고 강조했다. 옆에 있던 김성화 지부장도 비공식적인 것까지 평택지사 관내에만 90여개의 양수장이 있는데 매일매일 이들 양수장을 관리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업무라며 양수장을 관리하는 직원들은 작은 빗소리에도 민감하고, 조금이라도 비가 오지 않는 날이 이어지면 신경이 날카로워진다고 귀뜸했다. ■ 수해 걱정은 해도 한해 걱정은 하지 않는다 길음 양수장이 담당하는 면적만 평택관내 8천ha가 넘는다. 평택지사가 1만5천ha 이상의 농지를 관리하는 전국 4번째 규모의 지사라고 볼 때 이 곳 양수장의 관리 면적은 광활하기 그지 없다. 김재형 과장은 길음 양수장은 박정희 대통령이 농업을 강조하던 1970년대 중반에 만들어진 양수장으로, 국내에서 처음으로 이스라엘 공법을 도입한 양수장이라며 보통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이동하지만 평택호에서 끌어올리는 물은 낮은 곳에서 높은 지역으로 물을 밀고 나가는 방식을 이용하기 때문에 그 어느 양수장보다 물 공급에 신경써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광대한 관리 면적을 자랑하는 길음 양수장은 이스라엘 공법을 통해 양수기의 힘으로, 화성과 용인 지역 일부까지 물을 공급하게 되는데 길게는 3일 정도 평택호의 물이 흘러가야 하는 특성으로, 계획적인 물 관리가 필요한 곳이다. 설명이 길었다. 연화 간선으로 통하는 양수장의 통문을 열어줄 시간이다. 자동 시스템 대신 수작업을 택했다. 엄청난 힘으로 돌려도 눈금은 몇 mm 정도만 올라온다. 정확한 물 배급을 위해서란다. 지금은 모두 자동 시스템으로 통문을 열지만 얼마전까지는 수작업으로 이 모든 일들을 해야 했다. 농민들이 제대로된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말없이 지원하는 직원들의 노고가 새삼 고마워진다. 김성화 지부장은 평택관내는 풍부한 평택호의 수량과 잘 발달된 양수장을 갖추고 있어 어찌보면 농사를 짓는 농민들에게는 풍요로운 지역일 수 있다면서 농업을 지원하는 공사의 직원으로서 비가 많이 오는 수해는 걱정해도 가뭄이 오는 한해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는 말이 평택지사에서 계속 전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 우리는 농민의 자식 어느새 정겨워지는 그들만의 행복 아침 일찍부터 길음 양수장을 포함해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양수장을 돌면서 양수기의 상태와 물의 수위, 통문을 점검하다보니 배에서 신호(?)가 왔다. 기자의 마음을 알았는 지 김성화 지부장이 손수 농사를 지으며 장사를 하는 유명한 식당으로 안내했다. 숙성리에 위치한 탓에 평택호의 물을 공급 받아 농사를 지어서 인지 우리를 맞이하는 사장님의 인사가 정겹다. 왜 이렇게 오랜만에 왔어?라고 툭 던지는 말조차도 가족과 함께하는 일상의 대화같다. 처음 가져다주는 음식 외에는 모두 손수 가져다 먹으란다. 김재형 과장은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농민들과 함께 지내다보니 나도 모르게 식구나 친구들에게 농사꾼 같다는 말을 많이 듣게 된다며 처음에는 나를 무시하고 놀리는 말이라는 생각에 기분이 좋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었지만 지금은 그 말만큼 정겨운 표현이 없다고 흐뭇해했다. 김성화 지부장도 민원이 있다고 찾아오는 이웃주민에게 작업복 차림에 술잔을 기울이다보면 서로 서운했던 것들이 사라지는 게 농촌의 생활이자 인심이라면서 농업이 사양 산업이라고는 하지만 농업이 있어 대한민국의 초석이 세워졌고, 그들이 있어 우리도 있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다고 자랑스러워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생활하는 평택지사 직원들의 모습에서 작지만 뿌리 깊은 희망을 보았다. 그건 다름아닌 농업과 농민들의 사랑과,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 그것이 합쳐져 아직은 대한민국 농업이 죽지 않았다는 희망. 오늘도 농민들의 좀 더 안정된 농사 일을 도와주기 취해 운전대를 놓지 않는 직원들이 있어 평택의 농촌은 즐거운 것이 아닐까. 이들과 함께 한 하루가 보람찬 것도 이런 즐거움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김규태기자 사진=전형민기자

[1일 현장체험] 수원 미나리광시장 생선가게 상인

어릴 적 내겐 호환마마보다 더 무서운 존재가 있었다. 바로 생선가게 아주머니들이다. 비릿한 냄새 가득한 가게에서 미끌거리는 생선들을 성큼 집어올린 후 탁!탁! 칼로 내리치는 그녀들의 표정은 늘 평온했다. 꼬리와 대가리, 지느러미를 무참히 내동댕이칠 때도 말이다. 어찌 저리 무심한 표정으로 생선들을 난도질할 수 있지? 생선아 미안해, 내가 저 아줌마 혼내줄게. 그렇게 속으로 다짐을 한 뒤, 집에 돌아와선 그 생선을 맛있게 먹었더랬다. 철이 조금 든 후 생선가게를 지날 땐 왠지 모를 삶의 강인함을 느낀다. 생을 연장하려고 펄떡펄떡 뛰는 생선들의 요동과 비릿한 공간에서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내는 상인들. 삶을 위한 땀이 비린내와 뒤섞이고, 손님들의 삶 이야기가 오고 가는 복잡다단한 공간, 날 것 그대로의 삶이 펼쳐지는 곳이다. 무더위가 아직 꺾이지가 않은 지난 11일 그 비릿한 땀의 현장을 느껴보고자 수원 미나리광시장의 1일 생선가게 상인이 되기로 했다. 이왕 하는 거 매출도 확 올려보리라는 자신감도 안았다. 그런데 웬걸, 상인은 역시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다. ■ 무시무시한 생선칼 들고 생선 사러 오세요. 시장의 아침은 분주했다. 오전 8시, 수원 미나리광 시장 지동수산의 유수일(68)ㆍ김춘자(60)부부는 손님 맞을 채비를 하느라 쉴 틈이 없었다. 이미 오전 6시 반부터 나와 준비를 하고 있던 두 부부는 기자를 향해 왜 이렇게 늦었냐?며 이렇게 해서 장사하겠느냐고 웃으며 호통을 쳤다. 생선장사만 25년째라는 두 부부는 이곳에서 지동수산이라는 이름을 걸고 14년간 생선가게를 운영 중이다. 아이고, 힘들 건데 아가씨가 할 수 있겠어? 나중에 도망가지 마. 김씨가 하얀 장갑과 앞치마를 건네며 걱정스럽게 말했다. 앞치마를 입고, 장화를 신으니 생선가게 상인으로서의 하루가 시작됐다. 손님을 맞으려면 생선을 보기 좋게 진열하는 게 우선이다. 먼저 생선 바구니에 얼음을 올려놓는다. 요즘 같은 여름철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신선도를 유지해 주는 얼음이다. 특히 전통시장에 대한 손님들의 편견을 깨기 위해서라도 더욱 위생에 더욱 신경 써야 한다. 가판대를 늘 가지런히 정리하지만, 대형마트의 깔끔함을 따라가기는 어렵다. 김 씨는 우리도 손님들에게 좋은 상품을 멋지게 진열하고 싶은데, 전통시장은 여건이 안된다면서 가판대도 정리하고 위생시설, 냉동시설도 잘 갖춰질 수 있도록 지원이 되면 참 좋을 것 같다고 혼잣말을 내뱉었다. 생선이 담길 얼음 바구니가 완성되자 파란 비닐을 깔고, 냉동실에서 생선을 꺼내 가지런히 정리했다. 정리하는 데에도 요령이 있다. 제아무리 생선일지라도 예뻐 보여야 손님들의 간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작은놈은 작은 놈끼리, 큰놈은 큰 놈끼리 맞춰서 예쁘게 올려야 잘팔려~. 김씨의 충고를 받아 한 마리씩 진열했다. 진열된 생선들의 면면은 화려했다. 오징어, 갈치, 이면수, 명태, 가자미, 열기, 새우, 낙지, 오징어, 바지락, 맛살 등 목포바다에서 잡혀온 생선부터 저 멀리 러시아 해역 태생까지 다양한 국적을 가진 해산물과 생선 30여 종이 한데 모였다. 장사를 하려면 우선 이들의 이름부터 외워야 했다. 평소 생선을 좋아하던 터라 이름 외우기에는 자신 있었지만, 비슷한 종류가 한데 모여 있어 도무지 뭐가 뭔지 감이 오지 않았다. 버벅거리며 생선과 수산물 30여 종류를 진열하고 이름과 가격을 외우다 보니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흘렀다. 오전 9시까지 팔린 금액은 6만 원치다. 이 정도면 첫 장사치곤 나쁘지 않은 성적이겠다고 생각하는 찰나, 김씨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원래 오전 6시20분에 문 열자마자 첫 손님이 와. 아니면 그날 장사는 공 치는 거야. 오늘은 기자 이모 오고 나서 첫 손님이 왔네. 부진한 출발, 심기일전하고 상인의 자세로 돌아갔다. 뭘 좀 드릴까요?, 싱싱한 게 맛있어요. 지금 이모가 보시는 거 싱싱해. 싸게 드릴게요. 김씨 부부를 따라 손님이 오면 웃으며 친근하게 말을 붙여봤지만, 쉽지 않았다. 나긋나긋한 표정과 20대부터 70~80대까지의 남녀노소를 아우르는 다정다감한 말투, 이 모든 것을 구현해 내야 하는 게 상인이다. 우리 어머니 뭘 좀 드릴까? 능숙한 척 연기하는 찰나, 손님의 아찔한 말이 돌아왔다. 고등어 시원하게 배 갈라서 내장은 쫙 빼고 대가리는 몇 개 넣어주세요. 찌개 끓여 먹게. ■ 손님과 정이 오가는 가게, 상인의 덕목 머뭇거리는 기자를 대신해 전면에 나선 김씨의 칼은 쉴 틈이 없었다. 그녀가 팔을 크게 휘두를 때마다 도마 위에 놓인 생선들은 속절없이 분해됐다. 둔탁한 소리를 내며 분해된 그것들은 통에 한가득 쌓여 갔다. 다시 어릴 적 호환마마보다 무서웠던 생선가게 아주머니들이 생각났다. 사장님은 원래 이렇게 생선 토막을 잘 내셨어요? 어리석은 물음에 답변이 돌아왔다. 나도 원래 잘하진 않았지. 먹고 살려고 하다 보니까, 생선 대가리도 쾅쾅 내리치게 됐어. 나도 옛날엔 우리 기자님처럼 이런 거 무서웠어. 그래도 이걸로 자식 3명 대학 다보내고, 집도 장만했어. 매일 생선을 팔며 사투를 벌이는 김씨는 여전히 생선이 좋다고 한다. 식사 때도 늘 생선이 빠지지 않는다. 이들 부부에게 생선은 삶이나 마찬가지였다. 쉽게 생각했지만, 일은 끊이지 않았다. 손님이 오면 물건을 팔고, 손님이 없을 땐 물건을 정리해야 한다. 냉동고에서 꺼내놓고 가다듬고, 잠깐 짬나면 손님이 주문한 물품을 손질해놓는다. 빨래와 청소도 이따금 이어진다. 하루에도 물건은 수차례 들어온다. 싱싱한 제품을 팔려고 그날 예상되는 판매량만큼만 제품을 들여놓다 보니 잔일도 많았다. 물건이 조금씩 들어오면 장부를 정리하고 냉동고에 넣고, 정리하기 바빴다. 원산지 확인도 빼놓을 수 없다. 바쁘게 움직이던 찰나, 정오가 되니 손님의 행렬이 끊겼다. 후한 인심 덕에 인근 시장에서도 손님 많기로 유명한 지동수산인터라 신경이 쓰였다. 손님이 없네요. 초조한 기색으로 말을 내뱉자 김씨의 호탕한 말이 돌아왔다. 에이, 그런 거 다 신경 쓰면 장사 못해. 신경병 걸려. 장사는 될 때도 있고 안될 때도 있고, 있다가도 손님이 없고, 없다가도 있는 거지. 그저 손님 오면 감사하게 생각하고 맞이하면 돼. 특히 4월부터 8월 중순까지 전통시장은 비수기다. 요즘엔 세월호 사건과 경기침체로 더욱 힘든 여름을 보낸다. 이 날도 매출은 50여만 원에 그쳤다. 하루에 들어가는 얼음 값과 재룟값을 빼니 적자였다. 그러나 20여 년 전만 해도 꽤 장사가 잘됐다. 학교, 은행, 공공기관 등의 식당에 납품하면서 큰 고객들을 확보했지만, 유통업이 급식시장을 장악하면서 현재는 인근 식당이나, 농ㆍ수협 등에 납품하는 게 전부다. 요즘엔 쉬는 날도 없다. 예전엔 둘째, 넷째 주 일요일이 휴일이었지만 대형상점의 유일한 휴일이 돼버려 오히려 이때 심기일전해 물건을 열심히 팔아야 한다. 시장을 찾는 손님이 점점 줄어드는 가운데, 한 명의 고객이라도 더 확보하려면 하루라도 쉴 수 없다는 게 그들의 말이다. 손님의 발길은 잠시 뜸해도 사람은 끊이지 않았다. 시장 내에 있는 냉커피 아줌마가 잠시 들러 커피 한 잔을 건네고 가고, 납품업자들이 수시로 들러 물건을 내려놓는다. 인근 식당에서 물건 좀 달라며 다녀가기도 했다. 만남과 만남이 이어지는 사이 일상의 대화가 잔잔하게 오갔다. 기자를 비롯해 상인들의 고단함은 절로 풀어졌다. 상인의 자세는 뭐냐고 묻는 기자에게 유씨가 말했다. 첫 번째는 상품이 좋아야 하고, 두 번째는 고객에게 친절, 세 번째는 항상 상인의 자부심을 느끼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 이 세 가지 자세를 익히며 나름 생선칼을 좀 휘둘러봤던 상인으로서의 하루는 오후 4시를 넘어서며끝을 냈다. 옷에 밴 비린내를 훌훌 털어내자 더 진한 냄새가 묻어났다. 무수히 많은 손님을 만나며 일상의 대화를 나눴던 정과 치열한 삶의 냄새 말이다. 이제는 생선가게 아줌마에 대한 두려움을 완전히 떨쳐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들은 손님이 신선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길 바라는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강인한 여인들이었다. 정자연기자 사진=전형민기자

[1일 현장체험] 경기도야생동물구조관리센터 요원

크고 동그란 눈망울이 매력적인 천연기념물 324호 수리부엉이. 흐드러진 봄을 마음껏 즐겨도 시원찮은 봄날. 그날의 사고는 녀석들의 자유를 유예했다. 아무것도 없다고 믿고 날았던 하늘, 빌딩 유리에 부딪혀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신속한 신고와 구조가 없었다면 녀석들의 삶은 그것으로 끝날 뻔했다. 갇혔던 시간이 얼마나 지겨웠을까. 두 달여 만에 다시 자연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 사이, 한 마리가 푸드덕~ 날갯짓을 하며 서둘러 하늘로 비상한다. 기자의 손에 있던 다른 한 마리도 그동안 몸이 근질 했었는지 힘을 풀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시야 너머로 사라진다. 너른 벌판과 하늘에는 어떤 것이 보일까. 아마 녀석들이라면 이리 대답했으리라. 자유가 보인다고. 녀석들을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낸 은인은 경기도야생동물구조관리센터(이하, 야생동물센터).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야생동물의 치료와 재활, 복귀를 전담하는 일종의 야전병원이다. 지난달 28일 기자가 일일 야생동물 구조요원 체험을 위해 이곳 센터를 방문했다. ■ 야생동물 번식기 5월~7월 가장 바빠 지난달 28일 오전 10시. 예정된 약속시각 보다 30분 일찍 도착했다. 사실 조바심이 났었다. 취재를 마쳐야 한다는 강박은 아니었다. 위태로운 생명과 마주해야 한다는 부담이 더 컸다. 평소 관심 있기는 했지만 동물원 이외 공간에서 야생동물을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게다가 사고로 인해 상처나 장애를 입은 생명을 대하는 일이 수월치는 않을 거라 여겼다. 야생동물센터에 들어서자 말끔한 차림의 김희원 계장이 기자를 맞았다. 김 계장은 보통 번식기인 5월에서 7월까지 구조 수요가 많이 몰려 가장 바쁘다며 본격적인 체험에 앞서 센터 일을 간략히 설명했다. 야생동물센터는 수의사인 김 계장을 포함해 모두 5명의 수의사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구조와 치료 업무를 본다. 하지만 이는 공무원의 시계다. 수의사로서, 구조요원으로서의 시계는 다르다. 명목상 표기된 시간은 그렇지만 야생동물센터의 업무시간은 따로 없다. 매일 배정된 당직자가 구조요청을 받으면 사안의 심각성을 참작해 업무이외라도 구호활동을 하고 있다. 기간제 근무자를 포함해 10명 정도의 인원이 경기남부와 북부를 포함해 사실상 경기지역 전역을 담당하고 있어요. 번식기에는 하루 5건 이상 구호활동을 하고 계류장과 입원실, 재활실에 있는 야생동물을 관리하고 치료하는 임무를 수행합니다. 여기에 연구기관의 역할도 함께 수행하면서 손이 열 개라도 부족할 지경입니다 설명이 끝나자마자 기자에게 구호지시가 떨어졌다. 용인의 한 아파트단지 내 설치된 트랩(박스형 덫)에 잡힌 너구리를 인계 받는 것이 첫 번째 임무였다. 시청에서 너구리 민원을 해소하기 위해 설치한 트랩에 두 마리의 너구리가 걸려든 것이다. 센터에서 구조관리를 맡은 김종환씨가 운전대를 잡고 김계장과 기자가 현장으로 출동했다. ■ 아파트 단지 야생 너구리 포획 작전 현장에 도착하자 시청 직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광견병 감염의 가능성이 있어 섣불리 접근하지 못하고 있었다. 시청 직원의 안내에 따라 너구리가 잡힌 곳으로 향했다. 기자의 손에는 두 개의 이동장이 들려 있었다. 김종환씨가 미리 준비한 보정기구를 너구리 목에 걸고 밖으로 꺼냈다. 너구리가 앞뒤로 흔들며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기자가 재빠르게 이동장 문을 열었다. 그 안으로 너구리를 집어넣자 이내 조용해진다. 한 마리 포획에 성공한 것이다. 생각보다 쉽다는 마음에 두 번째 너구리는 기자가 잡아 보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김 계장은 보이는 것보다 기술이 필요한 일이라며 기자를 말렸다. 결국, 기자가 이겼다. 두 번째 트랩으로 향했다. 기자의 손에 보정기구가 들렸다. 트랩의 문이 열리고 보정기구를 트랩에 밀어 넣었다. 그런데 워낙 발버둥을 치는 덕에 보정기구 고리를 너구리 목에 걸기조차 쉽지 않았다. 몇 번의 우여곡절 끝에 너구리를 포획하는 데 성공했다. 너구리 상태는 나쁘지 않았다. 도시 너구리에게 자주 나타나는 피부병이나 영양실조도 없었다. 자세히 보니 덩치도 작았다. 김희원 계장은 크기를 보아하니 태어난 지 2~3개월 된 어린 너구리인 것 같다며 눈이나 피부, 활동성 등을 보면 대충 건강 상태를 짐작할 수 있는데 비교적 건강한 상태로 보인다고 말했다. 포획한 너구리는 야생동물센터로 옮겼다. 위생상태가 열악한 곳에서 장기간 생활할 경우 발병할 수 있는 광견병이나 디스템퍼(Distemper)와 파보(Parvovirus) 바이러스 검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검사결과, 음성으로 판정되면 곧바로 방사된다. 하지만 이들 너구리는 민원에 따른 포획이기 때문에 살던 곳으로는 갈 수 없다. 김 계장은 방사의 원칙은 잡힌 곳에 풀어주는 것이 맞지만 이번 경우는 다르다며 인적이 드물고 너구리 생식 환경에 맞는 곳을 골라 방사한다고 말했다. ■ 어떻게든 살려야 한다 오후에는 수술실 업무가 맡겨졌다. 하얀 가운이 지급됐다. 복장을 갖추고 이승환 수의사의 지시를 받아 수술실로 향했다. 수술대 위에는 몸길이가 20cm도 채 안 되는 새끼 너구리가 있었다. 한 눈에 봐도 기운이 없어 보였다. 호흡하기도 힘든지 쌕~쌕 소리를 내며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김준형 수의사가 상태를 보더니 인수공통전염병인 개선충, 즉 옴 이라고 했다. 감염되면 굉장히 따갑고 가려워 일상적인 먹이 사냥조차 할 수 없을 정도라며 (이 너구리는) 이미 시간이 경과돼 가려운 수준을 떠나 아예 감각조차 잃어버린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피부 괴사가 많이 진행돼 손만 갖다대도 피부 조직이 떨어질 정도로 심각했다. 김준형 수의사는 지금으로서는 항생제와 링거액 투여로 경과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착잡함을 감추지 못했다. 하나, 이내 또 문제가 발생했다. 쇠약해진 탓에 관절에 힘을 잃은 데다 혈관까지 약해져 링거액이 투여되지 않았다. 한쪽 팔을 잡고 펴야 링거액이 들어가는 식이었다. 기자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새끼 너구리의 작은 팔을 잡고 링거액이 잘 들어 가는지 옆에서 지켜 보는 것 외에는 없었다. 새끼 너구리가 생사의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는 동안 옆에는 오늘 자유의 몸이 되는 수리부엉이 두 마리의 계측이 진행되고 있었다. 계측이란, 방사 전 몸통 크기나 부리 길이 등 신체사이즈를 기록하는 것을 말한다. 조류의 신체적 특징을 기록해 향후 한국에 서식하는 야생조류에 대한 실증적 연구자료로 쓰기 위함이다. 이와 함께 수리부엉이 발목에 국가별 일련번호가 적힌 메탈링(metal-ring)을 박는 작업도 했다. 발목에 부착된 일련번호를 토대로 조류의 경로와 먹이활동 등을 체크할 수 있다. 이 역시 조류연구 자료로 활용된다. ■ 안녕~ 다시는 잡히지 마 오후 3시에 가까워져 오자 황조롱이 재활훈련 시간이 다가왔다. 가죽 소재의 두꺼운 장갑을 손에 끼고 엄지와 검지를 수평으로 만든 뒤 그 위에 황조롱이를 살포시 올려놨다. 새끼손가락에는 황조롱이가 날아가지 못하도록 끈이 연결됐다. 오랜 센터 생활에서 황조롱이가 야생성을 잃지 않도록 하거나 기르도록 하는 재활훈련이다. 보통 먹이로는 병아리 사체가 쓰인다. 고정된 먹이 외에 먹이를 바닥에 던져 놓고 날아가 먹도록 하는 재활훈련도 있다. 동물들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학습속도에서 차이를 보인다. 그렇게 몇 번 먹이훈련을 하다 보니 어느 정도 손에 붙은 듯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그렇게 조금씩 까칠한 황조롱이와 친해지려고 할 즈음 오전에 포획했던 너구리 두 마리의 검사결과가 나왔다. 결과는 다행히, 음성. 아무런 질병도 없다는 판정이 나왔다. 곧바로 방사 결정이 났다. 이동장에 넣은 뒤 김종환씨와 함께 인적이 드문 인근의 하천으로 너구리들을 옮겼다. 좁은 야생동물 이동장에 갇혀 30분 가까이 달려왔다. 이동장을 바닥에 내리자 너구리는 물끄러미 밖을 바라봤다. 문이 열렸다. 한 녀석이 기다렸다는 듯 하천으로 냅다 뛰쳐나간다. 그러나 한 녀석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김종환씨가 우리 옆을 툭툭 치니 그때서야 겨우 땅에 발을 디딘다. 잠시 주위를 둘러보는 가 싶더니 이내 여름의 수풀 사이로 사라진다. 잘 가고, 앞으로 잡히지 마~ 건강하고 너구리들이 사라진 길을 보며 한마디 건넸다. 센터로 돌아와서는 계측이 완료된 두 마리의 수리부엉이마저 함께 방사했다. 그렇게 일과를 마치고 센터 직원과 야생동물에게 인사를 하고 나가는 길. 회복실에서 링거를 맞고 있던 새끼 너구리가 기운을 차리고 있는 지 시종일관 꼼짝 않던 작은 몸을 길게 세운다. 그 생명이 참 반갑다. 박광수기자 사진=전형민기자

[1일 현장체험] ‘술의 예술가’ 바텐더

칵테일은 술의 예술품이다. 색과 빛깔로 눈을 유혹하고 독특하면서도 복잡 미묘한 맛으로 입을 유혹한다. 하지만 칵테일의 진정한 유혹은 나의 입맛과 나의 취향에 맞춰 바뀌고 변하고 새로워질 수 있는 그 무한한 가능성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칵테일을 좋아한다. 단 한 잔만으로도 꽉 채워주는 듯한 칵테일을 좋아한다. 칼루아밀크나 블랙러시안처럼 레시피(recipe)가 간단한 칵테일은 종종 집에서도 직접 만들어본 적이 있다. 하지만 역시 전문가의 손길이 닿은 것과는 천양지차라고나 할까. 이번 기회에 칵테일 만드는 법을 배워둔다면 두고두고 써먹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흑심을 품고 바텐더(Bartender)에 과감히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러나!! 도전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바텐더의 길은 생각만큼 녹록지 않았다. 바텐더는 클래식 바텐더(Classic Bartender), 플레어 바텐더(Flair Bartender), 믹솔로지스트 (Mixologist) 등으로 나뉜다. 클래식 바텐더는 가장 기본적인 클래식 바의 바텐더로 바의 신사라고 불린다. 플레어 바텐더는 병을 던지고 돌리고 다양하고 현란한 쇼를 보여주면서 칵테일을 만드는 바텐더로 만능엔터테이너다. 믹솔로지스트는 섞다는 뜻의 믹스(Mix)와 학자라는 뜻의 올로지스트(Ologist)의 합성어다. 새로운 칵테일을 만들고 연구하는 바텐더라는 의미로 칵테일의 연금술사라는 별칭도 얻고 있다. 고객이 원하는 특별한 칵테일을 즉석에서 만들어주는 신비로운(?) 능력의 소유자다. 그러나 바텐더가 이렇게 딱딱 구분 지어지는 것은 아니다. 플레어 바텐더이지만 클래식 바텐더가 될 수도 있고 클래식 바텐더이지만 믹솔로지스트이기도 하다. 바텐더가 되기까지의 길도 험난하다. 바텐더의 기본소양은 스스로 레시피를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해진 레시피를 따라서 칵테일을 만드는 사람은 바텐더가 아니다. 서울의 강남이나 이태원, 압구정동도 아닌 인천에서 정통한 바텐더를 만나기란 쉽지 않았지만, 하늘의 도움인지 송도국제도시에서 신개념 일렉트로닉 라운지클럽인 칵테일바 인밥(INBOB)을 찾아냈다. 인밥의 캡틴이자 15년차 베테랑인 바텐더 칼(본명 안효식34)은 무모하게 바텐더에 도전하려는 기자에게 기꺼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줬다. ■바 안으로 들어가기까지 1년 23일 오후 5시, 영업시간 전에 인밥을 찾았다. 인밥이 무슨 뜻일까 궁금했는데 인디언밥을 줄인 거라고 했다. 어릴 적 놀이처럼 즐겁고 편한 공간이라는 사장님의 심오한 뜻이 담긴 이름이란다. 인밥에 들어서니 화이트톤으로 멋을 낸 라운지와 색색의 칵테일 재료들이 담긴 병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바가 한눈에 들어왔다. 오늘 내가 칵테일을 배울 곳이 바로 여기구나라는 생각에 인사를 건네며 바 안으로 들어서려고 했더니 캡틴이 단호한 목소리로 제지한다. 바 안은 감히 초보가 첫날부터 넘볼 수 있는 그런 공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캡틴은 19살의 나이에 바텐더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서울 압구정동의 유명한 칵테일바를 찾아갔다고 한다. 하지만 무려 11개월 동안 바 안에 한 발짝도 들여놓지 못했단다. 매장에서 맥주박스 나르면서 허드렛일을 한 뒤에야 바 안에 들어설 수 있는 영광을 얻었다고 했다. 하지만 바 안에서도 당시 캡틴에게 주어진 일은 설거지와 뒷정리뿐. 6개월을 더 기다려서야 비로소 바텐더로서 첫걸음을 뗄 수 있었다. 무려 17개월을 기다린 끝에 얻은 기회이다. 지금은 수습기간 3개월, 트레이닝 3개월도 많이 단축됐다고 한다. 그렇지만 캡틴처럼 바 밖에서 몇 개월씩 기다릴 수 없는 처지라 라운지를 깨끗하게 쓸고 닦고 하는 것으로 간신히 1단계를 통과할 수 있었다. 바 안으로 들어서기 전 복장점검도 해야 했다. 바텐더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검은색 조끼에 맞춰 검은색 또는 흰색 셔츠를 입는 게 기본규칙이었다. 굽이 높은 구두도 벗고 운동화로 갈아신었다. 바 안쪽 바닥에는 병이나 유리잔이 떨어지더라도 깨지지 않도록 완충재를 깔아뒀기 때문에 구두를 신고는 걷기가 힘겨웠다. 칵테일 레시피를 배우기 전에 칵테일을 만들 때 필수과정인 쉐이킹(Shaking)을 배웠다. 쉐이커에 얼음과 재료를 넣고 유리컵을 뚜껑처럼 빈틈없이 꽉 닫은 다음 흔들기. 10~15회가량 흔들면 재료와 얼음이 잘 섞인다. 쉐이커는 열전도율이 높아서 금세 차가워진다. 쉬운 작업이라고 생각했는데 손이 시려서 15회를 채우는 게 생각보다 어려웠다. 흔들 때는 손목을 이용해 부드럽게 흔들어야 한다. 팔 전체를 흔들면 쉽게 지치고 실수하면 쉐이커를 떨어뜨릴 수도 있다. 다 섞인 쉐이커는 한쪽을 탁 소리가 나도록 쳐주면 유리컵과 쉽게 분리할 수 있다. 작은 것 하나에도 오랜 경험에서 나온 요령이 있구나 새삼스럽게 감탄했다. ■칵테일의 오묘한 매력 어떤 칵테일을 배워볼까 고심하다가 처음부터 욕심을 좀 내봤다. 드림로즈 미국에서 개발하다가 실패한 장미의 이름은 본뜬 칵테일이라고 들었는데 색이 무지갯빛에 가깝다. 첫맛은 상큼하고 시원한 느낌이고 끝 맛은 달곰하고 부드럽다. 드림로즈는 층층이 색이 어우러지도록 만들어야 하는 최고 난이도 칵테일이다. 결국 초보는 손을 놓고 작품(?)의 완성도를 갖추고자 캡틴이 만드는 것을 어깨너머로 견학만 했다. 얼마나 실력을 쌓아야 이렇게 아름다운 빛깔의 칵테일을 만들 수 있게 될지 부럽고 존경심이 솟아났다. 다음으로 배운 칵테일은 롱 아일랜드 아이스티, 일명 롱티 일반적으로 칵테일은 베이스로 진, 보드카, 럼 등 1가지를 선택해 부재료를 넣지만 롱티는 진, 보드카, 럼 3가지를 모두 섞는 특이한 칵테일이다. 어떤 경우에는 데낄라까지 넣기도 한단다. 이외에도 트리플 섹, 샤워믹스(레몬주스), 콜라 등 재료도 많이 들어간다. 트리플 섹은 주정(spirit)에 오렌지 껍질 등을 넣고 만든 리큐르 중 하나다. 진이나 보드카, 럼, 트리플 섹 모두 알코올 도수가 40% 이상이라 칵테일 도수도 30%를 넘는다. 롱티는 신기하게도 홍차를 전혀 넣지 않고 홍차와 비슷한 맛을 낸다. 그래서 이름에도 홍차(Tea)가 들어간다. 롱티의 마지막은 콜라로 채운다. 빨대를 꽂으면 완성. 시범을 보여주는 캡틴은 계량컵인 지커(Gigger)를 전혀 쓰지 않고 병을 한 번 들었다 놓는 프리 푸어(Free Pour)로 양을 딱딱 맞추면서 초보의 기를 팍팍 죽였다. 주눅이 든 초보가 가여웠는지 캡틴은 레시피대로만 하면 된다고 격려해줬다. 다행히 초보가 계량컵을 이용해 만든 롱티는 맛을 흉내 낼 정도의 수준은 됐다. 칵테일은 매우 세심한 술이다. 재료의 양이 조금만 달라져도 맛이 미묘하게 변한다. 그래서 같은 롱티라도 누구나 취향과 기호에 맞게 바꿀 수 있다. 더 독하게 혹은 더 달콤하게. 칵테일이라고 부르게 된 유래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프랑스어 코크티에(Coquetier)에서 시작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1795년경 미국 루이지애나주(州) 뉴올리언스에 이주해온 A.A.페이쇼라는 약사가 달걀노른자를 넣은 음료를 조합해서 코크티에라고 부른 게 시초라고 한다. 미국뿐만 아니라 인도나 페르시아에서 예로부터 펀치(punch)라는 혼성 음료를 만들어 마시던 것이 에스파냐, 서인도, 유럽으로 전해졌다는 기록도 있다. 1700년대 영국의 육군대령 F.니거스가 양주를 배합해 혼성 음료를 발명하고 자신의 이름을 붙였다는 설도 있다. 칵테일이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미국이라고 한다. 미국에 금주령이 내렸을 때 바텐더들이 유럽으로 건너가 여러 종류의 칵테일을 만들면서 번져나갔다. 칵테일이 전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것은 누구든 한번 맛본다면 잊기 어려운 칵테일만의 매력이 전 세계적으로 통했기 때문이었으리라. ■상냥한 막대기, 바텐더 최근 흥미있게 읽었던 만화 바텐더(Bartener)에서는 바텐더라는 말을 바(Bar)+텐더(Tender)로 나눠 해석했다. 막대기를 뜻하는 바(Bar)와 부드러운(Tender) 이라는 말을 섞어 부드러운, 상냥한 막대기라고 설명했다. 긴 막대기 형태의 바를 지키면서 항상 막대기처럼 꼿꼿하고 바른 자세를 한 바텐더, 바에 앉은 고객은 그 누구라도 속내를 들어주고 귀를 기울여주는 바텐더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원래 바텐더의 뜻은 바(Bar)를 돌보는(Tend) 사람(er)이라는 말이라고 한다. 하지만 상냥한 막대기라는 표현이 바텐더를 더 정확하게 표현한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캡틴에게 왜 바텐더라는 직업을 택했는지 물었다. 캡틴은 술을 사랑했다라면서 농담으로 말을 시작했지만, 곧 사람들을 만나서 술 한잔을 놓고 이야기를 나누고, 마음속의 응어리를 풀어내도록 돕는다는 게 멋진 일 같았다고 진지하게 답해줬다. 캡틴의 시작은 플레어 바텐더였다. 화려하게 병을 돌리고 불을 뿜는 기술을 연마했다.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일도 많았다. 하지만 바텐더에게 술 만드는 것은 두 번째, 사람과의 소통이 첫 번째라는 걸 깨닫게 됐다고 한다. 인밥에서 기자와 만난 병아리 동지 지오(닉네임29)도 플레어 바텐더를 꿈꾸는 청년이다. 캡틴에게 함께 구박을 받으면서 칵테일을 배웠지만 지오는 항상 웃는 얼굴을 잃지 않았다. 칵테일을 만들고, 즐겁게 무대(바)를 꾸미고, 사람들이 호응해주는 걸 느끼고 싶은 소박한 소망이 있는 긍정 청년이었다. 바텐더에게 가장 멋진 순간은 언제일까? 캡틴은 칵테일 맛있다고 리필(Refill) 해달라고 할 때란다. 칵테일이 리필이 될 리 없지만 그 정도로 손님이 칵테일에 만족했다는 뜻이니 정말 리필이라도 해주고 싶다고 했다. 칵테일은 어쩌면 가장 모순된 음료가 아닐까 싶다. 독하지만 독한 맛은 아니고 달콤하지만 무턱대고 마시면 정신 줄 놓게 될 만큼 독주(毒酒)다. 칵테일이 오랜 세월 매력을 잃지 않고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것은 내 마음을 알아주는 칵테일 한 잔을 권해주고 내 앞에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상냥한 막대기, 바텐더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김미경 기자 kmk@kyeonggi.com 사진=장용준 기자jyjun68@kyeonggi.com

[1일 현장체험] 무예 24기 시범단

길든 야생마는 온유하다. 자유로운 영혼과 가공할 힘을 갖고 있지만, 마부의 통제를 수긍하며 기꺼이 그의 발이 된다. 하루에 천릿길을 내달았다고 전해지는 적토마는 길든 야생마의 표본이다. 여포와 조조에 이어 세 번째 주인인 관우를 만난 적토마는 그가 전장에서 산화(散華)하자 네 번째 주인인 오나라 장수 마충을 거부하고 기꺼이 관우의 저승길을 따랐다. 짐승도 저런데 하물며 사람은 어떤가? 조선 후기 국왕을 보위하던 군대 장용영(壯勇營). 정조대왕은 왕권 강화를 위해 최정예 무사들을 규합, 이 군영을 조직했다. 선군이었던 정조가 황망히 서거한 지 214년이 흘렀지만, 장용영의 후예들은 여전히 수원 화성행궁에서 그를 지키고 있다. 주군의 혼을 지키는 무예인, 바로 무예 24기 시범단이다. 수원문화재단의 협조를 얻어 일일 단원으로 참여했던 지난달 17일은 나도 장용영의 무사였다. ■팔달산 정기 받은 무림의 고수들 이날 오전 9시, 구름 낀 하늘 아래 화성행궁 신풍루 앞 광장은 한산했다. 산들바람을 가르며 북군영을 찾았다. 장용영의 최정예 무사들로 구성된 외영(外營) 병력이 숙직했던 이곳에는 단원들이 둥글게 서서 몸을 풀고 있었다. 아마 수련을 시작한 듯했다. 벙벙한 흰색 민복을 입은 장정이 둘러선 모습은 사극의 한 장면을 방불케 했다. 때마침 찾아온 수원문화재단 관광공연팀 직원 엄주용씨의 안내로 통성명 기회가 주어졌다. 사나이들 앞에서 주눅이 들 순 없었다. 더욱 힘차게 자신을 소개했다. 오늘 일일 단원으로 함께할 경기일보 박성훈입니다. 무예 24기 시범단으로 함께할 수 있어 무한한 영광입니다. 말을 맺고는 찬찬히 단원들의 얼굴을 둘러보았다. 하나같이 무림의 고수를 연상케 하는 풍채를 지녔다. 햇볕에 그을려 가무잡잡한 피부에 부리부리한 눈빛의 송승민 사범(34)과 눈이 마주쳤다. 영락없는 조선시대 장수의 모습이 나를 압도했다. 이 와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풀던 배국진 사범(44)은 머리와 수염을 기른 모습이 마치 도인을 연상케 했다. 치렁치렁한 장발을 휘날리는 검객 최형국 사범(38)은 왕의 곁을 지키는 호위 무사와 같은 인상이었다. ■청룡언월도 휘두르던 관운장을 따라 나는 송 사범과 수련을 시작했다. 민복으로 부랴부랴 갈아입고 마당으로 나와 오주일씨(26), 오성영씨(25), 조재현씨(27) 등 3명의 신입단원과 함께 섰다. 나와 신입 3인방은 한 손에 월도(곤봉에 초승달을 닮은 날을 단 무기)를 든 채 정립한 후 서로 인사를 나누고서 훈련을 시작했다. 송 사범이 신월상천(新月上天)하고 외치자 단원들은 이를 복창하고서 앞으로 나아가 오른 주먹으로 앞을 한번 치고 한걸음 뛰어 뒤를 돌아보며 월도를 휘둘렀다. 이어 송 사범이 맹호장조(猛虎張爪) 하고 외치자 월도를 휘두르며 오른편으로 세 번 돌아 물러나 제자리에 이르렀다. 모든 동작이 무술 훈련 교범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에 나온 그대로였다. 단원들의 능숙한 동작으로 18개의 동작이 이어졌지만, 송 사범의 눈에는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은 듯했다. 송 사범은 각 동작이 완료될 때마다 자세를 잡아주는 일을 반복했다. 옆에서 비슷하게 흉내 내기도 버거워하는 내가 안쓰러웠던지 송 사범은 나를 열외해 오성영 단원의 손에 맡겼다. 과제는 오관참장(五關斬將)이었다. 일시적으로 조조에게 몸을 맡겼던 관우가 유비에게 돌아가고자 적장 6명을 베고 5개 관문을 돌파했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이 동작은 오른편을 돌려치고 쓸어서 왼편을 한번 치고, 같은 동작을 반복하고서 앞을 향해 월도를 힘있게 내리치면 마무리된다. 적토마를 타고 청룡언월도를 휘두르며 천하를 호령하던 관운장의 기개를 내가 십 분의 일이라도 흉내 낼 수 있을까? 어릴 적 그 흔한 태권도 한번 배워보지 못한 내가 그 현란한 기교를 쫓아가려니 몸이 굳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보무당당한 등장무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이윽고 첫 번째 무예24기 공연 준비가 분주히 시작됐다. 단원들이 복장을 갖춰 입고 시범에 필요한 무기와 베기 시연에 사용될 볏단과 대나무 등을 챙겼다. 내게도 조선시대 무관 의상이 주어졌다. 파란 철릭을 떨쳐입고 머리에 상투와 붉은색 머리띠를 두르니 진짜 무관이 된 듯했다. 통상 두석린갑주나 두정갑주까지 갖춰 입어야 모든 준비가 끝나지만, 혹서 기라서 철릭만 입고 시범에 참여한다고 한다. 송승민 사범은 지난주까지 갑옷을 입고 시범을 했으니 기자님은 운이 좋은 것이라면서 된더위 속에 갑옷까지 입는다면 정말 한증막이 따로 없다며 혀를 내둘렀다. 한여름에 갑옷을 입고 전투를 벌이거나 훈련에 나섰을 옛 군인들의 고충이 느껴지는 듯했다. 오전 11시, 본격적인 시범이 시작됐다. 행진을 위해 신풍루를 나서면서 끊임없이 되뇌었다. 나는 장용영의 무사다.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 관광객까지 수십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선 무예인의 위용을 드러내야 하는 순간이었다. 보무당당하게 등장했다가 장내를 한 바퀴 돌고 퇴장하는 짧은 순간이었지만 한국 전통무예를 대표하는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윽고 무예의 향연이 펼쳐졌다. 활쏘기를 시작으로 맨손으로 적군을 제압하는 권법과 죽장창, 장창 시범이 관객의 눈길을 끌었다. 예도와 쌍검 등 현란한 검법과 1대 1 교전 시연에 관객들은 넋을 잃은 듯 시선을 고정했다. 베기 시연에서는 탄성이 절로 터져 나왔다. 최형국 사범을 비롯한 무사들의 검과 월도가 전광석화처럼 번쩍이자 대나무와 짚단이 산산조각났다. 외국인 관광객들은 연방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감탄하거나 셔터를 눌러대기 바빴다. 공연을 관람하던 미국인 조쉬씨(53여)는 한국의 전통무술 시범은 아름다우면서도 강력하다며 정조 집권기 조선의 국방력이 동양 어느 나라보다 강인함을 느꼈다고 감탄했다. ■산악구보에 검술훈련고된 무예인의 길 장내를 정리하니 점심때가 됐다. 어영부영 식사를 마치고, 오후 1시에 북군영을 다시 찾았다. 때마침 배국진 사범과 오주일, 오성영, 조재현 등 신입 3인방이 몸을 풀고 있었다. 배 사범은 적당히 소화를 시키셨으면 수련을 시작하자며 곧바로 솟을대문을 나섰다. 단원들을 따라간 곳은 다름 아닌 팔달산 입구였다. 간단히 몸을 풀고 서장대까지 단숨에 내달리기 시작했다. 평소 운동을 소홀히 한 상태에서 가파른 등산로를 뜀 걸음으로 오르려니 숨이 차서 몇 걸음도 못 가 퍼지고 말았다. 내가 한없이 뒤처지자 단원들은 산 중턱에서 휴식을 권했다. 배 사범의 독려와 단원들의 응원 속에 한 걸음씩 걷고 뛰다가 마침내 서장대에 올랐다. 탁 트인 시야로 수원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자 벅찬 성취감이 느껴졌다. 정조대왕이 군대를 지휘하고 산천을 굽어 살피던 그 자리였다. 배 사범은 왕이 친히 장용영 군사들을 훈련하고 천하를 호령하던 장소가 바로 이곳이라며 외적은 물론 조정 내부에서도 호시탐탐 왕좌를 위협하던 정적에게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했던 데에서 정조대왕의 호연지기를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산 후에는 최형국 사범과의 검술 훈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받을 수 있는 훈련은 검을 들고 전진과 후진을 반복하고 머리 위에서 아래로 포물선을 그리며 검을 내리치는 기본적인 검술 동작이었다. 가뜩이나 어설픈 몸짓에 같은 동작을 100번씩 반복하니 팔이 후들거리고 온몸이 쑤셨다. 검객이 되는 길은 멀고도 험해 보였다. ■스스로 무예 24기가 돼가는 단원들 오후 공연을 준비하고자 김도윤 단원(30한국전통마상무예학교 강사)과 관사로 이동했다. 수원문화재단 바로 옆에 자리한 기와집이었다. 마당 한편에 놓인 큼직한 플라스틱 통에는 베기 시범용 볏짚이 물에 잠겨 있었다. 그와 함께 손수레로 볏짚을 옮기면서 짧은 대화를 나눴다. 쳇바퀴 구르듯 반복되는 일상이 지겹지 않으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의 대답은 단순했다. 어차피 좋아서 시작한 일이란 것이다. 볏짚과 대나무를 준비하고 무기를 나르는 단순 반복 작업이지만, 전통 무예를 계승하려면 이마저도 가치 있는 일이었다. 오후 시연에는 오전보다 많은 국내외 관광객이 몰려들었다.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치고 포토타임이 진행되자 외국인 관광객들은 전통 의상을 입은 시범단과 함께 사진을 찍으며 수원에서의 추억을 만들어갔다. 그야말로 무예를 통한 국위선양의 현장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옷을 갈아입고 나서 최형국 사범을 만났다. 지난 십여년간 무예24기를 연구해온 그는 우리나라의 전통무예를 더 깊이 연구하고 계승할 수 있는 전수관 설립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에 달리해줄 말은 없었다. 무예인으로서 앞으로도 자리를 지켜달라는 말 밖에는. 21명의 단원들은 온몸을 던져 역사를 보존하고 있었고, 스스로 역사가 돼가고 있었다. 박성훈기자 pshoon@kyeonggi.com

[1일 현장체험] 경기도청 체납관리팀

지난 4월 경기도청에 새로운 부서가 신설됐다. 지자체의 어려워진 지방재정 여건을 타개하기 위해 지방세를 철저히 감시하는 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부서로 세원관리과가 새로이 경기도청에 둥지를 틀었다. 신설된 세원관리과는 과장 1명과 2개 팀 총 10명으로 구성돼 세원관리 강화 뿐 아니라 세무조사 및 체납징수에 관한 사항 등에 대한 업무를 수행하면서 경기도 세수 확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지방세를 장기간 체납하는 체납자들에 대한 관리를 기존의 세정과에서 분리, 담당하면서 숨어있는 세원 찾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날 기자가 담당하게 된 업무는 체납자들의 차량을 영치하고 견인 차량을 공매과정을 통해 민간에 매각, 이를 통해 체납자들의 체납액을 줄이면서 지방세 세수를 확보하는 일이었다. ■골칫거리 자동차세 체납 차량 영치 지난 6월 말 기준 경기도의 자동차세 체납액 규모는 전체 체납세액 중 20%를 상회하는 수준으로, 1천803억원 수준에 달하고 있다. 이같은 체납 차량 단속을 위해 이날 경기도청 세원관리과 체납관리팀은 시흥시청 세정과와 합동으로 시흥시 일대의 자동차세 체납 차량 점검에 나섰다. 시흥시는 지난해 경기도 전체 체납차량 단속 중 10%에 가까운 점유율을 보이는 등 도내에서 가장 높은 체납차량 처리 성과를 거둔 지역이었다. 이곳 시흥시청 세정과는 불법 차량 근절을 위해 체납차량의 처리를 적발에서 영치까지 원스톱으로 처리하면서 지방세 세수확보에 큰 공을 세우고 있다는 도청 관계자의 설명이 이어졌다. 이날 도청 및 시청 단속 공무원 10여명을 비롯해 기자가 함께 체납차량 단속을 실시한 곳은 시흥시청 인근의 주택단지였다. 체납차량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는 PDA를 이용해 주차돼 있는 차량의 차량번호를 일일이 검색해 해당 차량의 체납액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단속이 이뤄졌다. 인력이 직접 주차장 곳곳을 돌면서 차량번호를 하나하나 입력, 확인하는 방식으로 단속을 하다보니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도보 이동량도 워낙 많은 데다 더운 여름날씨에 마땅히 쉴 공간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끊임없는 이동을 통해 차량번호를 하나하나 확인하는 것은 건장한 남성이라도 상당한 체력이 요구됐다. 특히 실제 단속 공무원들의 경우 주로 차량이 이동하지 않는 시간대에 단속이 유리하다 보니 많은 차량이 주차돼있는 시간대인 야간에 집중적으로 단속을 실시해야 해서 충분한 휴식시간조차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도 상당히 어려움이 뒤따를 것으로 여겨졌다. 단속 공무원들의 말로는 체납자에 대한 차량 점유 과정에서 차량 소유주와 언쟁이 일어나는 것은 물론 때로는 격렬한 몸싸움도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 곧잘 이어졌다. 심한 경우에는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을 들으면서 차량 점유를 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강한 저항으로 인해 경찰의 보호 하에서야 간신히 차량 점유를 한다는 것이었다. 이날 아파트 단지에서 발견한 체납차량은 두대였다. 특히 한 차량은 고급 승용차임에도 PDA 검색을 통해 체납액을 살펴 보니 체납액이 3천800만원에 달하는 상태였다. 자동차세는 물론 취득세, 재산세 등 지방세 체납액이 이미 차량의 가격을 넘은 상황이었다. 바로 영치절차에 들어갔다. 차량 소유자에게 전화를 통해 단속사실을 전달하고 체납된 지방세의 납부 의지를 확인한 뒤 바로 차량 압류에 들어갔다. 차량소유주가 납세 의지를 보이지 않음에 따라 차량 영치서를 작성한 뒤 번호판을 뗐다. 그 뒤 바로 견인차량을 이용해 공매차량보관소로 이동이 이뤄졌다. 이같은 방식으로 공매차량보관소에 들어간 차량들은 일정기간 동안 체납자에게 납부 시한을 부여하고 이 기간동안 납부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공매처리를 통해 세금으로 납부처리되는 방식이었다. 이런 방식으로 지난해 경기도가 번호판을 영치한 차량의 수는 3만7천747대로, 이중 세금 납부를 통해 차량 번호판을 반환한 건수가 3만3천590건, 21억6천400여만원에 달했다. 올해 역시 지난달 말까지 1만5천989건의 번호판 영치를 통해 7억2천여만원의 징수를 달성, 숨겨진 세원을 발굴해냈다. 이밖에 지난해와 올 상반기까지 각각 2천653대, 1천263대의 미납세 차량의 공매처리를 통해 52억원, 18억원 상당의 지방세를 확보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같은 미납세자에 대한 차량 단속이 큰 효과를 가져오고 있다는 것을 몸으로 알게 됐다. ■ 견인된 멀쩡한 자동차들 공매 인기 이날 기자가 방문한 날은 시흥시가 체납차량에 대한 공매절차를 진행하고 있는 날이었다. 차량 단속을 실시한 뒤에는 시흥시 시설관리공단 인근에 위치한 공매차량보관소로 이동해 실제 공매가 진행되는 모습을 지켜봤다. 차량보관소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눈을 의심케 했다. 왠만한 중고차시장을 월등히 능가하는 수준의 많은 차량이 전시(?)돼 있었다. 소형차량부터 고급세단 차량, 심지어 건설장비까지 체납으로 인해 이곳 공매차량보관소에 보관되고 있었다. 이날은 이번 회차 공매 입찰이 마감되는 날이어서 차를 매입하려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었다. 이곳 공매차량보관소에서는 불법적으로 운행되는 대포차나 세금이 체납된 차량이 견인되서 입고되면 차량정비사들의 검증을 거쳐 공매물품으로 등록, 차량을 판매해 세금으로 환수하는 절차로 일이 진행되고 있었다. 전국의 공매차량보관소가 공매를 실시할 경우에는 인터넷 공매홈페이지(http://www.automart.co.kr)를 통해 공고를 내고 각 차량별 정보를 게재해 차량 구입을 원하는 사람들이 실시간으로 확인, 구매의사를 판단할 수 있도록 돼있었다. 이번 공고 기간에 판매될 예정인 차량의 수는 150대로, 체납에 의한 점유차량은 물론 상당수의 대포차도 섞여 있었다. 차 소유주와 실제 차를 운행하는 사람이 다르다는 의미의 대포차는 각종 범죄는 물론 도로상에서의 난폭운전이나 뺑소니 사고 등을 유발한다는 점에서 강한 제재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곳 단속공무원들도 대포차량에 대해 심각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장귀석 경기도 세원관리과 조사관은 대포차는 흔히들 과속, 신호 등을 무시해 사고를 유발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다른 사람의 명의의 차량을 운행하면서 범죄에 악용되기도 하고 명의를 빌려줬다가 차량 소유주로 등록된 사람이 무수한 세금, 과징금 폭탄을 맞게되는 경우도 빈번합니다라며 이같은 대포차량 단속을 통해 차량 소유자의 명의를 해제해 불법적으로 명의를 빼앗기거나 도용당한 사람들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재기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어요라고 설명했다. 기자는 이곳 공매차량보관소에서 공매에 들어가야 하는 차량의 점검과 차량을 구입하고자 하는 구매희망자들에게 차량을 안내하는 역할을 수행하면서 이날의 일정을 모두 마쳤다. 이날 체험을 통해 그동안 말로만 들어봤던 불법 차량 및 체납 차량 단속이 우리 사회에서 음성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범죄 예방을 차단하고 조세의 의무를 거부하는 사람들에 대한 행정처분을 통해 세금 징수로 이어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경기도청 체납관리팀과 같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성적인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을 통해 우리 사회의 안전을 지켜내고 모두가 공평한 세상이 되어가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정진욱기자 panic82@kyeonggi.com 사진=전형민 기자 hmjeon@kyeonggi.com

[1일 현장체험] 도경 성매매 단속반

102동 225호 수원의 한 오피스텔 안으로 단속반장이 들어간 지 10분. 단속반원들의 스마트폰에 단체 카톡 알림이 울렸다. 건물 주변을 서성이던 반원들이 급히 뛰기 시작했다. 어둑한 2층 계단 통로에서 반장은 한 남성에게 수갑을 채우고 휴대전화 기록을 재빨리 뒤졌다. 225호, 손님이 올라가니 준비하라 검거 직전 전송한 남성의 문자가 확인됐다. 같은 시각 반원들이 225호 문을 열었다. 붉은 등이 켜진 방 안에 단속반이 들어서자 슬립차림의 여자 한 명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뒷걸음질쳤다. 짙게 화장했지만 어린 티를 벗지 못한 여자의 뒤편에는 쓰지 않은 콘돔 네댓 개가 흩어져 있었다. 이 남성은 오피스텔 3개 호실에서 성매매를 알선한 혐의로 단속반에 검거됐다. 적발 시간은 오후 4시30분. 성매매는 벌건 대낮에도 버젓이 이뤄지고 있었다. 숨 가쁘게 돌아가는 성매매 단속현장에 경기지방경찰청 생활질서계 일일 단속반원으로 출동했다. ■ 경기경찰청 생활지도계, 단속 장소 물색 분주 후덥지근한 기운이 가득한 7월 첫째 주 오후, 경기지방경찰청 생활질서계를 찾았다. 이제 막 출근한 생활질서계 소속 단속반 직원들이 저마다 책상에 앉아 일정을 살펴보느라 분주했다. 한 손에는 펜, 다른 손에는 스마트폰을 쥔 채 데스크톱 모니터와 노트를 번갈아 보던 단속반장 김완철 경위가 눈인사를 건넸지만 전화가 계속해서 울리는 통에 이야기를 나눌 겨를이 없었다. 김 반장을 대신해 허성희 계장이 단속 장소를 정하느라 한창 바쁠 때라고 말하며 단속반의 일과를 설명했다. 생질계 단속반은 김 반장을 포함해 4명으로 오후 2시에 출근해 3~4시부터 새벽 2~3시까지 오후 및 심야단속을 실시한다. 대형 성매매업소부터 사행성 게임장과 학교주변 유해업소 등의 불법행위를 단속하고 업주를 검거하는 게 단속반의 일이다. 경기도에 등록된 유흥주점만 7천개가 넘어요. 여기에 단란주점, 노래방처럼 성매매가 이뤄질 수 있는 업소까지 더하면 1만5천개가 더 되죠. 문제는 마사지업소나 오피스텔처럼 등록도 하지 않고 성매매를 하는 곳이 얼마나 되는지는 현황조차 파악이 안 된다는 거에요. 그러니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수밖에요 허 계장이 A4용지 5장 분량의 자료를 건넸다. 올 상반기 단속현황이었다. 단속반은 각 경찰서에서 지원되는 3명 안팎의 경찰과 올 들어 유해업소 및 성매매 알선업소에 대해 집중단속을 실시했다. 100평이 넘는 성매매업소 수십곳과 학교주변 유해업소 100여곳 등 단속업소만 644곳, 인원은 974명에 달했다. 집중단속이 이뤄지면서 15곳이 철거됐고, 28곳이 철거될 예정으로 8명은 구속됐다. 성매매 알선자로는 늙수그레한 중년남성의 몽타주가 자연스레 그려졌지만 구속된 업주는 20대 청년과 60대 할머니, 40대 부부까지 천차만별이었다. 문득, 어두컴컴한 밤에 일어날법한 성매매를 낮에 단속하는 게 효과가 있을까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성매매가 밤에만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건 큰 오산이에요. 오전, 오후, 심야로 조까지 나눠 성매매 예약을 받는데 무슨 말씀. 이제 출동합시다 통화를 마친 김 반장이 보면 알게 될 것이라고 강조하며 벌떡 일어섰다. ■ 적발된 여성 부들부들 떨며 진술서 작성 김 반장을 비롯해 반원인 김인철 경사, 지설희 경장과 함께 수원의 한 대형 오피스텔로 향했다. 김 반장이 성매매 손님으로 가장해 업주를 만나러 오피스텔로 들어간 사이 김 경사와 지 경장은 건물 주변을 돌아다니며 동태를 살폈다. 유일한 여성 반원인 지 경장은 지난 2월 단속반에 투입됐다. 성매매 여성의 진술과정 등을 보다 원활히 진행하기 위해서다. 지 경장은 간혹 성관계 현장을 적발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증거확보를 위해 사진 촬영을 해야한다며 나중에 진술을 번복하는 일이 있기 때문으로 이럴 때는 여자가 사진을 찍고 진술을 받아야 성매매 여성의 협조가 보다 잘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지 경장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단속반 단체 카톡창에 메시지가 전달됐다. 김 반장이 보낸 문자로, 동과 호수가 별도의 설명 없이 카톡창에 잇따라 나타났다. 업주가 김 반장에게 돈을 건네받고 성매매가 이뤄지는 방의 번호와 비밀번호를 알려주면서 성매매 알선혐의가 입증된 것이다. 지 경장을 따라 해당 오피스텔 방으로 들어갔다. 한 여성이 슬립 위로 남성용 와이셔츠를 걸친 채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2인용 소파에 앉아있었고 앞서 도착한 김 경사는 이미 방 안을 살펴보고 있었다. 오피스텔 내부는 더블침대와 화장대, 2인용 소파와 탁자, TV 등 가구 몇 개만으로 단출했다. 주황과 분홍색을 내뿜는 기다란 조명등과 탁자 위에 흩어진 콘돔, 침대에 깔려 있는 대형 수건이 성매매가 이뤄지는 장소임을 알렸다. 김 경사가 여성의 휴대전화 목록과 문자를 살펴보며 질문을 시작했다. 올해 스물다섯이 된 이 여성은 인터넷으로 알게 돼 어제 면접을 봤고 오늘 처음으로 일을 시작했다며 업주가 손님이 오면 같이 샤워한 후 성관계를 하라고 시켰다고 진술했다. 5분여 간 대략적인 질문을 마친 김 경사가 밖으로 나갔고 지 경장이 여성의 신분증을 받아들고 옆에 앉아 진술서를 작성하도록 했다. 업주의 성매매 알선 혐의를 입증하는 내용이었다. 진술서를 작성하는 여성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지 경장은 성매매를 한 건 아니니 경찰서에 데려가지 않겠다고 여성을 안심시킨 뒤 다시는 이런 짓 하지마라며 언니처럼 조언했다. ■ 업주를 잡아라! 빗줄기 속 현관문 사이에 두고 대치 오피스텔 2층, 계단 옆 어두컴컴한 통로에는 업주(44)가 수갑을 찬 채 주저앉아 있었고 그 옆으로 김 반장이 서서 업주의 휴대전화 목록을 살펴보고 있었다. 통상 오피스텔 성매매의 경우 업주가 네댓 개의 방을 임대해 영업을 벌이는 가운데, 이곳에서만 3개 방에서 성매매가 이뤄지는 사실이 휴대전화 기록 등을 통해 확인됐음에도 업주가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 상황이었다. 해당 방으로 확인된 316호에서 업주가 알려준 비밀번호를 수차례 눌러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다. 창 없이 뻥 뚫린 복도 안으로 거센 바람이 불면서 빗물이 튀어 들어왔다. 방 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졌지만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두드려도 열어주지 않았다. 관할서인 수원남부경찰서 생활안전과 소속 박정율 경장과 박성호 순경까지 투입됐지만 속수무책이었다. 가짜 비밀번호로 낭패를 본 김 경사가 2층 계단통로로 내려가 업주 앞에 무릎을 굽힌 채 눈높이를 맞췄다. 어둑한 통로는 마치 취조실 같았다. 김 경사는 업주의 눈을 마주 보며 시간 허비하지 말자. 비밀번호가 뭐냐고 나직하지만 강한 어조로 물었다. 19316 몸이 안 좋다, 이미 말했다 등 횡설수설하던 업주가 포기한 듯 고개를 떨어뜨린 채 말했다. 김 경사와 지 경장, 문을 지키고 섰던 박 경장과 박 순경 모두 방으로 들어갔고 방 안에 있던 성매매 여성으로부터 진술서를 받았다. 굵게 쏟아지던 장대비가 그치고 지붕 아래로 빗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수갑찬 손을 티셔츠 안으로 숨긴 업주가 박 경장이 몰고 온 차를 타고 수원남부서로 향했다. 김 반장과 나머지 단속반원도 봉고차에 올라탔다. 김 반장이 업주에게서 입수한 휴대전화를 내밀며 전화번호부 목록을 보여줬다. 경찰 1, 경찰 2, 경찰 냄새, 남부질서계 등 경찰과 관련한 전화번호 수십개가 입력돼 있었다. 김 반장의 전화번호를 누르자 경기지방검찰청이라는 잘못된 명칭이 떴다. 이런 번호는 성매매 업주끼리 공유하고 전화가 오면 아예 받지 않는다고 김 반장은 설명했다. 오피스텔 성매매 업주는 단속반 얼굴을 아는 경우도 있고 경계가 워낙 삼엄해 단속이 어려워요. 경찰이라는 낌새가 조금만 느껴져도 업주가 아예 만나주지를 않으니까요. 예전에는 집창촌을 중심으로 성매매가 이뤄졌는데 이제는 성매매가 더욱 음성화됐죠. 오피스텔에서 성매매가 이뤄진다는 심증은 충분히 있지만 업주를 검거하려면 물증을 잡아야 하니 쉽지가 않습니다 김 반장은 왼쪽 팔꿈치 부근에는 커다란 반창고가 붙어 있었다. 며칠전 단속하다가 다친 것으로, 단속 과정에서 부상을 입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성 관련 범죄자는 흉악범이 아니라는 생각이 만연하다 보니 범죄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 같다는 김 경사의 말에 김 반장은 그래도 별수 있나, 성매매가 근절될 때까지 단속할 수밖에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사건처리를 위해 수원남부서로 향한 단속반은 이날 밤에도 경기지역 사행성 게임장을 누비며 심야단속을 이어갔다. 성보경기자 boccum@kyeonggi.com 사진=추상철기자 scchoo@kyeonggi.com

[1일 현장체험] 화성 고온리 어장서 바지락 캐기

지난 22일 바다와 더불어 살아가는 어민들의 삶을 몸소 체험하기 위해 바지락 채취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화성시 고온리 일대 어장을 찾았다. 고온리 일대 어민 70여명과 함께 어선을 타고 나간 바지락 어장에서의 3시간은 치열함 그 자체였다. 어민들은 바닷물이 다시 차오르기까지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잠깐 휴식은 물론 잡담 한마디 조차 없이 바지락 채취 작업에 몰두했다. 치열한 어민들의 모습을 보며 농땡이를 칠 수 없었던 기자 역시 갯벌 이곳저곳을 누비며 열심히 바지락을 캔 탓에 체험을 마친 뒤 며칠간 허벅지에 뻐근함을 느껴야 했다. 짭쪼롬한 바다 내음 가득한 치열한 삶의 현장을 소개한다. ▲ 만선의 부푼 꿈을 안고 바지락 어장을 향해 출발 지난 22일 오전 9시30분께 바지락 채취 1일 체험을 위해 경기남부수협 직원 2명과 함께 화성시 고온리로 향하는 차에 몸을 실었다. 1시간 여를 달려 고온리 선착장에 도착하자 고온리에서 나고 자란 바다 사나이 김종열 경기남부수협 지도과 과장이 준비한 밀집모자와 땀을 닦기 위한 수건, 썬크림을 건넸다. 모자와 수건을 건네 받은 뒤 썬크림은 됐다고 사양하자 김 과장은 아휴, 박기자 님 여기하고 똑같다고 생각하시면 안돼요. 갯벌 바닥에 반사된 해가 얼마나 뜨거운데요. 얼굴 새까맣게 다 탑니다. 사양말고 빨리 듬뿍 바르세요라며 은근히 겁을 준다. 그제서야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을 되새기며 얼굴에 썬크림을 덕지덕지 발랐다. 선착장에서 탁트인 바다 바람을 맞으며 물때가 오기를 기다린지 20여분이 지나자 썬캡과 스카프, 긴 고무장화로 로 무장한 어민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냈다. 드디어 바지락 채취 어장을 위해 출발. ▲ 꿀맛같은 선상위의 식사 예닐곱대 정도의 어선에 나눠탄 뒤 배가 출발하자 상쾌한 바닷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이날 기자와 함께 한 배에 탄 어민들은 평균 연령 60대가 훌쩍 넘는 지긋한 연령의 아낙들이 대부분. 군대에 간 손자를 둔 80대 할머니도 있었다. 아낙들 대부분이 항해하는 동안 머리를 대고 누워 쪽잠을 청하는 모습을 보니 만만치 않은 삶의 무게가 느껴진다. 그렇게 20여분을 달리자 배가 바다 한 가운데 멈춰섰다. 물이 빠져 갯벌이 바닥을 드러내기를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자 본격적인 채취 작업을 위해 배를 든든하게 채워야 할 선상위에 식사 시간이다. 시골 냄새 물씬 풍기는 묵은 김치와 숭어조림, 멸치, 꼴뚜기 등 해산물로 만든 밑반찬들이 풍성하게 차려졌다. 여기에 라면과 소주 한잔까지 곁들여지니 그야말로 진수성찬이 아닐 수 없다. 아침도 거르고 온 기자가 밥과 라면을 뚝딱 비워대자 아주머니들은 배위에서 먹으니까 더 맛있죠?라고 밥을 듬뿍 더 얹어준다. 역시 넉넉한 시골 인심이다. ▲ 바지락 채취는 물때와의 싸움 식사를 마친 뒤 어민들과 잠깐의 대화를 나누며 휴식을 취하다보니 어느새 그 많던 바다물이 다 빠지고 갯벌 바닥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드디어 채취작업 시작. 본격적인 바지락 채취가 시작되자 여유로워 보이던 어민들의 표정은 금세 진지해지기 시작했다. 다시 바닷물이 차오르기까지 고작해야 3시간 밖에 없는 만큼 바지락을 하나라도 더 캐야하기 때문이라는 문전호 고온리 어촌계장의 설명이다. 바지락 채취는 물때와의 싸움이라는 말을 들으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어민들에게는 치열한 삶의 현장인 셈이다. 결국, 김종구 수협 지도과 과장으로부터 설명을 들으며 본격적인 바지락 채취를 시작했다. 원리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호미로 갯벌을 파 표면 5~10㎝ 가량에 사는 바지락을 주워담으면 되는 작업.어민들이 캐는 것 만큼 바지락을 채취해 집에 계신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려야겠다는 야무진 일념으로 작업에 착수했다. ▲ 만만치 않은 바지락 채취 작업 요령은 단순했지만 역시 말만큼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갯벌을 헤집어놓는데는 뒤지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바지락 채취량에서 엄청난 차이를 보였다. 콩알만한 크기의 바지락 숨구멍이 있는 곳을 집중 공략하는게 요령이라는 설명을 들으며 다시 열심히 갯벌을 파헤쳐 봤지만 생각만큼 많은 바지락을 채취하기란 쉽지 않았다. 반면 어민들은 반면 베테랑 어민들은 능숙한 손동작으로 갯벌을 긁어낸 뒤 바지락을 바닷물에 띄워 퍼담아내고 있었다. 작업전에 했던 야무진 결심이 깨져버리는 순간이었다. 갯벌 이곳저곳을 오가며 쪼그려 앉아 갯벌을 파다보니 어느덧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어민들의 채취 방법 흉내내기를 반복하는 동안 요령을 터득해서인지 채취되는 바지락 양은 처음보다 훨씬 늘었지만 허벅지와 허리에 뻐근함이 느껴지면서 슬슬 싫증이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민들은 작업 초반의 진지함을 잃지 않은 채 채취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잠깐의 휴식은 물론 일체의 잡담조차 허용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너무나도 치열한 어민들의 모습에 농땡이를 칠 수 없다고 느끼며 작업을 계속하다보니 아휴, 비교적 널널한 체험도 많은데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머리속을 스쳤다. ▲ 바지락이 식탁위에 오르기까지 3시간에 걸친 지루하고 고된 작업이 끝나자 저 멀리서 바닷물이 밀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이제는 작업을 마무리할 시간. 상품성이 없는 작은 바지락을 골라내기 위한 선별 작업을 마무리한 뒤 배에 올랐다. 이날 채취한 바지락 양은 어민 1명 평균 60kg 가량. 반면, 요령을 피우는 일 없이 최선을 다한 기자가 채취한 양은 10kg에 불과했다.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며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있던 찰나 어휴, 처음치고는 정말 많이 캤는데요?, 진짜 열심히 했나봐요라며 김종열 과장이 칭찬인지 위로인지 모를 말을 건넸다. 돌아오는 배 안에서 문전호 고온리 어촌계장으로부터 어민들의 고충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문 계장은 최근 해양 생태계 변화로 바지락 양이 갈수록 줄고 있다며 걱정을 털어놨다. 불과 3~5년전까지만 해도 바지락 채취양이 현재의 두배 가량에 달했다는 설명을 들으니 어민들의 고충이 얼마나 클지 짐작이 갔다. 또 바지락 풍년이 연이었던 경기 지역 9개 어촌계 중 현재까지도 정상 조업이 진행되고 있는 곳은 고온리가 유일하다는 말을 들으니 개발로 인한 환경 변화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느낄 수 있었다. 3시간에 걸친 작업을 마친 뒤 몸은 짠 바다내음, 땀, 피로감으로 잔뜩 무거워져 있었지만 손에는 직접 채취한 바지락 자루가 들려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바지락 자루를 어머니께 건네니 그렇게 기뻐하실 수가 없다. 모처럼만에 효자 노릇을 한 것 같아 뿌듯함이 밀려온다. 1일간의 해감(바지락을 바닷물에 담가 갯벌 등 불순물을 토해내게 하는 과정)을 거쳐 삭탁 위에 올라온 바지락의 맛은 그야말로 기가 막혔다. 시원한 바지락 국물을 마시며 해산물이 우리 식탁에 오르기까지 어민들이 얼마나 많은 땀방울을 흘려야하는지를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됐다. 박민수기자 kiryang@kyeonggi.com

[1일 현장체험]고고학자_ ‘북한산성 행궁지’ 발굴현장을 가다

5살 딸내미의 요즘 꿈은 인어공주가 되는 거다. 인어공주처럼 곱디고운 목소리를 흉내내며 노래 부르기에 여념없다. 불과 몇달 전까지만 해도 귤, 초콜릿, 삼겹살이 되겠다고 한 것에 비해면 장족의 발전을 한 것이다. 엄마 입장에선 귀엽기도 하고 한편으론 답답하기도 하다. 그 답답함은 매일 남다른 꿈을 꾸는 딸내미가 도대체 커서 뭐가 될까? 하는 걱정에서 온 것이다. 솔직히 대한민국 엄마라면 사자 들어간 직업 싫어할 사람 없다. 나도 그렇다. 좋은 대학 나와 좋은 직업, 돈 많이 버는 직업이면 최고 아닌가 생각한다. 허나, 이건 어디까지 딸가진 부모로서 딸내미가 편하게 살기를 바라는 효율성에 입각한 편협된 생각이다. 같은 여자로선 딸아이가 죽을 때까지 꿈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계모 아니냐고 비난할 사람도 있겠지만 이는 딸내미가 꿈꾸는 사람으로 살았으면 하는 반어법이다. 왜냐, 기자 엄마도 매일 꿈을 꾸기 때문이다.(지면상으로는 공개할 수 없는 꿈이지만) 딸내미가 그저 막연한 미래만 보고 불안해 하는 미련한 사람이 아닌, 유물을 발굴하느라 땅만 뚫어져라 바라보는 고고학자처럼 고요하면서도 의미있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심정에서 직업체험에 나섰다. 도전 직업은 바로 유물과 유적을 통해 옛 인류의 생활, 문화를 연구하는 고고학자. 주된 일이 고고(考古)하는 것이니 마냥 고고(孤高)할 것이라 생각했다.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내가 생각했던 고고와는 거리가 먼 고고(孤苦, 외롭고 가난하다)였다. 그 고고한 체험이야기를 지금부터 공개한다. ■ 숙종 때 최대 프로젝트 북한산성 행궁지, 내ㆍ외전 등 124칸1915년 을묘년 산사태로 파괴 지난 6월 5일 오전, 북한산의 백운대, 보현봉, 문수봉, 나월봉, 의상봉, 원효봉 등 여러 봉우리를 연결해 쌓은 고양 북한산성의 행궁지(사적 제479호) 유물발굴현장을 찾았다. 숙종 37년(1711) 때 지어진 북한산성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연이은 외세의 침입을 겪으면서 강을 건너지 않고 도달할 수 있는 행궁의 필요성을 절감한 숙종이 강한 의지를 갖고 완성한 행궁이다. 왕이 도성 밖으로 행차할 때 머물던 궁궐이 바로 행궁이니 얼마나 크고, 화려했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하며 발굴현장으로 향했다. 북한산성문화사업단 박현욱 연구원이 함께 했다. 현장까지 가려면 무려 1시간을 걸어야 했다. 예상하지 못했던 등산은 솔직히 부담스러운 거리였다. 푸르른 6월 북한산의 맨얼굴과 조우할 수 있는 특별한 시간임에도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멀었어요? 아이고 다리야 소리가 절로 나왔다. 우리 조사원들은 매일 오르락내리락 하는데 벌써 엄살 부리면 안되는데라며 웃는 박현욱 연구원의 감칠맛 나는 북한산성 이야기가 그나마 등산의 힘겨움을 덜어주었다. 행궁지는 4천130평 규모의 경사진 대지를 3단으로 조성해 주요건물인 내전과 외전을 중심으로 배치하고 그 주변에 부속건물과 수라간, 측소, 삼문 등을 두었습니다. 외곽에는 담장을 둘렀고 건물 전체의 규모는 124칸으로 그 가운데 임금과 왕실 일가족이 생활하는 침전인 내전이 28칸, 왕이 신하들과 집무를 보는 정전인 외전이 28칸입니다. 박현욱 연구원의 입을 통해 숙종의 최대 역점사업(?)에 걸맞는 북한산성 행궁의 으리으리한 규모가 공개되는 순간 그런데 왜, 어떻게 없어진 거죠?라는 질문을 던졌다. 1912년 영국 성공회가 대여해 피정지로 사용하던 행궁은 1915년 을묘년 북한산 지역에 내린 집중호우와 산사태로 소실됐습니다. 무려 34시간 동안 폭우가 쏟아졌다고 하니. 거기다 일제가 행궁 건축물을 헐어가 북한산성은 폐허나 다름없이 변해간 거죠. 1925년 산사태로 소실돼 터만 남게 된 북한산성 행궁지를 경기문화재단 경기문화재연구원이 지난 2011년부터 발굴하고 있는 현장은 앙상한 뼈대만 남은 미이라를 연상케했다. 내ㆍ외전을 합쳐 124칸에 달해 꽤 웅장했다는 느낌은 박현욱 연구원이 준비한 자료사진을 통해서만 엿볼 수 있었다. 땅 속에 묻힌 북한산성 행궁의 모습 드러내기 위해 발굴현장에는 발굴조사단장(조유전), 책임조사원(김성태), 조사원(박현욱), 준조사원 2명, 보조원 2명과 작업인부 5~10명이 팀을 이뤄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 땅에서 파낸 파편들로 잃어버린 시간 재구성고도의 집중력과 인내심 필요 북한산성 행궁지 유물발굴 현장은 2013년 내전지 1차 발굴을 마치고 2차로 외전지에 대한 발굴이 한창이었다. 역사나 고고학 전공자는 아니지만 아줌마기자 특유의 근성을 발휘해 일손을 보태는 데 의미를 두기로 했다. 박현욱 연구원은 붓과 트롤(발굴용 꽃삽)을 건네며 유물 발굴이 힘든 작업이라고 살짝 겁을 주었다. 국내에는 3천여 명의 고고학자들이 활동 중인데 보통 현장을 책임지는 이는 주로 10년 이상된 고고학 전공 또는 경력의 연구원입니다. 이 단계까지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며 현장에서의 풍부한 경험이 중요해요. 그리고 유물발굴은 인내와 참을성을 기반으로 하는 일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기자는 트롤을 잡고 왕이 집무를 보는 공적 공간인 외전지에서 발견된 유물 주변을 조심스럽게 파기 시작했다. 300년 된 북한산성의 과거를 들춰내는 일은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했다. 처음 하는 트롤작업에 어깨와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가 금새 몸이 굳어져버렸다. 옆에 있던 차동호 준조사원의 도움으로 아주 천천히 300여 년 전의 북한산성 행궁과 만날 수 있었다. 발굴은 그냥 외롭고 단순한 작업의 연속이었다. 파내고, 긁어내고, 유물노출을 위한 붓질을 하고 단순반복을 이어가다보니 시뮬레이션처럼 300여 년 전 숙종이 신하들과 함께 행궁지를 거니는 모습이 그려졌다. 땅에서 파낸 파편들로 잃어버린 시간을 재구성하는 고고학자의 일은 고행이었다. 그래서 고고학자들 사이에서는 3D 직업(Dirty, Difficult, Dangerous)인데 거기다 거리(Distance)까지 합쳐져 4D 직종이 바로 고고학자의 실체라며 자조 섞인 말도 한다고 했다. 차동호 준조사원은 기자의 반복되는 트롤작업과 붓질을 감시(?)하고 도우며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를 보고 나도 고고학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 누구나 한번쯤 있을 겁니다. 저도 그랬으니깐요. 우리나라의 경우 경제 개발에 모든 가치를 두고 문화유산을 마치 개발의 걸림돌로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유적은 다 중요합니다. 역사에 묻힌 문화유산을 발견하고,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찾는 과정은 아마 고고학자만이 느낄 수 있는 희열일 겁니다. 저는 땅을 팔 때마다 행복지만 그 행복감과 희열을 맛보기 위해선 희생해야 할 것이 참 많습니다. 고고학은 희소성을 크나 특이하지만 힘든 직업이라는 인식 때문에 기피하는 경향이 많아요. 저도 발굴 현장에서 궂은 일을 하며 선배들의 호통 속에 발굴 기법을 익혔어요. 차동호 준조사원을 비롯한 연구원들의 열정과 노력이 안겨준 성과는 컸다. 2013년 북한산성 행궁지 1차 발굴된 내전지는 가운데 마루와 좌우온돌방을 갖춘 28칸 규모이며, 그 중심축에는 어도와 대문, 외전지로 내려가는 계단이 좌우행각으로 둘러싸여 중심영역을 형성하고 있고 이들 중심건물들은 그 재료와 축조방법에서 당시 성숙한 건축기술을 보여주고 있으며, 각기 다른 방식으로 시설한 구들이 남아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오직 인내와 끈기로 얻은 성과였다. 단순 작업의 지겨움과 발견의 희열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는 숙명을 지닌 고고학자. 그들은 분명 과거를 통해 현재와 미래를 여는 사람들이다. 숙종의 꿈이기도 했던 북한산성은 1915년 집중호우와 산사태로 사라졌지만 2014년 여름, 경기문화재연구원(원장 조유전) 연구원들에 의해 부활하고 있다. 북한산성 행궁지에 대한 발굴조사는 건물지의 정확한 위치와 규모를 확인하게 되며 앞으로 북한산성 행궁지에 대한 정비와 복원 기초자료 확보 및 북한산성의 역사 문화적 가치를 높이는데 목적이 있다. 비록 짧은 시간동안의 1일 체험이었지만 고고학자들의 고단함과 역사적 사명감을 같이 할 수 있어서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강현숙기자 mom1209@kyeonggi.com 사진_김시범기자 sbkim@kyeonggi.com ■북한산성(사적제162호) 북한산성은 북한산의 여러 봉우리를 연결해 쌓은 산성으로, 규모는 길이 12.7㎞이며 내부 면적은 6.2㎢(약 188만 평)에 달한다. 축성 이후 한 번도 전쟁을 치르지 않는 상태로 지금에 이르고 있다. 북한산성을 축조하자는 논의는 일찍부터 있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한양 도성의 배후에 산성을 쌓아 국난에 대비하자는 의견이 제기되었지만 실제 축성은 1711년(숙종 37)에야 이루어졌다. 이렇듯 긴 논의 과정과는 달리 성벽을 쌓는 데에는 단 6개월 밖에 걸리지 않아서 당시 축성기술의 수준을 엿볼 수 있다. 성벽은 평지, 산지, 봉우리 등 지형에 따라 높이를 달리하여 쌓았다. 계곡부는 온전한 높이로 쌓았고, 지형이 가파른 곳은 1/2, 혹은 1/4만 쌓거나 여정만 올린 곳도 있다. 봉우리 정상부는 성벽을 아예 쌓지 않았는데 그 길이는 4.3㎞이다. 성벽에는 주 출입시설로 대문 6곳, 보조출입시설로 암문 8곳, 수문 2곳을 두었고, 성벽 바로 옆에는 병사들이 머무는 초소인 성랑 143곳이 있었다. 성 내부 시설로는 임금인 머무는 행궁, 북한산성의 수비를 맡았던 삼군문(훈련도감ㆍ금위영ㆍ어영청)의 주둔부대인 유영(留營) 3곳, 이들 유영의 군사지휘소인 장대 3곳을 두었다. 또한 군량을 비축하였던 창고 7곳, 승병이 주둔하였던 승영사찰(僧營寺刹) 13곳이 분산ㆍ배치되어 있었다. 성벽의 높이를 지형에 따라 달리 한 점, 성문의 여장을 한 매의 돌로 만든 점, 옹성과 포루를 설치하지 않는 점, 이중성으로 축성한 점 등은 다른 산성과 구별되는 북한산성의 특징이다. 또한 왕실 족보를 보관하는 보각(譜閣)이 있었다. 자료제공: 경기문화재단 북한산성문화사업팀

[1일 현장체험]경기도여성비전센터 ‘부부심리상담사’

매년 5월21일은 부부의 날이다. 가정의 달 5월에 둘(2)이 하나(1)가 된다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부부는 가정을 이루는 근간이고, 이는 곧 사회와 국가를 이루는 근간임을 뜻하지만 최근에는 혼전 동거, 독신주의, 황혼 이혼 등이 증가하면서 부부라는 가치가 많이 퇴색된 것 같다. 또 요즘에는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결혼해 사는 부부도 적지 않다고 한다. 사실 이런 글을 쓰는 나 역시 아직 결혼을 하지 못했다. 결혼에 대한 호기심과 부부의 날을 맞아 부부 심리상담사를 체험해보고자 나섰다. 사실 평소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 드라마의 열렬한 팬으로서, 실제 저런 사연이 있을까? 저런 사연을 접하면 어떻게 대처하고 도와줘야 하는 건가? 라는 궁금증이 가장 컸다. 마침 최근 경기도여성비전센터에 가족 전문상담소인 가족애(愛)돌봄나눔터가 개소했다는 소식을 접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곧장 평소 친분이 있던 김양희 경기도여성비전센터 소장님께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했다. ▲부부는 싸움 내용이 아닌 싸움 방식 때문에 이혼한다 지난 20일 수원시 팔달구에 있는 경기도여성비전센터를 찾았다. 센터는 지난해 가족애(愛)돌봄나눔터를 개소해 운영하고 있으며, 올해부터는 상명대학교 상명가족아동상담교육센터에 위탁해 보다 전문적인 상담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가족애돌봄나눔터는 가족상담실, 놀이치료실, 집단상담실 등을 갖추고 전문상담사들이 주중뿐 아니라 주말까지 갈등을 겪고 있는 부부 및 이혼위기 부부를 위한 전문 상담과 의사소통 및 부부갈등 치유 집단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고 있다. 이곳은 경기도민이면 누구나 무료로 상담을 받을 수 있어 최근 부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날 직업체험을 도와주신, 직업멘토가 되어주신 선생님은 상명가족아동상담교육센터 소속으로 가족애돌봄나눔터 상담실장을 역임하고 있는 15년 경력의 베테랑 상담사 방경미 선생님이다. 방 실장님은 먼저 상담사로서 알아야 할 몇 가지를 알려 주셨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경청과 공감이라고 말해주었다. 상담하기 위해 찾아온 부부들의 이야기를 잘 듣고 공감해 줘야 그들이 자신의 속 이야기를 꺼내놓는다는 것이다. 심리치료는 기본적으로 6회 프로그램으로 진행되는데 1회차에는 대부분 이야기를 들어주는 시간을 갖는 것도 같은 이유라고 설명해 줬다. 가족애돌봄나눔터는 앞으로 약 5개월가량 예약 일정이 꽉 잡혀 있다고 한다. 내가 방 실장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옆 방에서는 상담이 이뤄지고 있었는데, 남편과 아내가 큰 소리를 지르며 살벌하게 싸우고 있었다. 옆방을 걱정하는 나를 보고 방 실장님은 저렇게 속에 있는 이야기를 다 털어놔야 심리치료가 가능하다며 잘(?)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부부가 싸우는 이유는 무엇일까. 방 실장님은 남녀가 말싸움하게 되면 흥분상태가 되고 화가 치솟는 일명 감정의 홍수상태가 되면 사람의 뇌가 파충류의 뇌가 되어 공격과 도망이라는 2가지 패턴이 나타나게 돼 참을 수 없어 큰 싸움이 되거나 집을 나가버리게 된다고 설명해 줬다. 실제로 싸우는 남녀를 보면 한 명은 다음에 이야기하자며 도망가려고 하고 또 다른 한 명은 말하다 말고 어디 가냐고 따지는 모습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또 방 실장님은 대부분의 부부가 싸움 내용이 아닌 싸움 방식 때문에 이혼하게 된다고 말했다. 자녀문제, 경제문제, 시댁문제, 외도문제 등 본질적 사건이 있어 싸움이 발생하지만 싸움이 비난에서 모욕, 모욕에서 경멸, 경멸에서 회피 등으로 번지면서 이혼까지 하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상담소를 찾아오는 대부분의 부부가 5~7년차 부부들인데, 이는 1~2년 정도는 서로 좋다가 점점 상대방에 대한 불만이 생기고 그 불만을 2~3년 참다가 결국 5년차 이상이 되면 폭발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 때문에 부부간의 대화와 대화를 통한 이해와 화해가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부부가 건강하려면 함께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오늘 내가 상담사 체험을 하게 된 부부는 결혼 3년차 부부로 남편과 아내 모두 30대 후반의 나이였다. 부부 사이에는 100일 된 아이가 있었고 두 사람 모두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업을 갖고 있어 이런 곳에 상담을 받으러 온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전문 상담사가 아닌 내가 심각한 위기 상황의 부부에게 상담해 준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기 때문에 양해를 구하고 방 실장님과 상담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으로 체험을 대신하기로 했다. 상담을 하러 온 부부들은 자신의 성향과 대화법 등을 파악하기 위해 먼저 MBTI(성격유형검사) 검사를 받는다. 검사를 마친 부부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했다. 남편이 먼저 아내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아내는 평소 분노를 잘 참지 못하고 표출하는데 가출로까지 이어진다고 했다. 아내가 2번이나 가출을 했으며, 그럴 때 마다 자신도 참을 수 없이 화가 난다는 것이다. 아내와 주로 싸우게 되는 이유는 처가가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모임을 갖는데 그때마다 처가식구들에게 무시와 비교를 당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남편이 지방 사람인데, 처가 식구들은 지역감정도 드러내 남편의 맘고생이 심했다고 했다. 아내도 남편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했다. 결혼전 남편은 심장 수술을 받아 몸이 건강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 때문에 부모들이 결혼을 심하게 반대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내는 측은지심으로 만난 지 한 달 만에 결혼을 결심, 강행하게 됐다. 이후 아내는 몸이 아픈 남편을 보면서 하루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고 몸이 아파서인지 내성적인 성격으로 변해가는 남편을 보면서 속상했다고 한다. 또 남편과 다툴 때면 아픈 남편에게 잘해주지 못한다고 비난하는 것 같은 주위의 시선도 부담스럽다고 토로했다. 이 부부에게 방 실장님은 부부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부부체계를 형성하는 것이라며 아내에게 처가로부터 기대는 것을 줄이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고, 부부가 건강할 수 있으려면 함께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 해보는 것이 좋다고 설명해줬다. 부부가 돌아간 뒤 나는 방 실장님에게 저 부부가 다시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방 실장님은 다음 상담에서는 부부간 감정 고리를 끊고 대화를 시작할 것이라며 분명히 다시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 극적인 상황에서도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수없이 보았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싸움을 잘하는 것은 화해를 잘하는 것 체험을 마치면서 나는 방 실장님께 실장님은 부부싸움 안 하시나요라고 물었다. 이에 방 실장님은 부부싸움은 모든 부부가 다 하는 것이라며 그러나 보통 부부들은 싸우고 끝내지만, 우리 부부는 싸우고 난 후 꼭 대화의 시간을 갖는다고 말했다. 이어 싸우다 감정이 격해지면 20분 정도 시간을 갖고 감정을 추스른 후 대화를 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라며 대화의 주어를 나로 한번 해봐라. 나는 당신이 그런 말을 할 때 정말 참을 수가 없어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러면 공격적인 말투가 나오는 것을 차단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나는 방 실장님께 좋은 부부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꼭 조언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마디 해달라고 했다. 이에 방 실장님은 싸움을 잘하는 것은 화해를 잘하는 것이라며 상대방의 욕구를 먼저 해소해 줄 때 화해가 쉬워진다고 말했다. 이날 체험을 하면서 아직 결혼은 하지 않은 나조차도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게 되는 하루였다. 혹시 지금 부부관계에 있어 고민하고 있는 부부가 있다면 무료이고, 주중뿐만 아니라 주말 프로그램도 있으니 이혼을 위해 법원을 가기 전 가족애돌봄나눔터를 꼭 한번 들려 보라고 말해 주고 싶다. ■ 방경미 상담실장의 부부 갈등 완화를 위한 말하기 태도 Tip ▲자신에 대해 정직하게 개방하면서 말한다 ▲상대방을 비판하거나 비난하는 투로 말하지 않는다 ▲상대방 인격을 비하하는 말을 하지 않는다 ▲과거의 잘못을 들추지 않고 현재의 갈등 상황에 대해서만 말한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말하지 않는다 ▲상대방을 위협하거나 비아냥거리거나 잘못을 파헤치려 하지 않는다 ▲자기가 항상 옳고 중요하다는 태도나 피해자의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이호준기자 hojun@kyeonggi.com

[1일 현장체험]인천시 계양우체국 집배원

이리저리 두리번 거리며 소포 한뭉치 한손엔 편지 몇통 몇반 작은 글씨는 돋보기 넘어 희뿌연 풍경 한참후 난 대문앞에 놓여있던 아저씨 모자 눌러 쓰고서 이 골목 저 골목 누비며 빨간 자전거 타는 아저씨 장필순의 빨간 자전거 타는 우체부를 듣다보면 어느새 내 머리 속에는 한적한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빨간 자전거를 타고 편지와 소포를 전하는 우체부 아저씨가 떠오른다. 해맑게 웃는 볼 빨간 아이들과 인자한 주름 미소의 나이 지긋하신 할머니까지. 모두들 우체부 아저씨가 꺼내든, 설레임 가득한 편지를 받아보는 모습을 상상하며 나도 모르게 미소를 머금는다. 우리 마음 속에 우체부 아저씨는 그런 기억이다. 수줍었던 어린 시절, 밤잠을 설치게 만들었던 이름 모를 소녀의 펜팔 편지와 군 이등병 시절 목이 빠져라 기다렸던 가족과 친구들의 안부 편지까지. 우체부 아저씨는 매일 그렇게 우리에게 설레임을 선물하던 고마운 사람이었다. 세상이 변하고 설레임 가득했던 그 때 그 편지는 휴대전화 문자와 이메일에 밀려 설 곳을 잃었지만 여전히 우체부 아저씨는 고마운 사람이다. 경인지방우정청이 우리 주변 곳곳에 잊혀진 소외계층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365봉사단을 운용, 외롭고 지친, 사람 냄새 그리워 하는 달동네 사람들에게 우체부 아저씨의 방문을 반기고 있기 때문이다. 14일 오전 7시 인천시 계양우체국. 이른 아침이지만 우체국 내부에서는 하루 일과 준비에 모두들 정신없는 모습이었다. 마치 활기 넘치는 수산시장을 보는 듯 한 모습이랄까. 부천우편집중국을 통해 인천 계양구로 날아온 하루 수십만통의 소포와 등기 등의 우편물을 소화하기에 다들 정신없이 바쁜 모습이었다. 최승범 계양우체국 집배실장(46)은 6.4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어 우편물량이 많이 늘었지만 설이나 추석 명절에 비하면 이정도는 양호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오늘 업무할 지역은 어려운 이웃들이 많은 효성동 달동네라 몸이 좀 고생할 듯 싶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에 오늘 기자, 아니 수습 집배원이라는 짐까지 떠앉게 된 베테랑 엄상영 집배원(53)은 그래도 동네 어르신들이 좋아하겠어요. 젊은 친구가 고생한다고 시원한 얼음물이라도 주지 않을까요라고 웃음 지었다. 엄 집배원을 따라 계양우체국 2층에 자리한 순로구분기실에서 동별, 지역별로 구분된 우편물을 한아름 받아들었다. 노란색 플라스틱 박스에 우편물을 싣고 엄 집배원의 책상으로 향했다. 엄 집배원과 함께 다시 우편물을 꺼내들고 동네 별로 구분, 오늘 배달 동선을 정하고 이를 차곡차곡 다시 노란색 플라스틱 박스 안에 담았다. 생각보다 양이 많지 않다는 수습 집배원의 말에 최 집배실장은 집배원이 우편물을 모두 배달하고 다시 우체국에 들어오면 시간이 너무 걸린다. 이 때문에 각 구역별로 거점을 정해두고 우체국에서 집배원이 더 배달해야 하는 우편물을 트럭에 실어 가져다 놓는다고 설명했다. 동네 우체국(우편취급국 등)이나 약국, 슈퍼마켓 등에 미리 양해를 구하고 그곳을 전진기지로 삼는다는 것이다. 생각보다 작은 양의 우편물에 내심 기뻐했던 것도 잠시였던 것. 1층으로 내려가 빨간 자전거, 아니 빨간 이륜자동차에 우편물을 옮겨 담고 효성동을 향해 출발했다.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계양산 줄기 밑에 자리한 허름한 2동짜리 아파트였다. 출입구 앞에 이륜자동차를 세우고 1층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엘리베이터 앞에 설치된 각 가정 우편함에 일반 우편물을 꽂고 돌아서려 하자 임 집배원은 등기와 소포는 집에 올라가서 직접 전달해야 해요라고 말했다. 그래도 다행이라 생각했다. 엘리베이터가 있었기 때문이다. 15층으로 올라가 1개층씩 계단으로 내려오며 등기와 소포를 전했다. 대부분 집에 사람이 없어 다시 1층으로 내려와야 했다. 주머니에서 노란색 스티커를 꺼낸 임 집배원은 택배, 등기, 경비실이라는 글자 등을 적어 각 가정 우편함에 정성스레 꽂아두었다. 우체국 택배와 등기는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에게 언제 전달될 것이고 언제 전달됐는지 모두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내준다. 하지만 대부분 생업 등으로 바쁘기 때문에 경비실에 맡기고 뒤 돌아설 수 밖에 없었다. 아파트와 달리 효성동 달동네를 올라가면 어르신들이 반갑게 맞아주실 것이라는 임 집배원을 따라 구불구불한 언덕길로 향했다. 45도 이상되는 경사에 구불구불한 언덕길을 올라서자 산줄기 중턱 양 옆으로 다 쓰러져가는 집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각 집들에는 빨간색 글씨로 14, 37이라는 등의 숫자가 적혀 있었다. 7년전 재개발이 예정됐던 지지부진하면서 모두 300여가구가 옹기종기 모여살던 달동네는 현재 50가구도 채 남지 않은 것이다. 빨간색 숫자는 빈집 번호를 뜻한다고 했다. 빈집들은 창문을 하얀색으로 칠한 나무 판대기로 막아놓은 상태였다. 5분 정도 더 올라가자 곰인지, 개인지 모를 커다란 개가 짖기 시작했다. 임 집배원은 오만이가 원래 짖지 않는데 처음 보는 사람이 찾아와서 경계하나보다라고 말했다. 개, 아니 강아지 이름은 오만이. 엄청난 크기와 달리 이제 2살된 진돗개다. 몸이 불편한 안기석씨(74) 댁을 지키는 늠름한 놈이었다. 오만이가 짖는 소리를 듣고 안씨가 문을 열었다. 몸이 불편한 안씨는 집 안에서 임 집배원을 향해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몸은 좀 어떠세요. 식사는 잘 하시는거죠? 임 집배원의 말에 안씨는 밝게 웃으며 여기저기 아픈 곳과 식사는 무엇을 했는지 등 아들이 찾아온 것처럼 수다쟁이가 돼 버렸다. 무릎이 좋지 않은 안씨가 날씨가 좋아 산책도 하고 싶은데 몸이 불편해 화장실 가는 것도 힘들다고 말하자 임 집배원은 창문이라도 시원하게 열어두세요. 조금씩 걷는 연습해야 좋아져요라고 맞장구를 쳤다. 아쉬워하는 안씨를 뒤로한채 10여분 더 산길을 따라 올라가자 김춘석씨(84) 댁이 눈에 들어왔다. 허름한 집에 장애를 가진 아들과 함께 둘이 살고 있는 김씨는 나이 탓인지 시력도 좋지 않은 상태였다. 아픈 몸을 이끌고 고물을 주어 생활하는 김씨 역시 임 집배원을 보고 반갑운 인사를 전하며 사는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예전처럼 설레임과 반가움 가득한 손편지는 사라진지 오래지만, 여전히 이들을 찾는 집배원의 말 한마디는 봄햇살 만큼이나 따스했다. 임 집배원은 집배원 만큼 동네 사람들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 우편물만 배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주민들과 이야기를 많이 하고 공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안씨와 김씨, 그리고 달동네 주민들은 임 집배원을 통해 365봉사단에 추천, 지난 겨울 연탄과 김치 등 생필품은 물론이고 새롭게 수많은 아들과 딸을 선물받았다. 임 집배원은 어버이날 홀몸 어른신에게 카네이션을 달아드릴 때 내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시는 어르신의 모습에 함께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추운 겨울 연탄을 날라주는 모습에 고맙우이라는 연방 하시는 모습을 보며 내 자신의 마음이 더 위안을 얻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루종일 임 집배원을 따라 제때 점심식사도 하지 못한 채 2천여통의 우편물을 주민들에게 전달했다. 최 집배실장의 말처럼 땀을 비오듯 흘리며 그동안의 운동부족을 여실히 느껴야 했지만 마음만큼은 시원했다. 젊은 사람이 고생한다며 시원한 음료수 한잔을 건네줬던 달동네 어느 아줌마의 온정 만큼이나 말이다. 안영국기자 ang@kyeonggi.com 사진=장용준기자 jyjun@kyeonggi.com

[1일 현장체험]경기일자리센터 직업상담사

여야를 막론하고 이 시대 최고의 복지로 일자리 창출을 꼽고 있다. 특히 최근 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출마자들이 잇따라 일자리 창출 공약을 내세우는 등 관심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경기도 역시 최근 일자리센터를 중심으로 맞춤형 일자리 제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경기일자리센터는 지난 2010년 전국 최초로 설립되면서 매년 7만명 이상을 취업에 연계시키는 등 일자리 복지 실현에 톡톡한 성과를 내고 있다. 경기일자리센터에는 12명의 직업상담사가 배치돼 연간 60만건의 직업 알선을 수행하고 있다. 이에 기자는 지난 8일 수원역에 설치된 경기일자리센터 상담소에서 일일 직업상담사로써 상담사로서의 어려움을 체험하는 한편 취업자 연계활동을 시도했다. ■경기일자리센터 직업상담사 교육 수원역 상담실은 지난 2012년 7월3일 개소한 이래 오전 8시부터 밤 10시까지 연중무휴로 운영되면서 취업 연계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곳에는 5명의 직업상담사가 배치, 이틀 단위로 맞교대로 근무하면서 일자리 매칭 업무를 소화하고 있었다. 이날 오전 10시 수원역 상담실을 처음 방문한 기자는 이곳에서 근무하고 있는 상담사들에게 일단 상담사로서 갖춰야 할 소양과 지식에 대한 교육을 받게됐다. 이곳 직업상담사들은 모두 직업상담사 2급 이상 자격증 소지자로, 이미 수년간의 직업 상담 경력을 통해 베테랑다운 모습을 선보이고 있었다. 특히 일자리가 없어 심리적으로 많이 위축돼 있는 구직자들이 부담없이 이곳에서 직업 상담 또는 알선을 받을 수 있도록 말투나 행동 하나하나까지 세심하게 배려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곳에서는 상담소를 직접 방문하는 구직자 외에도 전화를 통해 구직을 희망자들에 대한 접수도 이뤄지고 있었으며, 고용노동부가 운영하는 일자리 구인구직 웹싸이트 워크넷에 올려진 정보들을 토대로 조건에 부합하는 구직자와 구인업체를 알선하는 일이 주로 이뤄졌다. 일단 처음 받게 된 교육은 구직자들이 방문했을 때 이를 대하는 방법을 기본 매뉴얼을 통해 숙지했다. 안녕하세요. 일일 일자리상담사 정진욱입니다. 편안히 앉으세요, 일자리를 찾아오셨습니까, 선생님은 구직등록이 되어있으십니까, 말씀드린 정보는 어떠십니까? 면접에 응해보시겠다면 업체와 연결을 도와드리겠습니다 등으로 구성된 방문상담 매뉴얼은 직업을 찾기 위해 방문한 구직자들에게 바른 정보 전달과 구직을 하기 위해 필요한 제반사항 등을 자세히 전달할 수 있도록 제작돼있었다. 먼저 방문상담 매뉴얼을 익힌 이후 전화상담 매뉴얼까지 이어서 교육이 이뤄졌다. 이후에는 워크넷 프로그램을 통해 알선 업무 교육이 진행됐다. 교육에 들어가기 전 경기도청 담당 공무원의 귀뜸이 전해졌다. 지난해 말에 당시 경기도 경제투자실장이던 분도 이 곳에 일일직업상담체험을 하셨어요. 그런데 막상 직접 하시려다보니 프로그램이 복잡해서 중간에 포기하고 보조역할을 하고 가셨습니다. 기자님은 젊은 분이니까 그래도 더 나으실거에요. 이전까지 막연히 생각했던 일자리 매칭과는 다른 이야기였다. 단순히 구직자와 구인회사를 연결해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어서 그게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막상 프로그램 교육에 들어가니 다양한 직업군과 직종, 자격증 보유 현황, 나이, 지역 등 취업희망자들의 정보가 워낙 세분화돼 맞춤형 일자리를 제공하는 시스템을 활용하는 것이어서 쉽지 않았다. 심지어 프로그램상에 어느 메뉴를 클릭해야 취업희망자들이 원하는 기업을 소개할 수 있는지 조차 판단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래서 일단 프로그램에 기자의 정보를 입력해봤다. 대학생 시절 취업을 하고자 워크넷에 취업정보를 올렸던 기업이 떠올라서였다. 입력을 하자 지난 2007년에 입력했던 당시 이력서가 나타나면서 반가운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내 정보를 가지고 맞는 일자리와 연결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괜히 직업상담사 자격증 시험이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우왕좌왕하는 가운데 기본교육을 마친 뒤 현장에 배치됐다. ■전화 연결을 통한 일자리 알선 처음 시작한 일은 인력을 원하는 업체의 정보를 입력하는 것이었다. 업체별로 고유번호가 부여돼 있어 원하는 직종이라든가 연령대, 학력 수준이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날 오전에 구인이 접수된 업체는 수원시의 한 보안업체로 이곳에서는 전자기기기능사 자격을 갖춘 사람을 구하고 있었다. 이에 부합하는 조건을 프로그램에 대입하자 이 조건에 맞는 구직 희망자들의 정보가 나왔다. 개인정보에 민감한 시기인만큼 구직에 필요한 정보만이 취업상담사들에게 제공되고 있었다. 학력, 희망연봉, 거주지, 원하는 직종 등 다양한 세부별 평가에서 매칭비율이 기업의 조건과 부합되는 순서대로 정보가 제공됐다. 그 다음에는 제공되는 정보를 이용해 해당 취업희망자들에게 전화 연결을 시도했다. 먼저 경기일자리센터임을 알린 뒤 구직 여부를 확인하고 아직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희망자에게 기업의 취업정보를 제공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실제 취업희망자들과의 연결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직원들의 이야기로는 경기일자리센터의 전화 발신번호가 경기도 행정전화번호 국번인 8008로 시작되기 때문에 스팸전화로 오인돼 전화를 받지 않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어렵사리 연결을 시도한 끝에 한 구직희망자와 통화가 연결됐다. 그는 의왕에 거주하는 30대 초반의 여성 기혼 구직희망자로, 업체가 원하는 조건과 상당히 일치했다. 먼저 취업 여부를 확인한 뒤 업체에 대한 정보를 전달했다. 업체의 위치와 하게되는 업무, 연봉 등에 대한 정보를 전달한 뒤 본인의 면접 희망여부를 확인하는 순으로 진행됐다. 취업희망자가 궁금해하는 일일이 정보를 전달해야 한다는 점에서 기업에 대한 정보를 정확히 숙지해야 했다. 10여분간의 통화끝에 취업희망자로부터 면접을 해보겠다는 대답을 듣게 됐다. 이후에는 시스템 상으로 기업의 채용담당자, 연락처 등에 대한 정보를 취업희망자에게 문자메시지를 통해 제공했고 업체에는 면접 대상자에 대한 정보를 팩스로 전달, 양측이 면접을 가질 수 있도록 했다. 일일직업상담사가 돼 처음으로 취업 희망자와 업체를 연결한 것이어서 부디 좋은 회사와 그에 맞는 좋은 근로자가 되길 마음속으로 기원했다. ■쉽지 않은 일자리 알선 오후 들어서는 방문 상담자를 대하는 업무를 하게 되면서 이곳을 방문한 65세 어르신을 접견하게 됐다. 남성인 이 분은 군포에 거주하시는 분으로 연세에 맞춰 아파트 경비직에 취업하기를 희망하고 이곳을 방문하셨다. 이미 수차례 이곳을 통해 일자리를 구해 본 적이 있다고 하신 할아버지는 오히려 오늘 첫 상담사 역할을 하게된 기자보다 더 능숙했다. 기자가 요청하기도 전에 이미 신분증을 제출하시면서 괜찮은 일자리가 없냐고 물어보시기 시작했다. 고용노동부 워크넷 프로그램에는 취업희망자의 이전 경력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확인 결과 이 어르신이 거주하고 있는 인근지역에는 취업할 만한 마땅한 곳이 없었다. 이럴 땐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당황스러웠다. 기자가 우물쭈물하자 능숙하신 이 어르신은 좀 더 배우고 하셔야 할 것 같다라면서 옆자리에 있는 상담사로 자리를 옮기셨다. 난감한 상태에 빠졌지만 옆자리에 있던 직업상담사의 유연한 대처로 위기를 피할 수 있었다. 방문상담에 어려움을 느낀 기자는 이후 오전에 했던 전화연결 업무로 다시 전환해 줄 것을 요청했고 수차례 구인업체와 취업희망자들의 전화 연결 업무를 수행하면서 이날의 일일취업상담사 업무를 마쳤다. 이날 일일취업상담사로서 느낀 것은 아무리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일자리를 원하는 취업희망자들은 여전히 많다는 것이었다. 이에 정치권이나 정부 또는 기업에서도 단순히 숫자상으로만 몇만개씩 일자리를 만들어내겠다는 정책보다는 취업희망자들이 안정된 환경속에서 꾸준히 일을 할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발굴해낼 수 있도록 더욱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느낌을 받게 됐다. 정진욱기자 panic82@kyeonggi.com 사진=전형민기자 hmjeon@kyeonggi.com

[1일 현장체험] 인천 중앙도서관 사서

인천시는 국내 최초로 유네스코 선정 2015 세계 책의 수도(World Book Capital 2015)로 뽑혔다. 시는 아시아지역 도서 나누기, 북한 어린이에게 책 보내기, 인천을 중심으로 한 도서 기증과 책 추천 릴레이, 찾아가는 북 콘서트 등을 추진하며, 세계 책의 수도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 세계 책의 수도로서의 인천은 독서 인프라가 부족하기만 하다. 일선 학교 도서관은 전국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 장서 보유량을 보이고 있으며, 이는 인천대 등 지역에 이름난 대학들조차 마찬가지다. 세계 책의 수도에 걸맞은 인천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부족한 독서 인프라를 기사에 담은 것만 올해 여섯 차례에 달한다. 심지어 다섯 차례에 걸쳐 문제점을 알리고, 대안까지 찾아보는 기획기사도 썼다. 이처럼 세계 책의 수도 인천에 많은 관심을 두고, 많은 도서관 관계자와 전문가를 만나면 항상 듣는 말이 있다. 바로 도서관 사서라는 직업은 그야말로 백조와 같다는 말이었다. 백조, 평소 시각에서 사서라는 직업은 우아하고 고귀해 보였던 게 사실이다. 지식의 창고와도 같은 책에 둘러싸여 사는 사서가 부러워 보일 때도 잦았다. 그러나 사서를 백조로 칭하는 데 이러한 이유가 전부일까? 그 궁금증을 해결하고자, 또 세계 책의 수도 인천을 만들어 나가는 일등공신인 직업을 경험하고자 일일 사서에 과감히 도전해 보기로 했다. ■도서 29만여권ㆍ비도서 1만여권 인천시민의 정보 창고 4월 11일 오전 7시30분께 백조라고 불리는 사서의 풀리지 않는 궁금증을 품고, 인천 중앙도서관을 찾았다. 1983년 9월 개관한 중앙도서관은 중앙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지역 최고 수준의 독서 인프라를 자랑하는 곳이다. 자료 보유량은 도서가 29만여 권, 비도서가 1만여 권에 달하며, 순회문고 사업택배 사업 등으로 인천지역 학교와 홀몸 어르신 등 소외계층 가정에 책을 배달하는 사업도 벌이고 있다. 또 전국에 30여 곳밖에 없는 다문화자료실이 바로 이곳 중앙도서관에 있다. 하루 입관객만 무려 4천여 명에 달하고, 도서관에 있는 자료를 이용하는 사람 또한 3천여 명에 이른다. 명실상부 인천 시민이 가장 애용하는 도서관이다. ■무인반납함 수거 오르락 내리락 시작부터 굵은 땀 중앙도서관의 사서는 오전 8시부터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자료실 개방 시간을 무려 1시간여 남겨두고 있지만, 사서들은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길 시간조차 없다. 무인 반납함으로 들어온 도서 회수를 비롯해 도서 반납, 도서 정리, 청소 등의 준비 업무로 눈코 뜰새 없이 바쁜 시간이 흘러간다. 처음 경험할 일도 이 중의 하나다. 바로 무인 반납함 수거 도서의 회수다. 도서 회수를 위해 일반자료실이 위치한 4층과 무인 반납함이 있는 1층 로비를 무려 3번이나 왕복했더니, 종아리에는 그새 타조알만 알이 자리를 잡았다. 얼굴을 온통 적신 땀방울은 자연스럽게 초반부터 만만치 않네라는 생각을 머금게 했다. 무인 반납함은 자체 반납 기능을 가진 보관함과 수거 기능만 가진 보관함으로 나뉜다. 도서대출 기간 내 반납이 이뤄지는 도서는 대부분 자체 반납 기능 보관함으로 수거되는 반면, 수거 기능만 가진 보관함은 장기간 미납된 도서가 대다수다. 이처럼 서로 기능이 다른 두 가지 반납함이 설치된 이유는 장기간 도서를 반납하지 않아 문제가 생길 것을 우려한 시민이 반납 기능이 없는 보관함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비디오 대여가 한창 활성화됐던 1990년대 장기간 미납한 비디오를 늦은 밤 몰래 반납함에 넣던 옛 기억이 문득 떠오른다. 세 번째 왕복을 하면서 어느새 업무가 몸에 익은 것인지 연방 땀방울을 소매로 훔쳐내면서도 옛 생각에 피식 한번 웃어보는 여유가 생겼다. 휴관인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아침 8시와 오후 3시, 저녁 8시까지 모두 세 번에 걸쳐 무인 반납함에서 도서를 거둬가는 사서들이 새삼 존경스럽게 느껴졌다. ■자료실 개방시간 맞춰 지식 찾아 밀려드는 시민들 오전 9시 자료실이 개방되자, 시민이 하나 둘 자료실에 들어섰다. 이른 시간이다 보니, 이용객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10여 명에 달하는 이용객 대다수가 어르신이나 리포트용 참고 도서를 대출하러 온 대학생이다. 오전 11시가 되면서 모여든 사람이 어느덧 30여 명을 넘어섰다. 대학생이라고 보기에는 나이가 많아 보이는 청년의 행렬이 줄을 잇는다. 이들 청년은 잠시 쉴 곳을 찾아 자료실을 방문한 듯 추천도서를 훑어보고는 다시 사라진다. 직접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이들 청년은 대부분 취업준비생일 것이다. 도서관은 독서 또는 공부를 할 수 있는 열람실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많은 취업준비생이 몰리는 곳이기 때문이다. 경기일보에 입사하기 전까지 종종 중앙도서관을 찾아오던 기억이 떠오른다. 잠시 딴생각을 품을 때, 한 어르신이 책을 반납하러 왔다. 종이 가방에서 고이 담긴 책 다섯 권을 꺼내는 어르신의 모습을 보며, 독서를 즐기시는 어르신도 많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반납하는 작업은 매우 쉽다. 예전에는 일일이 책에 붙여놓은 바코드를 불러 읽어와야 했지만, 최근에는 RFID 기술이 도입돼 책을 최대 다섯 권까지 RFID 인식기 위에 올려놓기만 해도 동시에 모든 내용을 읽어낸다. 더욱이 모든 회원 정보가 데이터베이스로 정리돼 있어 RFID 인식기를 통해 불러온 내용과 맞물려 2~3번의 마우스 클릭으로도 반납 작업을 끝낼 수 있다. 대출해 주는 것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수월하게 처리할 수 있으며, 무인 대출기 또한 설치돼 있어 대출반납 작업은 간단한 사용법만 익히면 누구라도 손쉽게 해낼 수 있다. ■셜록홈스도 울고갈 도서분류 잘못 꽂히면 식겁 새삼 일이 몸에 익어간다고 느껴질 때쯤 생각지도 않던 복병이 나타났다. 바로 반납된 도서를 청구기호에 따라 분류해 정리하는 작업이다. 청구기호는 도서마다 가진 일종의 주소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예를 들어 800으로 시작하는 청구기호를 가진 도서는 문학 도서를 의미하며, 그 뒤에 나열된 글자 등은 지은이와 책의 제목 등을 뜻한다. 도서관에 보관된 도서는 이러한 청구기호를 하나씩 갖고 있고, 그 기호에 따라 분류돼 각자 알맞은 책장에 자리를 잡게 된다. 매일같이 청구기호를 다루는 사서들은 한 번만 훑어봐도 이 도서가 본래 있던 책장이 어디인지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그야말로 셜록 홈스조차 풀지 못할 암호나 다름없다. 결국, 사서들이 1시간 정도면 수월하게 해낼 일을 무려 3시간에 걸쳐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행여나 잘못된 곳에 책이 들어가게 되면, 찾는 시민은 물론 전문 사서조차 그 책을 찾을 방도가 만무하기 때문에 최대한 실수하지 않으려 조심한 탓도 있다. 다행히 무지한 일일 사서의 교사가 되어준 박경애 사서 팀장이 하나부터 열까지 옆에서 알려준 덕에 실수는 없었다. ■무료택배 대출 아시나요? 정성껏 포장 진화하는 서비스 오후 3시 자료실을 찾는 시민이 점차 많아지면서 학교를 마치고 온 학생들도 서서히 모이기 시작했다. 중앙도서관의 특색 사업인 무료택배 대출서비스를 준비해야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장애인아기 엄마다문화 가정다자녀 가정 등 도서관을 직접 찾기 어려운 시민에게 신청한 도서를 포장해 택배로 보내주는 사업이다. 대출 신청은 전화 또는 인터넷으로 이뤄지지만, 도서 포장 작업은 전부 사서가 해야 한다. 도서 정리하는 데 지친 심신을 다시 채찍질하며, 한 권 한 권 정성스럽게 포장했다. 시민이 신간 도서나 인기 도서 등을 쉽게 알 수 있도록 각종 안내서를 같이 동봉하는 작업 내내 인천이 세계 책의 수도로서 많은 것을 갖춰나가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민 소통도 사서의 의무 장기연체 독촉도 친절이 생명 사서는 근본적으로 책을 다루는 일을 하지만, 시민과 끊임없이 소통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정해진 시간 없이 도서 대출과 반납을 희망하는 시민이 수시로 오가기 때문이다. 기자라는 직업이 많은 사람을 상대할 수 있는 직업이듯이 사서도 많은 시민을 만나볼 기회가 있다. 그러나 사서를 체험하는 동안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이토록 힘들게 느껴지기는 처음이었다. 아침부터 책과 씨름한 탓에 힘이 들었지만, 시민에게는 항상 상냥한 표정으로 대해야 한다. 도서관은 공공장소로서 시민의 독서를 위해 만들어진 기관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겨울에는 노숙인이 찾아와 독서를 할 수 있도록 마련된 의자에서 잠을 자는 일도 있지만, 사서는 화를 낼 수도 내쫓을 수도 없다. 도서 반납을 수개월째 미룬 시민에게 반납 독촉 전화를 하더라도, 도리어 왜 독촉 전화를 하느냐고 따지고 드는 시민에게조차 사서는 친절해야 한다. 독촉 전화를 직접 체험해보려 했으나, 각종 상황 등을 박경애 팀장에게 전해 듣고서는 포기했다. 행여나 적반하장으로 따지는 시민에게 화를 낼까 걱정이 컸기 때문이다. 박 팀장은 도서관은 다수 시민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기에 시민 스스로 건전한 시민의식을 갖고 도서관을 이용해줬으면 좋겠다며 도서 반납을 미루거나 책을 손상한다면, 그만큼 다른 시민이 피해를 본다는 생각을 꼭 가져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세계 책의 수도 만들어가는 일등 일꾼 그들에게 박수 책으로 시작해 책으로 끝나는 사서의 일은 오후 10시가 돼서야 마무리됐다. 시민이 떠난 자료실의 문을 닫기까지 만난 시민만 수백 여명인 듯하다. 모든 일을 마무리할 때 즈음 자연스럽게 이래서 사서가 백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 위에 떠오른 모습은 우아해 보일지는 몰라도, 수면 아래에서 쉬지 않고 물갈퀴 질을 하는 게 바로 백조다. 책과 함께 생활하는 사서의 모습이 고상해 보일 수는 있지만, 시민을 위해 끊임없이 움직이는 사서의 모습이야말로 백조 그 자체였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책과 씨름하며 얼굴과 온몸을 적신 땀은 사서가 세계 책의 수도 인천을 만들어가는 원동력이다. 해가 저문 중앙도서관 앞을 지나면서 문득 외로움을 느꼈다. 수천 명의 시민이 오간 도서관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고요히 잠들었다. 그러나 내일 또다시 사서의 손과 땀으로 도서관은 살아 움직일 것이다. 김민기자 suein84@kyeonggi.com 사진=장용준기자 jyjun@kyeonggi.com

[1일 현장체험]시화호 안산 조력 발전소 점검기사

집에서 손으로 터치 한 방이면 켜지는 가전 기기들. 소파에 느긋이 앉아 TV 리모컨을 누르기만 하면 HD급 화질의 영상이 쏘아지고 에어컨 버튼 하나로 시원한 바람에 신선함을 느끼는 요즈음. 하지만 이 소중한 전기를 위해 지하 5층 높이의 깜깜한 터널 속에서 24시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행여나 생길 전기안전수급에 차질이 생길까 노심초사하는 전기 지킴이들이 있다. 바로 푸른 바다의 힘으로만 가동할 수 있는 시화호 안산 조력 발전소 직원들이 그 주인공. 한정된 지구자원을 위한 대안으로 대체 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날로 높은 가운데, 안전하고 효율적인 전기를 생산하기 위한 과정을 직접 몸으로 체험코자 기자는 일일 점검기사로 분했다. 마침 지난 2011년부터 상업용 전력을 생산하고 있는 발전소 가동 3년째를 맞아 지난 4일 방조제 도로부터 지하 30m에서 전기를 생산하는 4호기 발전기에 대한 대대적인 점검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시화호를 찾았다. 점검은 1년에 2~3대씩 나눠 3년을 주기로 10대의 수차발전기 모두를 점검한다. 수차발전기 1호기당 15일가량의 시간을 요구하는 대점검은 발전기 내부 곳곳에 기생하는 바다생물을 제거하는 육체적인 작업에서부터 발전기의 미세한 균형을 잡아주는 초정밀의 기술이 필요한 작업으로 40명에 달하는 기술진이 투입되는 대대적인 통과의례. 마치 사람의 온몸을 구석구석 정밀하게 진단받는 건강검진처럼 발전기의 속살을 세세히 관찰해야 하는 막중한 미션을 띠고 기자는 설렘 반 기대 반으로 오전 9시부터 일과를 시작했다. ◇AM 9시, 24시간 긴장의 도가니 속으로 이번 4호기 점검을 위해 시화호 안산조력발전소 측은 지난 1일 수차발전기 내부에 담겨 있던 6천여t의 바닷물을 모두 빼내고서 다시 바닷물이 내부로 유입되는 것을 차단하고자 6개로 이뤄진 스톱로그를 설치, 점검의 첫 시작인 물을 막는 작업을 이미 마무리했다. 긴장할 수밖에 없는 대점검과 일상적인 작업은 지하에서 이뤄진다는 점 외에도 고난도의 기술을 요구하는 작업도 있어 잠시라도 긴장을 끈을 놓을 수 없다는 점에서 정신적육체적으로 힘든 작업이 아닐 수 없었다. 조력발전소 심장부라 할 수 있는 중앙제어실에 들어서자 내부 한 벽면에 설치된 초대형 모니터에 현재 해수 위와 호수 위, 발전량, 음력날짜, 시간 등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선명하게 나타나 있었다. 이곳에서는 시화호 주변에서 가동되고 있는 조력발전소의 발전기와 수문과 풍력발전기, 배수갑문 등의 발전설비 가동과 설비의 운영실태 등을 감시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 모든 기능은 전산화돼 있으며 만일 고장이 발생할 때 긴급조치를 통해 빠른 시간 내 설비가 정상적으로 재가동 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하고 있어 근무자들이 24시간 긴장해야만 하는 공간이다. ◇전문용어 도배된 제어기, 아기 다루듯 세심한 손길에 땀 뻘뻘 이날 1차 발전은 새벽 3시50분에 시작됐으며 모든 시설의 정상가동 여부를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확인한 뒤 2인 1조의 근무자들과 함께 발전소 중앙에 설치된 엘리베이터를 이용 수차발전기 가동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지하 2층으로 이동했다. 이 시각에 도착한 보조설비실은 유압 및 냉각수 설비와 제어부분을 담당하는 Governor와 변압기 등이 들어서 있는 곳으로 지정된 장소로 이동이 제한된 공간. 이곳에서는 발전기를 가동하는 데 필요한 기름이 부족하지는 않은지, 기름이 흘러나오는 곳은 없는지 등 윤활유 설비 곳곳을 둘러보는 것으로 시작됐다. 또한 냉각장치는 제대로 가동이 되는지 제어기에 특이한 변화는 없는지 등 각 기기의 계기판에 나타난 수치를 확인하고 돌아보면서 꼼꼼히 들여다보고 섬세하게 관찰해야 했다. 특히 보조실에 도착하자 수차발전기를 통해 바닷물이 시화호로 유입되면서 엄청난 굉음에 더욱 귀를 쫑긋 세우고 상급자의 지시를 따라야 했다. ◇고압표시 곳곳에, 일반인 접근금지 구역 들어서자 절로 힘 들어가 발전을 통해 생산된 1만200Kw의 전기를 15만4천Kw로 전환(승압)해 땅속 케이블을 통해 전기를 공급하는 송전설비실 벽면 곳곳에는 붉은색으로 쓰인 특별고압 안내판이 붙어 있어 주변기기를 점검하는 내내 긴장감을 떨칠 수가 없었을 뿐 아니라 평소에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지만 만일 사고가 발생한다면 치명적일 수 있다는 동행한 근무자의 말이 등줄기를 서늘하게 했으며, 그로 인해 더욱 긴장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김종득 조력발전소 운영팀장은 이런 점검은 하루 두 번 발전을 할 때 마다 상시로 실시하고 있다면서 문제가 발생해서 한다기보다는 조그마한 문제로 인해 더 큰 문제를 불러올 수 있는 점에서 사전에 철두철미하게 근무자들이 점검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하루 4번 밀물과 썰물 때 작동되는 수문을 점검하고자 지상 5층가량 높이에 설치된 수문조절 장치를 점검하고자 계단을 따라 오르는 길은 차가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올라야 하는 부담감과 지하 바닥이 모두 드러나도록 설계된 계단은 무슨 이유인지 난간을 잡은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일반인들의 접근이 금지된 지하 4층. 무게 800t 규모의 수차발전기에 윤활유를 공급하는 설비와 전기방식, Wicket Gate 조작설비 등의 기기에 접근 누유 및 누수 발생 여부 등에 대한 점검을 실시했으나 날마다 철저하게 점검한 탓에 문제점은 나타나지 않았다. ◇깜깜한 지하에서 따개비와 홍합 제거에 온 힘 지하 4층 발전실에서 실시 될 대점검 작업실로 접근하고자 지하 5층으로 자리를 옮겼다. 수차발전기실로 들어가기 전 미리 준비된 작업복과 장화로 갈아신은 뒤 안전모까지 착용한 뒤에야 특별히 설치된 사다리 두 개를 지나 사람 한 명만 통과할 수 있는 발전기 밑에 설치된 원형 입구를 통해 높이 20m 규모의 수차발전실에 도착했다. 발전기에 도착하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사람을 압도하는 크기의 수차(프로펠러 형태의 날개). 바닷물의 수위가 시화호보다 높을 때 수차발전기에 설치된 수문 16개를 모두 열어 바닷물이 통과하면 수압으로 인해 수차가 돌아가면서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소의 핵심 시설이 있는 곳이다. 하지만 수차발전실에 바닷물이 지나고 머물면서 따개비와 홍합, 굴, 미역줄기 등 바다생물이 벽면과 발전기에 기생하면서 물의 흐름을 방해하거나 기기의 움직임을 둔화시켜 효율을 떨어트리고 있어 이를 제거하고 발전기의 소모품을 교체하는 등의 시간이 총 15일이나 소요된다고. ◇고층의 임시 작업로 엉금엉금부식 안 되게 세심한 손길 필요 손에 장갑을 끼고 삽을 들고 발전기 내부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따개비와 홍합, 굴 등을 제거하는 일을 작업자들과 함께 시작했지만 단단하게 들러붙어 있는 바다생물을 제거하는 작업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시작 몇 초 만에 이마와 등줄기에 땀이 흘러내릴 뿐 아니라 시야를 제대로 확보할 수 없는 지하에서의 작업은 더디기만 했다. 특히 수차발전기 표면에 붙어 있는 바다생물을 제거하기 위해 임시로 설치한 작업로를 통해 높은 곳까지 접근하는 데는 긴장감이 따르고 작업도중 발전기 표면의 페인트가 손상되면 부식이 빨라짐에 따라 정교한 손놀림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또한, 발전기에서 발생하는 열을 식히고자 발전실 입구 벽면 17m 높이로 설치된 열교환판에 붙어 있는 바다생물 청소작업을 기술을 요구하는 작업이었다. ◇점검은 계속된다 청정에너지 보급 위한 그들의 노력에 박수를 앞으로 14일 동안에 걸쳐 실시 될 대점검은 발전기 부품의 누전(절연저항) 점검과 정밀한 진단과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무게 800t가량의 수차 회전부분의 틈새(3mm 간격)을 지탱하는 배어링을 200t의 유압으로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하는 점검도 남아 있다. 이와함께 바닷물에 의해 수차가 부식되거나 침식 됐는지 수차를 지지하고 있는 구조물 점검, 수차축정렬 및 패킹(V-SEAL)류 교체 작업, 냉각설비를 점검, 윤활유 등 오일류와 브레이크 점검 등을 모두 마친 뒤 물을 다시 담기전(충수)에 수차발전기 최종시험을 시행하고 물막이 수문을 철거해 최종운전시험을 하는 과정을 통해 문제가 없어야만 발전기 1기의 점검이 마무리되는 것이다. 하루 24시간 교대로 근무하며 쉬위변화와 설비 가동 정지, 고장발생 감시 및 긴급조치사항 처리 등 업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청정에너지인 전기를 국민들에게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물샐틈 없는 점검을 실시하고 있다. 이날 체험을 마친 후 자판기 커피 한 잔을 뽑았다. 달큰한 커피 한 모금을 마시며 국가 경제발전의 원동력이자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극한의 직업에 도전하는 그들의 땀방울에 새삼 고마움을 느낀 긴 하루였다. 안산=구재원기자 kjwoon@kyeonggi.com 사진=전형민기자 hmjeon@kyeonggi.com

[1일 현장체험]지체ㆍ시각 장애인이 되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높이는 다르다. 아니 달랐다 휠체어에 앉아 바라보는 세상이 그랬다. 내 키가 이렇게 컸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하늘과 건물 심지어 사람들까지 더 높게 올려다봐야 했다. 그런 탓인지 버스에서나 길거리에서 휠체어를 탄 나를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시선은 부담스럽기만 했다. 그들이 어떤 감정을 가지고 쳐다보는 것은 아닐텐데, 위에서 아래로 바라보는 시선 때문일까? 왠지 모르게 위축됐다.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특별한 눈길을 받는다면 오히려 상처가 된다는 사실을 체감했다. 이런게 자격지심일까? 묘한 감정선이 마음을 뒤흔들었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불편하다. 장애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힘든데 사람들의 시선 등 세상의 편견은 이들을 더욱 힘들게 한다. 동행을 한 사회복지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이 기자가 느끼는 것 이상으로 실제 장애인들의 부담은 훨씬 크다라며 시설도 시설이지만 사람들이 쳐다보는 시선 때문에 장애인의 심리상태는 더욱 위축되고 결국 집 밖으로 나오기를 꺼리게 된다고. 우리 나라 전체 장애인 중 70%가 한 달에 다섯 번 가량만 집밖으로 나온다고 한다. 거의 대부분의 장애인이 바깥 세상과 차단된 채 창살없는 감옥에서 살거나 TV를 통한 간접체험만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장애인이 아닌 그저 보통 사람들처럼 대해주는, 따뜻한 마음으로 다가가 함께 공감대를 만들며 사회에 조금씩 발을 들여 놓을 수 있게 힘이 되주는 그런 게 아닐까. 아직은 장애인들이 보통 사람들처럼 다양한 삶을 향유하는 것은 그리 쉽지않아 보이는 현실에 한숨이 새나왔다. ▲휠체어 탄 지체장애인 오늘의 일정은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탈 수 있는 저상버스를 타고 수원역까지 가서 맛있는 식사와 영화관람을 하는 것이다. 그게 뭐?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일반인들에게는 일상생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애인들에게는 마음 단단히 먹고 준비도 철저히 해야하는 큰 일이라는 사회복지사의 설명에 따라 이같이 계획했다. 수원역을 가기 위한 교통수단은 저상버스였지만, 처음부터 녹녹치 않았다. 저상버스가 다니는 시간과 노선부터 인터넷에서 확인해야하는 번거로움 때문이다. 저상버스 정차시간을 확인한 뒤, 정거장으로부터 50여m 가량 떨어진 곳에서 지체장애인으로의 하루를 시작했다. 1차 목표는 버스를 탈 장안구청 정거장까지 휠체어로 가기. 그러나 혼자 힘으로 휠체어를 밀기 시작한 지 얼마 안돼 난관에 빠졌다. 버스정류장까지 가는 길에 경사가 진 주차장 진입로가 두곳이나 돼 도저히 혼자서는 정류장까지 갈 수가 없었고, 보도블럭과 시각장애인들의 안내판인 선형블럭 곳곳이 깨져 휠체어 바퀴가 걸리는 등 위험천만이었다. 혼자서는 50m 길이의 인도도 가기 힘든 장애인으로서의 첫 비애였다. 힘겹게 버스정류장에 도착한 지 얼마 안된 오전 10시15분께 저상버스가 왔다. 버스기사는 차를 정류장 옆에 일자로 정차한 뒤 휠체어로 탈 수 있게 버스와 인도를 연결해줬다. 말로만 듣던 저상버스의 위력이었다. 버스승객들과 행인들도 처음 본다는 듯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이 상황을 지켜봤다. 따가운 시선을 뒤로 한 채 탑승 후에는 교통카드로 차비를 내고 접이식 의자를 접은 뒤 휠체어를 고정시키고 안전벨트까지 맸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옆에 있던 사회복지사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버스가 출발하자 바퀴를 고정시키는 안전고리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고정된 휠체어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고 몸은 흔들렸다. 처음이라 서툰 탓도 있겠지만, 혼자서 이 모든 것을 해나가기에는 불편한 몸으로는 역부족일 듯 싶다. 1시간 가량 버스를 타고 수원역에 도착했다. 수원역에 정차할 때 휠체어를 내려주기 위해 버스기사는 인도와 평형정차를 하느라 얼마간의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을 참지 못한 몇몇 승객들은 여기서 내려요를 연방 외쳐댔다. 휠체어를 쳐다보는 한 승객의 눈길에 괜시리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힘겹게 버스에서 내린 뒤 인도로 가기위해 휠체어 바퀴를 힘차게 굴렸지만 또다른 난관에 봉착했다. 바로 차도와 인도사이에 있는 불과 10㎝가량의 턱. 혼자 힘으로는 인도로 오를 수가 없었다. 오히려 앞으로 고꾸라질 뻔 했다. 보통사람이라면 인식도 못할 만큼의 10㎝의 턱은 장애인에게는 도저히 혼자서는 넘을 수 없는 벽 그 자체였다. 이런 모습이 시민들의 눈에는 낯선 모습인가 보다. 쳐다보는 시선들의 부담은 갈수록 부담으로 와닿았다. 수원역 건너편에 내렸기 때문에 길을 건너기 위해 정류장에서 가까운 엘레베이터를 타고 지하1층으로 내려갔다. 지하상가를 누비며 150m 가량을 갔을 때 계단을 만났다. 그러나 계단만 있을 뿐, 장애인리프트도 설치돼 있지 않아 장애인이 계단을 내려갈 수 있는 방법은 전무했다. 왔던 길을 되돌리는 방법 외에는 선택할 수 있는 겨우의 수가 없었다.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없음에 또한번 실망한 순간이다. 다시 밖으로 나와 새롭게 만들어진 지하철역사 옆의 엘레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갔을 때에는 장애인도 갈 수 있는 길이 있었다. 건물 안에서 첫번째 도전한 일은 바로 화장실 이용. 그러나 몇차례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노하우가 없어 변기로 이동하는 데는 실패했다. 더욱이 수평손잡이가 움직이지 않는 등의 문제점 때문에 장애인이 이용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사회복지사의 지적도 제기됐다. 우여곡절끝에 힘겨운 여정을 마치고 마침내 목표로 한 극장에 도착했다. 그러나 극장매표소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에게는 너무 높았다. 잠시 기분이 상했지만, 극장에 들어서자 마음이 풀어졌다. 극장 직원은 영화를 관람할 수 있게 뒷자석 두자리를 떼어낸 뒤 휠체어가 자리할 수 있게 했다. 한사람의 표값으로 두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조금은 쑥쓰럽기도 했다. 영화 관람 후 늦은 식사시간이다. 용기를 내 수원역사 건물을 벗어나 역전 앞 식당에서 밥을 먹기로 결정했다. 다시 길을 건넌 뒤 역전 앞 식당가로 이동했지만, 식당 대부분이 턱이 있어 휠체어를 돌려야만 했다. 심지어 편의점조차 높은 턱때문에 장애인이 이용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다시 역사로 돌아와 식사를 마쳤다. ▲앞이 깜깜, 시각장애인 늦은 점심 후에는 시각장애인의 삶이다. 세상을 볼 수 없다는 것은 얼마나 불편하고 큰 두려움일까?. 역사 바깥쪽으로 나와 안대를 쓰고 한손엔 흰색지팡이를 짚었다. 첫 목표는 시각장애인이 이용하는 선형ㆍ점형 블록을 이용해 20m 가량 직진하기. 어려웠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 힘겹게 한걸음 내디딜때마다 똑바로 가고는 있는 지 두렵기까지 했다. 또한 길 중간에는 점형블록이 있어야 할 자리에 일반 보도블럭이 있기도 했다. 아마 보수과정에서 발생한 것 같지만, 점형블록을 따라 이동하는 시각장애인은 당황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결국 동행한 사회복지사로부터 약간의 도움을 받은 뒤 역사로 가기위해 계단을 올랐다. 한손엔 흰색지팡이를, 다른 한 손은 계단 손잡이를 잡고서. 그런데 계단 손잡이를 잡은 손이 까칠해진다. 볼 수는 없었지만 먼지가 가득묻는 것 같은 촉감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나중에 확인해보니 손은 새까맣게 변해있었다. 이처럼 손잡이가 더러운 곳이 많고, 심지어는 껌이 붙어 있거나 가래나 콧물 같은 이물질이 손에 묻을 때도 있다는 것이 동행한 사회복지사의 귀뜸이다. 또한 계단의 시작과 끝을 표시하는 점자스티커도 없는 등 2% 부족한 시설이 아쉬움으로 다가왔다. 건물안으로 들어와 다시 걷기 시작했다. 선형블록과 점형블록에 의지한 채. 그런데 또다시 난관에 봉착했다. 지하1층의 어느 한 곳에서 출입문을 찾기위해 점형블록이 표시된 끝까지 같지만 문은 잡히지 않았다. 안대를 벗어보라는 사회복지사의 말에 따라 확인해보니 출입문 있어야할 곳에 통으로 된 유리벽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처럼 시각장애인이 이용하기에는 겪어야 할 불편이 함정처럼 곳곳에 숨어있었다. ▲보통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어설프지만 나름 열심히 느껴보려던 장애인 체험을 마치고 경기도지체장애인협회로 돌아왔다. 체험을 마친 후 협회 직원들과 많은 얘기를 나누면서 조금은 더 장애인을 잘 이해하게 됐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마음 한켠이 무겁게 자리했다. 이윽고 결심했다. 오늘 느낀만큼 나부터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기로. 그리고 장애인을 만나면 조금은 더 친절하게 웃고 그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서 노력하리라고 다짐했다. 오늘 얻은 지혜를 지인들에게도 전하리라는 마음과 함께 이명관기자 mklee@kyeonggi.com

[1일 현장체험]카레이서

모터의 굉음과 타이어의 마찰음, 화려한 코너링. 카레이싱하면 떠오르는 것들이다. 카레이싱은 올림픽, 월드컵과 함께 세계 3대 빅 스포츠 이벤트라 불릴만큼 단일 종목으로는 가장 많은 시리즈와 세계 최다의 팬을 확보하고 있다. 국내의 카레이싱은 선진국에 비하면 아직은 일천하다 하지만 몇몇 팀들과 프로모터의 지속적인 투자와 노력으로 TV 예능 프로그램의 소재로 다뤄지는 등 인기 스포츠로 발돋움하기 위한 발판이 속속 마련되고 있다. 통상 카레이싱이라고하면 화려하지만 거칠고, 위험하다는 게 대부분 사람들은 인식한다. 기자는 일일체험의 기회를 맞아 누구나 한 번쯤은 꿈꿔봤을 카레이서를 체험하기로 했다. 선뜻 결정은 내렸지만, 국내 레이싱경기장은 영암, 태백, 인제 3곳이 대표적으로 체험을 위해 찾아가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다. 그러던 중 마침 안산에 위치한 스피드웨이 서킷에서 슈퍼레이스 슈퍼1600클래스에 출전할 미니 레이싱카의 드라이버를 선발하는 컨테스트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했고, 국내 레이싱팀인 모터타임 윤종덕 단장의 도움으로 일일 카레이서 체험의 기회를 얻었다. ■카레이서 문외한의 사전 탐색전 우려했던 비 소식은 피했으나, 서킷을 찾는데서부터 난항을 겼었다. 우여곡절 끝에 찾아낸 서킷은 예상했던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서킷이 맞긴 한 건가 이리저리 살피는 기자에게 건장한 체격의 한 남성이 다가왔다. 모터타임 윤종덕 단장이었다. 윤 단장은 정식 테스트가 시작되기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다며 주행체험을 하게 될 경주차량으로 안내했다. 기자는 모터스포츠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다. 일단 상대부터 파악할 요량으로 다짜고짜 보닛부터 열어달라고 했다. 열어줘 봐야 고작 아는 거라고는 커다란게 엔진이요. 액체가 담긴 네모난 통이 오일 박스라는 것 정도였다. 눈치를 챘는지 이내 윤 단장이 한 여성카레이서를 소개했고, 이 여성 카레이서는 기자에게 경주차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한국은 외국과 달리 경주용 차량을 따로 제작하지는 않는다. 일명 박스카라고도 불리우는 한국의 경주차는 국내에서 양산되고 있는 일반차량 중 기준치 이상 판매가 된 차량에 한해서 경주용으로 개조가 가능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때문에 외국의 경주전용차량인 F1 의 납작하고 독특한 외형과는 달리 국내의 경주차는 일반인들에게도 친숙한 겉모습을 가지고 있다. 차량의 내부는 뒤 좌석과 조수석을 모두 떼어내 운전석만 덩그러니 놓여 있고, 운전석 옆으로는 두터운 철제봉이 가로 뉘어 있다. 롤케이지라는 이름의 이 철제봉은 차가 뒤집히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 드라이버를 보호하기 위해 운전석에 설치된 내부장치다. 특수제작된 운전석 버킷 시트에는 5갈래로 나뉘어 몸을 감싸도록 설계된 안전벨트가 장착돼 있다. 갈래 수에 따라 3점식, 4점식, 5점식 벨트로 나뉘며 경기에서 허용되는 것은 4점식부터다. 일반 승용차와 별다른 차이를 느낄 수 없는 겉모습과는 달리 내부는 드라이버의 안전을 극대화할 수 있는 구조로 개조된 모습이었다. 여성 카레이서 전난희(34) 선수는 카레이서라고 하면 보통 위험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안전장치가 드라이버를 보호하기 때문에 경기 때도 선수간 약간의 배려만 있다면 오히려 일반도로에서 주행하는 것보다 안전합니다라고 말했다. ■빠른 주행의 승부처 코너링 명색이 카레이서 일일체험인데, 주행 한번 해보지 못하고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 테스트용 MINI 노멀 차량을 타고 서킷주행을 체험하기로 했다. 주행에 앞서 카레이서 재킷과 헬멧, 장갑을 착용한 뒤 전 선수의 동승하에 경주차를 몰고 서킷에 들어섰다. 별것 아니라는 듯 과감하게 엑셀을 밟은것 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여유는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초입부터 커브라기보다는 유턴에 가까운 구간이 앞을 가로막았다. 출발 전 아마추어 카레이서들이 경고했던 마의 구간 이 분명했다. 일명 김수로 코스로 통하는 이 코스는 영화배우 김수로가 모 방송촬영 당시 구간 통과에 애를 먹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어디서 생긴 자신감일까. 코너에 진입하자마자 엑셀 위에 얹어놨던 오른발에 힘이 들어갔고, 차는 그대로 바깥쪽으로 밀려났다. 애써 당혹감을 감췄지만, 한없이 느려진 속도는 숨길 수가 없었다. 사실 주행 전 기자는 근거 없는 자신감에 차있었다. 서킷을 달리는 차량들의 속도도 그다지 빨라 보이지 않았고, 빨리 달리는 것만큼은 카레이서 못지않게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백미러에 비친 기자의 모습은 머릿속에 그토록 그려왔던 전설적인 카레이서 미하엘 슈마허의 모습이 아닌 놀이공원에 범퍼카 타러 온 청년의 모습뿐이었다. 계속된 난코스로 멘탈에 금(?)이 가기 시작할 때였다. 전 선수는 코너를 진입할 때는 코스의 바깥쪽으로 주행한 뒤 코스가 꺾이는 부분에서 다시 최대한 안쪽으로 붙어 코너를 통과하고 코너가 끝나는 지점에서 다시 바깥쪽으로 탈출하는 게 코너를 빠르게 통과하는 요령입니다라고 코스 주행법을 설명했다. 아웃-인-아웃 의 공식에 맞춰 정확한 타이밍과 지점에서 엑셀과 브레이크, 기어를 컨트롤해 코너를 최대한 빠르게 탈출하는 게 관건인 셈이다. ■프로의 세계에서 찾은 쾌감 얼떨결에 주행체험을 마친 뒤 대회에서 사용되는 경주차량으로 시승을 해보기로 했다. 실제 주행속도를 느껴보기 위함이었다. 기자가 이때까지 크게 착각하고 있었던 것은 모터스포츠는 다른 스포츠와 달리 여성과 남성의 구분이 따로 없이 동등하게 경쟁이 치뤄진다는 것과 기자를 태우고 시범주행을 할 이 여성 카레이서는 쟁쟁한 남자선수들과 함께 아무런 어드벤티지없이 경기를 치러 당당히 여성 최초 1위를 차지해낸 인물이라는 것 이 두 가지다. 남성 카레이서보다야 거칠지 않겠지 여전한 착각 속에 Cruze 레이싱카 조수석에 자리했다. 안전벨트와 몸 사이에 유격이 생기면 위험하다는 충고에 괜찮다는 말과 함께 조용히 벨트 조임끈을 한 번 더 당겼다. 저도 이 서킷은 한 번도 달려보지 않아서 완전한 속도를 보여드리기는 힘들 것 같네요라는 전 선수의 말에 어느정도 안심은 됐지만,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했고, 경주차가 서킷에 들어서기도 전에 그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엔진 소리가 한번 크게 울렸을까. 눈 깜짝할 새에 출발지는 아득히 멀어졌고, 정신도 함께 아득해졌다. 그래 직진 코스잖아, 커브에서는 이렇지 않겠지. 기자의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갔고, 결국, 주행 내내 조수석 손잡이를 부여 잡은 채 진땀을 빼야했다. 두 바퀴를 돌았을까. 이제 충분히 체험한 것 같네요라는 말이 미처 입 밖으로 나오기도 전에 서킷 출구를 지나쳐 버렸다. 서킷에서 후진은 규정상 불가능하다. 전 선수는 원망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기자를 외면한 채 전방만을 주시하며 3번째 주행을 이어갔다. 3바퀴째. 벌써 코스가 익숙해졌는지 전 선수는 전보다 더 능숙하게 서킷을 내달렸고 기자에게 구간구간 코스의 특성과 공략법 등을 세세하게 알려줬다. 믿음이 생긴 탓인지, 적응이 된 탓인지, 귀에만 들어오고 머리에는 새겨지지 않던 전 선수의 코칭이 하나씩 이해가 되기 시작했고, 앞서 직접 체험했던 주행과 어느 정도 비교해 볼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그때부터였을까. 두렵기만 했던 서킷 주행이 묘한 스릴로 다가오기 시작했고, 드라이버가 입으로 말한 대로 정확하게 코스를 통과할 때의 쾌감도 찰나였지만 느낄 수 있었다. 조수석에 동승했을 뿐인데 주행을 마치고도 숨이 차고, 피로감이 몰려왔다. 전 선수는 카레이싱은 정적이면서도 동적인 스포츠로 뛰어난 정신력과 판단력 그리고 체력을 요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카레이서들은 차량관리 외에도 철저한 체력관리를 병행하고 있습니다라고 강조했다. 이 느낌때문에 카레이서를 하는구나 헬멧을 벗으면서 문득 든 생각이었다. 순간순간 들었던 묘한 기분이 짧지만 강하게 뇌리에 새겨졌다. 카레이싱이라는 스포츠가 국내실정에는 맞지 않다고 하는 사람도 물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맞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어찌 보면 카레이싱을 아직 잘 모르는 것일 수도 있다. 관련기관들의 적극적인 홍보로 자연스럽게 모터스포츠가 팬들의 머릿속에 자리 잡았을 때 진정한 국내 모터스포츠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매력이 아닌 마력으로 표현된다는 카레이싱. 그 1천분의 1초를 다투는 스피드의 세계에 잠깐이라도 빠져본다면 카레이싱만이 가진 특별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박준상기자 parkjs@kyeonggi.com 사진=추상철기자 scchoo@kyeongggi.com

[1일 현장체험] 인천시립무용단 남자무용수

웅장한 무대 위의 화려한 의상, 신명나는 음악과 함께 펼쳐지는 그네들의 몸짓, 호소력을 듬뿍 담은 표정연기, 그동안 관람석에만 앉아서 바라보던 무용수의 모습이다. 몸짓으로 관객에게 내용을 전달하고, 감동을 이끌어내는 사명감을 가진 이들. 오늘 내가 체험할 직업은 바로 무용수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몸짓은 그저 박수뿐, 자타공인 몸치인 나였다. 동료 기자들은 태권도를 전공했던 내게 유연하니까 당연히 춤도 잘 추겠지라는 응원을 보내며 기대감을 잔뜩 높였다. 큰일이었다. 나는 부드럽고 유연한 무용을 딱딱하고 박력 있는 무술로 바꿔버리는 사내였기 때문이다. 자연히 체험 하루 전 밤늦게까지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이 연방 머릿속을 맴돌며 나를 괴롭혔다. 체험이 있는 날 아침, 무용을 전공한 아내마저도 그저 알 수 없는 미소만 보일 뿐이었다. 봄내음 가득한 3월 어느 날,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며 인천시립무용단 연습실로 향했다. ▲몸치 초보무용수의 입단기 어디로 가야 하지? 오전 9시30분.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시립무용단 연습이 10시부터 있어서 나름대로 발걸음을 서둘렀다. 무대 뒤의 그네들은 어떠한 삶을 살고 있을까라는 호기심이 밀려왔다. 누구나 한 번쯤은 화려한 무용수에 대한 환상을 가져 봤을 터. 그러나 웅장한 자태를 뽐내는 건물 안은 생각보다 미로와 같이 복잡했다. 그동안 관람석으로 직행했던 터라 일반인의 발길이 드문 시립무용단 연습실을 찾는 데는 진땀을 빼야만 했다. 드디어 도착. 오늘 내 사수인 유봉주 단원(44)을 복도에서 만난 게 얼마나 반가웠던지. 연습실에 들어가기 전 미리 준비해온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으며, 사내 둘은 이야기꽃을 피웠다. 13년차인 유 단원은 학창시절부터 방송댄스에 소질이 있었다 한다. 그러나 군 제대 후 연구실에서 제품출하 실험연구원으로 무용수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문화센터에서 한국무용을 배우던 어머니의 권유로 늦은 나이에 무용학과 대학에 진학한 특별한 이력을 갖고 있다. 인천시립무용단과의 인연도 특이하다. 지난 1994년 인천예술회관이 개관할 때 구경하러 왔다가 고장 난 엘리베이터에 갇힌 일이 있단다. 함께 타고 있던 무용단원과 이야기하다 객원 무용수 오디션 정보를 얻고 늦깎이 무용수가 됐다. 이제 들어가 볼까요? 유 단원의 말이 떨어지자 내심 내가 오늘 다리 한번 시원하게 찢어보겠구나라는 걱정이 엄습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저마다 연습에 열중하고 있는 수많은 무용수가 눈에 들어왔다. 오늘은 오후 2시부터 군부대와 학교, 노인회관 등을 직접 찾아 작은 공연을 펼치는 찾아가는 공연을 하는 날. 지난 1981년 창단해 33년 전통을 자랑하는 인천시립무용단 소속 단원들은 정기기획 공연 이외에도 체험 프로그램, 찾아가는 공연을 통해 우리 전통문화의 아름다움과 예술세계를 전달하고자 묵묵히 땀을 흘리고 있다. 창단 이후 77회 정기공연, 750여 차례 공연이라는 경이로운 수치가 말해주듯 묵묵히 구슬땀을 흘리며 연습에 몰두하고 있는 이들의 모습에선 짙은 사명감이 서려 있다. 공연 당일인 만큼 혹여 무용수들이 예민해하진 않을까, 방해되는 건 아닐까 싶었던 우려는 어서 오세요.라는 단원들의 환영에 이내 사그라들었다. 게다가 내 사수는 오늘 공연이 없는 비번이다. 몸을 풀었다. 역시나 다리를 찢었다. 아름다운 여성 단원이 안쓰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자 아픈 기색조차 할 수 없었다. 모두 46명의 단원 중 남자 무용수는 8명에 불과하다. 오늘 내가 중점적으로 배울 동작은 남성의 춤인 선무다. 부채를 든 선비의 춤, 한량이 추는 춤이라 해서 한량무라고도 한다. 높이 조절과 무릎을 굽히고 걷는 방법. 보폭이 짧은 잔걸음에서부터 쉽게 말해 투스텝인 까치채 보법까지. 유 단원은 한량스럽게 표현하는 데는 걸음걸이가 우선 뒷받침돼야 한다며 걷는 게 가장 어렵다. 걷는 연습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5분30여 초에 달하는 안무를 몇 시간 만에 다 외우기는 불가능했다. 앞서 음악에 맞춰 전체 안무를 시범 삼아 보여준 유 단원의 자태는 속도의 완급조절이며 감히 내가 쫓아갈 수조차 없는 다른 세상의 모습이었다. 부채를 활짝 펴는 방법도 크게 3가지로 나뉜다. 동작마다 정교함이 스며 있다. 같은 남자지만 유 단원의 모습은 기가 막혔다. 춤에 대한 열정도 남다르고 시간 날 때마다 다른 무용단의 공연도 꼼꼼히 챙기면서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베테랑 무용수이면서도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하는 그의 모습에 존경심마저 일었다. 잘생긴 외모에도 아직 미혼이라고 했다. 예술가는 고독하다고 했던가, 그는 프로였다. ▲전문 무용수와 함께 호흡하는 것만으로도 영광 멈춰 있는 자세를 얼핏 흉내만 내도 내겐 큰 성과였다. 한참을 걸음걸이와 부채 펴는 연습을 마친 뒤, 이내 자세 교정에 돌입했다. 마치 기합받는 것 같습니다. 나도 모르게 앓는 소리가 나왔다. 무릎을 꼬아 붙인 꾸부정한 자세에서, 양팔을 활짝 편 뒤 따가운 햇볕을 부채로 가리는 모습, 시키는 사람은 쉽게 말하는 데 따라야 하는 사람의 몸은 영 안 움직인다. 한 동작도 제대로 못 했는데 금세 자세를 숙이고 양다리를 벌리면서 부채를 뿌리는 모습을 하라는 주문이 들어온다. 도대체 무슨 소리야? 가장 큰 난관은 다리를 꼰 채 한쪽 팔은 앞으로 하고 부채를 편 다른 한쪽 팔은 뒷짐을 지는 모습으로 동작을 연결하는 것. 땀이 비 오듯 났다. 글로 설명하기엔 한계가 있지만, 확실한 건 정말 힘들었다. 멈춘 자세에서 몸을 숙이고, 안 쓰는 근육과 관절을 사용하자니 온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일일이 자세를 잡아주는 유 단원의 이마에까지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성공이다. 제법 자세가 나온다는 칭찬 아닌 칭찬을 듣자마자 털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유 단원이 갑자기 또 다른 연습실로 나를 이끈다. 시립무용단 연습실은 두 곳이다. 그는 색다른 경험을 할 좋은 기회라고 했다. 문을 열자, 남여 무용수가 짝을 이뤄 연습이 한창이다. 공연 일부분을 장식하는 야행이라는 안무다. 밤으로의 여행이라는 주제를 담은 창작 한국무용으로, 모두 10명의 남녀 무용수가 5팀으로 나뉘어 6분간 듀엣 공연을 펼친다. 입이 쩍 벌어지는 광경이 반복됐다. 붉은색 치마를 두른 여성 단원을 남성 단원이 밀치고 잡아당기는가 하면, 번쩍 들어 올리기도 한다. 내가 해 볼 차례란다. 마침 감기 탓에 오늘 연습에 참여하지 못한 남성 단원의 자리가 비어 있었다. 아무리 상대 없이 홀로 연습하고 있는 여성 무용수를 아무런 기술이 없는 내가 들어 올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머쓱한 인사를 건넨 뒤, 이끌리듯 동화된다. 혹시나 파트너가 다칠까 봐 과격하고 어려운 안무는 피했지만, 전문 무용수들 한가운데 선 채 함께 호흡할 수 있다는 자체가 영광이었다. 이게 한국무용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던 차에 유 단원은 시립무용단은 한국무용을 기반으로, 현시대에 맞게 재해석하는 창작 작업을 활발히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마음만은 무대 위 주인공 무용장르는 통상 발레와 현대무용, 한국무용 등 3갈래로 구분된다. 인천시립무용단은 이 중에서 한국무용을 기반으로 현대무용과의 융합을 시도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다음 달 25일 펼쳐질 시립무용단의 정기공연작 아라의 서(書)가 그렇다. 서해를 향해 열려 있는 인천과 그 바다를 넘나드는 바람 같은 사람들의 역동적인 추상을 춤으로 그려낸다. 지난해 이 작품의 안무를 창작해 초연에 올린 김윤수 전 국립무용단 수석단원이 최근 인천시립무용단 신임 예술감독으로 선임돼 작품 완성도를 더욱 높였다. 한국무용의 재해석은 보는 이들에게 2배의 감동을 선사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전부는 이해가 안 되더라도, 분명히 그들의 몸짓에는 감정과 이야기가 있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오늘의 체험은 여기서 마침표를 찍기로 했다. 어느덧 이들이 오늘 공연에 투입될 시간이 임박했기 때문이다. 누구나 한 번쯤 무대 위 주인공이 되고픈 갈망을 갖고 살아간다. 직업체험인 만큼 공연까지 한번 해보자고 마음먹었지만, 일찌감치 포기했다. 수백 벌의 공연 의상이 보관된 의상실에서 자신의 것인 이몽룡의 복장을 한번 입어 볼 수 있게 해준 유 단원의 배려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확실한 건 이제 나는 관람석에서 공연을 보더라도 단순히 눈으로만 보며 건성건성 박수치지는 않을 듯하다. 비록 몸은 관람석에 있지만, 마음은 무대에 올라가 진심으로 그들과 호흡할 수 있게 됐다. 신동민기자 sdm84@kyeonggi.com 사진= 장용준기자 jyjun@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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