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현장체험]전통된장 담그기ㆍ된짱 뜨기

좋은 날을 골라 고사를 지낸다. 3일 전부터 불경스러운 일을 피하고 외출을 삼간다. 당일에는 목욕재계를 하고 음기를 발산하지 않기 위해 한지로 입을 막는다. 이 철저하고도 경건한 의식은 모두 우리 조상들이 장을 담글 때 치른 일들이다. 수백년, 수천년 전부터 우리 밥상 한켠에 자리했던 된장은 여전히 한국인의 주요 식품이지만, 요즘에는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내고 있는 만큼 그 의미가 가벼워진 것 같다. 젠장이라는 단어와 발음이 비슷하다고 해서 대신 쓰이거나 자기 분수에 맞지 않게 명품을 애용하고 사치를 부리는 여성을 비하하는 된장녀라는 단어가 사회 전반에서 통용되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봄이 올락말락하는 3월의 어느 날, 된장의 소중함을 몸으로 느껴보겠다며 양평군 지평농협 전통장류 가공공장을 찾았다. 옛 방식으로 된장을 직접 담가보고 된장의 모든 것을 파헤쳐보며 오늘 하루 진짜 된장녀가 되어 보기로 한 것. 결론부터 말하자면 장 담그기는 지극히 전통적이면서도 놀랄 정도로 과학적이었고, 예상보다 몸이 힘든 육체노동이기도 했다. 이 날은 마침 농협중앙회 경기지역본부와 농가주부모임 경기도연합회 시군회장단 70여명이 소외계층을 돕기 위한 전통된장 담그기 및 된장 뜨기 행사를 실시한 날이었다. 농가주부모임 경기도연합회는 지난 2007년부터 매년 회원들이 직접 담근 전통 된장을 기금마련을 위한 공동소득사업으로 펼쳐 왔으며, 수익금으로 소외계층과 사회복지시설 등을 돕는 사랑의 나눔 활동을 전개해 오고 있다. 앞치마와 위생모, 고무장갑까지 끼고 유리온실로 들어서자 수천개의 항아리가 햇빛을 받으며 줄을 지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항아리보다는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장이 익숙한 기자는 그 모습만으로도 감탄이 터져나왔다. 한쪽에는 농가주부모임이 만드는 장이 담긴 배꼽까지 오는 큰 항아리들이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저마다 표식을 단 작은 항아리들이 자리했다. 작은 항아리들은 매년 장담그기 체험을 오는 이들의 것으로 항아리 하나하나에는 표식에 장 담그기 체험자 이름과 장 담그는 날, 장 뜨는 날이 적혀 있었다. 양점남 농협중앙회 경기지역본부 여성복지실장은 한번 장 담그기 체험을 해본 사람들은 매년 이 곳을 다시 찾을 정도로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곳의 된장은 주재료인 콩부터 작은 부재료에 이르기까지 순수 국산을 사용한다. 양평 관내에서 생산한 믿을 수 있는 콩, 농협을 통해 공수한 대추와 고추, 천일염과 지하 160m 암반수, 숨쉬는 독까지 말이다. 공산품에 들어가는 방부제와 색소, 화학조미료는 일절 첨가하지 않는다. 자, 이제 된장을 한번 담가 볼까요? 눈이 휘둥그레져 있는 기자를 김정자 반장(57)이 잡아끌었다. 작업대에는 네모난 모양의 메주들이 쌓여 있었다. 지난해 가을 햇콩이 날 때 좋은 콩을 골라 만들어 말려 놓은 것이다. 김 반장은 좋은 메주는 겉이 단단하고 속은 말랑말랑하며 밝은 갈색을 띤다고 설명했다. 손에 들어보니 묵직하면서도 탄력이 느껴졌다. 메주를 항아리에 넣기 전에 꼭 거쳐야 할 순서가 있다. 항아리를 깨끗이 소독하는 일이다. 항아리에 달군 숯을 넣고 꿀을 한 수저 떨어뜨리면 연기가 피어오르면서 항아리가 소독된다. 말끔히 소독된 항아리에 메주를 여러 개 넣어봤다. 항아리가 거의 찰 때까지 채워 넣은 다음 대나무 가지를 휘게 해 물을 부어도 메주가 떠오르지 않게 고정시킨다. 메주가 물 위로 떠오르면 장이 잘 우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물을 부을 차례. 커다란 항아리에 소금물이 담겨 있었다. 각종 미네랄이 풍부한 천일염으로 만든 소금물이다. 김 반장은 천일염의 쓴맛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간수를 제거해야 한다. 이 소금은 3년 동안 간수를 뺀 소금이라며 일주일 전에 이 소금에서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이물질까지 거른 뒤 깨끗한 지하수에 풀어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에는 동지가 지난 후에 내린 눈을 항아리에 받아서 녹인 납설수(臘雪水)로 장을 담그면 구더기가 생기지 않는다고 해 이 물로 장을 담갔다고 한다. 보통 까다로운 작업이 아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소금물의 농도. 지역이나 장 담그는 시기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염도를 18%에 맞췄다. 김 반장은 염도계가 없던 시절에는 계란을 물에 띄워봤다며 떠오른 부분이 500원 동전 만한 크기라면 18%로 맞춰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왔다갔다 하며 바가지에 소금물을 길어 된장 항아리에 부었다. 물 항아리에서 물이 비어갈수록 허리를 굽히고 팔을 쑥 집어넣어 물을 길어올리기가 쉽지 않았다. 물을 항아리에 가득 찰 정도로 부은 뒤에는 홍고추 3개, 대추 3개, 그리고 숯을 띄운다. 여기에도 각각의 중요한 역할이 있다. 숯은 흡습성이 있어 잡내를 빨아들이는 작용을 하고 통고추는 살균 효과가 있을 뿐 아니라, 대추와 함께 붉은색이어서 나쁜 것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는 액막이용이다. 물론 단맛과 매콤한 맛도 가미해준다. 이제 다 됐나 싶었더니 또 할일이 남아있었다. 고추와 숯을 엮어놓은 금줄을 항아리 입에 빙 둘러 놓는 것이다. 금줄은 벌레는 물론 잡귀까지 막아준다. 과학과 미신이 오묘하게 섞이면서도 각각 제 역할을 해내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여기까지 완성했다면 이제 남은 것은 기다림과 정성이다. 40~50일간 항아리 주변을 깨끗이 닦으며 햇볕을 쬐어주면 숙성과 발효를 거쳐 장이 익어간다. 이 때 바로 장 띄우기가 진행된다. 된장과 간장의 운명은 여기서 갈라진다. 항아리에서 메주덩어리를 건져내 으깬 뒤 깊은 맛을 내기 위해 메주가루와 섞어주면 된장이 된다. 메주를 건져낸 물을 달인 뒤 식히면 간장이다. 한쪽에서는 이미 농가주부모임 경기도연합회 시군 회장단들이 지난해 담갔던 된장을 포장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커다란 대야에 옮겨놓은 된장을 1㎏ 투명용기에 담고 스티커를 붙이는 일이다. 대부분의 회원들이 매년 이 행사에 참여하고 있는지라 호흡을 맞춰가며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지난번보다 색깔이 좋네 올해는 더 맛있다라는 대화를 주고받으며 작업에 여념이 없었다. 기자와 함께 된장을 담던 회원 오정해씨(59여의정부)는 3년째 장 담그기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며 시판 된장과 확실히 다르다. 직접 담가 먹으니 안심이 되고 맛도 더 좋다고 말했다. 이 때다 싶어 장을 살짝 찍어먹어 보니 짜고 달큰한 맛과 함께 시판된장에서는 잘 느끼지 못 했던 치즈 맛이 났다. 기자의 반응을 눈치챈 듯 김 반장은 된장과 치즈는 단백질을 원료로 한 재료를 발효시켜 만든다는 점에서 닮은 꼴이라고 말했다. 농가주부모임이 이날 완성한 전통된장은 총 1천㎏. 이 중 360㎏은 가정의 달인 5월 소년소녀가정, 홀몸어르신 및 복지시설 등 관내 소외계층에 전달하고 나머지 640㎏은 불우이웃돕기 기금마련과 다음 번 된장을 만들기 위한 공동소득사업의 일환으로 일반 소비자에게 판매할 예정이다. 전통 장을 직접 담가보면서 우리 먹거리의 소중함을 느끼고 소외계층과 농민을 돕는 값진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다가온 점심시간. 우리콩으로 만든 두부에 김치를 싸서 먹고 푹 끓인 된장국을 한술 뜨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얼마나 정성스레 만든 된장인지 알고 나니 그 맛이 더 구수하고 깊게 느껴졌다. 햇볕과 바람, 물, 콩, 소금 등 수많은 변수에 따라 장의 맛은 미묘하게 달라진다. 그리고 그 맛은 짧게는 한 해, 길게는 수년간 가족들의 식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왜 그렇게 장 담그는 일을 신성시 하며 공을 들였는지 알 것 같았다. 역시 된장은 가볍게 볼 식품이 아니었다. 구예리기자 yell@kyeonggi.com 사진= 전형민기자 hmjeon@kyeonggi.com

[1일 현장체험]가수 하예 매니저가 되다

그들에 대한 궁금증은 TV보다가 생겼다. 간혹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해 연예인 못지않은 예능 감각을 뽐내는 그들. 뭔가 가려진 듯한 사람들. 연예인을 위해 뒤에서 일하는 매니저라고 불리는 이들.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는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고, 희생이라는 키워드에도 잘 어울리는 느낌이다. 전면에 나서기를 꺼리는 사람일거 같기도 하다. 과연 그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마침 단 하루지만 연예인 매니저라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 뭔지, 이들의 정체가 뭔지에 대해 알아볼 기회가 생겼다. SBS 일요일이 좋다-K팝스타 시즌2에서 예쁜 외모와 매력적인 보이스로 TOP8까지 오른 가수 하예(본명 송하예) 양의 1일 매니저를 하기로 한 것. 물론 TV에서만 보던 연예인을 바로 앞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도 내심 좋았다. 아무튼 오늘 하루 나는 가수 하예의 매니저다. 만나기로 한 장소에는 하예 양과 매니저들이 나와 있었다. 만나자마자 대뜸 그들에게 매니저가 무슨 일을 하는 거냐고 물었다. 내 예상대로 매니저들은 쭈뼛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할 수 없이 하예 양에게 직접 물었다. 매니저들은 무슨 일해요? ■ 엄마가 하는 일? 그냥 엄마 같아요 엄마? 와 닿지 않았지만 문제될 건 없었다. 조금 전 선배 매니저가 옆에서 잘 보살피기만 하면 된다고 했으니. 첫 일정은 운동. 5월 음반 발매를 앞둔 상황에서 운동은 필수코스. 여기는 트레이너가 따로 있어 매니저가 할 일은 없다. 하지만 의욕 넘치는 나에겐 들리지 않았다. 하예 양 옆에 붙어 서서 도움을 주기 위해 애썼다. 부담스러워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지만 적극적인 엄마로 변신한 나의 행동을 막진 않았다. 일정을 마치고 차에서 나름 일을 잘 한 것같아 뿌듯해하고 있는데 선배 매니저가 웃으며 말했다. 과잉보호하는 거 아니냐고. 챙겨주는 건 좋은데 부담스러워할 수 있다며 조절하라고 조언했다.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든든하다는 느낌을 주는 정도면 된단다. 처음부터 잘 설명해줬으면. 옆에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안정감을 주는 엄마. 매니저는 엄마여야 했다. 엄마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하예 양의 표정을 살폈다. 그런데 이상하게 조금씩 표정이 굳어가고 있었다. 하예 양에게 엄마처럼 다정하게 이유를 물었다. ■ 연습할 때는 매니저 언니오빠들이 무서운 선생님으로 변해요 어느덧 연습실 근처에 다다르고 있었다. 하예 양의 말에 조심스럽게 선배 매니저들의 표정을 살폈다. 선배 매니저들의 표정이 아까와는 많이 달랐다. 그들의 얼굴엔 어느새 진지함이 묻어났다. 이날은 보컬과 댄스 트레이닝이 예정돼 있었다. 보컬 트레이너가 오기 전 하예 양이 목을 풀기 시작했다. 이내 선배 매니저의 지적이 연습실을 울린다. 연습도 실전처럼 엄마가 잔소리를 하는 느낌은 아니었다. 엄한 선생님이었다. 과잉보호 엄마였던 나도 변해야 했다. 곧바로 한 마디 거들었다. 슬픈 노래가 슬프게 들리지 않아요 하예 양의 표정이 굳어졌다. 신경이 쓰였다. 본격 보컬 트레이닝에 앞서 쉬는 시간. 의기소침해진 듯한 하예 양에게 아까는 미안했다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리고 정말 잘했는데 매니저들이 괜히 그러는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 괜찮아요. 그래도 막 뭐라고만 하는 건 아니에요. 격려도 해줘요 의외로 덤덤했다. 가만 생각해보니 무섭게 지적하다가도 간간히 파이팅을 외친 거 같기도 했다. 엄한 분위기에 압도돼 응원도 지적으로 들렸나 보다. 아니나 다를까. 가장 심하게 지적하던 선배 매니저가 오더니 집중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며 격려했다. 이후에도 엄한 선생님들은 어느덧 치어리더로 변해 하예 양을 치켜세우고 있었다. 이런 변화무쌍한 사람들을 봤나. 이유는 있었다. 치열한 가요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늘 긴장해야 한단다. 당근과 채찍을 잘 활용하는 것이 하예 양에게 도움이 된다는 건 공감할 수 있었다. 한참 생각에 빠져있는 그때 선배 치어리더(?)가 종이 뭉치를 꺼냈다. 5월에 나올 음반 콘셉트 관련해서 회의가 예정돼 있었던 것. 내가 뭔가 보여줄 수 있는 기회였다. 이때 하예 양이 옆에 와서 한 마디 거든다. ■ 매니저 언니, 오빠들 거의 전문가 수준이에요 실제로 그랬다. 음반 콘셉트 회의에서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들은 현재 가요계 전반에 대한 흐름을 꿰뚫고 있었다. 또 현재 가요계에 대한 분석은 물론 앞으로의 전망까지 내놨다. 거의 대중문화평론가 수준이었다. 나도 음악을 소비하는 대중 입장에서 하예 양에게 잘 어울릴 만한 콘셉트를 제안했다. 물론 선배 매니저들만큼 전문적인 의견이진 않았지만 그들은 내 제안을 참고하겠단다. 다가오는 5월 하예 양의 앨범 콘셉트에 내가 제안한 내용이 들어갈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꽤 오래 이어진 회의가 끝나니 살짝 피로가 몰려왔다. 아마 끊임없이 하예 양에게만 집중하다보니 쉴 틈이 없었던 것 같았다. 그러고 보면 선배 매니저들은 이때까지 개인적인 일을 하는 것을 못 봤다. 그냥 하예 양이 그들의 전부인 듯했다. 지쳐있는 내 표정이 안쓰러웠던지 잠깐 쉬면서 이야기 나누자는 내 제안에 흔쾌히 응했다. 하예 양에게 이런 생활이 힘들지 않냐고 물었다. ■ 힘들 때면 매니저 언니가 많은 얘기를 해줘요. 고민 상담사처럼? 또 변신해야했다. 그래도 이번에는 자신이 있었다. 하예 양보다 9년을 먼저 살았으니 지금 가지고 있는 고민에 대한 답은 내려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게 웬 걸. 그녀의 고민은 자신의 목소리가 경쟁력이 있을까, 좋은 음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등 진지한 것들이었다. 조언을 해주고 싶었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답은 땀은 배신하지 않는다 등 식상하기 짝이 없는 말뿐이었다. 자신감을 심어주는 조언을 쉽게 하는 매니저들의 스킬은 정말 전문 상담사 못지 않았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이들의 정체는 뭘까. 일상에선 엄마로 활동하고, 연습 때는 엄한 선생님으로 변했다가 이내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는 치어리더가 되기도 한다. 또한 그들은 음악에 관해서는 전문가 뺨치는 지식을 가지고 있고, 고민을 토로할 때는 상담사로 변신해 뛰어난 상담 스킬을 발휘한다. 그들은 능력자였다.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을 그때 하예 양이 충격적인 말을 건넨다. ■ 이것뿐만이 아닌데 또 있다는 말인가 어쩌면 매니저라는 이름보다 하예 전문가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듯했다. 일정을 마무리하고 밖으로 나왔다. 오랜 시간 함께 한 건 아니지만 서로가 꽤 편해졌나보다. 경직된 모습을 보이던 매니저들도 한결 편해진 듯했다. 어울려 대화를 나누다 신발 끈을 묶으려 잠깐 멈춰 섰다. 잠깐 기다려달라고 말하려던 순간, 하예 양과 매니저들 뒷모습에서 이날 본 다섯 가지 모습과는 다른 무언가가 느껴졌다. 친구 그들은 친구였다.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며 걸을 수 있는 그들은 아주 가까운 친구이기도 했다. 방송에 가끔 나오던 매니저의 모습. 어떤 사람들일까 에서 시작된 이번 체험에서 그 궁금증을 모두 해소하진 못했다. 그들은 엄마, 엄한 선생님, 치어리더, 대중문화평론가, 고민상담사, 아주 편한 친구라는 것 정도만 알았을 뿐이었다. 이날 내가 본 매니저는 하나로는 단정 지을 수 없는 카멜레온(?) 같은 사람들이었다. 신지원기자 sj2in@kyeonggi.com 사진=전형민기자 hmjeon@kyeonggi.com

[1일 현장체험]경기도의료원 파주병원 간호조무사

9988234. 다소 생소한(?) 이 숫자들의 나열은 무병장수를 소망하는 어르신들에게 매우 익숙한 숫자들이다. 즉, 99세까지 팔팔(88)하게 살다가 2~3일 정도만 아프고 세상을 뜨고 싶다는 소박하지만 달성하기 어려운 주문을 담고 있는 것. 그만큼 노년층의 병원 신세 안 지고 건강하게 살다 죽기는 오랜 소원이다. 그리고 이 소원을 이룰 수 있도록 365일 병들고 아픈 환우들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간호조무사들의 숫자만 20만 명에 이른다. 이 숫자는 대한간호조무사협회가 지난 2013년 6월 말 기준으로 산후조리원, 사회복지시설 등을 포함한 의료기관에서 활동하고 있는 간호조무사의 현황을 파악한 것으로 이 중 이색적인 수치가 눈에 띈다. 바로 금남(禁男)의 구역으로 여겨졌던 간호업무의 영역을 남성의 힘과 우직함으로 뚫었다는 방증을 보여주는 남녀 성비 현황 자료가 그것. 전체 간호조무사 비율 중 5%가량을 차지하는 남자 비율은 실제 임상에서 근무하고 있는 남자 간호조무사의 수가 1만여 명에 달한다. 이에 기자는 아프고 병든 이들의 도우미이자 전문 의료진의 서포터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남자 간호조무사의 영역을 탐구해보기로 했다. 걱정 반, 설렘 반으로 향한 곳은 파주시민들의 건강 지킴이로 활약하고 있는 경기도의료원 파주병원(원장 김현승). 특히 젊은 환우들보다 나이 지긋한 연배의 어르신들이 무병장수의 소원을 안고 찾는 파주병원의 속살을 들여다보고 일일 도우미로서 환우와 의료진의 좋은 친구가 되리라 다짐한 이날의 체험은 이렇게 시작됐다. ◇환우들의 든든한 도우미로서 활약 다짐 먼저 기자는 일일체험에 대한 병원 측의 협조를 구하고자 우문 행정과장을 찾았다. 우 과장은 기자와 동행해 김현승 원장으로부터 병원에 대한 안내를 담은 영상물을 틀어줬다. 영상물에는 생의 최후를 병원서 맞이한 환우들과 가족들의 애끊는 심정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영상물의 상영이 끝나 촉촉한 눈물이 마르기도 전 김 원장은 이내 송곳 같은 지시로 기자를 긴장시켰다. 환우 가족들의 든든한 파수꾼이자 전문 의료진의 서포터 역할은 만만한 체험이 아닐 것이라는 겁박(?)에 순간 움찔한 것. 하지만 도전해봐야겠다는 의지로 제일 먼저 병원 1층 로비서 민원안내도우미로서 친절한 미소로 고객을 맞이하는 체험으로 산뜻하게 출발했다. ◇미션 1. 함박웃음으로 내원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아라 오전 9시. 이른 시각이었지만 민원실은 일찍부터 몰려든 민원인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이내 지희자(61)주상란(48)강운영(47)전복례(48)씨가 1팀을 이뤄 일사불란한 움직임으로 병원을 찾는 고객들의 불편을 해결해나갔다. 자원봉사자 선배인 지희자씨는 민원인들이 파주병원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대하는 안내도우미는 파주병원의 이미지를 좌우함으로 활짝 웃는 웃음으로 고객을 대해야 한다며 자상한 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꼿꼿하게 취재 일선에 굳어진 어색한 미소며 자세는 포용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으로 되돌아왔다. ◇미션 2. 베드운전 초보딱지를 떼라 다시 자세를 가다듬은 기자는 휠체어 대여 파트로 배정되어 대여인의 신분증을 제시받아 기재 후 반환받은 휠체어를 간단한 소독 절차를 마치고 다시 보관하는 작업을 마쳤다. 이어 기자에게 부여된 임무는 노환으로 입원한 김복임(96여) 할머니를 CT 촬영을 위해 베드로 이동을 시키는 역할. 다행히 공익요원이 배치돼 함께 이동했지만 기자는 긴장의 탓에 몸에 힘이 반짝 들어갔다. 링거를 꼽은 할머니는 의식이 있는 듯 없는듯한 상태에서 초보 운전자에 대해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봐 온몸은 이미 흠뻑 젖었다. 다행스럽게 4층 입원실에서 환자 전용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지하 CT 촬영실까지 무사히 도착, CT 촬영기 앞으로 이송해 촬영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데 성공했다. ◇미션3. 어르신들과 소통으로 울적함을 달래라 할머니의 쾌유를 기원하며 병실을 나서자 환자들의 휴식공간인 휴게실이 눈에 들어왔다. 휴게실을 찾은 여러 입원환자는 삼삼오오 짝을 지어 저마다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휴게실에서 장기를 띠던 김복남씨(56세)는 자원봉사자의 복장을 착용한 기자를 보고 수고가 많다며 격려해줬다. 어르신들에게 때아닌 애교도 부리며 살갑게 다가가는 기자의 모습에 덕담과 여유가 오갔다. 김복남씨는 병원이 친절하고 간호조무사들이 일일이 케어해줘 아주 고맙지만, 병원이라는 공간 자체가 기분 좋은 곳이 아니기 때문에 불편하고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입원한 지 한 달여가 다 되가는데 답답해서 하루빨리 퇴원하고 싶다고 말해 기자의 마음을 찡하게 울렸다. ◇힐링의 아이콘, 그들에게 박수를 이날 하루는 기자에게 많은 점을 일깨워줬다. 병원은 이미 치료의 공간이 아닌, 힐링을 선물하는 공간이라는 것. 그리고 그 중심에 전문 의료진의 예리하고 정확한 치료와 마음 따뜻한 동네 아줌마 같은 자원봉사자, 그리고 환우들의 말벗이자 소통의 창구인 간호조무사가 있었다. 특히 남성으로서 친절과 배려의 마음으로 환우들의 지친 어깨를 토닥이고 든든한 의료인으로서 보건의료에 앞장서는 남자 간호조무사들에게 마음으로 박수를 보낸다. 그들이 있기에 우리가 마음 놓고(?) 의료혜택을 받으며 건강 100세 시대를 향해 한 걸음 다가갈 수 있다. 천근처럼 무겁던 자원봉사자 조끼를 벗고 평상복으로 돌아온 기자는 체험을 마쳤다는 안도보다는 이웃의 아픔을 위해 헌신하는 그들의 노고를 다시 한 번 느낀 소중한 시간이었다는 희망찬 행복을 느끼며 병원문을 나섰다. 파주=박상돈기자 psd1611@kyeonggi.com 사진=전형민기자 hmjeon@kyeonggi.com

[1일 현장체험]양주시보건소 방문간호사

100세 시대를 바라보는 요즈음, 가족의 냉담한 방치와 주위의 무관심 속에 독거노인이 버려지고 있다. 지난해 60세 이상 경기도 노인인구는 160만1천518명. 이 중 20% 정도가 독거노인이라는 통계청의 발표는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해준다. 언어적 정의로 단순히 홀로 사는(獨居) 노인이 아닌, 복지의 사각지대에 무방비로 노출된 외로운 우리의 이웃을 돌아보아야겠다는 생각이 기자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에 양주시 지역 내 독거노인의 문제를 살뜰하게 챙겨오는 양주시보건소를 노크했다. 하지만, 마음만 앞선다고 무턱대고 일을 저지를 수는 없는 법. 체험에 앞서 원정림 보건사업과장과 미팅을 잡고, 방문보건사업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현재 양주시보건소에 등록돼 관리하고 있는 방문보건 서비스 대상자는 모두 4천522가구. 이 중 독거노인은 1천110명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방문간호사는 광적과 은남면을 맡은 맏언니 도성혜씨(53여)를 비롯해 이선아김나영마유남김수진씨 등 5명. 은현과 장흥보건지소에서 담당하는 직원 2명을 포함하더라도 7명에 불과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간호사 1명이 돌봐야 할 대상자가 700~800명에 이른다. 쉬운 일이 아니라는 긴장감을 잔뜩 안고 최근 모처럼 풀린 햇살을 맞으며 일일 방문간호사로서 체험에 나섰다. ◇보건 사각지대의 든든한 지킴이로 출발 오후 1시30분 방문보건팀 사무실. 오후 일과를 준비하느라 방문 간호사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방문 대상자들에게 전해줄 물품과 약제들, 치료장비들이 가방 한가득. 본격적인 1일 체험을 위해 하정아 방문보건팀장과 양주2동(행정동) 지역을 담당하는 마유남 간호사(39)와 동행해 첫 체험지인 고읍동으로 향했다. 마유남 간호사를 따라 20여 분을 달리다 시골길로 들어서 멈춘 곳은 야트막한 산자락 아래 자리 잡은 낡은 기와집이었다. 의료 장비를 챙겨들고 홍금순 할머니(80) 댁 문을 두드렸다. 어머니! 계세요? 방문 간호사 왔어요. 살갑게 인사하는 마 간호사의 익숙한 목소리에 안방 문이 스르르 열리더니 작은 몸집의 홍금순 할머니가 반갑게 맞아줬다. ◇혈압체크 및 당뇨검사까지 전문 의료진 못잖아 으쓱 마 간호사가 가방에서 혈압검사기를 꺼내 혈압을 체크하고 당뇨검사도 했다. 연세가 높으신 분들은 만성질환을 앓고 있어 당뇨검사는 필수로 해야 한단다. 협압과 당뇨가 정상수치를 나타내자 곧 만성질환인 관절염 통증치료에 들어갔다. 오른쪽 무릎이 좋지 않은 홍 할머니의 통증을 완화하기 위해 통증 부위에 초음파로 전기자극을 줘 신경기능을 자극해주는 경피전기신경자극기로 15분 정도 치료한 데 이어 통증 부위에 젤리로 된 소염제를 골고루 바르고 적외선치료기로 10분 정도 쬐는 치료를 병행했다. 마 간호사는 치료 중간 중간 식사는 어떻게 하고 계세요, 1주일에 한 번 정도는 고기 반찬도 해 드셔야 해요라며 건강사항을 체크했다. 준비해 온 어른용 기저귀 두 세트와 3개월치 영양제를 챙겨 드리자 홍 할머니는 영양제도 줘! 영양제는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는데 보건소 덕분에 먹어보네 하시며 마냥 즐거워하신다. ◇어르신 말벗까지 해드려야 진정한 치료의 완성 기자와 마 간호사가 일을 마치고 일어서려 하자 홍 할머니는 못내 아쉬운 듯 자신이 살아왔던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신다. 조실부모한 15살 때 결혼해 살아온 이야기, 할아버지가 3일간 아프시고 돌아가셨다는 이야기까지. 그동안 기자와 마 간호사는 할머니의 말벗이 됐다. 할머니가 이야기하시는 동안 잠깐씩 어깨를 주물러 드렸는데 생각보다 살이 없으셔서 아프실까 봐 제대로 주물러 드리지도 못했다. 다음 대상자를 위해 할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날 시간이 됐다. 할머니는 아쉬운 듯 눈물까지 보이셨다. 기자도 차까지 걸어가는 30여m가 그렇게 멀게 느껴지기는 처음이었다. ◇두 번째 방문은 처음보다 익숙해 기자는 김나영(40)이선아(50) 간호사의 뒤를 따라 두 번째 체험지인 백석읍 꿈나무로 김순복 할머니(66) 댁으로 향했다. 간호사들을 따라 김순복 할머니 댁 방에 들어서니 한겨울인데도 난방도 없이 전기장판에 의지한 채 방 안 공기가 차가웠다. 하지만, 김 할머니는 반가운 손님들이 찾아왔다며 손수 커피까지 타 내주신다. 잠시 커피를 마시면서 할머니의 건강은 어떤지 챙겼다. 단칸방 전셋집에서 어렵게 사는 김 할머니는 기초수급자로 지난해 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뒤 우울증을 앓기도 했지만 방문간호사들의 돌봄으로 지금은 많이 나아진 상태였다. 남편과 37세에 사별한 뒤 공사장을 돌며 벽돌을 나르는 등 허드렛일을 하다 보니 요통과 퇴행성 관절염으로 다리가 휘어 바깥 외출은 엄두도 못 냈는데 지난해 연말 방문간호사의 도움으로 의정부 비전병원에서 관절치환 수술을 받아 지금은 걸어다닐 정도로 좋아졌다. 또 지난해 3월에는 무료로 의치 수술까지 받아 한결 수월하시다고. ◇기본 건강체크에 치매테스트까지 만전 이 곳에서도 혈압체크와 당뇨검사가 먼저 이뤄졌다. 다행히 이번에도 혈압과 당뇨 수치가 정상이었다. 이어 김 할머니의 수술한 다리 무릎부위에 진통소염 젤을 바른 뒤 적외선치료기로 치료했다. 지속적인 통증치료를 위해 1개월간 적외선치료기를 대여해 드렸고, 한방파스도 충분히 챙겨 드렸다. 2개월치 영양제를 드린 것은 물론이다. 마지막 순서로 치매검사를 실시했다. 김 할머니는 자신의 이름도 또렷하게 쓰고 질문에 정확히 대답하는 등 정상수치를 보였다. 김 할머니는 방문간호를 마치고 돌아가는 기자와 방문간호사들에게도 대문 밖까지 배웅하며 고마움을 전했다. ◇따뜻한 우리 지역의 파수꾼, 방문보건사업단 활약에 기대 지난해 방문간호사업단은 10명으로 활약했지만, 올해는 예산문제로 5명밖에 선발되지 못했다. 여기에 기간제 인력이다 보니 10년 이상의 베테랑 경력자들이 선뜻 지원하기 어려운 시스템이다. 하정아 방문보건팀장은 사회 약자인 독거노인들을 위해 꼭 필요한 사업이고 확대돼야 하지만 정작 예산이 삭감되면서 10명이 하던 일을 5명이 하는 실정이라며 하반기에는 예산이 확대돼 예년 수준의 서비스를 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며 아쉬워했다. 체험을 마치면서 그동안 몰랐던 방문간호사들의 어려움을 새롭게 알게 됐다. 묵묵히 고된 일을 감내하고 있는 그들이 있기에 우리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이 웃음을 잃지 않는가 싶어 새삼 고마움을 느낀다. 그들이 힘들어하는 이웃들을 위해 더 밝게, 더 가볍게 일할 수 있도록 사회적 관심과 함께 예산 지원이 더 이뤄지기를 바라면서 보건소 문을 나섰다. 양주=이종현기자 major01@kyeonggi.com 사진=전형민기자 hmjeon@kyeonggi.com

[1일 현장체험]남양주 화도푸른물센터 수질관리사

매주 금요일 저녁 병만족으로 일컬어지는 한 떼의 연예인 무리가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정글에서 생존의 규칙을 몸소 체험하는 정글의 법칙이 롱런하고 있는 것. 울창하다 못해 하늘을 뒤덮는 무시무시한 정글의 숲에서 현대의 이기에 물들대로 물든 현대인들의 정글 생존기는 시청자들에게 진정한 리얼을 선물하고 있다. 특히 먹을거리를 구하고자 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리거나 생살이 찢어지는 아픔을 딛고 식량을 구하고자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자연의 위대함과 경외감을 갖게 하는 대목. 이 중 식수가 부족해 과일에서 흘러나오는 한 줌의 물줄기에 환호하는 모습은 정수기에서 콸콸 흘러나오는 물을 일상처럼 마시고, 욕조 한가득 뜨뜻한 물에 반신욕을 즐기는 우리에게 다소 생소하다. 하지만 폴란드, 덴마크 등에 이어 물 스트레스를 받는 국가로 낙인찍힌 우리나라의 실정을 고려할 때 물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되새길 필요가 있다. 이에 기자는 자연환경을 유지하는 물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물로 빚어지는 생태계의 순환원리를 체험코자 남양주 시민들의 젖줄, 화도푸른물센터를 찾아 일일 수질관리사로 체험을 즐겨봤다. ◇국내 대표 3D업종에 발을 담그다 수질관리사 체험을 위해 기자가 방문한 곳은 남양주시 화도읍의 화도푸른물센터. 화도푸른물센터는 92m 높이에서 시원하게 떨어지는 인공폭포와 지난 2008년 행정안전부가 주최한 아름다운 화장실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피아노화장실, 여기에 자연생태공원ㆍS자형 물놀이 시설까지, 일반 시민들에게 관광명소도 잘 알려졌지만, 버려지는 하수를 맑은 물로 재생산하는 하수처리장이다. 오전 9시. 기자의 1일 체험을 위해 특별히(?) 마련된 회의에서 체험 일일 도우미로 나선 하수처리팀 고우석 주무관(39)과 첫 대면을 한 뒤 △하수처리팀 △수질분석팀 △시설관리팀 등으로 나뉜 각각의 업무에 대해 체험 방향을 결정했다. 수질관리사는 우리나라 대표 3D 업종 중의 하나로 형언할 수 없는 악취와의 싸움을 견뎌내는 일이다. 현장에서 근무하는 수질관리사들은 한번 작업장에 들어갔다가 오면, 고약한 냄새가 수일간 몸에 배어 대중교통은 물론 식당조차 이용하지 못할 정도란다. 평소 음식물쓰레기 냄새만 맡아도 헛구역질을 해댈 만큼 비위가 약한 기자는 걱정이 앞섰지만, 비장한(?) 각오로 체험에 나섰다. 체험에 앞서 들른 중앙제어실. 화도푸른물센터의 공정별 3개의 하수처리장을 한눈에 감시하고, 원격 제어할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하수처리시스템과 간략한 공정별 과정을 청취한 뒤 하수처리팀에서 하는 첫 번째 현장 체험 장소인 침사지로 향했다. ◇가정에서 처음 배출된 하수처리온갖 협잡물에 고개가 절레절레 가정에서 배출한 하수가 가장 먼저 하수처리장으로 유입되는 침사지에서는 모래와 자갈, 쓰레기 등 협잡물을 제거해 다음 하수처리 단계로 보내는 곳이다. 방진복과 고무장화를 착용하고 들어선 침사지에서는 그냥 더러운 모래나 자갈이 있을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과 달리 죽은 쥐를 비롯해 불어터진 붕어, 가축 분뇨, 구더기 등 차마 보기에도 어려운 온갖 협잡물이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기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자가 코를 부여잡고 망설이는 사이 현장 근무자들은 노래까지 불러가며 침사지 설비에 붙은 협잡물을 떼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10년차 베테랑인 한 근무자는 하수처리장에서의 근무가 모든 공무원들의 기피대상이고,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에 보통 적게는 5년~15년 정도 장기간 근무를 한다고 한다. 최근 하수처리장에는 최첨단 설비들이 들어오고, 근무 환경이 개선되면서 근무 인원 역시 줄어들고 있다. 현장 근무자들은 어떻게 보면 딱히 할 일이 없다고도 하지만, 제1화도 하수처리장을 비롯해 지난 1990년도에 지어진 오래된 하수처리장들은 아직도 이렇게 많은 수작업을 거쳐야 하는 실정이다. ◇연구원 복장에 으쓱각종 항목 분석에 진땀 오전 현장 체험을 마치고 오후가 돼서야 고약한 악취에서 벗어난 장소에서 수질분석팀, 시설관리팀에서 맡은 업무가 이어졌다. 먼저 들른 실험실. 하수처리장 유입수 및 방류수에 대한 BOD(생물화학적 산소요구량) 측정을 하는 수질분석팀에서는 매일 BOD, COD, SS, TN(총질소), TP(총인), 대장균 군수 등 6가지 항목을 분석한다. 이날 체험한 BOD측정 실험은 물속에 산소가 얼마나 들어 있는지를 측정하는 것으로, 하수를 뜨고서 20도에서 5일간 배양해 첫날 용존산소량에서 5일 뒤 용존산소량을 뺀 산소 소비량을 측정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BOD실험에 이어 물에 약품을 투입하는 총인처리시설(MSF) 전 단계인 DMF(Micro Disc Filter) 유입부 스크린 망에 붙은 조류 및 부유물 제거 작업을 한 뒤, 역세수처리시설 기계설비와 총인처리시설 펌프실 점검을 끝으로 이날 체험을 마감됐다. ◇물에 대한 소중한 인식 절실 지난해 남양주시에서는 하천에 크고 작은 오염물질이 유출돼 시와 소방서에서 방제작업을 나서는 소동을 자주 빚었다. 이는 환경적인 요소도 있지만, 음식점 업주와 축산 농가에서 하천으로 오염물질을 무단으로 방출하는 사례도 대다수였다. 고우석 주무관은 하수의 오염도가 심할수록 정화과정은 더욱 어려워지고, 근무자들의 고통은 배가 된다며 근절되지 않는 무단 방류행위에 긴 한숨을 내쉬었다. 화도푸른물센터에서는 끊임없는 교육과 견학체험을 통해 물의 소중함과 정화과정을 알리고 있지만, 아직도 무단방류실태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무심코 하천에 버려지는 온갖 음식물과 폐수도 결국은 우리가 다시 먹고 씻게 될 것이라는 기본적인 상식을 곱씹으며 모든 시민들이 물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고 주사의 바람대로 무단 방류 행위로 하천을 오염시키는 비양심적인 사람들이 없어지길 기대해 본다. 남양주=하지은기자 zee@kyeonggi.com 남양주 화도푸른물센터란 남양주시 화도읍 화도푸른물센터는 생활폐수 등 버려지는 하수를 1년 365일, 24시간 맑은 물로 재생산하는 하수처리장이다. 일일 처리 용량 4만3천t으로 화도읍, 수동면 일원에서 발생하는 생활하수를 BOD 5ppm 이하의 맑은 수질로 처리해 피아노폭포를 통해 방류하고 있다. 하수처리 과정 ▶ 침사지설비 가정에서 배출한 하수는 관로를 통해 하수처리장으로 유입된다. 유입된 하수는 침사지에서 모래와 자갈 및 크고 작은 협잡물이 제거된다. ▶ 유량조정조 설비 침사지를 거친 하수와 분뇨축산폐수 처리수는 유량조정조에서 균일하게 혼합돼 일정량씩 1차 침전지로 이동된다. ▶ 1차 침전지 설비 1차 침전지에서는 물보다 비중이 무거운 물질과 가벼운 물질을 제거한다. (오염물질제거율 약 30%) ▶ 반응조설비 1차 침전지에서 제거되지 않은 하수속의 오염물질은 반응조에서 처리되며, 미생물에 의해 하수 속 오염물질을 분해한다. ▶ 2차 침전지 설비 미생물에 의해 활성화 된 하수는 2차 침전지에서 3시간 정도 지연, 침강시켜 침전지 상부의 맑은 물을 방류, 나머지는 슬러지처리과정을 통해 탈수. ▶ 총인처리시설 TP(총인)를 0.2ppm 이하로 처리하기 위한 응집, 침전 작업이 실시된다. ▶ 여과 및 소독설비 2차 침전지서 처리된 처리수중의 미세한 부유물질을 제거하는 3차 처리시설로 자외선(UV) 소독 후 하천으로 방류. ▶ 수질 TMS설비 최종방류수 수질을 24시간 실시간으로 감시한다.

[1일 현장체험]경기도선거관리위원회

지방자치법에 따라 지방의회 의원 및 지방자치 단체장의 장을 뽑는 6ㆍ4지방선거가 4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특히 올해는 국민적 관심을 모으고 있는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존폐 유무 등 다양한 이슈들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어 기존 선거 때보다 대중의 관심이 더욱 몰리고 있다. 기자일을 하기 전엔 선거라고 해봐야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 정도만 알고 심지어 투표도 거르기 일쑤였던 본 기자에 이번 일일 체험은 뜻 깊은 의미가 될 것 같은 생각과 실질적으로 선거 전반에 걸친 모든 활동을 계획하고 준비하는 선거관리위원회에 잠시나마 발을 담그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여러가지 생각이 교차하는 가운데 도지사ㆍ교육감 예비후보 등록을 시작하고 본격적인 선거 준비 레이스에 돌입한 경기도선거관리위원회를 찾았다. 5일 오전 10시50분께. 평소 친분이 있는 홍보과 임재열 공보계장(54)을 약속시간 보다 10분 빨리 찾아갔다. 본격적인 체험활동을 시작하기 전 다시 한번 체험활동에 대한 전반적인 계획을 듣고 숙지해 다른 직원들에게 최소한의 피해를 주기 위한 나름의 노력이었다. 하지만 다른 직원을 통해 임 계장이 벌써 선거준비활동을 위해 자리를 옮겼단 소식을 듣고 괜한 미안함이 들어 부리나케 홍보과 맞은편 사무실로 발길을 옮겼다. 문을 열자 수십여개의 박스와 수천장에 이르는 홍보물이 눈앞에 들어왔다. 바로 오는 18일부터 실시되는 제 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선거아카데미 홍보물이었다. 3천매에 달하는 이 홍보물을 각 시ㆍ군 위원회에 배포하는 일이 오늘 체험활동의 시작인 셈이다. 뒤늦게 본 기자를 알아본 임 계장은 일손이 모자라는데 잘 오셨다며 자세한 얘기는 식사를 하며 하자고 말을 맺은 뒤 곧바로 일에 착수하는 모습에서 평소 온화한 미소를 보였던 임 계장과 사뭇 다른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일은 생각보다 간단해 보였다. 44개 시ㆍ군위원회에 홍보물 50매씩을 배분해 박스에 쌓아 포장하는 일은 초등학생 정도만 되도 충분히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평소 급한 성격에 포스터를 거칠게 다루자 금새 구겨지고 심지어 찢어지는 위기(?)까지 발생했다. 더군다나 갯수를 맞춰 박스에 담아논 포스터 수도 오차가 발생해 일을 2번하는 어리석은 모습도 보여 도움을 주러 왔다기 보단 민폐를 끼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낯이 뜨거웠다. 임 계장이 웃으며 생각보다 성격이 급하시다며 굼뜬 사람보다 서두르는 사람이 훨씬 낫다고 기자를 격려했다. 박스 포장까지 마무리해 우체국 택배로 배송준비가 마무리된 후 그때서야 늦은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점심을 먹으니 오전에 잠깐 몸을 움직인 것도 일이라고 잠이 쏟아졌다. 잠시 자리에 앉아 눈을 붙이려고 했지만 곧바로 지난 4일부터 시작된 사이버공정선거지원단에 투입돼 다음 체험활동을 이어갔다. 사이버공정선거지원단이란 인터넷을 통해 사이버선거범죄 관련된 활동을 체크하는 일로 비방, 흑색선전 등을 감시하는 활동이다. 지난 대선에서 국정원 심리전단이 야당과 야당지지자 모두를 종북으로 규정하고 조직적으로 선거운동에 개입한 사건에 이어 국군 사이버사령부까지 대선개입에 투입됐다는 의혹이 드러난 가운데 이번 선거에서 특히 주목되고 있는 사이버상의 업무에 투입되다 보니 차라리 좀 전 몸으로 체험했던 활동이 내심 편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투입된 5명의 직원 사이에 자리를 잡고 다양한 카페나 블로그, SNS 등을 체크하며 지도과 직원의 도움을 받아가며 불법선거운동이 벌어지는지 일일이 확인하는 작업이 이뤄졌다. 1시간 정도 모니터만 뚫어져라 쳐다보니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평소 시간을 때우며 인터넷을 검색하며 재미난 기사를 확인하는 일과 불법선거운동을 포착하기 위해 하나하나 인터넷 댓글까지 꼼꼼히 챙기는 일은 정말 확연히 달랐다. 눈이 침침해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직원들은 카페와 특정 후보자 팬클럽 등을 옮겨다니며 인터넷 상에서 만연하게 펼쳐질 수 있는 불법선거운동을 감시하느라 분주했다. 힘들지 않으세요라는 질문에 한 직원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사이버 감시 활동을 해야 한다며 최근 사이버 관련 선거범죄가 이슈로 부각돼 힘들어도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2시간가량의 사이버공정선거지원단 체험활동을 정리하고 외부에 나가 바깥공기를 마시며 지친 눈과 머리를 식혔다. 20분의 긴 휴식을 즐기고 지도과를 방문했다. 이번 활동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거와 관련된 질의내용에 대한 응답을 하는 체험이었다. 최근 들어 하루 평균 70여통에 달하는 선거 관련 문의 전화가 빗발치는 상황이라 지도과는 가장 바쁜 부서 중 하나이다. 지도과 조성욱 주임(37)의 옆에서 걸려오는 전화에 응대하고 답변하는 조 주임의 모습을 하나하나 체크해 가며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뒤 답변의 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선거 관련 책을 옆에다 펼치고 조 주임의 도움을 받아가며 수화기를 들었다. 모 의원 관계자라고 밝힌 A씨는 입후보 관련 등록자격과 선거운동 방법에 대해 질의했다. 잘못된 답변을 하면 안될 것 같은 생각에 옆에 위치해 있는 조 주임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조 주임이 설명해주는 데로 앵무새가 된 기분으로 질의내용에 대해 하나씩 설명을 해나갔다. 이후에도 몇차례의 전화를 추가로 받아가며 직원들의 도움을 받은 채 간신히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다. 가장 답변하기 어려운 질문이 뭐냐라는 질문에 조 주임은 선거를 앞두고 후보자들의 축사나 행사참여 등 선거운동개념의 경계선 상에 있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 가장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질의사항과 그 질문을 하는 신분 등 제반사항을 전반적으로 고려해 종합적으로 판단한 뒤 해당 질문이 사전선거운동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일이 쉽지 많은 않다고 덧붙였다. 지도과에서 활동을 마친 뒤 최종적으로 남은 불법선거단속예방활동 교육에 투입됐다. 이는 선거를 앞두고 기부행위 및 사전 선거운동 등의 공직선거법 위반행위 발생을 적발하는 활동으로 공명정대한 선거를 위한 필수적인 감시활동이다. 캠코더를 위한 교육활동은 외부에서 이뤄졌다. 간단히 캠코더 작동방법에 대해 설명을 들은 뒤 캠코더 고정을 위해 삼각대를 설치한 후 촬영에 돌입했다. 각도가 문제였는지 삼각대를 설치하고 캠코더를 이용한 촬영 영상이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았다. 곧 이어 두번째 교육이 진행됐다. 이번 교육은 불법기부행위가 이뤄졌다는 신고를 접수받고 비밀리에 영상을 캠코더에 담아내는 상황을 가정해 진행된는 촬영이었다. 음식점 등 밀폐된 공간 속에서 은밀히 진행되는 상황을 영상에 담기 위해서는 많은 노하우가 필요했다. 설명을 하나하나 듣고 옷춤속에 캠코더를 집어 넣은 채 비밀촬영을 가장한 교육에 들어갔지만 해상도부터 촬영대상 등 모든 것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오히려 실수를 해 애꿎은 캠코더를 떨어뜨리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오후 6시가 돼서야 길고 긴 체험활동이 끝이 났다. 볼일을 보던 임 계장이 체험활동을 끝낸 기자를 찾아와 수고했다라는 고마움의 표시를 하니 체험활동을 한다는 핑계로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은 채 짐만 된거 같아 괜시리 멋쩍은 기분이 들었다. 활동을 끝내고 돌아오는 차안에서 그동안 무관심했던 선거에 대해 이번 체험활동이 생각의 전환을 할 수 있는 좋은 동기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경기도선관위 관계자들에게 큰 빚을 진 것 같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양휘모기자 return778@kyeonggi.com

[1일 현장체험]양평지방공사 일일사업단 작업

흙과 물, 생태계를 살려내 우리 국토를 건강하고 늠름하게 지켜내고, 농업을 지역의 관광자원으로 맑은 물과 수려한 경관이 살아 숨 쉬는 쾌적한 전원풍경을 유지하고, 안전한 먹을거리를 찾는 소비자들에게 싱싱한 푸성귀를 직거래로 제공, 도시와 농촌이 공생하고.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을 꿈꾸는 양평지방공사는 지난 2008년 물 맑은 양평유통사업단을 모태로 출범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에 기자도 직원 수 97명에 달하는 일일 사업단 소속 직원으로 219억 원 상당의 지역 농특산물을 선별하고 출하하는 일련의 작업과정에 참여해 농업인들의 소득증대에 기여코자 하루를 꼬박 올인했다. ◇가공특산물 대도시로 보내는 선별작업대에 서다 지난 20일 오전 7시. 양평지방공사 회의실에선 팀장급 이상 직원들이 박기선 사장의 주재로 차트를 보면서 이날 출하할 농특산물에 대한 스케줄을 토의하고 있었다. 사무실 한 켠에 김봉국 교수의 저서 승자의 안목에 나오는 문구인 낮게, 좋게, 짧게, 적게가 표구된 액자가 걸려 있었다. 도대체 무엇을 낮게, 좋게, 짧게, 적게 하자는 의미일까? 박기선 사장은 비용은 낮게, 품질은 좋게, 과정은 짧게, 불량품은 적게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뜻으로 봐주시면 된다고 설명했다.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특산물들을 도회지 소비자들에게 시집 보내려는 준비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이처럼 먼동이 터기 전부터 시작된다. 직원들은 매 회의 때마다 전투를 앞둔 장수들처럼, 어떻게 하면 농특산물들마다 어머니의 체취와 향긋한 숨결을 유지하면서 도회지 소비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 전날 포장 및 출하과정에서 발생한 실수나 착오 등도 점검하고, 다시는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가족을 위해 저녁을 짓는 어머니의 정성을 담아 입고검사 보통, 출하과정의 첫 단계는 제1단계인 입고과정부터 시작된다. 저장실을 갖춘 입고장과 검수과정 공간 면적은 1천300여㎡ 남짓. 직원들은 이때부터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소비자들을 위한 깨끗함과의 전쟁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 공간은 대통령이라도 농특산물에 티 하나라도 묻지 않고, 청결함도 유지하고자 하얀색 가운과 둥그런 위생모, 마스크 등을 착용해야만 입장이 가능하다. 기자도 이 같은 복장을 갖추고 들어섰다. 농업인들이 정성을 들여 수확한 농특산물들은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신선함을 유지해야 한다. 괜히 주눅이 들었다. 평균 근무경력이 10년째인 아주머니 직원들이 어쭙잖게 차려입은 가운과 위생모를 쓴 기자를 보고 입을 가리며 웃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출하를 기다리고자 창고에서 차분하게 앉아 숨을 고르며 얌전하게 기다리는 상추와 감자와 잣 등을 보면서 마라톤을 뛰고자 호흡을 조율하고 몸을 가누는 육상선수가 연상됐다. 먼저 U자형으로 생긴 칼을 들고 감자 껍질부터 가지런하게 깎기 시작했다. 처음엔 서툴렀지만, 시간이 지나자 괜찮아졌다. 하지만, 허리가 아파지기 시작했다. 다음 과정은 싱싱한 상추 묶음을 150g씩 집어 컨베이어에 올린 뒤 얇은 비닐에 넣고, 라벨을 붙이는 작업이었다. 이처럼 창고에서 대기 중인 농특산물들은 제2단계인 상품화과정에 들어간다. 품목별로 상품명이 새겨진 플라스틱 용기에도 담기고, 예쁜 비닐봉지에도 담긴 뒤 박스에 들어간다. 이때도 물론 정성이 깃들어 줘야 한다. 그렇게 포장된 녀석(?)들은 산지유통센터 앞에 기갑부대 전차들처럼 일렬로 늘어선 화물트럭에 실리게 된다. ◇딸을 시집보내는 마음으로 정성스럽고 각별하게 출하 딸 자식을 시집 보내는 아버지의 마음이 이럴까요? 임병희 팀장(48)은 출하작업에 나설 때마다 늘 결혼식을 앞둔 딸 자식을 생각하는 심정으로 마음을 바로잡는다. 마침 민족 최대 명절인 설날을 앞두고 양평지방공사 산지유통센터 건물 앞으로는 겨울의 마지막 절기인 대한(大寒)을 맞아 동장군이 선사하는 선물인 희끗희끗한 눈발이 쉴 새 없이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짙은 회색 점퍼를 갖춰 입은 직원들은 한 줄로 서서 결연한 자세로 농특산물들이 담긴 박스들을 트럭에 싣고 있었다. 예전 같으면 겨울철은 농한기이겠지만, 양평의 최대 브랜드로 국내는 물론, 외국에서도 각광받고 있는 내 몸엔 뽕잎차를 가득 실은 박스들이 즐비하게 출하를 기다리고 있었다. 직원 이모씨(34)는 농민들이 정성스럽게 생산해 입고시킨 상품들이 행여라도 다칠까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다라며 시집가는 누이에게 연지 곤지를 바르고 머리를 땋아주듯, 정성스럽게 박스에 담고 있다고 말했다. ◇100여 개 농산물 품목에 일일이 정성 담아 양평지방공사가 자신 있게 선보이는 내 몸엔 발효 뽕잎차 등을 비롯해 물 맑은 양평 쌀 등 양평지방공사가 거래하고 있는 농산물 품목은 줄잡아 100여 개가 넘는다. 어느 것 하나 소홀할 수 없다. 지역의 1천520여 농가들이 참가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88%가 친환경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있다. 작업장은 그래서 온종일 긴장감의 연속이다. 비록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양평지방공사 직원들은 오늘도 묵묵히 도회지 소비자들에게 싱싱한 농특산물을 제공코자 그 역할을 충실하게 실천하고 있다. 이들이 추구하는 맑은 행복은 먼 곳에 있지 않았다. 양평=허행윤기자 heohy@kyeonggi.com 사진=전형민기자 hmjeon@kyeonggi.com

[1일 현장체험]부천시생활체육회 생활체육지도자

런닝맨, 출발 드림팀 시즌2, 익스트림 서프라이즈의 공통점은? 바로 일요일 안방극장을 주름잡는 예능 프로그램. 그것도 생활체육위주로 짜여 시청자들과 틈새를 좁혀 국민건강의 질까지 높인다는 속셈. 여기에 아이돌, 걸 그룹, 배우까지 연예인 집단이 이리저리 뛰고 구르는 모습에 시청자들은 TV 앞을 떠나지 못한다. 이런 인기에 힘입어 최근 생활체육 종목 참여에 대한 인기가 치솟고 있다. 생활체육은 말 그대로 국민 누구나 일상생활에서 쉽게 즐길 수 있는 체육 활동. 이에 각 시군생활체육회는 생활체육지도자를 고용해 일반 시민과 어르신을 전담해 운영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무료로 운영하고 있다. 100세 시대 건강 지킴이 역할 중심에 생활체육 지도자들이 있다. 40종목에 800여 개 클럽, 약 4만여 명의 생활체육 동호인을 가지는 부천시생활체육회에서 시민들의 건강을 위해 밤낮 고생하는 생활체육 지도자들의 하루 일과를 체험하면서 그들이 느끼는 직업에 대한 자긍심과 애환을 피부로 느껴보았다. ◇베테랑 지도자가 되는 길은 멀고도 험해 부천시생활체육회 지도자는 지도자 업무를 총괄하는 최경석 팀장을 비롯해 총 10명이다. 유인숙 지도자 외 4명이 일반 시민 프로그램을 맡고 있으며 장유희 지도자 등 4명은 어르신 전담 프로그램 강사로 활약 중이다. 이들의 하루 일과는 그날그날 있을 지도자 프로그램에 대한 사전점검 회의를 통해 시작된다. 일반 시민 프로그램도 어린이부터 초등학생, 주부, 정신지체아, 장애인 등 다양한 계층을 아울러야 하므로 전문이론을 겸비한 풍부한 경험이야말로 지도자의 필수 자격조건이다. 각 지도자는 1주 동안 8~10개의 프로그램을 맡아 질 높은 강의를 위해 밤낮으로 연구하고 서로 의견을 나누는데 소홀함이 없다. 오전 9시 회의를 마친 지도자들은 프로그램 진행장소로 준비물을 꼼꼼히 챙겨 이동하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어린이부터 초등학생, 주부, 정신지체아, 장애인 등 다양한 계층을 아울러야 하므로 전문이론을 겸비한 풍부한 경험이야말로 지도자의 필수 자격조건이다. 여기에 시민들을 위한 체육 지도뿐 아니라 40종목의 연합회 활동에 꼭 필요한 존재다. 부천시는 전국대회는 물론 도 대회 등 1년 중 각 종목을 합치면 200여 대회에 참가한다. 한 해 동안 종목별 연합회에서 치르는 크고 작은 대회에 지도자들의 손길이 없으면 원활한 대회 진행이 힘들 정도다. 최 팀장은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맡은 생활체육 프로그램 외에도 40종목 연합회를 서로 나누어 관리하고 있다며 대부분 대회가 토일요일에 치러지다 보니 평일뿐 아니라 휴일에도 연합회 대회를 돕고 있어 시민들의 건강을 위하는 최일선에 있다는 자부심이 아니면 힘든 일이다고 털어놨다. ◇베테랑 지도자 따라하랴, 어르신들 챙기랴 땀 뻘뻘 어머니 팔을 쭉~뻗으세요. 이쪽은 어디?왼쪽! 아버지 이쪽으로 돌아서야죠. 생활체육지도자라고 해 간지나게 유니폼을 입고 조교처럼 모자를 눌러쓴 기자의 모습을 상상했다면 오산. 치매 어르신들의 건강 도우미로 나서라는 오늘의 미션을 등에 무겁게 지고 최근 심곡2동주민센터 내 원미구 노인복지관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약속시간보다 10여 분 일찍 도착한 기자는 전날 걱정 반, 설렘 반으로 설친 잠으로 눈꺼풀이 천근만근이었다. 하지만, 아이같은 천진함으로 기자를 반갑게 맞아주는 치매 어르신들의 환한 얼굴에서 어머니아버지의 얼굴이 스쳐가며 코끝이 찡해졌다. 이윽고 박채린 지도자와 함께 25명의 치매 어르신들 앞에 서니 쭈뼛했다. 기자의 염려를 반영하듯 어르신들의 몸 상태는 훨씬 안 좋았다. 강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창문 너머 먼 산을 보시는 어르신부터 강사 지시에 따라 열심히 따라하시는 어르신 등 통일적인 강의 분위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베테랑은 다른 법. 밝고 경쾌한 목소리로 박 지도자는 1시간 내내 동작과 율동을 전수(?)하기 위해 엉덩이 한 번 붙일 틈 없이 어르신들 사이사이를 누볐다. 기자도 돕겠다는 마음에 어색한 동작으로 따라하며 어르신들과 호흡을 맞췄지만 뻣뻣한 몸은 말을 잘 듣지 않아 진땀을 뺐다. ◇부천시 생활체육 업그레이드를 위해 혼신 어르신 프로그램을 전담하는 장유희 지도자는 회의 때 안전을 강조했다. 다 경력의 소유자인 장 지도자는 어르신을 상대로 하는 운동이라 안전이 최우선입니다. 어르신들이 쉽게 따라할 수 있는 종목을 어떻게 재미있게 알려주느냐가 항상 고민이에요라며 속내를 비쳤다. 베테랑 지도자들도 초보 입문자인 기자와 별반 다른 고민을 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동료애를 느꼈다. 1~2시간 동안 20명~100명을 소화해야 하는 장 지도자와 강사들은 힘든 일정에도 할머니할아버지의 해맑은 모습을 떠올리면 힘이 불끈 솟는다고. 건강체조, 수건 체조, 게이트볼, 실버요가, 시니어로빅, 라인댄스, 건강 스트레칭. 기자는 열거하기에도 벅찬 모든 종목을 꿰뚫는 다재다능함과 친근함까지 겸비해야 하는 만능 스포츠맨인 그들의 모습에서 단순한 직업을 넘어 봉사자의 마음으로 어르신을 대하는 지도자의 가장 기본 원칙을 깨달았다. 비록 일일체험이지만 하루 동안 지도자의 일과를 체험하면서 시민들의 건강 지킴이로서 역할을 충실히 다하는 생활체육지도자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느꼈다. 비록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지도자들이 있어 부천 시민들의 평균 수명은 날로 늘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부천=김종구기자 hightop@kyeonggi.com 사진=전형민 기자 hmjeon@kyeonggi.com

[1일 현장체험]수원 연무시장 ‘떡집’

하루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엄마처럼 예쁜 어른이 돼야지하던 그 때가. 굽이 높은 엄마의 하이힐을 몰래 신어봤지만 넘어지기 일쑤였고, 새빨간 립스틱을 조그마한 입술에 바르고 거울을 봤지만 입술만 둥둥 떠 있는 것 같은 모습에 왈칵 울어버린 때도 있었다. 어떻게 하면 얼른 어른이 될 수 있지? 그 즈음 생각한 방법이 떡국을 열 그릇쯤 먹는 것이었던 것 같다. 떡국 먹으면 한 살 먹잖아? 열 그릇 먹으면 훌쩍 스무 살 되겠다. 우리는 설날에 떡국을 먹음으로써 한 살을 더 먹는다고 생각한다. 친구를 만나면 거리에 늘어선 카페에 앉아 커피와 함께 맛있는 빵을 먹고, 축하할 날에는 옹기종기 모여 케이크에 촛불을 붙이면서도 새해를 맞이할 때면 떡국을 먹는다. 그런걸 보면 우리는 모두 떡국을 먹어야 한 살을 더 먹는다라는 암묵적 동의를 하고 살아가는 듯 하다. 갑오년 새해, 그래서 떡집을 찾았다. 기자가 수원 연무시장에 위치한 유천 떡 방앗간을 찾은 건 지난해 마지막 날이었다. 해 마다 이맘때가 되면 떡집은 쉴 새 없이 쌀을 빻고 반죽을 해 가래떡을 뽑아내느라 분주하다. 설 명절을 앞둔 떡집은 사람을 한 둘은 더 부려야 한다. 새벽부터 하루 종일 떡을 뽑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2014년 갑오년 새해를 앞두고 이른 새벽 5시에 떡집의 불이 밝혀졌다. 시장 안에서 다른 가게들보다 이르게 문을 여는 가게가 떡집이 아닐까 싶다. 가게에 들어서니 곡식들이 담긴 대야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지난 2008년부터 6년째 이곳에서 부인과 함께 떡집을 운영하고 있는 지중근 사장님(48)은 밀려드는 가래떡 주문에 전날 밤 미리 쌀을 불려놓았다.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사장님이 건넨 컵에는 장모님이 직접 만드셨다는 식혜가 가득 담겨 있다. 식혜도 방앗간에서 직접 빻은 엿기름 가루로 만들어 판다. 식혜 한 컵 원 샷하고 나서 일을 시작했다. 대야에 가득 담겨있는, 4~8시간을 불린 쌀의 물을 빼고 제분기에 넣으니 곱게 빻아진 흰 가루가 쏟아져 내려온다. 한 번 빻아진 쌀가루에 약간의 물을 붓고 조물조물 반죽을 하는데 그 순간 사고를 쳤다. 바닥에 쏟아져 흩어진 쌀가루들을 보자니 부끄러운 마음에 배시시 웃음이 났다.(다시 한 번 죄송하다). 고운 쌀가루를 만지며 기자가 와 정말 예뻐요!라는 감탄사를 내뱉기도 전에 다시 한 번 대야를 들어 올려 제분기에 넣는다. 두 번은 빻아야 입자가 곱고 부드러운 가래떡이 완성된단다. 또다시 한 번 제분기를 거쳐 쏟아지는 쌀가루는 흰 천처럼 얇게 빛났다. 곱게 빻은 쌀가루를 30분간 쪄낸 후 기계에 넣고 떡을 뽑아낸다. 동그란 구멍에서 긴 가래떡이 뽑아져 나오는데 이 떡을 다시 기계에 넣는다. 이것도 두 번이에요?라고 물으니 가래떡을 뽑는 기계가 반죽도 하는 것이라서 이렇게 해야 더욱 쫄깃하고 질 좋은 가래떡을 만들 수 있다고 답해 주신다. 가래떡을 뽑는 과정 중 가장 중요한 일이라면 떡을 뽑아내며 찬물에 잠시 담갔다가 꺼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 가래떡이 나오면서 엉키거나 들러붙지 않는다고 한다. 그냥 먹을 것은 금방 뽑은 대로 팔고, 떡국에 넣을 것은 잘 말린 후 기계에 넣어 썰어 판다. 썰어낸 떡은 1kg, 2kg, 10kg 용량 별로 봉지에 담아 판다. 수수도 두 번씩 빻아 수수가루를 만든다. 수수가루로 만든 수수부꾸미는 광교산을 찾는 등산객들에게 인기 만점이다. 떡 만드는 거 처음 봤어요, 신기해요 연신 조잘대는 기자에게 사장님은 케이크와 빵에 익숙한 젊은 세대는 소비 패턴이 다르다보니 떡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씀하셨다. 흔히 알고 있는 떡 케이크 이외에도 떡 샌드위치, 떡 쿠키 등을 판매하는 떡 카페가 등장하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전통방식에서 벗어난 다양한 종류의 떡 제품들이 계속해서 나오면서 달라진 소비자들의 눈높이를 맞춰가고 있는 것. 시장 안이긴 해도 대학가인데, 왜 이 곳에서 떡집을 운영하세요?라고 묻는 질문에 사장님은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도시에도 곳곳에 남아있는 말날(午日)의 풍속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말날은 말(馬)이라는 의미의 오(午) 자(字)가 들어간 날로, 팥떡을 해서 마구간 앞에 놓고 말의 무병과 건강을 빈다. 오늘날에는 풍년에 대한 감사의 뜻을 나타내는 가을고사의 날로 10월 말을 택한다. 가을걷이 이후에는 고사떡을 나눠먹는 말날 풍속이 광교산 등지에서 유지되고 있어서 10월부터는 쭉 바빠요. 기(氣)를 상징하는 말처럼 모든 것이 왕성하고 풍요롭게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겠죠. 분홍빛, 초록빛 반죽을 기계에 넣으니 기계에서는 쉴 틈 없이 동글동글한 꿀떡이 떨어져 나온다. 꿀떡이 엉겨 붙지 않게 양손을 써가며 기름을 고루 발라 쟁반에 올려놓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내 입으로 쏘옥 들어간다. 떡집의 매력이 이거에요. 초반에 시설투자를 한 번 하면 기술이 있는 한 계속해서 떡을 뽑아낼 수 있다는 거죠. 떡집하면 왠지 쌀가마니 쌓여있는 모습이 상상된다는 기자의 말에 예전에는 손님이 직접 쌀을 불려 가져오는 경우가 대다수였지만, 지금은 10%에도 못 미친다며 오히려 떡집은 재고가 쌓이지 않고 회전율이 좋다는 말도 덧붙이신다. 기계에서 나오는 바람떡을 받아내는 손은 분주하다. 유천 떡 방앗간의 긴 하루가 간다. 일하며 조금씩 입으로 들어간 떡 때문인지 배도 부르고, 사장님의 인심으로 마음도 충만해진다. 새해를 맞아 새로운 다짐을 하나씩 마음에 품어 본다. 그 소망들을 설날 떡국을 함께 먹으며 나누는 것은 혼자서 하는 결심보다 쉽고 행복하다. 설날에 떡국을 꼭 먹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것 아닐까. 이제는 죽기 보다 싫은 나이 한 살 먹는 것. 그 사실을 알면서도 희고 긴 가래떡으로 만든 떡국을 먹는다. 특히 올해는 두 그릇을 먹어야겠다. 글 _ 김예나기자 yena@kyeonggi.com 사진 _ 전형민 기자 hmjeon@kyeonggi.com

[1일 현장체험]구세군 ‘거리모금’

성탄절을 더 따뜻하고 훈훈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딸랑딸랑 종소리와 함께 찾아오는 빨간 자선냄비, 구세군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이웃을 생각하고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돕고 싶어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것이 구세군의 자선냄비다. 어린 시절에는 길을 걷다가 어려운 이웃을 도웁시다라는 말이 들려오면 주머니를 뒤적거려 동전 몇 개라도, 1천 원짜리 한 장이라도 빨간 냄비에 넣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가면서 자선냄비를 보더라도 왠지 모르겠는 쑥스러움에 선뜻 지갑을 열지 못하고 슥 지나쳐 가는 일이 많았던 것 같다. 차를 운전하며 다닌 뒤로는 자선냄비를 만나는 일도 부쩍 줄었다. 이 겨울이 더 지나기 전,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도 갖고 항상 가난한 사람과 함께 하셨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도 축하할 겸 구세군의 문을 두드렸다. ■세상의 가장 낮은 이들과 함께 하는 구세군 구세군은 다양한 방법으로 연중 모금 활동을 하고 있지만 11~12월은 집중 모금기간이라 매우 바쁜 시기다. 자선냄비가 거리로 나오는 것도 이 즈음이다. 기자가 구세군 인천영문을 찾은 것은 크리스마스 이브인 24일, 자선냄비 거리모금이 끝나는 마지막 날이었다. 구세군은 성탄을 축하하고 기부 열기를 끝까지 이어갈 수 있도록 마지막 날인 24일은 자정까지 모금한다. 악대도 등장해 기부 열기를 한껏 끌어올리기도 한다. 하필이면 기자가 방문한 날이 구세군으로서는 가장 바쁜(?) 날이었다. 하지만, 구세군 인천영문의 담임 사관인 박준하 사관(56)과 차은옥 부담임 사관(34여)은 환한 미소로 (약속시간보다 15분이나 늦은) 기자를 반겨줬다. 박 사관은 구세군이 아직은 낯선 기자에게 하나하나 차근차근 설명해줬다. 구세군 자선냄비가 처음 시작된 것은 120여 년을 거슬러 올라간 1891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였다. 구세군 조셉 맥피 사관이 도시 빈민을 위해 오클랜드 부두에서 큰 쇠 솥을 내걸고 이 국솥을 끓게 하자며 모금한 뒤 성탄절에 어려운 이웃에게 따뜻한 식사를 제공한 게 시초가 됐다. 한국 구세군의 역사도 100년을 넘어섰다. 1909년 처음 기부금을 모으기 시작해 1918년에는 한 독지가의 기부금으로 가난하고 버려진 아이를 위한 사회복지시설 혜천원을 설립하고 본격적인 사회구호활동에 나섰다. 사회가 점점 각박해진다고 하지만 자선냄비 모금액은 나날이 늘어갔다. 1997년 IMF 구제금융을 받았을 때 13억 4천300만 원이었던 기부금은 지난 2011년 48억 8천700만 원으로 늘었다. 올해는 55억 원이 목표다. 이렇게 모인 기금은 아동청소년, 노인장애인, 여성다문화, 위기가정, 사회 소수자 및 북한해외지역 구호 대상자의 기초생계 지원, 건강지원 서비스, 환경개선 서비스 등에 쓰인다. 특히 구세군은 전국 160여 사회복지기관과 연계돼 있어 체계적으로 기금을 사용하고 있다. 박 사관은 얼굴도 본 적 없고, 아무 상관없는 사람을 위해 선뜻 돈을 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며 자선냄비에는 기부금뿐만 아니라 이웃에게 따뜻한 사랑을 전하고자 하는 국민의 마음이 담겨 있다고 강조했다. ■서민의 정성으로 가득 찬 빨간 냄비 구세군 인천영문이 자선냄비를 내건 곳은 동인천역 지하상가 중심 통로였다. 찬바람이 부는 길 한복판이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기자와 함께 모금활동에 나서준 차은옥 부사관에게 너스레를 떨어봤더니 한 마디로 축복이란다. 찬바람을 맞으면서 모금활동을 하는 것이 그만큼 힘들고 어렵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묵묵하게 모금활동을 이어온 전국의 수많은 구세군과 자원봉사자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구세군 모금활동은 사관과 자원봉사자들이 교대로 한다. 인천영문에서 활동하는 자원봉사자는 대략 50~60명. 순번을 정해 대략 2시~3시간가량 번갈아가면서 모금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체험을 하면 멋진 구세군 사관 정복과 모자를 착용할 수 있을까 한껏 기대감에 부풀었는데 정복은 아무나 입을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어렵다는 답을 들었다. 사관학교 교육을 마치고 자격을 얻어야만 입을 수 있는 옷이기 때문이다. 살짝 아쉬운 마음이 들긴 했지만, 욕심을 버리고 현장으로 나섰다. 때마침 모금활동을 하고 있던 자원봉사자는 35년째 봉사활동을 하는 박종심씨(64여)와 10년 차 베테랑 서광호씨(66)였다. 자선냄비 옆에는 황금색 돼지 저금통 한 개가 놓여 있었다. 들어보니 무게가 상당했다. 동전과 지폐로 저금통이 가득 차 있었다. 아주머니 한 분이 좋은 곳에 써달라고 놓고 가셨단다. 하루 이틀 모은 돈이 아닐 텐데 무거운 저금통을 이곳까지 가지고 와서 기부한 그 마음이 정말 고맙고 감사했다. 냄비 안에는 두툼한 봉투도 보였다. 아저씨 한 분이 오셔서 냄비 앞에 무릎을 꿇고 돈을 넣으셨다는 설명을 들었다. 괜스레 눈가가 뜨거워졌다. 박 사관은 4년 전 인천으로 발령을 받은 첫해에 냄비에서 100만 원이 든 봉투와 편지를 받은 적이 있다며 편지에는 이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마지막으로 좋은 일을 하고 싶다는 사연이 적혀 있었다. 아마도 시한부 선고를 받은 사람이 아니었나 싶다고 전했다. 사연들을 듣고보니 빨간 냄비 안에 들어 있는 동전 한 개, 지폐 한 장이 모두 소중하게 느껴졌다. 구세군 냄비에 기부하는 사람은 모두 익명의 기부자다. 그리고 대부분 서민이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오가는 사람, 찬바람을 맞으면서 걸어다니는 사람이다. 지갑은 비록 가볍지만, 마음만은 풍요로운 사람들이다.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 빨간 냄비와 깔 맞춤으로 빨간 색 자원봉사 점퍼를 입고 본격적으로 모금활동을 시작했다. 내 모금활동의 첫 기부자는 나 자신이 되기로 하고 1만 원을 냄비에 넣었다. 마음이 뿌듯했다. 그런데 시작과 함께 난관에 부딪혔다. 딸랑딸랑 종을 치는 일이었다. 차 부사관이 시범으로 은은하게 딸랑딸랑 소리를 내면서 종을 치는 방법을 가르쳐줬지만, 아무리 종을 흔들어도 땡 땡 소리가 나는 것이 아닌가. 종소리는 자선냄비의 존재를 멀리까지 알리고 행인의 시선을 붙잡을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다. 행인들이 행여 시끄러운 땡 땡 소리를 피해 가버릴까 봐 걱정스러웠다. 차 부사관에게 다시 종을 넘기려는데 더 해보면 괜찮아질 거라면서 손을 내둘렀다. 어설픈 종소리가 울리는데도 마음씨 좋은 기부자의 발걸음은 이어졌다. 7~8살로 보이는 꼬마 아가씨는 두어 살 터울의 언니에게 1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을 받아 냄비에 쏙 집어넣었다. 한 남학생은 냄비를 보더니 주머니에 들어 있던 동전을 잔뜩 꺼내 기부했다. 친구들이 동전뿐이냐고 핀잔을 주자 그 남학생은 동전이 뭐 어때서? 너희보다는 낫거든!이라며 당당히 어깨를 편다. 동인천역에서 지내는 노숙자로 보이는 허름한 차림의 한 아저씨도 1만 원짜리 한 장을 넣더니 쑥스러운 미소를 짓고 돌아섰다. 기부가 이어질 때마다 저절로 허리 굽혀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게 됐다. 한참 모금을 하고 있는데 머리카락이 하얗게 센 할아버지 한 분이 조심스레 다가와 외투 안 주머니에서 두툼한 흰 봉투를 꺼내 냄비에 넣고는 사라졌다. 사연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자의 직감(?)에 황급히 따라나서 인터뷰를 시도했는데 할아버지는 연말이잖아하면서 유유히 떠나셨다. 기부를 하는 것은 꼭 사연이 있어서가 아니다. 단순히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작은 일이라도 하고 싶다는 마음과 마음이 만나 빨간 냄비를 가득 채우고 있다는 것을 그렇게 깨달았다. 김미경기자 kmk@kyeonggi.com 사진= 장용준기자 jyjun@kyeonggi.com

[1일 현장체험]용인 양지파인리조트 ‘스키 패트롤(안전요원)’

스키 족들의 시즌이 돌아왔다. 겨울 스포츠의 꽃으로 대중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스키는 새하얀 설원(雪原) 위를 시원하게 가르는 통쾌함과 짜릿함 자체다. 하지만, 스키를 즐기는 마니아들 뒤에는 그들만을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밤낮 없이 안전에 만전을 기하고 있는 안전요원들이 묵묵히 일을 하고 있다. 119구조대로 불리는 스키 패트롤(ski patrol안전요원) 체험은 그래서 더욱 의미깊고 이색적이었다. 기자도 20년이 넘는 오랜(?) 경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언제나 중급 실력에서 빠져나오질 못한 터라 설렘보단 다소 걱정이 앞섰던 것이 솔직한 심정. 다행히 큰 추위가 없었던 지난 18일 오전 용인시 양지면 남곡리에 자리 잡은 양지파인리조트에 다다르자 차창 너머로 눈 덮인 슬로프들이 속속 모습을 내밀기 시작하면서 기자의 심장은 왠지 모를 설렘과 두려움으로 쿵쾅쿵쾅 요동치기 시작했다. ◇초보 패트롤, 선배와 어색한 상견례 스키장 안전은 우리가 지킨다. 사전에 패트롤 체험을 미리 하기로 스키장 측과 약속을 잡고 양지파인리조트 스키장에 도착하자 새하얀 설원이 눈앞에 시원스럽게 펼쳐졌고, 스키어들이 바람을 가르며 씽씽 활강을 하고 있었다. 이곳의 패트롤 대장인 유문상 대장(34)이 기자를 반갑게 맞아줬고 초보 스키어의 실력을 의심한 듯 재차 물은 뒤 먼저 패트롤의 임무에 대해 설명했다. 유 대장은 패트롤이란 슬로프 위에서 부상자가 발생하면 응급조치를 취한 후 신속하게 안전한 곳으로 후송하고, 부상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안전사고를 예방하는 것이 주 업무라며 안전을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그는 이곳에서 패트롤 업무를 시작해 12년 경력을 자랑하는 잔뼈가 굵은 베테랑. 이날 기자는 유 대장의 소개로 경력 6년차의 박관기(27) 대원을 비롯해 3년차2년차 경력의 김정하(24)양재성 대원(21)과 한 조를 이루게 됐다. ◇사고 발생, 초보 패트롤 능력을 보여줘 실전에 투입되기 전 가벼운 준비 운동은 필수. 조원들과 함께 둥글게 서서 하나, 둘, 셋 구령에 맞춰 스트레칭으로 얼었던 몸을 풀기 시작했다. 이때 유 대장의 무전기가 다급히 울리기 시작했다. 오렌지 슬로프 상단에서 사고 발생! 사고 발생!. 이제 겨우 몸만 풀었을 뿐인데 초보 패트롤은 영문도 모른 채 유 대장 손에 이끌려 부랴부랴 스노 모빌에 몸을 실었다. 첫 임무가 떨어진 것이다. 우리가 탄 스노 모빌은 빠른 속도로 슬로프 정상으로 향했다. 도착해보니 20대 여성이 슬로프 정상에서 출발하지 못하고 잔뜩 겁에 질린 얼굴을 한 채 얼어 있었다. 초급 실력임에도 친구들과 겁 없이 중급 슬로프에 도전했던 것.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플레이트도 약간 파손돼 혼자의 힘으로는 내려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원들과 함께 이 여성을 썰매에 태우고서 밧줄로 단단히 묶고 안전하게 슬로프 아래까지 옮겨다 줬다. 다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대원들과 기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동시다발적 사고 연속, 응급처치여 응답하라. 바로 그때 이번에는 스노보드를 탄 한 여성이 슬로프 하단에 다다르도록 제 속도를 줄이지 못해 안전망에 부딪히며 넘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말 그대로 긴급 상황이었다. 이 여성은 빠른 속도로 부딪힌 탓에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고 팔에 통증을 호소했다. 즉시 선배 대원들과 함께 여성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고 팔에 삼각포를 댔다. 얼마 전 민방위 훈련에서 응급처치를 배웠지만, 좀처럼 생각나지 않아 애만 태웠다. 코스별로 내걸린 자신의 실력에 맞는 코스를 이용하라는 안내 현수막이 진리처럼 다가온 순간이다. 유 대장은 우리 스키장에서만 한 시즌에 400여 명이 다친다며 과욕을 부리거나 절대로 음주 스키를 타서는 안된다고 당부했다. ◇첫째도 둘째도 안전, 사고 예방에 몸을 던져라. 사고가 어느 정도 수습되고 나서 유 대장과 대원들과 함께 슬로프 주변 안전지대 시설 점검에 나섰다. 패트롤은 매일 스키장 개장 전에 제일 먼저 슬로프를 올라 내려오면서 설질(雪質)은 물론 각종 펜스와 안전망도 수시로 점검해야 한다. 박관기, 김정하 대원과 초보자 슬로프에 안전망을 설치했다. 안전망 설치는 비교적 간단했다. 드릴로 눈에 깊숙이 구멍을 뚫은 뒤 폴대(바)를 박고 나서 망을 걸기만 하면 그걸로 끝. 박 대원은 넘어진 스키어들의 충격을 막고자 안전망 점검은 수시로 해야 한다라고 말하면서도 마치 먹잇감을 바라보는 매의 눈처럼 슬로프를 내려오는 스키어들을 이리저리 살피고 있었다. 한순간도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외국인 스키어들을 위한 통역 가이드에 분쟁조정까지 진땀 최근 한류 열풍 탓인지 스키장에는 한국인 반, 외국인 반이었다. 외국인이 부상을 당해 말이 안 통한 적이 없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유 대장은 외국인 대부분이 가이드와 동행해 큰 문제는 없지만, 우리도 영어와 중국어 등 기본적인 회화 공부를 하고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보다 패트롤의 애로 사항이라면 요즘 들어 서로 부딪힌 스키어들이 잘잘못을 따져가며 경찰을 부르네! 마네 하며 소란을 피우는 경우가 잦아졌다며 걱정하는 유 대장. 그는 서로 조금만 배려하고 양보하면 좀 더 즐겁게 지낼 수 있다라며 스키어들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스키를 즐길 수 있도록 우리 패트롤들도 더 열심히 뛰겠다고 말했다. 온종일 선배 패트롤들을 졸졸 따라다니며, 때로는 슬로프에 내동댕이친 기자는 일일 패트롤 체험이 끝나자마자 팔다리를 비롯해 온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그리 추운 날씨도 아니었지만, 어느새 얼굴과 귀는 새빨개졌고, 콧물이 주룩 흘러내렸다. 매일 추위와 사투를 벌이는 패트롤들이 안쓰러웠다. 여느 체험과 마찬가지였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며 땀 흘리는 그들은 진정한 프로였다. 권혁준기자 khj@kyeonggi.com 사진=전형민기자 hmjeon@kyeonggi.com

[1일 현장체험]제부도 앞바다 ‘김 채취’

김은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고 밥상에서 빠지면 어딘지 모르게 서운한 국민반찬이다. 푸르스름한 빛이 감도는 질좋은 생김에 고소한 참기름을 듬뿍 바르고, 적당량의 소금을 골고루 뿌린 뒤 바삭바삭하게 구운 김을 흰 쌀밥에 도로록 말아 한입에 넣을때 주는 만족감은 왠만한 산해진미 못지않다. 입맛이 없을 때는 가스렌지 위에 살짝 구운 맨김을 손으로 북북 찢어 밥과 간장을 올려 싸먹는 것도 꿀맛이다. 특히 김은 단백질과 각종 비타민을 비롯, 무기질과 섬유질, 철분 등이 다량 함유된 알칼리성 식품으로 다이어트와 피부미용에도 효과 만점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단일 수산물으로는 최고의 수출량을 자랑하는 수출 효자 품목이다. 겨울비가 내린 지난 9일 국민반찬 김이 밥상에 오르기까지 어민들이 얼마나 많은 땀을 흘리는지를 조금이나마 느껴보기 위해 김채취 선에 몸을 실었다. 요동치는 배 위에서 쏟아지는 비와 차디찬 바닷바람을 감내해야했던 3시간여의 김채취선 체험은 치열했다. 바다내음 가득했던 삶의 현장을 소개한다. ■ 악천후를 뚫고 고고싱 오전 7시 김채취 작업 일일체험을 위해 화성시 제부도 선착장을 찾았다. 답답한 도심에서 벗어나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모처럼만에 기분 전환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비웃기라도 하듯, 하늘에서는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굳은 날씨로 김 채취 작업에 나서려했던 상당수 배들이 잇따라 작업 포기하는 최악의 상황. 하지만 이른 새벽부터 제부도까지 나온 수고를 되풀이할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오늘은 날씨가 안좋으니 차라리 내일쯤 나가는게 어떨까요라고 권유하는 김 채취선 선장 김승재씨를 설득해 체험을 강행하기로 결정했다. 무릎까지 오는 고무 장화에 팔을 제외한 상반신 전체를 덮는 방수복, 목에 거는 노란색 고무 장갑 등으로 완전 무장을 한 뒤 배에 올랐다. 선원 3명과 함께 조그만 배에 몸을 실은 뒤 곧바로 최대 20t가까운 김을 운반할 수 있도록 설계된 김 채취선에 옮겨 탔다. ■ 쾌청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출항 드디어 출항. 날씨가 좋지 않아 살짝 아쉬웠지만 날아다니는 갈매기들의 배웅을 받으며 물안개 낀 서해의 새벽 바다를 달리는 기분은 제법 상쾌했다. 시원하게 달리는 배안에서 시원한 새벽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니 일상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날아가는 듯한 기분도 느껴졌다. 치열한 삶의 현장을 체험하러 왔다는 생각을 잊고 잠시 놀러온 듯한 기분에 취해 20여분을 달리는 사이 거대한 모습의 김 양식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김 양식장의 모습은 마치 바다 위에 큰 김을 둥둥 띄워놓은 형상을 하고 있었다. 궁금한 것들은 많았지만 김 채취선의 요란한 모터소리 때문에 대화를 거는 것은 아예 불가능했다. 그저 눈치껏 선원들의 행동을 따라하는 방법뿐이었다. 김 채취 작업은 생각보다 기계화 돼 있었다. 벌집 모양의 그물 위로 배가 지나가면 그 위에 주렁주렁 달려있는 김이 저절로 김 채취선 안으로 들어오는 구조였다. 선원들이 직접하는 일은 김 채취선이 50m 길이의 긴 그물에서 김 채취를 마치고 나면 다른 그물로 이동할 때 김 그물이 배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고정하는 일이었다. 사실상, 이날 김 채취 작업을 처음 경험하는 기자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저 선원들의 일에 방해만 되지 않으면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 치열했던 3시간여의 김 채취 작업 충분히 한몫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철저하게 무너지는 사이 작업은 쉬지 않고 계속됐다. 온 몸이 땀으로 젖을 만큼의 격무는 아니었지만, 3시간여에 걸친 김 채취 작업은 고되기 이를데 없었다. 점점 굵어지는 빗방울과 온 몸 구석구석을 파고드는 차디찬 바닷바람은 상쾌했던 기분을 으슬으슬한 몸살 기운으로 바꿔 놓았고, 파도에 좌우로 요동치는 배와 요란하게 돌아가는 모터에서 나오는 매캐한 매연은 머리를 아프게 만들었다. 또 어느샌가 장화와 비옷, 두꺼운 겨울 파카, 작업복, 고무장갑 사이로 침투한 빗물과 바닷물은 손과 발을 시리게 만들었다. 김 채취 작업이 시작된지 30분 여가 지나자 치열한 삶의 현장을 체험해보겠다는 의욕은 온데 간데 없고, 그저 빨리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만이 머리를 지배하고 있었다. 빨리 가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 속을 가득 채우고 아, 언제 끝나지?라는 말이 수십차례 입에서 멤도는 사이 김 채취선은 바다내음을 가득 머금은 김들로 차오르기 시작했다.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해 극도의 피로감과 짜증이 밀려올 때 쯤 3시간여에 걸친 김 채취 작업은 끝이났다. ■ 손발은 퉁퉁, 머리는 지끈지끈, 극도의 피로감 드디어 끝났다는 기쁨을 안고, 보온병에 담아온 물로 탄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기는 사이 김으로 가득 찬 채취선은 경매가 있는 궁평항에 도착했다. 요란한 배의 모터가 꺼지고 나서야 신승재 선장이 말을 건넸다. 신 선장은 날씨가 안좋아서 생각보다 더 힘드셨죠. 그래도 12월은 날씨가 그나마 따뜻해 작업하기 수월한 편입니다. 추위가 한창인 1,2월에 채취 나갈때 체험 한번 하러 더 오시죠라며 농담을 건넸다. 춥지 않은 날씨 속에서 진행된 작업에 참여하고 나서도 감기 몸살 기운이 느껴지는데 1,2월 새벽배를 탄다는 상상을 하니 눈앞이 아찔했다. 이날 김 경매는 작업에 나선 채취선이 거의 없었던 관계로 현장에서 별다른 절차 없이 곧바로 이뤄졌다. 이날 채취한 10t 가량의 김을 대형 크레인이 트럭에 옮겨 싣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채취선과 온몸 곳곳에 붙은 김을 떼내는 등 작업을 마무리하는 일 또한 쉽지 않았다. 고무 장화와 작업복을 벗어던지자 옷과 양말은 속까지 푹 젖어 있었고, 고무 장갑 속에 있언 손은 목욕탕에 장시간 머물렀던 것 흰색으로 퉁퉁 불어있었다. 또 짠내로 가득 쩌들은 몸은 한기로 오들오들 떨렸고, 머리가 띵하게 아파오면서 극도의 피로감이 몰려왔다. ■ 국민반찬 김이 밥상에 오르기까지 작업을 마친 뒤 뜨거운 짬뽕국물을 마시며 신 선장의 설명을 들었다. 신 선장은 김 채취는 11월부터 15일 주기로 1년에 8~9회 가량 나간다라며 매년 4월부터 김의 포자를 굴 껍질에 붙여 그물을 치고 영양제를 주는 등의 준비 작업을 해야하는데 준비작업을 모두 마치면 김 양식의 80~90%는 끝난 셈이라고 설명했다. 오늘처럼 고된 작업이 1년간의 김 농사를 마무리하는 비교적 간단한 작업이라는 뉘앙스의 설명이었다. 한참 후의 일이지만 이날 작업을 마친 뒤 기자는 12시간 가량을 기절하듯 잠에 빠져버렸다. 만약 혹한기에 진행된 1,2월 중 작업이었다면 피로감은 이보다 훨씬 더 컸을 것으리라. 치열했던 3시간여의 김 채취 작업을 체험 마친 뒤 제부도를 뒤로 하며 국민반찬 김이 밥상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어민들의 노력이 필요한지를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또 밥상에서 김을 볼때마다 힘겨웠던 김채취선에서의 3시간을 떠올리며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민수기자 kiryang@kyeonggi.com

[1일 현장체험]과천 꿀벌마을 비닐하우스촌

마(馬)들의 화려한 레이스가 끝나자 순식간에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일확천금을 꿈꿨던 이들은 근처 포장마차에서 인생의 헛헛함을 안주 삼아 술을 마셔댔다. 4차선 도로엔 서울로 향하는 차들이 속력을 내어 질주하고 있었고 인근 동물원과 미술관은 불을 끈채 내일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곳은 과천경마장공원역 5번 출구 입구. 모든 이들의 꿈과 환상이 뒤섞여 있는 이 곳의 뒤편엔 재개발과 굴곡진 삶에 떠밀려 비닐하우스에 삶의 공간을 마련하고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최소한의 주거생활만이 허락된 이들에게 유난히 일찍 찾아온 올 겨울 추위는 더욱 혹독할 테다. 누군가에게는 삶의 터전이자 일상을 1일 현장체험 소재로 한다는 게 놀이쯤으로 비쳐지지 않을까, 불편한 마음도 있었다. 하루만의 체험으로 이들의 일상을 다 겪을 수도 없다. 그러나 3.3당 1천만원을 훌쩍 넘는 아파트가 즐비한 시대에 너무나도 다른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곁 주거빈곤층의 삶을 들여다 보고 싶었다. 과천시 꿀벌마을 비닐하우스촌에서 20년간 살아온 배광자(74)할머니의 1일 손녀가 돼 비닐하우스집에서 하루 묶기로 한 이유다. 이들의 일상을 극단적으로 표현한다거나, 굳이 내 삶과 다른 부분을 찾고 싶지 않았다. 이 곳 주민들에게는 비닐하우스가 마지막으로 허락된 유일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없는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허락된 주거공간, 비닐하우스 2일 저녁 8시. 과천경마장공원역 5번 출구 옆 길목에 들어서자 마을 전체에 무겁게 내려앉은 매캐한 연탄가스가 코끝을 찔렀다. 마르지 않은 땅으로 발은 연신 푹푹 꺼졌다. 칠흑같은 어둠 속에 판자에 하얀 비닐을 덮은 비닐하우스들이 즐비했다. 이따금씩 불빛과 텔레비전 소리가 비닐하우스 밖으로 새어나왔다. 5분쯤 걸었을까. 두꺼운 점퍼와 조끼를 껴입은 채 작은 손전등을 비추며 어두운 길모퉁이에 서있는 배광자(74)할머니를 만났다. 젊은 아가씨가 있기 불편할텐데, 괜찮겠어? 찾아온다고 힘들었지? 하룻밤 함께 묶을 수 있게 해달라는 부탁을 몇 번이고 거절했던 할머니는 마치 친손녀를 만난듯 반갑게 맞아 주셨다. 할머니의 손을 잡고 골목을 따라 들어서자 조그마한 파란 대문이 붙어있는 가로 4m,세로 1.5m가량의 비닐하우스가 보였다. 배이남, 배광자 집. 이 문으로 드러오세요. 이 곳 주민들은 정확한 지번이 없었던 탓에 이렇게 비닐하우스나 대문에 이름을 써놓았다고 한다. 배 할머니가 살고 있는 곳은 과천시 과천동 194번지. 내비게이션은 할머니의 주소를 찾지 못한 채 인근을 한참 맴돌았었다. 지번은 있지만 비닐하우스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어 정확한 주소를 가려내기 힘들다. 높이가 채 1.5m가 안되는 탓에 허리를 숙인 채 집안으로 들어섰다. 방으로 들어가는 입구이자 빨래와 세면을 해결하는 이 곳엔 연탄이 겹겹이 쌓여있다. 방 안엔 할머니의 남동생 배이남(67)할아버지가 이불을 몸에 꽁꽁 싸맨채 앉아있었다. 할아버지는 오래 전 쇼크로 장애를 갖게 됐다. 주위의 도움없이는 움직이지도 못한다. 일흔이 넘은 할머니는 혼자 동생을 돌보며 20여년을 이 곳에서 살아왔다. 두어평 남짓한 방안 흰 빨랫줄에는 할머니의 삶처럼 옷들이 얼기설기 걸쳐있었다. 비닐하우스를 개조한 이 곳은 20여년 전 할머니가 전 재산 500만원을 털어 마련했다. 비가 오면 잠기지 않을까, 폭설이 오면 지붕이 내려앉지 않을까 하루도 마음 편할 날 없었지만, 없는 사람들에게 허락된 마지막 안식처였다. 떠밀려 이사를 다니다 전기도, 수도시설도 없는 이 곳까지 왔다. 지금은 배 할아버지의 장애연금과 기초생활수급비를 합친 50여만원으로 생계를 꾸려간다. 할머니는 자식이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수급자에서 제외됐다. 방 위 아치형 모양의 비닐하우스는 할머니의 고단한 삶의 무게만큼 내려앉아 있었다. 불안감에 천장을 손으로 눌러보니 스펀지처럼 힘없이 들어갔다. 이만한 것도 많이 나아진 거야. 원래 비닐하우스 전체가 판자로 지어졌는데 2년 전 사회복지관에서 방에서만큼은 사람같이 살아야 하지 않겠냐며 판넬로 교체해줬어. 그나마 찬바람이 전보다는 조금 덜 들어오게 됐지. 이 곳 꿀벌마을에는 배 할머니와 비슷한 사연을 가진 266세대가 비닐하우스에 거주하고 있다. 이 중 20%가량(48명)이 차상위계층, 기초생활수급자다. 자식과 함께 산다는 등의 이유로 수급대상이 되지 못한 가구까지 고려하면 마을의 절반가량이 빈곤층이다. 주민들 대부분은 60~70대 노인층으로 구성돼 있다. ■최소한의 생활만이 허락된 곳 늦은 저녁밥을 지어먹을 준비를 했다. 방의 바깥쪽 문을 열자 거실 겸 부엌이 나왔다. 발을 내딛자 겨울의 언 땅을 밟는 듯한 한기가 느껴졌다. 지붕엔 2년 전 강풍에 날아갔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이 곳은 집 구조상 거실 겸 부엌이지만 겨울에는 거의 사용을 하지 못한다. 연탄 보일러가 이 곳까지 들어오지 않고 판자로 지어진 탓에 햇볕이 비치는 대낮에도 옷을 여러겹 껴입어야 활동할 수 있다. 미리 준비해 갔던 등산용 양말 한켤레를 덧신었다. 할머니의 털달린 조끼와 두꺼운 점퍼까지 입었다. 벌어진 문틈으로 들어오는 찬바람을 막기 위해 막아놓은 카펫은 속절없이 바람이 휘날렸다. 오늘은 이른 한겨울 추위가 잠시 누그러지고 평년보다 많이 따뜻해 활동하기 좋은 날씨였습니다.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기상캐스터의 말이 공허하게 들렸다. 이 곳에서는 모든 것을 다 아껴써야 했다. 물, 전기 등 최소한의 주거생활 조차 조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수도 시설이 설치되지 않아 이 곳 주민들은 마을의 농경지용으로 만들어 놓은 지하수를 끌어다가 사용한다. 재래식 화장실에서 나오는 오물과 지대에 고인 물들이 지하수로 흘러 들어갈 우려가 있어 식수로는 쓸 수 없다. 한 기관으로부터 기증받은 500ml들이 생수를 이용해 밥을 지었다. 전기선도 구축되지 않아 농업용 전기를 끌어다가 임의로 사용하고 있다. 따뜻한 물도, 물론 없다. 각오는 했지만 한여름에도 온수없이는 세수도 못하는 체질인 탓에 순간 당혹스러웠다. 연탄 보일러 위에 주전자에 물을 넣어 대강 데운 물로 씻는 걸 해결했다. 잠자리에 들기 전 커다란 창문으로 바깥의 겨울 찬바람이 그대로 들어오고 있었다. 문을 닫으려 다가서자 할머니는 기자를 황급히 말렸다. 연탄가스 때문에 안돼, 찬바람 들어와도 조금만 참아. 쉬이 잠이 오지 않았다. 유난히 어두운 이 곳은 손전등 없이 밖에 나가기 힘들다. 혼자 있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됐다. 개 짖는 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초인종도 마땅한 현관문도 없는 탓에 주민들 대부분이 개를 키우고 있다. 인기척을 알리거나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배 할머니는 잠을 자다가도 몇 번이고 깼다. 배 할아버지의 대소변을 직접 받아내고 찬바람에 감기라도 들지 않을까 이불을 덮어줘야 했다. 긴 밤이 지나고 오전 7시. 연탄을 갈기 위해 연탄 보일러 뚜껑을 열었다. 3장 중 1장은 아직 밑불이 남아있었다. 연탄은 6시간 기준 하루 4번씩 간다. 한 달을 나기 위해서는 연탄값으로만 6만원이 나간다. 고맙게도 복지단체에서 연탄 300장을 기부해줬다. 그러나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추운 비닐하우스에서 한겨울을 나려면 최소 연탄 700여장은 필요하다. 다 탄 연탄 한 장을 버리고 다시 차곡차곡 넣다보니 연탄 가스를 조금 들이켰는지 기침이 시작됐다. 캑캑! 한 시간 동안 기침은 멈출 줄 몰랐다. 매일 연탄을 마주할 수밖에 없는 할머니의 건강이 걱정됐다. 이 곳에서는 아프거나 다치는 건 특히 조심해야 한다. 번지를 찾기 어려워 구급차를 불러도 시간 소요가 많다. 병원도 차를 타고 20분은 나가야 한다. 화재의 위험은 더더욱 조심한다. 한 곳에서 불이 날 경우 순식간에 이웃 비닐하우스로 번지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기자에게 내내 불을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한 마디로 모든 게, 조심스러웠다. 아가씨, 볼 일 보려면 요강에 봐. 괜찮아. 배 할머니네 집에는 화장실이 없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요강에 볼 일을 보고 농지에 한꺼번에 뿌린다. 할머니의 말을 뒤로 한 채 마을 주민들이 공용으로 사용한다는 화장실을 찾아나섰다. 한 평 남짓한 공간에 여러 물건 더미가 쌓인 재래식 화장실은 방금 전 누가 다녀간 듯했다. ■집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돈이 어디 있어? 편한 집에 들어가서 살면 안되냐고 묻는 기자에게 배 할머니가 답했다. 17평 남짓한 배 할머니 집은 기껏해야 1천300여만원 밖에 보상을 못받는다. 정부에서 임대주택을 우선 배정해준다고도 했지만 이마저도 이 곳 주민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임대료와 관리비를 감당할 정도면 굳이 여기서 살아가겠냐는 게 답변이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기초 수급자 등 각 가구의 소득수준에서 현실적으로 감당 가능한 집을 제공받거나 이곳에서 주거권을 누리고 살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할머니는 기자와 있는 내내 입버릇처럼 그래도 이렇게 살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집값이 하락하고 상승하는 데 울고 웃는 사이 어떤 이들에게 집은 그저 살아갈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곳이었다. 2010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비닐하우스, 판잣집, 움막 등에 거주하는 가구는 전국적으로 11만3천704가구, 경기도는 3만109가구로 전국대비 26.5%를 차지했다. 마을 아래 자욱하게 깔린 매캐한 연탄가스를 뒤로 한 채 일상으로 돌아오는 사이 마음 한편에서는 주체를 알 수 없는 부채가 쌓여갔다. 정자연기자 jjy84@kyeonggi.com 사진=김시범기자 sbkim@kyeonggi.com

[1일 현장체험]환경미화원

요즘, 말문이 트인 네 살짜리 딸아이는 기자엄마를 당황하게 만들 때가 많다. 얼마전엔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아파트 청소 아줌마를 보곤 안녕하세요. 17층 혜원이에요. 힘내세요.라며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것이었다. 내심 딸아이의 예의 바른 인사성에 뿌뜻해 하는데 갑자기 엄만 왜 인사 안해요?라며 돌직구를 날렸다. 뜨끔했다. 언제부턴가 도시생활 속에서 타인에 대한 간단한 인사조차 힘든 일이 돼 버렸다. 특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이들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 그래서 도심 속 거리의 마법사로 불리는 환경미화원 1일 체험을 해보기로 했다. 마흔에 새로운 직장을 구한 수원시 여성 환경미화원 1호 이남희씨를 만났다. 남희씨는 수원시가 11년 만에 실시한 환경미화원 공채를 통해 채용됐다. 당초 33명을 뽑는데 297명이 지원해 9대1의 경쟁률을 보인 올해 공채에는 대졸자가 87명, 전문대졸자가 14명이나 지원해 환경미화원직의 달라진 위상을 실감케 했다. 남희씨는 현재 수원시 환경미화원 263명 가운데 유일한 여성이다. 환경미화원의 신분은 무기 계약직이고, 일반 공무원과 같이 만 60세까지 정년이 보장된다. 이러한 장점 때문에 남희씨도 어려운 선택을 하게 됐다. 그녀는 환경미화원 옷을 입은 자신의 몸을, 빗자루를 든 자신의 손을 창피해 하지 않았다. 몸도 마음도 건강한 남희씨와 함께 영화동 일대 청소에 나섰다. ■수원시 환경미화원 263명 중 유일한 여성, 이남희씨와의 오전 청소 시작 11월 25일 오전 10시 영화동주민자치센터 환경미화원 휴게실. 새벽 5시 30분부터 시작된 오전 청소를 마친 총 11명의 환경미화원들이 둘러 앉아 커피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경기일보 강현숙 기자입니다. 오늘 하루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큰소리로 씩씩하게 인사를 건넸다. 인사가 끝나자마자 여기저기서 우려와 걱정의 목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아이고, 고생일텐데. 마음 단단히 먹고 청소해야 할꺼야, 그 많은 직업 중에 왜 하필 환경미화원을 해서 사서 고생이랴, 그래도 낙엽철 끝물이라 덜 고생하겠네 그 중에는 생각했던 것 보다 힘들껀데 도망가면 안돼라며 잔뜩 겁을 주는 환경미화원도 있었다. 작업 반장 김성복(47)씨는 친절하게 미화원 바지와 잠바, 털모자까지 챙겨주면서 용기를 복돋아 주었다. 달달한 다방커피 한잔으로 몸을 녹이고 나서 남희씨를 따라 담당구역으로 나갔다. 오늘의 오전 청소 구역은 장안구 영화동어린이공원. 주택가에 소재하고 있는 공원 주변은 그야말로 차 반, 낙엽 반이었다. 환경미화원 생활 5개월인 남희씨의 손놀림은 생각보다 민첩하고 빨랐다. 주차된 차를 피해 삭삭 낙엽을 긁어 모아 쓸어 담는 모습이 마치 떡 주무르듯 마음대로 갖고 노는 것 같았다. 우선 갈퀴나 빗자루로 낙엽을 한 곳에 모으고 쓰레받기로 200ℓ짜리 낙엽전용 쓰레기 봉투에 담으면 되는 단순 작업이에요. 그런데 복병들이 숨어 있어요. 공원 주변이다 보니 먹다 남은 라면, 술병은 기본이고 각종 쓰레기들이 낙엽 속에 숨어 있어 손이 많이 가죠. 아니나 다를까 낙엽을 쓸어 담은 지 5분도 채 되지 않아 각종 전단지, 썩은 양말, 파 껍질, 여행가방, 컵라면, 막걸리병 등 툭툭 튀어나왔다. 게다가 이틀 전 내린 비로 낙엽이 바닥에 달라붙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비에 젖은 낙엽은 무거웠다. 환경미화원들은 낙엽이 쏟아지는 11월부터 12월 초까지가 가장 바쁜 시기다. 그래서 요즘 같은 땐 자고 나면 낙엽이 쌓이고, 치우고 나면 낙엽이 쌓이는 정말이지 고난의 계절인 셈. 허리를 굽혔다 폈다를 반복하며 낙엽쓸기와 담기를 무한반복하는 그 사이에도 뚝뚝 떨어지는 낙엽이 한없이 무정했다. 시민들에겐 거리의 낙엽이 볼거리이지만, 환경미화원에겐 일거리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게다가 골목길을 쌩쌩 달리는 자동차를 피하면서 청소를 해야하기 때문에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초짜 환경미화원이 안쓰러웠는지 이남희씨가 인근에서 청소하고 있는 18년차, 14년차 베테랑 미화원에게 SOS를 쳤다. 점심시간 다 되가는데 아직도 멀었네. 아이고 밤 새겠어. 어 눈 오네, 눈이 와 어르신 미화원들은 낙엽과 씨름하는 기자를 보자마자 힘을 보탰다. 그때 마침, 하얀 눈이 펄펄 내리기 시작했다. 기자와 남희씨의 일손을 돕던 K미화원은 어린 아이 마냥 기념사진을 찍자고 했다. 기자는 눈이 계속 오면 힘들텐데 걱정이 앞섰다. 걱정도 잠시 남성 미화원 덕분에 후다닥 공원 주변 낙엽청소를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청소 시작 2시간 만에 200ℓ짜리 포대 20자루가 가득 찼다. 작업 2시간 만에 손가락 마디가 저리고, 허리가 뻐근했다. 환경미화원들의 두꺼운 손마디와 거친 피부를 보면서 노곤함을 속으로 삭혔다. 새벽 4시부터 시작해서, 아침 8시까지 대부분 각자 맡은 구역을 돌면서 낙엽과 쓰레기를 치운 미화원들에 비하면 오전 시간대 2시간 청소는 식은 죽 먹기였다. 경력 18년차의 김성영(57)씨는 거리에서 일하는 환경미화원은 생명의 위협에 많이 노출돼 있어요. 차량에서 담배꽁초를 버리면 도로 중앙까지 빗질하러 가야 하고. 통계적으로 보면 환경미화원의 산재 사망률이 일반 직업의 10배에 달한다고 하니깐 얼마나 위험해. 남희씨도 절대 새벽청소할 때 큰 대로로는 나가지마. 알았지? 내 몸은 내가 챙겨야지. 정년 바라보고 이 고생 참고, 또 참는건데 몸 다치면 다 소용없어라며 푸념 아닌 푸념을 털어놓았다. 푸념 속에는 여성 환경미화원에 대한 진심 어린 걱정이 묻어있었다. ■ 사회적 편견 때문에 겪은 에피소드나 설움 여전해 오전 작업을 마친 환경미화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점심 메뉴를 고민했다. 청소하는 내내 뛰어난 유머감각을 자랑하던 K 환경미화원은 날도 추운데 뜨끈한 부대찌개 어때요? 원래 환경미화원들은 각자 점심을 해결해요. 집이 가까운 분들은 집에 가서 먹는데 오늘은 특별한 손님가 왔으니 외식하는 겁니다며 해맑게 웃었다. 즐거운 점심시간, 환경미화원들의 수다잔치가 이어졌다. 수다잔치의 절반은 씁쓸하게도 직업에 대한 사회적 편견 때문에 겪은 에피소드나 설움들이 차지했다. 최근 들어 계속되는 경기 불황과 실업난의 여파로 정년 보장되는 환경미화원이 인기가 있지만 10년전만 해도 꼬마들이 쓰레기 아저씨라고 놀리고, 냄새 난다고 택시 승차거부도 당하는 등 수치스러운 일을 많이 당했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경력 14년차 K미화원은 아직 어디 가서 직업이 환경미화원이라고 떳떳하게 말 못한다. 여전히 환경미화원이라면 무시하는 시선을 많다. 요즘엔 시민들의 민원이 갈수록 많아진다. 환경미화원을 자기 집 앞 쓰레기, 눈 안치우는 사람으로 취급하기도 하고 심지어 집에서 죽은 고양이나 쥐를 처리해달라는 요구까지 한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경력 20년차 진대일(55)씨는 요즘엔 근무환경이 조금은 개선됐지만 정말 옛날엔 사람 취급도 못 받았지. 93년도에는 10명 9명은 강도 높은 노동에 혀를 내두르며 도망가고 그랬어. 95~96년도에는 환경미화원이 620여명이었던 것이 해마다 줄고 있어. 호매실지구, 광교신도시 등 청소 수요는 갈수록 늘고 있고. 그래도 승진 때문에 싸울 일 없고, 슬퍼할 일 없는 직업이니 그거면 됐지 뭐라며 옛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수원시 여성 환경미화원 1호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이남희씨도 공채 합격 소식을 듣도 남편과 세 딸에게 가장 먼저 알렸다고 했다. 딸들에게 엄마가 너희들 학교 앞에 가서 청소해도 부끄럽지 않겠니라고 묻자 초등학교 다니는 막내딸이 인사할 거라고 해서 일을 할 수 있었어요. 만약 환경미화원 엄마가 창피하다고 했으면 이 일을 못했을 겁니다. 환경미화원들은 서로의 아픔과 옛날 이야기 하며 밥 한그릇을 비웠다. 그들은 고된 업무보다 더 힘든 사회적 편견과 매일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또 후진성을 면치 못하는 시민의식도 미화원들의 주름을 깊게 하기는 마찬가지. 환경미화원들은 예전에 더운 여름날엔 시원한 물 한잔 얻어 마실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소소한 정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반면 청소하는데 담배꽁초 안 버리고, 침 안 뱉으면 다행이라고 했다. 든든하게 속을 채운 기자는 본격적인 오후 작업에 돌입했다. 오후 청소할 장소는 수성로 일대. 식당과 상점이 즐비한 2차선 도로에는 도로가와 인도 가릴 것 없이 나뭇잎들로 뒤덮혀 있었다. 남희씨와 기자는 도로와 인도를 오가며 흩어진 낙엽을 한곳에 모아 미리 펼쳐놓은 200ℓ짜리 낙엽전용 봉투에 담는 작업을 1시간 넘게 반복했다. 베테랑 환경미화원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눈치껏 행동했다. 오후 취재 일정으로 환경미화원 1일 체험은 오후 3시쯤 마무리했다. 세 딸을 둔 어머니이자 항상 웃음을 잃지 않는 쾌활한 수원시 유일한 여성 환경미화원 이남희씨와 남성 환경미화원 10명의 하루는 건강하고 솔직했다. 땀 흘린만큼 장안구 영화동이 깨끗해졌기 때문. 이들은 남에게 해로운 행동을 하지 않았다. 주어진 일에 귀하고 천함을 따지지 않고 최선을 다했다. 어떤 이들은 환경미화원을 무시할지 몰라도, 쓰레기는 그들을 무시하지 않았다. 정년이 보장된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열어주고 처자식에게 가장으로서 체면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준 쓰레기는 그들에게 밥이자, 인생이었다. 강현숙기자 mom1209@kyeonggi.com 사진_추상철기자 scchoo@kyeonggi.com

[1일 현장체험]수원역 노숙인(露宿人)

노숙인(露宿人). 길 로(路)자를 써서 길에서 자는 사람인 줄 알았더니 이슬 로(露)자를 쓴다. 한자를 직역하면 이슬을 맞으며 잠드는 사람이란 뜻인데, 어찌 보면 낭만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노숙인을 이런 식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여러 단체, 매체 등에서는 겨울을 맞아 노숙인을 위한 대비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지만, 근본 대책은 없는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한데다 실상 그들을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시선은 추운 겨울 날씨보다 더 차갑다. 역 근처에 노숙인들이 조금만 모여 있어도 지나가던 사람들은 슬금슬금 피하기 바쁘고, 혹시라도 나에게 오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눈치만 볼 뿐이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어떻게 그들을 바라봐야 하는 걸까. 얼마 전, 추위를 이기지 못해 불을 피우던 노숙인이 화재로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일어났다. 그러나 직접 사고 현장을 다니면서도 노숙인 문제는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이럴 바엔 차라리 직접 노숙인이 되어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자의 눈도, 일반 시민의 눈에서 바라보는 노숙인이 아니라, 그들이 세상의 무엇을 보고 있는지 궁금했다. 오후 7시께 수원역. 이미 해는 저물고 어둑어둑해진 저녁 시간. 오늘따라 유난히 찬바람이 코끝을 스쳐 지나갔다. 연방 나오는 콧물 때문에 코를 훌쩍이며 수원역 남쪽광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광장에는 흰 천막 여러 동이 설치돼 있었다. 한 교회에서 봉사활동을 나와 노숙인들을 위해 무료 급식을 제공하고 있던 것이다. 천막 안쪽에서는 이미 여러 사람이 밥을 먹고 있었고, 옆쪽으로는 수십 명이 줄지어 밥을 기다리고 있었다. 혹시라도 밥이 떨어질까 걱정하며 뒤쪽으로 허겁지겁 달려가 줄을 섰다. 사람들은 밥을 먹으러 오가면서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헌데 이곳에서 밥을 먹기 전 하는 인사는 조금 특별했다. 보통은 잘 먹겠습니다 혹은 맛있게 드세요라고 말하지만, 여기서는 많이 드세요다. 미묘한 차이이지만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느낀 순간이었다. 줄은 금방금방 줄어들었다. 예상보다 질서가 잘 이뤄지는 모습이었다. 누구 하나 자기가 먼저 먹겠다고 소리를 지르거나 새치기를 하는 사람이 없었다. 수원역 건너편 버스정류장보다 훨씬 질서정연한 모습에 그들에게 가지고 있던 편견 하나가 깨지게 됐다. 드디어 밥을 받았다. 오징어 튀김에 오이무침, 김치에 어묵국과 밥이 나왔다. 늦게 받은 편이라 반찬은 식었지만, 국은 따뜻했다. 테이블 쪽엔 자리가 없어 옆에 있는 조형물 앞에 식판을 놓고 앉았다. 밥을 먹으려고 하던 찰나, 옆에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형님(?)이 와서 자리 잡았다. 형님 많이 잡수쇼라고 인사를 건네자 허허 웃으며 같이 밥을 먹기 시작했다. 올해로 77살이라고 밝힌 형님은 젊은 친구가 이곳에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마음에도 좀 걸렸나 보다. 밥 먹는 시간 잠깐이지만 대화를 나누었다. 잠은 어디서 자? 여기 패스트푸드점?, 거기 아니면 수원역이나 지하상가에 늦게 들어가서 자고 있슈, 너 노가다 뛰지? 노가다 하지 말고 젊은 놈이 직장에라도 들어가, 형님, 노가다라도 해야 소주 사 마시고 담배라도 하나 피울거 아니유, 그건 그러네 허허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형님은 자기가 가지고 있던 담배 한 개비를 건넸다. 이거 밥 다 먹고 하나 펴, 이게 요새 잘 나가는 외제 담배여 극구 사양했지만, 잠바 주머니에 쏙 넣어주고 자신은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 말을 이어나갔다. 술 많이 먹지 말고, 어디 번듯한 곳에 가서 일해. 이런 곳에서 있지 말고. 나이도 아직 젊은것 같은데. 나 같은 늙은이야 어쩔 수 없겠지만 순간 머리가 멍해지고 가슴이 뭉클해졌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어린 친구에게 진심 어린 말을 전하는 모습을 보며 다시 한 번 노숙인에 대한 편견이 깨졌다. 그러나 이런 가슴 따뜻함과는 반대로 겨울 날씨와 주변 사람들의 시선은 차가웠다. 추위를 견디다 못해 어묵국물이라도 먹으려고 역 근처 포장마차에 들어갔더니 먼저 와서 어묵 꼬치를 먹던 사람들 중 몇몇이 슥 자리를 피했다. 국물 좀 주면 안 되냐고 묻자 비웃음 소리가 돌아왔다. 뭐 저런 젊은 사람이 저러고 있나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종이컵에 국물을 담고 황급히 포장마차를 나와 그 옆에 앉아 뜨거운 국물을 마시며 몸을 녹였다. 평소 시력이 나쁜 편이라 안경을 쓰는데, 도저히 안경을 쓰고 있을 수 없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쳐다보며 온갖 욕을 하는 느낌이 들어 애써 외면했다. 킥킥거리며 웃는 사람부터 일부러 어깨를 부딪치고 지나가는 사람들까지. 차마 더는 있을 수 없어 밥을 먹던 남쪽 광장으로 자리를 옮겨 멍하니 앉아 시간을 보냈다. 노숙인 체험을 하면서 가장 곤혹스러운 부분은 바로 할 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시간은 안가고, 아는 사람도 없는 고독감과 무력함이 몸을 지배한다. 결국, 이런 이유가 노숙인들의 음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더 늦어지기 전에 잘 곳을 마련해야 했다. 이곳저곳을 계속 찾아다니다 수원역 2층 대합실 앞 에스컬레이터 옆에 있는 공간에 신문지를 깔고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역사 직원이 와서 이를 제지하는 바람에 바로 쫓겨나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그 뒤 수원역 뒤쪽 주차장에서 과선교로 나가는 육교 통로 쪽에 자리를 잡았다. 신문지를 덮긴 했지만, 실내가 아니다 보니 매서운 칼바람이 몸 안으로 파고들어 왔다. 간신히 잠이 들긴 했지만,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제대로 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결국, 노숙인 체험은 하룻밤을 모두 채우지 못하고 새벽녘에 종료됐다. 체험을 마치고 부끄러운 마음이 가득했다. 단 하루, 아니 몇 시간 만에 노숙인이 되었다?. 노숙인을 모두 이해했다? 어림없는 소리다. 체험이라는 단어로 포장하기엔 그저 노숙인 코스프레에 불과할 뿐이었다. 외형은 초라했을지 몰라도 근본적으로 그들의 절실한 심정, 현재 처한 상황을 제대로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잠깐의 체험을 통해 온몸으로 느낀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노숙인을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의 멸시이고, 또 하나는 노숙인의 인자는 사람 인(人)자라는 사실이다. 연민의 시선이 아니다. 그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적어도 이번 겨울 동안 추위 때문에 사고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관주기자 leekj5@kyeonggi.com 사진= 추상철 기자 scchoo@kyeongggi.com

[1일 현장체험]인천공항 외국인 에스코트ㆍ주차대행

과연 인천국제공항의 서비스는 어느 정도 수준일까. 들리는 이야기로는 세계 1위라는데, 그게 어느 정도일까? 국제공항협의회(ACI) 주관 세계 공항서비스평가(ASQ)에서 8년 연속으로 세계 1위 공항으로 등극하는 등 전무후무(前無後無) 한 기록을 세운 인천국제공항. 꾸준한 서비스 개선과 정부의 정책지원, 상주 기관이나 협력사의 적극적인 협력 등을 통해 라이벌인 싱가포르 창이공항과 중국 베이징 공항을 제치고 독보적인 서비스 역량을 보여주고 있다. 총 3만 5천여 명에 달하는 종사자들이 인천공항에 근무하면서 항공권 예매부터 호텔로밍환전렌터카주차대행, 빠른 출입국 심사까지 고객서비스를 항상 최고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수치 등으로 인천공항의 서비스를 느끼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란 말이 있듯, 직접 경험해 봐야 인천공항의 서비스를 정확히 알 수 있다. 내가 만약 외국인이라면 비행기에서 내려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때 미리 예약해 놓은 호텔까지 어떻게 가지? 한국말도 잘 못하는데, 버스나 택시를 잘 탈 수 있을까?라든지, 내가 만약 해외에 나간다면 인천공항까지 가서 내 차는 어떻게 하지? 장기주차? 단기주차? 어느 주차장으로 가야 하지?라는 고민. 누구나 해봄 직한 고민이다. 그래서 외국인이 한국(인천)에 도착해 출입국심사를 마치고 인천공항 여객터미널 출입문을 빠져나오자마자 첫 번째로 만나는 서비스와, 내국인이 외국에 갈 때 인천공항에 도착해 가장 먼저 만나는 서비스. 인천공항에서 이 두 가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업을 직접 해봤다. ■Welcome to Incheon!외국인 대중교통(택시) 안내 서비스 지난 11일 오후 4시 인천국제공항 1층 출국장 앞. 싸늘한 바람이 부는 초겨울 날씨 때문인지, 아니면 새로운 직업을 체험한다는 것 때문에 생긴 것인지 모를 긴장감 몸을 감쌌다. 우선 인천공항공사에서 지급받은 두꺼운 점퍼를 입었다. 군데군데 형광색으로 되어 있어서, 멀리서 봐도 쉽게 눈에 띌 옷을 입고 인천공항 5번 출입문 앞에 섰다. 송정경 공항공사 상업영업처 교통영업팀장으로부터 사전 교육이 시작됐다. 송 팀장은 여기는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이 처음 도착하는 곳입니다. 우리는 그들이 안전하게 잘 목적지까지 이동할 수 있도록 에스코트(Escort)하는 것이 임무입니다라고 운을 뗐다. 이어 비록 우리와 그들이 만나는 시간은 매우 짧겠지만,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첫인상을 심어주기엔 충분한 시간입니다. 우리가 최선을 다해 서비스해야 하는 이유입니다고 강조했다. 외국인이 한국을 찾았을 때 공항 밖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이 내가 되는 셈이다. 오늘 함께 교통안내를 할 장진동군(25)도 소개받았다. 임무는 공항 출입구에서 짐을 들고 나오는 외국인들이 택시를 타고 목적지까지 잘 갈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현재 대중교통 안내 서비스에는 기존 요원들과 함께 영어일본어중국어 등에 능통한 대학생들이 인천공항 영서포터즈로 활약하고 있다. 짧게 영포라고 불리는 이들은 공항 안에서 입출국을 도와주거나, 공항 밖에서 교통이용 안내를 해주고 있다. 송 팀장은 우리는 항상 웃는 모습을 유지해야 하고, 외국인이 오기 기다리기보다는 먼저 뛰어가서 필요한 게 없는지 물어야 하고, 외국인이 택시를 잘 타고 목적지까지 갈 수 있도록 안내하고 택시기사에게 목적지를 전달한 뒤 택시 문을 닫아주는 일까지가 우리의 임무라고 말했다. 인천대 경제학과에 재학 중인 장진동군은 영포로 활동하면서 짭짤한(?) 수익도 챙기고, 그동안 공부한 영어를 직접 다양한 외국인 상대로 써보고, 인천공항이라는 곳에서 일해보면서 세계로 향한 꿈과 열정을 가질 수 있는 1석 3조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고 한다. 공항에 이용객이 몰리는 시간(첨두시간이라고 함)인 오전 7시~9시 30분, 오후 4시~6시 30분, 오후 9시~11시 30분 등 3가지 시간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데, 짧은 시간에 비해 하루 4만 2천 원이나 받을 수 있어 꽤 좋은 아르바이트라고 한다. 영어를 잘하는 장군이 있어서 안심이지만, 과연 내 짧은 영어실력으로 외국인을 잘 맞을 수 있을지가 걱정만 컸다. ■Where are you going? 처음 만난 외국인은 영국에서 온 로버트(Robert)와 그 일행. 로버트가 길 건너편에서 신호등 대기하고 있을 때부터 내 입에서는 어디까지 가는지를 묻는 Where are you going?이 계속 맴돌았다. 그 덕분에 간단한 인사인 Hi조차 못한다는 것을 잊었을 정도. 어렵게 질문을 건넸고, 돌아온 대답은 택시를 타고 서울 워커힐호텔로 간다는 것. 곧바로 나와 장군은 로버트를 안내했다. 로버트와 일행의 대형 여행용 가방을 대신 끌어주며 걸어서 도착한 곳은 50여m 떨어진 택시 승강장. 주차되어 있던 한 택시기사에게 로버트 일행의 짐을 넘겨주고, 목적지인 워커힐호텔을 안내했다. 이후 영어로 된 택시이용불편 신고엽서에 날짜와 행선지, 택시번호 등을 적은 뒤 신고엽서를 로버트에게 전했다. 이 신고엽서엔 서울인천경기 주요지역까지 가는 택시(모범대형)의 예상요금과 거리, 소요시간 등이 적어져 있어서 자칫 로버트가 바가지 택시요금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막아준다. 또 부당요금 신고전화 안내 등도 함께 안내되어 있다. 로버트가 택시에 탄 것을 확인하고 Good bye, Have a nice trip이라는 짧은 생활영어를 내뱉고서야 한 번의 일을 끝낸 것을 알았다. 2분여 동안의 일이었지만, 처음이라는 것과 잘해야 한다는 것에 극심한 긴장감을 느낀 탓인지, 2분이 2시간 같았다. 쉴 틈은 없었다. 또다시 출입구 쪽으로 발걸음을 향했고, 나를 기다리는 외국인은 계속 출입구를 빠져나왔다. 러시아에서 한국을 찾은 5명의 남녀 여행객들이 서울 플라자호텔까지 잘 갈 수 있도록 택시를 잡아주고, 웃는 얼굴로 손까지 흔들어줬다. 이러기를 수십 차례. 벌써 1시간여가 지났다. 이제는 긴장감보다는 외국인들에게 더 웃는 얼굴로, 더욱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잘 안내해야 한다는 생각에 어느새 여유마저 생겼다. 아마도 특별한 질문을 받지 않은 탓일 것이다. 어려운 질문은 모두 나와 함께해준 장군이 맡았으니. ■입국장 주차 대행 서비스 및 입국장 교통정리 출국장에서 외국인 에스코트를 마친 뒤, 3층 입국장으로 향했다. 3층 입국장 5번 출입구 밖에는 공항에 도착하는 많은 차량과, 그 차량에서 짐을 챙겨 내리는 여행객들로 붐볐다. 파란색 유니폼을 챙겨 입고, 한 손에 경광등을 든 채 주차하는 차량으로 인해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차량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인천공항을 감싸고 도는 싸늘한 바람이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지만, 이를 신경 쓸 새도 없이 차량은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입국장으로 몰려들었다. 이어 할 일은 주차대행. 인천공항 공식주차대행을 맡은 한 업체의 오렌지색 유니폼을 입고, 주차대행일을 시작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기자를 가르쳐 줄 경력 10년차 오상록 팀장(60)을 만났다. 오 팀장은 주차대행은 말 그래도 철저한 서비스 정신에서 시작됩니다. 친구에게도 주지 않는다는 자신의 차를, 우리를 믿고 맡기는 것인 만큼 고객에게 신뢰를 주는 것은 기본입니다라며 특히 외국으로 나가는 여행객들에겐 인천공항에서 처음 만나는 서비스가 우리이기 때문에, 우리가 잘못하면 그것은 곧 인천공항의 이미지가 나빠지기에 최대한 서비스 정신을 발휘해야 합니다고 말했다. 주차대행은 주차대행 접수와 주차를 해주는 발렛, 주차장에서 차량을 관리하는 관리, 자동차 열쇠를 관리하는 키 관리, 각종 주차대행 기록을 책임지는 전산 등으로 세분화된다. 오 팀장에게 한참 주차대행 접수하는 것에 대해 설명을 듣던 도중, 마침 한 승용차가 입국장에 미끄러지듯 도착했다. 가족들이 트렁크에서 짐을 내리기 시작했다. 어서 오십시오. 주차대행 서비스입니다.라는 말을 시작으로 접수증에 일시, 차량 종류 및 번호, 귀국예정일시 등을 메모하기 시작했다. 이게 끝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일이 남았다. 차량 전체를 둘러보며 차량에 흠집이 있는지 없는지를 체크하는 일이 그것. 자칫 주차 대행하는 과정에서 흠집이 나 문제가 생기는 것을 미리 방지하기 위해서다. 이를 모두 체크하면 차주의 동행을 받아야 접수과정이 마무리된다. 이후 봉고차에서 내린 발렛 전문 요원이 차를 몰고 인천공항 주차장으로 차를 옮기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으로 주차대행의 모든 일이 끝났다. 한숨 돌리나 싶었지만, 곧바로 다음 주차대행을 신청한 여행객을 향해 걸음을 옮겨야 했다. 보통 입국장에 들어온 차량 10대 중 1~2대는 주차대행서비스를 이용한다고 한다. 이민우기자 lmw@kyeonggi.com 사진= 장용준 기자 jyjun68@kyeonggi.com

[1일 현장체험]재활승마지도사

지난여름 휴가지로 찾았던 제주도. 짧은 제주도 휴가였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 중 하나가 바로 승마 체험이었다. 말 등에 처음 올라탔을 때의 그 느낌은 정말 특별했다. 말의 체온이 고스란히 전달되면서 느껴지는 따스함과 말이 움직일 때마다 전달되는 말 근육들의 움직임, 조금은 높아진 눈높이에서 바라보는 땅과 하늘. 정말 오묘했던 그 순간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나중에 이 이야기를 들은 승마장 대표님은 나에게 말 귀신이 씌였다고 시크하게 말씀하셨다. 이번 일일 직업 체험 차례가 돌아왔을 때 재활승마지도사 체험에 나선 것은 최근 사회서비스가 새로운 복지 트랜드로 떠오르고 그중 말을 이용한 우리 아이 심리지원 서비스가 화제가 되고 있는 이유도 있지만, 내가 다시 한번 말을 느껴보고 싶다는 이유가 가장 컸다. 재활승마지도사를 체험하기 위해 지난 5일 용인시 기흥구에 위치한 신갈 승마클럽을 찾았다. 이곳은 현재 20여명의 학생들에게 우리 아이 심리지원 서비스를 지원해 주고 있다. 이 서비스를 지원받을 수 있는 기준은 가구 소득이 전국 가구 평균을 넘지 않는 가정이거나 한 부모 가정,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로, 본래 승마를 배우려면 한 시간에 8만원 가량의 비용을 지불해야 하지만 이 학생들은 국가와 경기도, 용인시 등이 지원해 한 시간에 5천원 가량만 내면 승마를 배울 수 있다. 재활승마 서비스는 아이들이 학교 수업을 마친 후 진행되기 때문에 오후 5시쯤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래서 아이들이 도착하기 한 시간 전쯤 승마장에 도착해 복장을 갖추고 최태진 신갈 승마클럽 대표(60)에게 승마에 대한 간단한 교육을 받았다. 먼저 타이트하게 붙는 승마복을 입으니 왠지 부끄러웠지만 옷이 굉장히 편했다. 어색해하는 나에게 최 대표는 승마는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 선진국에서도 귀족들만 즐기던 스포츠다며 모든 패션의 시작이 이들이 입었던 승마복에서 출발했다고 보면 된다는 다소 믿거나 말거나 식의 말을 건넸다. 아이들이 승마를 배우면 어떠한 부분이 좋은지를 물어보니 최 대표는 아이들이 말을 타는 모습을 잘 본 후 아이들에게 직접 물어보라고 답했다. 아이들이 도착하기 전 재활승마지도사들은 아이들이 다치지 않도록 모레에 물을 뿌리고 평평하게 다지는 등 마장을 정리한다. 마장 정리를 마치면 아이들이 탈 말 상태를 체크하고 아이들의 숫자에 맞춰 말을 마장으로 데려온다. 말을 끌고 나놀 때 주의할 점은, 항상 말의 왼쪽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점과 고삐를 말 턱에서부터 20㎝ 정도 떨어진 곳에서 잡아야 한다는 점 등이다. 또 말은 뒤에 사람이 있으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뒷발 차기(?!)를 해 절대로 말의 뒤에는 가선 안 된단다. 신갈 승마클럽에 있는 말은 제주도에서 보았던 말보다 훨씬 크고, 윤기가 있었다. 이곳의 말은 모두 경주용 말로 과천 경마장 등에서 활동하던 말이라고 한다. 힘도 굉장히 좋아 보여 다가가는데 겁도 났었지만, 지도사 님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말에 다가갈 수 있었다. 마장에 말을 대기시키는 작업까지 마치고 나니 아이들을 태운 차량이 승마장에 도착했다. 오늘 승마 서비스를 받을 아이들은 중학생 2명과 초등학생 3명 등 모두 5명. 아이들은 설레는 표정을 한가득하고선 마장으로 들어섰다. 나는 먼저 아이들이 말을 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수행했다. 경주용 말은 꽤 크기 때문에 아이들은 의자를 밟고 말 등으로 올라섰고, 아이들이 말 갈퀴와 고삐를 왼손에 쥐고 말 등에 올라서면 발을 등자에 제대로 끼웠는지, 말이 불편하지는 않은지 등을 하나하나 체크했다. 승마의 기본자세는 익히 들어 알고 있는 기마자세이다. 아이들이 말을 탔을 때 머리와 어깨, 엉덩이, 발 뒤꿈치가 일직선이 되도록 자세를 잡아주는 것이 중요하다. 말을 타면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몸이 앞으로 기우는데, 몸이 앞으로 기울 경우 낙마의 위험이 있어 아이들은 어깨를 조금 뒤로 젖히도록 승마지도사들이 유도해야 한다. 아이들이 모두 안전하게 말에 타면, 승마지도사는 부조를 보내 말이 움직이도록 한다. 부조는 말에게 주는 일종의 신호다. 부조는 음성과 몸짓, 채찍 등 3가지가 있는데, 승마지도사들은 직접 말을 타지 않기 때문에 음성으로 말에게 신호를 준다. 신갈 승마클럽의 지도사님들이 쯧쯧 하고 신호를 보내면 말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는데, 사람의 신호를 동물이 알아듣는 모습은 언제봐도 신기하다. 오늘 아이들은 평보에서부터 경속보까지 말을 탄다. 평보는 말이 걷는 정도의 속도이고 경속보는 말이 뛰는 것은 아니지만 빠르게 걷는 것을 뜻한다. 평보에서 부터 시작해 지도사님들의 부조에 맞춰 말들이 속도를 냈다가 줄였다 가를 반복한다. 이때 지도사들은 아이들이 자세를 똑바로 하고 있는지 등을 한시도 놓치지 않고 체크하며 아이들의 상태를 예의 주시한다. 경주용 말에서 아이들이 낙마하게 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약 30여분간 아이들이 말을 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아이들은 상기된 표정으로 말과 하나가 돼 리듬을 타고 있었다. 아이들 얼굴에서는 다양한 의미를 담은 미소를 볼 수 있었다. 승마를 마친 후 한 초등학생은 내 몸보다 큰 말을 직접 타고 또 움직여보니 나도 무엇인가를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며 무엇보다고 재미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중학생은 말을 타고 달리면 학교에서 받았던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것 같다며 승마 서비스를 받은 후보다 밝은 생활을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나 역시 말을 타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승마 서비스가 아이들에게 다양한 긍정적 효과를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을 느꼈던 것 같다. 아이들이 모두 떠난 후 마구간에 말을 돌려놓으면서 승마 지도사로서 오늘 하루 일과가 모두 끝났다. 일과를 마친 후 지도사님들은 이 기자도 말을 타고 아이들의 기분을 느껴봐야 기사를 쓰지 않겠어?!라며 경주용 말을 태워 주셨는데, 말을 타면서 조금 전 아이들이 느꼈다고 말한 성취감과 자신감 등도 몸소 느껴볼 수 있었다. 체험을 끝내고 돌아가려는 내게 최 대표는 승마를 알면 인생을 알 수 있다는 말을 해 주셨다. 말의 얼굴에 씌우는 굴레. 말은 이 굴레를 쓰면 입에 재갈을 물게 돼 인간의 말을 듣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말이 쓴 굴레를 보면, 말을 타면, 인생의 굴레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아직 본격적으로 승마를 배우지 않아 최 대표가 한 말의 뜻을 제대로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사회서비스 사업으로 승마를 배우는 아이들은 승마 교육을 통해 얻은 자신감과 정신적ㆍ육체적 건강함으로 경제적 어려움과 한 부모 및 다문화 가정 등 자신을 둘러싼 굴레를 뛰어넘어 자신의 꿈을 마음껏 펼치는 멋진 어른으로 성장하길 응원해 본다. 이호준기자 hojun@kyeonggi.com

[1일 현장체험]경기도청 ‘언제나 민원실’

공무원은 6시만 되면 칼퇴근이다 어려서부터 어른들과 주변 지인들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말이다. 이러한 이유에서인지 왠지 공무원은 자기 계발과 여가 활동이 자유로울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기자라는 직업을 시작한 후 경찰,소방 공무원 등 현업 부서에서 근무하며 밤을 지새우기도 하는 공무원들과 몸을 부대끼며 활동한 후 본 기자의 고정관념이 깨지기 시작했다. 1일 체험활동을 코 앞에 두고 이들 직업 중 어떤 직업을 체험할 것인가 고민하는 찰나 뜻밖의 사실을 알아냈다. 365일 24시간 불철주야 전국 각지에서 몰려드는 민원을 해결해주는 언제나 민원실이었다. 새벽 2~3시까지 밤을 지새워도 끄떡없을 정도의 강체력과 야행성 체질을 자부하기 때문에 충만한 자신감을 가지고 도청 내 위치한 언제나 민원실 1일 체험에 나섰다. 29일 오후 밤 9시께 언제나 민원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이세정 언제나 민원실장이 환한 미소를 띠며 본 기자를 맞이했다. 이 실장을 비롯해 직원들의 표정이 민원 업무를 담당해서인지 온화하고 다정한 말투가 진하게 배어 있었다. 민원 처리 업무 체험을 위해 민원실에 들어오기 전 옷매무새를 다듬고 최대한 환한 웃음을 짓는 연습을 했지만 역시 베태랑 직원들 앞에서는 영낙없이 덩치크고 우락부락한 아저씨의 느낌이 강하게 났다. 지난 2010년 3월 개소 후 현재까지 총 497만2천여건의 민원을 처리한 이 곳 언제나 민원실은 전국 유일의 365일 24시간 운영되는 민원실이다. 도정 상담을 포함한 생활불편민원 현장출동 처리, 여권민원 신청ㆍ발급 등을 처리하며 도민들의 실생활에 큰 도움이 되고 있는 언제나 민원실은 3년간 민원행정개선 우수, 주민등록업무 최우수, 공공정보화 우수 등 6개 분야에서 수상을 차지했다. 특히 올해 들어 사회적 약자 배려 민원행정시스템 보강, 고민을 청취하는 라디오 민원실, 민원처리 불만제로를 위한 민원중재위원회 운영 등 이곳을 찾는 민원인들의 만족을 충족시키기 위해 시스템과 운영방식에 많은 변화를 꾀하고 있다. 1층은 여권교부와 접수, 생활민원 등을 해결하는 현장 민원실로서 6~7명의 직원들이 배치된 채 급한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방문하는 민원인들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민원실에 대한 설명이 시작된 지 채 10분이 되지 않아 하나 둘씩 민원실을 찾는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일부 시민들은 여권 신청을 위해, 신청한 여권을 발급받기 위해, 생활민원 고충을 상담 등 다양한 이유로 이 곳을 찾은사람들은 직원들의 친절한 설명과 안내를 들으며 민원을 해소하고 있었다. 이들 대부분은 야근 등 늦은 업무를 마치고 급한 민원처리를 위해 방문하는 사람들이었다. 유니폼과 뱃지를 단 채 여권 발급 부스에 자리 잡고 있던 본 기자는 틈틈히 미소짓는 연습을 하면서도 오늘 하루만큼이라도 여권을 발급받는 사람들이 없었으면하는 체험활동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드는 멍청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밤 11시께 40대 여성이 여권을 발급 받으러 본 기자가 있는 해당 부스 앞을 찾았다.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준비된 여권만 건네면 되는 간단한 상황이 이리도 부담스럽게 느껴지는게 이상할 정도였다. 당황해서인지 언제나 민원실을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준비한 멘트를 하지 못한 채 어리바리 첫 역할을 마무리했다. 곧 이어 발급된 여권을 팩스로 보내는 작업과 사본 제작을 도와주면서 정신없이 시간이 흘렀다. 바쁜 와중에도 이렇게 늦은 시간 민원실을 찾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다. 12시가 넘어서야 민원인들의 발길이 잠시 끊겨 직원들과 함께 차를 마시며 한숨을 돌렸다. 가장 힘든 점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역시나 잠과의 싸움이 1순위를 차지했다. 장영주 민원상담사(45)는 민원인을 맞이하다 보니 아무리 피곤해도 얼굴에는 미소를 머금고 있어야 한다며 업무가 끝난 후 집에 돌아가면 너무나 피곤해 잠만 자다 아이들보다 늦잠을 자 학교에 지각을 시키기도 하는 소홀한(?) 엄마이다고 웃음지었다. 민원실 한켠에 인형과 동화책들이 눈에 띄었다. 야심한 시간 민원을 해결하는 사람들이 성인이라는 사실은 자명한 것인데 저 공간의 용도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기자의 의구심을 눈치챈 이 실장은 야심한 시간에 돌볼 사람이 없어 아이를 데리고 오는 민원인들이 상당 수라며 민원처리가 40분가량 걸리는데 그 시간 동안 동행한 아이들이 무료하지 않도록 만들어진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민원인을 포함한 주변인까지 세심히 챙기는 그의 배려심에서 그동안 잊고 살았던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체험을 하는 동안 대부분의 민원인이 도내 거주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일부 민원인들의 경우 서울을 포함한 타지역에서 방문하는 일도 있었다. 지난 8월에는 김동성 쇼트트랙 선수가 해외 대회를 나가기 위해 새벽1시가 넘어 이곳 민원실을 방문해 여권을 발급해 가기도 했다. 이 실장은 도민뿐만이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급한 민원처리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방문한다며 이러한 사람들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곳이 바로 언제나 민원실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언제나 민원실의 시스템은 외국의 정부기관에서도 벤치마킹을 하며 도의 위상과 브랜드를 높이는 데 톡톡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미 이라크, 요르단, 베트남 등 외국 14개 기관에서 언제나 민원실의 운영방식 등에 관해 벤치마킹을 목적으로 방문이 이뤄졌다. 오는 2일에는 일본 가나가와현의회 민주당 의원 5명이 경기도의 특수시책 추진상황에 대한 현장조사를 목적으로 도청 민원실과 콜 센터를 방문할 예정이다. 이 실장은 일본, 중국 등 세계 각국의 공무원들이 언제나 민원실의 기능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이것이야말로 경기도의 브랜드 가치를 세계적으로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잠시 동안의 휴식을 뒤로하고 2층에 위치한 24시간 콜센터 상담사 역할을 체험하기 위해 발길을 옮겼다. 편하게 쉬면서 밤을 지새우는 것과 달리 업무 시작 2시간이 채 되지 않아 삭신이 쑤시기 시작했지만 워낙 업무 시작 전 야행성 체질을 강조하며 자신감을 비췄던 모습이 생각 나 티를 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전화부스 상담에 자리를 잡고 늦은 새벽 걸려온 전화를 받으며 첫 콜상담을 시작했다. 용인의 한 임대 아파트에 거주하는 한부모 가정인 40대 여성이 직장과 거주지(서울)가 너무 멀어 다른 임대아파트에 입주하고 싶다는 고민 상담을 들으며 힘드시겠어요라는 틀에 박힌 대답만 반복한 채 실질적인 답을 내놓지 못했다. 본 기자와 1차 상담이 끝난 후 배테랑 이 실장이 전화를 연결받아 실질적인 상담을 이어갔다. 청약조건과 현재 분양 예정 중인 임대 아파트에 대한 설명 등 민원인이 가려운 부분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이 실장의 상담기술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전화를 끊기 전 힘내세요, 저도 한부모가정 밑에서 자라서 누구보다 그 고충을 압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끝말을 맺는 이 실장의 모습에서 진심으로 민원인의 고충을 함께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후에도 산재보험 적용대상 문의, 기초수급자의 애로사항과, 딸의 취업 관련 문의 등 많은 전화를 받을 때마다 직원들에게 SOS요청을 보내며 힘겹게 업무를 이어갔다. 새벽 4시께 몸이 녹초가 된 상태로 현장 내 근무하는 직원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잠을 쫓기 위해 스트레칭을 하는 직원, 커피를 마시며, 머리를 지압하며 잠과의 사투를 벌이는 와중에도 얼굴에 미소를 잃지 않고 민원인을 맞이하는 모습에서 괜한 민폐를 끼치고 가는구나라는 부끄러움과 함께 스르르 눈이 감겼다. 한편 언제나 민원실을 비롯해 수원역, 의정부역, 동두천역, 부천역, 평택역, 범계역, 부천종합운동장역 등 7개의 역 민원센터가 365일 오전 8시부터 밤10시까지 운영 중이며 언제나 민원실에 대해 자세한 사항을 원하면 언제나 민원실(031-8008-2258)로 문의하면 된다. 양휘모기자 return778@kyeonggi.com 사진= 김시범기자 sbkim@kyeonggi.com

[1일 현장체험]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원산지 단속

늘 차려주는 밥만 먹다가 몇 달 전 결혼을 하면서 요리의 세계에 발을 들인 기자. 장을 보면서 채소나 고기를 살 때 자연스레 원산지를 확인하고는 한다. 국내산이라고 적힌 표시를 보면 일단 안심이 되면서도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국내산이라고 써 있는 건 다 국내산이 맞나? 표시만 이렇게 한 거 아니야? 하는 의심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식당에서도 마찬가지다. 경제부에서 농업과 유통을 담당하면서 사람 먹는 것 가지고 장난치는 나쁜 사람들에 대한 얘기를 너무 많이 들어서일까. 메뉴판이나 벽에 붙은 원산지를 찾게 되고 표시가 없으면 없는대로 있으면 있는대로 불안한 마음이 썩 가시지가 않는다. 그래서 그 곳을 찾았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경기지원이다. 원산지 관리와 품질 검사 등을 시행하는 이 곳에서 원산지 단속에 직접 나서보기로 한 것이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경기지원은 경기도는 물론 서울과 인천까지 수도권 전역을 담당하고 있다. 경기지원의 유통관리과에는 3개의 기동단속반에서 8명의 직원이 원산지 상시 단속을 나간다. 명절이나 김장철을 앞두고 집중적으로 벌이는 특별단속 때는 단속인원이 더 늘어난다. 음식점, 정육점, 마트, 가공업체, 급식시설 등 단속범위도 방대하다. 지난 16일 기자는 권영목 계장, 노금성 주무관과 함께 단속 대상지역인 안산시 와동 일대로 이동했다. 단속반은 보통 오전에는 사무실에서 수사나 관련 업무를 보고 오후에 현장 단속을 나간다. 이날은 단속 전 수원지검 안산지청에 먼저 들러야 했다. 중국산 콩나물콩을 포장을 바꿔 국내산으로 둔갑시켜 도내 전역에 유통시킨 업자를 구속하려고 검사에게 건의를 했는데 그 결과를 확인하러 가는 것이다. 단속업무 10년차인 권영목 계장은 일반적으로 벌금형이 나오지만 위반물량이 많거나 쉽게 인정하지 않고 자꾸 속이려고 하는 등 죄질이 나쁘면 구속도 가능하다며 적발한 양만 690t 가량에 부당이득만 3억~4억원에 달해 구속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시흥의 외딴 창고에서 포장지 교체 작업을 하는 것을 목격했다는 신고가 들어와 2~3일 잠복한 끝에 검거했단다. 얼마 전에는 쌀 포대갈이를 하던 업자가 도주해 휴대폰 위치추적 끝에 붙잡은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단속, 서류 작성, 검찰 송치, 구속까지 원산지에 관련해서는 일반 경찰과 똑같은 업무를 하는 셈이다. 검찰에서 의견서를 받아 확인해보니 불명확한 부분이 있으니 재지휘를 받으라는 결정이 내려졌다. 권 계장은 피의자와 거래한 업체에서 증명서를 확보해 증거를 보완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단속에 나설 차례. 가장 먼저 들어선 곳은 축산물도매센터다. 권 계장이 원산지 점검 나왔습니다 라고 말하며 목에 건 신분증을 보여준다. 기자의 눈에 개별포장된 돼지족이 들어왔다. 어디를 봐도 원산지 표시 라벨이 없다. 권 계장이 왜 라벨이 없냐고 묻자 정육점 주인은 벽에 붙은 표시를 가리키며 일괄표시하면 되는 줄 알았다고 말한다. 이어 식육거래내역서와 쇠고기 개체식별번호를 꼼꼼히 확인했다. 미진한 부분이 나올 때마다 주인은 울상을 지으며 일하는 사람이 한명 줄어 처리할 겨를이 없었다, 라벨지를 한꺼번에 뽑을 수 있는 기계가 너무 비싸 사지 못 했다고 변명을 늘어놓았다. 권 계장은 이런 식으로 하다가는 기계값보다 과태료가 더 나올 수 있다며 빨리 시정하라고 권고했다. 정육점을 나오며 권 계장은 상시단속에서 허위표시가 아닌 미표시가 적발되면 무조건 단속하기보다는 지도를 먼저 한다며 요즘에는 특히 음식점 폐업도 많고 주인이 자주 바뀌어 충분히 숙지하지 못해 위반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다음으로 찾은 곳은 백반집. 김치: 국내산이라고 표기돼 있었다. 순간 뭐가 문제일까 싶었지만 배추와 고춧가루 원산지를 따로 표시해야 한다. 또 한번 주의를 준 다음 바로 옆 감자탕집으로 들어갔다. 기자는 거래명세표와 메뉴판을 대조해봤다. 만일 메뉴판에는 돈뼈가 국내산이라고 적혀있는데 거래명세표에는 캐나다산 돈뼈를 구입한 기록만 있다면 위반사항에 해당되는 것이다. 함께 영수증을 살펴보던 노 사무관이 대번 고춧가루는 중국산이네라고 말했다. 영수증을 보니 고춧가루 6㎏을 5만6천원에 구입한 기록이 있었다. 노 사무관은 600g에 5천600원이라는 셈인데 국산은 600g에 1만2천원 정도로 두배 비싸다며 가격만 보더라도 국산인지 중국산인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고깃집 몇 군데를 거쳐 이번에는 한 동태탕집으로 들어갔다. 들어갈 때마다 느꼈던 거지만 음식점 주인들은 우리가 들어서면 손님인 줄 알고 반갑게 맞았다가 신분을 밝히면 급격히 표정이 어두워졌다. 메뉴판상 김치는 국내산이라고 표기돼 있었지만 김치를 살펴보자 부재료가 거의 들어있지 않고 희멀건한 색이 났다. 중국산일 가능성이 큰 것이다. 김치 구입 영수증을 보여달라고 하자 주인 부부는 모아두지 않았다고 말한다. 여기서 물러날 단속반이 아니다. 김치를 판 업체에 직접 전화를 걸어 확인하니 최근 이 식당에 중국산 맛김치를 판매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중국산인 거 아셨죠?라고 물으니 신경을 잘 못 썼다고 얼버무린다. 권 계장이 바로 주인에게 확인서를 작성하라고 내밀었다. 그 사이 노 주무관과 기자는 카메라로 확인서 작성모습과 메뉴판, 주방 곳곳을 촬영했다. 일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자 주인은 가뜩이나 동태에 방사능이다 세슘이다 해서 죽을 맛인데 한번 더 죽이려고 하네라고 볼멘 소리를 한다. 바로 적발할 게 아니라 경고조치로 한번은 그냥 넘어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 따지기도 했다. 이마저도 통하지 않자 주인은 집사람과 하루 12시간 넘게 일하면서도 월세도 못 내는 상황이라며 읍소를 하기 시작했다. 권 계장은 원산지표시제 시행이 20년이 넘었다며 사정이 어려운 것은 알지만 업체 사정에 따라 단속을 달리 할 수는 없다고 주인을 설득했다. 결국 주인은 본인이 어떤 사실을 위반했는지 확인서를 작성하고 시정명령서에 서명을 했다. 며칠 뒤에는 농관원으로 출석해 다시 조사를 받고 검찰에 송치돼 벌금이 부과될 것이라고 노 사무관이 설명했다. 음식점을 나서며 조금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이럴 때마다 마음이 좋지 않으시겠어요. 권 계장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식당이나 전통시장은 생계형이 많아 200만~300만원 벌금도 큰 타격이 된다며 대부분 고의적인 것이 아니라 실수나 관리 소홀로 처벌을 받기 때문에 단속하는 입장에서도 안타까울 때가 많다고 말했다. 특히 요즘처럼 경기가 안 좋을 때는 단속반을 대하는 태도도 부드러울리가 없다. 정육점에는 거친 분들(?)이 많아 단속을 하고 있으면 일부러 큰 소리를 내며 칼로 도마를 내리치고 고기에 칼을 꽂기도 하는 등 위협적 분위기를 연출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권 계장은 사실 그럴 때는 섬?하기도 하다고 웃으며 말했다. 근처 식당을 한바퀴 돈 뒤 월피동의 한 대형마트로 향했다. 이번에는 농산물을 집중적으로 살펴보기로 했다. 고사리의 경우 국산은 산에서 채취해 절단면이 거친 반면 중국산은 절단면이 깨끗하다. 표고버섯은 꾹 눌러보면 국산은 탄력이 있어 누른 자국이 바로 원상복귀되지만 수입산은 천천히 올라온다. 토종생강은 크기가 작지만 중국산은 손바닥보다 큰 것도 많다. 권 계장은 수입산은 검역상 흙을 그대로 들여올 수 없어 세척을 할 수밖에 없다며 흙당근, 흙생강, 흙우엉 등은 국산이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설명했다. 혹시 수입산에 일부러 흙을 묻힐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의심의 눈초리로 묻자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실제 몇 년 전 세척우엉을 수입해와 하우스내 흙속에 며칠 묻어놨다가 꺼내 국내산인척 속인 적도 있었다는 것이다. 점점 똑똑해지는 소비자에 맞춰 위반수법도 진화하고 있었다. 소비자들이 원산지 표시에 좀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안전하고 품질 좋은 농식품 제공을 위해 발로 뛰는 이들의 모습을 직접 보며 단속업무를 해보니 한결 마음이 놓였다. 오늘 저녁에는 국산콩으로 만든 된장에 신선한 우리 농산물 듬뿍 넣고 된장찌개를 끓여볼까? 구예리기자 yell@kyeonggi.com 사진=김시범기자 sbkim@kyeonggi.com

[1일 현장체험]용인 샘물호스피스병원 봉사자

지난달 12일 용인시 백암면 고안리의 샘물호스피스병원 앞에서 있었던 일이다. 차를 몰고 지나가는데 한 남자가 눈에 확 들어왔다. 영화배우 김인권이었다. 강철대오, 방가방가 등 코믹영화 주연은 물론, 여러 흥행작에서 감초역을 도맡으며 충무로의 블루칩으로 꼽혀온 그였다. 팬심이 앞선 나머지 나도 모르게 차에서 내려 대뜸 말을 걸었다. 배우 김인권씨 맞으시죠? 이곳까진 어쩐 일이세요? 그는 장모님이 수 시간 전에 이곳에서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고 말했다. 해사한 웃음이 익숙한 그의 얼굴에 어쩐지 슬픔이 가득 묻어났다. 이어진 그의 멘트가 인상적이었다. 그래도 이곳 직원들 덕분에 장모님께서 마지막을 편안히 보내고 가셨습니다. 궁금해졌다. 어떤 사람들이 그의 장모님을 돌보았을지. 유명 연예인과 뜻밖의 만남에서 비롯된 샘물호스피스와의 인연은 결국 일일 봉사체험으로 이어졌다. ■의료진부터 봉사자까지 팀웍이 중요 호스피스병원은 현대의학으로는 소생이 불가능한 말기암 환자들이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편안히 인생의 마지막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의료행위 뿐 아니라 정서적 치료, 가족에 대한 심리적 케어까지 해야 하니 의료진 뿐만 아니라 성직자자원봉사자영양사 등이 한 팀이 돼서 유기적으로 움직인다. 담당자와 통화를 하고 자원봉사 체험을 하기 위해 지난달 27일 오전 11시께 샘물호스피스병원을 다시 찾았다. 이 병원 의료진과 봉사자들의 일과는 오전 9시30분부터 시작되니 1시간 30분정도 늦은 것이다. 의료진들은 야간 당직자들에게 환자들의 상태를 인수인계받은 뒤 각 병실을 돌며 40명의 환자들을 모두 살피고 난 뒤였다. 병원 2층에 들어서니 넓은 홀에서 이화여자고등학교 학생들이 환자와 가족들 앞에서 합창 공연을 하고 있었다. 이화여고는 매주 2회씩 이곳에 와서 봉사활동에 참여한다. 쭈뼛거리며 서 있는 내게 장영철 팀장이 다가왔다. 이날 병원을 안내하고 일을 맡겨줄 직원이었다. 지금은 예배시간입니다. 일과가 벌써 시작됐지만, 할일은 많이 있으니 일단 시설을 둘러보시는 것부터 할까요? 그를 따라다니며 의료시설과 병실, 식당 등을 살펴봤다. 그러다 장례식장에 들어섰다. 돈이 없어 장례를 못 치르는 유가족들을 위해 무료 장례식을 해주고 있다. 이날도 위암에 걸려 목숨을 잃은 한 40대 환자 K씨의 장례가 치러지고 있었다. 지난 4월 위암 4기 판정을 받고 5개월이 지난 뒤였다. 빈소에는 조문객도 없이 망자의 형만이 그의 영정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12시30분이 발인이었다. 장 팀장과 서둘러 식사를 마친 뒤 시신이 안치된 관을 영구차로 옮기는 작업을 도왔다. K씨의 형(46)은 가진 것 없는 우리 형제에게 사랑을 베풀어준 병원에게 무엇으로 보답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면서 병마로 고통받는 동생의 모습이 안타까웠지만 이제 아픔 없는 곳에서 편히 쉬기 바란다며 눈물을 훔쳤다. 장 팀장은 이런 식으로 세상과 이별하는 환자와 유가족들과의 이별이 익숙해진 모습이었다. 5대 대형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오는 이들이 대부분인데, 일주일도 안 돼서 돌아가시는 경우도 종종 있어요. 많을 땐 하루에도 몇명씩 세상을 떠나기도 해요. 죽음도 삶의 일부란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긴장한 탓에 실수 연발 기자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곧바로 앞치마를 차려입고 일을 시작했다. 내게 처음 주어진 임무는 이화여고 학생들과 병실을 청소하는 일이었다. 학생을 인솔한 경소연 담임교사(29여)의 지시에 따라 김현재양(16), 박민지양(16), 박가현양(16), 박수원양(16) 등과 같은 조에 편성돼 3층 병실 청소를 맡게 됐다. 진공청소기로 먼지를 빨아들인 뒤 걸레로 훔치고, 쓰레기통을 비우는 등 특별히 어려울 것 없어 보이는 일이었다. 2학년 학생인 이들은 전에도 이곳에서 봉사활동을 한 적이 있는 선배 봉사자들인 만큼 능숙하게 일을 분배하더니 분주하게 일을 시작했다. 나도 호기롭게 청소기를 들었다. 하지만 막상 병실에 들어서고 나니 진공청소기의 소음이 환자들의 휴식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오히려 동작이 위축됐다. 그러다보니 불필요한 실수가 잦아졌다. 링거줄이 청소기에 걸리는 건 예사였고, 받침대를 쓰러뜨릴 뻔하기도 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민지양에게 청소기를 맡기고 걸레를 들었다. 바닥과 선반 등을 닦으며 병실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방안에 널려있는 이불과 옷가지, 음식통 등은 이곳이 이미 환자 뿐 아니라 그들의 가족을 위한 생활공간이 됐단 걸 말해주고 있었다. 너무 긴장한 탓에 몸이 굳어서일까? 학생들과 3층의 병실과 복도를 일일이 돌며 청소를 마치고 나니 초장부터 진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청소를 함께한 학생들은 여전히 기운이 펄펄 넘쳤다. 이들은 곧바로 성경책과 악보를 찾아 들더니 각 병실을 돌며 환자들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기도를 해줬다. 나도 덩달아 학생들과 함께 노래를 불렀다. 학생들은 어떤 환자에게는 우리가 삶의 마지막으로 만난 봉사자일 수도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박가연양은 1학년 때 이곳에서 피아노연주를 한 적이 있는데 한 환자분이 다가와 어떻게 악보를 읽는지 알려달라고 했다. 곧바로 가야 했던 상황이라 그냥 나올 수밖에 없었지만 그때 일이 여전히 마음에 걸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이후로는 이곳에 올 때마다 오늘 내가 들려주는 연주가 어떤 환자에게는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연주를 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김현재양도 한번은 예배시간에 무용 공연을 보여드리고 내려오는 길에 한 환자분이 내 손을 꼭 잡고 하신 말씀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세상의 사치보다 값진 것이 신앙이라는 말이었는데, 하루하루를 더욱 값지게 살아야겠단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교실에서 배울 수 없는 값진 인생경험을 이곳 호스피스 병원의 환자들로부터 배우고 있었다. 이화여고 학생들과 작별한 뒤 복도에서 한 자원봉사자가 환자들을 마사지해주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됐다. 그는 마사지가 환자들의 몸에 찬 부기를 완화시켜주고 혈액순환을 도와 치료에도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나도 환자들에게 도움을 줘야겠다는 생각에 병실에 들어가 직장암을 앓고 있는 H씨에게 마사지를 받을 것을 권하고 밖으로 부축해 나왔다. H씨는 앉고 서는 것조차 힘들어할 정도로 거동이 불편한 상태였다. 손에 연고를 바르고 H씨의 다리부터 마사지를 하기 시작했는데, 오히려 폐를 끼친 상황이 연출됐다. 건강한 사람들의 몸을 주무르듯 세게 주물렀던 것이다. 하지만 H씨는 조금만 세게 눌러도 통증을 호소했고 다리와 일부만 마사지를 받은 뒤 병실로 돌아갔다. 정말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었다. ■환자 목욕시키다 완전 넉다운 이윽고 환자들의 목욕시간이 됐다. 목욕은 자원봉사자의 일과 중 가장 품이 많이 드는 일이었다. 3층 자원봉사자 휴게실에 들어가 앞치마를 벗고 반바지로 갈아입었다. 긴 바지를 입으면 쉽게 옷이 젖는데다 걸리적거리기 때문이다. 병원 직원 중 한명이 고생 좀 하셔야 할 것이라고 겁을 주면서 신고식으로 물고문이 준비돼있으니 기대하시라고 농담을 던졌다. 환자용 침대욕조가 놓여있는 목욕탕에는 3명의 자원봉사자가 어깨에 수건을 두른 채 기다리고 있었다. 이날 목욕을 받기로 한 환자는 모두 6명이었다. 목욕을 해야 하는 환자가 밀리는 날에는 15명까지 할 때도 있다고 하니 이날은 비교적 널널한 날이었다. 더욱이 어떤 날에는 목욕을 시키는 사람이 3명도 채 되지 않아 애를 먹는 경우도 허다한데, 이날은 나를 포함해서 4명의 봉사자가 목욕을 시키게 되니 일이 더욱 수월할 것이란 게 봉사자들의 말이었다. 몇분 후에 침대위에 누워있는 환자 1명이 들어왔다. 거동을 전혀 할 수 없는 환자들은 이동식 침대에 몸을 누인 뒤 목욕탕으로 데려와 옮긴 뒤 몸을 씻겨야 한다. 다리를 씻기는 일이 내게 주어진 임무였는데, 피부결대로 때를 씻어준다는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떤 환자들은 아프다는 의사 표현조차 어려웠기 때문에 봉사자 스스로 힘의 강약을 조절해서 몸을 씻겨야 했다. 환자의 머리를 감겨주고 면도를 하려면 그만큼 숙련도가 필요하다. 나는 선배 봉사자들과 함께 4명의 환자의 몸을 씻기고는 그야말로 파김치가 돼서 목욕탕을 빠져나오고 말았다. 목욕탕 밖에서 잠시 몸을 누이고 있는 내게 함께 목욕을 시키던 봉사자가 다가왔다. 그에게 왜 봉사를 하는지 물었는데, 그의 대답이 지금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암에 걸릴 운명을 갖고 태어나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누구도 스스로 암에 걸리지 않을 것이라 장담할 수 없죠. 언젠가는 저도 침대욕조에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목욕을 해야 할 때가 올 수 있습니다. 나만 희생해 누군가를 돕는 게 아닙니다. 나도 스스로 목욕할 수 없을 때 도움을 받으려면 내가 먼저 그 풍토를 만들기 위한 작업을 해야 하는 거죠. 죽음은 누구에게나 반드시 오지만 이를 기억하며 사는 이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일하고 있는 호스피스 관계자들은 언제나 인생의 마지막 장을 상기하며 최선을 다하고 있다. 박성훈기자 pshoon@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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