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와서 고백하지만, 학창 시절에 10원짜리 동전에 구멍을 낸 적이 있다. 당시에는 그게 유행이었다. 송곳 등 날카로운 도구를 이용해 동전 중앙을 중심으로 구멍을 내면 나중에는 바깥 테두리 부분밖에 남지 않는다. 그렇게 완성된 테두리를 마음에 있던 여학생에게 반지라며 주던 유치찬란한 1990년대식 구애법이다. 이왕 말 꺼낸 김에 하나 더 털어놓자면, 그로부터 몇 년 후에는 한두 차례 지폐에 메모한 적이 있다. 지금은 그런 몰상식한 행동을 하지 않지만, 철없던 시절에는 지폐 속 흰 부분이 마치 낙서장인 양 그곳에 글귀, 연락처, 주소 등을 적어 건넸던 기억이다. 당시의 죄의식이 남아서였을까. 1일 현장체험의 주자로 선정되면서 한국은행 인천본부가 떠올랐다. 경제부에 몸담았을 때 맺은 인연도 있지만, 화폐의 발행유통폐기 등은 물론, 통화신용정책과 물가안정정책 등을 수행하는 지역경제 최고 금융기관, 한국은행을 한 번 제대로 체험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속죄하는 기분으로 맞은 체험일 오전 9시. 막상 한국은행에 들어가려니 정말 죄지은 사람 마냥 가슴이 두근거렸다. 한국은행 인천본부가 국가보안 다급 시설인 탓에 출입 용무를 밝히고 성경창 업무팀장과 통화가 된 후에야 출입증을 받고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첫 임무는 동전 교환 업무. 일주일에 세 번, 대량 주화 교환 업무가 있는 날이어서인지 이른 시간인데도 아주머니, 아저씨, 할머니까지 사람이 꽤 많이 찾아왔다. 시중 은행도 동전 교환 업무를 하지만, 대량의 동전 교환은 시간과 품이 많이 들어가 시중 은행에서 꺼리는 탓에 대부분 한국은행을 찾고 있다. 한 번에 교환하는 동전량이 30만~40만 원은 훌쩍 넘을 정도로 아예 예약제로 업무를 진행해 고객이 기다리는 시간을 줄이고 있다. 집 안이나 가게에서 모은 동전을 갖고 오는 사람도 많았지만, 큰 손님은 폐차장이나 재활용센터에서 오는 고객으로 폐차작업 중 거둬들여 모은 동전을 100만 원 가까이 가져오곤 한다. 한국인이 많이 찾는 중국 단동에서는 기념으로 던지고 간 동전을 모아 3~4년에 한 번꼴로 인천본부에 오는데 갖고 오는 양이 워낙 많아 업무팀 직원들이 온종일 매달려야 할 정도다. 문제는 폐주(못쓰는 동전)는 기계 인식이 안 돼 동전 교환 업무가 대부분 수동으로 이뤄진다는 점이다. 폐주를 100개 단위로 세려고 장갑을 끼고 자리에 앉았지만 어설픈 손놀림을 보더니 금세 옆에서 그렇게 하다가는 온종일 걸려도 다 못하겠네요라며 핀잔이 날라왔다. 결국, 초보 직원들만 사용한다는 수전판이 동원됐다. 넓은 판에 100개의 홈이 있어 몇 번 시범을 보고 나니 맨손으로 세는 것보다 한결 속도가 빨라졌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나름 무게가 나가는 수전판을 들고 손목을 계속 쓰다 보니 어느새 팔과 손목이 아려왔다. 적정 실내온도로 냉방이 이뤄지고, 편하게 앉아서 일했지만 수백 개를 세고 나니 이마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100개를 정확히 맞추지 못하거나 동전을 떨어뜨려 도로 다시 세는 일은 덤이었다. 그렇게 수십 분이 지나 겨우 고객 한 명의 교환액 39만 2천800원을 세고 나니, 벌써 창구엔 다음 고객이 말똥말똥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나마 이번에는 100% 폐주는 아니지만, 동전 더미에서 폐주를 골라내는 일은 여전했다. 새마을금고에서 금고에 있던 동전을 교환하러 온 고객이라 양도 만만치 않았다. 바구니에 담긴 동전 무더기 중 폐주를 고르려 매의 눈으로 살펴보다 보니 폐주도 참 각양각색이었다. 아직 쓸만한 동전 중에는 1970년대에 만들어진 동전도 있었지만, 불과 2007년에 만들어진 동전도 색이 빨갛게 변해 더는 사용이 불가능해 어쩔 수 없이 폐주로 분류했다. 옆에 있던 권옥제 조사역이 10원짜리 동전을 만드는데 10원보다 많은 돈이 들고, 폐기하는데도 돈이 또 든다며 찌그러지고 변색하지 않도록 아껴쓰는 게 국가 경제를 살리는 일이라고 말을 건넸다. 다음 임무는 화폐정사실. 한국은행에 들어온 화폐 중 위조 및 손상화폐를 구분하는 일을 하는 곳이다. 보안구역 중에서도 보안구역인 이곳에 들어가고자 또 각종 서류에 서명해야만 했다. 정사실 안에 들어서니 당장 눈에는 1만 원권 다발이 눈을 가득 채웠고, 특유의 화폐 냄새로 기분이 묘했다. 이곳의 화폐들은 신권으로 시중에 유통되다가 한국은행에 들어오는 돈들로 이곳 정사실을 거쳐 다시 시중으로 나가거나 손상권은 폐기된다. 1990년대 초반까지는 150여 명의 직원이 이곳에서 손수 손으로 했다는 정사업무를 이제는 3대의 자동정사기가 1일 40억 원가량의 화폐를 빠르게 처리하고 있다. 직접 정사기 앞에 서서 정사기가 뱉어내는 1만 원권 묶음을 500만 원 단위로 포장, 다시 시중에 나갈 수 있게 가공하는 작업을 했다. 2억 원은 족히 넘을 것 같은 1만 원권 묶음이 작업대 위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지만, 사방에서 나를 지켜보는 CCTV를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했다. 비교적 단순한 일이라 쉬울 줄 알았지만, 기계와 아직 친해지지 않아서인지 조금만 가공이 비뚤어지면 김여진 화폐관리팀장의 재작업 불호령이 떨어졌다. 그렇게 1억 원 단위로 돈 포장작업을 마친 후 이번에는 기계가 아닌 손으로 하는 수정사 작업장으로 향했다. 멀쩡한 돈은 기계가 하지만 테이프나 종이로 덧붙인 돈, 물에 젖거나 불에 그슬려 손상된 돈 등은 폐기해야 하기 때문에 앉아서 수량을 세 폐기 여부를 결정한다. 평소에 돈을 안 세본 것은 아니지만 손상된 돈뭉치라 일반 지폐와는 부피가 다소 차이가 났다. 맨손으로 촉감을 느끼면서 위조지폐도 걸러내야 하고, 수량도 정확히 세야 하다 보니 숫자를 중간에 잊어버리는 일이 다반사, 다른 직원에게 혼나는 일은 이제는 친근하기까지 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많이 봤던 돈뭉치를 손가락 사이에 끼고 하나하나 넘기는 일은 왜 오늘따라 이렇게 어색하고 손에 잘 안 익는지 마음만 조급했다. 기나긴 작업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중소기업 자금 지원 업무를 담당하는 곳이다. 일반적으로 기업 자금 지원은 시중 은행이나 신용보증기금 등이 하고 있지만, 한국은행의 중소기업 자금 지원은 그야말로 한국은행다웠다. 시중은행에 5천592억 원(7월 기준)이라는 돈을 1%의 저리로 지원하면, 각 은행이 이 자금을 각 중소기업에 일반 기업대출보다 낮은 3~4% 금리로 대출하는 방식이다. 인천지역의 알짜배기 중소기업들이 저리로 자금을 활용할 수 있는 좋은 제도지만, 아직 인지도가 높지 않아 7~8%의 높은 금리로 자금을 쓰는 중소기업이 많은 실정이다. 현재 500여 업체가 인천본부를 통해 자금지원을 받고 있으며, 신규 및 만기 연장 등으로 한 달에 1천200건을 처리하고 있다. 이미 강배원 과장 자리 위에는 사업자 등록증, 여신계좌 내역서, 벤처기업 확인서 등 각 기업의 대출 관련 서류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이들 기업에 이뤄진 대출이 문제는 없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각 서류의 허위 여부를 확인하고 인터넷으로 현재 정상 영업 여부를 확인했다. 강 과장을 도와 서류 심사 업무를 일단락하고 나니 어느덧 몸은 천근만근 무거웠다. 신의 직장이라기에 엘리트 이미지를 상상하고 왔지만 정작 현실은 딴 판이었다. 출입증을 반납하고 한국은행 정문을 나오는데 눈은 침침하고 손목은 뻐근하고 어깨는 결렸다. 고된 하루였지만 이번 체험으로 지난날의 잘못이 조금이나마 속죄됐길 바라며, 역시 돈을 잘 모으는 것보다 잘 쓰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용준기자 yjunsay@kyeonggi.com 사진=장용준기자 jyjun68@kyeonggi.com
사회
박용준 기자
2013-08-15 14: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