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현장체험]SK인천석유화학 공장 시설검사원

1년 전 구미 불산 누출사고로 5명의 사망자와 500억 원대의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얼마 못 가 삼성반도체 화성공장에서도 불산 누출사고가 일어나는 등 최근까지 전국적으로 60여 건의 화학물질사고가 발생했다. 사실 먼 곳에서 발생해서 그런지 당시 체감은 크지 않았다. 물론 세상에 이럴 수가하며 겁을 먹긴 했다. 확실한 건 잇따른 화학물질사고가 국민에게 트라우마를 남겼다는 것이다. 최근 SK 인천석유화학 공장이 지역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모두 1조 6천억 원을 들여 이곳에 11만 5천700여㎡ 규모의 파라자일렌(PX) 공장을 증설하는 SK 측과 인근 주민의 대립이 날카롭다. 서구 청라국제도시 등 공장 인근 아파트 주민은 유독성 물질 배출 등 환경오염 가능성을 우려하며 매일 증축 반대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정말 이곳은 안전할까? 하는 의심과 함께 트라우마가 깨어났다. 이곳에 직접 들어가 보기로 했다. 아니, 하루 동안 직접 공장 속 일원이 되어 요목조목 확인하기로 했다. 인천시 서구 원창동 SK 인천석유화학 공장 정문. 이곳은 가 급 보안지역이다. 정문에서부터 삼엄한 경비가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사전에 방문을 예약했던 만큼, 신원확인 절차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휴대전화 사용과 인화물질 소지에 대한 안내를 받고, 인솔자를 따라 공장 내 기술관 3층 회의실에 도착했다. 오늘 내가 맡은 임무는 시설의 안전위협을 사전에 차단하는 시설검사원이다. 시설검사에 앞서 당연히 공장 돌아가는 시스템에 대한 기본지식이 필요했다. 고맙게도 나 혼자만을 위한 속성 과외가 진행됐다. 과외는 공장의 전반적인 안전을 책임지는 심재용 안전부장이 맡았다. SK 인천석유화학 공장은 쉽게 말해 중동에서 들여온 원유를 상압 정제공정을 거쳐 액화석유가스(LPG), 납사(Naptha), 등유, 경유, 중유(벙커C유) 등으로 재탄생시켜 되파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공장은 하루에 무려 27만 5천 배럴의 원유를 정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원유 1배럴당 100달러 정도인 것을 고려할 때 재료값만 하루 320억 원 상당을 쓰는 셈이다. 그럼 정제된 원유를 되팔 땐 얼마나 비싸게 파느냐? 심재용 부장은 정유업계의 이윤은 상당히 낮다. 인건비며 운영비 탓에 되팔아서 적자인 경우도 많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난 1969년 경인에너지로 시작한 이후 공장 주인이 3차례 바뀌고, 법정관리까지 받은 점을 미뤄봐 연관이 적잖아 보였다. SK 측은 최근 납사의 가치에 주목했다. 원유에서 정제한 납사를 다시 한번 분해하면 플라스틱과 의류섬유의 원료인 파라자일렌을 얻을 수 있다. 20세기와 달리 21세기는 플라스틱, 의류 수요가 증가하는 만큼 파라자일렌은 고부가가치의 효자 노릇을 할 것으로 예상됐다. 심 부장은 과외에서 납사는 나프타로 더 잘 알려졌지만, 나프타는 일본식 표기라는 설명도 빼먹지 않는 등 납사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표했다. SK 측은 파라자일렌 생산 공장을 증설하는 V-프로젝트에 돌입했다. 계획대로만 된다면 당장 2015년부터 연간 파라자일렌 생산량이 현재보다 3배가량 늘어난다. 파라자일렌 생산량이 늘어난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의심을 눈초리로 위험성 등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그러자 심 부장은 파라자일렌은 유독물질로 분류돼 있지만, 끓는점이 130℃ 이상으로 상온에선 굉장히 안정화된 액체 상태의 물질이라며 행여나 누출되더라도 액체인 만큼, 공장 테두리 집유장치에 모여 외부 누출은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고온으로 기체가 된 상태서 누출되더라도 이를 바로 태워버리는 장치가 있어 대기 중으로 유출도 불가능하다고 덧붙이며 무엇보다 누출 자체를 사전에 막는 시설검사 체계가 있다고 강조한 뒤 곧바로 현장으로 안내했다. 등경유 탈황 공정 공장 앞. 현장엔 오늘 내 사수인 김진형 검사부장과 조성수 검사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날 현장은 3년에 1번꼴로 오는 시설 대 정비기간에 걸려 공장 대부분의 가동이 정지한 상태였다. 김 부장은 공장이 가동 중에도 검사는 이뤄지지만, 대 정비기간엔 멈춘 시설 내부로 직접 들어갈 수 있어 더 꼼꼼한 검사가 가능하다며 검사의 진면모를 볼 수 있는 날에 방문해 운이 좋았다고 귀띔했다. 등경유 탈황 공정 공장은 환경규제에 맞게 등경유가 담긴 파이프를 가열해 그 속에 포함된 대기오염물질인 황을 분리하는 역할을 한다. 한마디로 엄청난 크기의 보일러다. 밀폐된 공장 내부의 잔존 유해가스 및 산소 여부를 검사한 다음에서야 현장 지휘부(쉘터)에서 출입허가가 떨어졌다. 작업출입 허가 판에 내 이름을 적고, 어두운 굴속으로 들어갔다. 벽면은 수십 개의 파이프가 둘러싸고 있고, 바닥 가운데 대형 가스버너가 자리 잡고 있다. 조 검사원이 재빠른 손놀림으로 노란색 망치를 이용해 파이프를 두드린다. 그는 600℃까지 올라가는 이 안에 들어올 수 있는 때는 오직 대 정비기간 뿐이라며 아무리 특수장비를 이용하더라도 직접 보고 두드려보는 것만 못하다고 말했다. 이어 들고온 검은 가방에서 초음파 장비를 꺼내 파이프를 문지르기 시작했다. 파이프에 젤을 바른 뒤 초음파 장비 끝으로 조심스럽게 문지르는 모습은 마치 태아의 건강상태를 보고자 의사가 임산부의 배를 문지르는 모습과 같았다. 그는 높은 열과 압력을 받는 파이프는 내부부식이 이뤄져 시간이 가면 얇아진다. 초음파 장비로 파이프 두께를 측정해 기준치 이하일 경우 파이프를 교체한다며 이곳 공장 전체가 기본으로 이렇게 검사한다. 40년이 넘은 공장이지만, 구성하는 부품은 항상 새것으로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검사방법은 크게 표본을 채취해 인장압축 등을 시험하는 파괴방식과 육안초음파 탐상방사선 투과 등 비파괴방식으로 나뉜다. 대 정비기간엔 협력사를 포함해 80여 명의 인력이 쉴 새 없이 검사를 진행한다. 장비를 건네받자마자 열심히 문지르기 시작했다. 혹시나 놓치는 부분이 있을까 노심초사했다. 물론 팔은 점점 아파왔다. 하늘 꼭대기까지 뻗어 있는 공장 내부에 가득 찬 파이프를 보니 엄두가 나질 않았다. 발판을 밟고서 점점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서 파이프뿐 아니라 이들을 지탱하는 지지대의 상태도 확인하다 보니 결국 얼마 못 가 두 손을 들었다. ▲검사업무 단순해도, 막중한 책임 있어주민 집회 탓에 공장 안팎으로 시끄러워도 검사업무에 만전 밖으로 나오니 공기가 상쾌했다. 이제야 공장에 처음 왔을 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것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공장 전체가 파이프 집단이었다. 이걸 언제 다 문지르나 싶었다. 이번엔 분리한 황을 280℃까지 재가열해 또 한 번 액체상태의 순수 황으로 탄생시키는 황 회수 공정 공장 앞에 섰다. 파이프와 파이프를 잇는 이음새 하단에 녹이 슨 것을 조 검사원이 단번에 발견했다. 그는 위험물을 취급하는 공장에서 검사가 소홀하면 자칫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며 사고는 분명히 인과관계가 있다. 일어나기 전 문제를 파악해 조치하는 내 일에 어깨가 무겁다고 말했다. 시설검사는 쉽게 말해 공장에서 다루는 위험물의 누출을 사전에 막고자 파이프 등 시설을 단단하게 만드는 과정이었다. 비록 검사 과정은 단순할지 몰라도, 막중한 책임과 엄청난 노력이 요구되고 있었다. 공장 밖에선 집회 탓에 시끄러운 가운데 묵묵히 자신의 일에 집중하는 이들에 악수를 건넸다. 사실 의심의 눈초리로 요목조목 들여다보기에 하루는 턱없이 부족할 만큼 이곳 규모는 엄청났다. 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봤다. 위험물 누출, 이를 막기 위한 노력은 분명히 이곳에 존재했다. 글신동민기자 sdm84@kyeonggi.com 사진장용준기자 jyjun@kyeonggi.com

[1일 현장체험]팔당 수질개선

2천400만 수도권 인구의 식수로 사용되는 팔당상수원. 북한강과 남한강 등지에서 매일 2천965만t의 물이 유입돼 형성되는 팔당호는 일일 최대 7천985천만t의 상수원수 수도권 인구에게 제공하면서 수도권의 젖줄 역할을 하고 있다. 이는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에 이르는 사람들에게 매일 생명수를 공급하는 것으로 팔당상수원이 깨끗이 보존돼야 하고 지켜져야 하는 이유이다. 이런 팔당상수원을 보호하고 불법 행위로부터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파수꾼의 역할을 해오는 사람들이 있다. 그 주인공은 경기도 팔당수질개선본부. 본부장 이하 90여명의 직원들은 각자 맡은 파트에서 매일 팔당호를 지키기 위한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수질개선 기획부터 수질연구, 비점관리, 오수관리와 가축매몰지수질관리에 이르기까지 팔당호의 우수한 수질 확보를 통해 수도권 2천400만이 매일 사용하는 최적의 물을 공급하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다. 특히 팔당수질개선본부는 해상감시와 육상감시, CCTV영상 감시 체제를 병행하면서 팔당호의 원류 훼손을 사전차단하고 있다. 기자는 이처럼 수도권 인구에게 공급돼야 하는 팔당호를 지키기 위해 다양하게 펼쳐지는 팔당수질개선본부 직원들의 전반적인 활동에 대한 체험에 나섰다. ■수상 감시선을 이용한 수상 순찰 활동 팔당호에서 일어나는 불법행위에 대한 단속은 크게 3개 분야에 걸쳐 이뤄진다. 감시선을 이용한 수상 감시, 육로를 통한 육상감시, 팔당호 인근 18개소에 설치된 CCTV분석을 통해 이뤄지는 통합관제 감시 등이다. 본부는 이를 통해 팔당호 유역에서 불법적으로 벌어지는 쓰레기 투기 및 야영ㆍ취사행위에 대한 지도와 단속을 펼친다. 또 팔당호 인근에 통행이 금지된 유류유독물 등 운반차량에 대한 통행제한도 경찰청과 시ㆍ군과 합동으로 실시한다. 기자가 24일 팔당수질개선본부로부터 부여받은 첫 임무는 수상 감시활동. 관계직원들로부터 안전수칙을 비롯해 단속활동에 대한 교육을 받고 오전 10시께 수상 감시에 나섰다. 팔당호의 수상감시는 2인1조로 운영된다. 이날 기자와 함께 수상감시에는 나선 인물은 이곳 팔당수질개선본부에서 25년째 수상감시 역할을 해 온 조효동씨(지방선장 6급). 조씨는 80년대부터 순찰선을 이용해 팔당호지킴이 역할을 해오면서 팔당호의 수질변화를 함께 겪어온 베테랑 요원이었다. 조씨는 예전에는 팔당호에서 불법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았어요. 구역구역마다 낚시를 하던 사람들때문에 팔당호가 많이 훼손됐죠.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인식들이 많이 개선돼서 낚시를 하는 사람이 적발되는 것은 거의 드문 일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계도나 경고 차원에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수상감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사수하기는 어려워도 그동안 지켜왔던 것이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기 때문에 지금 잘 보호되고 있는 팔당호를 지키기 위해서는 한순간도 방심을 해선 안됩니다라고 힘줘 설명했다. 일행을 실은 순찰선이 본부를 출발해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류하는 지점으로 이동하자 두물머리가 보였다. 이곳은 몇 해 전 수십년간 유기농 농사를 지어오던 원주민들과 이를 철거하기 위한 관청이 큰 갈등을 빚었던 곳이다.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생명사수, 생활권 보장이라는 큰 혼란이 빚어졌던 공간이 이제는 당시의 혼란스러움을 뒤로 한 채 공원으로 조성돼 관광객들과 주민들에게 평화롭고 안락한 휴식을 제공하는 공간으로 탈바꿈된 것을 보면서 가슴 한켠에 아련한 느낌이 들었다. 수상 순찰선이 남한강 하류와 북한강 하류 일대를 도는 와중에 기자는 눈을 바로 뜬 채 팔당호 인근 곳곳에서 낚시나 세차, 쓰레기 투기와 같은 불법행위가 벌어지고 있는 지에 대해 감시하는 일을 했다. 다행히 1시간여 동안 진행된 수상감시활동 동안 남한강과 북한강, 팔당호 인근에서는 수질을 훼손하는 이렇다할 움직임이 포착되지 않았다. 팔당수질개선본부 수상순탈팀 11명은 이처럼 한시간정도 소요되는 수상순찰을 3대의 수상 순찰선을 이용해 하루에 두세차례씩 수시로 실시하면서 수질오염행위의 원천봉쇄를 시도하고 있었다. 육상에서도 5개의 감시초소에 공익요원, 청원경찰 등 36명의 인력이 배치돼 주야간을 가리지 않고 수시로 순찰을 하면서 감시 활동이 이뤄지고 있었으며 CCTV를 통해서도 실시간 현황에 대한 점검도 즉각적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팔당호 정화 작업 수상 순찰에 이어진 다음 일정은 팔당호 인근의 쓰레기 수거작업이었다. 팔당본부는 매년 장마철이면 청소선 10척을 이용해 남한강과 북한강에서 떠내려 오는 부유쓰레기를 제거하는 작업을 벌인다. 연도별 강수량에 따라 수거량에 차이는 있지만 2010년 1천393t이던 처리량이 2011년 1천436t, 2012년 2천517t으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팔당본부는 이같은 쓰레기들이 팔당댐에 유입되기 이전에 수거해 안전한 상수원 공급이 이뤄질 수 있도록 매년 장마철이면 수거작업을 실시해 오고 있었다. 기자가 찾은 이날은 청소선으로 인한 수거작업이 아닌 수변구역 적치쓰레기 작업이 이뤄지고 있었다. 팔당본부는 청소선으로 작업할 수 없는 팔당호 인근 수변지역에 적치된 쓰레기들을 수거하기 위해 인근 지역민들을 단기 채용해 수시로 정화활동을 하고 있다. 이 작업은 장마 기간 유입된 쓰레기들이 팔당호의 수위가 낮아지면서 수초 사이나 토양 위에 적치된 것을 제거하는 것으로 수위가 다시 상승하기 이전 이를 제거해 수질을 관리하는 작업이다. 이날 기자는 내가 먹는 물을 내 손으로 지켜낸다는 마음으로 쓰레기 수거 작업에 참여했고 두시간남짓한 짧은 시간 속에서도 30포대가 넘는 쓰레기를 수거, 처리했다. 이날 단 하루였지만 이곳 팔당호를 지키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손길들 모두 내 가족이 먹을 물을 관리한다라는 자부심을 갖고 맡은 바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안전한 상수도를 사용하고 있다는 만족감도 얻는 체험이 됐다. 정진욱기자 panic82@kyeonggi.com

[1일 현장체험]경기경찰청 캠코더 전문요원

아침에 5분은 마치 5초와도 같다. 출근을 준비하는 직장인에게는 더욱 그렇다. 혹여 교통체증이라도 발생하면 애꿎은 다른 차량만 탓하며 불평불만을 늘어놓는다. 특히 교차로에서 신호를 대기하다 다른 차량이 끼어들어 신호가 빨간색으로 바뀌기라도 한다면 운전석이 들썩 거릴정도로 분을 참지 못한다. 그래서 일명 꼬리물기, 끼어들기 등을 일삼으며 1분 1초라도 먼저 가려고 애를 쓴다. 그러면 어김없이 새하얀 장갑을 끼고 호루라기를 불며 다가오는 이들이 있다. 바로 교통경찰이다. 그런데 교통경찰은 매일 아침 교통법규를 지키지 않는, 신경이 날카로워진 사람들에게 욕을 한바가지씩 얻어 먹는다. 바뻐 죽겠는데 늦으면 책임질꺼냐 나만 그러는게 아닌데 왜 나만 갖고 그러냐 등등. 사실 눈으로만 보고 단속, 계도하는데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오리발을 내밀며 오히려 화를 내는 사람들에게 곤욕을 당하기 일쑤다. 그래서 준비한게 있다. 일명 캠코더 전문요원이다. ▲캠코더 전문요원 경기지방경찰청은 지난 9일부터 교통질서 확립을 위해 캠코더 단속 전담팀을 운영하고 있다. 오는 11월 말까지 3개월간 운영되는 캠코더 단속 전담팀은 1천100만 경기도민의 교통법규 준수 분위기를 조성하고 성숙된 교통질서 확립하기 위해서다. 수원중부경찰서 등 도내 1급지 28개 경찰서를 중심으로 시행되고 있는 캠코더 단속 전담팀은 교통 4대 무질서 행위인 교차로 꼬리물기와 끼어들기, 방향지시등 미등화, 이륜차 인도주행 등 교통무질서를 조장하는 법규위반행위를 집중단속한다. 찍히면 오리발도 못내민다. 캠코더로 모든 상황을 영상(증거)으로 남기기 때문이다. 앞서 경기지방경찰청은 지방청 10대, 경찰서 별 1대씩 28대 등 모두 38대의 캠코더를 배부했다. 캠코더 전문요원 70명은 이미 지방청에서 캠코더 촬영기법과 증거자료 해상, 사후처리요령 등의 직무교육을 마쳤다. 말 그대로 캠코더 전문요원이다. ▲나 같은 운전자에게는 위협적인(?) 존재 하루동안 캠코더 전문요원이 돼 보기로 했다. 평소 운전을 신사적(?)으로 하는 성향이지만, 직업 특성상 운전 중 야성의 피가 끓어오를 때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가끔아주 가끔은 꼬리물기도, 끼어들기도 하는 내게 있어 캠코더 전문요원은 위협(?)이자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이었다. 그래서 수원중부경찰서 소속 캠코더 전문요원들과 함께 하루동안 짝퉁 캠코더 전문요원이 돼 보기로 했다. 신호위반ㆍ중앙선 침범U턴위반ㆍ주정차위반ㆍ고속도로 갓길전용차로 통행위반ㆍ이륜차 인도주행위반 5대 위험얌체 운전행위를 근절하기 위해서. ▲캠코더의 효과인가? 수원중부경찰서 교통안전계 1팀의 하루는 아침부터 정신없이 시작된다. 오전 7시부터 오전 8시30분까지 1시간30분 동안 1번 국도 영화초교 사거리와 경기도교육청 사거리, 43번 국도 퉁소바위 사거리(옛 연무중 사거리)에서 교통안전 업무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1팀장인 박대영 경위(50)를 만나 팀원인 강신균 경사(42)와 권창호 경사(36), 임원식 순경(32), 이태산 순경(31)을 소개받고 본격적인 캠코더 전문요원의 길을 나섰다. 기본적인 설명을 듣고 교통경찰의 필수품인 호루라기와 경광봉, 야광조끼 등을 준비하고, 오늘의 주인공인 디지털 캠코더와 삼각대를 챙겨 현장으로 출동했다. 출동을 하면서 박 팀장은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이라면서 우리의 주 업무는 단속이 아닌 차량 흐름을 원할하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두번 세번 연이어 강조했다. 그렇게 도착한 장소는 출ㆍ퇴근시간대는 물론, 평소에도 차량 통행량이 많은 1번 국도 영화초교 사거리. 순찰차를 영화초교 사거리 인근 주유소에 차를 주차한 뒤 본격적인 업무에 들어섰다. 예전 같았으면 2인 1개조씩 2개조로 나뉘어 혼잡지역의 교통흐름을 조절하는 한편, 각종 얌체 운전자들을 두 눈으로만 감시할 수 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교통법규를 지키지 않은 일부 운전자들이 오히려 오리발을 내밀며 경찰에 화를 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캠코더 단속 전담팀이 운영되면서 이 같은 걱정은 사라졌다. 모든 상황이 캠코더를 통해 녹화되기 때문이다. 물론, 1개조 2명 가운데 1명은 삼각대에 캠코더를 설치하거나, 직접 손으로 들고 교통상황을 확인하는 캠코더 전문요원으로 활동해야 하기에 업무량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캠코더 전문요원인 강 경사는 1번 국도는 수원지역 각 이면도로와 고속도로 등을 잇는 중심도로이기 때문에 차량통행량이 상당하다면서 때문에 꼬리물기나 끼어들기 등의 교통법규 위반행위가 빈번한 지역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캠코더를 활용하기 전까지는 단속과 교통흐름 조절에 어려움이 많았지만, 캠코더를 보고 영상이 저장되는 것을 아는 대부분의 운전자는 교통법규를 지키려 노력하기에 업무가 오히려 수월해진 기분이라고 덧붙였다. 캠코더로 촬영되고 있어서인지, 아니면 어리버리한 초보 교통경찰(?)을 큼지막한 사진기로 쉴새 없이 찍어대는 사진기자 때문인지 교통법규를 위반하는 차량을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여전히 상습정체구역인 것은 사실이었으나 얌체 운전행위가 많지는 않았다. 가끔씩 끼어들기를 시도하며 옆 차선 차량과 신경전을 벌이는 차량들과 정지선을 지키지 않는 차량들은 눈에 띄였으나 고질적인 꼬리물기, 직진차선에서 좌회전 시도하기 등의 얌체 운전자는 없었다. 캠코더를 이용해 신호등과 양방향 차선을 모두 담으려다 보니 화면각도를 조절하는데 애를 먹었다. 이 순경은 아직 (캠코더 전문요원)시행초기 단계라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노하우가 생길 것이라면서 촬영은 그나마 쉬운 편인데, 촬영된 화면을 다시 편집해 자료로 활용해야 하는 것이 더 까다롭다고 전했다. ▲만만치 않은 영상편집 연신 호루라기를 불어대며 캠코더로 1시간30분동안 진땀나는 촬영을 마치자, 영상편집이라는 전문분야가 기다리고 있었다. 캠코더 전문요원 교육을 이후한 강 경사와 이 순경은 촬영된 영상을 편집한다. 그동안 나머지 팀원들은 다시 순찰차를 타고 도로공사현장이나 교통사고다발지역에 대한 순찰활동에 들어선다. 영상을 편집해 민원실 범법차량담당에게 전해주면 이를 근거로 교통법규 위반차량 운전자에게 과태료를 처분한다. 이 때문에 촬영도 중요하지만 편집 역시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혹시 모를 민원에 대비해 정확한 교통법규 위반 근거를 제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강 경사는 캠코더 전담요원은 단속이 목적이 아니다. 캠코더를 활용해 지켜보는 만큼 교통법규 위반행위를 억제하고 이를 통해 출퇴근 시간대 교통흐름을 원할히 하는데 있다면서 가끔 왜 캠코더로 차량을 찍느냐면서 화를 내시는 분이 있는데, 이런점을 알아주셨으면 한다고 설명했다. 비가 주적주적 내리는 가운데 야광우비를 입고 캠코더 전문요원으로 뛰어다니다보니 온 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하지만 흘러내린 그 땀 보다 더 많은 교통질서 준수 의식을 느낄 수 있었던 하루였다. 영상으로 찍힌다고 생각하면 교통질서 준수 의식이 높아지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지 않는가. 특히 경기지방경찰청이 교통무질서 행위에 대한 공익신고 활성화를 위해 시민 블랙박스, 스마트폰 등으로 찍은 영상까지 접수받고 있으니 사방에서 당신의 얌체운전을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더불어 우수신고자에게는 경찰관서장 감사장을 수여하고 차량용품신호봉 등 소정의 사은품도 지급한다고 하니 안지킬래야 안지킬수 없을 것이다. 빨리 달린다고 베스트 드라이버가 아니다. 진짜 베스트 드라이버는 안전하고 정직하게 운전하는 바로 당신이다. 안영국기자 ang@kyeonggi.com

[1일 현장체험]‘쌍용차 전문정비공업사’ 자동차정비사

7~8년 전쯤의 일이다. 당시 본보 군기반장으로 통할 만큼 엄격했던 한 선배의 와이퍼를 교체해 줬는데, 그만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다음날 가족여행을 떠난 선배는 고속도로 운전중 폭우를 만났고, 전날 교체한 자동차 와이퍼가 날아가는 경험을 한 것이다. 모처럼만의 여행길이 고생길이 된 선배는 다음날 출근해서는 부서원들에게 전날 사건을 무용담처럼 얘기했지만 두고두고 선배 눈치만 살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도 오금이 저려오는데다 운전 경력만도 15년을 자랑하는데 아직까지 와이퍼 하나 제대로 교체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나는 분명 기계치다. 이참에 나에게 도움이 되는 현장체험을 해보겠다는 생각에 자동차정비사를 떠올렸다. 와이퍼교체는 물론 엔진오일 교환, 타이어 공기주입 등 자가 차량 관리 방법 등을 배워 보고 싶다는 강한 욕구가 생겼다. 게다가 최근 후배 기자의 정비소 업계가 심각한 인력난을 겪고 있다는 기사를 보면서 기술만 있으면 꽤 좋은 직업인데 무엇 때문에 정비 일을 기피할까 했던 궁금증도 나를 부추겼다. 하루라는 짧은 시간에 큰 기술을 터득할리는 만무하지만 자동차 정비사들의 애환을 잠깐이나마 들여다볼 수 있을거란 생각에 서둘러 집을 나섰다. 4일 오전 9시30분 수원시 권선구 평동 중앙자동차매매단지 인근에 위치한 쌍용자동차 전문정비공업사에 도착했다. 최준용 정비책임자(44)와 이용선 정비사(37)가 이스타나 2대의 엔진오일과 예열플러그를 교체하고 있었다. 최준용 정비책임자는 경력 15년의 베테랑으로 업계에서 성실하고 차 잘 고치는 정비사로 정평이 나있다. 또 이용선 정비사는 수원공고와 전문대학에서 자동차정비를 전공하고 쌍용차에서 근무한 엘리트다. 이들이 하루에 10~15대의 차량의 정비를 담당한다. 작업장 주변을 정리하던 나에게 드디어 기회가 주어졌다. 초보 정비사는 보통 엔진오일 교환이나 차량 전구 교체 등 경정비를 하는데 보통 초봉 100만원을 조금 넘게 받는다고 한다. 나에게 맡겨진 차는 신형 코란도C였다. 엔진오일과 필터 교환, 타이어 공기압 체크, 브레이크 라이닝 등의 점검을 실시하는 것이었는데 차를 뽑은 지 얼마 안 돼 조금은 부담이 됐다. 차를 리프트(차량을 들어 올리는 기구) 위에 올리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이를 보던 최준용 정비책임자가 차에서 내리라고 하더니 리프트에 차를 올려놓았다. 보닛을 열고 덮개를 연 뒤 리프트를 조작해 차량을 작업하기 좋게 위로 올렸다. 전자 렌치를 이용해 간단히 하부 덮개를 떼어냈다. 엔진오일을 빼는 볼트를 만지려 하자 최준용 책임자가 제지했다. 오일 튈 수 있으니 조심해서 볼트를 풀러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니나 다를까 나는 볼트를 오일을 받는 통에 빠뜨렸다. 최준용 책임자는 볼트 하나를 조이고 푸는데도 다 요령이 있다고 말한 뒤 오일통에 빠진 볼트를 꺼내 줬다. 차량 내부의 오일이 다 빠진 뒤 다시 볼트를 조이고 하부 덮개를 덮었다. 다시 리프트를 이용해 차량을 내려놓고 엔진오일 주입구를 통해 오일을 주입했다. 최준용 책임자는 동일 차종이라도 엔진오일 주입량이 조금씩 차이가 있어 오일 게이지를 통해 양을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대부분 정비업소에서 엔진오일을 일정량 주입한 뒤 이를 확인하지 않고 차량을 출고시키는 경우가 많다며 엔진오일을 주입하고 나서 시동을 켜고 오일 순환되도록 한 뒤 게이지의 로우와 하이 중간 부분에 기름 자국이 찍히는 것을 확인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기름 자국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장갑으로 게이지를 닦으려고 하는데 최준용 책임자가 장갑을 끼고 닦으면 안 된다며 제지했다. 그는 맨손으로 작업을 해야 한다면서 오일 게이지에 이물질이 들어갈 수 있어 손을 닦고 맨손으로 작업하는 것이 원칙이다. 독일 기술자들은 차량 엔진 부분을 정비할 때 맨손으로 한다고 말한 뒤 시범을 보여줬다. 강한 장인정신이 느껴졌다. 엔진오일 교환 작업을 마칠 무렵 그에게 엔진오일 교체가 1만㎞까지 가능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는데 언제 교환하는 게 맞느냐고 질문했다. 그는 연구 결과가 틀린 것은 아니지만 시내 주행이 많은 경우 5천㎞에서 교환하는 것이 좋고 장거리 주행을 많이 하는 차량은 1만㎞에 교환해도 문제가 없다면서도 엔진오일 교환만 잘해도 차량 수명이 두배는 길어진다고 설명했다. 다음 작업은 에어필터 교환이다. 필터 교환은 생각보다 쉬웠다. 새 필터를 홈에 맞춰 장착하고 덮개를 조이면 됐다. 그런데 이것도 무턱대고 그냥 조이는 것이 아니었다. 덮개에 숫자가 적혀 있었는데 그 강도에 맞게 적당한 힘으로 조여야 덮개가 파손되지 않는다. 마무리는 최준용 책임자가 도와줬다. 타이어 공기압은 쉬웠다. 공기압을 맞춰 놓은 뒤 삐 소리가 나면 공기주입구를 분리해 마개를 돌려 막으면 됐다. 타이어 공기압은 보통 30psi 정도가 일반적인 것으로 아는데 차량마다 차이가 있지만 35psi로 주입하면 타이어 마모가 적다고 최 책임자가 알려줬다. 이 정도면 나 같은 기계치도 쉽게 할 수 있는 쉬운 작업이었다. 작업 도구를 정리하고 있는데 점심 배달 오토바이가 업소를 들어왔다. 최준용 책임자는 아무리 바빠도 12시가 되면 어김없이 점심을 먹는다며 하던 일을 그만두고 다 사무실로 들어오라고 말했다. 수저를 들며 그가 입을 열었다. 예전에는 선임 기술자에게 렌치로 맞아가며 일을 배웠다며 그래도 어느 정도 기술이 숙달되면 일하기가 쉬웠는데 요즘 차량은 전자, 기계, 통신 등 최신 과학기술이 집약돼 계속 공부하지 않으면 정비업소에서 일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우리 같은 영세 정비업소는 대형마트에 밀리는 동네 슈퍼마켓처럼 브랜드 업소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가 없다며 정비사를 하려는 사람을 구하기도 어렵지만 브랜드 업소에 밀려 문을 닫는 업체가 한두 곳이 아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그는 예전엔 기름 밥 먹는다고 무시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최근에는 사회적으로 기술자들에 대한 인식을 달라진 것 같다며 아들에게도 자동차 기술을 가르쳐 작은 업소지만 물려 주고 싶다고 말했다. 좀 짓궂은 질문이었지만 자동차 업소에서 제일 진상(?) 고객은 어떤 사람입니까라고 물었다. 그는 차량 제조사의 결함을 정비 업소에서 따지거나 바가지를 썼다고 생각해 부품비용부터 공임 비용까지 살피며 하나하나 따지는 손님들이 가장 힘들다며 예전과 달라 일반 소모품은 가격이 정해져 있어 바가지를 씌우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밝혔다. 얘기를 나누던 중에 봉고차 한대가 업소로 들어왔다. 최 책임자와 이용선 정비사는 손님을 맞으러 뛰어나갔다. 단골로 보이는 손님은 보닛쪽에서 연기가 올라와 왔다며 차량에서 내렸다. 리프트를 올리고 최 책임자는 보닛을 열고 차량을 살폈다. 그는 의사가 환자를 진단하는 것처럼 차도 어디가 고장 났는지 제대로 찾아내야 잘 고칠 수 있다며 정비사가 진단을 잘 못해 부품 하나만 교환해도 될 일을 전체 부품을 교환해 많은 비용이 발생하면서 고객들이 정비업소를 신뢰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라고 진단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옆에서 수리하는 과정을 지켜봤지만 무엇이 잘못됐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결국 나는 오전에 교환한 엔진오일 폐유를 한 곳에 잘 정리하고 부품을 날랐다. 곧 엔진오일 교환 차량이 들어왔다. 조금 어설펐지만 차량을 리프트에 올리고 보닛을 열고서 오전에 배운 대로 차분히 작업을 진행했다. 서두르지 않고 작업 순대로 하니까 크게 어려울 것은 없었다. 타이어 공기압도 봐주고 브레이크 라이닝의 마모상태로 점검했다. 차량 정비의 까막눈 수준은 면한 것 같았다. 이번 기회에 회사를 그만두고 아예 정비 기술자로 나서볼까라는 섣부른 자만심도 살짝 들었다. 차량 정비를 마친 최준용 책임자는 최 기자가 오늘 했던 일을 초보 기술자는 2~3년 정도 반복적으로 계속한다. 정비 기술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은 아니다며 제대로 절차(정규 교육과정)를 밟아 정비사가 돼 기술 숙련도를 높이면 자동차 정비시장은 발전가능성이 무궁무진해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강한 자부심을 내비쳤다. 이어 그는 요즘 나오는 차들은 너무 잘 만들어 관리만 잘하면 10년이상, 주행거리 30만㎞이상 충분히 운행할 수 있는데 사람들이 차를 너무 자주 바꾼다며 최 기자도 이번 기회를 계기로 분기에 한 번씩은 정비소에서 점검을 받고 간단한 자가 정비는 할 수 있도록 하라고 당부했다. 이번 체험을 통해 나는 기계치가 아니라 기계에 관심이 없었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기계에 조금만 관심을 뒀더라면 8년전 그같은 사고는 없었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며 산업 현장에서 장인정신을 가지고 자신의 기술을 연마하는 기술인들을 다시 보는 계기가 됐다. 최원재기자 chwj74@kyeonggi.com

[1일 현장체험]수도검침원

올해는 유난히도 전국적으로 사건사고가 잦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중 하나가 지난 5월9일 경북 의성에서 발생한 여성 수도검침원 살해 사건이 아닐까 싶다. 실종 10일 만에 숨진 채 한 야산에서 발견된 수도검침원 K씨(52여)는 사실 다음 날 살해용의자인 A씨 집 일대를 검침할 예정이었지만,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 때문에 하루 앞서 검침을 나섰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져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했다. 그래서 직업 특성상 여성이 많은데다, 열악하고 많은 위험에 노출된 이들의 직업 전선에 뛰어들어 애로사항을 알리고 이들의 처우가 하루빨리 개선되길 바라는 마음에 수도검침원을 택했다. ■이른 하루의 시작 오전 8시10분, 남양주시 별내동에 있는 상하수도관리센터에 도착했다. 전날 약속보다 10분여 늦었지만 수도검침원 자리가 모두 비어 있어 늦지 않았구나 하는 안도감에 다행이다 싶었다. 하지만 체험을 위해 처음 대면한 수도검침원 정운미씨(51여)로부터 조금 늦으셨네요. 다른 분들은 이미 7시에 출근해서 외근 나가셨어요는 말을 듣고 금세 머쓱해졌다. 이렇듯 수도검침원의 일과는 이른 오전 시간부터 시작된다. 남양주시 검침전수는 총 5만5천381전으로 총 29명의 수도검침원이 1인당 1천900여전을 담당하고 있어 매달 22일부터 다음달 5일까지 정해진 약 2주 동안의 검침 기간 내에 자신의 구역에서 검침을 모두 마치려면 새벽 출근은 불가피한 현실이다. 하루 업무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을 한 정씨는 어휴, 왜 제일 힘들 때 오셨어요. 만만치 않으실 텐데라며 반나절만 할 것을 주문했지만 오히려 오기가 생겼다. 수도검침을 위한 PDA와 갈고리, 장갑, 얼음물 등 준비물을 싸들고 정씨의 구역인 남양주시 와부덕소지역으로 향했다. 30도를 훌쩍 넘어선 뜨거운 땡볕 아래 처음 도착한 곳은 남양주시 와부읍의 한 사우나. 10년차 베테랑답게 정씨는 외부에 설치된 옥외검침기로 순식간에 검침을 마치고 두 번째 인근 슈퍼로 자리를 옮겼다. 아직 옥외검침기가 설치되지 않은 이 장소에서는 갈고리를 이용해 바닥에 설치된 파란 뚜껑을 열고, 그 안에 설치된 계량기의 수치를 재야 했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고 느껴 이제부터 혼자 해보겠다며 의지를 불태웠다. 그렇게 다음 장소에 도착한 인근 한 성당. 계량기 뚜껑을 열자마자 수십 마리의 온갖 벌레들이 도망치듯 퍼지는 모습을 본 순간, 온몸에 전율과 함께 머리가 쭈뼛 섰다. 깜짝 놀란 모습을 본 정씨는 자연 부락에 가면 뱀이랑 쥐도 자주 보는데 이런 걸로 벌써 놀라시면 어떡해요?라고 엄포를 줬다. 얼떨떨한 기분으로 또 다음 장소로 이동하면서 벌레떼는 빙산의 일각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번에는 맨홀 뚜껑을 열어야 했다. 벌레떼로 인한 트라우마(?)로 조심스레 쇠꼬챙이를 동원해 맨홀 뚜껑을 열고 난 후 더욱 충격적인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맨홀에서부터 땅속 깊숙이 설치된 사다리, 계량기까지 온통 거미줄로 도배돼 있었기 때문이다. 호흡을 가다듬고 거미줄을 뚫으며 계량기까지 내려가자 심한 악취와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쥐의 습격(?)에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재빨리 검침을 마치고 올라와 다음 검침을 위해 이동한 바로 옆 커피숍에서도 난관에 부딪혔다. 이 커피숍은 외부에 수도계량기 위로 불법테라스를 설치하고 계량기로 이어지는 문을 자물쇠로 잠가 검침 자체가 불가능했다. 수도검침을 위해 문을 열어 달라는 요구에 이 커피숍 주인은 오히려 열쇠가 없으니 나중에 와라. 꼭 지금 해야 하느냐?고 역정을 내 검침을 포기했다. ■수도검침원의 열악한 환경 이 일대 검침을 마치고 차량으로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30분 가량의 긴 휴식(?)시간 동안 정씨와의 대화를 통해 수도검침원에 대한 애로사항을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수도검침원은 왜 여자가 많으냐는 질문에 정씨는 남자가 하면 집에 혼자 있는 여성들이 문을 잘 열어주지 않아 검침이 어렵다는 게 그 이유라고 설명했다. 수도나 가스 검침, 택배기사를 가장해 혼자 사는 여성들을 노리는 범죄 행위도 종종 발생하기 때문에 남성 검침원들의 방문을 꺼린다는 것이다. 정씨는 또 그나마 이날 관용차량을 배차받아 편히 일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29명의 수도검침원들이 5대에 불과한 관용차량을 나눠써야 하기 때문에 배차 받지 못한 날에는 자신의 차량이나, 대중교통을 이용해 이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난 2006년부터 남양주시에 도입된 옥외검침기와 자동원격 검침시스템마저도 5만5천여 검침전수 중 9천800여전에 불과해 나머지는 일일이 방문해 검침해야 한다. 하루 180~200전을 검침해야 하는 이들에게는 무엇보다 여름이나 추운 겨울, 비와 눈 등 기후에 따른 어려움이 가장 크다. 가방은 물론 검침을 위해 양손 가득 챙긴 장비 때문에 우산은 쓸 수도 없고, 겨울철에는 계량기 뚜껑이 얼어 잘 열리지도 않기 때문이다. 특히 기온이 급격히 내려간 겨울에는 계량기 동파사고가 속출해 수도검침은 꿈도 꿀 수 없다. 그러나 정씨는 이러한 애로사항 보다 수도검침원들에 대한 시민들의 비인격적인 대우와 비협조적인 태도가 가장 힘들다고 했다. 정씨는 밖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다 보니 정말 다양한 사람을 접하게 돼요. 일 특성상 차려입지 못하고 편한 옷차림을 하고 가는데 어떨 때 보면 수도검침원을 우습게 보나 하고 자격지심 아닌 자격지심을 느끼게 된다고 고백했다. 또한 부재시 붙여 놓은 안내문에 대해서도 있을 때 오라. 내일 몇시에 있으니 그때 와서 확인하라는 등의 요구들이 많다고 한다. 하지만 검침원들은 그들이 요구하는 시간에 갈 수 있을 만큼 시간적인 여유가 많지 않다. 순간 자취 생활을 하며 퇴근하고 돌아오면 문앞에 붙어 있던 검침 방문 쪽지를 남일 보듯 지나쳤던 경험이 뇌리를 스쳐갔다. 정씨는 그런 경우에 방문 쪽지에 적힌 번호로 꼭 전화해주셔야 해요. 수도나 가스 계량기가 집안에 있는 경우는 꼭 문을 열어야만 검침할 수 있거든요. 시민분들은 귀찮게 여기지만 검침원들에게는 한 번 방문할 일을 두번 세번 방문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어요라고 관심을 당부했다. 반쯤 왔을까, 정씨에게 최근 발생했던 수도검침원 살해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정씨는 이 사건에 대해 날짜와 장소 등 누구보다 더 자세히 알고 있었다. 사실 터질게 터졌다고 운을 뗀 정씨는 이 사건이 발생하기 전부터 외곽에 있는 자연 부락지역은 그런 두려움이 많이 있었죠. 그럴 땐 주변 사람들이 모두 듣게끔 큰 목소리로 수도 검침원이에요라고 말한다거나 갈고리 장비를 휘두르면서 가곤 한다며 위험 속 근무 환경을 전했다. 그는 특히 외곽 자연 부락에서는 폐허일지라도 계량기가 있으면 무조건 검침을 해야 해요라며 아마 수도검침원 중에 개한테 안 물려본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그렇다고 몸이 아파 병원도 마음 놓고 갈 수 없다. 휴가도 마찬가지다. 누군가 한 자리가 비면 또 다른 누군가가 대체 근무를 해 일은 배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을 마치지 못하면 주말에 가족까지 동원해 근무하기 일쑤다. 끊임없이 이어지던 대화 도중 드디어 정씨가 언급했던 와부읍 월문리의 한 외곽 자연 부락에 도착했다. 정오도 채 지나지 않은 시각이었지만 스산하고 음침한 산자락에 드문드문 떨어져 있는 집들과 여기저기서 짖어대는 동물, 수많은 수풀을 헤집고 지나서야 나타나는 계량기 등의 환경은 여성 검침원이 도저히 혼자 할 수 없는 일로 보였다. 보물찾기를 하듯 집집마다 구석구석 숨어 있는 계량기를 찾아내는 일은 신출내기 수도검침원인 나에게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이 지역 마지막 주택을 검침하기 전, 정씨는 드디어 왔다며 나를 앞에 내세웠다. 주인이 워낙 특이한(?) 탓에 검침이 가장 힘들다는 그곳이었다. 앞장서 검침을 하려는 찰나, 집주인이 무섭게 달려나오며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고 야구방망이를 들고 나와 위협을 가하는 돌발 행동에 나와 정씨는 그대로 줄행랑을 치는 웃지 못할 촌극을 연출하기도 했다. 요금이 체납된 세대에 대한 단수조치 이행 시에도 이같은 이유 없는 신변의 위협을 종종 느낀다고 정씨는 말했다. ■열악한 환경 개선을 위해선 예산확보가 우선 그렇게 월문리의 자연 부락을 빠져나와 남은 와부읍의 빌라 몇 채와 주택 검침을 마치자 온몸에 범벅된 땀과 더럽혀진 옷매무새를 한 채로 오후 4시가 다돼서야 상하수도센터로 복귀했다. 어느새 삼삼오오 모여든 수도검침원들로 벅적해진 사무실엔 일을 하다 다리가 멍투성이가 된 검침원, 수치가 맞지 않은 이상한 계량기 등 서로간 겪었던 에피소드를 나누며 하루일과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렇게 끝난 것만 같았던 일은 제2의 업무로 이어졌다. 그날 실시한 검침내역을 장부와 컴퓨터에 입력하고, 고장 난 계량기의 수리요청, 요금 체납된 세대에 대한 단수조치, 각종 전화민원 응대 등을 마치고 하루를 정리했다. 이날 일일체험을 마치며 수도검침원의 일상이 생각 이상으로 힘든 직업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적은 임금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내는 이들에게 그나마 남양주시는 분기별 간담회와 협동워크샵, 우수 수도검침원 포상 등을 추진하며 사기 진작에 나서고 있지만 이런 것들보다 더 많은 예산을 편성해 차량 및 옥외검침기 확대 방안이 열악한 환경의 개선책이 아닐까 싶다. 특히 가정집을 방문하는 수도검침원들에게 따뜻한 격려와 시원한 물 한잔 대접할 수 있는 시민들의 의식 개선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끝으로 이날 일일체험 동행으로 평소 검침수량의 절반도 하지 못하며 의도치 않게 주말 근무를 선물(?)하게 된 나에게 열정적으로 체험을 도와준 정운미 검침원에게 감사의 말과 함께, 글로써 수도검침원의 애로사항을 절반도 담아내지 못한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남양주=하지은기자 zee@kyeonggi.com

[1일 현장체험]적십자 봉사원 ‘이불빨래ㆍ반찬배달’

독서와 영화감상이 취미인 엄마는 최근 연필 스케치 공부를 시작했다. 점잖고 고상한 엄마가 너 나가 살아라며 소리를 빽 지를 때가 있다. 십중팔구 빨래통 앞에서다. 하루 두 장씩 내놓는 축축한 수건과 김칫국물이 묻은 흰 셔츠, 구깃한 바지를 세탁기 속에 하나씩 집어넣을 때마다 엄마의 화도 차곡차곡 쌓이다가 결국엔 폭발하나 보다. 너 나이가 몇인데, 엄마가 네 종이니? 시집가서는 어떡할래? 엄마의 단골 레퍼토리가 변명할 틈조차 주지 않고 뒤따른다. 집안일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겪어야 하는 수모치고는 다소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럴 때는 잠자코 있는 게 상책이다. 마땅히 나가 살 데도 없는데다 그렇다고 부지런히 가사에 동참할 자신은 더더욱 없기 때문이다. 네가 언제까지 아기 인 줄 아니?, 이어지는 타박에 저렇게 늙은 아기도 있나?라고 키득대는 동생의 비웃음을 견뎌야 함은 물론이다. 집에서 손 하나 까딱 않는 내게 지친 엄마가 나의 오늘 하루를 봤다면 뭐라고 할까. 막바지 더위가 기승을 부린 8월 넷째 주, 일일 적십자 봉사원으로 이불빨래와 반찬배달에 나섰다. 오전 10시가 조금 넘어 구리 토평동에 있는 구리시종합사회복지관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기 무섭게 떠들썩한 웃음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복지관 정문 앞 주차장에서 봉사원 아주머니 열댓 명이 저마다 웃음을 쏟아내며 이불 빨래에 한창이었다. 쨍쨍한 햇볕 아래 빨간 플라스틱 대야와 큰지막한 소쿠리, 파란 고무장화, 적십자 봉사원 특유의 노란 조끼가 깔 맞춤이라도 한 듯 선명한 조화를 이뤘다. 기자 아가씨가 지각했네, 얼른 와요 대야 안에 들어가 빨래 밟기에 열중하던 봉사원 한 분이 손을 내밀며 맞이했다. 이날은 복지관 앞에서 매달 한 차례씩 하는 적십자 빨래 봉사 날이다. 이른바 사랑의 이동세탁사업으로 대한적십자사 경기도지사에서 이동빨래방차량을 제공하고 적십자 구리시 지구협의회 회원들이 봉사에 참여, 10년 넘게 이어오고 있다. 구리시 9개 동마다 있는 적십자 봉사회에서 한 곳씩 돌아가며 빨래봉사를 실시, 이날은 인창동 봉사회원 15명이 나왔다. 이들은 전날 미리 걷어온 독거노인 18가구의 빨래를 모아서 오전 9시부터 빨래를 시작했다. 세탁물은 어르신 스스로 빨기 어려운 이불, 담요 등의 침구류로, 봉사원들은 이불을 발로 밟고 헹궈 빨래방차량 안에 있는 탈수기에 넣고 돌린 뒤 빨랫줄에 널고 있었다. 이미 한 시간여 동안 빨래를 한 터라 주차장 위로 쳐둔 빨랫줄엔 알록달록한 이불이 가득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주르륵 흐르는 무더운 날씨였지만 빨래하기는 더없이 좋은 땡볕이었다. 줄지어 늘어선 7개 대야 속에서 노란 조끼가 둘씩 들어가 빨래를 밟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적십자 봉사원 조끼와 빨간 고무장갑을 건네받고 운동화와 양말까지 벗은 뒤 빨래를 시작했다. 이불이 든 대야 속에 맨발을 담그자 앗, 차가워 소리가 절로 나왔다. 비누기가 가시지 않은 이불이 미끄러워 휘청대자 대야 속에서 맨발로 마주한 봉사원이 두 손을 꼭 맞잡고 해야 한다며 팔을 붙들었다. 빨래는 비눗물 세탁과 헹굼 세 차례로 나눠 이뤄졌다. 나는 장홧발로 초벌세탁을 끝낸 빨래를 담당했다. 지근지근 빨래를 밟자 말갛던 물이 금세 뿌예졌다. 물을 비우고 찬물을 다시 받아 또 밟았다. 종아리까지 차오른 물 위로 햇볕이 반짝 튀어 올랐다. 쉴새 없이 빨래를 밟는 동안 엉뚱한 곳에서 스트레스를 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깨끗이 헹군 이불빨래를 손으로 지그시 눌러 물기를 빼내고서 소쿠리에 옮겨 담았다. 세탁차량까지는 열 걸음도 채 되지 않았지만 물을 잔뜩 먹은 이불이 무거워 낑낑댔다. 세탁차 안에서는 백상순 적십자 구리시 지구협의회장이 탈수기에 빨래를 넣고 다시 꺼내느라 분주했다. 백 회장과 함께 탈수기에서 빨래를 꺼내 들고 빨랫줄에 널었다. 뽀송뽀송한 새 이불에서 향긋한 냄새가 풍겼다. 백 회장은 십 년 전에는 빨랫감을 서로 헷갈리지 않으려고 색색 실로 표시해 뒀는데 이제 각자 스마트폰으로 찍어둔다며 헌 이불 들고 와 새 이불 돌려주니 받으시는 어르신도, 우리도 기분이 좋다고 미소 지었다. 11시 반이 조금 넘어 빨래봉사를 끝낸 후 복지관에서 간단한 점심을 먹고 남양주로 향했다. 오후에 진행될 반찬배달 봉사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차로 20분여를 달려 남양주시 금곡동에 있는 대한적십자사 경기도지사 동북희망나눔봉사센터에 도착했다. 맛있는 반찬 냄새가 풀풀 풍겼다. 일주일에 한 번씩 반찬을 만들어 배달하는 날, 이날은 고등어조림과 무장아찌, 어묵볶음과 김 400인분을 준비했다. 12년간 센터에서 반찬배달봉사 지속해온 동안 대상자는 100여 가구에서 382가구로 늘었다. 반찬배달에 참여하는 봉사원만도 50명이다. 센터 내 조리실은 반찬 마무리작업이 한창이었고 옆에 자리한 강당에서 봉사원들이 모여 분주했다. 저마다 자리를 잡고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에 담은 반찬을 노란 비닐봉지에 넣어 묶고서 장바구니와 종이상자에 나눠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사불란한 움직임에서 12년 봉사의 내공이 느껴졌다. 봉사원들은 운전봉사원 한 명과 배달 봉사원 두 명씩 3인 1조로 조를 짜 한 조당 20여 가구에 개인차량으로 배달한다. 해당자는 독거노인과 조손가정, 장애인가구 등이다. 오후 1시, 8년째 반찬배달 봉사에 참여해온 장영숙 적십자사 남양주금곡봉사회 회장과 오늘로 두 번째 봉사에 나선 맹영순 봉사원과 19가구에 반찬을 배달하기로 했다. 샴푸, 치약 등을 담아둔 생필품 선물세트도 챙겼다. 운전은 박종선 대한적십자사 경기도지사 간사가 맡았다. 오전 내내 반찬을 만들었다는 장 회장은 땀을 뻘뻘 흘리며 기다리시니 어서 가자고 서둘렀다. 트렁크는 물론 뒷좌석까지 반찬과 생활용품을 가득 싣고 배달에 나섰다. 장 회장이 구불구불한 뒷골목과 좁다란 길을 요리조리 가리키며 설명하는 동안 맹 봉사원은 휴대전화 수첩에 이를 받아적느라 여념이 없었다. 다음부터는 직접 운전 봉사를 해야 하는 탓에 길을 익혀야 하기 때문이다. 배달길은 돌고 돌았다. 지원가정 대부분이 오래된 다세대주택이나 빌라에 살면서 길이 제대로 닦여 있지 않거나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장 회장은 여름엔 낫지, 겨울에는 온통 빙판길이라 배달 중 접촉사고가 부지기수라며 지난겨울 배달하다 차가 미끄러져 사고가 나 결국 차를 바꿨다고 말했다. 지원가정의 집안 환경은 하나같이 열악했다. 혼자 사는 김이순 할머니(82)네 반지하 방에 들어서자 곰팡이와 반찬냄새 등이 뒤섞인 눅눅하고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환기가 잘되지 않는 탓인지 두 벽면에는 회색 곰팡이가 잔뜩 펴있었다. 너무 고맙다고 반복해 말하는 김 할머니에게 장 회장은 곰팡이가 언제부터 이렇게 핀 거냐, 집주인이 도배 안 해주느냐 등을 질문을 이어갔다. 집을 나선 장 회장은 적십자 사업으로 도울 수 있을지 몰라 꼼꼼히 알아본 것이라며 반찬을 배달하면서 할머니, 할아버지의 건강상태도 보고 집안 환경도 살펴본다. 주기적으로 청소를 해드리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빛이 안 드는 원룸, 스러져가는 판잣집, 눅눅한 지하방을 누비며 배달을 이어갔다. 귀가 잘 들리지 않는 할아버지가 손뼉을 치며 고맙습니다를 연발했고 고개를 허리까지 숙여야 할 정도로 등이 굽은 할아버지는 검은 봉투에 음료수 네 병을 넣어 손에 쥐여줬다. 다리를 쓰지 못해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하는 할머니가 어두운 방에 홀로 우두커니 앉아 반찬을 건네주는 나를 보며 배시시 웃었다. 일을 나가 집을 비운 곳에는 문고리에 반찬을 걸어두거나 창문 속으로 넣어두기도 했다. 점점 느려지는 걸음이 땡볕 속 배달에 지친 탓인지, 무거워진 마음 탓인지 알 수 없었다. 배달 내내 봉사는 내가 미쳐야 하는 것이라는 장 회장에게 어떻게 봉사를 하게 됐냐고 물었다. 아이 하나를 낳고 하나를 벤 20대 초반, 장 회장은 남편의 장사가 완전히 망해 거리에 나앉을 처지로 내몰렸다. 가까스로 월세 방을 얻었지만 가재도구 조차 없어 밥을 해먹을 수 없는 형편이었다. 매일같이 인스턴트 음식을 사먹는 장 회장에게 이웃 아주머니가 연유를 물은 뒤 새댁이 밥을 해먹어야지라며 냄비와 그릇 등 살림살이를 내어줬다.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마웠어요. 그때 나도 나중에 꼭 어려운 사람을 도우며 살아야지 결심했지요. 이젠 봉사가 일상이 됐고 평생을 이렇게 살 거에요 오후 3시, 반 녹초가 돼 센터로 돌아왔다. 오전 중 음식조리를 마친 봉사원들이 모여 다음 달 반찬배달 스케줄을 짜고 있었다. 짧게는 3년, 길게는 30년간 봉사를 해온 이들이다. 이야기를 주고받는 봉사원들은 사뭇 진지하면서도 화기애애했다. 봉사를 오래하면 체력도 강해지나? 역시, 아줌마들이라 다른가. 지친 탓인지 생각이 엉뚱한 곳으로 기울었다. 그럼 그렇지하는 엄마의 타박 섞인 한숨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김영란 대한적십자사 경기도지사 동부희망나눔봉사센터장은 점조직화된 봉사원이 없으면 반찬배달을 비롯해 다방면에서 이뤄지는 봉사활동을 실시할 수가 없다며 돈을 받기는커녕 들여가며 봉사하는데, 봉사 중 발생한 사고 처리비용 등 최소한의 지원도 해주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경기지역 내 적십자 봉사원 2만여명. 좋은 일 하시는 분들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는 말에 김 센터장의 대답이 명쾌하게 돌아왔다. 그러니까 아직 세상이 살 만한 거겠죠 성보경기자 boccum@kyeonggi.com

[1일 현장체험]한국은행 인천본부

이제 와서 고백하지만, 학창 시절에 10원짜리 동전에 구멍을 낸 적이 있다. 당시에는 그게 유행이었다. 송곳 등 날카로운 도구를 이용해 동전 중앙을 중심으로 구멍을 내면 나중에는 바깥 테두리 부분밖에 남지 않는다. 그렇게 완성된 테두리를 마음에 있던 여학생에게 반지라며 주던 유치찬란한 1990년대식 구애법이다. 이왕 말 꺼낸 김에 하나 더 털어놓자면, 그로부터 몇 년 후에는 한두 차례 지폐에 메모한 적이 있다. 지금은 그런 몰상식한 행동을 하지 않지만, 철없던 시절에는 지폐 속 흰 부분이 마치 낙서장인 양 그곳에 글귀, 연락처, 주소 등을 적어 건넸던 기억이다. 당시의 죄의식이 남아서였을까. 1일 현장체험의 주자로 선정되면서 한국은행 인천본부가 떠올랐다. 경제부에 몸담았을 때 맺은 인연도 있지만, 화폐의 발행유통폐기 등은 물론, 통화신용정책과 물가안정정책 등을 수행하는 지역경제 최고 금융기관, 한국은행을 한 번 제대로 체험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속죄하는 기분으로 맞은 체험일 오전 9시. 막상 한국은행에 들어가려니 정말 죄지은 사람 마냥 가슴이 두근거렸다. 한국은행 인천본부가 국가보안 다급 시설인 탓에 출입 용무를 밝히고 성경창 업무팀장과 통화가 된 후에야 출입증을 받고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첫 임무는 동전 교환 업무. 일주일에 세 번, 대량 주화 교환 업무가 있는 날이어서인지 이른 시간인데도 아주머니, 아저씨, 할머니까지 사람이 꽤 많이 찾아왔다. 시중 은행도 동전 교환 업무를 하지만, 대량의 동전 교환은 시간과 품이 많이 들어가 시중 은행에서 꺼리는 탓에 대부분 한국은행을 찾고 있다. 한 번에 교환하는 동전량이 30만~40만 원은 훌쩍 넘을 정도로 아예 예약제로 업무를 진행해 고객이 기다리는 시간을 줄이고 있다. 집 안이나 가게에서 모은 동전을 갖고 오는 사람도 많았지만, 큰 손님은 폐차장이나 재활용센터에서 오는 고객으로 폐차작업 중 거둬들여 모은 동전을 100만 원 가까이 가져오곤 한다. 한국인이 많이 찾는 중국 단동에서는 기념으로 던지고 간 동전을 모아 3~4년에 한 번꼴로 인천본부에 오는데 갖고 오는 양이 워낙 많아 업무팀 직원들이 온종일 매달려야 할 정도다. 문제는 폐주(못쓰는 동전)는 기계 인식이 안 돼 동전 교환 업무가 대부분 수동으로 이뤄진다는 점이다. 폐주를 100개 단위로 세려고 장갑을 끼고 자리에 앉았지만 어설픈 손놀림을 보더니 금세 옆에서 그렇게 하다가는 온종일 걸려도 다 못하겠네요라며 핀잔이 날라왔다. 결국, 초보 직원들만 사용한다는 수전판이 동원됐다. 넓은 판에 100개의 홈이 있어 몇 번 시범을 보고 나니 맨손으로 세는 것보다 한결 속도가 빨라졌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나름 무게가 나가는 수전판을 들고 손목을 계속 쓰다 보니 어느새 팔과 손목이 아려왔다. 적정 실내온도로 냉방이 이뤄지고, 편하게 앉아서 일했지만 수백 개를 세고 나니 이마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100개를 정확히 맞추지 못하거나 동전을 떨어뜨려 도로 다시 세는 일은 덤이었다. 그렇게 수십 분이 지나 겨우 고객 한 명의 교환액 39만 2천800원을 세고 나니, 벌써 창구엔 다음 고객이 말똥말똥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나마 이번에는 100% 폐주는 아니지만, 동전 더미에서 폐주를 골라내는 일은 여전했다. 새마을금고에서 금고에 있던 동전을 교환하러 온 고객이라 양도 만만치 않았다. 바구니에 담긴 동전 무더기 중 폐주를 고르려 매의 눈으로 살펴보다 보니 폐주도 참 각양각색이었다. 아직 쓸만한 동전 중에는 1970년대에 만들어진 동전도 있었지만, 불과 2007년에 만들어진 동전도 색이 빨갛게 변해 더는 사용이 불가능해 어쩔 수 없이 폐주로 분류했다. 옆에 있던 권옥제 조사역이 10원짜리 동전을 만드는데 10원보다 많은 돈이 들고, 폐기하는데도 돈이 또 든다며 찌그러지고 변색하지 않도록 아껴쓰는 게 국가 경제를 살리는 일이라고 말을 건넸다. 다음 임무는 화폐정사실. 한국은행에 들어온 화폐 중 위조 및 손상화폐를 구분하는 일을 하는 곳이다. 보안구역 중에서도 보안구역인 이곳에 들어가고자 또 각종 서류에 서명해야만 했다. 정사실 안에 들어서니 당장 눈에는 1만 원권 다발이 눈을 가득 채웠고, 특유의 화폐 냄새로 기분이 묘했다. 이곳의 화폐들은 신권으로 시중에 유통되다가 한국은행에 들어오는 돈들로 이곳 정사실을 거쳐 다시 시중으로 나가거나 손상권은 폐기된다. 1990년대 초반까지는 150여 명의 직원이 이곳에서 손수 손으로 했다는 정사업무를 이제는 3대의 자동정사기가 1일 40억 원가량의 화폐를 빠르게 처리하고 있다. 직접 정사기 앞에 서서 정사기가 뱉어내는 1만 원권 묶음을 500만 원 단위로 포장, 다시 시중에 나갈 수 있게 가공하는 작업을 했다. 2억 원은 족히 넘을 것 같은 1만 원권 묶음이 작업대 위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지만, 사방에서 나를 지켜보는 CCTV를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했다. 비교적 단순한 일이라 쉬울 줄 알았지만, 기계와 아직 친해지지 않아서인지 조금만 가공이 비뚤어지면 김여진 화폐관리팀장의 재작업 불호령이 떨어졌다. 그렇게 1억 원 단위로 돈 포장작업을 마친 후 이번에는 기계가 아닌 손으로 하는 수정사 작업장으로 향했다. 멀쩡한 돈은 기계가 하지만 테이프나 종이로 덧붙인 돈, 물에 젖거나 불에 그슬려 손상된 돈 등은 폐기해야 하기 때문에 앉아서 수량을 세 폐기 여부를 결정한다. 평소에 돈을 안 세본 것은 아니지만 손상된 돈뭉치라 일반 지폐와는 부피가 다소 차이가 났다. 맨손으로 촉감을 느끼면서 위조지폐도 걸러내야 하고, 수량도 정확히 세야 하다 보니 숫자를 중간에 잊어버리는 일이 다반사, 다른 직원에게 혼나는 일은 이제는 친근하기까지 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많이 봤던 돈뭉치를 손가락 사이에 끼고 하나하나 넘기는 일은 왜 오늘따라 이렇게 어색하고 손에 잘 안 익는지 마음만 조급했다. 기나긴 작업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중소기업 자금 지원 업무를 담당하는 곳이다. 일반적으로 기업 자금 지원은 시중 은행이나 신용보증기금 등이 하고 있지만, 한국은행의 중소기업 자금 지원은 그야말로 한국은행다웠다. 시중은행에 5천592억 원(7월 기준)이라는 돈을 1%의 저리로 지원하면, 각 은행이 이 자금을 각 중소기업에 일반 기업대출보다 낮은 3~4% 금리로 대출하는 방식이다. 인천지역의 알짜배기 중소기업들이 저리로 자금을 활용할 수 있는 좋은 제도지만, 아직 인지도가 높지 않아 7~8%의 높은 금리로 자금을 쓰는 중소기업이 많은 실정이다. 현재 500여 업체가 인천본부를 통해 자금지원을 받고 있으며, 신규 및 만기 연장 등으로 한 달에 1천200건을 처리하고 있다. 이미 강배원 과장 자리 위에는 사업자 등록증, 여신계좌 내역서, 벤처기업 확인서 등 각 기업의 대출 관련 서류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이들 기업에 이뤄진 대출이 문제는 없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각 서류의 허위 여부를 확인하고 인터넷으로 현재 정상 영업 여부를 확인했다. 강 과장을 도와 서류 심사 업무를 일단락하고 나니 어느덧 몸은 천근만근 무거웠다. 신의 직장이라기에 엘리트 이미지를 상상하고 왔지만 정작 현실은 딴 판이었다. 출입증을 반납하고 한국은행 정문을 나오는데 눈은 침침하고 손목은 뻐근하고 어깨는 결렸다. 고된 하루였지만 이번 체험으로 지난날의 잘못이 조금이나마 속죄됐길 바라며, 역시 돈을 잘 모으는 것보다 잘 쓰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용준기자 yjunsay@kyeonggi.com 사진=장용준기자 jyjun68@kyeonggi.com

[1일 현장체험]원유철 국회의원 보좌진

중국 한나라를 세운 유방은 위대한 인물이었지만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지근거리에 장량과 소하 등의 보좌진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 마땅한 거점 없이 광야를 떠돌던 유비를 촉한의 황제로 만든 주인공도 유비의 보좌관이자 비서실장 역할을 한 제갈량이다. 이처럼 보좌진은 정치인이 제 역할을 하도록 견마지로(犬馬之勞)를 한다. 국회에 출입한지 얼마 안되는 기자로서 의원실의 하루는 어떨까에 대한 호기심은 언제나 풀고 싶은 과제였다. 국회 의원회관 내에 있는 각 의원실은 보좌관, 비서관, 행정비서, 수행비서 등으로 구성돼 있으며, 보좌진은 각자 맡은 임무를 수행하고 결과물이 유기적 관계를 맺도록 협동한다는 것이 기자가 아는 전부였다. 평소의 궁금증을 풀고자 새누리당 원유철 의원(평택갑)실에 일일 체험을 요청했다. 생각만큼 만만치 않을 텐데 괜찮겠어요?라는 물음에 자신 있습니다라고 답하자 몸으로 하는 일도 많으니까 와보세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걱정이 앞섰지만 닥치면 어떻게든 해낼 수 있을 거란 막연한 자신감으로 도전에 나섰다. ■ 하루의 첫단추, 의원 일정 확인과 오전 현안 회의 7월26일 오전 8시40분, 원유철 의원실에 도착하자 권성철 보좌관(52)이 빡세게(?) 시킬 테니 각오하세요라며 엄포를 놨다. 조병수 비서(34)는 이날 원 의원의 하루 일정에 대해 설명했다. 반드시 참석해야 할 행사는 빨간색으로 표기하고 중요도에 따라 굵은 글씨나 별 등으로 표시해둡니다 원 의원의 7월 일정표는 이미 깨알 같은 글씨로 가득 찬 상태. 얼핏 봐도 빡빡한 일정이었다. 의원님은 하루에 1회 이상은 지역구 행사에 참석하세요. 제가 수행하는데 이제는 눈빛만 봐도 무엇을 원하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라는 말에 의원과 보좌진은 혼연일체가 돼야 함을 알 수 있었다. 보좌진들은 오전 9시에 매일 회의를 한다. 회의에서는 의원이 중점적으로 다루는 현안에 대해 논의한다. 원 의원은 최근 DMZ 세계평화공원 경기도 유치를 위한 공청회를 개최하고 박근혜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하는 위원회 구성을 추진하는 등 남북문제에 관심이 많다. 또 9월에 열리는 정기국회를 앞두고 외교통일위 현안에 관한 국정감사를 준비하고 있어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이때 보좌진들은 현안 중 각자가 맡은 업무의 진행상황을 공유하고 조율한다. 초짜(?) 보좌진인 기자는 나름대로 진지하게 메모하며 회의에 참석했다. 회의를 통해 모든 일정의 선봉에 보좌진들이 있으며 이들은 마치 의원의 손과 발 같은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수 있었다. ■ 판관 포청천을 만드는 보좌진 의원실에는 각양각색의 민원 전화가 하루에도 수십 통씩 걸려 온다. 특히 당 재외국민위원장으로 있는 원 의원실에는 해외 민원도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여운모 보좌관(52)은 세계 한인회 사무실을 차려도 될 정도입니다라며 너털웃음을 보인다. 민원 해결은 보좌진들이 특별 주의를 기울이는 업무 중 하나다. 민원 해결을 중요시하는 것은 원 의원의 성격 때문이다. 이날은 민원인이 직접 국회로 찾아왔다. 평택 지역에 준비 중인 관광 사업이 고도제한에 걸려 도움을 요청하러 온 A씨. 나름대로의 억울함과 애로사항을 30여분에 걸쳐 털어놨다. 사연을 들은 보좌진이 이를 의원에 직접 전달키로 약속하자 그제야 민원인은 고맙다며 의원실을 나섰다. 기자도 민원 접수에 도전해봤다. 미군기지 인근에 거주하는 B씨는 헬기 등으로 말미암은 소음 때문에 잠을 이루기 어렵다고 했다. B씨는 미군 부대 이전을 추진해달라고 요청했다. 물론 기자가 직접 나서서 해결할 수 있는 업무는 아니었기에 민원을 메모해 분류하고 보고했다. 이런저런 민원을 듣고 있자니 어린 시절 좋아했던 TV 프로그램 판관 포청천이 생각날 정도였다. 권 보좌관은 딱한 사정들이 많아요. 보좌진들이 해결할 수 있는 일은 1차적으로 해결해 의원의 업무를 덜어주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민원에 대한 1차적인 해결 역시 보좌진들의 업무 중 하나인 것이다. ■ 법안이 발의되기까지, 기다리지 말고 발로 뛰어라 조용석 비서관(37)으로부터 법안 발의에 필요한 공동발의 서명을 받아 오라는 임무가 떨어졌다. 하나의 법안이 발의되기까지는 보좌진들의 피땀 어린 노력이 수반된다. 먼저 국회의원과 보좌진들이 현행법을 연구, 문제점들을 분석한 후 이에 대한 개선책을 마련해 법안을 만든다. 만들어진 법안이 발의되려면 10명 이상의 국회의원들이 함께 뜻(서명)을 모아야 한다. 보좌진들은 발의하고자 하는 법안을 300부 뽑아 의원회관 1층에 위치한 우편함에 넣고 동참하겠다는 피드백이 오기를 기다린다. 그러나 이 방식은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보좌진들은 발의할 법안을 우편함에 전달함과 동시에 의원실을 돌며 직접 서명을 받는다. 법안과 관련된 위원회 소속 의원실을 위주로 직접 서명을 받는 방법이 가장 빠릅니다라며 조 비서관이 요령을 일러준다. 간단한 업무였지만 의원실이 층마다 흩어져 있는 데다 의원회관에 공사가 한창이어서 길을 잃기도 했다. 또 법안 설명 과정에서 질문 공세에 봉착할 때마다 조 비서관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다. 천신만고 끝에 10명이 넘는 의원실에서 공동발의 서명을 받아 오자 모두 손뼉을 치며 환영해준다. 어때요? 국회의원실이 얼마나 변화무쌍하고 동적인 곳인지 아시겠지요? 이후 보도자료 배포, 의원 보도기사 스크랩, 주요 시사이슈 분석 등 업무를 함께 하던 중 권 보좌관이 퇴근(?)을 허락했다. 원래는 밤늦게까지 함께 해야 하는데 회사 업무도 있으실 테니 오늘은 이만 퇴근하시죠 원래 퇴근시간이 언제냐고 묻자 정해진 건 없어요. 의원님이 들어가시는 시간이 퇴근시간인 셈이죠라며 미소 짓는다. 놀랍게도 보좌진에게 정해진 퇴근이란 개념은 없었다. 의원과 보좌진은 한몸이기 때문이다. 의원의 일정이 종료돼야 비로소 하루를 정리할 수 있다. 잠시나마 직장 동료였던 보좌진들과 뜨거운 악수를 나눈 후 의원실을 나섰다. 돌아오며 의원회관은 실리콘 밸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기업이 모여 함께 경쟁하고 공존하는 실리콘 밸리처럼 의원회관에는 300개의 기업, 즉 300개의 의원실이 함께 경쟁하며 생존을 위해 공존하고 있다. 각 기업(의원실)마다 사장(의원)이 다르고, 분위기가 다르며, 주력하는 업무도 다르다. 다만, 한 가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이 300개의 기업은 모두 국민이라는 공통분모를 섬기고 있다. 의원들이 국민과 소통할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돌다리 역할을 하는 보좌진. 비록 보좌진 업무의 구우일모(九牛一毛)를 겪었지만, 자신을 낮추고 의원을 위해, 나아가 국민을 위해 일하는 그들의 모습에 뜨거운 열정을 느꼈다. 송우일기자 swi0906@kyeonggi.com

[1일 현장체험] 구두닦이

구두닦이는 머리가 좋아야 할까. 대답은 물론 예스다. 왜냐하면 사무실로부터 수십컬레의 신발을 가져와 닦은 뒤, 다시 그 자리의 주인을 찾아줘야 하기 때문이다. 수 많은 신발 중에 같거나 비슷한 신발이 있기도 해 처음 구두닦이에 도전한 기자는 도대체 누구의 신발인 지 헷갈릴 뿐이었다. 그러나 오늘 하루 기자의 구두닦이 멘토가 된 구두닦이 점방의 김모 사장님은 수십켤레의 구두를 마치 기계와 같이 구별해가며 손쉽게 구두의 주인을 찾았다. 노하우를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간단했다. 반복된 업무를 하면서 신발의 주인을 기억한다는 것. 비슷하거나 같은 신발은 헷갈리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우선 신발 사이즈로 구별할 것, 두번째로는 신발마다 사람이 어떻게 걷는지의 특성이 있어 신발 뒤축의 바깥쪽이 많이 닳거나 안쪽이 닳거나 하는 특성으로 구별한다고 한다. 구두를 닦는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을 구두닦이라 한다. 유년시절 구두닦이를 했었다는 이야기는 성공한 유명인사의 인터뷰에서 최근까지도 종종 접할 수 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무작정 서울로 상경해 남양역과 용산역 일대에서 구두닦이를 했었다는 위철환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구두닦이를 하며 중고등 검정고시를 합격하고 사법시험까지 합격한 판사 출신 변호사, 성공한 사업가 등의 이야기다. 또한 구두닦이로 살면서 힘겹게 번 돈을 차곡차곡 모아 불우한 이웃을 도와달라고 수억원을 쾌척했다는 미담도 종종 흘러 나온다. 물론 대다수 구두닦이의 이야기는 아니다. 구두닦이라는 직업은 성공한 사람의 스토리텔링에서 힘겨웠던 삶을 겪었던 과정을 상징한다는 측면에서 볼때도 그리 내세울만한 직업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하루 종일 다른 사람의 구두를 닦고 수선하는 구두닦이를 체험하면서 세상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는 불변의 진리를 온몸으로 체감했고, 적어도 자신의 직업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면 보람된 직업임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24일 오전 8시20분 수원시 송죽동의 한 버스정류장 인근에 있는 구두방에 도착하며 구두닦이로의 하루는 시작됐다. 도착하자마자, 구두방 김 사장과 함께 짜여진 스케줄에 따라 움직였다. 구두닦이로 처음 간 곳은 현대자동차 송죽동 지점. 아직은 낯설기만한 구두닦이로의 첫 행보다. 어미닭을 따라다니는 병아리마냥 김 사장 뒤를 쫄래쫄래 따라다니며 닦아야 할 신발을 받아 구두 점방까지 운반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아직은 낯설기만 하다. 이렇게 운반해 온 6켤레의 구두를 닦기 위해 구두방에 있는 자리에 앉았다. 구두의 광을 내기 위해서는 몇단계를 거친다. 첫 단계는 구두약을 묻힌 뒤 솔로 신발의 먼지를 털어내는 일. 이를 마친 뒤 본격적인 광내기 작업에 돌입했다. 구두를 닦기 위한 천을 가운데 세손가락에 씌우고, 엄지와 검지 손가락 사이에 나머지 천을 똘똘 말아 고정시키는 작업이 우선이었다. 그러나 처음인지라 천을 고정시키는 일은 사전 작업임에도 10여분 동안 씨름해야만 했다. 어렵사리 고정시킨 천에 물을 묻혔다. 물광을 내기 위해서다. 구두닦는데는 물광과 불광이 있다. 빠른 작업이 가능한 불광은 작업상 숙련도가 따르고, 물광은 여러번 닦아야 해 조금 더 정성이 필요한 차이가 있다. 물을 묻히고 구두약을 바른 뒤 우선적으로 광을 내기 위한 초광작업에 들어갔다. 6켤레의 신발을 닦는 동안 천을 가는 것은 기본이었다. 처음보다는 제법 익숙해졌다. 곧이어 마지막 작업인 막광 작업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게 뜻대로 되지 않는다. 당연히 번쩍번쩍 광이 나야하는데, 영 미덥지 않다. 문득 1998년 여름, 28살의 나이에 늦깎이 이등병 생활을 시작했던 군대 생각이 났다. 군대에서 점호를 할 때 중요한 점검사항의 하나는 전투화 상태이다. 이를 위해 군대에서는 저녁식사 후 10분 남짓한 시간동안 전투화를 닦는다. 2년2개월동안 매일하는 일이었지만 당시에도 같은 부대의 중대원과 비교해 볼 때 전투화 닦는 솜씨가 낫다고 볼 수 없었다. 첫 휴가인 100일 휴가 때는 선임 병장이 공을 들여 닦아준 전투화를, 말년 휴가에는 광을 잘 내는 후임병이 닦아준 전투화를 신고 나갔던 기억이 난다. 내가 선임병이나 후임병의 휴가 때 전투화 광을 내줬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아! 이것도 소질이 있는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생각과 함께 나도 멋지게 광을 내야겠다는 오기가 생겼다. 다시 김 사장으로부터 코치를 받으며 한방향으로 손을 돌리며 광내기 작업에 몰두했다. 그러나 냉정하게 평가할 때 역시 낙제점이다. 그렇게 절반의 성공밖에 거두지 못한 구두는 김 사장의 손길을 거쳤다. 구두 한쪽당 10~15초 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김사장의 손을 거친 구두는 번짝거렸다. 물광의 완성이었다. 잠시의 좌절을 뒤로한 채, 오전 9시께 또다시 인근 가스안전공사와 쌍용자동차가 있는 건물에 구두를 가지러 갔다. 이번에는 조금 더 많았다. 10여켤레의 구두를 받아 챙겼다. 구두방까지의 거리는 수백m에 불과하지만, 8켤레의 구두를 한 손에 드니 꽤나 무겁다. 팔을 바꿔가며 구두방에 도착한 뒤 두번째로 구두 닦는 일에 도전했다. 이번에는 기필코 물광의 완성을 보고 말리라 첫번째보다는 조금 더 익숙해졌다. 중간에 생각보다 잘하네요라는 김 사장의 칭찬도 나를 으쓱하게 했다. 그러나 역시 만족할만큼의 물광내기에는 실패했고, 결국 김사장의 손을 잠시 거쳐야 했다. 이후 잠시 휴식시간이다. 특히 이날 오전의 찌뿌둥한 날씨로 인해 손님은 뜸하다. 비가 오거나 흐리면 자동차 세차를 피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구두를 닦는 손님도 날씨에 따라 민감하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남은 오전동안 라디오를 벗삼다보니 어느덧 점심 시간이다. 식사 후에는 구두 굽을 교체하러 오는 여성 손님이 5명 가량 있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기다리는 손님의 구두굽을 기자가 교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김 사장이 어떻게 작업을 하는 지 지켜 볼 따름이었다. 이윽고 40대 여성이 구두를 맡기고 갔다. 드디어 나설 시간이다. 수차례 펜치를 사용해 하이힐 끝에 붙은 굽을 조심스레 띄었다. 쉽지 않았지만 성공했다. 이윽고 김 사장이 건네 준 굽을 망치로 4차례 내려쳐 구두굽 갈기를 완성했다. 약간의 자신감이 생겼지만, 이후 구두굽을 교체하기 위해 구두를 맡긴 손님은 없어 내 차지는 없었다. 어느 덧 오후 3시. 가장 많은 고정 월정 고객이 있는 경기일보사로 향했다. 매일 보는 반가운 얼굴들이었지만, 오늘 기자는 구두닦이로의 방문이다. 10켤레를 넘는 구두를 수거한 뒤, 다시 자리에 앉았다. 모두 내가 아는 직장동료의 구두를 닦는 순간이다. 오전의 경험도 있고 해서, 조금은 더 잘 닦고 싶은 마음이다. 정성스레 순서에 따라 솔질을 하고 천을 고정시킨 뒤 초광 작업을 마치고 막광 작업에 돌입했다. 최소한 세켤레는 완성시켜야지라는 작은 목표와 함께. 오전보다는 확실히 업그레이드 됐다. 그러나 마지막 김 사장의 손길은 또다시 빌릴 수 밖에 없었다. 닦은 신발을 다시 제자리에 갖다 놔야했지만, 누구의 신발인 지는 여전히 헷갈렸다. 어렵사리 신발을 갖다놨지만 신문사로 복귀하는 몇몇 기자의 신발을 다시금 받아 또다시 닦고, 다시 제자리에 가져다 놨다. 오늘 하루 일과의 가장 큰 일은 이렇게 마무리됐다. 이후 오후 7시30분까지 구두방을 지키며 2차례 구두굽 갈기와 함께 일과는 끝이 났다. 하루를 꼬박 함께 보낸 김 사장의 수입은 결코 많지 않았다. 아니 작았다. 여름에 장맛비가 올때는 하루를 공치고, 오늘 오전 같이 날이 찌뿌둥할 때도 손님이 많지 않다. 그러나 가을이 오면 손님이 더 많이 는다며 내일은 더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김 사장의 모습에서 잔잔한 감동이 느껴졌다. 어떤 일이든지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김 사장의 모습에 직업엔 귀천이 없다라는 말이 조용히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오늘 밤 퇴근 후엔 만삭의 몸으로 회사에 나가는 아내의 구두를 닦아줘야겠다. 내가 사랑하는 만큼 번쩍번쩍 광이 나도록. 이명관기자 mklee@kyeonggi.com

[1일 현장체험]한국민속촌 ‘전설의 고향’ 귀신役

임진왜란으로 온 나라가 어지럽던 조선 중기, 경상남도의 보리수라는 작은 마을 뒷편에 최참판댁의 식솔들이 이사를 왔다. 외동아들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사실을 숨기고 마을로 들어온 최 참판은 마을에 살고 있던 윤씨 부인에게 외동딸과의 혼인을 제안했다. 어마어마한 재산을 앞세워 혼인을 성사시켰지만 병약한 아들은 결혼을 3일 앞두고 세상을 떠난다. 하지만 최 참판은 윤씨의 딸과 죽은 자신의 아들을 강제로 혼인시키려는 계획을 강행했다. 죽은 아들과 윤씨 딸을 한 방에 가두고 첫날밤을 치르게 한 뒤, 윤씨의 딸을 아들의 저승길의 반려자로 만든 것이다. 외동딸이 산 채로 귀신과 혼인하고,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된 윤씨 부인은 복수를 시도하지만 실패하고, 좌절 속에 자살을 하기에 이른다. 이후 마을에는 사람들이 미쳐가고, 흉년이 들고 역병이 드는 등 온갖 기괴하고 흉흉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최 대감은 이 일들이 윤씨 모녀의 저주라 생각하고 한양에서 유명한 무당을 불러 굿을 했지만, 무당은 서낭당에 목이 매달린 채 죽어 있고, 최참판은 결국 사람의 형상을 한 망령이 되어 구천을 떠돌게 됐다. 귀혼방(鬼婚房)의 원혼 이야기가 재연되고 있는 용인 한국민속촌 전설의 고향에서 원혼 역할을 담당하며 공포와 쾌감을 동시에 느낀 야릇한 체험기, 이제 시작한다. 유난히도 한이 많은 민족이라서인지 예부터 전해내려오는 우리 민담에는 오싹하고 소름끼치는 공포물이 많다. 덕분에 장화홍련, 아랑 등 우리나라 귀신들은 영화와 드라마를 종횡무진하며 여름철마다 우리를 찾아오고 있다. 하지만 기자는 그런 공포물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웬만한 일에는 무서움을 느끼지 않는 강단있는 성격(?)이라고 자부하지만 유독 귀신과 벌레는 예외이기 때문이다. 특히 귀신과는 대화도 안 통할 것 같고, 싸울 수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어린시절부터 홍콩할매귀신이나 빨간마스크 같은 귀신스토리가 유행할 때마다 밖에 나다니기조차 무서워 할 정도였다. 그런데 6개월만에 일일체험 순서가 돌아온 어느 날, 뱀 사육 보다 화끈한 아이템을 찾던 기자는 이상하게도 공포체험관의 귀신역할을 떠올리곤 사뭇 용감하게(!) 용인 한국민속촌에서 열리고 있는 귀신전과 전설의 고향에서 귀신 역할을 자처했다. 먹구름이 몰려다니는 흐릿한 날씨, 을씨년스럽다는 말이 꼭 알맞은 날이었다. 수십년은 족히 돼 보이는 커다란 나무에 이는 바람은 뭔가 스산한 느낌을 풍겼다. 음산한 분위기의 용인 한국민속촌의 귀신전과 전설의 고향 앞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반겨준 것은 붉은색 명부를 펄럭이고 있는 저승사자. 동행한 사진기자 역시 입구에서 머뭇거리며 할 수 있겠어요?라고 재차 물었다. 시설관리팀 황돈군 대리(35)를 만나 우선 시설을 둘러보며 내가 할 역할을 듣기로 했다. 외부에 있는 저승사자와 무덤을 지키는 효자귀, 도깨비 등을 제외하고도 달걀귀신, 구미호, 물귀신, 측간귀신, 처녀귀신, 몽달귀신, 미명귀, 동자귀, 걸귀, 역귀, 조왕신 등 12종류의 귀신이 있었다. 작은 손전등을 비추고 미리 이쯤에서 뭐가 나온다는 안내를 받는데도 온갖 귀신이 튀어나올 때마다 빠짐 없이 놀랐다. 영화 박쥐와 분신사바 등의 세트를 제작했던 예술팀의 작품이라 특수효과와 비주얼은 실제처럼 느껴졌고, 체면이고 뭐고 나부터 살아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그런 와중에 황 대리는 관람객을 놀래키는 포인트를 짚어줬다. 없는 듯 숨어있다가 갑자기 나타나기, 갑자기 발을 굴러 놀래키기, 지나가는 옆 문을 두드려 긴장시키기 등 귀신 인형들이 아닌 살아있는 내가 해야 하는 역할은 창의적이어야 했다. 평소엔 6~7명의 직원들이 곳곳에 숨어 이런 일을 담당한다고 한다. 귀신전을 한바퀴 돌고 왔을 뿐인데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됐다. 여름에 공포영화를 보면 시원함을 느끼는 줄 알았는데 반대로 너무나 더웠다. 황 대리는 공포를 느끼면 실제로 체온이 올라간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등골이 긴장을 해서 좀 서늘하게 느낄 뿐이죠라고 설명했다. 그는 원래 더 무섭게 하려고 했는데 영상물 등급을 12세 관람가 기준으로 낮추려고 그나마 조명도 밝히고 수위도 낮춘건데 이걸 무섭다고 하면 어떡해요라고 기자가 일을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런 눈초리를 보냈다. 그래도 할 건 해야 한다.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기 위해 전설의 고향으로 향했다. 마침 출구를 통해 나오는 중학생 정도 돼 보이는 관람객 한명이 눈물을 흘리며 나왔다. 거의 통곡 수준이었다. 가뜩이나 무서운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전설의 고향은 앞서 설명한 귀혼방의 스토리를 따라 마을의 흉흉한 일들을 꾸며놓고 관람객들이 4인용 트레인을 타고 지나가면서 각종 특수효과와 공포를 경험하도록 해 놓은 곳이다. 그런데 일을 하러 가는게 곤욕이었다. 트레인을 타고 구불구불 돌아갔던 길을 걸어서 가니 귀신 인형들이 더욱 실감나게 다가왔다. 식칼을 들고 있는 할머니 귀신은 진짜로 내 손목을 자를 듯이 튀어나왔고 목을 매단 인형과 폐가들은 숨통을 조여오는 듯 했다. 덜덜 손이 떨리는 와중에도 안전 교육을 받고 레일을 점검하며 가장 무섭다는 서낭당에 다다랐다. 하얀 소복을 입고 한켠에 숨어 있는 동안 황 대리가 먼저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를 알려줬다. 날아오는 구미호를 통과하고 한숨 돌린 관람객 뒤로 몰래 다가가 스르르 목덜미를 잡으니 너나 없이 꺄아악하고 비명을 질렀다. 그는 같은 방식으로 계속 하면 놀라지 않으니 다양한 방법을 창안해 놀래켜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리고는 나와 구미호만 남았다. 칠흑같은 어둠 속에 눈빛을 감추고 있는 구미호가 어슴프레 보이는 가운데 풀벌레 소리가 리얼하게 들리고, 가끔 여우 우는 소리까지너무 무서웠다. 나무 기둥에 기대고 있었지만, 내가 기대고 있는게 나무인지 귀신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관람객을 태운 트레인이 나타났고 구미호를 보고 놀란 관람차 뒤로 다가가 스르르 목을 만졌다. 성공이다. 쾌감과 고통이 동시에 느껴졌다. 귀신인 줄 알고 놀라 비명을 내지른 여자가 뒤를 돌아 소복을 입은 나를 보고는 주먹을 휘둘렀기 때문이다. 이곳 직원들은 욕을 하는 사람, 때리는 사람, 멱살을 잡는 사람 등 다양한 반응에 이골이 났다고 한다. 쉬는 시간에 고충을 토로하자 이전에 처녀귀신 역할을 했던 직원은 놀란 관람객에게 맞아 진짜 코피까지 났었다는 에피소드도 들려줬다. 오후엔 동자귀와 함께 했다. 동자귀가 있는 방에 숨어 있다가 관람객이 지나가면 센서를 통해 미닫이 문이 열리고 동자귀가 나와 놀래키는데 내가 소복을 차려입고 한번 더 놀래키는 역할이었다. 숙련된 조교의 시범 후 첫 투입에서는 실패를 했다. 나타나야 할 타이밍을 제대로 잡지 못해 관람객이 나를 발견했는데도 놀라긴 커녕 이상한 여자 보듯 바라보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을 놀래키려다 실패하는 것은 쥐구멍을 파고 들어가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운 일이었다. 심기일전해 타이밍을 잡고 다른 관람객을 놀래키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떼로 몰려든 여고생들은 나를 발견하고 놀란 뒤 겁을 상실했다. 여기 사람 숨어 있어라며 온 친구를 불러모아 수차례나 센서를 작동시키며 막말과 짖궂은 장난도 서슴지 않았다. 다시 입구로 자리를 옮겼다. 2관으로 입장하는 인기척이 느껴지면 빠르게 다가가 놀라게 하는데 재밌는 점은 외국인과 한국인의 반응이 판이하게 다르다는 점이었다. 한국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거나 넘어지거나 무서워하는 반면 외국인들은 웃거나 오히려 귀신인 나를 놀래키는 것이었다. 처녀귀신을 잘 몰라서 그런건지 공포에 대응하는 방식이 다른 건지 묻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다. 나는 귀신이니까. 구내식당의 점심시간도 인상적이었다. 나는 소복을 입고 밥을 먹는데, 다른 사람은 저승사자 복장, 어떤 사람은 마당쇠복장, 한복을 입은 사람 등 지금이 21세기인지, 여기가 이승인지 모를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렇게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이 귀신, 저 저귀신으로 다양한 역할을 해내며 몇시간이 흐르자 황 대리는 기자에게 얼굴이 창백해지고 있으니 그만하는게 좋겠다고 권유했다. 이제 충분히 체험했다고 말할 타이밍을 잡지 못하고 안절부절 못하던 중 정말이지 반가운 소리였다. 놀란 관람객이 비명을 지를 때의 쾌캄은 좋았지만 소복은 너무 덥고 귀신 인형과 함께 있는 것은 너무 무서웠다. 창의적인 귀신이 되기엔 내가 너무 담력이 부족했다는 점을 인정해야 했다. 믿거나 말거나 성격의 후기 하나 덧붙이고 싶다. 귀신역할 체험 이후 이상하리만치 기력이 쇠해져 마감도 미뤄둔 채 집에 돌아간 기자는 정신없이 잠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윗층에서 누군가 뛰어다는 것 같은 소리에 새벽에 두번이나 잠에서 깼다. 간간이 말소리도 들렸다. 그게 이상하다는 것은 다음날 아침 출근 준비를 하다가 눈치챘다. 윗집은 지난달부터 비어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새벽의 발소리와 웃음소리는 누구? 이지현기자 jhlee@kyeonggi.com

[1일 현장체험]폐지 줍기

장마가 시작됐다. 며칠간 내린 비는 고스란히 삶의 무게가 되어 노인들의 낡은 리어카에 내려앉는다. 만취한 듯 비틀대는 리어카를 힘겹게 이끌고 나타난 오유근 할아버지(85)의 뺨에는 땀인지 빗물인지 모를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10일 오전 9시 수원 송죽동의 한 골목 모퉁이에서 기자는 오 씨와 만남을 가졌다. 그에게서 이날 하루 동안만 리어카를 양도 받기로 했기 때문이다. 폐지 줍기를 일일체험 기획 소재로 택한 점도 있었지만 몸 상태가 조지 않은 오 씨를 대신하고자 하는 목적도 있었다. 왜소한 체격의 오 씨는 군 복무시절 트럭에 치여 젊은 시절부터 허리가 좋지 않다. 게다가 최근에는 평소 앓아오던 관절염이 악화돼 약을 먹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통증도 심해졌다. 이 때문에 지난 10년간 유일한 생계수단인 폐지 수거를 최근 못하고 있다. 간혹 이웃주민이 오 씨의 리어카에 폐지를 실어주거나 인근 고물상에 대신 넘겨주기도 하지만 돈벌이는 되지 않는다. 폐지 값이 많이 떨어져 사나흘에 한번 겨우 수레를 가득 채워도 수익이 1만원도 채 되지 않기 때문이다. 오 씨에게 리어카를 넘겨받고 시험 삼아 골목 시작점에서 끝점까지 100m가량의 거리를 끌어봤다. 개인적으로는 군대에서 작업할 때 끌어본 이후로 정확히 5년 만이다. 적재된 폐지가 많지 않아 쉽게 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빗물을 가득 머금은 탓이다. 그는 해마다 장마철이 되면 다른 시기보다 폐지 줍는 데 소요되는 시간과 강도는 평소보다 곱절이나 힘들지만 돈은 그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며 우선 비가 오면 사람들이 폐지를 바깥에 잘 내놓지도 않는데다 비에 찢겨 상품 가치가 떨어져 제 값 받기 힘들다고 말했다. 처음 한, 두시간은 오 씨가 기자의 폐지 줍기 체험에 동행했다. 몸이 좋지 않은 그를 대신하는 일이라 죽이든 밥이든 혼자 해결하고 해쳐나가야 하는 일이었지만 생각보다 리어카 끄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게 오 씨가 말하는 동행의 이유였다. 일종의 운전 연수(?)인 셈이다. 결과적으로 그 선택은 탁월했다. 60kg가 넘는 리어카를 끌고 가는 일도 쉽지 않았지만 진행 방향을 잡고 리어카를 움직이는 일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적재된 폐지 무게도 만만치 않아 힘도 적지 않게 들었다. 일단은 리어카 운전대 안에 들어가 끌거나 제동을 거는 등의 힘이 들어가는 일은 기자가 하고 운전과 방향을 트는 일은 오 씨가 맡았다. 그나마 평지는 이동하는 데 큰 무리가 없었지만 오 씨의 구역인 수원 송죽동과 파장동 골목 일원은 길이 좁고 경사가 많아 운전이 쉽지 않았다. 이 때문에 언덕길을 넘지 못해 한, 두 번 위험천만한 뒷걸음질을 하거나 방향을 잘못 틀어 주차된 차량에 스크래치를 낼 뻔 한 위기도 여러번 넘겼다. 오 씨는 가끔 뒤에서 차량이 소리 없이 다가오거나 모퉁이를 돌 때 갑자기 나타나는 경우가 있어 자칫 리어카 모서리 부분으로 차에 기스를 낼 경우가 있다며 보통은 그냥 넘기지만 끝까지 받아 가는 경우고 있어 조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렇게 한 시간을 돌았지만 간간히 비가 내린 탓인지 거리에는 폐지가 거의 없었다. 음식점이나 슈퍼를 지날 때 오 씨를 알아보고 폐지를 건네는 분들을 제외하고는 가뭄이었다. 오전 11시를 지날 무렵 빗방울이 굵어졌다. 이를 예상한 기자는 미리 준비한 우의 두 벌을 오 씨와 나눠 입었다. 마지막 단추까지 꼼꼼히 채우려는데 맞은편 대형마트의 주차장 부근으로 차분히 접힌 채로 쌓여 있는 수십 개의 종이박스가 보였다. 그곳을 향해 리어카를 돌리려는 데 오 씨가 손사레를 쳤다. 주인이 있는 물건이라는 뜻이다. 최근에는 중ㆍ소규모의 전문 폐지 수거 업체가 늘어나면서 대량의 폐지가 배출되는 대형마트나 아파트 단지는 계약한 업체 이외 오 씨와 같은 개인은 절대 출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배출량에 따라 1천만원에서 3천만원까지 예치금을 걸고 계약 당사자에게만 폐지 등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전에는 폐지 줍는 노인들이 대형마트 앞을 지나다가 간혹 쌓여 있는 폐지를 주어가도 별말이 없었지만 최근에는 경고를 하거나 심지어 고소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고 오씨는 말했다. 한 마디로 빛 좋은 개살구라는 의미다. 수북하게 쌓여있는 종이박스를 뒤로 텁텁한 감추고 송죽동 골목길에 들어서자 약속한 두 시간이 지났다. 오 씨는 기자가 걱정되는 지 리어카를 가볍게 해주겠다며 거래하는 고물상으로 향했다. 들어서자 서너명의 노인들이 각각의 리어카에 수집한 물건을 가득 채우고는 전자저울 위에 올랐다. 전방에 설치돼 있는 무게에 킬로그램(kg)이 표시됐다. 앞선 노인 분들의 무게가 차례로 표시되고 우리 차례가 왔다. 무게는 200kg. 생각보다 많이 나왔다고 안심하는 순간 60kg이 빠졌다. 리어카의 무게다. 그리고 20kg가 추가적으로 빠졌다. 빗물의 무게다. 그래서 순순하게 빠진 무게는 120kg으로 낙점됐다. 이중 폐지는 100kg정도 됐다. 1kg당 100원으로 1만원이 나왔다. 나머지 20kg는 고철로 1kg당 200원이다. 그렇게 최종 받은 금액은 1만4천원. 오 씨의 리어카에 나흘 동안 모인 고물의 가치다. 하루 벌이가 4천원이 채 안 되는 셈. 이곳 고물상의 주인인 김영환 사장(57)은 2년 전 시작된 펄프시장 불황으로 200300원하던 폐지 가격이 올해 100원으로 반에 반 토막이 났다며 그나마 대부분 단골분이라 다른 손님이나 업체보다 조금 더 챙겨주고 있다고 말했다. 파지를 비우자 리어카가 제법 가뿐해졌다. 리어카 뒤에 오 씨를 태우고 집으로 모셔드렸다. 오 씨는 무리하지 않아도 사방팔방 주의하며 차량을 조심하라고 재차 당부하고는 집으로 들어갔다. 오 씨의 당부를 마음에 새기며 이번에는 혼자 골목길에 들어섰다. 함께 있을 때와는 달리 혼자서 리어카를 끌고 만석공원을 지나려는 데 조금 창피함도 들었다. 옆을 스쳐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가슴에 꽂혔다. 특히 신호등을 건널 때 끌끌 대며 혀를 차는 어르신도 있었다. 한편으론 억울한 마음도 있었지만 폐지 줍는 일을 바라보는 사회적 편견이라는 생각에 씁쓸함도 동시에 느꼈다. 아무 소득 없이 만석공원 한 바퀴를 돌자 모 웨딩홀 부근 골목으로 폐기물 트럭 한 대가 진입하는 게 보였다. 뭔가 있겠다 싶은 마음에 자석에 끌리 듯 골목으로 빨려 들어갔다. 철거 현장이었다. 원룸을 지으려는 지 기존에 있던 단독주택을 부시고 안에 있던 고철과 의류 등을 밖으로 내던지고 있었다. 대박이라는 생각에 서둘러 리어카를 대고 보자 벌써 두, 세명의 폐지 수거 할머니 두 분이 대기하고 계셨다. 오 씨를 대신 해 폐지를 수거하려고 온 것이기는 하지만 내놓고 할머니의 일감을 뺏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조금 고생하기로 하고 배출되는 고물을 할머니의 리어카에 함께 실어 드렸다. 그러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함께 했다. 경기일보 근처 단칸방에 지체장애 1급 딸과 함께 살고 계신다는 김정선 할머니(71)는 한 눈에 봐도 삶에 지쳐 보였다. 앙상하게 마른 손가락 끝으로 손톱 밑에 낀 시커먼 기름때가 보였다. 폐지를 줍고 버는 수익이 변변치 않아 밤에는 공장에서 허드렛일을 하면서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다는 김 씨는 성실함을 무기로 하는 이 바닥에서도 부지런하기로 정평이 난 분이셨다. 그렇게 악착같이 돈을 벌어도 사는 건 더 힘들어졌다며 서둘러 말을 끊고는 제 갈 길을 가셨다. 그렇게 두, 세 시간을 더 돌아 리어카에는 3분의 1가량의 폐지가 찼다. 그나마 기자가 몸담고 있는 경기일보 창고에 쌓여있던 폐지와 인근 아웃도어 매장과 전자제품 매장을 지나며 받은 종이박스들이었다. 값이 나가는 고철이나 의류는 구하지 못했다. 죄송함을 가지고 오 씨의 집으로 향했다. 오 씨는 편안한 미소로 많이 채웠다며 머쓱해하는 기자의 마음을 달랬다. 쉽지만은 않았던 폐지 수거를 하면서 수많은 장면들이 스쳐갔다. 그것은 단순히 빈곤으로 대체될 수 없는 근본적인 문제들이었다. 오후 내내 수거한 폐지를 팔아 손에 쉰 3천원의 돈을 오 씨에게 쥐어 드렸을 때 마음 한구석에 차오른 먹먹함과 다르지 않을 테다. 그제서야 아침에 오 씨의 뺨에 흐르던 물방울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박광수기자 ksthink@kyeonggi.com

[1일 현장체험]수원 항미정 보존보수 작업

문화재는 지키는 것이지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다. 경기문화재연구원 보존과학실 책임연구원인 김웅신씨의 말이다. 문득 이 말을 좀 더 일찍 전 국민이 배우고 공감했다면 우리의 국보 제1호 숭례문이 방화로 소실되는 참사는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미 지나간 일이다. 상념을 접고 둘러보면 우리 주변에는 숭례문만큼 지켜야 할 문화재가 많다. 지금 묵묵히 자연재해와 인재, 혹은 우리들의 무관심에 스러져가는 문화재를 지키는 이들은 누구인가. 호기심에 그들을 찾아갔다. 비록 단 하루였지만 그들이 선사한 사명감과 보람은 긴 울림을 남겼다. 지난달 25일 오전 9시 수원시 향토유적 제1호인 수원의 항미정(杭眉亭). 본격적인 장마에 앞서 항미정 보존 및 보수에 나선 경기도 문화재 돌봄이들은 이미 일할 채비를 마치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세계문화유산 화성(華城)의 서쪽에 있는 인공 호수 서호(西湖), 그 남동쪽에 자리 잡은 정자 항미정은 1831년 화성 유수인 박기수가 세웠다. 이 정자에선 서호에 비치는 아름다운 노을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이 중국 항주의 미목보다 아름답다는 뜻에서 항미정이라 이름 붙었다. 하지만 지금 그 화려했을 과거의 모습은 온전히 남아있지 않다. 항미정 주변에는 제멋대로 자란 나무와 풀이 우거져 있고 지붕 기와 사이에는 바람에 날려 뿌리를 내린 잡풀이 볼썽사납게 자라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항미정 외벽의 한 부분과 뒷문의 경첩 하나가 떨어져 나가 있고, 마룻바닥과 돌 계단에는 수북한 먼지와 녹ㆍ이끼 등이 제집인 양 자리를 틀고 있었다. 김웅신 문화재보존과학자와 문화재 돌봄이 6명이 초여름 뙤약볕에도 항미정으로 출동한 이유다. 김 문화재보존과학자는 오늘처럼 본격적으로 문화재 돌봄팀을 투입하기 전에 전문가들이 2주에 한 번씩 관리 대상인 문화재를 점검하고 보수할 부분을 체크한다고 설명했다. 문화재보존과학자는 X-선 촬영이나 현미경 조사처럼 문화재에 대한 상태조사를 벌인 후 보존처리 방법을 수립한다. 이물질이나 손상 원인물질을 약품과 장비 등을 이용해 제거하고, 복원 및 보존 과정을 기록하는 것도 그들이 하는 일이다. 이와 관련 김 문화재보존과학자는 화학약품과 기계를 다루며 몸을 써야 하는 직업으로 역사적 지식도 갖춰야 한다며 현장 경험이 가장 중요한데 지금과 달리 과거에는 정말 맞으며 배웠다고 술회했다. 그의 말을 들으며 새로 알게 된 직업에 대한 경이로움과 당장 오늘 해내야만 하는 문화재 보존보수 작업에 대한 사명감을 새겼다. 이날 함께한 문화재 돌봄이 6명은 이 같은 감정을 매순간 모든 작업현장에서 느낀다고 했다. 서문정씨(69)는 가치 있는 석불이나 석탑 등의 문화재가 내 손을 거쳐 깨끗해지고 온전해지는 것을 보면 상쾌해지고 스스로 자랑스럽다고 웃었다. 서씨와 같은 문화재 돌봄이는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이 도내 문화재의 보존과 훼손방지를 위해 진행하는 경기도 문화재 돌봄사업 현장에 투입되는 인력을 지칭한다. 전문가 처방을 실행하는 사람들이다. 앞서 문화재단은 경력과 경험 등을 따져 1년 계약직으로 현재 22명을 공개 채용했다. 경기문화재연구원의 전문가들과 이번에 채용된 문화재 돌봄이는 도내 137곳의 주요 문화재 중 매달 집중관리 대상 유적을 정해 정비사업을 벌인다. 문화재 돌봄이들은 현장에서 문화재보존과학자를 통해 각 문화재에 대한 교육과 직무교육, 안전교육 등을 받은 후 보수 작업에 돌입한다. 이날 항미정에 대한 본격 작업에 앞서 진행된 교육 시간에 가장 먼저 기자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아버지와 아들로 보이는 사내들이 같은 작업복을 입는 모습이었다. 일하는 짬짬이 물어보니 26세부터 69세까지 그 나이 차가 제법 났다. 노인과 청년층에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공개 채용 때부터 연령을 따져 채용했어요. 문화재 보존 보수 작업은 사명감이 필수조건이어서 나이를 떠나 함께 할 수 있다. 김 책임연구원의 설명에 그제야 이 묘한 인적 구성이 이해가 된다. 문화재 돌봄이 팀은 연령차 때문인지 서로 배려하며 마치 한 가족 같은 모습이었다. 30대 주부인 기자 또한 연방 어르신~, 총각!을 외치며 짧은 시간일지언정 그들의 가족이 되려고 노력했다. 드디어 교육과 동료 탐사(?)가 끝난 후 내게 주어진 첫 번째 일은 흙 만들기였다. 지붕, 기와 밑, 벽 등 각 위치에 따라 진흙과 생석회ㆍ마사(풍화토)ㆍ백 시멘트 등의 조합 비율을 달리해 만든 흙을 적절히 사용해야 한다. 용인대 문화재보존학과 출신의 어현준(26)씨가 복잡한 비율을 보지도 않고 척척 부었고, 나는 그것을 열심히 갰다. 그리고 훼손된 회벽체를 모두 뜯어내고 새 흙을 바르기 시작했다. 문화재라는 부담에 부드럽게 흙을 펴 바르던 나를 향해 불호령이 떨어졌다. 척!척! 발라야 해. 그래야 안떨어지고 잘 붙어 있지! 그제야 다시 힘주어 바르니 한두 번 만에 팔뚝이 나가떨어질 것 같은 고통이 느껴졌다. 이번에는 자리를 옮겨 한 문화재 돌봄이가 지붕 위 잡풀 제거를 위해 안전하게 올라갈 수 있도록 아래에서 단단히 붙잡는 역할을 했다. 시간 가는 줄 몰랐는데 어느새 태양이 내리쬐고 있었다. 이 날씨에 지붕 위에서 정면 승부하는 사람은 얼마나 더울까. 미안한 마음에 사다리를 더 단단히 잡으니, 금세 땅으로 솔질에 기와에서 떨어진 온갖 잡풀이 떨어졌다. 그런데 지붕 위에 올라간 문화재 돌봄이가 쉼 없이 일하자 아래 있던 김 문화재보존과학자가 어서 내려오라고 난리다. 배려하는 마음이야 알겠는데, 괜찮다며 일하는 사람을 부득 말리는 상황 또한 쉽게 이해되질 않았다. 이에 대해 김씨는 자기 몸이 힘들면 그만큼 문화재 훼손 위험도가 높아진다며 절대적인 문화재 안전을 강조했다. 또 워낙 화학약품이나 제초기처럼 위험한 장비를 많이 사용하고 야외에서 작업하다 보니 사람이 피로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안전의 지름길이라고 덧붙였다. 그 말에 뒷문의 경첩을 고치고, 주변 잡풀을 뜯고, 마루의 먼지를 털어내며, 지붕 위에 풀을 제거하던, 흩어진 사람들을 불러모아 다같이 얼음물 한 모금을 들이켰다. 모두 얼굴에 땀이 흐르지만 깨끗해지고 번듯해지는 항미정을 바라보며 뿌듯한 표정이다. 항미정 보수 작업은 끝을 향해 갔다. 돌에 끼어 있는 초록색 이끼를 물과 청소솔, 치과에서 사용하는 세밀한 기구 등을 활용해 제거하기 시작했다. 관광객으로 이끼 낀 문화재를 볼때면 시간의 흐름을 느끼며 운치 있다 생각했는데, 저 작은 이끼들이 돌 틈바구니로 끼어들어 균열시킨다니 그렇게 숭악한 놈일 수가 없다. 무릎 꿇고 앉아 물 뿌리고 칫솔질하고 돌 틈 이끼까지 벗겨 낸 후 물을 다시 부으니 정말 예쁘다. 벅찬 감동이 솟는다. 왜 문화재 돌봄이들이 보람을 느낀다고 한목소리를 냈는지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앞으로 경기문화재연구원은 목조문화재에 치명적인 흰개미 모니터링(IPM 조사)을 벌일 계획이라고 했다. 본래 흰개미는 지면에서 30cm 이상 못 올라가는 특성에 문화재 밑동을 갉아먹어 주저앉게 하는 위협요인인데 바람을 타고 지붕 위로 올라가 그곳을 갉아먹어 피해가 속출하고 있단다. 특히 양주와 연천에서 흰개미 피해가 나오고 점차 경기 남부로 그 영향이 내려올 것으로 전망되면서 IPM 조사에 박차를 가할 방침이다. 고된 일이었지만 그 보람에 맛들어 흰개미 소탕작전까지 끼어달라 조르고 싶어졌다. 수백 년 된 문화재를 고치고 그 생명을 유지시키는 문화재 의사 문화재보존과학자들이 흰개미는 물론 문화재에 대한 국민의 무관심까지 날려버리기를 응원해 본다. 류설아기자 rsa119@kyeonggi.com

[1일 현장체험]인천 하버파크 호텔리어

가장 화려하고 선망의 대상이 되는 직업이 뭘까 곰곰이 생각했더니 쉽게 호텔리어라는 답이 떠올랐다. 지난 2001년 배용준, 송윤아 주연의 호텔리어라는 드라마에서 집중 조명되면서 관심을 얻기 시작한 호텔리어는 최근에도 적도의 남자, 울랄라부부, 해운대의 연인들, 미스 리플리 등 다양한 드라마에서 세련되고 매력적인 직업으로 그려지고 있다. 드라마 속뿐만 아니라 현실사회에서도 호텔리어의 비중은 점차 커지고 있다. 관광산업을 육성하고 국제적인 비즈니스와 글로벌 기업 유치가 늘어나면서 호텔 수요도 덩달아 늘고 있고 전문적이고 능력 있는 호텔리어들이 설 수 있는 무대가 커지고 있다. 인천에서도 최근 3~4년 사이에 특급호텔만 4~5곳이 생겼고 송도, 영종 등 경제자유구역을 중심으로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호텔리어는 청소년들의 꿈의 직업 순위에서도 당당히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세련되고 멋진 호텔리어로 하루를 보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서둘러 인천의 대표적인 특급호텔인 하버파크 호텔에 도움을 요청했다. 하루에도 수백 명씩 관광객과 외국인이 오가는 호텔 특성상 쉽지 않은 부탁이라 생각했는데 뜻밖에 흔쾌히 기자의 방문을 환영해줬다. ▲호텔리어, 그 매력적인 이름을 갖다 21일 오전 9시, 인천항을 마주 보고 있는 하버파크 호텔의 문을 두드렸다. 호텔리어로서의 하루가 시작됐다는 기분에 들떠 상큼하게 인사를 건네면서 호텔 안으로 들어섰다. 기자를 반겨준 것은 하버파크 호텔의 최병구 총지배인(57)과 박지수 마케팅 매니저(27), 호텔을 소유하고 있는 인천도시공사의 오수진 관광사업팀 차장. 특히 최 총지배인은 엘리베이터에 오르면서도 마지막 탑승객까지 알뜰히 챙기는 모습을 보여줘 몸에 배어 있는 서비스정신을 느낄 수 있게 했다. 최 총지배인은 신참 내기 호텔리어가 넓고 넓은 호텔에서 헤매지 않도록 호텔리어의 직무와 하는 일, 하루 동안 체험할 동선 등을 세밀하게 준비하고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비록 하루짜리 호텔리어지만 특급호텔에 누가 되는 일은 없어야겠기에 호텔의 하나부터 열까지 꼼꼼히 교육을 받으며 머릿속에 담아뒀다. 사실 여행이나 출장을 다니는 동안 호텔에서 묵은 경험이 수차례 있지만, 정확히 호텔리어의 역할이 무엇인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화려한 겉모습에만 관심을 뒀지 정확히 호텔리어가 어떤 역할을 하고 무슨 일을 하는지에 대한 이해는 부족했던 것이다. 호텔은 모든 영업과 조직을 총괄하는 최고 경영자 중 한 사람인 총지배인의 지휘를 받으며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객실은 컨시어지(Concierge)와 당직지배인(Duty manager), 안내(Front Dest), 도어맨(Door man), 벨맨(Bell man) 등으로 구성돼 있다. 컨시어지는 중세 프랑스에서 귀족들을 보좌하며 뭐든 다 해주는 집사를 뜻하는 말인데 고급호텔에서는 정보와 지리에 익숙하지 못한 관광객들에게 자동차 대여부터 유명 식당 및 공연 소개, 항공권 예약, 관광지 안내, 우편물 발송 등의 폭넓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VIP 고객을 전담해 관리하는 GRO(Guest Relation Officer)와 컨시어지의 꽃으로 불리는 레클레도르(프랑스 어로 황금열쇠) 등으로 세분화된다고 한다. 이 밖에도 호텔리어는 마케팅(판촉, 홍보) 부서와 비즈니스 미팅, 웨딩 등 연회 부서와 식음조리부서, 객실청소와 세탁 등을 담당하는 부서, 빌딩관리 부서 등으로 구분된다. 호텔의 각 조직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이어져 숨 가쁘게 돌아가는지 단지 귀도 설명만 듣는 것인데도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 드라마 속 호텔리어들은 호텔에서 연애도 하면서 여유 있는 모습이었는데 현실은 역시 드라마와는 달랐다. ▲고객 만족을 넘어 고객 감동을 선물 신참 내기 호텔리어에게 처음 맡긴 임무는 객실 내부를 청소하고 침대 시트와 베개 커버 등을 깨끗이 세탁한 새것으로 바꾸는 메이드 역할이었다. 메이드 경력 3년차인 김선분 여사(60)의 뒤를 졸졸 쫓아다니면서 시트 가는 법을 배웠다. 기자와 동행해줬던 오수진 차장도 기꺼이 메이드 일을 도와줘서 든든했다. 침대 모서리까지 깔끔하게 선을 맞춰 하얀 시트를 깔고 난 뒤 베개 커버 4장을 갈아 침대 위에 가지런히 얹어놓으면 침대정리는 끝. 군대경험은 없지만, 꼭 군인이 돼서 각을 잡고 모포를 개는 기분이었다. 수월하게 끝낼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이 혹여 깨끗하게 갈아놓은 침대 시트에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힘이 드는 작업이었다. 김 여사님(호텔에서는 호칭을 여사님으로 통일하고 있었다)은 힘으로 하려고 들면 못해. 요령이야 요령이라고 설명해줬지만 신참 내기에게 요령을 기대하는 건 처음부터 무리였다. 김 여사님은 손님이 묵는 방을 치울 때는 될 수 있으면 손님의 물건은 휴지 하나, 종잇조각이라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고 알려줬다. 김 여사님이 하루에 치우는 방은 무려 17~18개. 달인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여사님 손길이 닿은 침대나 베개는 순식간에 새 것처럼 변신했다. 하버파크호텔을 찾는 투숙객은 항상 객실의 청결함을 칭찬한다고 한다. 객실청소가 끝난 뒤 정장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프런트 데스크(Front Dest)로 자리를 옮겼다. 호텔의 첫인상을 결정짓는 프런트에 서니 괜스레 실수할까 걱정이 앞섰다. 하루 동안 프런트를 거치는 투숙객이나 방문객이 무려 300~500명에 이른다고 한다. 프런트의 선임인 백승훈 지배인(35)은 객실예약부터 투숙객 민원, 문의사항, 불만사항 등이 모두 집결되는 곳이 프런트라면서 빠르고 정확하게 고객의 요구를 이해하고 가장 최고의 방법을 찾는 게 주임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에는 한 외국인 투숙객이 호텔에서 지병으로 갑자기 쓰러지는 바람에 급하게 인근 대학병원으로 옮겨 수술을 받은 일도 있었다고 한다. 다행히 호텔 측이 발 빠르게 움직인 덕에 수술은 성공했고 외국인 손님은 감사인사를 남기고 무사히 돌아갔다. ▲호텔리어의 최고 덕목은 배려 점심때가 되자 15층 뷔페로 이동했다. 인천항과 바다를 한눈에 내려다보면서 100여 가지가 넘는 최고급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호텔 투숙객뿐만 아니라 뷔페 점심을 이용하려는 손님들이 속속 자리를 잡았다. 식사 중인 손님들 테이블을 오가면서 물을 채워주고 빈 접시를 내어가는 일이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다. 타이밍의 문제일까? 치우는 게 너무 늦으면 손님들의 불만이 쌓이고 너무 일찍 치워도 안된다. 초보 호텔리어가 식당 가운데서 주춤주춤 하는 사이 선배들이 발 빠르게 테이블을 정리해갔다. 민망해진 손을 부여잡고 선배들을 유심히 보니 비결은 손님들을 찬찬히 그리고 꼼꼼히 살피는 것이었다. 선배들에게 민폐가 되고 있다는 생각에 식당 대신 연회 준비를 돕기로 했다. 저녁 만찬이 예정된 홀에서 냅킨, 포크와 나이프, 포도주잔과 물잔 등을 정해진 위치에 놓았다. 깔끔하게 정돈된 테이블을 보니 괜히 뿌듯함이 밀려왔다. 단계별로 호텔 구석구석을 다니며 호텔리어 체험을 하다 보니 세밀한 배려심을 느낄 수 있었다. 예약손님을 공항에서부터 모셔와 깨끗한 객실과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고 체크아웃하는 순간까지 불편함 없이 지내도록 서비스하는 것, 호텔은 이용객이 관광이든 비즈니스든 원하는 바를 충실히 이루고 만족하고 돌아갈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공간이었다. 얼마 전 태국 여행 때 사흘 동안 묵었던 모 호텔에서는 일행이 수건에 염색 물이 들었다는 이유로 60달러를 배상한 일이 있었다. 세탁할 수 있는 것이었는데도 호텔 측이 막무가내로 배상하라고 다그치는 하는 통에 매우 기분 상했던 일이 떠올랐다. 즐거웠던 여행까지 망치는 느낌이었다. 호텔은 단순히 잠을 자고 음식을 먹는 곳이 아니다. 여행이나 출장길에서 휴식이 되는 공간이기도 하고 결혼과 같은 특별한 순간의 무대이자 배경이 되는 공간이다. 호텔리어는 그 공간을 준비하고 꾸미고 완성하는 사람이다. 최 총지배인은 호텔리어는 긍정의 에너지와 인내의 힘을 두루 요구하는 직업이라며 호텔리어가 어떤 철학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호텔은 달라진다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kmk@kyeonggi.com

[1일 현장체험]경기신용보증재단 성남지점

경기일보 정치부 기자들에게 현장은 낮선 곳이다. 매일 도청과 도의회, 정치권, 공공기관을 주요 출입처로 활동하다 보니 현장의 생생한 기사를 마련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체험 주제를 찾기도 어려웠다. 고민 끝에 선택한 곳이 경기신용보증재단. 경기불황 속에 자금난을 겪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의 어려움과 이를 해결해주는 역할을 통해 현장을 경험할 수 있겠다 싶었다. 경기신보의 여러 지점 중 선택한 곳은 성남지점. 이민우 지점장과의 개인적 친분도 있었지만 경기신보 19개 지점 중 가장 일이 많은 곳으로 소문났기 때문이다. 김영환 경기도의원의 설명에 따르면 지난해 성남지점의 시간외근무 시간은 4천844시간에 잘했다. 직원 1인당 평균으로 치면 403시간이다. 또 지난 4월 한달간 성남지점의 1인당 처리업체수는 54.2건. 규모가 작은 지점들보다 2배 가까운 수준이었고 비슷한 규모보다도 10~20건이 많은 수치였다. 지난 18일 오전 9시. 경기신용보증재단 성남지점을 찾았다. 성남시 분당구 농협 건물에 자리잡은 지점에 들어서니 은행에서 볼 수 있었던 낯익은 번호표부터 눈에 들어왔다. 이른 시간인데도 상담 창구에는 보증을 문의하는 모습들이 눈에 띄었다. 사전에 연락을 하고 찾은 지점에서 이민우 지점장과 직원들이 반갑게 맞이해주면서 경기신보의 역할과 성남지점에 대한 현황 설명을 들은 뒤 곧바로 상담창구로 향했다. 이날 배정받은 자리는 김재명 부지점장의 자리. 김 부지점장이 오늘의 멘토였다. 김 부지점장으로부터 보증과 관련한 고객을 맞이하는 방법부터 경기신보 보증제도의 전반적인 설명 등을 들은 뒤 업무에 들어갈 준비를 마쳤다. 긴장되는 순간이 시작된 셈이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번호표를 들고 첫번째 고객이 나에게 다가왔다. 분당구에서 순대집을 운영한다는 Y씨였다. 10년간 음식점 주방장으로 일하다가 몇년간 모은 돈으로 순대와 오리 전문점을 개업했는데 생각했던 것 보다 추가적으로 들어가는 자금이 많이 소요되어 인테리어 비용 일부를 아직도 주지 못하고 있다는 사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Y씨가 필요한 자금은 2천만원. 김 부지점장의 코치를 받아 이것저것 물어본 뒤 생계형 창업인데다 자금용도도 적정하다고 판단됐다. 사업장을 방문한 뒤 지원이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드렸다. 추가로 소상공인 지원에 관해 오랜 경험을 지닌 김 부지점장이 세금관련이나 고객마케팅과 관련하여 자세한 상담을 해드리는 것을 보니 경기신용보증재단이 단순히 자금지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소상공인을 위한 종합컨설팅 기관임을 알 수 있었다. 금방 끝날 듯한 상담이었지만 Y씨의 그동안의 인생담과 창업에 따른 어려움 등 사소한 부분까지 듣다보니 30분이 넘는 시간이 훌쩍 가버렸다. 이어 찾아온 고객은 가구제조업에 종사한다는 S씨. 35살인 S씨는 국내 굴지의 가구인테리어 업체에서 근무한 경험을 살려 지난 1월 J팩토리라는 원목가구 제조업체를 창업했다. 그러나 경기가 너무 좋지 않다보니 당초 기대했던 것보다 주문이 많지 않다고 경영사정을 설명했다. 그러던 중 최근 큰 주문이 들어왔지만 필요한 기계와 원재료를 구매할 돈이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던 중, 구청에 사업관련 서류 발급을 위해 방문하였다가 경기신보의 자금지원 관련포스터를 보고 전화로 문의한 후, 직접 재단에 찾아오게 되었다며 자금 지원이 가능하겠냐고 문의했다. S씨는 은행을 찾아갔더니 사업 초기라 신용대출이 어렵다는 답변을 들어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경기신보의 이렇게 좋은 제도가 있었는지 모르고 있었다고 하면서 빨리 보증서를 발급 받았으면 좋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보증 심사기준상 개인신용도가 좋아 보증에 필요한 서류를 안내하며 추후 사업장을 방문하고 별 문제가 없으며 보증될 것이라는 말을 전해주었다. S씨가 연신 고맙다고 인사하며 밝은 표정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니 경기신보 직원들의 보람이 이런 맛이겠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2명의 보증신청자들을 상대로 상담을 마무리하자 김 부지점장이 이제 현장에 나가보실까요?하며 손을 잡아 끌었다. 창밖을 보니 장마로 인해 빗방울이 점점 굵어지고 있었다. 이런 궂은 날씨에도 현장에 나가는지 김 부지점장에게 물어보니 보증지원에 있어 현장방문은 꼭 필요한 절차이기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1년 중 단 하루도 쉬지 않고 계속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직원들의 어려움이 느껴지면서 또한 소상공인 지원에 대한 경기신용보증재단 직원들의 사명감이 느껴졌다. 오늘의 현장 방문 일정은 개성공단에 진출했다가 낭패를 본 신발제조기업과 작은 인테리어 업체였다. 김 부지점장의 차로 이동하면서 참아왔던 궁금함이 터져나왔다. 기자의 호기심이랄까? 성남지점을 속속들이 알고 싶었다. 많은 질문을 쏟아낸 결과, 경기신보는 세간에서 인식되듯이 편안한 신의 직장이 아니라는 사실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우선 직원들의 출근 시간이 예상외였다. 보통 7시 전후로 출근하고 퇴근은 10시 전후였다. 주말도 예외는 아니었다.(이 부분은 나중에 직접 출퇴근 기록을 확인하기도 했다) 직원들은 경기신용보증재단을 벤처기업이라고 생각한단다. 꺼지지 않는 사무실의 불, 직원들의 열정과 치열한 현장이 꼭 벤처기업과 닮았기 때문이다. 다만, 다른 한가지는 자신의 성공이 아닌 소상공인, 중소기업의 성공을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직원들이 이렇게 열심인 이유는 간단했다. 경제 사정이 그만큼 어렵고 소액이 필요한 소상공인들이 기댈 수 있는 곳은 경기신보가 유일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은행을 가려니 담보가 필요하고 신용보증기금이나 기술보증기금의 경우, 소상공인들이 신청할 수 있는 규모의 보증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기신보는 소상공인의 경우, 신용등급에 따라 최대 5천만원까지 지원되는 탓에 당장 돈이 급한 소상공인들이 신용 평가나 영업장 개설 여부 등 간단할 절차를 통해 바로 보증서 발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사정에서 사업자금이 필요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이 경기신보로 몰리고 중소기업의 성장을 지원하고, 소상공인에게 희망을 주는 선진종합금융기관의 비전을 두고 찾아가는 보증을 실천중인 경기신보는 대부분의 서류까지 직접 마련해주는 서비스를 제공, 직원들의 업무 부담이 늘어갈 수 밖에 없는 구조다. 또 현장실사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 직원들은 하루 평균 10건 이상의 소상공인 현장실사도 병행해야 한다. 이렇다보니 내부 결재서류나 보증 관련 서류 정리를 일과시간이 끝난 후나 주말을 이용, 작성하고 있었다. 경기신보 직원으로서의 이런저런 대화 중에 첫번째 현장 실사 대상인 ㈜A사를 찾았다. 경기신보에서 나왔다고 하니 반갑게 맞아주는 신주용 이사를 따라 회사의 현재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듣고 보증과 필요한 질문에 들어갔다. 등산화나 안전화를 OEM 방식으로 제작, 유명 브랜드에 납품한다는 이 회사는 개성공단 폐쇄로 직격탄을 맞은 사례였다. 개성공단에서 공장을 갖고 있던 이 회사는 오는 10월까지 40억원대의 주문을 받아놓은 상태였고 올해 매출액이 100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었지만 공장이 사라지면서 위기가 찾아왔다. 그래도 주문 물량은 만들어내기 위해 부산에서 공장을 임대하고 중국으로 원자재를 보내 일부 가공하게 되면서 갑작스런 자금 압박을 받게 됐다는게 회사 관계자들의 설명이었다. 김 부지점장과 함께 회사가 제출한 보증 신청 서류를 점검하고 개성공단과 관련한 보험 신청 여부, 회사의 자산 및 재무제표상의 기록을 확인했다. 이미 경기신보로부터 지난 2006년12월과 2010년 04월에 각 2억원을 보증받은 뒤 모든 대출금은 갚은 상태였기 때문에 신용도는 우수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다음 사업장 방문약속시간이 빠듯하여 점심은 김밥으로 간단히 요기하고, 이어 방문한 곳은 Y인테리어. 지난해 4월 개업한 뒤 6천만원의 매출액을 기록한 이 업체는 회사 특성상 현금 흐름이 중요하다보니 긴급하게 소상공인 지원자금 2천만원을 신청한 사례였다. 경기신보의 소상공인 보증은 담보 설정이 필요없지만 보증 사고를 막기 위해 영업장 확인은 필수 코스. 개인 신용등급을 기준으로 보증금액이 결정되는 만큼 실제 영업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했다. 김 부지점장은 소상공인 보증은 개인 신용도가 중요한 기준인 만큼 영업장 방문을 통해 영업 여부가 확인되지 않으면 보증이 안된다고 설명했다. 영업장을 방문, 영업 여부와 자재 창고 등을 확인했고 신용등급과 관련한 몇가지 질문을 거쳤다. Y인테리어의 P대표는 자금이 필요하다 보니 급하게 현금서비스를 받고 개업하면서 대출을 받아 신용등급이 떨어진 것 같다면서 일감이 지속적으로 들어오는 만큼 자금 문제만 해소되면 신용등급 상향이 가능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신용등급이 5등급에 해당, 2천만원의 보증이 가능하고 일정 수준의 보증료 납부를 안내했다. 보증료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는 답변에 보증료는 연간 1%이고 1년거치 4년분할상환인 만큼 보증료를 납부해야 한다고 설명한 뒤 자금 사정이 좋아져 일시에 대출금을 갚으면 남은 기간의 보증료를 돌려준다고 설명했다. 설명을 마치자 P대표은 보증을 통해 한숨 돌리게 됐다면서 담보가 없어 은행 대출이 어려워서 고금리의 사채를 이용하는 나같은 개인 사업자들에게 저금리로 대출을 가능하게 해주는 경기신보같은 곳이 있다는 사실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P대표의 배웅을 뒤로 하고 경기신보 성남지점으로 돌아왔다. 지점은 상담하려는 고객으로 가득했다. 김 부지점장은 출장 후 한숨 돌릴 틈도 없이 기다리는 고객에게 이것저것을 물어보며 상담을 시작하였다. 최근 경기가 어려워서인지 하루하루 상담고객이 늘고 있다고 한다. 시계를 확인하니 벌써 오후 3시. 체험인 만큼 직원들과 부대끼며 야간 근무까지 해야 했지만 빠른 시간이 아쉬었다.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돌아서는 자리에서 이민우 지점장은 현장 체험을 왔으니 직원들처럼 밤 늦게까지 일하고 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핀잔을 듣기도 했다. 저도 아쉬운데 회사에 들어가봐야 해서 죄송합니다라는 인사를 뒤로 하고 돌아서는 발걸음 뒤로 경기신보의 도움을 받기 위한 사람들로 인해 성남지점의 문이 열고 닫히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이날 하루동안 경기신보 성남지점을 찾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은 모두 90여명. 올해 상반기 보증실적으로 전체 지점 중 1위를 달리고 있는 성남지점이 경제불황 속에서 어려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게 희망의 불씨를 전달하는 곳으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 경기신용보증재단이 명실상부 경기도 최고의 산하기관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고객을 먼저 생각하고, 자신을 희생하여 봉사하는 직원들의 열정과 노력임을 알게 한 하루였다. 그리고 한가지 더. 지면을 빌어 김 부지점장님께 죄송한 말씀 하나. 상담 고객이 한적한 틈을 타 컴퓨터를 뒤적였습니다. 혹시 경기신보 홈페이지의 고객의 소리에 불편 신고 같은 것이 없을까 해서요. 그런데 별 다른 것은 없었고 다른 코너에 낯익은 이름들이 나오더군요. 칭찬합시다에 김 부지점장님, 배경현 차장님, 장선식 계장님, 그리고 이민우 지점장님 등등이요. 고맙다는 말들이 줄을 잇더군요. 앞으로 경기신보가 내건 찾아가는 보증서비스를 통해 도내 중소기업인과 소상공인들에게 큰 힘이 되어주실 거라고 믿습니다. 김동식기자 dsk@kyeonggi.com

[1일 현장체험]수원선수촌 물리치료사

몸 자체가 최고의 자산인 스포츠 선수들에게 있어 최고의 몸 상태를 유지하는 일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부상 없이 얼마나 훈련을 하고, 컨디션을 끌어올릴 수 있느냐에 따라 선수의 성패가 좌우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철저한 자기관리는 운동 선수가 갖춰야 할 최고의 요건 중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매순간 자신의 한계에 도전해야 하는 선수들에게 있어 철저하게 자기 몸을 관리하는 일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시합을 앞두고 몸 상태를 최상으로 끌어 올리기 위해 훈련을 쌓다가도 순간에 발생하는 부상으로 평생에 한번 찾아올까 말까한 기회를 날려버리거나 운동 자체를 아예 접게되는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인다. 하지만, 부상은 예상치 못하는 사이 찾아와 선수들의 발목을 잡아채곤 한다. 이처럼 예기치 않게 찾아오는 부상으로부터 선수들을 보호하고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이들이 있다. 선수들이 최고의 자산인 몸을 책임지는 물리치료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전국 최대 규모의 수원시 직장운동부 선수들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는 건강 돌보미 물리치료사의 하루를 체험해 봤다. ■수원시 직장운동부 선수 150명의 건강돌보미 지난 12일 오전 9시께 물리치료사 1일 체험을 위해 수원시 우만동에 자리한 수원선수촌을 찾았다. 선수촌 관계자들과 간단한 인사를 나눈 뒤 박금직 선수촌장에게 수원시 직장운동부에 몇명의 물리치료사가 근무하고 있는지부터 물어봤다. 한분 계세요. 150명에 달하는 선수들의 몸을 전담해 관리하고 있으니 고생이 많으시죠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전국 최대규모의 직장운동부를 운영하고 있는 수원시인만큼 최소한 2~3명은 되겠지하는 예상과는 너무도 다른 답변에 흠? 놀라며 물리치료사에 대한 전반적인 질문을 던져봤다. 현재 150명의 선수를 관리하고 있는 물리치료사 최기철 의무실장은 대학에서 물리치료 관련 학과를 나와 면허를 취득한 뒤 20여년 간 정형외과, 재활의학과, 한방병원 등에서 일반 환자들을 치료했던 짱짱한 경력을 갖춘 베테랑 물리치료사였다. 박 촌장은 왠만한 경력을 갖추지 않고서는 조그만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선수들의 몸을 제대로 관리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어머니의 어깨와 다리를 주물러 온 10년 이상의 경력을 바탕으로 열심히 따라하면 될거야하는 기자의 자신감에 부끄러움을 느끼며 물리치료실로 들어섰다. 150명에 달하는 수원시 소속 선수들 모두가 이용하는 공간이라 하기에는 다소 비좁은 느낌이 드는 33㎡ 가량의 물리치료실에는 파스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물리치료 기계가 딸린 의료용 침대 4개와 재활운동 기구 등이 빼곡히 들어차 있는 물리치료실에 들어서자 선수들을 돌보고 있던 최기철 실장이 반갑게 맞아줬다. 일일체험을 하신다는 말은 들었는데, 체험을 할만한게 있는지 모르겠네요라며 겸손한 인사를 건네는 최 실장과 인사를 나눈 뒤 본격적인 체험에 들어갔다. ■시작한지 5분만에 땀이 송골송골 흰색 커튼이 드리워진 4개의 의료용 침대에는 딱 봐도 운동 선수임을 바로 알아 차릴 수 있을 만큼 건장한 체격의 선수 4명이 치료를 받고 있었다. 중요한 시합을 앞두고 아킬레스 건 부위를 다쳐 걱정이라는 레슬링 선수에서부터 고질적인 허리 통증으로 고생하고 있는 검도 선수와 어깨 통증에 시달리고 있는 여자배구 선수에 이르기까지. 여러 종목의 선수들이 다양한 부위의 통증을 호소하며 최실장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선 가장 기본적인 마사지부터 한번 해보실까요. 흰색 가운을 갈아입고 최 실장의 간단한 시범을 본 뒤 지난해 허리 부상을 당한 이후 고질적인 통증을 호소하고 있는 검도 선수의 허리 마사지 실습에 돌입했다. 손에 시원함이 느껴지는 마시지용 오일을 바른 뒤 검붉은 부항자국으로 얼룩진 선수의 허리를 천천히 누르기 시작했다. 혈액순환이 원활해 질 수 있도록 혈액을 아래에서부터 위로 쭉 끌어올려주세요. 그리고 척추 기립근을 따라 손을 움직이다보면 뭉친 근육이 만져질거에요. 그 뭉친 부위를 부드럽게 풀어주시면 됩니다 최 실장의 지시에 따라 손가락과 손바닥, 주먹을 골고루 바꿔 써가며 최 실장 흉내내기에 돌입한 지 불과 5분여, 걸친 흰색 가운이 거추장스러워질 만큼 더위가 느껴지더니 금새 얼굴이 후끈 달아오르기 시작했고,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혔다. ■반복되는 물리치료에 몸이 녹초 마사지를 마치고 다시 물리치료기를 부착한 뒤 물리치료실 구석에 위치한 사무실 의자에 몸을 맡겼다. 안마를 하다보면 기가 빠진다는 말을 새삼 실감하며 한숨 돌리는 사이 최 실장이 웃으며 말을 건넸다. 생각보다는 쉽지 않으시죠. 선수들이 물리치료기를 이용하는 시간이 저한테는 휴식시간이죠. 선수들의 몸을 제대로 돌보기 위해서는 체력이 필수예요. 그래서 항상 틈날때마다 운동도 하고 악력기 같은 것도 하면서 손에 힘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요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며 최 실장의 만만치 않은 프로의식을 실감하는 사이, 허리가 아프다는 여자 배구 선수가 물리치료실을 찾았다. 자, 이번엔 재활운동 실습을 해보시죠 짧은 휴식 시간 뒤 곧바로 치료가 이어졌다. 재활운동은 줄에 몸을 매달고 잘 쓰지 않았던 부위의 근육을 다시 쓰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포인트. 부상을 입은 선수들인 만큼 몸상태가 악화되지 않기 위해 세심하게 자세를 잡아주고 보조하는 일이었다. 천천히 구령을 넣어주며 건장한 체격을 가진 선수를 잡아주는 일 또한 마사지 못지않게 고됐다. 행여나 선수의 부상이 악화되지 않도록 조심을 유지해야 했고, 제대로 근육을 쓰고 있는지를 세심하게 살펴야했다. 재활운동 보조에 돌입한지 불과 10분 여가 흐르자 허리와 등에 통증을 호소하는 역도선수 2명이 들이닥쳤고, 침대에 누워 치료를 받던 레슬링 선수는 물리치료가 끝났다며 최 실장을 불렀다. 어떻게 시간이 지나간 줄도 모르게 오전 실습을 마치고, 점심 식사를 한 뒤 오후 실습에 돌입했다. 오후 시간 역시 오전과 같은 반복 업무의 연속이었다. 마사지는 온몸에 기가 빠져나갈 것 같이 힘들었고, 가끔씩 진행되는 재활치료 역시 고단했다. ■화려한 스포츠 스타 뒤의 숨은 공로자 오후에도 2시간 가량의 추가 실습을 마친 뒤 최 실장에게 물리치료사로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낄 때와 가장 힘든 점에 대해 물어봤다. 그러자 최 실장은 내가 돌보고 있는 선수들이 대회에 나가서 좋은 성적을 거둘 때가 가장 신나죠. 그 때만큼 보람이 느껴질 때가 있을까요. 그리고 아쉬운 점은 치료가 필요한 여자 선수들이 부끄럽고 민망하다는 이유로 마사지 등을 받지 않으려고 할 때가 있어요. 또 대회에 나가는 선수단의 출장 요청에 일일이 수락하지 못할 때가 많죠. 혼자 근무하다보니 제가 출장을 가면 물리치료실을 비워야하니까요라고 설명했다. 선수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고 아픈 선수들을 더욱 세심하게 돌보지 못해 아쉬워하는 최 실장의 모습에서 단순히 물리치료사를 선수들을 전문적으로 안마해주는 사람이라고 오해했던 내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하게 선수들을 돌보는 물리치료사들이 있기에 스포츠 강국 대한민국을 빛내는 선수들이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박민수기자 kiryang@kyeonggi.com

[1일 현장체험]세계1위 콘돔 제조기업 ‘유니더스’

결혼과 동시에 듣게 된 아줌마라는 말에 질색하고 도리질하던 때가 있었다. 왜냐, 한국 아줌마에 대한 편견이 심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아줌마는 파마머리에 몸뻬를 입고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막가파로 통한다. 오죽하면 세상에는 남성과 여성 그리고 아줌마가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까. 그러나 정작 아줌마들도 공개적으로 말 꺼내기가 쑥쓰러운 것이 있다. 바로 원하지 않는 임신을 방지하고 안전한 섹스를 위해서는 꼭 필요한 생활필수품인 콘돔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콘돔은 성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낯뜨거운 제품으로 인식돼 왔던 게 사실이다. 담배와 커피, 심지어 라면 한 봉지를 살 때도 브랜드를 따지는 철저한 한국인이지만 콘돔 단어만 들어도 얼굴이 붉어지고 어쩔 줄 몰라 한다. 아줌마 기자 또한 예외는 아니다. 또 입밖에 함부러 내뱉으면 안되는 금기어라 생각했다. 부모, 선생님, 친구, 선배 등 그 누구도 콘돔을 누가(who), 어디서(where), 왜(why), 어떻게(how) 만드는지 알려준 이가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당췌 궁금한 걸 못 참는 성격이라 1일 현장체험을 기회삼아 스스로 호기심을 해결하고자 마음 먹었다. 그러나 주변에선 야, 너무 야한 거 아냐, 넌, 참 특이하다, 기자로서 이미지 안 좋아질텐데 등의 부정적인 반응도 있었다. 허나 포기할 내가 아니다. 진짜 궁금한 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낙태율 1위임과 동시에 콘돔 사용률이 20~30%로 최하위라는 오명을 듣고 있는 한국에서 어떻게 세계 1등의 콘돔 기업이 나올 수 있었을까였기 때문이다. 6월 5일 아침 일찍, 세계 제1의 콘돔 제조 기업 유니더스(UNIDUS) 충청북도 증평공장을 찾았다. ■ 천연고무수액 검사-배합공정-약품혼합-제품성형-전수검사-포장 35년간 콘돔이라는 한 우물을 파며 국내 시장 점유율 65%, 세계 시장 점유율 30%를 차지하는 유니더스는 연간 총 11억5천만 개의 콘돔을 생산하는 세계 제1의 콘돔 제조 기업이다. 세계 최고기업이니 으리으리할 것이란 짐작과 달리 공장 자체는 오래된 건물이었다. 잘 정리된 건물은 콘돔 공장이 맞나 싶을 정도로 조용했다. 정문에서 개발부 김재오 차장을 만나 인사를 건네자 다소 당황하는 기색이 옅보였다. 기자들 많이 다녀갔죠?라는 질문에 남자 기자 3~4명 정도 다년간 걸로 압니다. 여기자는 처음입니다. 김재오 차장은 좀 망설이며 말끝을 흐렸다. 원치 않게 콘돔 공장 최초 방문 여기자가 되는 순간이었다. 김 차장과 함께 곧장 콘돔생산 현장으로 이동했다. 처음 간 곳은 천연고무로 콘돔 재료인 라텍스를 보관하는 원료 탱크로리였다. 이어 원료에 촉진제, 활성제, 산화방지제, 분산제 등 각종 약품과 가황(加黃) 작용을 거친 고무를 배합해 발효시키는 과정을 거쳤다. 그 다음 공정은 성형실이었다. 라텍스를 숙성시킨 뒤 음경처럼 생긴 수천개의 유리 성형틀을 통과시켜 콘돔 모양을 만들어내는 곳이다. 김 차장은 냄새가 지독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들어가자마자 강한 냄새가 진동했다. 숨이 턱턱 막혔다. 정체는 암모니아였다. 삭힌 홍어의 냄새와 비슷했다. 안내를 맡은 김재오 차장은 암모니아 배합은 콘돔의 품질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며, 암모니아 배합은 콘돔 제작에서 중요한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라인마다 걸린 유리봉 성형틀을 액체 상태인 라텍스에 두 차례 담그면 콘돔 모양이 만들어진다. 그 다음 콘돔의 링을 만들어 75도씨 건조박스에서 50분 정도 건조시킨 다음 검사공정이 진행된다. 건조실은 한증막을 방불케했다. 건조를 마친 콘돔은 한 라인에 4명의 직원이 한조를 이뤄 1분당 240개를 검사한다. 10년 이상의 베테랑답게 쉴 새 없이 손을 움직이며 촉감만으로도 불량품을 쏙쏙 찾아냈다. 일손을 돕고자 아줌마 직원 옆에 앉았다. 초짜 기자가 걱정됐는지 아줌마 직원은 뜨거우니깐 조심해라며 혹시 손이라도 델까 싶어 안절부절했다. 순식간에 밀려내려오는 봉틀에 콘돔을 끼우는 일은 단순작업이었지만 초짜에겐 불가능한 일이었다. 오히려 민폐만 끼치고 말았다. 그나마 검사 통과한 콘돔에 윤활제를 적당량 묻혀 포장하는 일은 할만했다. 예상과 달리 콘돔 생산과정은 단순하지 않았다. 전자화된 기계의 영역보다 사람의 섬세함과 빠른 손놀림이 요구하는 영역이 많았다. 특히 콘돔의 엄격한 품질관리에 있어 아줌마 직원들의 기술과 노력은 절대적이었다. 그리고 콘돔 품질관리에서 핵심은 콘돔에 구멍이 없어야 한다는 점과 콘돔이 찢어지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점이다. 파열 부피 실험은 콘돔이 터질 때까지 압축공기를 주입, 주입된 공기량과 파열시점의 압력으로 물리적 특성을 평가하는 검사다. 이를 통해 물리적 안전성 측면에서 콘돔의 강도를 체크할 수 있다. 또 무작위로 풍량 풍압검사를 받는다. 콘돔의 품질을 측정하는 공기투입량 국제기준은 18ℓ다. 그런데 유니더스는 국제기준에 비해 두 배 이상 높은 40ℓ의 공기를 콘돔 속에 불어넣어도 터지지 않을 정도의 강도를 자랑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핀홀 테스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콘돔에 미세한 구멍이 있어 내부의 물질이 새어나오지 않는지를 판단하는 시험이다. 일정량의 물을 채워 넣고 누수 여부를 체크하고 물속에 콘돔을 담그고 전기가 통하는지 전도성을 확인한다. 이 검사 또한 아줌마 직원의 몫이었다. 김재오 차장은 제품 불량률이 1% 미만이에요. 엄격하고 철저한 품질관리와 공정관리에서는 유니더스를 따라올 자가 없습니다. 유니더스가 충북 증평 공장과 중국 강소성 공장에서 생산하는 매년 물량은 총 11억5천만 개. 일반형 콘돔 길이가 17㎝인 점을 감안하면 지구를 4바퀴 이상 돌 수 있는 엄청난 양이다. ■ 품질인증 국제개발처(USAID) 단골 고객, 현재 80여 개국으로 공급 국내산 콘돔을 써 본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유니더스의 제품을 사용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유니더스의 진가는 해외에서 더 빛난다. 유니더스 전체 매출의 70% 이상이 수출에서 발생하며 국내 매출 비중은 30% 미만이라고 한다. 김재오 차장은 내수보다 수출 비중이 높은 이유를 국내의 저조한 콘돔 사용률 때문이다. 한국은 OECD국가 중 가장 저조한 콘돔 사용률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생산되는 물량의 대부분은 세계보건기구(WHO), 유엔인구활동기금(UNFPA), 국제가족계획연맹(IPPF), 유엔아동보호기금(UNICEF) 등을 통해 해외로 수출되고 있다. 지난 2005년부터는 미국국제개발처(USAID)에 개발도상국의 에이즈 예방 및 가족 계획용 콘돔을 공급하게 되면서 전세계 콘돔 업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유니더스(0콘돔은 이 같은 국제 기구들을 통해 수출, 현재 80여 개국으로 공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니더스는 국제 입찰시장 물량 중 30% 이상을 공급하며 세계시장 점유율 1위 업체로 등극했다. 김재오 차장은 지난 1999년 입사 이래 증평공장의 기계가 멈춘적이 없다고 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제품은 다양했다. 국내최초 발기지속 기능성 콘돔 롱러브 외에도 향기, 색깔, 돌기 콘돔 등 다양한 신제품 개발을 통해 콘돔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불러일으키고 있다. 과거의 콘돔이 피임과 질병예방에 중점을 두었다면 요즘은 디자인이나 소재, 윤활제를 달리해 고객의 만족도를 향상할 수 있는 제품들이 다양하게 출시되고 있다. 야광 콘돔, 향기 콘돔, 진동 콘돔, 스프레이형 콘돔 등 다양한 기능성 제품들이 차별화를 내세워 소비자의 간택을 받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한국을 비롯한 일본 등 동남아시아인은 얇은 콘돔을 선호하는 반면, 미국과 유럽인들은 두꺼운 것을 좋아한다는 것. 주식을 하는 남자 선배한테 들은 이야기가 떠올라 콘돔회사는 불황 때 돈을 번다는데 사실인가요?라고 질문했다. 김재오 차장은 웃으며 불황기에 매출이 늘어난다는 통념에 대해 사실 콘돔은 경기를 거의 타지 않는 산업이라고 말했다. 유니더스가 생산하는 주력 제품인 콘돔, 수술용 장갑, 지삭크(보호용 골무)는 경기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세계 1등의 콘돔 기업, 유니더스는 분명 중소기업이었다. 허나 기계보다 직원들의 실력과 성실함을 바탕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는 유니더스는 결코 작지 않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한국에서 어떻게 세계 1등의 콘돔 기업이 나올 수 있었는지를 직원, 특히 아줌마 직원들의 땀방울에서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억세지만 성실하고 경제논리가 아닌 삶의 논리로 무장한 유니더스 아줌마 직원들의 힘이 세계 콘돔시장 1등 석권의 비밀이었다. 아줌마 기자로서 1일 체험을 마치고 신문사 편집국으로 돌아와 다양한 콘돔제품을 나눠주었다. 콘돔은 낯뜨거운 제품이 아니라 생활필수품으로 각자의 주인을 찾아갔다. 강현숙기자 mom1209@kyeonggi.com 사진_전형민기자

[1일 현장체험]구세군장애인자활사업장

착한 기업, 착한 소비, 따뜻한 소비. 흔히들 사회적 기업의 제품을 이렇게 일컫는다. 사회적 기업은 저소득자, 고령자, 장애인 등 취약계층에게 일자리나 사회서비스를 제공해 가치있는 활동을 목표로 한다.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면서도 사회적 책임이라는 2차적인 역할까지 담당하는 게 핵심이다. 지속가능한 경제가 사회적 기업이 대두되면서 예비사회적기업까지 더해 경기지역에만 어느덧 370개의 사회적 기업이 있다. 정부와 민간이 해결하지 못하는 취약계층의 일자리 사각지대를 사회적기업에서 기회의 연결고리를 만들어낸다. 경제부 기자로 사회적기업에 대한 기사를 많이 쓰긴 했지만 윤리적 소비 활성화, 취약계층 고용 등의 명목적 의미만 알 뿐 이들이 만들어내는 가치는 무엇인지 전혀 알길이 없었다. 사회적 기업에서 만들어내는 가치는 무엇인지 직접 이들과 함께 해보며 의미를 느끼기로 했다. ■따뜻한 휴지 만들기, 시작은 쉽지 않았다 지난 5월 29일 오전 수원시 팔달구 매교동의 구세군장애인재활작업장. 사회적기업인 이 곳은 중증장애인 12명과 경증장애인 1명과 취약계층 3명이 화장지를 생산해 판매하는 곳이다. 원단을 들여오면 납품까지 모든 게 이뤄진다. 지난 2006년 장애인직업재활시설로 출발한 이 곳은 장애 때문에 회사에 들어가기 어려운 중증장애인들과 사회 취약계층이 고용 대상이다. 이 곳에서 생산하는 화장지는 공공기관의 화장실 등에 쓰이는 300m, 500m 길이의 점보롤과 일반 가정에서 사용되는 50m, 70m의 롤 화장지이다. 현재 조달청(나라장터)과 계약을 통해 납품을 하고 있으며, 사회적기업으로 농협하나로마트(서수원점)에 화장지를 납품하고 있다. 장애인들과 취약계층이 자신들의 능력으로 만들어내는 제품을 함께 만들 수 있다는 설렘과 하루 놀러온 것 처럼 비춰지진 않을까하는 우려를 안고 구세군장애인재활작업장의 문을 두드렸다. 윙~ 66㎡규모의 공장으로 들어가자 기자를 먼저 반긴 것은 기계의 굉음이었다. 예상은 했지만 휴지 제조 작업장치고는 초라해 보였다. 화장지를 만들어내는 기계 1대, 원단 9개가, 산더미처럼 쌓인 박스가 전부. 대체 무엇을 해야하나 막연해졌다. 사회적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따뜻한 휴지를 만들어보겠다는 나름의 취지가 있었지만 나올 그림이 있을까, 생동감 넘치는 일을 해야 쓸 내용이 있는데 뭘로 내용을 채우나 등등 기자로서의 걱정이 먼저 앞섰다. 화장지 제조가 복잡하거나 그렇지 않아요. 하실 일도 그렇게 많지는 않을 거예요. 사회적 기업에서 함께 일해보고 싶다는 전화에 흔쾌히 승낙을 했던 구세군장애인재활작업장 강상구 실장의 말은 좌절에 쐐기를 박았다. 오늘 제조할 화장지는 300m짜리 2겹 점보롤이다. 일하는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장애인들이 협업으로 생산을 하는 시스템이라 무리하게 일을 하지 않는다. 물량 주문이 많으니 열심히 하자 맏형으로 불리는 김효민씨(37)가 동생들을 독려했다. 모두 마스크를 끼고 목장갑의 손가락 부분을 잘라 일을 시작할 채비를 마쳤다. 화장지 제조는 300kg짜리 원단을 권취기의 거치대에 올리는 것부터 시작된다. 권취기에서 기계를 돌리면 원단이 엠보싱을 입고 길이에 맞게 잘라져 나와 화장지로 태어나는 시스템이다. 권취기를 작동하고 화장지를 뽑아내는 일은 고령자 취업으로 일하는 박찬수씨(가명ㆍ64)와 지적장애를 가진 정승진씨(27)가 맡고 있다. 이들의 도움을 얻어 원단을 권취기에 넣어 손으로 원단을 잡아빼며 불량 원단을 빼내고 점보롤이 말릴 봉에 풀을 발라 원단을 붙였다. 기계를 돌리자 윙 굉음과 함께 엠보싱이 원단에 박히며 칼날이 자동으로 점보롤 14개를 잘라냈다. 이후 원단이 300m길이에 맞춰 잘라져 점보롤로 변신했다. 여기에 걸리는 시간은 약 4분. 원단에 불과했던 천이 화장지로 탄생했다. 하얗게 둘둘 말아진 점보롤이 신기해 우와 우와 감탄사를 연발하는 기자 사이로 박찬수씨와 정승진씨는 미리진 테이프를 점보롤의 마지막 부분에 붙였다. 기계의 봉을 빼자 점보롤 14개가 나왔다. 그 다음은 정리작업. 점보롤을 누름기계로 한번 쾅 눌러주고 보풀을 떼고 정리하면 된다. 기계가 위험할 수도 있으니 안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칼날이 돌아가 위험할 수 있다는 김씨의 만류에 기계대에서 나와 점보롤 정리하는 작업이 주어졌다. 한 박스에 16개의 점보롤을 넣으면 끝이다. 뭐가 이리 단순한가, 내가 크게 도움 될 일이 없나하며 또다시 기자로서의 지면에 담을 내용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하나의 휴지에 담긴 소중한 가치를 깨닫다 순간 완성된 점보롤에 테이프를 붙이기 위해 테이프 자르는 역할을 맡고 있는 유예림씨가 보였다. 지적장애를 가진 유씨는 완성된 점보롤에 붙이는 테이프를 14개씩 잘라 자에 붙이는 역할을 맡고 있다. 일반 회사에서는 일이라고 보기 힘들만큼 단순한 작업이다. 그러나 유씨는 내가 맡은 일이라며 테이프 하나하나 심혈을 기울여 자에 붙였다. 이 곳에는 각자의 맡은 역할이 정해져있다. 기계 조작은 정승진씨와 박찬수씨가 담당한다. 정씨는 1년 정도 이 일을 배워 어느덧 전문가로 불릴만큼 상당한 실력을 갖췄다. 지적장애 정도가 심하지 않아 회사에 다녀보기도 했지만, 회사에서는 정씨를 오래 받아주지 않았다고 한다. 정씨와 박씨가 기계에서 점보롤을 만들어내는 동안 유예림씨는 완성된 점보롤에 붙일 테이프 14개를 잘라 자에 붙여놓는다. 화장지가 완성되면 지적장애를 가진 이아름씨(20)와 이위선씨(19)가 기계에서 나온 화장지의 보풀을 떼내고 정리를 하고, 취약계층으로 일하는 이승민씨와 김효민씨가 비닐로 포장을 해 박스에 담는다. 완제품을 배송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련의 작업이다. 어떻게 보면 하나하나 단순한 작업. 그러나 이 일을 하는 이들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에 크게 감사하며 최선을 다했다. 지적장애를 가진 이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범위의 일을 최선을 다했고, 취약계층으로 일하는 이씨와 김씨는 이들을 독려하며 즐겁게 일했다. 무언가를 담아내려고 큰 일을 찾던 기자가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점보롤을 정리하는 작업을 하며 서서히 그들과 말문을 열리기 시작했다. 오후 3시 50분. 원단 300kg짜리를 다시 점보롤로 만들기 위해 거치대에 올리는 순간 오늘 작업은 끝이라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 만든 점보롤은 모두 960개로 60박스다. 하지만 아직 많은 일이 남아 있었다. 박스에 담은 완성된 점보롤을 비닐포장하는 작업이다. 작업장에 남은 최후의 7인과 함께 오늘 생산한 점보롤에 비닐을 씌웠다. 4개의 점보롤을 하나의 비닐에 씌워 묶은 다음 배송될 박스에 봉인하면 된다. 박스에서 점보롤을 꺼내 다시 비닐을 씌우고 담는 과정은 단순했지만 이내 허리가 아파왔다. 이렇게 한 시간여가 흐르고 드디어 모든 상품의 정리가 끝났다. 이제 이 점보롤은 학교와 시청 등 각 공공기관에 배송된다. 주문 생산이 들어온 서울에 배송될 점보롤이 한 가득 지게차에 쌓였다. 힘쓰는 일은 남자가 해야한다며 기자와 여동생들이 박스 드는 것을 극구 말리던 효민씨와 승민씨가 박스를 날랐다. 이제 이 점보롤은 어느 구청에서, 학교에서, 또 공중화장실에 걸려 사람들에게 사용될 것이다. 지속가능한 경제의 대안으로 꼽히는 사회적 기업에서 따뜻한 화장지 만들기에 동참한 하루는 이렇게 끝났다. 점보롤이 완성되는 작업은 꽤 단순했다. 그러나 이 단순한 작업에도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에 감사하며 최선을 다한 이들의 손길이 구석구석 닿아있었다. 이 곳의 목표는 열심히 화장지를 제조하고 많이 판매해 장애인들의 월급을 올리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해 재활을 높이는 것이다. 또 장애인들의 자립을 돕고 조금 더 많은 장애인들에게 직장을 제공하는 희망을 품고 있다. 공부, 그림그리기 등 재활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약간의 불편함을 가졌다는 이유로 사회에서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들은 사회적기업에서 의미있는 생산활동을 하며, 그 생산으로 더 많은 취약계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한 가치를 창출해 내고 있었다. 의미있는 사회적기업의 더 많은 탄생이 기대되는 이유다. 정자연기자 jjy84@kyeonggi.com

[1일 현장체험]도로교통공단 사고조사분석연구원

최근 몇년 사이 미드(미국 드라마의 줄임말)가 유행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범죄수사 관련 드라마를 즐겨보게 됐는데, 사건을 과학적으로 조사해 재구성하고 진상을 규명하는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기 때문이다. 특히 연속극의 묘미(?)인 결정적인 장면에서의 끊어줌은 나를 더욱 더 이야기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했다. 성범죄수사대, 해군전담수사대, 퇴마사, 미술품 등 각양각색의 테마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교통사고를 주제로 한 드라마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아볼 수 없었다. 미국은 자동차 1만대당 교통사고 사망자수 세계 2위(1.4명)다. OECD 평균(1.3명)보다 높다. 재미있는 스토리를 만들어내기 어려운 까닭일까. 그렇다면 자동차 1만대당 교통사고 사망자수에서 독보적인 세계 1위(2.9명)에 오른 대한민국은 어떨까. 눈으로 보기 어려우니 그냥 직접 몸으로 체험해보기로 했다. 도로교통공단 사고분석조사요원이 돼 보기로 한 것이다. 도로교통공단 사고조사분석요원이란 민원 또는 복잡ㆍ난해한 교통사고에 대해 사고 당시 상황을 재연하는 직업이다. 이들은 사고 당시 상황을 재연해 이 사고가 어떻게 발생했으며 누가 피해자인지, 누가 가해자인지를 밝혀내는 막중한 책무를 갖고 있다. 그렇다고 모든 사고에 대해 조사분석을 하는 것은 아니다. 국가가 공인해 조사를 하는만큼 경찰과 법원, 검찰 등에서 조사분석을 의뢰한 사고만 취급한다. 흔히 강력사건의 증거물 등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규명하는 등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하는 일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대형교통사고 규모 이하의 사망사고에 한해 운영되며 경찰 초동조치 후 사망사고 원인이 불명확할 경우 경찰 등과 함께 합동조사를 벌인다. 원인규명은 물론, 책임소재도 분석하며 사고요인별 문제점과 예방대책(안)도 검토해야 한다. 교통안전대책과 정책개발도 해야 한다. 이처럼 교통사고에 대해 공학적 분석결과를 제공함으로써 의뢰기관의 정확한 사법적 판단에 기여하고 국민의 권익을 보호하는 일이다보니 자격요건 역시 까다롭다. 무시무시한 물리(?)를 포함 운동역학, 마찰계수 등 차량운동학과 교통관리 법규와 조사론 등을 모두 마스터하고 국가공인 도로교통사고감정사 자격증을 취득해야만 사고분석조사요원이 될 수 있다. 22일 오전 9시 찾아간 도로교통공단 경기도지부에서 총 5명의 사고분석조사요원이 기자를 반겼다. 권순종 안전조사검사부장은 잘 오셨어요. CSI처럼(?) 워낙 전문적인 분야라 어렵겠지만, 몸으로 하는 일도 많으니 열심히 해보세요라고 웃음지며 말했다. 권 부장의 반 농담, 반 으름장을 뒤로 한채 심재귀 사고조사분석연구원(46), 김민중 사고조사분석연구원(45)과 출동(?) 준비를 시작했다. 심 연구원은 경기도 31개 시ㆍ군에서 벌어진 교통사고 가운데 경찰 등 사법기관이 조사분석을 의뢰한 사건만 취급한다면서 인명피해가 발생했으며 분쟁있는 사고가 하루 1건 이상이라 5명의 연구원은 쉴틈이 없다고 말했다. 이들을 따라 사진기와 광파측정기, 경사도측정기, 굴림자, 줄자, 스타프(막대자) 등의 장비를 챙기기 시작했다. 얼핏봐도 상당한 무게가 나가는 조사분석물품 등을 다 챙겨 도로교통공단 마크가 새겨진 승합차에 몸을 실었다. 밝은 녹색의 조끼와 짙은 녹색의 카우보이모자도 챙겼다. 김 연구원은 햇볕이 뜨겁다보니 야외에서 활동하는 우리는 선크림 등이 필수라고 말하면서 자외선 차단제 등을 건넸다. 얼굴과 목, 팔 등을 자외선 차단제 등으로 무장(?)시키고 승합차에 올라 현장에 출동했다. A시에서 벌어진 중앙선침범 분쟁 사망사고의 조사분석을 위해 출발하면서 김 연구원이 운을 뗐다. 김 연구원은 저희가 하는 일이 법적인 구속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국가기관에서 조사분석을 해 사고원인 등을 규명하기 때문에 법적 참고자료로 쓰인다면서 더욱이 사고조사분석을 할 때마다 이해관계자들이 함께 참여하기 때문에 잠시라도 긴장의 끈을 놓칠 수 없다고 조언했다. 사고 현장에 도착해 경찰ㆍ이해관계자들과 함께 조사분석업무를 시작했다. 물론, 기자가 아닌 신입조사분석요원으로 위장(?)하고 말이다. 뜨거운 햇볕때문에 광파측정기를 설치하고 굴리자, 스프레이 등을 이용해 작업을 시작하자마자 땀이 비오듯이 쏟아졌다. 얼굴과 목, 팔 등은 듬뿍 바른 자외선 차단제와 뒤섞이면서 꼴이 말이 아니였다. 이 모습을 본 심 연구원은 작은 목소리로 벌써부터 이렇게 땀을 흘리시면 어떻해요. 이제 시작인데라며 장난기 섞인 말을 했다. 뜨거운 햇살때문인지, 어제 먹은 술때문인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연구원들의 작업을 도왔다. 경사도측정기의 조그만 렌즈를 들여다보자 마치 현미경처럼 사물이 확대돼 보였으며, 이들 장비를 가지고 도로기하구조와 타이어마크, 차량의 최종위치 등 사고관련 흔적을 취합했다. 차량이 파손된 부분은 가로 세로 스타프를 이용해 정확한 위치 등을 파악하고 디지털카메라로 자료를 남겼다. 더운 날씨때문인지 김 연구원을 도와 스터프를 잡고 쭈그려앉는데도 힘이 들었다. 왕복 2차선 도로에서 승용차와 3.5t 화물차가 정면으로 충돌한 사망사고였기에 중앙선 침범 등을 조사할 때는 극도의 긴장감이 밀려왔다. 사고당사자와의 면담을 통한 증언을 확보하는 일도 잊지않았다. 2시간여에 걸친 꼼꼼한 현장 조사를 마치고 사무실로 복귀하는 승합차의 에어컨 바람이 그렇게 시원할수 없었다. 사무실로 복귀했다고해서 조사분석업무가 끝난 것은 아니다. 현장조사는 사고 관련 흔적을 측량하는 기초조사 과정일 뿐, 사고당사자와 면담조사를 포함해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업무에 시작이었다. PC크래쉬, 마디모 등 수천만원을 넘나드는 고가의 사고재현 프로그램과 캐드 프로그램 등을 이용해 현장에서 확보한 기초자료를 대입해 사고현장을 도면화, 분석하기 시작했다. 일 자체가 워낙 전문적인 부분이라 연구원들 옆에서 설명을 들으며 지켜보는 수 밖에 없었다. 심 연구원은 사고의 원인을 도출하는데, 한 차량이 과속을 했다면 얼만큼 과속을 했는지도 파악을 해야한다고 귀뜸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김 연구원은 사실 오전에 현장에서 조사를 한 뒤 오후에 분석작업을 하는 것도 버거운데 경기도가 워낙 넓고 사람이 많다보니 하루 2건의 사고조사분석 업무를 진행할 때는 정말 진이 다 빠진다고 전했다. 캐드로 도면화시키는 작업을 보다보니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었는데, 사고재현 프로그램을 보니 이해가 빨랐다. 3D로 동영상으로 사고를 재현해주기 때문이다. 조사분석을 마치고 보고서를 작성, 경찰과 법원, 검찰에 보내줄 참고자료도 만들었다. 물론, 옆에서 연구원들이 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고개만 끄덕일 수 밖에 없었지만. 김 연구원은 영화나 미국드라마를 보면 사건, 사고를 조사 분석하는 모습을 화려한 영상미로 편집해 멋있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말 까다롭고 책임감이 무거운 일이라면서 우리가 조사분석한 자료가 법적인 구속력이 없더라도 국가가 공인한 참고자료로 법정 등에서 쓰이기 때문에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특히 어린이 교통사고를 조사분석하다보면 너무나 안타까운 일들이 많다면서 아이 부모의 슬퍼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사고원인을 냉정하게 규명해야 하다보니 마음도 무거워 지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하루종일(?) 뜨거운 햇볕 아래서 오랫만에 운동 아닌 운동을 하다보니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찝찝했다. 하지만 하루에도 수십, 수백건 발생하고 나와 내 가족, 친구들이 언제 교통사고로 인한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고 생각해보니 교통사고의 원인과 진상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주는 사고조사분석연구원들에 노력에 가슴만큼은 시원한 하루였다. 안영국기자 ang@kyeonggi.com

[1일 현장체험]'맑은샘 유기농 작목반' 일일 농사꾼

사실 어렸을 때부터 채소를 별로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반찬이나 찌개에 들어 있는 파나 양파는 골라내기 일쑤고 고기를 먹을 때도 상추는 손도 안 대고 깻잎 서너 장 깨작거릴 정도였다. 밥을 먹다가 편식을 한다고 엄마에게 꾸중도 많이 듣고 야단도 맞았지만 고쳐지지가 않았다. 맛도 없고 푸석푸석하게 느껴지는 채소를 왜 먹어야 하는지 모르겠고 억지로 먹이려고 하는 엄마가 야속한 적도 많았다. 그런데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어가면서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점점 젓가락이 채소를 향하게 됐다. 삼겹살을 상추에 싸먹으니 고기의 느끼함도 덜하고 상추의 달곰함도 느낄 수 있어 더욱 맛이 풍부해졌다. 맵기만 했던 풋고추의 알싸한 맛, 쓰다고 손을 내저었던 치커리나 적겨자 같은 채소의 개운한 맛까지 알게 됐다. 일부러 쌈밥 집을 찾아가 푸짐한 쌈 채소에 밥을 얹고 우적우적 씹는 재미도 즐길 수 있게 됐다. 왜 어렸을 때는 이 맛을 몰랐을까? 스스로 의아하기도 하고, 어려서부터 채소를 많이 먹었다면 더 건강체질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쉬움도 느껴졌다. 그래서였을까, 일일체험을 하게 됐을 때 망설임 없이 채소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는 유기농 쌈채소 농장 맑은 샘 유기농 작목반(남동구 남촌동)의 문을 씩씩하게 두드렸다. 지금이라도 채소를 가까이한다면 건강미인(?)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사심이 듬뿍 담긴 선택이었다. ■초보일꾼 반겨주는 푸근한 농심 농장일을 해본 적이 없던 기자는 지난 15일 청바지에 치렁치렁 늘어진 니트 티셔츠를 입은 채로 복장부터 불량하게 농장에 들어섰다. 운동화를 챙겨 신은 게 다행이었다. 변명을 하자면 농장에서 일 바지를 빌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베테랑 선배일꾼들은 이미 복장을 완벽히 갖추고 일터에 나선 터라 초보일꾼은 간신히 모자와 장갑만 빌린 채 바로 농장으로 투입됐다. 맑은 샘 유기농 작목반의 백학현 작목반장은 생각보다 일이 녹록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는 선배일꾼들에게 제대로 된 소개도 없이, 채소를 따는 방법도 가르쳐 주지 않은 채 기자를 비닐하우스로 밀어 넣었다. 비닐하우스로 들어서자마자 느껴지는 후끈한 열기에 숨이 막여왔다. 495㎡나 되는 하우스 안에는 적겨자들이 서로 손을 잡아달라 아우성이라도 치듯 풍성하게 잎을 벌리고 있었다. 선배일꾼들은 벌써 비닐하우스 끝에서부터 내다 팔 수 있을 만큼 자라난 적겨자를 따느라 분주했다. 안녕하세요. 오늘 신세를 지게 된 김미경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복장도 불량하고 본의 아니게 지각까지 한 기자는 송구스런 마음에 인사를 건넸다. 혹시라도 선배들 일하는 데 방해만 되지 않을까 지레 겁을 먹은 탓이다. 그러나 선배들은 아이고, 젊은 처자가 고생스러울 텐데라며 오히려 기자를 걱정해줬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적겨자 잎 따는 법 좀 가르쳐주세요라며 애교를 섞자 이파리가 손바닥만큼 자라난 것으로 골라 밑동이랑 작은 잎은 남겨두고 뜯어내면 된다고 친절한 설명이 뒤따라왔다. 하우스에는 남촌댁(75)과 김일라(70), 강화댁(77), 베트남에서 온 하이(33), 흥선(42) 등 선배들이 손발을 맞춰가면서 일을 하고 있었다. 서로 이름이 아니라 별명으로 부른다는 선배들에게서는 정겨움이 한껏 묻어났다. 선배들이 적겨자 잎을 따내 한 손에 차곡차곡 쌓았다가 하이에게 넘겨주면, 하이가 이파리 끝을 가위로 잘라내고 상자에 정돈해 4㎏씩 포장을 했다. 하이는 연방 선배들에게 할머니 주세요. 할머니 주세요를 외치며 일하는 속도를 조절해갔다. 손이 가장 느린 기자에게도 아가씨 주세요. 아가씨 주세요라며 재촉하기도 했다. 남촌댁 할머니는 언니라고 부르라고 시켜도 죽어도 할머니라고 부른다니깐이라며 살짝 투정을 내비치기도 해 하우스를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구멍 뚫린 이파리, 건강한 채소라는 증거 쭈그리고 앉아 한 시간도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덧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히고 이내 얼굴 선을 따라 흘러내렸다. 허리는 뻐근해지고 다리도 저릿저릿해지기 시작했다. 힘든 기색도 없이 옆에서 부지런히 손을 놀리는 남촌댁 할머니께 힘들지 않으세요?라고 어리석은 물음(愚問)을 하니 당연히 힘들지라는 답이 돌아온다. 그래도 벌써 6~7년 이 일을 하다 보니 힘든 것도 모르고 일을 할 만큼 이력이 생겼단다. 강화댁 할머니는 온종일 비닐하우스에서 일하고도 저녁때면 따로 텃밭을 일구러 갈 정도로 일벌레란다. 가장 힘들 때가 언젠지 물었더니 벌레가 많이 파먹어서 못쓰게 된 이파리를 따내 버릴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적겨자 이파리마다 조그맣게 송송 구멍이 뚫려 있다. 본적도 없는 자그마한 벌레들이 적겨자 위를 슬금슬금 기어다니는 모습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유기농 쌈채이기 때문에 농약을 치지 않아 벌레들이 마음 놓고 포식을 하고 있었던 거다. 작은 구멍은 괜찮지만 커다랗게 숭숭 구멍이 뚫리거나 잎을 파먹은 것들은 상품가치가 없어서 가차없이 잎을 뜯어내 버려야 한다. 적겨자 잎 예닐곱 개를 뜯어내면 한두 개는 버려야 한다. 초보일꾼에게도 마음이 아프고 아까웠다. 그래도 친환경 웰빙푸드답게 유기농 쌈채소에는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쓰지 않기 때문에 작은 구멍은 소비자들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는 신뢰의 표시라고 생각하자 이내 마음이 놓였다. 맑은 샘 유기농 작목반은 올해로 4년차에 접어든 인천 도심농가의 대표주자이지만, 쌈채소를 유기농법으로 재배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고 한다. 백학현 작목반장은 농사를 잘 짓는다고 소문난 곳이라면 전국 어디든 찾아가 노하우를 배워오고 직접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나름의 방법을 터득했다. 백 반장은 처음에는 농약을 쓰지 않으니까 채소가 병드는 걸 막는 게 가장 어려웠다며 벌레는 천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데 농약으로도 잡기 어려운 균을 유기농법으로 잡아야 하니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백 반장이 찾은 해결법은 이엠(EM)농법이다. 유용미생물을 이용한 이엠농법은 효모와 유산균 등 자연계에 존재하는 유익한 미생물을 수십 가지 섞은 원액에 쌀겨, 키토산 등을 배합해 만든 발효퇴비를 사용하는 것이다. 백 반장은 이엠퇴비는 토양이 가진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자연농법이라 토양을 튼튼하게 하고 채소가 병에 걸리지 않게 해준다며 3년 동안 땅 만드는 일을 했더니 1년 내내 작물을 재배할 수 있는 건강한 땅이 됐다고 설명했다. ■좋은 먹을거리 만드는 유기농 쌈채소 오후 5시께 끝이 없어 보이던 적겨자 이파리 따는 일을 대략 마무리하고 쌈채소를 포장하는 작업장으로 이동했다. 별로 도움도 안 된 것 같은데 선배들이 수고했다고 등을 두드려주니 매우 쑥스러웠다. 작업장에서 포장을 기다리는 품목은 깐 마늘과 상추. 마늘은 급하게 납품해야 하기 때문에 초보일꾼의 느긋한 손놀림을 봐줄 여유가 없다며 상추포장대로 보내졌다. 저울에 상추를 150g씩 정확하게 무게를 달아 상품포장을 하는 일이다. 몇 시간 동안 허리 아프게 적겨자 이파리를 땄던 생각을 하자 상추 잎 하나하나가 다 소중하게 생각됐다. 행여 잎이 다치거나 찢어지기라도 할까 조심조심 저울에 올려놓고 살살 봉투에 넣으니 속도가 날 리 없었다. 옆 자리 선배일꾼을 보니, 두어 번 손놀림에 상추 150g이 저울 위로 올라가고 3초 만에 포장이 뚝딱 완성됐다. 초보일꾼에게는 신의 손으로 보일 정도였다. 생활의 달인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자에 가지런히 담긴 상추는 농협 하나로 마트와 생협을 비롯해 GS마트 SM 마트, 롯데마트 등 대형 유통업체로 팔려나간다고 했다. 유기농 식품은 극심한 불황 속에서도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으로 손꼽히고 있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소득 수준도 올라가면서 좋은 먹을거리에 과감히 투자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친환경농산물 시장규모는 올해 3조 9천845억 원으로 전망되고 있다. 유기농 쌈채도 농약을 쓰지 않고 유기비료 등을 쓰기 때문에 생산비용이 많이 들어 가격이 조금 높은 편이다. 유기농의 장점을 잘 아는 소비자들은 가격장벽을 뛰어넘어 고정고객이 된다고 한다. 맑은 샘 유기농 작목반은 9명 농가가 모여 비닐하우스 28개 동을 운영하고 있다. 생산하는 채소만 30여 가지가 넘는다. 일반재배보다 채소가 1주일 이상 오래가는 것이 장점이다. 판매할 때는 개별 작물에 각각 생산자의 이름을 표기하는 생산실명제를 쓰고 있다. 쌈을 섞어서 포장할 때만 작목반 이름으로 출하한다. 평소에 시장이나 마트에서 채소를 살 때는 유기농이 너무 비싸다는 생각을 했는데 고작 하루도 안 되는 시간을 농장에서 보내고 나니 유기농 쌈채소 가격이 결코 비싼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로지 소비자에게 건강한 먹을거리를 제공하겠다는 일념으로 유기농을 고집하고 있는 농심(農心). 채소를 먹을 때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파리 하나라도 소중하게 먹어야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김미경기자 kmk@kyeonggi.com

[1일 현장체험]이삭 애견훈련소 애견훈련사

애완견을 키우는 가정이 기하급수적으로 늘면서 워낙 많은 견공들이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사람을 잘 따르는 예쁜 녀석들도 있지만, 간혹 주인 말을 잘 듣지 않거나 심지어 사람을 물기까지 하는 문제 견(犬)들도 존재하기 나름이다. 이러한 문제 견들이 입소해 짧게는 1개월에서 길게는 4개월까지 긴장감이 감도는 분위기 속에서 피나는 훈련을 받는 곳. 바로 애련 훈련소다. 평소 개를 무척이나 좋아하며 개띠이기도 한 기자는 화성의 한 애견훈련소 속으로 입소해 일일 애견훈련사를 자청했다. 귀여운 강아지들과 재밌게 놀다 오면 되겠지 이렇게 안이했던 기자의 어리석은 생각은 훈련소에 발을 디딘 지 불과 5분 만에 산산이 깨져버렸다. 엄한 훈련사들 앞에서 개들과 함께 뒤엉켜 이날 하루 혹독한(?) 훈련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경비견 롯트와일러 앞에서 사나이 체면 구기다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합시다. 지난 2일 오전 화성시 봉담읍에 있는 이삭 애견훈련소. 한 TV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하며 유명세를 떨친 애견훈련계의 대부 이찬종 소장(39)이 기자를 만나 처음으로 던진 말이다. 그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이 소장은 주변에 있던 후배 훈련사들에게 롯트와일러랑 셰퍼드, 리트리버, 골고루 몇 마리 가져와봐! 훈련사들로부터 전해 받은 조끼를 입고 그 위에 마치 앞치마 비슷하게 생긴 옷까지 착용한 기자는 순간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집채만 한 큰 검은색 개 한 마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를 발견하기라도 한 듯 기자를 노리며 으르렁 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녀석은 당장에라도 튀어나갈 준비를 하며 펄쩍펄쩍 날뛰고 있었다. 등에서 한줄기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경비견을 두려워하지 않으려면 보호장구를 착용하고 물려봐야 합니다. 자 이걸 착용하시죠! 여러 차례 거부했지만, 이 소장의 집요한 강요에 마지못해 왼쪽 팔에 두툼한 보호장구를 착용하고 오른손에 몽둥이를 들어 개를 자극했다. 아뿔싸! 순간 달려들며 팔을 덥석 문 녀석에 놀란 나머지 기자는 몸을 피하게 됐고, 날카로운 녀석의 이빨에 손등과 손목 부위를 물리고야 말았다. 피가 뚝뚝 떨어지며 비상사태가 발생했다. 얼마나 아팠던지 기자들의 방문에 아수라장이 된 훈련소 주변이 평온한 듯 한동안 아무 생각이 나질 않았다. ■꾸준한 반복과 주인의 강인한 마음 전달이 포인트 오후에 접어들어 본격적인 훈련에 돌입했다. 지난 2000년 4월 애견훈련계에 입문, 올해로 14년차 베테랑 애완훈련사인 이찬종 소장으로부터 몇몇 개들의 특성과 초보자인 기자가 할 수 있는 훈련방법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들었다. 이 소장은 인생의 절반 가까이 개와 함께 한 그야말로 개 전문가다. 개의 종류는 물론 성품과 특성까지 꿰뚫고 있었다. 서글서글한 인상에 친근한 이웃집 형님의 얼굴을 한 이 소장이 사나운 맹견 앞에서 앉아!, 엎드려!하고 외치면, 개들은 저승사자가 앞에라도 나타난 듯 순진한 어린아이의 표정을 지으며 행동으로 옮겼다. 사람 말을 듣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초보 애견사인 기자도 용기를 내 목줄을 잡고 지시했지만, 개들은 들은 척도 않고 외면할 뿐이었다. 하도 답답해 안 되겠다 싶어 훈련사로부터 먹이를 얻어 개들 앞에서 유혹(?)하기 시작했지만, 이번에도 먹이만 뺏길 뿐이었다. 이 소장은 개들이 지닌 습성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개에게 복종을 강조하기보다는 꾸준한 반복 교육과 주인의 강인한 마음이 개의 행동 변화를 가져오게 됩니다라며 개의 행동교정 핵심을 강조했다. 애견훈련사들에게 탁월한 관찰력과 강한 인내력이 요구되는 대목이었다. 사나운 개가 무서웠던 기자는 다소 온순한 리트리버종을 데리고 장애물 넘기에 도전했다. 장애물 훈련은 개가 훈련사 또는 주인과 함께하면서 주인에게 복종할 수 있도록 하는 훈련법이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목줄을 잡고 개를 통제시키는 것. 개가 장애물을 제대로 넘지 못하면 목줄을 세계 잡아 말을 듣게 해야 한다. 또 칭찬과 야단도 8대2의 비율로 적절히 섞어야 한다. 개가 잘했을 때는 칭찬을,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땐 바로 야단을 쳐야 한다. 이 소장으로부터 전수받은 훈련법이 어느덧 몸에 뱄는지 개들이 기자의 손에 이끌려 장애물을 넘기 시작했다. ■군데군데 물린 상처들, 청소와 정리까지 애견사들의 몫 훈련을 마칠 때쯤 우연히 본 이 소장의 손은 온통 개들한테 물린 상처 투성이었다. 우리 같은 훈련사는 하도 물려 이 정도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죠. 그것보다 큰 문제는 훈련사를 구하기가 쉽지가 않다는 거에요. 개들 곁을 돌봐야 하니 꼬박 24시간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하는데다 주말은 물론 자기 시간이 없어 젊은 사람들이 하려고 하질 않아요. 특히 1급 자격을 취득하는데 7~8년 이상 소요되는 탓에 버티질 못하죠. 애견 산업은 호황을 누리는 데 반해 훈련소 시장은 침체를 겪고 있다며 이 소장이 근심 어린 표정을 지으며 애꿎은 줄담배만 피워대기 시작했다. 그런데 왜 훈련사를 할까. 이 소장의 대답은 간단했다. 훈련소에 개를 맡겼던 주인들이 우리 개가 달라졌어요라는 말 한마디를 들을 때면 그 누구도 느낄 수 없는 최고의 성취감과 자부심을 느끼기 때문이죠. 정신없이 일정을 소화하다 보니 어느덧 늦은 오후가 됐다. 개만 훈련하면 될 줄 알았던 훈련사들의 일과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바로 훈련소 곳곳을 청소하며 뒷정리까지 해야 했다. 훈련사들과 함께 개들의 배설물을 치우고 뒷정리까지 끝낸 뒤에야 초보 훈련사의 하루 임무가 모두 마무리됐다. 오로지 애완견에 대한 무한 사랑으로 자신의 삶은 뒤로한 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땀 흘리는 그들은 진정한 프로였다. 권혁준기자 khj@kyeonggi.com 사진= 추상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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