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기리에 종영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라는 드라마가 있다.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변호사가 로펌에 입사해 각종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을 담은 드라마인데, 변호사들이 실제로 겪게 되는 여러 가지 상황들을 현실적으로 잘 반영했다는 평가를 받아 주변 변호사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았다. 등장인물 중 14년 차 정명석 변호사(강기영 분)가 한 대사 중 법조인들이라면 크게 공감할 만한 것을 소개한다. “14년 차 변호사로서 가장 난감한 게 뭔 줄 알아요? 의뢰인이 이미 서명날인 해 버린 문서예요. 이 처분문서가 얼마나 무서운지.”가 바로 그것이다. ‘처분문서’가 무엇이기에 법조인들을 난감하고, 무섭게 만드는 것일까. ‘처분문서’란 증명하고자 하는 법률행위가 그 문서 자체로 이뤄진 문서로서 각종 계약서, 합의서, 각서, 유언서 등을 말한다. 이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보고문서’가 있는데, 작성자가 보고, 듣고, 느끼고, 판단한 바를 기재한 문서로서 대표적인 예로 일기, 편지 등이 있다. 처분문서와 보고문서는 위와 같이 개념적으로 차이가 있지만, 그보다도 법정에서 ‘문서의 증거력’ 즉, 그 문서가 요증사실의 증명에 기여하는 힘에서 아주 큰 차이가 있다. 문서의 증거력은 그 문서가 진정하게 작성됐음을 의미하는 형식적 증거력과 그 문서가 요증사실을 증명하는데 기여하는 정도를 의미하는 실질적 증거력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처분문서는 그 문서가 진정하게 작성됐음이 인정돼 형식적 증거력이 인정되면, 실질적 증거력이 사실상 추정된다. 결국, 진정성립이 인정되는 이상 법원은 그 문서에 기재된 내용대로 법률행위의 존재와 내용을 인정해야 하고, 합리적인 이유 제시 없이 이를 배척해서는 안 된다. 반면, 보고문서는 그 문서가 진정하게 작성됐음이 인정돼 형식적 증거력이 인정되더라도 실질적 증거력이 추정되지 않고, 법관의 자유심증으로 판단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처분문서의 기재 내용과 다른 약정이 인정될 경우 ‘그 기재 내용과 다른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작성자의 법률행위를 해석할 때에도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에서 자유로운 심증으로 판단할 수 있다(민사소송법 제202조, 대법원 2006년 4월13일 선고 2005다34643 판결 등 참조)’고 판시한 대법원 판례가 있지만, 위와 같이 진정성립이 인정된 처분문서의 실질적 증거력이 배척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결국,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정명석 변호사가 ‘의뢰인이 이미 서명날인 해 버린 문서’를 난감하고 무서운 것으로 본 이유는 형식적 증명력이 부여된 처분문서는 실질적 증거력이 추정되므로 사실상 재판에서 그 문서에 기재된 내용과 다른 사실관계를 주장할 수 없기 때문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정다솔 변호사/법무법인 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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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일보
2022-10-19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