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서커스 같은 실내악 ‘살뤼살롱’

정말, 2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 줄도 몰랐다. 지난 10일 오산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독일의 여성 4인조 실내악단 살뤼살롱의 무대 말이다. 한번 지루해지기 시작하면 끝도 없는게 실내악이다. 객석에서 프로그램북에 나열된 곡을 세며 언제 끝나나 시간을 재고 앉았을 정도로 몰입이 안 되는 공연도 많다. 반면 살뤼살롱은 실내악도 이렇게까지 재미있어질 수도 있다는 예능적 가능성을 보여줬다. 바이올린과 첼로, 피아노 등의 4중주로 편성된 이들의 연주는 자못 진지하게 시작됐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추모를 하고 싶다며 박수를 치지 말아달라는 부탁과 함께 시작한 피아졸라의 천사의 부활은 내내 엄숙한 분위기였다. 그렇게 숙제(?)를 마친 4인방은 빠르고 섬세한 연주가 돋보이는 헝가리 무곡을 시작했다. 공연 중반에 첼로 주자인 소냐 레나 슈미트의 얼굴에 장난기가 비치더니 몸을 뒤로 꺾고 첼로를 연주한다. 그러더니 모두가 몸을 활처럼 뒤로 꺾었다. 그때부터는 무대위에서 서커스판이 벌어졌다. 바이올린을 연주하던 안겔리카 바흐만과 이리스 지그프리트가 첼로 연주자에게 다가가서 자신의 활로 연주를 함께 하는가 하면 팔을 뒤로 꺾어서 활을 켜는 등 신기에 가까운 연주를 이어갔다. 그런데 음정하나 틀리는 법이 없었다. 샐 곳 없이 탄탄한 연주력이 뒷받침된 묘기였다. 그들의 5번째 멤버 오스카(인형)도 깨알같은 재미를 선사했다. 남성연주자의 모습을 한 이 인형은 단원 중 한명이 팔로 조종하면서 피아노 연주나 첼로 연주를 하도록 해 관객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앵콜곡에서는 안네 모니카 폰 트바르돕스키의 신기에 가까운 피아노 누워서 치기와 바이올린처럼 첼로 연주하기 등 서커스의 절정을 이루더니 마지막에는 이날 협연에 참여했던 오산 물향기 엘시스테마 오케스트라와의 아리랑 협연으로 관객에게 보답했다. 물론 모든 실내악 공연이 엔터테인먼트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이번 연주회는 클래식 문외한도 정통 실내악과 한걸음 가까워질 수 있도록 가교 역할을 했다고 평가하고 싶다. 박성훈기자 pshoon@kyeonggi.com

[공연리뷰] 도립무용단 ‘우리춤비상하라-고이접어 나빌레라’

무대 위에 11개의 목련꽃잎이 떨어져 있었다. 진짜 꽃잎이 아니다. 하늘거리는 아이보리색 의상을 입은 무용수들이 원을 그리며 엎드러져있는 모습이 마치 그래보였다. 잔잔한 가야금산조와 함께 무대 한가운데 조명이 떨어졌고 그곳에서 꽃잎 한떨기가 일어나 부드러운 움직임이 시작됐다. 이윽고 다른 꽃잎들도 서서히 일어섰다. 이들은 서서히 산들바람에 흩날리듯 춤사위를 이어갔고, 속도를 더하다가 다시 잔잔해지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다시 바닥에 살포시 엎드러졌다. 꿈속에서 한떨기의 꽃을 본 듯한 이 작품은 지난 19일 경기도문화의전당 아늑한소극장에서 상연된 시리즈 공연 우리춤 비상하라-고이접어 나빌레라에서 경기도립무용단이 처음 선보인 수련몽이다. 지난달 시작된 시리즈 공연 우리춤 비상하라-고이접어 나빌레라는 우리 전통 넌버벌퍼포먼스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공연은 화려한 궁중복색을 차려입은 9명의 단원의 격조있는 춤사위와 발디딤새로 시작해 남성 단원의 박력있는 양손 북연주가 함께하는 진도북춤으로 분위기를 한껏 격앙시켜나갔다. 모두 전통무용이다. 한의 정서를 하얀수건으로 표현한 살풀이 춤과 꽃부채 군무가 인상적인 부채춤, 우리 여인의 흥을 장고로 표현한 장고춤 등 도립무용단의 레퍼토리도 인상적이다. 수련몽과 함께 이번 공연에서 첫 선을 보인 창작무 신(神), 춤내림에서는 전통무용의 현대적 해석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모습이었다. 도립무용단의 박지혜 수석단원과 남정은, 최민정 단원이 출연한 이 작품은 신의 뜻을 거스르려다가 결국 운명을 받아들이고 마는 한 인간의 모습이 서사적으로 그려졌다. 서양악기와 전통악기가 어우러진 몽환적인 연주와 방울소리, 세차게 부는 바람소리 등을 배경으로 한 3인무는 무속세계에 귀의하기에 앞선 인간의 갈등을 자연스럽게 묘사하고 있었다. 공연은 남성 무용단원 5인의 신명나는 타악 연주가 어우러진 모듬북 공연으로 좌중의 박수갈채를 자아내며 막을 내렸다. 지난달 동남아시아 3국 초청공연을 통해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명제를 실천해보인 도립무용단의 이번 시리즈 공연은 오는 7월12일과 8월30일, 9월20일 등 3차례의 일정을 앞두고 있다. 박성훈기자 pshoon@kyeonggi.com

[공연 리뷰] 연극 ‘날숨의 시간’을 보고

주인공이 꿈을 이룰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지난 18일 경기도문화의전당에서 상연된 연극 날숨의 시간을 관람하고 나온 한 북한출신 관객의 말이다. 경기도립극단의 초연작인 작품은 뮤지컬 배우를 꿈꿨던 북한 출신의 주인공 미영미선 자매가 사선을 넘어 우리나라에 들어왔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쳐 결국 화류계에 몸담게 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야시시한 한복을 입은 두 자매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다가 서서히 암전되는 장면은 이들의 인생역정이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데 따른 안타까움이 그대로 묻어난다. 그래서 많은 관객들이 눈물을 흘렸다. 해피앤딩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하지만 인생이란 게 마냥 해피할 수도 없는데다, 애초부터 북한이탈주민이 꿈을 접고 힘들게 살아가는 모습을 작정하고 보여줄 요량이었다면 이들이 꿈을 성취하는 모습은 오히려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극중 주인공들의 삶은 억세게 좌절을 거듭한다. 북한이탈주민들이 물정에 어두워 돈을 모았다가 사기를 맞기도 하고, 사장과 동료들의 냉대로 직장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회사를 그만두는 것처럼 말이다. 연극은 이처럼 첩첩산중 같은 북한이탈주민의 삶에 주목한다. 극의 초반부는 탈북과정의 세밀한 긴박감을 묘사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한다. 10여 명의 북한이탈주민 역 배우들이 객석의 암전 속에서 무대를 기어오르며 등장하는 장면은 마치 새벽기습을 위해 참호에서 조심스레 뛰어오르는 일련의 분대와 같은 인상을 준다. 조심스레 무대로 들어온 이들은 총소리가 난무하자 머리를 감싸쥐고 바닥에 엎드리기도 하고 무대를 이리저리 누비며 대화를 최소화한 마임 연기로 탈북과정을 보여준다. 무대는 아무렇게나 놓인 듯한 덧마루만으로 구성됐다. 아무런 꾸밈 없이 여기저기 층층이 놓인 덧마루들은 때로는 산악이나 밀림, 은신처로 활용됐고, 때에 따라선 보트, 트럭으로 변신하기도 했다. 하지만 제대로 고정되지 않은채 층층이 쌓여진 덧마루들은 배우들의 격한 움직임 속에 덜컹거리며 불안한 모습이었다. 배우들이 연기 도중 덧마루가 쓰러지거나 잘못 헛디뎌 다치지나 않을까 마음을 졸인 것은 필자 뿐은 아닐 것이다. 박성훈기자 pshoon@kyeonggi.com

[공연리뷰]경기필 부활 알린 성시연 단장 취임연주

과연 성시연이었다. 지난 27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울려퍼진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말러 교향곡 2번 부활 연주는 그녀의 지휘력을 유감없이 보여준 공연이었다. 단 한곡의 심포니만으로 승부해야 하는, 쉽지 않은 도전이었으나, 성 단장은 1시간30분의 러닝타임 동안 200여명의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하나로 응집해 청중의 귀를 사로잡았다. 보무당당한 발걸음으로 무대에 등장한 그녀는 흡사 전장에 나서는 투사와 같은 강인한 인상을 풍겼다. 이윽고 지휘봉을 든 그녀는 장엄한 현악 연주로 대장정의 서막을 알렸다. 관객들은 연주 내내 숨쉬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을 만큼 깊은 몰입에 빠져들었다. 25분이 소요되는 첫 악장 연주가 끝나자 장중에는 오랜 시간 참았던 숨을 터뜨리는 듯한 한숨과 기침소리가 들려왔다. 그 사이 소프라노 이명주와 메조소프라노 김선정이 100여명의 국립합창단서울시립합창단과 함께 입장했다. 줄곧 무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하던 두 히로인은 짙은 자주빛과 눈부신 은색 드레스로 죽음과 생명의 대비를 시각화시켰다. 이들은 4악장부터 공연 후반부까지 신성에 대한 원초적 갈망과 최후의 심판, 영생 등을 독창과 합창으로 들려줬다. 클라이막스에서는 금관악기와 타악기가 어우러진 앙상블이 단연 돋보였다. 금관악 파트 단원 서너명이 줄곧 반쯤 열려있던 무대 출입구를 수시로 오갔다. 퇴장한 단원들의 무대 뒤 연주는 마치 먼 곳에서 아득하게 들려오는 신의 목소리를 연상케 했다.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를 표현하기 위한 나름의 연출이다. 나는 쟁취한 날개를 달고 높이 날아오르리라란 가사로 시작된 종국에 이르러서는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두 솔로의 에너지가 한꺼번에 폭발했다. 연주가 끝나자 공연 내내 숨죽였던 좌중에서는 힘찬 기립박수와 함성이 연신 터져나왔다. 시종일관 긴장을 늦추지 않던 성 단장도 5번째 커튼콜에서는 미간을 펴고 환한 미소를 보였다. 취임 연주에 대한 부담감을 훨훨 날려보내는 미소였다. 지난해 7월 지휘자 공백 사태로 돌연 취소된 이래 숙제처럼 남아있던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말러교향곡은 이렇듯 성대한 부활로 마무리됐다. 박성훈기자 pshoon@kyeonggi.com

[공연리뷰]세계의 관문에서 울려퍼진 ‘국악의 향연’

조금 지난 일부터 얘기를 꺼내려 한다. 지난해 12월27일 경기도문화의전당에서는 국악 송년음악회가 열렸었다. 사노라면이란 주제로 소리꾼 장사익과 경기도립국악단이 함께 무대에 올랐었다. 소리 인생 20년만에 한국을 대표하는 명창의 반열에 오른 7집 가수 장사익. 그를 도립국악단의 무대에 세우기 위해 조경환 국악단 기획실장은 국내는 물론 일본 등지까지 찾아가는 삼고초려도 마다하지 않았다고 한다. 결과는 전석 매진이었다. 국악단의 웅장한 연주와 장사익의 찔레꽃 처럼 살았지하는 절절한 노래자락을 듣던 수많은 중장년들이 눈물을 훔쳤다. 그렇게 둘은 관객의 머릿속에 환상의 콤비로 각인됐다. 그리고 3개월. 지난 26일 오후 4시 인천국제공항의 오픈 무대인 밀레니엄 홀에서 장사익과 경기도립국악단이 다시 만났다. 개항 13주년을 맞아 열린 오케스트라 페스티벌의 첫 무대였다. 인천공항은 세계로 통하는 관문이다. 지난 공연이 지역민을 위한 자리였다면, 이번은 세계인을 상대로 국악의 우수성을 알릴 절호의 기회였다. 반드시 정돈된 프로시니엄일 필요는 없다. 탁트인 무대에서 국악의 향연이 공항 터미널에 널리널리 울려퍼질 수만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공연은 국악단원들의 관현악 연주만으로 구성된 아리랑으로 막을 올렸다. 간드러지는 해금 소리로 차분하게 시작된 연주는 절정으로 갈수록 속도와 웅장함이 더하더니 종국에는 김응호 악장의 가는 대금소리로 깊은 여운을 남기며 끝났다. 김미영 단원의 해금 협주곡 추상은 절로 듣는 이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고, 종달새가 지저귀는 듯한 윤은화 단원의 목금 연주는 공항을 자연 속으로 탈바꿈시켰다. 오색 한복을 입고 등장한 명창 최근순 선생 등 단원 5명은 긴아리랑, 창부타령, 경복궁 타령 등을 들려줬다. 능수능란한 발림과 아니아니 놀지는 못하리라 하는 가사 속에 좌중은 어깨춤을 들썩거렸다. 그리고 하얀 도포차림의 장사익이 등장하자 객석은 그야말로 흥분의 도가니였다. 공연장 주변 바인더에도, 윗층 난간에도 군중들이 빼곡이 몰려들었다. 그가 티끌 같은 세상, 이슬 같은 인생으로 운을 뗀 뒤 봄날은 간다, 찔레꽃을 연달아 부르는 사이 객석 분위기는 클라이막스로 끓어올랐다. 가슴 깊은 곳에서 끌어올리는 듯 토해내는 장사익의 절창(絶唱)과 국악단의 열정 넘치는 연주는 한국인은 물론 외국인까지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기력을 쏟아내느라 이마에 땀이 맺힌 장사익에게 김재영 지휘자가 손수건을 건넸다. 앵콜이 쏟아졌고, 국악단과 장사익은 아리랑으로 화답하면서 장중은 하나가 됐다. 넋을 잃고 협연을 지켜보던 다양한 인종의 외국인들도 음정을 흥얼거리거나, 엄지를 추켜세우며 브라보를 연발했다. 그렇게 장사익과 도립국악단은 국악을 세계에 전파하고 있었다. 박성훈기자 pshoon@kyeonggi.com

[공연리뷰]수원SK아트리움 개관기념 페스티벌 ‘손열음 피아노 리사이틀’

시간이 정지한 듯 했다. 대공연장을 가득 메운 1천여 명 관객은 숨을 죽인 채 파이니스트 손열음이 안내하는 스트라빈스키, 페트루슈카의 세 개의 악장 속으로 침잠했다. 거대한 오케스트라에 둘러싸여 있어도 특유의 개성과 빛을 잃지 않았던 이날 무대에는 스타인웨이 피아노 한 대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러나 그 어느 때보다도 공연장의 무대와 객석은 꽉 차고 넘쳤다. 차분함과 열광이 함께 했던 이날 공연은 개관 기념 페스티벌이 열리는 8일 밤 수원SK아트리움 대공연장. 이미 한국을 대표하는 피아니스트로 인정받으며 뉴욕 필, 체코 필, 도쿄 필 등 세계적인 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협연한 그녀였다. 이 같은 명성으로 음악계 인사는 물론 클래식 애호가와 시민의 폭발적 관심으로 950개의 객석은 이미 만석을 이뤘다. 이날 공연의 백미는 2부 곡으로 연주된 스트라빈스키, 페트루슈카의 세 개의 악장 이었다. 다소 차분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던 1부곡 거슈윈, 프렐류드 No.2 안단테 콘 모토 에 포코 루바토, 라벨, 쿠프랭의 무덤과는 사뭇 달랐다. 러시아의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가 1912년 작곡한 이 곡은 당대 러시아 발레단의 천재 기획자인 세르게이 디아길레프를 위한 발레곡이었다. 영혼을 지닌 불행한 광대 인형 페트루슈카의 음울하면서도 환상적인 이야기와 감정을 살린 높은 난이도를 지닌 난곡 중 난곡으로 평가받는 곡이다. 러시아 춤으로 시작해 페트루슈카의 집을 거쳐 사육제의 주간으로 끝을 맺는 이 곡은 무한한 기교와 광범위한 레퍼토리를 구사하는 손열음을 표현하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이날 2부 공연의 끝 곡으로 고도프스키, 요한스트라우스 2세의 와인과 아가씨 그리고 노래 왈츠 교향적 변용이 흘렀다. 이날 정규 공연이 끝나고 사제의 정을 느낄 수 있는 훈훈한 무대도 이어졌다. 4차례에 걸친 커튼콜에 화답하듯 손열음은 리스트,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초절기교 연습곡 중 제3곡 라 캄파넬라 연주를 마친 뒤였다. 관객의 박수에 끌리듯 무대 앞으로 다시 나온 손열음은 객석을 향해 말했다. 이렇게 훌륭한 공연장을 가지게 된 수원시민들에게 진심으로 드리며, 이 곡을 평생의 은사인 김대진 수원시향 지휘자에게 바친다고. 그 뒤로 엘가의 사랑의 인사가 객석의 분위기를 봄의 기운으로 이끌었다. 열정적이면서도 차분한 공연이었다. 박광수기자 ksthink@kyeonggi.com

[공연리뷰]낭만의 도시 ‘프라하’ 뜨겁게 달군 수원시향

박수는 좀처럼 멎을 줄 몰랐다. 지난 11일 밤 10시30분. 체코 프라하 드보르작홀을 가득 메운 1천200명의 청중이 하나가 돼 손벽을 쳤다. 이윽고 김대진 수원시립교향악단 지휘자가 무대 중앙에 섰다. 두 시간 동안 이어온 공연을 끝낸 뒤 박수를 받으며 무대 뒤로 퇴장했다가 다시 무대 앞에 나와 인사하길 벌써 3차례나 반복한 다음이다. 드디어 앙코르를 들려주기로 결심한 모양이다. 곧 차이코프스키의 발레모음곡 백조의 호수가 낭랑하게 울려 퍼진다. 수원시립교향악단이 낭만의 도시, 체코 프라하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지난 7일 오스트리아 빈 무직페어라인과 9일 헝가리 부다페스트 이태리 문화원 공연을 마친 3번째 유럽 순회공연을 통해서다. 전체적인 레퍼토리는 앞선 무대와 비슷했다. 하지만 이번 공연은 1부 협주곡 협연자의 변화가 있다. 지난 공연에서 신들린 기교와 화려한 미감을 선보인 피아니스트 손열음에 이어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인 김소옥이 새로운 협연자로 나선 것. 이날 수원시향과 김소옥이 함께 선보인 협주곡은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라장조 작품 35다. 전체 연주 시간 중 3분의 1가량이 바이올린 독주일 정도로 상당한 기교와 체력을 요구하는 어려운 곡이다. 짙은 붉은색의 드레스를 입고 나온 김소은은 수원시향과 어우러져 공연을 매끄럽게 이어갔다. 장중한 오케스트라 연주와 김소은의 화려한 독주가 서로 주고받듯 번갈아 흐르며 곡도 절정으로 치달았다. 3악장으로 구성된 협주곡이 끝나자 화려하고 아름다운 공연에 화답하는 듯 무대 밖에서 두 개의 꽃다발이 김대진 지휘자와 김소은에게 전해지기도 했다. 10분간의 인터미션을 거친 뒤 이어진 2부 공연은 지난 공연과 동일한 레퍼토리로 진행됐다.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제4번 바단조 작품36. 이번 연주 역시 호연이었다. 연주를 이루는 현의 일사 분란함과 관의 노도 같은 폭풍은 4악장에서 폭발했다. 활 대신 현을 손으로 튕기는 주법인 피치카토가 지배하는 3악장에서의 리듬감은 춤추듯 지휘하는 김 지휘자의 제스처만큼이나 활달했다. 모든 연주가 끝난 후에도 감동을 나누며 자리를 뜨지 못하던 관객은 기립박수와 앙코르를 환호하여 연주회의 감동을 표현했다. 이날 앙코르는 백조의 호수 정경에 이어 차이코프스키 호두까기인형 꽃의 왈츠, 요한스트라우스2세의 피치카토 폴카 등 모두 3곡이 연주됐다. 앞선 공연보다 앙코르가 1곡 더 늘어난 셈이다. 이날 뜨거웠던 공연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한편, 수원시향은 오는 12일(현지시각) 오후 7시 30분 독일 뮌헨 헤라클래스 홀 공연을 끝으로 유럽 4개국 순회공연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체코 프라하=박광수기자 ksthink@kyeonggi.com

[공연리뷰]성시연 부임 첫 프리뷰, 중압감 속 열정 돋보여

분명 적쟎이 떨렸을 것이다. 지난 18일 경기도문화의전당 행복한대극장에서 열린 경기필하모닉 프리뷰 콘서트 무대에 섰던 성시연 지휘자 말이다.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예술감독으로서는 첫 무대여서 중압감이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두번째 프로그램이었던 라벨의 어미거위 모음곡을 마치고 관객의 박수 속에 솔로연주를 맡았던 정하나 악장과 성인선 비올라 수석을 따로 일으켜세워 소개하는 것을 잊었을 정도다. 성 지휘자는 솔로연주를 맡은 단원은 따로 소개를 하는게 에티켓인데 깜박했다. 그래서 무대 뒤에서 따로 미안하다고 얘기했다면서 머쓱해했다. 하지만 이같은 중압감이 무색하게도 그녀의 지휘는 당당했다. 무대에 등장할 때의 당찬 걸음걸이에서부터 풍겨오는 카리스마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객석을 향해 질끈 묶은 머리채를 휘날리며 두 팔을 크게 벌렸다가, 손을 낮췄다가, 때로는 허리가 휘청할 정도로 원을 그리며 지휘봉을 휘젓는 그녀의 열정은 수십명의 오케스트라 단원의 연주를 하나의 하모니로 응집했다. 공연의 시작을 알린 것은 폴 뒤카의 교향시 마법사의 제자였다. 그녀의 지휘봉이 움직이자 플룻과 오보에를 중심으로 연주가 시작됐다. 저음에서 고음으로 물흐르듯 연주가 이어지는 동안 늙은 마녀의 어린 제자가 장난기 어린 마법을 부리는 모습이 뇌리에 그려졌다. 이어진 모리스 라벨의 어미거위 모음곡에서도 성 지휘자와 오케스트라가 빚어내는 섬세한 서술적 묘사는 계속됐다. 세번째 프로그램 모차르트의 교향곡 린츠부터는 경기필의 음악적 진가를 보여주기 위한 노력이 눈에 띄었다. 교향곡 린츠는 모차르트가 오스트리아 린츠 방문하면서 시민의 환대에 부응해 4일만에 작곡한 곡으로, 이번 프리뷰 콘서트와는 경기필이 지휘자 부임 후 17일만에 보여준 곡이란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특히 후반부 현악 합주는 객석의 흥을 북돋우기에 충분했다. 마지막 프로그램인 교향시 돈주앙은 이 곡을 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올해 탄생 150주년을 맞는다는 의미에서 경기필이 한해동안 보여줄 주요 레파토리의 시작으로 해석된다. 모든 공연이 끝나고 객석에서는 브라보가 연신 터져나왔다. 무대위의 단원들도 만면에 미소를 띤 채 활대를 흔들고 발을 구르며 화답했다. 이번 프리뷰 콘서트는 그렇게 축제로 마무리됐다. 오는 3월27일 예정된 경기필의 137회 정기연주회에서도 다시한번 축제가 이어질지가 주목된다. 박성훈기자 pshoon@kyeonggi.com

[공연리뷰]‘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

대중문화와 고급문화가 충돌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문화예술계에서는 퓨전이란 이름으로 고전문화에 대중적 요소를 접목한 다양한 시도가 이뤄져왔다. 서구사회에서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던 오페라와 대중음악이 만나 팝페라란 새로운 장르가 탄생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 23일 경기도문화의전당에서 상연된 넌버벌 퍼포먼스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는 지난 2005년 초연 당시 대중문화로 상징되는 비보이와 고급문화의 대명사 발레가 만났다는 점에서 강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작품 중 하나다. 미국의 슬럼가에서 시작돼 대중문화의 주요 장르로 자리잡은 힙합은 쉽게 관객의 집중을 흡입하듯 끌어모으는 매력이 있다. 빠르고 리드미컬한 퍼포먼스가 곁들여진 비보이가 결합하면 그 시너지는 더욱 폭발한다. 여기에 정적이면서도 우아한 동작의 발레가 결합해 보는 재미를 배가시킨다. 작품의 줄거리는 비교적 단순하다. 우연한 계기로 비보이를 짝사랑하게 된 발레리나가 프리마돈나라는 자신의 꿈을 버리고 비보이의 세계에 합류한다는 내용이다. 스토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작품은 발레와 비보이의 대결에서 비보이의 완승을 선언한다. 작품 전반에서 발레의 우아한 아름다움을 표현한 장면은 극히 일부에 국한되고, 비보이의 현란함을 강조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이 할애한다. 분위기도 그렇다. 힙합광장에서는 화려한 퍼포먼스가 이어지고 활기찬 분위기가 연출되지만 발레리나 연습실에만 들어서면 내면의 갈등이 가득한 고뇌만이 이어진다. 그래서 이런 의문도 든다. 비보이가 발레리나를 보고 사랑에 빠져 발레리노가 되는 스토리는 왜 안 될까? 무대 위에서 비보이들에 의해 웃음거리와 배척의 대상이 되는 발레리나의 모습은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한다. 한편, 작품이 상연되는 동안 객석 분위기는 자유로웠다. 휴대전화는 잠시 꺼달라고 요청하는 여느 공연과 달리 주최측은 공연 중 전화통화를 해도 좋다고 알린다. 심지어 공연 장면을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려주면 감사하겠다는 말까지 잊지 않았다. 힙합의 자유로움을 그대로 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이 자유로움을 프로시니엄 형태의 대극장에서 모두 담아내기에는 버거워보이는 아쉬움도 남는다. 무대와 관객의 거리를 바짝 좁힌 소극장이나, 마당극이 열리는 광장 형태의 공연장이었다면 더 활발한 소통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박성훈기자 pshoon@kyeonggi.com

[공연리뷰]감상 에티켓 아쉬웠던 주미강·손열음 듀오콘서트

관객들의 반응은 때에 따라서 무대에 선 연주자들을 더욱 신명나게 연주할 수 있도록 독려하기도 하지만, 몰입에 오히려 방해 요소가 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14일 안산문화예술의전당 달맞이극장에서 열린 클라라 주미 강과 손열음의 듀오콘서트 판타지 포 투(Fantasy For Two)는 과연 연주자들이 최상의 컨디션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공연이었는지 의문을 품게 만든다. 바이올리니스트 주미 강과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협연은 세계 클래식계의 거목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큰 기대주들의 만남이란 차원에서 문화계의 상당한 이목을 끌었던 게 사실이다. 지난 7일 이후로 거의 하루도 쉬지 않고 전국을 순회한 스케줄 탓에 피로가 쌓였을 수도 있겠지만 이들의 연주는 관객들의 열렬한 호응을 자아냈다. 하지만 관객의 호응도 타이밍이 중요하다. 박수가 나와야 할 때가 있고 침묵을 지켜줘야 할 때가 있는 것이다. 통상 악장 간에는 출연자가 연주에 집중할 수 있도록 박수를 치지 않는 게 에티켓이다.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소나타 작품번호 27번에서 느린 연주와 빠른 연주를 한꺼번에 소화한 첫악장이 끝나고 변주곡으로 넘어가려던 참이었다. 악보를 살펴보고 피아노 의자 높이를 조정하는 인터벌이 긴 탓이었는지 갑자기 박수가 터져나왔다. 악장과 악장 사이 박수는 이후에도 계속됐다. 후바이의 카르멘을 연주할 때에는 한창 연주가 진행 중인데 박수가 나오기도 했다. 한창 곡에 몰입하던 연주자가 깜짝 놀랄 일이다. 팬심이 앞선 반응이었다고 생각하고 싶지만, 프로그램에 대한 이해가 있었는지를 의심케 하는 대목이었다. 계획된 프로그램이 모두 끝나고 앵콜곡으로 바찌니의 고블린의 춤을 한창 연주할 때였다. 주미강의 바이올린이 텅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줄이 끊어지고 말았다. 함께 연주하던 손열음도 무척이나 당황하는 기색이었다. 멋쩍은 웃음과 함께 퇴장한 두 연주자의 뒤로 관객들의 박수가 터져나왔다. 격려의 박수까진 좋았다. 그런데 박수 소리는 서서히 무대를 비운 연주자들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결국 주미강은 곧바로 무대에 등장해 관객 앞에서 바이올린에 현을 연결해야 했다. 급하게 바이올린을 다루는 잰 손길이 오히려 애처럽게 느껴졌다. 앵콜곡 연주까지 끝난 뒤 커튼콜이 이어졌고 주미강과 손열음이 재등장했지만, 그 와중에 자리를 벗어나 출입구를 향하는 일부 관객들의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씁쓸함을 남겼다. 박성훈기자 pshoon@kyeonggi.com

[공연리뷰]프로정신 보여준 ‘파리나무십자가 소년합창단’

11일 경기도문화의전당 행복한대극장에서 열린 파리나무십자가소년합창단 공연에서 있었던 일이다. 감색 스웨터와 반바지에 하얀 양말을 신은 말끔한 차림의 소년 합창단원 24명과 지휘자 끌로띨드 세베르가 무대에 올라 환상의 하모니를 들려줬다. 그러다 1부 막바지의 샹송 메들리인 파리-파남므(Paris panam)를 부르던 도중 맨 뒷쪽 열에 서 있던 단원 한명이 갑자기 휘청거리더니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옆에 서 있던 단원이 부축해주려 했지만, 공연 중에 벌어진 일이라 합창단원도 관객도 모두 당황스러운 순간이었다. 당연히 객석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단원의 건강을 걱정하는 목소리와 함께 이대로 공연이 끝내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우려도 들려왔다. 그러나 이를 본 세베르 지휘자는 합창을 중단하고 쓰러진 단원을 살펴보기 위해 단상 뒤로 이동했고, 당황하던 합창단원들을 눈빛과 몸짓으로 진정시켰다. 다행히도 119 구급대와 공연을 관람하던 경기도립의료원 의사가 단원의 상태를 살핀 결과 쓰러진 단원의 건강에 이상은 없다는 것을 확인시키면서 불안한 기류는 안정을 되찾았다. 이 공연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사고 후에도 공연을 정상적으로 진행한 지휘자와 단원들이다. 세베르 지휘자가 다시 파리 파남므를 지휘하기 시작했을 때만해도 관객들은 불안한 심정으로 공연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 15분간의 인터미션에서도 관객의 관심사는 쓰러진 단원에게 초점이 맞춰졌던게 사실이다. 2부 공연에서는 단원 1명이 빠진 채 없이 진행됐지만 하얀색 성의를 입고 무대에 등장한 단원과 세베르 지휘자는 준비한 퍼포먼스와 합창곡을 무사히 소화해 박수갈채와 환호가 쏟아졌다. 세베르 지휘자는 공연이 끝나고 앵콜곡을 부를 때에는 쓰러졌던 단원을 무대로 다시 데려나와 인사를 시킨 뒤 마지막 합창에 참여시켜 관객들에게 또다른 감동을 안겨줬다. 진정한 프로페셔널의 능력은 위기 상황에서 빛을 발한다는 것을 파리나무십자가 소년합창단 지휘자와 단원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박성훈기자 pshoon@kyeonggi.com

[공연리뷰]‘경기아츠컴퍼니페스티벌’ 절반의 성공

무용극부터 국악 연주, 연극, 오케스트라 음악회까지 다양한 종합예술을 선보인 2013 경기아츠컴퍼니페스티벌. 경기도립예술단의 진면모를 보여주기 위한 경기도문화의전당 측의 노력이 단연 돋보였던 축제였다. 하지만 기존에 선보였던 각 예술단의 대표 레퍼토리를 나열하는데 그친데다, 예술단원들의 야외 무료 공연은 무질서한 객석 운영과 어린이 관객을 배려하지 않은 아슬아슬한 장면 노출 등 미숙해 아쉬움을 남겼다. 지난 4~12일 약 8일간의 축제기간 동안 경기도문화의전당은 관람객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축제의 시작을 알리며 첫 무대를 장식했던 경기도립무용단의 무용극 태권무무 달하 공연은 대극장의 전석을 가득 메울 정도로 세간의 관심을 시사했다. 여전히 곡선과 직선으로 각각 상징되는 전통무용과 태권도가 물과 기름처럼 겉도는 모습이 씁쓸했지만, 우리 민족의 기원을 형상화한 전통무용단의 기예는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경기도립국악단은 해외 민속음악과의 조화를 시도한 음악회 축제를 통해 국악을 관객에게 보다 친숙하게 다가가도록 했다. 인도네시아 음악 도팽글라스에서는 국악 타악기인 운라를 활용해 인도네시아 고유의 리듬을 구현하는데 성공했으며, 붉은 옷을 입고 등장한 광대의 익살스러운 연기가 어우려져 즐거움을 선사했다. 일본 소란부시와 중국의 목금연주와의 협연 속에서도 국악의 매력은 눈에 띄게 두드러졌다. 수십년 관록에 빛나는 베테랑 연극배우가 총출동한 도립극단의 늙어가는 기술은 고선웅 단장 특유의 유머가 베어있는 무대로 관객의 호응을 얻었고,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협연자들의 카리스마로 색다른 매력을 발산했다. 이처럼 각 도립예술단의 공연은 성공적이었지만 예술단이 하나돼 새로운 콘텐츠를 선보이겠다던 당초 페스티벌 기획 의도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나마 예술단원들이 축제기간 중 썬큰무대에서 갈라쇼 형식으로 선보인 디아티스트 공연이 페스티벌 분위기를 조성했으나, 무료 공연인 탓에 객석이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돼 산만했다. 게다가 경기도립앙상블의 공연 중 라틴풍 댄스에서는 출연진이 반라(反裸)에 가까운 의상을 입고 춤을 춰, 어린이와 청소년 관객이 함께 보는 오픈 무대에서의 적절한 연출이었는 지 고민케 했다. 이번 축제를 반면교사 삼아 더 풍성하고 신선한 내년 축제를 기대해본다. 박성훈기자 pshoon@kyeonggi.com

[공연리뷰] 시민극단 율(栗) ‘쓰레기 파동사건’

시민의, 시민에, 시민을 위한 연극 오늘 만큼은 우리도 전문 연극배우랍니다. 시민극단 율(栗)이 지난 1일 오후 5시 장안구청 6층 대강당에서 10월의 시민소통공연으로 쓰레기 파동사건을 공연했다. 연극치고는 무대디자인나 음향ㆍ조명,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가 프로 뺨치는 실력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0분 정도의 짧은 공연시간 동안 좀 모자라도 좋고, 어설퍼도 좋다는 것을 보여준 무대임은 분명했다. 시민극단 율(栗)은 지난 2012년 7월 수원 시민들에게 연극으로 감동을 전하겠다는 마음으로 용기를 낸 평범한 율천동 주민 총 12명으로 시작한 순수 아마추어 극단이다. 이해음 단장을 비롯해 이상인, 염상훈, 양혜란, 한훈숙, 송주은, 정정순, 유화순, 김교숙, 이연숙, 이해흠, 김현광, 오향순씨가 그 주인공이다. 주부, 공무원, 시의원, 통장, 부녀회 회원 등 다양한 계층과 20대부터 60대까지 세대를 아우르고 있는 이들은 비록 아마추어 연극배우들이지만 전문 배우 못지않게 연습해 온 덕분에 어지간한 연기는 소화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이번 작품 쓰레기 파동사건은 수원시가 쓰레기와의 사랑과 전쟁 사업을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큰 성과를 거두고 있는 가운데 율천동에서 벌어지는 의문(?)의 쓰레기 사건을 중심으로 주민간, 가족간 오해와 화해 속에 느껴지는 인간미 나는 삶의 모습을 잔잔하게 그리고 있다. 오세호 전 화성문화재단 사무국장이 총감독을 맡고 올챙이들의 하수구 탈출 작전를 쓴 동화작가 김현광 율천동장이 대본을 썼다. 때 묻지 않은 시선으로, 아마추어의 열정으로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쳤다. 율(栗)은 그동안 수원화성국제연극제 기간에 시민참여프로그램인 시민공동체 연극 경연대회, 율천동 파크데이(Park Day) 축제, 장안구청 시민소통공연 등 작지만 뜻깊은 무대에 올랐다. 12명의 단원들은 얼마나 진실되게 무대에 임하며, 얼마나 따스한 마음으로 이웃을 찾아가느냐가 가장 중요한 목표라고 했다. 이를 통해 극단은 연극으로 새로운 지역문화 모델을 구축해왔다는 평을 받고 있다. 수원문화에 여간 귀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율천동 주민들은 왜 연극을 할까. 연극이 필요한 건 현실을 의심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다. 의심하고 발전하는 사이 희망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시민극단 율(栗)이 다음에는 어떤 이야기로 희망을 선물할 지 벌써부터 기대되는 이유다. 강현숙기자 mom1209@kyeonggi.com

[공연리뷰]2013 피스앤피아노 페스티벌

어렸을 때 피아노 학원이 너무나 다니고 싶었다. 정확하게는 핑크색 피아노학원 가방을 든 한 친구가 참 멋져보였고 부러웠다. 그런데 엄마는 나를 주산학원에 보냈다.(주산학원 가방은 촌스러운 초록색) 그렇게 피아노와 나는 멀어졌다. 어른이 되어서도 피아노를 배우지 것이 못내 한이 되었는지 2011년 가을부터 개인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급기야 악보 보는 방법을 터득하기도 전에 피아노부터 구입해 남편으로부터 구박을 받았다. 서른을 훌쩍 넘긴 아줌마 기자의 피아노 입문에는 2011년 제1회 피스앤피아노페스티벌의 영향이 컸다. 우리나라 최초의 피아노 페스티벌을 아는 척하며 뻔뻔하게 관람한 것이 기자로서 솔직히 창피했다. 2013년 제2회 피스앤피아노페스티벌이 지난 17일부터 24일까지 열렸다. 정진우, 신수정 등 세계적 수준의 참여 피아니스트들의 활약으로 이미 단일악기 페스티벌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최초(最初)라는 수식에 만족하지 않고 최고(最考)를 지향하는 페스티벌이 되기 위한 김대진 예술감독과 경기도문화의전당 임직원들의 노고가 대단히 많았음을 오프닝콘서트, 오마주 콘서트, 피스 콘서트 3개 공연만 봐도 쉽게 알 수 있었다. 기자는 2년 전과 비교해 아는 만큼 보인다고 감동의 강도와 크기가 달랐다. 특히 22일 열린 피스 콘서트는 착한피아노들이 설치된 새로운 무대와 판소리, 현대무용, 타악기, 비주얼아트가 콜라보레이션(협업)된 기상천외한 무대였다. 그 어느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방법을 과감히 도전하는 도전성과 창의력이 압권인 공연이었다. 2013년 피스앤피아노페스티벌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들의 단편적인 연주가 아닌 곡 너머의 이야기와 열정으로 관객들을 드넓은 피아노의 세계로 안내했다. 무엇보다 관객들에게 일방적으로 어려운 피아노를 듣고 감동하라고 가르치지 않았다. 또한 피아노를 듣는 악기에서 세상을 이해하고 보는 대상으로 권했다. 그 속에서 도민들은 피아노와 교감하고 최고의 호사를 누렸다. 단언컨대, 피스앤피아노페스티벌은 대한민국 대표 클래식 페스티벌이었다. 강현숙기자 mom1209@kyeonggi.com

[리뷰] 수원화성 달빛동행

달과 함께 옛 왕들이 거닐었던 성곽을 따라 걸으며 화성행궁의 야경에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수원문화재단이 오는 10월19일까지 총 14회에 걸쳐 수원화성 달빛동행을 운영한다. 지난 21일 오후 8시 수원화성 달빛동행이 시작하는 화성행궁, 그 현장을 가봤다. 수원화성 달빛동행은 8~10월 음력보름을 전후해 수원화성 성곽과 화성행궁, 수원천 등을 거닐며 수원의 밤풍경과 전통음악을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한 체험 프로그램이다. 밤 8시~10시 두시간동안 진행되며 화성행궁을 시작으로 화성열차를 타고 팔달산에서 장안문까지 관람하고 화홍문, 방화수류정, 용연, 수원천, 행궁광장 등을 돌아보는 약 3.84km의 코스다.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된 화성행궁을 걷노라면 새삼 그 정교함과 웅장함에 매료되기 마련이다. 여기에 청사초롱을 들고 풀내음을 맡으며 오르는 팔달산 오솔길과 시원한 바람으로 열대야를 잊게 해줄 야간달빛열차는 색다른 재미를 더한다. 특히 수원 8경에 해당하는 용지대월(龍地待月)과 화홍관창(華虹觀漲)은 달빛동행이라는 타이틀에 걸맞는 달빛야경을 선사한다. 방화수류정 아래 자리잡은 연못인 용연에서 달이 떠 오르기를 기다린다는 뜻의 용지대월. 실제로 용연 수면에 떠오른 달과 달에 비친 방화수류정의 모습은 무아경 그 자체였다. 제 7경 화홍관창은 아름다운 무지개 문이라는 뜻을 지닌 화홍문에 물이 넘쳐흐를 때 생겨나는 물보라의 장관을 뜻한다. 화려한 조명과 달빛은 입은 화홍문은 수원천에서 뿜어져 나오는 분수까지 더해져 절경을 이뤘다. 임금이 행차할 때 잠시 머무르며 집무를 하던 공간으로 평상시에는 화성유수의 처소로 사용됐던 유여택에서는 행사의 대미를 장식할 경기도립무용단과 국악단의 달빛 향연 공연이 펼쳐졌다. 구간별 해설의 깊이와 전달력을 높이고 진행자의 능숙함, 다양한 콘텐츠 등을 보완한다면 수원 대표문화상품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이 프로그램은 내년 3월 유료화를 앞두고 관내 기업, 자원봉사자, 파워블로거, 인바운드 여행사 등을 대상으로 팸투어 형식으로 시범 운영된다. 문의(031)290-3611 박준상기자 parkjs@kyeonggi.com

[공연리뷰] 천지진동 페스티벌Ⅲ ‘평화울림ㆍ평화열림’

DMZ 설정 60년ㆍ정전 60주년을 기념해 열린 천지진동 페스티벌Ⅲ-평화울림평화열림이 지난 27일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에서 성공리에, 정확하게 말하자면 성황리에 치러졌다. 성공과 성황은 비슷한 단어 같아도 그 의미는 확연하게 다르다. 같은 명사지만 성공(成功)은 목적하는 바를 이룸을 의미하고 성황(盛況)은 모임 따위에 사람이 많이 모여 활기에 찬 분위기를 말한다. 천지진동 페스티벌Ⅲ-평화울림평화열림은 40%의 성공과 60%의 성황으로 마무리된 행사였다. 독창성과 창의성을 바탕으로 경기도 지역의 정체성까지 담아냈다는 측면에서 성공적인 행사였고, 2천여명의 출연진을 포함해 총 2만명의 관람객이 하나돼 평화울림을 휴전선을 넘어 북녘까지 전달했다는 점에서 성황을 이뤘다. 성공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행사 진행에 있어 분명 미흡한 점도 있었다. 허나 이번 축제는 남이 하니까 나도 한 번 해보자는 안이한 자세로 만든 축제와는 궤를 달리한다.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고 있는 지역축제 가운데 상당수가 일회성 소비개념의 축제들로 비춰지고 있지만 평화울림평화열림은 문화적 영향은 무엇인가를 기준으로 축제의 성공 여부를 평가해볼 때 합격점을 받을만하다. 김덕수패사물놀이 1천명, 세로토닌드럼클럽 500명, 경기도립예술단 연합합창단, 제국의 아이들, 씨스타 등이 출연해 선보인 제1부 평화 길놀이, 제2부 평화 콘서트, 제3부 평화 난장은 전쟁종식과 한반도 평화를 기원하는 그 자체가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큰 메시지를 전달하기 충분했다. 할머니, 엄마 손잡고 임진각 평화누리에 왔다는 정재윤(10)군은 평화콘서트가 진행되는 동안 행사장 중앙에 마련된 대한민국 대형 지도 위에서 태극기(사진)를 그리며 평화를 기원했다. 정군은 학교에서 우리나라는 아직도 전쟁 중이라고 배웠어요. 전쟁은 다 아픈거니깐 그만 했으면 좋겠어요. 파주에 사는 재윤이가 평화를 기원하며 태극기를 그릴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준 것만으로도 이번 천지진동 페스티벌Ⅲ-평화울림평화열림은 의미가 있었다. 굳이 성공과 성황을 따지기 전에 말이다. 강현숙기자 mom1209@kyeonggi.com

[공연리뷰]‘디퍼런트 디토’ 공개 리허설

연주자들이 무대서 공연을 시작한다. 그러나 지휘자가 연주를 중단시키고 연주자들에게 요구사항을 전한다. 음악은 다시 이어진다. 지난 17일 오후 7시30분 안양 평촌아트홀에서 열린 디퍼런트 디토(Different DITTO)의 공개 리허설 장면이다. 이날 무대는 말 그대로 공연이 아닌, 리허설이었다. 2013 디토 페스티벌의 현대음악 프로젝트로 이튿날 서울에서의 본공연을 앞두고 실제 공연처럼 진행하는 리허설을 사전 신청 관객에게 공개하는 자리였다. 이 같은 공개 리허설은 클래식계에서는 흔치 않은 시도인데다, 올해 안양문화예술재단의 상주 예술단체가 된 디토 오케스트라의 첫 무대여서 주목받았다. 이들이 관객 개발 프로그램으로 선보인 이 공연은 우후죽순 늘어난 기초문화재단에게 요구되는 신선한 도전 정신과 예술단체에 필요로 하는 관객과의 적극적 소통이 모두 발현된 아름다운 하모니였기 때문이다. 무대에는 본 공연과 마찬가지로 스타 비올리스트이자 음악감독을 맡은 리처드 용재 오닐이 주축이 된 실내악단 앙상블 디토와 최수열 지휘자를 중심으로 한 실력파 젊은 연주단체 디토 체임버 오케스트라가 올랐다. 단, 몸 상태가 좋지 않은 피아니스트 지용 대신 박진우가 함께 했다. 이들은 중국계 미국 작곡가 후앙 루오의 다시 말해서와 미국 대표 미니멀리즘 작곡가 존 애덤스의 그랜드 피아놀라 뮤직을 연습했다. 용재 오닐이 악기 연주와 함께 입으로 소리를 내고, 연주자들이 부채로 얼굴을 가리며, 퍼커셔니스트가 고무호스를 머리 위로 돌리고, 여성 성악가 3명이 무한 반복되는 악기 연주음을 뚫고 노래하는 등 혁신 그 자체였다. 월요일 저녁임에도 사전 리허설 신청자가 300명을 웃도는 등 관객들이 몰렸다. 관객들은 연주가 끊겼다가 다시 호흡을 맞추는 생경한 장면까지 가슴에 담으려는 듯 숨죽인 채 몰두했다. 문화예술재단의 목적인 관객 개발이 이뤄지는 현장이었다. 연주 후 짧은 질의 응답 시간까지 진행하면 금상첨화일 듯 싶다. 앞으로 이들이 지역의 클래식 활성화를 위해 더 다채로운 사업을 추진한다니 귀추가 주목된다. 류설아기자 rsa119@kyeonggi.com

[공연리뷰]창작뮤지컬 ‘해를 품은 달’

용인문화재단은 지난 8일 ㈜쇼플레이, ㈜이다엔터테인먼트와 공동주최로 포은아트홀에서 창작 뮤지컬 해를 품은 달(이하 해품달)을 초연했다. 이날 공연은 지역문화재단이 전국에서 처음 뮤지컬을 처음 만나는 공연장으로 자리잡겠다는 전략이 통한 듯 첫 공연에 800여명의 관객이 몰렸다. 인터미션에는 전문가적 평가를 나누는 공연계 종사자, 언론인, 뮤지컬 마니아 등이 큰 관심을 보였다. 인기 소설과 드라마를 뮤지컬로 재창조한 해품달은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 속에서 한국 특유의 문화를 발현했다. 천연염색 조각보 이미지의 무대막과 그 한가운데서 해를 품은 달 모양의 비녀 이미지가 검은 비단에 사라지는 영상은 전통적 매력을 발산하겠다는 연출 의도를 집약적으로 보여줬다. 실제로 상연 내내 조명과 의상, 긴 천이 달린 부채와 같은 각종 소품 등을 통해 전통 특유의 아름다운 색감을 선보였다. 탈춤, 붓글씨, 시조 등 전통문화를 극 곳곳에 풀어내 외국 뮤지컬과 차별화했다. 총 20부작 드라마를 짧은 호흡의 무대극으로 옮기면서 스토리에 대한 적절한 선택과 집중도 돋보였다. 뮤지컬 해품달은 조선시대 권력 다툼과 무속신앙, 얽히고 설킨 사랑이야기 대신 순정파 왕 이훤과 세자빈이자 액받이 무녀인 연우의 운명적 사랑에 집중했다. 이에 주연배우의 흡인력은 더 중요해졌는데, 헤드윅과 라카지에서 능청스러우면서도 진지한 여장남자를 소화해왔던 배우 김다현은 익살스러우면서도 애달픈 사랑을 간직한 왕에 몰입해 관객을 매료시켰다. 문제는 뮤지컬의 가장 강력한 힘이었어야 할 음악의 혼돈이었다. 잦은 변조에 재즈ㆍ트로트ㆍ가요ㆍ민요 등 다양한 장르음악풍의 뮤지컬 넘버가 뒤섞여 오히려 관객의 감정이입을 방해했다. 뮤지컬의 사전적 정의는 현대 음악극의 한 형식으로, 그만큼 음악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이제 첫 발을 뗀 해품달이 장수공연물이 되기 위해선 음악에 대한 대대적인 점검이 필요해 보인다. 한편 이 공연은 포은아트홀에서 오는 23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7월6일부터 31일까지 이어진다. 류설아기자 rsa119@kyeonggi.com

[공연리뷰]2013 수원화성국제연극제

2013 수원화성연극제가 지난 24~28일 닷새 동안의 여정을 마치고 막을 내렸다. 이번 축제는 김철리 예술감독의 의도대로 대사가 중심이 되는 연극이 아닌 음악, 무용, 영상 등을 결합한 새로운 형식의 연극이 주를 이뤘다. 행사 준비 부족이라는 문제가 산재해 있었지만 관객들이 새로운 연극에 마음을 뺏긴 것만은 사실이다. 개막작 에디트 피아프의 사랑의 찬가는 시민 배우가 직접 참여하며 시민이 주인 되는 축제를 보여줬다. 오디션을 거쳐 무대에 오른 70여 명의 배우는 실수를 거듭하면서도 최고의 무대를 선보였고, 카메오로 출연한 염태영 수원시장과 노영관 수원시의회 의장은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아쉬운 부분이 가장 많으면서도 가장 호응도가 높았던 작품은 스페인 극단 작사 씨어터의 마법의 밤과 불꽃의 바다이다. 불꽃 사용 불허로 완구용 소품으로 대체된 마법의 밤은 2% 부족한 불꽃놀이에 그쳤다. 그러나 만석공원으로 장소를 옮긴 불꽃의 바다는 달랐다. 평소에는 접하기 어려운 스페인 불꽃이 음악과 무용에 어우러져 관객들은 배우들을 따라다니며 공연을 만끽하기에 충분했다. 천막극장에서 펼쳐진 레오는 배우의 몸짓이 카메라 기법을 통해 또 다른 형식으로 펼쳐져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독일 Y2D프로덕션이 한국인 스태프는 리허설 참석을 금지한다는 속내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비 때문에 예정과 달리 폐막작이 된 지팡이쇼는 비가 오는 행궁광장을 들썩이게 했다. 현란한 비트박, 화려한 댄스에 코믹적인 요소가 가미되면서 내리치는 빗발에도 관객들은 우비를 입고 배우들과 끝까지 함께 했다. 이번 축제는 지난해 설립된 수원문화재단이 처음으로 자체 준비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하지만 개ㆍ폐막작에 사용되는 불꽃 사용과 관련해 개막 전날까지 경찰과의 입장을 좁히지 못했고, 무대 문제로 공연이 취소되는 등 준비 과정이 부실했다. 수원화성국제연극제는 재단만의 리그가 아니다. 한 달 뒤 열리는 축제 평가회에서 재단 측은 부족했던 부분을 당당히 드러내야 하고, 평가위원회는 질타보다 채찍과 당근을 적절히 결합한 평가를 해야 한다. 아쉬웠던 올해 축제를 뒤로 한 채 배우가 흥분하고, 시민이 열광하고, 주최 측이 스스로 박수칠 수 있는 2014 수원화성국제연극제를 기대해본다. 장혜준기자 wshj222@kyeonggi.com

[공연리뷰]경기도립극단 ‘부활’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소설 부활을 원작으로 한 동명 연극이 예술의전당 무대에 올랐다. 최근 출판계와 영화계에서 고전을 재조명하는 등 세계적으로 고전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주목받는 실력파 연출가 고선웅 경기도립극단 예술감독이 각색ㆍ연출을 맡아 고전 중의 고전을 어떻게 연극 무대에 표현해낼지 연극계 초미의 관심사였다. 부활은 귀족인 네흘류도프 공작(서범석)과 창녀 카츄샤(예지원)의 이야기를 통해 정신적 타락과 육체적 타락에서 부활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고선웅 감독은 원작을 훼손하지 않은 채 순수로의 회귀라는 메시지를 고스란히 담아냈다. 대신 각색 과정에서 관객에게 익숙하지 않은 역사적 배경(러시아 말기)은 과감하게 버리고 노래와 현대무용 등 뮤지컬적인 양념을 팍팍 넣어 현대적으로 변신시켰다. 그래서 순수연극이라기 보다는 뮤지컬 냄새가 짙다. 고 감독이 기존에 즐겨 사용하는 연극 기법도 곳곳에 묻어 있다. 네흘류도프가 약혼자 미시와의 파혼을 선언하는 만찬장에서 귀족들이 속사포 대화를 이어가는 장면과 카추샤와 네흘류도프가 만나는 유치장 면회실 장면을 언어 자체의 리듬과 역동적인 춤을 이용해 연출한 점이 그렇다. 폴란드 출신의 무대디자이너 알렉산드라 바실리코프스카의 무대 연출도 연극의 뮤지컬화를 한몫 거들었다. 리모델링 공사로 무대 안쪽으로 30m나 깊어진 CJ토월극장의 공간을 적극 활용, 턴테이블 한쪽 끝에 7m 높이의 언덕(사이클로라마)을 세웠다. 인물들은 연신 오르락내리락, 굴러떨어지거나 미끄러진다. 그리고 언덕을 회전시켜 장면 전환효과를 높였다. 고 감독은 이 언덕을 주인공 네흘류도프의 영적인 성장과정과 그가 점진적으로 부활과 깨달음의 상태로 도달하는 것을 상징하는 장치로 사용했다. 무엇보다 주연급 서범석, 예지원을 비롯해 이승철, 류동철 배우를 비롯한 경기도립극단 배우 19명 등 모두 26명의 출연진이 무려 103명의 등장인물을 소화해 낸 것 자체가 탄탄한 팀워크를 입증해보이기에 충분했다. 단, 네흘류도프의 비중이 크다보니 상대적으로 카츄샤 캐릭터가 왜소해졌다는 것과 극 전반부에 힘이 많이 실리고 후반부가 급하게 마무리된 듯한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선웅 예술감독의 부활은 한편의 뮤지컬같은 명작연극임은 틀림없다. 오는 6월2일까지 공연된다. 강현숙기자 mom1209@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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