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며 읽는 동시] 짝꿍

짝꿍 - 오순택 너 없으면 어떻게 길을 가니. 고맙다 지팡이야. 할아버지 아니면 나는 누구와 함께 놀겠어요. 그렇구나. 너와 나는 참 좋은 짝꿍이구나. “아침에는 네 발로 기다가 점심에는 두 발로 걷다가 저녁에는 세 발로 걷는 동물은?” 어릴 적 동네 누나들이랑 수수께끼 놀이를 할 적에 난 이 문제를 풀지 못해 이마에 알밤을 먹은 기억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그 문제의 해답이 ‘인간’이라는 것을 난 몰랐던 것이다. 수수께끼치곤 참 고약한(?) 수수께끼였다. 이 동시를 쓴 오순택 시인은 나와 같은 동갑내기이다. 그도 어느새 지팡이가 필요한 세월을 맞았다. ‘짝꿍’은 할아버지와 지팡이의 관계를 재미있게 보여준다. 그것도 ‘어쩔 수 없는’ 관계가 아니라 친구의 입장에서 보여주는 따뜻한 작품이다. “너 없으면/어떻게 길을 가니./고맙다 지팡이야.”, “할아버지 아니면/나는/누구와 함께 놀겠어요.” 이 얼마나 정겨운가. 친구는 기쁠 때보다 외로울 때 더 필요한 존재다.그냥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사람, 그게 친구란 생각이 든다. 언젠가 노인대학 강의에 갔다가 이런 얘길 들은 적이 있다. 나이를 먹을수록 곁에 있는 사람처럼 고마운 사람이 없다는 걸 느낀단다. 옳은 말이다. 내 곁에 있는 사람, 그게 바로 지팡이 같은 사람이 아닐까. 짝꿍은 초등학교 시절에도 있어야 하지만 노년엔 더더욱 필요한 존재란 생각이 든다. 윤수천 아동문학가

[생각하며 읽는 동시] 김미영 씨

누군가 “김미영 씨.” 하고 부르는 순간 나도 한 알의 씨앗이었다는 걸 깨달았네. 채송화씨, 오이씨, 겨자씨처럼 지구라는 커다란 밭에 뿌려진 씨앗 한 알. 우린 모두 이름으로 존재한다. 박 아무개 씨, 이 아무개 씨, 정 아무개 씨…. 세상에 태어났을 때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이다. 요즘엔 개명을 하는 이도 있지만, 그건 일부 사람들에 해당되는 일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이름을 지니고 일생을 산다. 김미영 시인은 이를 ‘씨앗’에 비유했다. ‘누군가/“김미영 씨.”/하고 부르는 순간//나도/한 알의 씨앗이었다는 걸/깨달았네.’ 씨앗은 작다. 그러나 그 작은 것이 자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면 한 그루의 나무가 된다. 씨앗이 비로소 씨앗 값을 한 것이다. 우리들 인간도 씨앗과 다를 게 없다. 자기 이름값을 하기 위해 평생 땀을 흘린다. 누구는 학자로, 누구는 예술가로, 누구는 종교인으로, 누구는 의사나 상업인으로, 또 누구는 정치인으로...각자 맡은 바 위치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려고 애쓴다. 그리고 마지막엔 이름 석 자를 남기고 떠난다. 어떤 이름으로 남을 것인가는 오로지 각자에 달렸다. 위 동시는 ‘지구라는 커다란 밭에/뿌려진’ 씨앗 한 알인 나는 어떤 열매를 맺고 떠나야 할까를 생각하게 해주는 작품이다. 비록 어린이를 대상으로 삼아 쓴 동시지만 오히려 어른들이 읽어야 할 시(詩)가 아닌가 싶다. 윤수천 아동문학가

[생각하며 읽는 동시] 손가락

최 향- 손가락 무엇을 가리켜야 할지 깊은 생각에 잠겼다 갖고 싶은 것 모두 가리키고 싶지만 손가락은 거친 엄마의 손등을 보고 다시 한번 생각한다 하고 싶다고 갖고 싶다고 이것 저것 가리키면 안 된다는 것을. 법정 스님같이 ‘무소유’의 삶을 산 이도 있지만, 인간은 어디까지나 소유의 동물이다. 이에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다 똑 같다. 인생의 길에는 갖고 싶은 게 왜 그리도 많은지. 이 동시는 손가락을 내세워 인간의 소유욕에 대한 경계심을 훈계한다. ‘갖고 싶은 것을 가리켜 보라’고 했을 때 무엇을 가리켜야 할지 고민에 빠진 아이의 손가락. 마음 같아서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다 가리키고 싶은데, 하필이면 그 때 엄마의 거친 손등이 떠오른다. 평생 가족을 위해 살림을 꾸리느라 나무껍질처럼 거치러진 손, 크림 한 번 발라보지 못한 억센 손...그 손은 ‘이것 저것 가리키면 안 된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그러고 보니 이 땅의 어머니들도 그렇게 살았다. 전쟁과 가난의 세월 속에서 한 가정의 살림을 꾸려나가기 위해서는 그리 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만큼이라도 사는 데는 그렇게 바보처럼 산 어머니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 동시를 쓴 시인의 어머니도 그런 어머니였을 것이다. 그 어머니의 삶을 하나의 거울로 삼은 시다. 자기 몸을 방패삼아 자식들의 안위와 장래를 위하는 데 행복의 의미를 두었던 이 땅의 어머니들에게 바치는 헌시(獻詩)이기도 하다. 참 예쁘다! 윤수천 아동문학가

[생각하며 읽는 동시] 짐수레

짐수레- 김종상 짐수레가 간다 오르막길에. 수레 끄는 아저씨 등이 땀에 흠뻑 젖었다. 가만히 다가가서 수레를 밀었다. 아저씨가 돌아보며 씨익 웃었다. 나는 더 힘껏 밀었다. 오르막길을 힘겹게 올라가는 짐수레를 보자 얼른 다가가서 수레를 밀어주는 아이의 행동을 꾸밈없이 담은 동시다. 오르막길과 땀에 젖은 아저씨의 등, 가만히 다가가서 수레를 밀어주는 아이, 이를 눈치 채고 고맙다는 인사의 표시로 씨익 웃어주는 아저씨의 모습…이 얼마나 정겨운 풍경인가. 이 동시 속의 아이는 깨달았을 것이다. 내 작은 힘도 남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사는 세상이 살 만한 것은 이런 ‘작은 것’ 때문이 아닐까. 남의 힘듦을 모른 채 하지 않는 관심,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손을 보태는 따뜻한 정. 힘이란 것도 그렇다. 커다란 힘도 있어야겠지만 작은 힘도 필요한 법. 오히려 큰 힘보다는 여러 개의 작은 힘들이 모여 값진 일을 하는 것을 우린 많이도 봐왔다. 그것도 밖으로 드러나지 않을 때 꽃처럼 아름답다는 것을. 시인은 이 동시를 1967년에 썼다고 했다. 60년대라면 누구 할 것 없이 사는 형편이 어려웠던 시절. 그러나 인심 하나만은 넉넉했던 시절이기도 하다. 울타리 사이로 뻔질나게 드나들어도 누가 뭐라 하지 않았고, 대문조차 활짝 열어놓고 지내던 시절이었다. 그래서일까, 오늘따라 이 동시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윤수천 아동문학가

[생각하며 읽는 동시] 대나무

대나무- 유희윤 한 마디 한 마디 다짐하며 자라지요 마디마다 굳은살 박히도록 곧게 살자 푸르게 살자 마음일랑 비우자 어른이 되어도 그 다짐 잊을 줄 모르지요. 비 내린 뒤의 대나무밭처럼 왕성한 푸른 기운이 어디 또 있을까. 단단하게 나무질화한 줄기를 가진 여러해살이식물 대나무. 아니, 하늘을 향해 거침없이 뻗는 듬직한 이 땅의 푸른 기둥들. 우린 누구나 어렸을 적에 한 번쯤 대나무처럼 곧게, 푸르게 살겠다고 다짐했을 것이다. 이 동시는 저 순은(純銀)처럼 빛나던 우리들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게 한다. ‘굳게 살자/푸르게 살자/마음일랑 비우자’. 시인은 자기 자신에게 묻고 있다. 그렇게 살았는가? 아니, 우리들을 향해 짓궂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참, 고약한 사람이다. ‘어른이 되어도/그 다짐/잊을 줄 모르지요.’ 비아냥대기까지 한다. 참 얄미운 사람이다. 시인의 말과는 반대로 우리들은 아주 오래 전에 어린 날의 그 푸른 다짐을 잊고 살았다. 살다 보니 맘과는 달리 그렇게 돼버렸다. 아니다! 잊지 않고는 살아내기 힘든 세월이었는지도 모른다. 저 팍팍한 날들, 고단한 하루…. 오늘은 잠시 때 묻은 가슴을 열고 어린 날의 ‘나’를 들여다보면 어떨까? 그 어린 날의 내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뭐라 하는지…. 동시는 때로 어른들에게 부끄럼을 가르쳐 주는 거울이란 생각이 든다. 윤수천 아동문학가

[생각하며 읽는 동시] 기지개 켜네

기지개 켜네-문삼석 아가가 두 팔로 기지개 켜네. 눈을 꼬옥 감고 기지개 켜네. 얼마나 컸을까? 고 사이에... 꼬옥 눈감은 고 사이에... 세상의 아기들은 먹고 자는 게 일이다. 그러면서 큰다. 몰래몰래 큰다. 성미 급한 이의 눈엔 보이지 않는 아기의 성장. 그러나 엄마와 아빠만은 아기가 자라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꼬옥 감은 눈, 오물거리는 입, 살며시 켜는 기지개…이 얼마나 평화롭고 귀여운가. 어린이의 아버지로 불리는 방정환 선생은 무릎 위에서 잠을 자는 어린이를 보고 이렇게 감탄하였다. ‘평화라는 평화 중에서 그 중 훌륭한 평화만을 골라 가진 것이 어린이의 잠자는 얼굴’이라고.그는 여기서만 그치지 않고 잠자는 어린이를 하느님으로까지 표현하였다. 조금도 이상할 게 없는 것이, 아기의 잠든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라! 욕심이라곤 티끌만큼도 없는 착하디착한 저 순진무구한 모습을 무엇으로 말해야 제대로 표현했다 하겠는가. 아기를 가진 부모의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큰 삶의 기쁨도 없다. 사는 일이 팍팍하고 힘들다 할지라도 그저 하루하루가 기쁘고 감사할 따름이리라. 최근 들어 우리 사회의 고민 중 하나는 날이 갈수록 신생아의 숫자가 현저하게 줄고 있는 것. 이 기지개 켜네를 새해 첫 작품으로 내보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아기와 함께하는 행복한 사회가 이뤄졌음 참 좋겠다. 윤수천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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