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이 가는 소리가 들린다. 혼자 속 끓이다 쿨한 척 한 해를 보냈지만 아직 못한 숙제에 속이 탄다. 연말에 끝내지 못한 일들을 정리하며 속물임을 느낀다. 2월엔 그리운 사람들과 따끈한 국밥이라도 나누며 살기로 다시 마음 먹는다. 홍채원 사진작가
계절마다,기온에 따라 사시사철 피어나는 꽃들은 우리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다. 때론 작은 꽃들이 눈부시게 시선을 당긴다. 그 중 겨울 얼음꽃은 화려하지 않지만 응시하게 하는 매력이 있다. 자세히 보아야만 예쁘다는 말이 새삼스럽지 않다. 얼음꽃,너도 그렇다. 홍채원 사진작가
겨울나무의 끝자락 나무눈에서 봄의 소리가 자박자박 난다. 얼어붙은 박제된 나뭇잎이 녹을 즈음 서서히 땅의 소리가 날 것이다. 끝은 또 다른 시작이다. 홍채원 사진작가
2022년 임인년(壬寅年) 새해 첫날 아침 많은 덕담이 오고 갔다. 더도 덜도 말고 아이의 웃음만큼 만사 새해 첫날 같길 기원한다. 홍채원 사진작가
자연보다 인간이 우위인 시대에 살고 있다. 나무와 숲을 삼킨다. 자연이 사라지고 있다. 우리는 모두 왜 작은 바이러스 때문에 두려움에 떨고 있을까? 홍채원 사진작가
옳고 그름을 따지는 일이 얼마나 헛되고 헛된 것인지! 어둠을 뚫고 나 오는 작은 빛을 향해 오늘도 묵묵히 걷는다. 홍채원 사진작가
바람, 풀, 모래의 협연. 사진작가 홍채원
겨울나무 수형에서 보여주는 생명의 힘, 있는 그대로 오롯한 침묵의 모습에서 통찰을 본다. 홍채원 사진작가
자연에 자연이 투영되어 또 다른 자연이 됐다. 아무런 목적도 이유도 없이 스며들었다. 가장 자연스러운 게 가장 아름답다고 했던가. 이것이 바로 무위자연의 모습이 아닐까. 홍채원 사진작가
긴 호흡과 긴 거리의 시야를 막은 채 사는 도심. 일상에 침잠되어 도심에서 빼앗긴 시선을 찾던 날의 풍경이다. 안개 자욱한 들판은 수채화처럼 촉촉하고 고요하고 아스라하다. 귀하고 짧은 틈의 들판의 소리가 오감을 만져온다. 서둘러 이곳을 떠나야 하지만 눈이 마음이 무장해제다. 시야를 먼 곳에 둘 수 있는 유일한 사유의 쉼터. 도심의 빌딩 숲에서 턱턱 숨 막힘에서 잠시 해방된 시간이다. 홍채원 사진작가
계절이 돌아서면서 나뭇잎들이 마당과 골목길까지 나뒹굴면 시간 반을 쓸어야 깨끗해진다. 바람이 불고 비 오는 날 마당 쓸기는 더러 버겁기도 했다. 하지만 마당 쓰는 일은 하루를 시작하며, 또 하루를 마무리하며 마음을 쓸어내리는 일로 여겼다. 어느 날 외출 후 하늘이 훤히 보여 속이 후련함을 느꼈다. 그런데 다시 보니 나무가 잘려나간 모습이었다. 옆집 나무라 어쩌지도 못했지만, 마음 한쪽에 휑한 바람이 일었다. 다행히 모아 둔 낙엽들이 무덤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 번씩 휘 휘 저어 주면 아직 남은 온기로 은은한 나무 냄새를 맡을 수 있다. 한여름 무더위 속 나무 그늘에서는 잠시나마 시원함을 느낀다. 나무가 있는 곳과 없는 곳의 기온 차를 올 한해 절실히 온몸으로 느꼈다. 온난화로 세상의 기온은 올라가고 사막화는 늘어만 간다. 나무 한 그루에 대한 위대함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잘려나간 나무의 남은 밑동에서 내년에 건강한 잎들이 무성하게 피어나길 기원해 본다. 홍채원 사진작가
나무는 두고 나무는 두고 우수수 출타했다. 언제 돌아오려는가 내년 봄즈음 오려는가 누구를 위하여. 홍채원 사진작가
드러나지 않고 깊숙하고 고요하여 아늑하다. 아련히 깊다. 계절의 현란함에 짓눌리지 않고 빛에 의해 드러난 풍경에 걸려 넘어졌다. 은은한 속삭임의 언어, 시간이 떨어트린 그림자다. 어둠이 사라지고 빛이 사라지면 곧 소멸되고 말 일이다. 가볍지도 너무 무겁지 않은 시간이 그려낸 풍경에 냅다 정신 줄을 놓았다. 홍채원 사진작가
땅이 사라졌다. 온통 하늘을 향해 치솟는 건물들이며 콘크리트 위에 서 있다. 어린 시절 땅이 있던 곳이면 스케치북 없이도 그림을 그리는 놀이터였고 흙을 만지며 도깨집도 지었고 땅 따 먹는 놀이도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온전히 왔던 대로 빈손으로 돌아왔다. 비가 내리면 흙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요즘은 땅을 만나기가 쉽지 않을뿐더러 만져 보기는 더 어렵다. 어느 날 쿵캉쿵캉 집들이 헐리고 콘크리트와 시멘트란 갑옷을 벗겨줘야 얼굴을 내밀고 긴 한숨을 쉰다. 도심에서 땅이 숨을 쉴 수 있는 일은 건물 하나가 헐려야 딱 그 공간만큼 정해진 시간 동안 세상을 향해 숨을 쉴 수가 있다. 그 시간이라는 것도 눈 깜짝할 사이라는 말이 쫙쫙 달라붙을 정도로 실감 난다. 요 며칠 근처 집이 헐리고 다시 큰 빌딩이 들어선다고 한다. 그 짧은 틈을 놓칠세라 사진을 찍었다. 나무며 풀들은 겨울이면 같이 한 계절 쉬어가는데.감옥 아닌 감옥살이는 땅이 하는 걸까 우리가 하는 걸까. 촉촉한 땅 냄새가 그립다. 홍채원 사진작가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바사니오는 금, 은, 납 상자 중 금, 은 상자를 외면하고 납 상자를 선택한 덕에 아름답고 부유한 포사를 아내로 맞이한다. 대장동이 무엇이고 노른자 땅이 다 무엇인고. 바사니오 같은 계절을 느낀다. 마른 잎 떨어내고 휘영청 휜 허리, 초록이 우거지고 붉은 꽃피워 유혹하던 계절은 뒤로 물러났다. 더 이상의 욕망이나 불안은 없다. 온전히 그대로를 들어내는 계절의 초입에 힘 잃은 햇살이 부드럽다. 지금은 삼매(고요, 절멸, 적정)에 빠지기 딱 좋은 계절이다. 정신집중 하기 좋다는 말이다. 독서의 계절이라 운운하던 것도 이 때문이리라. 손 전화기 내려놓고 종이 질감 느끼며 독서삼매경에 빠져 보는 것은 어떨까. 홍채원 사진작가
가을, 풍성함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사실 비어 내는 계절이 아닌가 싶다. 툭. 맑은 자궁 하나, 언제 잉태했는지 쑥 빠져나간 빈터만 남았다. 봄부터 뜨거운 여름을 잘 견뎌주고 이 계절에 쑥- 토해내다니! 알밤의 흔적이다. 누군가에겐 일용할 양식이요, 새 생명을 위해 풀숲 어디에서 고요히 고요히 숨 고르기를 하고 있을 테다. 비워내는 것은 빈 것이 아니라 새로움을 잉태하는 일인 게다. 조건 없이 내어주므로 자신을 비우는 것. 가을이란 계절, 참 경이롭다. 빈 것은 진정 빈 것이 아님을. 홍채원 사진작가
어느 날 내게 쪽지 편지가 손에 들어왔다. 이름은 쓰여있지만, 성은 알 수 없고 얼굴도 더더욱 알 수 없다. 다만 손편지에 맘이 이끌려 내게 온 것이다. 1년이란 시간이 흘러 갑자기 궁금해져 풀어 보았다. 신화 앨범이 새로 나온 이야기며, 야자 수업 시간에 쓰고 있으며, 자기 반 애들은 맨날 야한 얘기만 한단다. 어제 마을버스에서 친구를 보았는데 교복이 어느 학교 것인지 모르겠다 등 사춘기 소녀의 꼭꼭 눌러 쓴 손편지에 모의고사가 끝나고 망쳤다며 교복 입고 우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다시 피시방에 가서 메일을 보낸다는 추신까지 쓰여있는 걸 보면 아직도 더 할 말이 남았다는 건지. 풋~ 웃음이 인다. 조잘조잘 시절 쪽지 편지 속에 풋풋함이 묻어 나의 사춘기 시절도 소환해 낸다. 편지에 대한 질감을 느끼기 어려운 즈음 오늘은 손 편지 한편 써서 누군가에게 건네야겠다. 홍채원 사진작가
그늘은 어느새 스산하고 양광은 등에 따갑다. 벼가 누렇게 익어가는 계절이다. 가을이면 추수를 한 후 바람 따라 곡식 등을 까 불러서 쭉정이를 걸렀다. 어머니 손에서 바람을 가르고 리듬 타며 춤추고 동고동락했던 사물이다. 희망을 필요로 하는 절박성이 느껴지기도 한다. 생과 사의 경계 선상에서 겹겹 기우고 다시 고쳐 썼다. 생로병사의 과정을 거친 고단한 무게가 느껴진다. 한 감정 속에 다른 한 감정이 스며든 물건이다. 몸의 흔적이 밴 주인을 먼저 떠나보낸 사물은 더 이상 사람이 그립지 않다. 움직임에 다 다르니 오직 그리운 것은 고요뿐. 홍채원 사진작가
추석 명절 끝 한바탕 비가 쏟아졌다. 빗물받이 통에 물이 금세 한가득 찼다. 현미경으로 보면 물의 결정체는 육각형이라고 알려졌다. 그런데 염소로 소독하는 수돗물에서는 깨끗한 육각형의 결정을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염소 소독은 자연의 물이 가지는 결정 구조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진동의 세기에 따라 물의 형태도 다르게 나타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세계의 의식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연이 뿌려진 빗물은 우주의 소중함 그 자체이며 자연이 자연에 주는 힘의 근원임을 깨닫는다. 홍채원 사진작가
한가위 음식은 시절식 가운데 음식 종류와 색상이 화려하다. 오곡백과가 결실을 맺어 추수를 시작하는 때라 햇곡식, 햇과일을 비롯한 신선하고 맛있는 재료가 많이 있기 때문이다. 가족 간의 사랑과 정성이 깃든 음식은 그 무엇에도 비할 바 없이 맛있고 풍요롭다. 푼주의 송편이 주발 뚜껑 송편 맛보다 못하다라는 속담이 생각난다. 송편을 찔 때도 솔잎을 깔고 찌면 소나무의 기운으로 건강하게 살 수 있다고 한다. 코로나 19로 어려운 시기 가족들과 맛있는 송편으로 건강한 한가위 맞이하길 기원해 본다. 홍채원 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