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꽃향이 초여름 산자락을 메우고 모심기가 끝난 밤 들판엔 반딧불이가 전설처럼 유희하며 절대 자유를 누리고 있다. 밀보리 익는 창포 필 무렵 어디라도 잠시 떠나고 싶다. 한때 여행에 인생을 저당 잡힌 시절이 있었다. 실크로드와 파미르고원으로 떠나 노마드한 삶을 배회하고 동경했다. 하지만 혼자 걷는 길에 의미를 잃고 삶이 전혀 엉뚱한 길로 들어서며 자연스레 주저앉아 살았다. 그 새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는 게 놀랍다. 가끔 작가들의 전시에서 흥성대고 가족 및 가까운 분들과 외식하고 쇼핑도 하며 소시민으로 산다. 일전엔 모처럼 설득해 가족과 근교 나들이를 떠났다. 바다로 가고 싶은데 멀리는 못 가고 겨우 간다는 게 대부도다. 전곡항은 뱃놀이축제라 출입을 통제했다. 여기저기 기웃대다 질퍽한 갯벌이 눈에 잡혔다. 몽골의 초원에 대칭되는 아득한 해원은 비릿한 갯벌 멀리 윤슬을 반짝이며 가슴을 연다. 차를 잠시 세우고 고향처럼 정감 있는 한 농가를 바라봤다. 두세 가구 앞에 놓인 한적한 밭이랑이 무척 외로워 보였다. 대처로 나간 자식들이 남겨 놓은 늙은 부모가 밭 일구며 살 것이라 여겨졌다. 기쁨 다한 슬픔처럼 산다는 게 외로워 가는 과정 같다. 밭두렁의 신양벚나무에 다독다독 열매가 영글었다. 달콤한 신맛의 자연을 담는다. 세월의 외압에 복종하며 귀한 시간을 감사하게 사용해야겠다. 과거가 미래를 대신할 수 없으므로.
감꽃 진 자리에 열매 맺히고 초저녁 들녘에 소쩍새가 울어댄다. 유월이다. 앵두나무도 접시꽃도 파란 하늘에 기대어 초하의 계절을 전한다. 지나가는 훈풍이 여름의 향훈을 몰고 온다. 칠보산 아래 도토리 농장은 체험학습 온 어린이들로 밭자락 둔덕이 붐볐다. 자작나무 선생은 지난 사월보다 훨씬 분주해 보였다. 대기업 의자를 박차고 나온 그의 영토는 상추와 깨와 감자가 자라고 길가엔 질경이와 민들레와 자운영이 무성했다. 우리를 위해 자작나무 토막도 다듬어 놓았다. 오늘은 나무토막에 소제를 그려 채색하고 짧은 글 한마디 담아보는 주제다. 커다란 나무 그늘이 있는 평상에 앉아 각자의 마음을 표현했다. ‘마음이 청춘이면 몸도 청춘이다’, ‘자연스러운 삶’ 등 좋은 글귀와 예쁜 수채화를 그리기도 했다. 나는 ‘인생은 경험이다’라는 글귀에 장미 몇 송이를 그려 넣었다. 경험은 생각의 단계를 차곡차곡 쌓아가는 이성 건축이다. 사랑과 고뇌와 상처를 무너지지 않게 쌓아가는, 어제의 실패와 과오의 과녁에 빗나간 화살을 정조준하는 것, 추억을 그리는 것보다 이상을 그리는 게 진취적이라는 것을 자각하는 것까지. 매 순간이 경험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경험하며 살아가지만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죽음은 망각하고 있다. 매 순간 아껴 써야 할 삶이지만 결국 죽음 뒤에 남긴다. 버나드쇼는 그의 묘비명을 이렇게 새겼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어.’ 오월을 장롱에 넣었다. ‘봄과 색色과 詩’.
화령전 작약 시들며 찬란한 슬픔의 봄을 지운다. 엷은 플루트 소리 같은 봄과 꽃의 여운이 잦아들고 있다. 클라우디오 아바도는 연주 중에 지휘봉을 한참 동안 멈췄다. 음의 여운을 종소리처럼 좀 더 울리게 하고 싶어, 음의 깊이로 긴장감을 주고 싶었을 것이다. 이것이 잔향이다. 스위스의 산골짜기에 묻힌 그의 영혼에 아름다운 야생화와 봄의 잔향이 머물고 있을까. 봄만 아닌 인생의 잔향이 남는 삶을 살 수 있으면 좋겠다. 바겐세일의 백화점처럼 온갖 꽃들이 피어났다. 세류동 언덕, 장미꽃 핀 마을과 담쟁이넝쿨이 걸려 있는 풍경을 그려본다. 대문 위에 무리 지은 장미꽃은 메릴린 먼로의 입술 같고 피아졸라의 탱고 같다. 담쟁이는 그 자체가 온몸이 길이다. 거칠고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고 초록의 영토를 줄기차게 확장해 가는 담쟁이로부터 인생을 배운다. 해마다 장미를 그리는 건 봄바람처럼 싱겁지 않고 윤기 흐르는 화려한 사치에 반해서다. 가끔 수수한 민낯보다 플라멩코를 추는 붉은 치마에 감겨들 때가 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장미꽃에 찔려 죽었다는 속설이 있다. 그가 사랑했던 살로메를 애타게 기다리며 장미꽃을 꺾다가 가시에 찔렸다니 아름다운 시처럼 살다 갔다. 그의 묘비명엔 사랑과 삶과 인생의 모순 같은 시 한 구절이 새겨 있다고 한다.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 수많은 눈꺼풀 아래 누구의 잠도 아니라는 기쁨이여.”
연초록 녹음이 하얀빛에 투영된다. 빛과 색은 뗄 수 없는 미술의 기본 관계다. 강의실에 들어서며 깜짝 놀랐다. 꽃바구니와 카네이션 한 송이가 놓여 있어서다. 일전에 야간 반에서 망개떡을 쌓은 단과 예쁜 다과가 놓여 있어 그날이 스승의 날인 줄 알았는데 오늘이었다. 더 놀란 것은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볼수록 높아만 지네’로 시작되는 ‘스승의 은혜’를 부르는 것이다. 노래가 끝날 때까지 불안하게 서 있었다. 어쩜 연습을 한 것처럼 가사를 하나도 잊지 않았을까. 카네이션을 달아줄 땐 더욱 민망했다. 스승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는 시대에 내가 과연 꽃을 받을 자격이 있을까 해서다. 수업 중간에 박성자님으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수업은 못 나갔으나 플루트 연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겠다는 것이다. 연주가 교실에 퍼졌다. 아름다운 마음이 담긴, 어쩌면 내가 드려야 할 감사와 은혜의 연주였다. 기쁜 일이 또 하나 생겼다. 어제 낮, 나와 함께 불어 오른 배를 안고 기념사진을 찍은 며느리가 저녁나절 드디어 출산을 했다. 아이를 바라보는 며느리의 눈은 눈물이 맺혀있었다. 두 번이나 실패한 출산에 많이 조바심하고 긴장했을 것이다. 고마움 가득 담아 며느리와 수강생들에게 마음의 꽃 한 송이 바친다. 꽃은 가슴을 여는 진정한 마음의 통로다. 오월도 벌써 내리막이다. 공평하게 내어주는 세월의 은택에 품과 곁, 숨과 쉼의 자애를 성찰한다. 순정한 감동의 눈물 같은.
오월.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부의 날이 모인 가족을 상기하는 달이다. 가족이란 울타리를 생각하면 참 아득하다. 어떤 인연이 쌓여 이토록 광활한 소우주를 이뤘을까. 딸과 이란성 쌍둥이 외손주는 금요일부터 남태령을 넘어온다. 아이 돌보기는 즐겁고도 어려워 사랑의 근육을 더욱 키워야겠다. 육아와 대학 강의에 매일 속박된 딸은 얼마나 힘들까. 사위에게 메시지가 왔다. ‘아버님 어버이날입니다. 늘 든든하게 곁에서 힘이 되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아버님 덕분에 많이 배우고 아이들도 큰 사랑 속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온 메시지라 바로 답장을 했다. ‘고맙네 사위, 한결같은 마음으로 가족과 따뜻하게 지내길 바라네. 가장 고맙고 감사해야 할 것은 가족이 아닐까 하네. 따뜻한 말 한마디가 큰 힘과 위로가 된다네. 내가 사랑한 만큼 나도 사랑받는다는 걸 돌이키며 살길 응원하네.’ 사위는 공연 때문에 내일이나 오겠다고 한다. 그 대신 아들 내외와 딸이 아이들을 데리고 왔다. 며칠 후 첫 출산을 앞둔 며느리가 만삭이 된 배를 이끌고 와 함께 어버이날 행사 식을 먹었다. 아내를 잘 챙기는 아들이 의젓했다. 가족이라는 인연의 소우주에서 우리는 하하호호 살다가 하늘의 별로 돌아갈 것이다. 사랑하고 미워하고 만나고 헤어지고 그리워 눈물 지으며. 수강생 원영옥님이 다정다감한 마트를 그렸다. 지구별 어느 그리운 아파트 밑.
오월이다. 산과 들은 온통 초록 물결이다. 밀밭과 청보리밭이 온 들을 덮던 옛 시절이 그립다. 바람이 불면 청보리밭은 거대한 물결을 이뤘다. 보리밭 이랑엔 뽕잎과 오디가 흐드러지고 밭 가장자리 감나무는 가장 늦게 잎을 피웠다. 막 돋아난 연둣빛 잎은 눈부신 햇빛을 올려놓고 싱싱한 윤기를 발산한다. 오월, 아름답다는 형용사는 천지에 묻어 있다. 감꽃 피던 담장 밑에 난초가 푸르게 돋아났던 고향 집. 산나물 뜯던 어머니는 몇 해 전 집을 비웠지만 산등성이 외로운 뻐꾸기 소리는 지금도 골짜기를 오갈 것이다. 길가의 민들레가 노란 꽃을 피웠다. 도시 주변에 핀 꽃은 대부분 서양민들레라고 하는데 색깔이 선명하고 줄기가 굵다. 재래종은 산자락 외딴곳에 밀려난 터다. 꽃과 나무는 대부분 곤충이나 바람에 의해 수분이 이뤄진다. 은행나무도 수나무에서 꽃가루가 날아와 암나무 꽃에 수분해 수정이 이뤄진다. 민들레 또한 바람에 의해 수많은 홀씨가 날아가 번식한다. 민들레가 바람이 필요하듯 끈질긴 저항의 힘으로 시와 노래가 증식하는 것일까. 짓밟혀도 끝내 일어나는 민초 같은 시 한 편 생각난다. ‘민들레처럼 살아야 한다./내 가슴에 새긴 불타는 투혼/무수한 발길에 짓밟힌대도/민들레처럼 /모질고 모진 이 생존의 땅에/내가 가야 할 저 투쟁의 길에/온몸 부딪히며 살아야 한다/민들레처럼.’ —박노해 ‘민들레처럼’ 중에서
삶이란 늘 감동이고 기적이다. 수많은 소멸 속에 내가 존재한다는 것, 봄날의 양광과 아지랑이와 꽃향기 밴 조용한 바람과, 세월 익어가는 잔주름과, 안락한 졸음과 먹이를 쪼는 비둘기처럼 잔잔하다. 오리가 새끼 가족을 데리고 동심원을 그리며 물을 가른다. 이팝나무와 수수꽃다리, 라일락도 사월의 행렬에 합류했다. 오월이 오면 더욱 눈부신 빛이 신록의 윤기를 더할 것이다. 아까운 줄도 모르고 낭비하는 시간이 대부분이지만 인생은 머물지 않는 꿈을 향해 피고 진다. 수강생들과 올해 들어 처음 광교산 자락에서 야외 스케치를 한다. 상광교 신다리를 건너면 열 가구가 채 안 되는 마을이 나오는데 아직 목장도 있고 낡은 농가가 남아 있다. 로컬푸드 매장과 카페와 주인집이 나들이객을 바라볼 뿐 적막한 시골 풍경이다. 뒤꼍의 농가 몇 채는 인적 드문 빈집이다. 주인 잃은 마당은 잡초가 돋아났고 기능을 상실한 굴뚝만 덩그러니 삶의 흔적을 남겼다. 연둣빛 고운 먼 산이 현재와 과거를 잇는 삶의 원근을 이룬다. 수강생들의 목소리로 조용한 오솔길이 깨어났다. 사람이 산다는 건 파문이 있기 때문이다. 가끔 이물질 같은 번뇌가 있어도 허기 때문에 괴로워하고 포만감 때문에 권태에 빠지더라도 우리는 숙명을 견지하며 살아간다. 새들이 소리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노래한다. 이 봄에 핀 사랑의 하모니를 늦더라도 사유해야겠다. 사랑만이 삶을 견뎌내는 이유이므로.
계절은 다시 연둣빛으로 눈부시다. 짧은 봄나들이라도 가고 싶지만 혼자만의 시간은 무모하고 함께할 시간은 발목 잡히기 일쑤다. 매달린 일들에 정작 하고 싶은 것을 놓치는 것이야말로 허송세월이 아닐까 싶다. 이러다 해그림자 지듯 인생을 소비할 것만 같다. 얼마 전 늑대 한 마리가 동물원에서 탈출해 소동이 벌어졌다. 꼭 교도소에서 탈출한 수인처럼, 격리된 곳을 벗어난 조두순처럼 피해가 발생할까 걱정이었다. 폐쇄회로(CC)TV에 잡힌 늑대는 탈출한 동물원 쪽을 자꾸만 뒤돌아봤다. 귀소본능도 포함되겠지만 자유가 주는 두려움이 컸을 것이다. 드론과 열화상카메라와 트랩이 설치되고 경찰특공대와 소방대가 수색 작업에 동원됐다니 군사작전을 방불케 했다. 9일 후에야 생포된 늑대는 위장에 생선과 낚싯바늘과 낙엽이 발견됐다고 한다. 얼마나 굶주렸으면 낙엽과 낚싯바늘이 든 생선을 먹었을까. 사람이나 동물이나 자유는 스스로 지켜갈 책임이 따른다. 잠시 퇴근길에 아이들과 창룡문 잔디밭에서 연을 띄우며 망중한을 즐겼다. 많은 관광객이 붐비는 곳에 안데스 카페가 눈에 띈다. 산보냐를 연주하며 안데스음악회를 열고 있었다. 오래전 남미 여행에서 안데스 음악에 취해 직장을 그만둔 카페 주인은 아직 그 안에 갇혀 커피를 볶는다. 자유를 추구했지만 결국 우리 안에 사육되는 늑대처럼 청춘의 야행성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가 그린 자유의 꿈은 현재도 유효할까.
꾸다 만 춘몽처럼 꽃비가 흩날린다. 분분히 쌓인 꽃잎은 밥상을 덮어 놓은 어머니의 조각보같이 포근하고 정감 있다. 꽃그늘 내린 버드내에 목을 뺀 왜가리 한 마리가 시간을 멈춘 듯 부동자세로 서 있는 봄, 어반스케치 교실에 신입생들이 모여 앉았다. 놀란 까투리처럼 동그랗게 뜬 눈은 호기심과 긴장감이 동시에 느껴진다. 가득한 여성 속에 남성 한 분이 묻혀 있다. 경기일보에서 이해균의 어반스케치 칼럼을 봤는데 내용이 좋아 관심을 가졌고 수강까지 하게 됐다는 것이다. 오늘 그린 그림은 데생과 색의 원근감이 질서 있어 좋았다. 알고 보니 수원 토박이로 학창 시절 미술부 활동을 잠시 했다고 한다. 수원의 작가들을 대부분 알고 있는 것이 그의 말을 뒷받침했다. 점심도 같이 먹고 해움미술관의 한국현대목판화 협회전도 함께 봤다. 전시장엔 매교동 동장님이 와 계셔서 반가웠다. 미술관이 주민과 소통하고 지역사회에 영향을 주는 연계 프로그램을 갖는 의미는 매우 중요한데 동장님은 이 가교 역할을 잘하시기 때문이다. 마을 어르신들의 그림을 스트리트 갤러리에서 전시하기도 했고 지역 카페에서 매교동 주민자치센터프로그램을 기획 전시하기도 했다. 문화가 강국을 이루듯이 우리 동네의 상징적 문화를 가꾸는 것은 가장 큰 가치가 아닐까 한다. 항상 부지런한 이지효 동장님의 멋진 행정이 온몸이 길인 담쟁이처럼 마을 곳곳에 번져 가기를 응원한다.
청명 지나 꽃비 내리더니 연둣빛 새잎이 흐른다. 부활절 예배에 기도 제목을 적어냈다. 가족 건강과 작업 성취를 적었는데 오늘이 어머님 소천일이라는 걸 알고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임종도 지키지 못해 늘 죄를 안고 살았는데 망일도 잊을 뻔했고 기도 제목도 넣지 못했으니 말이다. 잠시 기도하며 고향과 어머니를 생각했다. 싱그러운 파밭에서 일하시던 모습, 무슨 생각을 하며 씨앗을 뿌렸을까. 돌이킬 수 없지만 함께 살던 마루 위의 제비처럼 어머니라는 부활의 박씨 하나 품어야겠다. 일전에 수원시청에 간 적이 있다. 내게 선행이란 공로로 시장 표창을 준다고 해서다. 문화예술 공로라면 몰라도 선행이라니 그다지 즐겁지 않았다. 학창 시절에도 이런 상을 받아 우등상을 들고 자랑하던 사촌에게 수치를 당했기 때문이다. 내게 주어진 선행상과 미술대회 입상 상장을 아버지는 매우 못마땅해하셨다. 선행이란 게 포괄적 의미가 있겠지만 모범생 같은 나약한 인식만 새겨지는 것 같아 스스로 상처만 받았다. 꽃과 잎이 물든 어반스케치 스케치북에 도시의 쇼윈도처럼 봄의 색을 입혀 본다. 화려한 봄의 이면이 두견화처럼 애처롭다. 아름다움이 승화된 꽃의 모순일까. 문득 최승자 시인의 시 한 자락이 허기처럼 몰려온다. “상처받고 응시하고 꿈꾼다. 그럼으로써 시인(화가)은 존재한다. 내일의 불확실한 희망보다 오늘의 확실한 절망을 믿는다.”
봄이 흐른다. 하이네의 시처럼 온갖 꽃들이 일시에 피어나고 르누아르의 그림처럼 부드럽고 윤기 있는 풍경이다. 산책길에 느닷없이 피어난 자목련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하얀 목련이 내릴 때쯤 망울지던 것이 이미 만개한 것이다. 버드나무도 어느새 올리브그린으로 변했다. 개나리 진달래 피고, 영산홍과 철쭉이 뒤따라야 하거늘 요즘 꽃들은 눈치 없는 사오정처럼 대책 없다. 번호표를 줘 대기줄을 서게 해야 할까. 꽃들의 무질서는 사실 인간이 만든 부메랑이니 변질된 환경을 탓할 수도 없다. 어쩌면 자연도 인간처럼 앞뒤 없고 속수무책인 속도와의 전쟁을 답습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도 종달새는 개척교회 목사님 설교처럼 정성스럽고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처럼 미려하다. 세류동 언덕을 지나다 그린세탁소라는 간판을 봤다. 인공지능 시대에 세탁소가 존재하는 것이 신기하다. 무인빨래방도 생겼지만 드라이 크리닝이란 고전적 세탁소는 속도의 시대를 쉬어가는 느린 횡적 풍경이어서 편안함을 느낀다. 문득 손빨래한 교복에 감자풀 먹여 하얀 칼라를 세워주시던 어머니의 다림질이 오브랩됐다. 나도 매일 아이들의 교복을 다림질해 등교시킨 시절이 있었다. 사랑이라는 사치보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견지하는 의무 같았다. 편의만을 쫓는 시대는 가끔 인간 사이의 체온을 앗아 간다. 봄날도 벌써 어둡다. 준비 없는 이별처럼 한 계절은 이미 떠나는가.
삼월이 꼬리를 물고 사월을 부른다. 한 분기라는 시간의 뭉치가 통째로 소멸한다. 필자의 어반스케치 교실도 종강 채비다. 버드내를 따라 걷는다. 담장 밖으로 고개를 내민 목련꽃, 새하얀 미선나무와 산수유도 은은히 노랗다. 배냇머리같이 연둣빛 가지 결을 드리운 버드나무, 늦둥이 진달래도 조산을 했고 양지쪽엔 파릇한 새 풀이 돋았다. 계절은 늘 쓰지 못한 편지에 답장이 먼저 오는 것처럼 체감을 앞질러 간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부엌으로부터 마당 가득 달래 향이 피어나던 어머니의 된장국이 그립다. 이틀째 수강생들과 긴 겨울 지난 도토리 농장을 찾았다. 자작나무 선생은 겨우내 불어난 얼굴에 ‘봄이 오다, 봄을 그리다, 봄비가 내리다’란 배너를 내놓고 우리를 맞았다. 목소리도 시냇가 버들가지처럼 물이 올라 활기찼다. 커다란 무쇠 난로는 장작을 태워 비닐하우스 천막 교실은 온난했다. 공주파 선비파는 그림을 그리고 살림꾼들은 전을 부쳤다. 일하고 먹는 밥이 맛있듯 우리는 그림 그리기에 집중했다. 무엇보다 목공에 쓰인 자투리를 이용해 짧은 시구와 컷을 넣으니 새롭고 재밌는 공부가 됐다. 사는 게 늘 공부 같다. ‘칠보산 아래’라는 자작나무 선생의 새 시집은 아직 향기를 잃지 않았다. 올 때마다 비닐 문에 써둔 나의 글은 흙먼지를 덮어쓴 채 흐릿한 세월을 견뎌낸다. 그리움이 얼마나 내려야 다시 시가 흐를까. 허전한 봄날이다. 멀리 떠난 친구처럼.
결국 닥쳤다. 봄. 다가올 많은 일들이 옷도 입지 않은 채 약속 시간이 온 것처럼 분주하다. 부슬부슬 봄비가 내린다. 학창 시절 들길 지나 냇물 건너며 학교 가던 생각이 떠오른다. ‘이슬비 내리는 이른 아침에’라는 동요도 생각나고 하얀 칼라의 세라복을 입고 앞서가던 윗마을 여학생들도 생각난다. 구령을 붙인 것도 아닌데 팔과 발을 맞춰 걷는 게 신기했다. 인사동에 개인전을 잡아 놓아 쫓기는 기분이다. 일전엔 큰맘 먹고 서울 나들이를 했다. 지난해 600만명이 관람해 입장객 수 세계 4위를 기록한 국립중앙박물관 전시도 보고 인사동의 지인 개인전도 봤다. 오랜만에 만난 서울 친구와 식사하고 막걸리도 축였으니 긴 겨울 깨어난 새싹 같은 외출이었다. 예전의 골목 찻집은 여전히 자리를 지켰다. 귀천(歸天), 천상병 시인이 동백림사건의 고문에 만신창이가 된 후 그를 간호하고 아내로 나선 문순옥 여사의 전통찻집이다. 예술인들이 들락거리던 그 집은 부부가 하늘 간 후 사라졌지만 문 여사의 조카가 다시 이룬 찻집이다. 천상병의 생애를 생각하면 더 이상 순수가 뭔지 모르겠다. 코끝 찡하게 하늘을 본다. 봄날 하늘 가신 부모님이 세월 가며 더욱 그립다. 인생이 소풍일까.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천상병 ‘귀천’ 중에서
3월, 또 하나의 출발점이다. 모든 학교의 개학, 개강이 시작되고 봄맞이 전시회와 공연도 활발하다. 겨우내 묻힌 지인들의 소식도 경칩의 개구리처럼 밖을 나온다. 전시회와 공동체의 총회 임원 선출 소식도 있다. 기지개를 켜니 동물원의 호랑이처럼 긴 하품도 난다. 겨울이 고요한 건 봄이 숨어 있기 때문이었을까. 꽃샘추위가 바람을 감으며 사나운데 양지쪽 화단엔 파릇한 새싹이 몰래 돋았다. 일전에 선배 작가들과 양구에 다녀왔다. 박수근미술관 창작스튜디오의 손기환 작가 전시를 보기 위해서다. 내가 막내라는 게 신기했다. 그 대신 왕복 운전을 맡았다. 의외로 큰 전시 공간에 입주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됐다. ‘금강산 가는 길’이라는 주제는 그가 인근 부대에서 근무한 회억을 담은 것이었는데 발상이 신선하고 좋았다. 무엇보다 육십 후반의 나이에 젊은 후배들과 입주 작가전을 한다는 게 부러웠다. 때마침 미술관은 박수근 작고 60주기 소장품 특별전 ‘봄이 오다: 정림리에서 전농동까지’가 전시되고 있었다. 초창기 박수근의 원작이 없던 것과 달리 최근엔 이건희 회장의 기증으로 일부 소장품이 원작으로 채워졌다. 박수근의 그림처럼 화강석으로 축조한 건물이 여전히 멋졌다. 해 바뀌고 벌써 두 달이 소진됐다. 행복이 지나가는 것도 모를 세월이다. 박수근 임종의 말 ‘천당이 가까운 줄 알았는데~ 멀어, 멀어’의 원근감을 아직 모르겠다.
앞을 가린 황사처럼 3월이 왔다. 설 지나 경칩이 눈앞이다. 갑자기 닥친 봄이 조금은 불안하다. 어릴 적 불렀던 ‘오는 봄만 맞으려 말고 내 손으로 만들자’라는 새해의 노래처럼 아직 준비되지 않은 긴장감 때문이다. 봄비마저 우수에 깃든다. 삼일절 주일예배엔 담임목사가 애국가 제창을 구하셨다. 교회의 애국가가 조금 어색도 했지만 기독교는 3·1운동 등 국가의 위기에 늘 앞장서 왔다. 고명진 목사가 애국가의 영역(英譯)이 ‘National anthem’이라며 이는 국가이자 찬송가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삼일절 노래의 작곡가 박태현을 교회와 연관 짓다가 산바람 강바람도 작곡하신 분이라며 ‘산 위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 바람~’ 하고 노래까지 부르셨다. 성서를 깊이 말씀하시다가 메디치가와 미켈란젤로로 옮겨 가기도 하는 목사님의 설교는 한편의 맑은 인문학 같다. 불교로 치면 아직 깨달음을 받지 못한 중생이지만 나는 목사님의 설교가 은혜로운 휴식 같아 주일예배는 빠지지 않는다. 오늘 수강생들과 명봉역이라는 전남 보성의 간이역을 그려봤다. 모든 게 직선적인 속도의 시대에 간이역이라는 느린 곡선을 그려보는 건 그 자체만으로 마음산책이다. 간이역은 소박한 옛 추억과 향수가 코스모스처럼 묻어 있다. 앞만 치닫는 종적 삶보다 옆도 보며 가는 횡적 삶을 지녀야겠다. 이런 시처럼. ‘내려올 때 보았네/올라갈 때 못 본/그 꽃.’ –고은 ‘그 꽃’
길을 걷다가 가끔 시적인 풍경을 보기도 하고 음식을 매개로 한 만남의 장소를 지나기도 한다. 화홍문을 통과하는 물소리를 들으면 시적 단상이 현전하지만 통닭거리엔 목적이 해체된 실용적 사고가 안치된다. 항상 감각적인 날것의 상상력이 눈앞의 관념에 매몰되는 건 위험하다. 늘 엉뚱하고 새로운 관점과 섬세한 내면 배양이 필요하다. 신선한 시각과 감각을 채집하는 정신의 공간을 활성화해야겠다. 통닭거리도 시대에 따라 변했다. 젊은이들은 영화와 먹방을 보고 스스로 경험해 보려는 심리적 이동을 즐기며 왁자지껄한 분위기를 옹호한다. 수다 떠는 잡음을 분위기로 여기며 갇혀 있던 마음을 통쾌하게 여는 방식이다. 통닭을 모티프로 한 이 거리는 다양한 축제와 문화적 모뉴먼트로 가꿔 가고 있다. 50년 전통 매향통닭의 가마솥치킨도 좋고 진미통닭의 프라이드치킨도 좋고 용성통닭의 왕갈비치킨도 각각의 맛을 낸다. 무엇보다 쫄깃한 닭똥집을 소금에 살짝 찍어 맥주 한잔 곁들이면 독특한 맛을 즐길 수 있다. 보기만 해도 침이 고이는 이 거리를 오늘은 고교 때 미술반 활동을 했다는 경상도 영천 사나이 김동석님이 그렸다. 퇴임 후에도 일이 많이 쌓였지만 나의 현대미술과 어반스케치 교실은 누에가 명주실 짓듯이 집중하고 있다. 그가 그리는 것이 화가가 되는 목적이 아니라 자신을 타이르는 몰입이라는 순수한 시간의 뭉치가 되길 삼가 바란다.
새해 지나 한 달이 가더니 설이 가깝다. 해가 깊으니 나이를 셈하고 싶지도 않다. 갈 테면 가라는 배짱만 성성하다. 송구하지만 나도 잘 모르는 나이를 구태여 묻지 말았으면 한다. 버드내를 낀 세류동을 지나다가 시장 떡방앗간 집을 발견했다. 간판이 무려 4개나 걸렸다. 전문 떡집이 존재하다니 괴이하지만 요즘 떡은 참으로 화려하다. 내용물이 다양하고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대로 외양 또한 우아하다. 서양의 케이크나 바게트보다 문양과 빛깔이 곱고 전통적 깊이가 있다. 시루떡, 인절미, 절편같이 흔히 먹던 떡 개념을 넘어선 궁중떡과 지역을 대표하는 떡은 저마다 품격이 있다. 예전엔 설 앞의 가래떡이 불문율 같은 고유 양식(樣式)이었다. 따끈한 떡가래를 조청에 듬뿍 찍어 먹는 달콤함이란 형용하기 어려운 맛이다. 고향의 맛보다 더한 게 또 있을까. 조선시대 허균은 ‘도문대작(屠門大嚼)’이란 음식 저술에서 세상에서 만날 수 있는 최고의 음식이 방풍죽이었다고 기술하는데 그의 고향 강릉에 지천으로 널린 방풍나물 덕분일 것이다. 올 설엔 부모님 돌아가시고 자주 못 만난 동생들에게 떡국이라도 나눠 먹자고 연락했다. 어머니는 떡국을 끓일 때 꼭 소고기와 배추 고갱이를 넣었다. 그 시원하고 익숙한 맛을 지금 H가 계승하고 있다. 불손하지만 내가 주문하는 H의 떡국은 고향과 어머니를 그리는 가장 향수적인 대체 수단이다.
입춘이다. 골목 안 아저씨댁 대문은 이맘때면 화려했다. 입춘대길 건양다경, 대문에 머리를 맞댄 입춘첩은 단정하고 기품이 있었다. 돌개바람은 마당을 훑고 가고 정화수 같은 삼신할머니 물사발은 꽁꽁 얼어붙었다. 나는 지게에 바소쿠리를 장착해 산에 올랐다. 솔바람 소리는 차갑게 윙윙대고 고주박을 패어 지게에 옮긴다. 마을은 뽀얀 연기를 집마다 뿜어대며 점심을 준비했다. 고구마가 들어간 갱시기죽에 김치 한 포기 밥상은 겨우내 먹는 점심 메뉴다. 문풍지가 떨고 저녁 해 기울면 아버지는 늘 동네 사랑방에 가셨고 우리는 트랜지스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라디오 연속극 ‘삽다리 총각’을 귀 세워 들으며 긴 겨울밤을 보냈다. 어젯밤엔 먼 길을 갔다. 고향집에서 하늘 가신 어머님을 만났다. 하얀 눈 덮인 꿈길이었다. 이른 아침 밖을 나오니 정말 흰 눈이 왔다. 처마를 타고 낙수 흐르는 인계동 재개발구역을 지난다. 한때 ‘인도래’라는 공간에서 주변 작가 5명이 마을 공동체를 만들어 공공미술에 참여했던 곳이다. 2001 아웃렛도 환영만 남기고 허물어진 채 이젠 이 동네도 슬럼가가 됐다. 중국 간판에 중국인이 동네를 차지한 지 오래다. 재개발이란 명분에 보따리를 싼 작가들은 일종의 예술인 디아스포라, 실향민이 됐다. 입춘, 겨울의 끝과 봄의 시작점이다. 시간은 눈덩이 구르듯 점점 부풀려 간다. 길운과 기운의 새 기지개를 켜자. 동면에서 깨어난 양서류처럼.
낯선 신작로 따라 뽀얀 먼지를 뒤집어쓴 시외버스에 올랐다. 미루나무가 농수로를 따라 높이 솟아 있는 오솔길, H의 집은 우정읍에서 가까운 수정리였다. 마당엔 펌프가 물을 길어 올렸고 작은 툇마루가 있는 소담한 집은 나그네를 굽어봤다. H와의 첫 인연은 현실감도 긴장감도 없이 시작됐고 겨를없이 고된 세월은 빠르게 치달아 지금에 정박했다. H의 외가는 청풍 김씨였는데 그림 속 잡초 우거진 땅도 그 집안 땅이었다. 2남4녀인 H의 집에서 처남들과 동서 넷이 가끔 멍석 깔고 모여 앉아 여름밤을 보냈고 긴 겨울밤에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했다. 마을 뒤에 쌍봉산이 있고 앞엔 삼괴고등학교가 있었다. 나와 H가 주말에 채소밭을 가꾸기도 했던 그 시절이 이젠 꿈처럼 먼 빈집이 됐다. 텃밭 가꾸며 맑게 살아가시던 H의 어머님도 집을 비우고 부근의 요양원에 드셨다. 100세가 눈앞이지만 아직 건강하시고 동료분들과 잘 어울리며 사신다. 사라진 시간은 옛것을 지우고 다시 질주한다. 세월이 더 흐르면 그땐 또 어떤 모습일까. 나의 고향 빈집도 옛일을 잃고 있다. 입춘이 다가오고 설이 가깝다. 이런 시가 스친다. ‘빈집에 쌓이는 시간의 무늬에도/아름답고 쓸쓸한 생을 관통하던 추억있다/집은 세상으로 나가는 길이었고/나는 길 위의 집에서 꿈을 꾸었다./보일 듯, 보이지 않는 삶의 흔적과/잡힐 듯 잡히지 않는 옛사랑의 그림자여.’ -민병일 ‘적멸 속에 빛나는 빈집’.
예술은 이상을 형상화하고 텍스트화하는 고도의 정신적 테크닉이다. 아무리 자신을 속여도 남루한 굴레를 벗어날 수 없지만 가슴속엔 항상 넉넉한 영감을 저장하고 있다. 예술은 끊임없는 개척과 탐험과 고뇌의 성취다. 현악기만으로 애절함을 표현하는 말러의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는 음악가의 절절한 메시지가 읽힌다. 우리는 교향곡 앞에서 굴곡진 오선지를 읽는 마에스트로가 돼 눈을 감고 심상의 손을 젖는다. 마에스트로의 팔은 그를 이끄는 또 다른 영혼의 지휘가 있어 조용히 조율하는 것이다. 제도적 변혁을 감식한 예술의 편력일까. 화령전 작약이 돋아난 그리운 시절에 하얀 치마저고리를 입은 신여성 나혜석의 산책을 그려본다. 서호변에 캔버스를 편 최초의 여류 서양화가. 불가능한 꿈을 지운 한 페미니스트의 생애가 애처롭다. 나혜석, 그의 첫 전람회엔 하루 4천~5천명이 성시를 이뤘다니 가부장적 사회에서 신여성의 예술 활동이 얼마나 큰 파급이었나를 알 것 같다. 50까지 칠한 그의 생은 행려병자의 무연고 병동에서 끝맺는다. 지금 이곳 나(羅) 참판댁 터는 무슨 연유인지 아직 복원이 되지 않고 생가터 옆에 걸린 화령전 작약만이 공터를 굽어보고 있다. 사회제도와 법률과 도덕과 인습에 저항했던 한 페미니스트에게 내면의 꽃 한 송이 바친다. 새 교실에 오늘도 조용히 마음을 닦는 김미경님이 빈 생가터를 그렸다. 그림이 별건가, 즐거우면 그만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