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시설물은 19개 유형에 60개다. 성 길이는 5.4㎞다. 넓은 지역에 여러 시설물이 있는 경우 배치설계가 매우 중요하다. 그만큼 어렵다는 말이다. 전략적 배치는 성의 기능을 강화하지만 나열식 배치는 오히려 적의 침투에 도움이 된다. 배치설계는 지형, 지세, 민가, 도로, 하천 등 기존의 상황과 시설물 유형, 배치 간격, 인접 시설물과의 역할 분담 및 공조체계 등을 통합해야 한다. 고도의 공학적, 전략적 작업이다. 거꾸로 배치 과정을 알게 되면 성의 성격, 건축 기술, 경제성, 전략을 알 수 있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아쉽게도 의궤에 시설물 배치에 대한 기록이 없다. 필자가 화성 배치를 재현했다. ‘설계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과정이기에 앞과 뒤가 분명히 있고 앞과 뒤를 바꿔 할 수도 없다. 다만 200여년 전 임금 정조의 가슴과 감동당상 조심태의 머리로 돌아가 모든 것을 판단해야 한다. 화성 시설물 배치설계는 모두 4단계로 나뉜다. 선후 관계, 이유 등을 유심히 봐주기 바란다. 1단계는 16곳이다. 문, 수문, 각루, 은구, 서장대, 용연, 용도, 동북공심돈이다. 1단계 배치 시설물은 ‘위치성’이 강한 시설물이다. 그 위치에 배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설물이란 의미다. 이유는 왕명, 기존 상황, 방위 등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변경할 수도 없다. 먼저 왕명이다. ‘서장대, 용연, 방화수류정’으로 이 시설물 위치는 왕명으로 결정한다. 서장대는 팔달산 정상에, 동북각루는 용두 위에, 용연은 기존 위치에 배치하라고 정조가 지시했다. 다음 ‘용도’는 성 노선과 동시에 결정된다. 팔달산 남쪽 능선은 적이 점거하면 화성 전체가 위험에 빠지는 화성 최대 요해처다. 만일 성 노선과 동시에 확정하지 않았다면 화성 길이는 현재보다 3분의 1은 더 넓게 됐을 것이다. 다음 ‘은구 두 곳’은 성 노선과 기존의 물길에 의해 결정된다. 성과 개울이 만나는 지점이다. 다음 ‘각루 네 곳’은 방위를 기준으로 결정한다. 화성 사방의 높은 곳이면서 동시에 서북, 서남, 동남, 동북 방위와 일치하는 곳이다. 화성 전체 시설물 배치의 기준이 되는 매우 중요한 시설물이다. 다음 ‘문 네 곳’은 기존 도로에 맞춰 결정한다. 장안문은 한양과, 팔달문은 삼남지방으로, 창룡문은 광주로, 화서문은 남양으로 연결되는 기존 도로 위에 배치한다. 기존 도로를 우선했기에 3개의 문이 북쪽으로 치우쳐 있다. 다음 ‘수문 두 곳’은 기존 수원천 위치, 주변 지형, 그리고 방어력을 종합해 결정한다. 북수문은 높은 용두 아래에, 남수문도 높은 일자문성 아래에 배치한다. 모두 방어에 유리한 높은 지형 바로 아래를 택했다. 끝으로 ‘동북공심돈’은 요해처 선암산을 견제하기 위해 배치한다. 선암산 맞은편 높은 곳이다. 요해처에 대한 맞춤형이다. 이렇게 1단계 배치는 16곳이 완료한다. 전체 시설물의 25%다. 2단계는 20곳이다. 옹성, 적대, 암문, 지, 동장대, 서북공심돈, 남공심돈, 서노대다. 2단계 배치 시설물은 ‘종속성’이 강한 시설물이다. 1단계에 종속되는 시설물이라는 의미다. 먼저 ‘옹성, 적대, 공심돈’은 문에 종속된다. 취약한 문을 방어하기 위해 옹성은 문의 전면에, 적대는 문의 좌우에 배치한다. 적대가 없는 화서문에는 서북공심돈을 배치했다. 남수문을 방어하기 위해 남공심돈을 우측에 전진 배치했다. 다음 ‘동장대’는 서장대와 수원천에 종속된다. 종속보다 ‘마주하는 시설(대설·對設)’의 의미가 크다. 수원천을 기준으로 동쪽은 동장대가, 서쪽은 서장대가 맡아 지휘한다. 조련장이 필요해 너른 동북성 안에 배치한다. 다음, ‘암문’은 성 밖 마을에 종속된다. 백성이 성안으로 가는 최단 거리에 배치하기 위해서다. 암문은 백성이 편히 다닐 수 있는 공개된 문이다. 다음 ‘지(池·못) 세 곳’은 은구에 종속된다. 남지는 남은구 직전에, 북지는 북은구 직후에 설치한다. 남지는 내보내는 물의 양과 속도를 조절하기 위한 것이고 북지는 들어온 물을 모아 두는 역할을 한다. 하동지는 유량 조절을 위해 남수문 안에 배치했다. 끝으로 ‘서노대’는 서장대에 종속된다. 당시 노대 기능은 정탐과 경보 기능으로 바뀐다. 장수가 머무는 서장대 곁에 배치한다. 이렇게 2단계까지 모두 36곳이 완료된다. 전체의 60%다. 3단계는 19곳이다. 포루(대포), 포루(군졸), 치, 동북노대다. 3단계는 기초시설로 나머지 위치에 제도와 전략에 따라 배치한다. 먼저 ‘동북노대’를 동북공심돈 옆에 배치한다. 동장대에 적 상황을 보고하고 동북공심돈과 함께 선암산을 견제하기 위함이다. 다음 ‘포루(대포), 포루(군졸), 치’를 배치한다. 120보 전후 간격으로 방어와 건설에 유리한 지형에 배치한다. 이렇게 3단계까지 모두 55곳이 배치된다. 전체의 90%다. 4단계는 일곱 곳이다. 포사, 상동지, 하남지, 봉돈, 성신사다. 배치가 자유스럽다. 먼저 서로 연락을 위주로 ‘포사 세 곳’을 배치한다. 서남포사는 팔달산 능선 위에 배치해 산상서성과 평지남성을 맡기고 중포사는 평지북성과 산상동성을 맡기기 위해 매향동 첫 등성이에 배치했다. 내포사는 최종 보고처인 화성행궁과 가까운 행궁 안 뒷산에 배치한다. 다음 ‘지 두 곳’을 배치한다. 하남지를 추가해 2지(二池) 시스템을 완성했다. 상동지는 너른 동북성 유역의 유량을 조절하기 위한 것이다. 이 두 곳의 지는 화성 준공 후의 홍수 방지를 위한 시설이다. 다음 원래 위치를 변경해 ‘봉돈’을 배치한다. 당초 계획한 성 밖 산 위에서 행궁의 정면인 동성으로 배치를 바꿨다. 끝으로 ‘성신사’를 신설했다. 성역이 끝나기 직전 정조의 특별한 요청으로 배치한다. 행궁 뒤 팔달산 기슭에 설치한다. 이렇게 4단계까지 전체 60곳 시설물 배치 설계가 완료된다. 이 ‘배치설계 과정’은 성역 이후 최초의 발표다. 물론 본인의 분석이다. 화성의 전모를 알 수 있는 자료다. 단순한 건축물의 나열이 아니라 건설과 전략을 꿰뚫어 보는 귀중한 자료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화성 시설물 배치설계 프로세스’를 통해 정조의 전략적 마인드를 엿봤다. 글·사진=이강웅 고건축전문가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경기일보
2025-11-16 0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