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슈링크플레이션과 중량표시제

가게에서 늘 쓰던 물건을 골랐다. 그런데 이상했다. 값은 그대로인데 무게가 줄어서다.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이다. 영국의 경제학자 피파 맘그렌이 10년 전 유명 음료수가 캔 크기를 줄여 가격을 인상한 것을 두고 명명했다. 수축을 뜻하는 ‘슈링크(Shrink)’와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다. 크기나 양이 줄거나 품질이 재구성되거나 낮아지는 반면 가격은 같거나 인상되는 과정을 가리킨다. 이 같은 수법을 통해 기업은 판매량을 유지하면서 비용을 절감해 영업이익률과 수익성 등을 높일 수 있다. 인플레이션에 맞춰 값을 올리는 대신 종종 사용된다. 이런 가운데 최근 물가당국이 슈링크플레이션를 견제하기 위해 중량표시제를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가공식품 단위 가격 인상은 충분히 알려야 하고 이를 위반하면 해당 제품을 만들지 못하게 제재를 강화한다. 공정거래위원회, 식품의약품안전처, 농림축산식품부, 기획재정부, 중소벤처기업부 등이 공동으로 참여한다. 이를 토대로 예상 매뉴얼을 예상해보자. 치킨 메뉴판의 경우 가격과 조리 전 총중량을 명시해야 한다. 한 마리 단위로 조리하는 경우 등을 고려해 10호(951~1천50g)처럼 호 단위로도 표시할 수도 있다. 인터넷으로 포장 주문을 받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일각에선 침체된 소비시장이 다시 얼어붙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대다수 경제학자는 소비자들이 물건 구매에 주저하는 현상이 경제 악화를 불러온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만큼 기업들도 정직한 판매에 나서야 한다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맹점은 있다. 의무사항이 아니어서 눈여겨보지 않으면 가격 인상을 알지 못할 수도 있다. 가공식품의 경우 중량과 성분을 함께 변경해 새로운 제품을 표방할 때 단위 가격 인상이라고 일률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치킨점 등이 영세한 소상공인이라는 현실도 고려해야 한다. 이 풍진 세상을 살다 보면 당혹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유행가 가사를 인용해 표현할 정도로 말이다. 이 같은 섬세한 부분도 헤아려야 하는 것이 정부의 몫이다.

[지지대] 남미에 상륙하는 K-2 전차

흔히 ‘탱크(Tank)’라고 불린다. 원래는 액체나 가스 등을 담는 용기를 뜻했다. 우리말로는 전차(戰車)다. 그 근원을 따라 올라가 보자. 고대에도 비슷한 형태가 있었지만 동서양을 막론하고 중세시대부터 제작이 본격화된 것으로 파악된다. 당시 지휘관들은 전쟁에서 아군 피해를 최소화하고 적군만 골라 공격할 수 없을까 고민했다. 이런 과정을 거친 끝에 개발됐다. 자료에 따르면 그때는 오늘날처럼 쇳덩어리가 아니라 나무 등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어떤 무기의 공격에서도 안전했다. 파괴도 거의 불가능했다. 탱크라는 이름은 어떻게 나왔을까. 제1차 세계대전 초반이었다. 영국이 프랑스와 공동 연구하면서 신병기 존재를 숨기기 위해 사용한 암호가 ‘탱크’였다. 당초 중심 돌파용 장비로 기획됐다. 물을 실어 나르는 급수차라고 거짓 선전하기도 했다. 탱크가 전장에 나오자 보병들의 돌격은 저지됐고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했다. 우리는 이 병기와 관련해 우울한 역사가 있다. 단 한 대도 없이 북한의 침공을 받았다. 1950년 6·25전쟁에서 였다. 이후 자체 개발에 성공했다. 2007년 3월이었다. K-2 전차의 탄생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기동력과 화력, 생존력 등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다. 실전배치 시점은 2014년부터였다. 120㎜ 활강포와 기관총 등이 탑재됐다. 1천500마력으로 시속 70㎞로 질주할 수 있다. 스노클링 기능으로 깊이 4m 강물에 잠수해도 도하할 수 있는 능력도 갖췄다. 차체 높이와 기울기 등을 조절해 거친 지형과 수중 환경 모두에서 기동성을 유지할 수 있다. 검은색 털로 덮인 표범이라는 뜻의 ‘흑표’라는 별칭도 붙었다. 이런 가운데 K-2 전차가 남미 페루 상륙에 성공했다. 유럽에 이은 쾌거다. 수출액도 2조원대에 이른다고 한다. 당국에 따르면 제작사인 현대로템과 페루 육군조병창은 리마 소재 페루 육군본부에서 총괄합의서를 체결했다. 페루 육군이 내년까지 K-2 전차 54대 등을 도입한다는 내용이다. K-2 전차의 위용이 늠름하다.

[지지대] 거래에 안전한 곳이 없다

부천제일시장을 왔다 갔다 하면서 사람이 많을 때는 “실례합니다”라며 몸을 최대한 부딪치지 않게 지나갔던 기억이 있다. 전통시장은 사람들이 몰려 시끄럽고 활력이 넘치는 모습이 정겨움 그 자체로 다가온다. 지난달 22명의 사상자를 낸 트럭 돌진 사고는 사람들의 걸음을 멈추게, 웃음기를 가시게 했다. 좁은 시장길에 질주하는 트럭을 상상이나 했겠는가. 특히 명절이면 사람들로 꽉 차던 전통시장에서 운전자의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차가 사람을 덮치는 비극을 방지할 수는 없었을까. 사고 이후 방문한 부천제일시장에는 고인을 추모하는 현수막 아래 사람들이 장을 보기 위해 지나다니면서 이전처럼 물건을 사고팔기 시작했다. 시민들의 활기찬 전통시장 방문에 찬물을 끼얹는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관련 기관들이 책임 지고 예방 대책을 세우기 바란다. 온라인 장터에서도 이용자에게 충격을 가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전통시장을 찾아가지 않아도 새벽이면 집 문 앞까지 배송을 완료하는 전자상거래 기업인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다. 퇴사한 내부 직원이 방치된 액세스 토큰 서명키를 악용해 약 3천370만개 계정의 이름, 이메일, 배송지 등 개인정보를 유출해 대형 사건으로 번졌다. 두 사건을 되돌아보면 모두 초기 징후를 더 빨리 포착하고 안전 관리를 강화했더라면 피해를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예방할 수 있는 리스크를 조직이나 관계기관이 방치하는 순간 그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시장에서는 물리적 안전장치·교통 통제가, 플랫폼 기업에서는 접근통제·키 관리가 핵심이었으나 둘 다 적절히 작동하지 않았다고 여겨진다. 물리적 공간의 안전과 디지털 공간의 안전은 다른 영역이지만 동일한 원칙으로 관리돼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작은 결함을 방치하지 않는 시스템 점검과 사람 중심의 책임문화만이 다음 참사를 막을 수 있다.

[지지대] 붉은 말의 해를 기다리며

푸른 뱀의 해인 2025년 을사년(乙巳年)이 20여일 남았다. 지난해 12·3 계엄으로 인한 사회 혼란과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등으로 어느 해보다 무거운 마음으로 맞이했던 올해. 4월4일 대통령 탄핵에 이어 6월3일 실시된 대통령선거를 통한 이재명 정부 출범, 미국발 관세전쟁, SKT 유심 해킹 사건에 이어 최근 쿠팡의 고객정보 유출까지. 올 한 해 역시 정치·경제·사회 분야에 있어 굵직한 이슈가 끊이지 않았던 해로 기억될 것이다. 이러한 2025년이 저물어 간다. 다가오는 새해 2026년은 병오년(丙午年)으로 ‘붉은 말의 해’다. 말띠는 진취적이고 활발하며 자유롭고 도전정신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붉은 말은 역동적이고 활력 넘치는 의미로 여겨진다. 유통가는 벌써 붉은 말의 해 마케팅에 혈안이다. 붉은 말을 활용한 각양각색의 다이어리와 달력 및 한정판 술과 시계, 화장품, 골프공까지. 이러한 유통가의 발 빠른 움직임은 유난히 힘들게 느껴졌던 2025년을 빨리 보내고,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고 싶은 국민들의 마음을 겨냥한 것이다. 힘찬 붉은 말의 해인 2026년에도 국민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대형 이벤트가 기다리고 있다. 먼저 새 정부 출범 후 정확히 1년 만에 치러지는 전국동시지방선거가 6월3일 실시된다. 이번 선거에서는 광역자치단체장과 기초자치단체장, 광역의원과 기초의원 등 우리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지역 정치인은 물론이고 아이들의 교육까지 책임질 교육감도 선출한다. 또 6월 중순부터 7월 중순까지 한 달간 미국과 캐나다, 멕시코에서 월드컵이 개최돼 전 국민을 또 한번 뜨겁게 열광시킬 예정이다. 희망찬 새해를 기다리며, 붉은 말의 해에는 경제도 활력이 넘치고 국민 모두의 삶에도 활력이 넘치는 한 해가 되길 소망한다.

[지지대] 낯설었던 그날의 기억, 남아있는 ‘책임’

지난달 25일 경기도의회 1층에 천막 하나가 생겼다. 그곳에는 백현종 도의회 국민의힘 대표의원이 삭발을 한 채 단식농성을 하고 있었다. 열흘간 이어지던 단식. 농성하며 주장한 바를 온전히 동의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으니 그 적합은 차치하고 이번 농성 과정에서 도의회에 벌어진 생경했던 풍경 하나에 대해 말해 보려 한다.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려던 백 대표의 마음을 움직인 건 최종현 도의회 민주당 대표의원이다. 백 대표의 이송을 요청한 것도, 이송될 때 가장 가까운 곳에서 손을 잡고 지켜봤던 것도 최 대표다. 도의회 국민의힘 앞선 기수 대표단 체제에선 본 적 없는 모습이다. 동수에서 시작해 팽팽한 대립을 이어오던 도의회. 어쩌면 저들이라면 자당의 이익만을 위하거나 정치적 계산을 담는 게 아닌, 도민을 위해 서로의 의견을 맞추며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가 피어올랐다. 그러나 그전에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가 남아 있다. 모든 갈등의 시작을 제공했고, 여전히 갈등의 요인으로 남아 있으며, 도의회를 매번 부정적 이슈의 중심에 세우고 있는 피고인 신분의 양우식 운영위원장(국민의힘·비례)에 대한 사퇴 요구와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이다. 행감 출석을 거부했던 조혜진 비서실장은 사퇴하며 양 위원장 문제를 도의회에 맡기겠다고 했다. 이제 도의회는 여야를 막론하고 책임 있는 응답을 해야 한다. 직원을 상대로 한 범죄로 재판에 넘겨진 이가 도의회 최선임 상임위의 위원장으로 권한을 행사하는 건 부당하다. 그게 직원들의 의견이기도, 도민의 요구이기도 하다. 그날, 낯설게 느껴질 정도로 화합했던 여야가 이번 요구에도 마음을 모으길 바라본다. 당을 넘어 책임을 지는 데 뜻을 모으는, 또다시 생경하지만 인상적인 모습이 의회에서 펼쳐지길 바란다.

[지지대] 현장을 떠난 中 노벨상 작가

작가가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엇갈릴 수 있을까. 물론 주제나 경향 등은 바뀔 수 있다. 하지만 작가 정신만은 잃지 말아야 한다. 그 정신을 통해 작가가 살고 있는 시대를 직시하고 일관성도 유지해야 한다. 뜬금없이 작가 정신을 꺼낸 건 요즘 중국의 대표 소설가인 모옌(莫言)의 변신이 예사롭지 않아서다. 그는 중국에서 루쉰(魯迅) 다음으로 존경을 받는 작가다. 현장을 중시하는 작가 정신의 대표적인 소설가였다. 2012년 중국 최초로 노벨 문학상도 받았다. ‘붉은 수수밭’이 수작이다. 작품으로 들어가 보자. “18세 처녀가 늙은 양조장 주인에게 팔려간다. 흔들거리는 가마문 틈으로 수수밭이 출렁거린다. 몇년이 흘러 일본군이 들이닥쳤다. 수수밭은 군사도로를 만들기 위해 파헤쳐진다. 분노한 주민들이 고량주에 불을 붙여 기관포를 앞세운 일본군과 싸운다. 수수밭은 온통 화염에 휩싸여 삽시간에 붉은 피로 물든다.” 배경은 1920~1940년 중국 산둥성의 농촌이다. 힘없이 스러지던 농민들을 통해 중일전쟁을 고발했다. 시대의 아픔을 오롯이 담았다. 모옌은 필명이다. 본명은 관모예(管謨業)다. 글로만 표현할 뿐 ‘입으로는 말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작가 정신의 또 다른 해석이다. 그는 문화혁명을 겪으면서 학업을 중단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지내다 열여덟 살 되던 해부터 노동자로 일했다. 1976년 고향을 떠나 인민해방군에 입대해 복무하던 중 문학으로 눈을 돌렸다. 그랬던 작가가 대학교수가 됐다는 소식이 들린다. 작가 정신의 요체인 현장을 떠났다는 이야기다. 중국 언론이 알렸다. 임명식에서 그가 언급한 워딩은 이랬다. “청년들과 소통하지 않는 사람은 더 빨리 늙는다.” 그의 변신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그의 새 직장인 중국런민대도 자유롭지 않다. 대륙 한복판인 옌안(延安)에서 공산당 간부를 육성하기 위해 설립됐던 산베이공학(陝北公學)이 모태이기 때문이다. 모옌이 그토록 강조했던 작가 정신을 버렸다. 명백한 작가 자격 상실이다. 그의 변절 같은 변신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지지대] ‘국민교육헌장’

가구를 정리하다 보면 늘 나오는 게 있다. 앨범이 그랬다. 케케묵은 흑백사진이 과거를 소환해주곤 했다. 그 속에서 문득 떠오르는 게 있다. 같이 불려 나오는 기억의 편린들이 썩 유쾌하지는 않다. 개구쟁이 시절 밤잠을 설치게 했고, 학교 가기가 부담이 됐던 시절이 있어서다. 그 까닭은 간단했다. 등교하자마자 선생님 앞에서 달달 외워야만 해서다. 그렇지 않으면 혼쭐이 났다. 국민교육헌장 이야기다. 발표된 시기는 1968년 12월5일이었다. 기초위원 26명과 심사위원 48명 등이 모여 작성한 후 국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새마을운동만큼 많이 보급됐다. 철학자 박종홍과 초대 문교부 장관을 지낸 안호상이 주도했다. 5차 교육과정 때까지는 교과서 앞 부분에 맨 먼저 인쇄됐다. 학생은 물론이고 근로자, 공무원, 군인, 경찰을 막론하고 무조건 암송해야만 했다.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됐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자주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 공영에 이바지할 때다. 이에, 우리의 나아갈 바를 밝혀 교육의 지표로 삼는다.” 중간 부분에는 성실한 마음과 튼튼한 몸으로, 학문과 기술을 배우고 익히며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하자는 내용이 이어졌다. 우리의 처지를 약진의 발판으로 삼아 창조의 힘과 개척의 정신을 기르자는 권유도 있었다. 발표 초기부터 반발이 심했다. 왜 그랬을까. 사람을 존중의 대상이 아닌 사회의 부속품으로 여기고 도구로 생각하는 사고관이 바닥에 깔려 있었다. 긍정적인 의견도 있었다. 대표적인 게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이란 표현이었다. 경제 발전이 당시로는 국가적인 어젠다였다. 오늘날 시점에서 보면 전체주의적인 관점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절제된 표현을 사용했다는 분석도 있었다. 이 헌장의 수명은 그리 길지 않았다. 1994년 폐지됐다. 발표된 지 26년 만이었다. 역사는 흥망성쇠를 반복한다. 이 같은 명제를 새삼 일깨워주는 한 편의 에피소드가 씁쓸하다.

[지지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용기

작년 이맘때쯤. 늦은 저녁 회사 동료들과 함께 출입처 약속을 마치고 살을 에는 추위를 피하기 위해 급히 차량에 타 시동을 걸었다. 잔고장이 많았던 차량이었지만 이날 따라 유독 말썽이었다. 1시간가량 시동이 안 걸려 손발이 얼어가며 추위에 떨다 결국 폐차를 결정, 차량 렌트를 한 지 벌써 1년이 지났다. 매달 지불하는 렌트 비용이 아까워 최근 차량 구매를 위해 발품을 팔던 중 렌터카 내부에 설치된 블랙박스가 눈에 띄었다. 문득 “내부도 찍히나”라는 생각과 함께 1년 365일 동안 차 안에서 행한 지극히 사적인 언행들이 다 기록돼 있는, 말 그대로 ‘있었던 그대로의 사실’이 담긴 블랙박스라고 판단되자 거부감이 들었다. 설정 확인을 해보니 내부 촬영 기능은 없는 것으로 확인돼 왠지 모를 안도감이 느껴졌다. 일면식도 없는 렌터카 관계자에게 대단치도 않은 평범한 기자의 일상이 담겼을 수도 있는 블랙박스를 제출하는 일에도 ‘움찔’하는데 하물며 타인에게 어필하는 자신의 성향과 가치에 관한 정보는 어떨까. 대인관계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로 부각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MBTI다. “MBTI가 어떻게 되세요”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자신을 알리는 또 다른 명함쯤으로 인식되고 있다. 의료계의 판단 등 객관적 근거를 토대로 수혈을 위해 도입된 ABO식 혈액형 분류. 이와 달리 본인이 직접 테스트를 거쳐 스스로 완성한 MBTI 검사 결과에 진심으로 자기객관화가 작동했을지 의문이 든다. 사람은 혼자 보는 일기장에도 거짓말을 쓴다. 인정받지 못한 그날의 불쾌한 경험과 감정이 일기장에서조차 외면받는 이유는 상처받은 지금의 내가 훗날 일기장을 볼 미래의 내가 아픈 기억을 상기해 고통받길 원하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실 기록을 업으로 삼는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 자체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일은 아직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지지대] 언어의 품격

“우리 문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 가운데 하나는 개소리가 너무도 만연하다는 사실이다.” 미국 스탠퍼드대 철학과 교수인 해리 프랭크퍼트는 2005년 펴낸 저서 ‘개소리에 대하여(On Bullshit)’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자에 따르면 거짓말은 개소리보다 더 나쁘고 악의가 있다고 인식된다. 개소리는 비교적 가볍고 덜 나쁜 것으로 취급되기도 한다. 하지만 개소리는 거짓말보다 위험하다. 거짓말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어떤 게 진짜인지 판별해 보려는 개인과 사회의 노력이 동반되지만 개소리는 본질이 어떠한지에 무관심하다. 거짓도, 진실도 그 어느 것에도 의미를 두지 않고 그냥 ‘싸지른다’. 말은 그 시대의 거울이자 척도다. 불안을 뒤로한 채 모두가 희망을 갈구하며 맞이했던 2025년은 어떠한 말이 우리 사회에 오갔나 생각해본다. 품격과 신뢰의 언어 대신 막말과 혐오, 비난의 말이 우선 떠오른다. 국회와 거리, 뉴스, 유튜브에서 튀어나온 말들이 그야말로 날뛰었다. 정치인의 입에선 진실인지 아닌지 모를 선동의 언어와 막말이 정치 언어로 연일 등장했다. 주어와 목적어를 감춘 감정을 자극하는 선동 문구, 어디서 왔는지 출처가 불분명한 이야기, 특정 국가를 앞세운 혐오의 제목은 사회관계망서비스와 뉴스, 거리를 넘어 일상을 파고들었다. 진심과 품격, 신뢰가 사라진 언어엔 소통 대신 분열과 낙인을 남겼다. 그 낙인은 주로 여성과 장애인, 성소수자 등에게 집중됐다. 프랭크퍼트는 “개소리를 하는 자는 애초에 진실에 관심이 없다. 거짓말은 진실이 드러나면 힘을 잃지만 개소리는 진실이 밝혀진 뒤에도 이어진다. 개소리가 거짓말보다 위험한 이유”라고 말했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지금, 조금 더 나은 내일이 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다시 바라본다. 올해의 끝자락엔 ‘실체 없는 말들’이 사라지기를. 품격 있고 정제된 정치의 언어가 사회에 자리 잡기를. 무엇보다 개소리가 넘쳐나는 시대를 우리가 무심히 넘기지 않기를.

[지지대] 기부는 세상을 지탱하는 축

해마다 12월이면 길거리 곳곳에 종소리와 함께 구세군의 빨간 자선냄비가 모금을 하는 모습이 흔했다. 추운 겨울 이웃에게 온기를 전하는 상징이다. 비록 현금보다 신용카드 등의 지출이 커지면서 지금은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구세군의 자선냄비는 우리 곁에 있다. 12월에 들어서면서 또다시 곳곳에서 연말을 맞아 어려운 이웃을 돕는 나눔 관련 기부 활동이 시작됐다. 인천에서는 대표적으로 인천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나서 이 같은 모금 캠페인을 하고 있다. 인천시청 앞 애뜰광장에는 대형 사랑의 온도탑이 세워졌다. 올해 모금액 목표인 108억8천만원이 다 채워지면 온도탑 온도가 100도(℃)까지 오른다. 이 같은 기부는 세상을 지탱하는 한 축이다. 작은 금액이 모여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돕는다. 그 이웃에게는 작은 나눔이 바로 삶을 지탱하는 큰 희망일 수 있다. 기부는 해마다 겨울 이때만 하거나 꼭 모금회 등을 통해서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곁에는 어려운 이웃을 돕는 많은 단체가 있다. 적십자를 비롯해 월드비전, 그리고 유니세프 등을 비롯해 종교단체나 민간단체까지. 이 단체 등을 통하면 1년 내내 아무때나 기부를 할 수 있다. 필자도 자녀들과 함께 비록 적은 금액이지만 여러 단체에 기부를 하고 있다. 단순한 동정심이 아니다. 사회적 책임감으로 인한 ‘비자발적’ 기부로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보람과 만족감을 느낀다. 기부한 단체를 통해 후원 아동 등의 사진 등을 받아 볼 때면 뿌듯하다. 물론 연말정산에서 세액 공제를 받는 것은 덤이다. 우리 모두 경제적으로 기부를 할 만한 여력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다만 1개월에 커피 한 잔 가격만 아낀다면 충분히 기부가 가능하다. 금액이 많고 적은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1천원도 좋고 5천원도 좋다. 지금 기부를 시작한다면 작은 행복을 더 오래 누릴 수 있다.

[지지대] 고등어 값 올랐다

어렸을 적부터 왜 이런 이름이 붙었는지 궁금했다. 우스갯소리로 학력이 고졸이어서 그랬을까. 고등어 이야기다. 유래를 알아보니 이랬다. 생김새가 부엌칼과 비슷해 옛 ‘고(古)’와 칼 ‘도(刀)’가 합쳐져 ‘고도어(古刀魚)’였다. 그러다 현재의 고등어로 불리게 됐다. 조선시대 문헌인 ‘동국여지승람’에 나온다. 신상을 더 들여다보자. 몸 길이 최대 40㎝ 정도까지 자란다. 긴 방추형이고 왼쪽과 오른쪽으로 약간 납작하다. 등은 연한 파란색 바탕에 암청색의 얼룩 무늬가 있다. 배는 은백색이다. 사는 곳은 어디일까. 정약전의 ‘자산어보’에는 동해와 서해, 남해 등지의 연안이라고 기록돼 있다. 먹이는 동물성 플랑크톤과 작은 어류 등이다. 3~6월에 산란한다. 쓰임새도 회나 찌개, 소금구이 등 다양하다. 식탁에 자주 오른다. 국민 생선으로 불리는 까닭이다. 최근 이 생선이 시장에서 서민의 지갑을 닫게 하고 있다. 어획량이 줄면서 값이 껑충 뛰어 가계에 부담을 주고 있어서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수산업관측센터에 따르면 지난달 고등어 생산량은 6천993t으로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61.5%, 평년보다는 45.3%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원인은 유난히 길었던 올해 추석 연휴와 기상 악화 등으로 인한 조업일수 감소로 분석되고 있다. 게다가 노르웨이 정부가 자국의 고등어 어획량을 제한하는 쿼터제를 시행하면서 노르웨이산 고등어 수입 물량이 축소된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소비자들의 선호도가 높은 중·대형 고등어의 올해 1~10월 누적 어획 비중이 4.6%로 지난해 12.9%의 3분의 1 수준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평년의 20.5%과 비교하면 대폭 낮아졌다. 값도 올랐다. 소비자가격(신선냉장)은 10% 넘게 뛰었다. 지난달 소비자가격은 ㎏당 1만2천131원으로 지난해와 평년보다 각각 10.5%, 16.8% 상승했다. 밥상에 자주 오르는 생선 가격이 뛰면서 서민의 주름도 늘고 있다. 당국의 혜안이 절실하다.

[지지대] 반가운 ‘아기 울음소리’

아기 울음소리는 요즘 가장 듣고 싶은 소리 가운데 ‘0순위’다. 예전에도 반갑긴 마찬가지였다. 오죽하면 “온 동네 떠나갈듯 울어 젖히는 소리”로 시작되는 유행가까지 있었을까. 1970년대 발표된 가람과 뫼의 ‘생일’이란 노래가 그랬다. 당시는 정부가 아기 낳기를 제한할 정도로 지금과는 사회적 분위기가 달랐다. 그런데도 “응애응애” 하며 태어나는 아기를 보면 흐뭇했다. 신생아 수가 늘고 있다는 통계(경기일보 27일자 8면)가 나왔다. 지난해 7월부터 15개월째다. 국가데이터처(옛 통계청)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올해 9월 출생아 수는 2만2천369명으로 지난해 9월보다 1천780명으로 8.6% 늘었다. 2020년 9월(2만3천499명) 이후 가장 많은 수를 기록했다. 올해 7~9월 출생아 수는 6만5천39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천767명(6.1%) 늘었다. 1~9월 누계 출생아 수는 19만1천4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만2천488명 증가했다. 같은 기간 기준으로 18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늘어난 셈이다. 출산율도 올랐다. 9월 합계출산율은 0.85명으로 지난해 9월보다 0.06명 증가했다. 3분기 합계 출산율은 0.81명으로 0.04명 늘었다. 출산 증가세는 30대에서 두드러졌다. 3분기 연령별 출산율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5~29세는 0.1명 감소했지만 30~34세 2.4명, 35~39세는 5.3명 각각 는 것으로 집계됐다. 혼인도 증가세다. 지난해 4월부터 18개월째 늘고 있다. 9월 혼인 건수는 1만8천462건으로 지난해보다 3천95건(20.1%) 늘었다. 증가 폭과 증가율 모두 9월 기준 역대 1위다. 물론 숫자의 단순한 나열인 만큼 쉽게 다가오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반세기 전 아기 울음소리를 노래한 대중가요의 후렴은 이렇게 끝이 난다. “하늘은 맑았단다/구름 한 점 없더란다/나의 첫 울음소리는 너무너무 컸더란다”. 집집마다, 골목마다 아기 울음소리가 넘치는 세상 만들기는 어려운 걸까.

[지지대] 시골 학교 음악회

“학교에서 가을 음악회를 여는데 한번 취재해 주세요.” 5개월 전 만나 인터뷰를 했던 중학교 교장선생님에게서 문자메시지가 왔다. 이 학교는 한때 인근 지역 학생들이 앞다퉈 오고 싶어하는 할 정도로 규모가 꽤 컸지만 지역 인구 소멸로 인한 학생 수 감소를 피할 수 없었다. 현재는 전교생이 50명도 채 되지 않는 소규모 학교이다 보니 매년 신입생이 얼마나 들어올지 걱정이 앞선다는 하소연이 귓가에 맴돌던 차였다. 수원에서 80여㎞ 떨어진 거리. 고속도로와 울퉁불퉁한 도로를 반복하다 겨우 도착한 학교 대강당에는 교복 차림의 학생이자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마지막 연습에 여념이 없다. 전교생이 오케스트라 단원이라고 했다. 같은 시각 대강당으로 들어오는 이웃 학교 교사와 학생들, 인근 마을 주민들은 한껏 들뜬 목소리로 왁자지껄했고 어떤 이는 꽃다발을 들고 들어오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공연 순서와 파트 구분을 알리는 리플릿을 나눠주며 자리를 안내하는 교직원들은 설렘과 긴장감으로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잠시 후 시작된 음악회. 음악교사의 지휘 아래 일곱 가지 악기를 맡은 학생들, 악기별로 학생들을 가르친 방과후 교사들이 함께 몇 곡을 연주했을 때 강당은 이미 어느 아트홀에 뒤지지 않는 공연장이 돼 있었다. 경기도내 학교들이 학령인구 감소로 깊은 고민에 빠져 있다. 이런 가운데 경기도교육연구원이 현안 연구를 통해 소규모 학교의 기준을 정리해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고 정책에 기초를 세워 맞춤형 처방과 지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 음악회가 지닌 특별함은 여기에 있다. 전교생 어느 한 명도 소외되지 않고 저마다의 소리를 보태 완성한 선율은 인구절벽의 위기 속 통폐합을 걱정하는 시골 학교에서 들려온 희망이었다. 단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교육의 본질을 증명하는 자리가 아니었을까.

[지지대] 시장 돌진 사고, 정부가 나서야

11월13일 부천시 오정구 부천제일시장 좁은 통행로에서 트럭이 돌진해 4명이 숨지고 18명이 부상을 입는 대형 사고가 발생했다. 그 직후 경기일보는 사고 요인으로 사람과 물건, 차량이 뒤섞인 ‘좁은 통행로’를 지목하고 여러 지역 전통시장을 돌아봤다. 그 결과 대부분 두세 명이 나란히 걷기 힘든 통로에 오토바이, 차량이 수시로 지나다녔고 통행로 좌우엔 물건들이 적치돼 있어 언제든 비슷한 사고가 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상인과 방문객, 심지어 하역을 위해 시장에 들어서는 화물차 기사들도 사고를 우려하며 통행로 폭 확대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사고로 세상을 떠난 20대 피해자 고(故) 문영인씨 가족도 경기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사고 당시 통행로가 굉장히 좁아 행인들이 차량을 보고도 피하지 못했다”며 “통행로가 조금만 더 넓었다면, 구급차가 더 빨리 올 수 있었다면 상황이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라며 한탄했다. 모두가 지적하는 만큼 개선이 빠를 수 있을까. 먼저 경기도는 말했다 “현행법상 시장 통행로는 일반도로라 시장 현대화 명목으로 폭을 확대하긴 어렵다”고. 일선 시·군들도 “시장 통행로는 도로라 차량 통행을 막을 법적 근거가 없다”는 입장이다. 또 비상대피로 조성이나 통로 내 물건 적치 금지에 대해서는 “민원이 제기되면 단속하지만 (인력 여건상) 근절엔 한계가 있다”, “시장 내 점포가 들어선 곳은 사유지라 대피로 등 안전 점검은 자체 진행토록 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각 입장을 하나씩 분절해 보면 맞는 말들이다. 하지만 이를 종합하면 “좁은 시장 통행로에서의 차량 돌진 사고는 지자체 차원에서 재발 방지가 매우 어렵다”로 귀결된다. 지자체가 할 수 없다면 정부가 나서야 한다. 시장 도로 폭 확대 및 보차 분리 법제화, 예산 지원 및 제재 규정 강화로 이미 재발 가능성이 크다고 인식되는 ‘시장 차량 돌진 사고’를 막아야 한다.

[지지대] AI의 발전과 언론의 본질

얼마 전 구글이 생성형 AI 제미나이 3(Gemini 3)를 선보였다. 구글의 자신감 넘치는 표현을 빌리자면 제미나이 3는 모든 제미나이의 역량을 집대성해 어떤 아이디어든 실현할 수 있도록 돕는 가장 똑똑한 모델이다. 제미나이 3를 써본 사용자와 개발자들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반응 중엔 AI 발전으로 대체될 직업군을 다룬 어두운 예상도 있었다. 이미 미국에선 AI 기술의 영향으로 컴퓨터 프로그래머들이 일자리를 잃고 있다는 수치가 나왔다. AI 대체 직업군 중엔 기자도 심심찮게 포함됐다. AI에게 보도자료 등 텍스트를 나열한 정보로 기사를 쓰게 했더니 예상보다 잘 썼다는 얘기는 이미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그러니 기자도 AI에 대체될 거란 전망이다. 맞는 말일까. 기자의 본질로 들어가보면 해답이 나온다. 기자는 취재, 편집 등의 일을 한다. 취재는 현장을 가고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단순히 듣기만 해서는 기사를 쓸 수 없다. 일어난 일의 전모, 본질을 파악하려 애쓴다. 이 과정에서 교차 검증은 필수다. 기사 작성은 단순히 보도자료를 텍스트로 변화시키는 작업이 아니다. 오랜 기간 사람을 만나고 현장에서 나오는 게 기사다. AI가 아닌 사람의 영역이다. 얼마 전 경기언론인클럽이 주최한 ‘생성형 AI시대, 취재·보도 준칙’ 좌담회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AI를 어디까지 활용할지, 활용했다면 어느 선까지 공개할지 등 고민이 많았다. 그러다 눈길이 간 곳이 신문윤리강령 및 실천요강이다. 실천요강의 보도준칙은 언론의 본질을 잘 설명하고 있었다. “언론인은 보도기사를 작성할 때 사안의 전모를 충실하게 전달함을 원칙으로 하며, 출처 및 내용을 정확히 확인해야 한다.” 그렇다. 정확하게 확인하려면 사람이 직접 나서야 한다. 그러면 기자는 왜 이런 일을 할까. 역시 실천요강에 잘 나와 있다. “사회정의와 공익을 실현하기 위해 진실을 적극적으로 추적, 보도해야 한다.” 시대가 변했어도 언론은 우리 사회의 공익을 위해 존재한다. 그 일은 사람이 직접 하는 데는 변함없다.

[지지대] 샤인머스캣의 추락

포도 품종 중에 샤인머스캣(Shine Muscat)이 있다. 반짝인다는 뜻의 형용사 ‘Shine’과 단맛이 나는 백포도주를 의미하는 명사인 ‘Muscat’이 합쳐졌다. 고향은 일본 히로시마이며 태어난 해는 1988년이다, 익는 시기는 8월 중순이다. 포도알이 크고 씨가 없다. 일반적인 포도보다 달다. 국내에는 2006년 묘목이 들어왔다. 이후 2010년대 초반부터 재배가 시작했다. 명절 선물 세트에 나오기도 했을 만큼 인기가 엄청났다. 값도 비싸다. 유럽 명품 브랜드 이름을 따 ‘과일의 에르메스’로도 불린다. 그런데 이젠 그 명성이 옛말이 됐다. 2020년까지만 해도 2㎏ 한 상자에 3만~5만원대에 팔렸지만 현재는 1만~2만원대로 가격이 뚝 떨어져서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집계에 따르면 샤인머스캣 2㎏ 평균 소매가격은 1만1천572원으로 평년보다 54.6% 싸다. 지난해보다 19.1% 하락했다. 지난달 2㎏당 평균 소매가격은 1만3천314원으로 5년 전인 2020년과 비교해 3분의 1 수준이다. 매년 10월 평균 가격을 보면 2020년 3만4천원, 2021년 3만3천원, 2022년 2만4천원, 2023년 2만1천원, 지난해 1만5천원 등으로 매년 가파른 내림세를 보이면서 추락하고 있다. 지난달 평균 소매가격을 다른 품종과 비교해도 그 추세는 확연하다. 샤인머스캣이 2㎏당 1만3천314원인 반면 거봉은 2㎏당 2만2천952원으로 샤인머스캣보다 72% 비쌌다. 물론 소비자 입장에선 가격이 떨어진 게 꼭 나쁘지만은 않다. 원인은 수요공급의 법칙에서 비롯된다.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알려지자 많은 농가가 뛰어들면서 가격이 몇 년 만에 곤두박질쳤다. 거기에 많은 소비자들이 당도도 낮아지고 껍질도 질겨졌다고 지적한다. 품종별 재배면적을 보면 지난해 기준 샤인머스캣 비중이 43.1%로 캠벨얼리(29.3%)과 거봉(17.5%)의 2~3배다. 이 과일의 추락을 지켜보면서 서양 속담이 떠오른다. 무릇 이 세상엔 영원한 건 없다.

[지지대] ‘울고 넘는 박달재’의 소환

비탈길을 오를 때면 힘들다. 숨도 턱턱 막힌다. 눈물이 쏙 빠진다. 우리 산하에는 그런 고개가 지천이다. 사연들도 많다. 충북 제천시 봉양면에서 백운면 사이에 걸쳐진 천등산에도 그런 곳이 있다. 인근에 박달나무가 많다고 해서 박달재로 부른다. 안타까운 사연도 수두룩하다. 마을 처녀를 짝사랑하다 상사병으로 세상을 떴다는 청년의 이름에서 연유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고개의 사연을 담은 유행가도 있었다.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난 지 3년 뒤인 1948년이었다. 타계한 가수 박재홍이 불렀던 ‘울고 넘는 박달재’ 이야기다. 얼마나 안타까운 서사가 많았길래 울면서 넘었을까. 작사가 반야월이 만든 노랫말을 들여다보자. “천등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 님아/물항라 저고리가 궂은비에 젖는구려/왕거미 집을 짓는 고개마다 구비마다/울었소 소리쳤소 이 가슴이 터지도록/부엉이 우는 산골 나를 두고 가는 님아/돌아올 기약이나 성황님께 빌고 가소/도토리 묵을 싸서 허리춤에 달아주며/한사코 우는구나 박달재의 금봉이야.” 그로부터 강산이 두 차례 바뀌면서 같은 이름의 영화도 만들어졌다. 1968년이었다. 고(故) 심우섭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줄거리는 가사와 비슷했다. 이런 가운데 외교 무대에서 뜬금없이 이 노래가 소환됐다. 무려 77년 만이다. 그것도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골든’ 등 요즘 한창 뜨고 있는 케이팝이 아니라 흘러간 유행가가 말이다. 그 사연은 이렇다. 이재명 대통령이 국빈방문한 아랍에미리트(UAE)가 이 대통령을 맞이하면서 대형 태극기 조명과 함께 음악대가 이 노래를 연주했다. 김남준 대통령실 대변인의 설명은 이랬다. “정상회담 이후 열린 오찬에선 한국 식재료를 활용한 메뉴가 준비됐고 UAE 음악대가 영부인의 고향인 충북의 박달재를 소재로 한 노래로 ‘울고 넘는 박달재’를 연주했습니다.” 케케묵은 유행가도 세계인들에게 아낌을 받을 수 있을까. 장르 구분 없이 우리의 대중가요들도 사랑받길 기대한다. 그게 케이팝의 힘이 아닐까.

[지지대] 4천억 지킨 승소, 이후의 숙제

우리나라가 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와 13년간 벌여 왔던 국제투자분쟁(ISDS)에서 승소했다. 당초 판정에서 인정됐던 우리나라의 배상 책임이 모두 소멸됐다는 내용으로, 현재 환율 기준 약 4천억원 규모의 정부 배상이 ‘없던 일’이 됐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1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긴급 브리핑을 열고 “국가 재정과 국민 세금을 지켜낸 중대한 성과”라고 말했다. 그의 발표 내용처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부터 한미중일 정상외교, 관세 협상 타결에 이은 쾌거”가 맞다. 이는 단순한 승소 이상의 가치를 가진다. 경제적 손실을 잠재우는 동시에 재정건전성과 주권 회복 차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잘한 일은 잘한 일이고, 축하할 일은 축하할 일이다. 하지만 론스타 사태에서 보듯 한국 경제 구조의 취약성과 경제 교육 미흡이라는 문제가 잔존한다는 점에서 경계의 시선을 더하고 싶다. 론스타 사태처럼 국제투자자가 매각 지연, 절차 모호성 등을 이유로 ISDS에 나서는 건 우리나라 분쟁 대응의 구조적 허점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정부는 이와 관련된 소송 대응에 막대한 역량을 장기간 투입했고 전문 전략과 일관된 시스템으로 승리를 거뒀지만 또 다른 ‘제2의 론스타’ 분쟁이 발생한다면 그때는 취약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따라서 더욱 단단하고 안전한 사회망이 요구된다. 또 외국계 사모펀드와의 소송이 반복되는 가운데 국민의 금융·투자에 대한 이해 수준도 중요하다. 국민의 이해 정도가 낮으면 여론은 단순한 ‘공격자—피해자’ 구도로 편향될 수 있다. 정책 결정자도 감정적 상황에 휘둘릴 수 있고, 이는 정책을 설계하는 데 장애로 작용한다. 따라서 이번 건과 같은 상황에서 대중의 정책 이해와 사회적 수용력도 더 넉넉해질 필요가 있다. 이번 승소는 끝이 아니라 점검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투자분쟁은 제도와 교육, 정책 일관성이 함께 작동할 때 최소화된다. 론스타 사태는 끝났지만 그저 분쟁의 승패에 머물고 말 게 아니라 경제 체계의 안정성을 쌓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

[지지대] 공휴일로 부활하는 제헌절

3·1절(3월1일), 제헌절(7월17일), 광복절(8월15일), 개천절(10월3일), 한글날(10월9일)은 우리나라의 5대 국경일이다. 그런데 1948년 제헌헌법 공포를 기념하는 국경일인 제헌절만 현재 공휴일이 아니다. 제헌절은 1950년부터 공휴일로 유지돼 왔는데 2005년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이 개정되면서 2008년부터 공식적으로 공휴일에서 제외됐다. 이유는 참여정부 시절 주 5일 근무제 시행으로 기업 생산 차질, 인건비 부담 증가 등을 우려한 재계 요구를 반영한 조치였다. 그런 제헌절이 공휴일로 재지정될 것으로 보인다. 제헌절을 공휴일로 지정하는 ‘공휴일에 관한 법률’(공휴일법) 개정안이 17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했다. 개정안이 행안위 전체회의를 거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경우 이르면 내년부터 제헌절은 공휴일로 재지정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7월17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헌법이 제정·공포된 날을 기념하는데 소위 ‘절’로 불리는 국가기념일 중에서 유일하게 휴일이 아닌 것 같다”며 “향후 제헌절을 특별히 기릴 필요가 있기 때문에 휴일로 정하는 방안을 한번 검토해 봤으면 좋겠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재명 정부 1호 법률인 내란·김건희·순직해병 특검법이 시행되면서 3개 특별검사팀 활동으로 대한민국은 어수선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로 정치권과 여론은 극명한 온도차를 보이며 더더욱 분열되고 있는 양상이다.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Are all equal before the law)’. 복잡한 법적 셈법에 양분화된 대한민국이다. 제헌절이 공휴일로 재지정된다면 단순히 빨간 날이 하루 더 늘어났다는 것보다 진심으로 헌법의 의미를 되새기며 분열이 아닌 통합의 길을 모색해 보는 ‘시금석(試金石)’과 같은 날로 만들어보자.

[지지대] 폐지 줍기

최근 앱테크, 이른바 ‘디지털 폐지 줍기’를 하고 있는 이들을 많이 접한다. 앱으로 ‘동전’을 모으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왜 저러나 싶다가도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스마트폰을 손가락으로 눌러 가면서 포인트를 얻는 행위가 실제 거리에서 손수레를 끌고 박스, 종이 등을 줍는 행위의 온라인 버전이라고만 보기에는 이미 많은 이들이 여러 가지 앱을 이용하는 등 생활화됐다. 언제부턴가 흥미로운 동전 줍기에 동참하게 됐다. 앱에서 특정 활동을 통해 10원, 20원씩 모으는 일이다. 마치 손수레를 끌고 슈퍼마켓 앞에 버려진 박스를 줍듯 스마트폰으로 앱에 들어가 오늘의 포인트를 수거한다. 단순히 잔돈을 챙기는 행위만은 아니다. 민선 8기 경기도가 내놓은 ‘기후행동 기회소득’을 실행하면 마치 스스로가 탄소중립에 앞장서는 것처럼 느껴진다. 기후행동 기회소득은 그 어떤 앱테크보다 디지털 폐지 줍기 그 자체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폐지를 모아 팔면 친환경 제품인 재생용지 등으로 재활용되듯이 기후 관련 문제를 풀거나 플로깅(쓰레기를 주우며 달리기)을 해 인증한 뒤 적립금을 확보한다면 그 자체로 조금씩 탄소중립을 실현하는 데 동참하게 된다. 이는 ‘내 탄소 감축량’에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퀴즈를 풀면 기후 관련 상식도 생긴다. 폐태양광 패널을 처리하고 재활용하는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는 내용과 물티슈는 종이가 아니기 때문에 일반 쓰레기로 처리해야 한다는 사실 등이다. 퀴즈를 맞히면 10원부터 300원까지 획득할 수 있다. 물론 틀리면 소득은 없다. 지난해 경기도 기후대사를 맡고 있는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과의 인터뷰 중 들었던 내용이 생각난다. 기후 변화 문제에 대해 온 국민이 인식하고 있으니 이제 가족과 함께 대중교통 이용, 다회용기 배달 이용, 에너지 절약 등을 실천해 보라는 것이었다. 지금 기후행동 기회소득 앱을 켜고 기후 퀴즈를 푸는 것부터 시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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