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가끔은 책장을 넘겨보자

사람들의 손에 스마트폰 대신 책이 들려 있던 시절이 있었다. 지하철, 버스는 물론이고 거리 벤치에서도 책 읽는 사람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누군가는 접힌 신문을 읽었고, 누군가는 소설을 펼쳤다. 가방 안에는 책 한 권쯤 들어 있었고 일찍 약속 장소에 도착하면 책장을 넘겼다. 그때는 신문에 책 광고가 실리면 독자들이 반응했다. 광고를 본 사람이 출판사나 서점에 전화를 걸어 책을 주문했다. 신문 서평을 오려뒀다가 서점에 가져가는 독자도 있었다. 라디오에서 소개된 책, 신문 문화면에 난 책, 유명 작가의 신간은 입소문을 탔다. 동네마다 서점이 있었다. 꼭 사지 않아도 책 냄새를 맡고, 제목을 훑고, 뒷표지 문장을 읽었다. 도서관 대출카드에는 다른 사람의 흔적이 남았다. 같은 책을 누가 먼저 빌려갔는지, 몇 번이나 대출됐는지 알 수 있었다. 학생들은 문학전집을 돌려 읽었고, 군대에 간 자식에게 책을 보내는 부모도 있었고, 연인에게 시집을 선물하는 사람도 있었다. 책은 그렇게 사람 사이를 오갔다. 물론 그 시절에도 모두가 책을 많이 읽은 것은 아니다. 다만 지금보다 책은 자연스럽게 우리의 일상에 존재했다. 7일 요미우리신문이 일본 출판시장 추락을 다룬 기사를 냈다. 일본의 서점 수가 급격히 줄고 종이책 판매액이 1975년 이후 처음으로 1조엔 아래로 떨어졌다. 자타 공인 출판왕국 일본의 출판이 서서히 기울고 있다는 것이다. 기사가 나온 김에 한국 출판시장 규모도 찾아봤다. 우리도 비슷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책이 쇠락하고 있다. 책을 들던 손에는 스마트폰이 들린 지 오래다. 사람들은 짧고 빠른 자극에 익숙해졌다. 긴 문장을 따라가고 한 권의 책을 끝까지 읽고 곱씹는 일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그래도 가끔은 책을 읽어보는 건 어떨까. 거창한 독서 계획이 아니어도 좋다. 하루 한 장이어도 좋고, 잠들기 전 몇 쪽이어도 좋다. 가끔 하늘을 올려다보듯 책장을 넘겨보자. 도파민도 필요하겠지만 책이 주는 은은한 즐거움을 잃어버리기엔 너무 아깝다.

[지지대] 유종의 미

유종지미(有終之美)라는 말이 있다. 흔히 ‘유종의 미’라고 일컫는다. 한번 시작한 일을 끝까지 잘해 좋은 결과를 냈다는 의미다. 우리는 모든 일의 마지막 순간, 이 유종의 미라는 말을 꺼낸다. 처음 만났을 때보다 헤어지는 그 순간의 안녕이 더욱 기억에 남고, 결국 첫 만남보다는 끝나지 않은 헤어짐의 순간이 그 사람과의 세월을 규정 짓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해보면 지방선거가 끝나고 새로운 지방정부의 탄생을 앞둔 지금 이 시기가 정치인들에게는 ‘유종의 미’를 정하는 가장 중요한 순간일 것이다. 9일 경기도의회가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마지막 회기를 열었다. 16일간 이어지는 회기를 통해 도의회는 그동안 끝내지 못한 과업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12대 도의회에 자리를 내준다. 78 대 78. 동수로 시작했던 경기도의회다. 치열하다는 말로는 부족한, ‘사사건건 부딪치는’ 모습을 보였다. 반대를 위한 반대, 내 이익을 앞세워 지역주민의 공익을 등한시하던 모습, 독단적으로 특정인이 의회를 좌지우지하며 뒤흔들던 모습. 모두 경기도의회에서 벌어졌던 일이다. 물론 처음부터 끝까지 그랬던 건 아니다. 국민의힘 원내대표단이 교체되면서 도의회도 달라졌다. 협력과 화합을 더 중시하기 시작했고 불필요한 갈등은 과감히 끊어냈다. 만약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다면 도의회에는 더 많은 변화가 찾아왔을지 모른다. 12대 경기도의회가 이제 곧 출범한다. 이번엔 144 대 22 대 1 구도다. 민주당이 독주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독단이 가져오는 부작용을 11대 도의회는 봤다. 권력을 사유화하면 얼마나 위험한지도 배웠다. 12대 도의회의 마지막 성적표는 11대 도의회 마지막에서 얻은 교훈이 결정하지 않을까.

[지지대] 승전보를 기다리며

지치고 고단한 일상 속에서 온 국민을 하나로 묶고 가슴속 깊은 곳에 잠재돼 있던 뜨거운 에너지를 단숨에 폭발시키는 마법이 있다. 바로 세계인의 축제, 월드컵이다. 초록빛 그라운드 위를 달리는 선수들의 땀방울과 이를 지켜보는 관중의 함성은 단순한 스포츠의 영역을 넘어 대한민국 전체에 거대한 활력을 불어넣는 강력한 촉매제가 될 것이다. ‘2026 북중미 월드컵’에서 우리의 시선은 멕시코의 아름다운 도시 과달라하라로 향한다. 역대 월드컵마다 대한민국은 수많은 기적과 드라마를 써 내려왔다. 특히 강호를 상대로 기죽지 않고 맞서 싸운 투혼은 언제나 국민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큰 위로와 용기를 줬다. 과달라하라에서 들려올 승전보는 장기화된 경기 침체와 일상의 피로감에 짓눌려 있던 대한민국에 다시 한번 신선한 활력을 불어넣어 줄 변곡점이 될 것이다. 월드컵이 우리에게 특별한 이유는 단순한 승패 때문만이 아니다. 90분간 펼쳐지는 치열한 드라마 속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선수들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리는 모습은 일터와 가정을 지키기 위해 매일 고군분투하는 우리의 모습과 닮아 있다. 광장에 모여 목이 터져라 ‘대한민국’을 외칠 때 우리는 나이와 성별, 지역과 계층의 벽을 허물고 하나의 거대한 공동체가 된다. 이 연대감과 에너지가 바로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진짜 원동력이다. 이제 축제는 시작됐다. 멕시코에서 우리 선수들이 펼칠 당당한 도전은 대한민국의 심장을 다시 뛰게 만들 것이다. 승리의 기쁨은 배가 되고 설령 아쉬운 순간이 올지라도 서로를 격려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더 단단해질 것이다. 과달라하라에서 날아올 기분 좋은 승전보를 기대하며 뜨거운 함성으로 대한민국 전체가 다시 한번 활기차게 깨어나길 소망한다.

[지지대] “나를 따르라!”

지휘관이 비장한 목소리로 외친다. “돌격 앞으로!”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소중한 아들,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징집된 병사들이 얼굴에 피칠갑을 한 채 전우의 시신을 넘나들며 목표 지점에 깃발을 꽂는다. 적군이 물러가고 소강 상태인 점령지에 뒤늦게 등장하는 자. 멀끔한 복장의 장군이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병사들을 치하한다. 전쟁영화나 사극 드라마에서 자주 보는 장면 중 하나다. 사선(死線)을 넘는 현장은 지휘관 대신 이름조차 제대로 기억되지 않는 병사들의 죽음과 희생으로 가득 메워진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마무리됐다. 경기도지사를 비롯해 31개 기초자치단체장 당선인이 확정됐다. 국민주권주의 슬로건 아래 시민의 종복을 자처하고 나섰지만 사실상 막강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지역을 대표하는 장의 신분이다. 1년 예산만 수조원에 함께 이끌고 가야 할 공무원 수는 수천명. 선거만 끝나면 공직사회에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는 풍문이 있다. 새로 취임한 단체장들의 성향에 따라 시정 방향과 권력 지형이 요동칠 수 있기 때문이다. 참정권을 행사한 시민으로서 한마디 할 자격이 있다면 솔선수범의 자세를 보여주길 바란다. “나를 따르라!” 지휘관이 선봉에 서는, 병사들에게 심리적 안정과 전투 의지를 부여하는 구호. 책임과 징계에 대한 두려움. 그 결과로 경직돼 버린 공직사회에 믿음직한 선봉장이 되어 주길 부탁드린다. 사즉생(死卽生), 생즉사(生卽死). 명량대첩을 앞두고 이순신 장군이 병사들 앞에서 남긴 명언이다. 명장의 외침은 단순 구호에 그치지 않았다. 전투가 시작되고 아군이 주춤하자 그가 탄 대장선이 홀로 적진으로 돌격해 분전, 12척의 배로 조선 수군의 기적을 이뤄냈다. 칼집에서 칼 한 번 빼지 않고 병사들만 독촉하는 장수가 될지,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 장군이 될지는 이제 오롯이 당선인들의 몫으로 남아 있다.

[지지대] 시작된 4년, 공약을 이행하라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막을 내렸다. 경기도지사 선거에서는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당선되면서 사상 처음 여성 경기도지사 시대를 열었다. 앞으로 4년간 31개 시·군을 대표할 시장·군수와 167명의 경기도의원, 471명의 시·군의원도 정해졌다. 당선인들은 축하 화환 속에서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유권자가 던진 표의 의미는 단순한 권력의 위임이 아니다. 그것은 당선인이 선거공보물에 빼곡히 적어 내려간 약속을 반드시 이행하라는 엄중한 ‘명령’이다. 지난해 경기일보 등 전국 4개 권역 언론사가 함께한 ‘지방의원 공약 추적단’은 중앙정치 뒤에 가려져 있던 지방정치의 부끄러운 민낯을 여실히 드러냈다. 수십조원의 자치단체 예산을 심의하고 민생 조례를 만드는 지방의원들이 선거 때만 표를 구걸할 뿐 당선 후에는 공약을 공개하지도, 평가받지도 않는 사각지대에 숨어 있었다는 사실 말이다. 당시 추적단이 밝혀낸 지방의원의 저조한 공약 이행률은 유권자를 허탈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제 막 선거가 끝났다. 이들은 다음 달 1일 공식 임기를 시작한다. 도지사를 비롯한 시장·군수, 그리고 경기도의회와 시·군의회에서 활동하게 될 지방의원들까지, 수많은 당선인이 ‘예산 부족’과 ‘제도적 한계’ 등을 극복하고 지역 주민에게 약속한 공약을 반드시 이행하기 바란다. 유권자 역시 이번에 당선된 정치인이 얼마나 약속을 지키는지 제대로 지켜보자. 정치인은 감시받지 않을 때 부패하고, 공약은 추적당하지 않을 때 ‘빌 공(空)’ 자 공약으로 전락한다. 이번에 당선된 이들이 4년 뒤 임기를 마칠 때 유권자의 매서운 ‘공약 추적’ 앞에 부끄러움 없이 당당하게 고개를 들 수 있기를 바란다.

[지지대] 새로운 시대

6월3일 치러진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뒤로 하고 경기도를 포함한 전국의 지방정부는 이제 새로운 시대를 맞게 됐다. 우리는 이전 정부의 탄핵으로 인한 혼돈의 시기를 지나 새 정부의 탄생을 거쳐 지방선거로 새로운 국면을 마주하게 됐다. 선거 기간에는 마치 ‘페이지를 찾을 수 없던’ 웹상의 컴퓨터 화면처럼 방향을 잃은 일상이었지만 이제 투표일에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함으로써 내가 사는 지역에 새 좌표가 찍히고 ‘새 시대’가 열릴 것으로 기대된다. 케이팝 그룹 키키(KiiiKiii)의 히트곡인 ‘404(New Era)’는 이런 방향성을 잘 안내해주고 있다. 가사에는 ‘404, not found in the system/404, the new era, era/404, 좌표 밖의 지점/404, the new era, era...’라는 내용이 나온다. PC로 인터넷에 접속할 때 검색되지 않거나 이상이 생길 경우 ‘404, not found in the system’, 즉 ‘페이지를 찾을 수 없습니다’라며 ‘404’ 오류 메시지가 뜬다. 한동안 대한민국은 이처럼 목적지를 잃은 ‘404 오류’ 상태와 같은 혼돈과 불안정의 시간을 지나왔다. 하지만 투표라는 행위를 통해 우리가 직접 시스템에 신호를 보내는 순간 이 ‘404’는 전혀 다른 의미를 품는다. 정상적인 시스템을 벗어났던 과거의 혼란을 끝내고 우리가 던진 투표권으로 미래의 좌표를 직접 찍는 주체적인 ‘새 시대(New Era)’로의 진입을 알리는 이중적 신호가 되기 때문이다. ‘뉴 에러(New Error)’가 아닌 ‘뉴 에라(New Era)’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결국 우리가 직접 나서야 한다는 민주주의의 근본적 원칙에 따르는 것이다. 이제 새로운 도정과 시정을 짊어질 지자체장과 이를 감시할 지방의원들이 곧 임기를 시작한다. 비록 ‘백지’ 상태의 초심에서 출발할지라도 임기가 끝날 때는 도민과 시민에게 ‘100점짜리’ 성과로 당당히 평가받아야 한다. 그럴려면 매사 주민 편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소중한 신호에 답하는 길이다.

[지지대] 초심을 간직하길

기자 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선거 전날이면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을 주제로 마감했다. 한때는 때마다 되풀이하는 표현이라 진부하다는 생각도 했지만 더 적절한 표현을 찾지 못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결과는 하늘의 뜻에 맡겨 겸허히 기다린다.” 비슷한 표현으로 ‘모사재인 성사재천(謀事在人 成事在天·일을 꾸미는 것은 사람이지만 그 일이 이뤄지는 것은 하늘에 달렸다)’을 쓰기도 한다. 짧게는 수주간, 길게는 수개월간 ‘당선’을 목표로 수많은 후보가 거리에 나가 유권자들을 만났다. 자신이 당선되면 동네, 지역을 위해 어떤 일을 하겠다는 공약도 제시했다. 새벽부터 해가 진 이후까지 발이 부르트도록 동네를 걸어다니고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정도로 주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모든 후보에게 고생했다는 말을 전한다. 후보들은 이번 선거에서 앞으로 4년간(혹은 2년간) 이뤄나갈 공약을 제시했다. 한결같이 주민이 안전하고, 지역을 발전시키며, 행복한 도시, 살기 좋은 동네를 만들겠다는 약속이다. 독일 출신의 유대계 정치 철학자인 한나 아렌트는 저서 ‘인간의 조건’에서 ‘공약(Promise)’을 불확실한 미래의 정치적 공간을 안정시키고 공동체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약속의 힘’으로 설명한다. 예전보다 많은 이들이 후보를 선택할 때 정책과 공약을 보고 결정한다고 믿는다. 지난 사전투표 당시 남동구에서 만난 한 어르신은 투표 전 꼭 토론회를 챙겨본다고 했다. 당신이 글을 모르다 보니 토론회에서 각 후보자의 발언과 공약을 듣고, 마음에 드는 후보의 숫자를 외워 투표용지에 도장을 찍는다는 것이다. 단, 토론회를 보고 선택한 후보의 번호를 일괄 적용한다는 점은 함정이지만. 하늘의 뜻에 따라 주민들에게 선택받은 당선인들에게 부탁한다. 당신이 선거 기간 약속한 모든 말들을 책임지는 정치인이 되기를. 임기를 마치는 그날까지 초심을 잃지 않기를. 그래서 주민의 살림살이가 좀 더 나아지기를 기대한다.

[지지대] 여자축구

국내에서 여자축구가 공식 대회에 첫선을 보인 건 1949년 열린 전국여자체육대회였다. 전쟁으로 활성화되지 못하며 긴 침체기를 겪다 1985년 한국여자축구단이 발족한다. 대한축구협회 직할팀이었다. “여자가 무슨 축구를 하냐.” 3년 후 여자축구 대표팀이 구성됐지만 시선은 싸늘했다. 무관심과 무지원이라는 열악한 환경 아래 선수들을 향한 여론의 조롱과 비난도 끊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자신이 가장 좋아하고 자신 있는 축구에 뛰어드는 선수들은 줄줄이 등장했다. 이들은 2003년 미국 월드컵 첫 본선 진출을 이뤄내며 자신을 증명했다. 2010년 트리니다드토바고에서 열린 U–17 여자월드컵에선 급기야 우승을 차지한다. FIFA 주관 대회에서 한국 축구가 차지한 유일한 우승이다. 2022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 아시안컵에선 준우승을 기록했다. 세계적인 스타들도 나왔다. 지소연(수원FC위민), 조소현(핼리팩스 타이즈 FC), 이금민(버밍엄 시티) 등 걸출한 선수들이 등장했다. 그 앞선 선배들이 황무지를 개척했다면 이들 역시 자갈길을 걸으며 길을 내왔다. 고군분투하며 길을 개척해 온 시간은 꽤 흘렀지만 이들이 수십년간 해 온 발언은 대체로 이렇게 요약된다. “여자축구에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 2025~2026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챔피언스리그(AWCL)가 개최된 5월은 한국여자 축구에 유례없는 관심이 쏟아졌다. 수원FC위민과 북한의 내고향축구단의 4강전이 열린 수원종합운동장은 폭우에도 응원단과 취재진으로 가득찼다. “여자축구 경기에 관중이 이렇게 많이 오고 기자들도 많이 온 것은 처음이다. 여자축구가 재밌고 관중이 운동장을 찾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여자축구에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 내고향축구단과의 경기에서 패한 직후 수원FC 위민의 박길영 감독이 말했다. 때마침 남자축구 종목의 세계선수권대회인 월드컵의 계절이다. 여자축구 대표팀은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 여자부 예선에 참가하기 위해 1일 괌으로 떠났다. WK리그 경기를 향한 응원과 기대, 저변 확대와 선수 육성을 위한 다양한 지원이 포함된 지속적인 관심을 아우르는 이 당부의 말이 이제는 정말 실현돼야 하지 않을까.

[지지대] 선거 등 돌린 인천시민

6·3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인천에선 인천시장과 인천시교육감, 그리고 11명의 기초자치단체장(군수·구청장), 광역의원(시의원)은 비례 포함 45명, 기초의원(군·구의원)은 비례 포함해 129명을 뽑는다. 인천지역 곳곳에 선거 현수막이 걸려 있고 유세차에서 들리는 음악 및 연설 소리, 패널 등을 들고 특정 후보의 지지를 호소하는 선거운동원들을 마주치면 선거철임을 실감한다. 하지만 좀 더 자세히 보면 여전히 길을 지나는 시민의 표정은 무덤덤하다. 익숙한 풍경이다. 숫자는 솔직하다. 1995년 지방선거 부활 이후 인천은 단 한 번도 전국 평균 투표율을 넘은 적이 없다. 2018년 제7회 지방선거에선 전국 최하위였고 2022년에도 전국 14위에 그쳤다. 대선도, 총선도 마찬가지다. 31년째 이어지는 불명예다. 문제는 낮은 투표율이 단순한 통계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유권자가 외면한 자리는 누군가 반드시 채운다. 특정 조직표, 동원된 표, 그리고 기득권 네트워크가 그 빈자리를 메운다. 결과적으로 선출된 권력은 시민 전체가 아닌, 투표장에 나온 소수에게만 책임을 진다. 무관심은 기권이 아니라 선택이다. 다만 그 선택의 결과를 고스란히 감수해야 한다는 게 문제다. 그렇다면 왜 인천시민은 지역 선거에 등을 돌리는가. 책임의 일부는 분명 정치권에 있다. 선거 때마다 내놓는 공약들은 반복되고 임기가 끝나면 흐지부지된다. 시민의 “어차피 달라지는 게 없다”는 말은 냉소가 아니라 학습된 경험이다. 정치인들이 먼저 신뢰를 쌓는 데 실패했다. 하지만 지금 인천시민이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있다. 투표장에 가는 것이다. 완벽한 후보가 없어도, 선택지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기권보다는 낫다. 지역의 예산이, 교육이, 교통이, 복지가 이 선거로 결정된다. 그 무게만큼은 외면할 수 없다. 인천의 민주주의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6월3일, 투표소에서 시작된다.

[지지대] 교실 온도는 어른이 결정한다

인천시교육감선거에는 도성훈·임병구·이대형 후보 세 명이 본선 레이스를 달리고 있다. 3파전으로 흔치 않은 구도다. 그런데 인천시민 중 후보 이름을 모두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각 후보의 교육철학은커녕 이름 석 자조차 낯선 이가 훨씬 많을 터다. 이번 인천시교육감선거 풍경은 처음부터 씁쓸했다. 선거 초반 내내 후보들은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교육 공약이 아니라 단일화 협상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았다. 더욱이 이 과정에서 네거티브 공방이 난무했고 결국 축제여야 할 선거는 이미 이전투구로 얼룩졌다. 진보와 보수 양 진영 모두 단일화 논의에 매몰되면서 정작 교육 정책 등의 공약은 뒷전으로 밀렸다. 교육감은 단순한 행정가가 아니다. 인천 학생 수십만명이 어떤 가치관 속에서 배우고, 어떤 환경에서 성장할지를 결정하는 사람이다. 기초학력 정책 하나를 바꾸면 교실이 바뀌고, 교원 처우 정책 하나를 변경하면 아이들이 만나는 선생님 사기가 달라진다. 교육감 임기 4년은 우리 미래의 희망인 학생들 삶과 맞닿아 있다. 그런데도 시장선거, 군수·구청장선거, 의원선거에 가려 교육감선거는 늘 뒷전이다. 3파전은 오히려 기회다. 후보가 셋이면 선택지가 넓어지고 단일화 논란 역시 한숨 돌린 지금, 정책 경쟁은 활발해질 여지가 생긴다. 하지만 그 기회 역시 유권자가 경쟁을 지켜보며 관심을 가져줘야만 살아난다. 기초학력 정책이나 학생인권조례, 교원 처우, 사교육 대책까지 모두 교육감 의지에 달렸기에 유권자들은 우리 아이의 미래에 충분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교육감 투표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후보들도 진영 논리나 단일화 명분 뒤에 숨는 대신 인천 교육의 구체적인 청사진을 내놓고 검증받아야 한다. 내가 행하는 한 표가 교실 온도를 결정한다. 우리 학생들은 투표권이 없으니 6월3일 어른들은 좀 더 신중하고 무거운 책임감으로 교육감 투표에 임해야 한다.

[지지대] 고슴도치 딜레마

추운 겨울 몇 마리의 고슴도치가 추위를 피하기 위해 온기를 나누려 모여들었다. 하지만 너무 가까이 다가서자 서로의 날카로운 가시가 몸을 찔렀고, 아픔에 놀라 너무 멀리 떨어지면 다시 추위에 떨어야 했다. 이들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도 온기를 나눌 수 있는 ‘적정거리’를 찾아냈다. 쇼펜하우어의 ‘고슴도치 딜레마’는 이 적정거리를 잘 설명해 준다. 인간관계도 고슴도치와 다르지 않다. 상대방이 좋다는 이유로, 혹은 가족 및 연인이라는 명목으로 상대의 개인적인 영역을 침범하는 일이 잦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라는 다정한 간섭이 상대에게는 숨 막히는 구속이 되기도 한다. 반대로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마음의 벽을 너무 높이 쌓으면 극심한 고립과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끊임없이 타인과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가족, 친구, 연인, 그리고 직장 동료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인연 속에서 우리는 기쁨을 얻기도 하지만 때로는 깊은 상처를 입기도 한다. 흥미로운 점은 그 상처의 대부분이 ‘미움’이 아닌, 너무 잘해보고 싶었던 ‘지나친 가까움’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이다. 여기에서 우리 삶의 중요한 화두인 적정거리의 필요성이 생겨난다. 얼마 전 동창들과 함께 짧은 여행을 다녀오면서 이 적정거리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도 오랜만에 만난 그 설렘에 한껏 들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가 이어졌다. 그러다 한 동창의 한마디에 추억에 들떠 있던 분위기가 묵직하게 가라앉았다. 동창은 ‘대화 중 자신을 과소평가한 것에 대한 서운함’을 토로했다. 누군가는 그 친구를 향해 아직도 사춘기 감성이냐며 핀잔을 줄 수도 있었지만 동창들은 미안하다며 서로에게 사과하면서 상황은 일단락됐다. 그 친구의 한마디로 잠시 어색한 시간이 흘렀지만 오랜 기간 쌓아 왔던 친분으로 가볍게 던진 말과 거침없는 행동들을 다시 돌아보게 됐다.

[지지대] 투표소 난동, 이제는 사라져야

29~30일은 경기지역을 포함한 전국 17개 시·도의 수장과 지방의원, 교육감 등 지역 일꾼 4천241명을 뽑는 6·3 지방선거 사전투표 기간이다. 본투표일은 다음 달 3일이지만 이번 주부터 실질적인 투표가 시작되는 셈이다. 이 시기마다 꾸준히 나오는 갈등의 키워드는 단연 ‘부정선거론’이다. 특히 최근의 선거에서는 개인 및 일부 집단의 주장이나 의혹 제기에 그치지 않고 실제 투표소 침입과 선거 사무 방해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2024년 4·10 총선 당시에도 부정선거 발발 내지 감시를 주장하며 투표소 곳곳에서 소란을 일으킨 사례가 나왔고 12·3 비상계엄 사태 후 진행된 6·3 대선에서도 부정선거론에 기반한 투표소 침입 등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실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집계에 따르면 선거질서 훼손 행위는 2022년 20대 대선 당시 153건에서 2024년 총선 때 733건, 21대 대선 때 1천796건으로 폭증하고 있다. 이에 선관위와 정부, 경찰은 사전투표 기간부터 본투표까지 주요 투표소 내 경찰관 배치, 사전투표함 보안·관리 예산 증액, 가짜뉴스 엄정 대응 등에 나서기로 방침을 정한 상태다. 부정선거론이 계속 대두되는 이유에 대해 정계 안팎은 다양한 관측을 내놓고 있다. 이를 짧게 종합해보면 △2016~2017년 헌정사 첫 탄핵 정국 전후로 심화한 한국 사회의 정치적 양극단화 △이를 토양으로 삼는 1인 미디어의 등장 및 영향력 증대 △일부 정치 세력의 동조가 맞물린 영향이라는 게 중론이다. 다만 정치 성향, 나아가 부정선거론을 믿고 안 믿고를 떠나 선거 방식에 의혹이 있다면 정당한 절차에 따라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올바른 민주시민의 자세가 아닐까 한다. 이번 6·3 지방선거는 ‘투표소 난입’과 이를 무기로 삼는 비난, 동조 세력 간 제2의 다툼이 없는 진정한 민주주의 축제의 장이 되길 기대해본다.

[지지대] 커피가 역사를 모독할 권리는 없다

‘스타벅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 글로벌 1위 커피 브랜드의 한국법인에서 발생한 이른바 ‘탱크데이 이벤트’ 등의 논란은 단순한 일탈과 해프닝의 임계점을 넘어섰다. 결국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26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직접 고개를 숙이기로 했지만 성난 민심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기세다. 분노의 포인트는 간단하지만 무겁다.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깊은 상처를 왜 이토록 쉽고 가볍게 건드리는가’가 핵심이다. 돌이켜보면 광주 비하와 혐오 표현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기업발(發) 혹은 극단적 성향의 커뮤니티발 ‘모독’은 오랜 시간 이어져 왔다. 스타벅스 간판 아래 버젓이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희화화한 마케팅이 나온 것도 어쩌면 놀랍지 않다. 이번에도 그저 기업 중 하나가 그랬을 뿐이다. 그동안 여타 기업도 논란이 돼왔던 것처럼. 하지만 스타벅스가 한국 사회에서 누려온 지위가 단순한 ‘커피 판매점’이었나. 세련된 공간에서 트렌디한 문화를 선도하고 현금 및 키오스크 사용이 한동안 없었던 것처럼 브랜드 뒤에서 키워온 특유의 고급 이미지가 있지 않나. 그렇기에 그 공간에서 터진 비방이 한국 사회 전체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거다. 사실은 꼴랑 ‘커피 한잔’ 파는 곳인데. 역사적 무지는 언제나 경제적 대가로 환산됐다. 과거 일부 기업이 역사 왜곡이나 지역 비하 발언으로 소비자의 외면을 받고, 시장에서 천문학적 타격을 입었던 것처럼 전례는 널리고 널렸다. 소비가 곧 신념과 정체성을 증명하는 수단이 된 시장 환경에서 ‘불매운동’ 역시 감정적 대응이 아닌 소비자의 합리적인 ‘경제적 권리 행사’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유통가의 지표에 관심을 갖는 게 아닌가. 글로벌 기업이라는 덩치에 걸맞지 않은 빈곤한 역사 인식과 인권 감수성이 부메랑이 돼 기업의 뿌리를 흔들게 됐다. 정용진 회장의 기자회견이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겉핥기식 사과나 징계 조치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당연한 말 말고 어떠한 ‘대책’을 제시할지 알고 싶다. 커피로 낭만을 즐기던 대중은 이제 그 잔에 담긴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역사적 무게를 엄중히 묻는다. ‘광주’나 ‘전라도’에 전혀 연고가 없어도 말이다.

[지지대] 부모님에게 안부전화 드리기

지난주보다 더 힘이 떨어지셨다. 수화기 반대편으로부터 들려 오는 목소리가 예전같지 않아서다. 그래도 반갑게 받으신다. 조심스럽게 여쭌다. “잘 계셨지요. 어디 편찮으신 데는 없으세요.” 바쁜 직장생활과 세상살이 등을 핑계로 찾아 뵙지 못함이 늘 송구스럽다.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은 드려야 하지 않을까. 부모님에게 안부전화 드리는 이야기다. 가정의 달인 5월이어서 더욱 그렇다. 핵가족사회에서 부모님과 같이 사는 자식이 얼마나 될까. 따로 산다는 건 그래서 애달프다. 고향을 떠나 도회지에서 직장을 다니고 결혼하고 자녀를 낳고 키우는 번잡스러운 삶의 물결 속에서 말이다. 코로나19 시기 증가했던 ‘부모님에게 안부전화 드리기’가 다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갑지 않은 소식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분석 결과다. 구체적으로 들여다보자. 부모님과 따로 사는 자식들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했다. 그래서 전국 7천654가구를 대상으로 “부모님과 따로 사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44.38%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따로 사는 부모와 지난 1년간 얼마나 전화로 연락을 드렸는지 물었더니 연락 횟수는 평균 106회로 3.44일에 한 번 정도 전화한 것으로 분석됐다. 부모님에게 안부전화 드리기는 코로나19 이전인 2018년(2019년 조사) 연평균 90회, 이듬해는 연평균 97회 수준이었는데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한 2020년 103회로 늘었다. 이후 2021년 112회, 2022년 113회 등으로 증가세를 이어갔다. 코로나19 이전에는 4.06일에 한 번꼴이었던 부모님에게 안부전화 드리기가 다소 빈번해지면서 3.23일에 한 번꼴로 조금 더 자주 하게 된 셈이다. 이 같은 부모님과의 평균 연락 횟수는 코로나19가 끝나자 2023년 다시 감소세로 돌아서 3.44일에 한 번 전화한 것으로 집계됐다. 딱딱한 통계 숫자가 보여 주는 세상사가 애달프다. 출가해 깨달음을 얻으라는 불교의 가르침이 중국을 거쳐 전래되면서 유교적 효도를 배척하지 않고 불교적인 효도를 설파한 경전인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의 가르침이 새삼스럽다. 찾아 뵙지 못하더라도 연락은 자주 드리자. 그리고 안부전화를 드릴 부모님이 이미 타계한 자식들의 슬픔도 헤아려 보자.

[지지대] 금융의 세 얼굴

금융은 세 가지 얼굴을 갖고 있다. 은행, 보험, 증권이다. 은행은 여신과 수신이 중심이다. 고객이 은행에서 돈을 빌리면 이자를 내고 돈을 맡기면 이자를 받는다. 보험은 보장성이 생명이다. 고객이 보험사에 매달 돈을 내면 큰일을 겪어 큰돈이 필요할 때 보험사가 보험금을 준다. 증권은 두 업권과 결이 다르다. 투자가 중심이다. 고객은 직간접적으로 주식, 채권 등 증권에 투자할 수 있다. 이론상 수익은 무한대지만 돈을 잃을 수 있다. 사람은 돈을 벌어야 살 수 있다. 금융으로도 돈을 벌 수 있다. 은행을 통해 돈을 벌려면 예·적금 상품에 가입해 이자를 받으면 된다. 요즘처럼 저금리 시대에는 들어가는 돈이 커야 유의미한 수익이 나온다. 보험의 경우 돈을 번다기보다 나갈 돈을 굳혔다는 표현이 맞다. 그동안 보험료를 잘 냈고, 갑작스러운 일로 큰돈을 썼고, 관련한 보험상품에 가입돼 있는 등 조건이 맞는다면 보험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증권 투자는 매매, 배당 등을 통해 번다. 주식 배당으로 유의미한 돈을 만져보려면 큰돈이 필요하다. 채권으로 이자 수익을 얻는 것도 마찬가지다. 매매는 어떨까. 싸게 사서 비싸게 팔아 그 차익을 얻는 방식이다. 간단해 보이지만 쉽지 않다. 기관, 외국인, 개인 등 시장 참여자들이 실시간으로 돈의 전쟁을 치른다. 이런 판에서 개인이 투자로 돈을 버는 일은 쉽지 않다. 주위에 투자했다는 말은 많이 듣지만 돈 좀 만졌다는 얘기는 거의 듣지 못했다. 물론 돈 번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말해봐야 좋을 거 없어 얘기 안 할 수도 있다. 금융투자상품은 예금자보호법의 보호를 받지 않는다. 투자 원금의 전부 또는 일부를 잃을 위험이 있다. 누군가 당신에게 투자를 권유하면서 손해도 메꿔주겠다고 한다면 금융감독원에 신고하시라. 돈 버는 일처럼 어려운 일은 없다. 내 돈을 써가며 남의 돈을 가져오는 일은 더욱 어렵다. 투자는 본인 책임이다. 이는 투자자의 책임 원칙에 따른 것이다. 슬퍼도 사실이다.

[지지대] 당연한 승리도, 당연한 패배도 없다

압도적으로 기울어진 승부를 볼 때가 있다. 전문가와 일반인의 대결처럼 시작도 하기 전 이미 누구의 승리인지 예측할 수 있는 승부가 있다. 하지만 모든 승부가 그런 것은 아니다. 지고 있던 이의 패배가 한순간 승리로 바뀌기도 하고, 앞서던 이의 잠깐 여유가 상대에게 기회를 줘 승부가 뒤집히기도 한다. 가장 대표적으로 스포츠가 그렇다. 9회말 2아웃에서 승리의 여신이 다른 선택을 내놓기도 하며, 단 한번의 일격으로 결과가 달라지곤 한다. 스포츠 외에도 끝까지 승리를 예측할 수 없는 한 가지, 단연 선거다. 민주주의의 꽃이자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인 선거. 선거에서는 당연한 승리도, 당연한 패배도 없다. 당장 경기도지사선거에서도 그랬다. 제8회 지방선거 당시 경기도지사선거는 전국 최소 수준의 격차로 승부가 갈린 선거다. 0.15%포인트 차이라는 초접전 속에 밤을 새운 끝에야 승부가 결정됐다. 선거철인 요즘, 이곳저곳을 다니다 보면 가장 많이 듣는 얘기가 있다. 누군가는 ‘침대 선거’라 하고, 누군가는 ‘자포자기 선거’라 한다. 전자는 자신들의 우위를 확신한 후보들이 시민을 만나지 않고 있다는 얘기이고 후자는 자신들의 열세를 확신한 이들이 이번 선거를 포기한 채 다음을 노리고 있다는 얘기다. 다시 강조하지만 선거에서만큼은 당연한 승리도, 당연한 패배도 없다. 투표장으로 들어서기 전날 마지막까지 전력을 다한 이들만이 진정한 승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패배를 손에 쥐게 된다. 이제 하루 뒤면 선거운동 기간이 시작된다. 승리를 자만하는 이도, 포기하는 이도 없는 진검승부를 기대해본다.

[지지대] 조용한 리더십

세상은 언제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인공에게 열광한다. 거침없는 카리스마로 조직을 이끄는 리더는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모두가 전방에서 소리를 지를 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균형을 잡으며 조직을 완성하는 ‘조용한 리더십’을 보여주는 이들이 있다. 선수로서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황금기를 지탱했고 최근 위기의 팀을 구해내며 정식 사령탑 부임을 앞둔 마이클 캐릭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선수 시절 캐릭은 화려한 득점왕도, 거친 태클로 관중을 흥분시키는 파이터도 아니었다. 그는 중원에서 동료들의 위치를 지정해 주고 상대의 패스 길목을 예측해 공을 차단하는 ‘언성 히어로(Unsung Hero)’였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나 웨인 루니 같은 스타 선수들이 마음 놓고 공격할 수 있었던 것도 후방에서 헌신적으로 밸런스를 잡아준 캐릭의 리더십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자기를 드러내는 것이 아닌, 타인을 빛나게 해주는 리더십. 캐릭의 리더십은 감독이 된 지금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루벤 아모림 감독 경질 이후 임시 사령탑으로 무너진 맨유의 지휘봉을 잡았을 때 캐릭은 전술적 변화보다 ‘소통과 신뢰’를 먼저 택했다. 스타 선수들의 강한 자존심을 꺾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다독이는 방법을 선택했다. 이에 선수들도 “감독을 위해 경기장에서 죽을 수도 있다”며 신뢰로 보답했고 맨유는 단숨에 안정을 찾으며 챔피언스리그 티켓을 따냈다. 진정한 리더십은 자신을 과시하는 데서 나오지 않는다. 조직의 약점을 조용히 메우고 동료의 잠재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는 것, 그것이 바로 현 시대가 요구하는 진정한 리더의 품격일 수 있다. 6·3 지방선거를 통해 캐릭의 리더십을 보여주는 이들이 넘쳐 나길 기대해 본다.

[지지대] ‘오뉴월 감기’ 증가세

‘오뉴월 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는 속담이 새삼스럽다. 주변에 마른기침을 하거나 콧물을 훌쩍이는 이들이 많아져서다. 한낮의 기온이 30도를 훌쩍 넘기는 초여름 날씨를 보이는 가운데 때 아닌 여름 감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요즘 감기의 원인은 대부분 레지오넬라균 때문으로 분석된다. 레지오넬라균은 강 및 하천 등지에서 낮은 농도로 존재하지만 따뜻한 물(25~45도)이나 건물·시설 내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배관시설의 고인 물, 냉각탑수, 급수시설 등지에서 빠른 속도로 증식한다. 작은 물방울 입자 형태로 공기 중에서 호흡기로 들어가 인체 감염을 일으킬 수도 있다. 증상에 따라 폐렴형과 독감형(폰티악 열) 등으로 나뉜다. 독감형은 초기에 독감과 비슷한 호흡기 증상이 나타나다 특별한 치료 없이 일주일 이내 자연스럽게 회복된다. 폐렴형은 발열과 마른기침, 근육통, 두통 등을 동반한다. 50대 이상이거나 만성폐질환자, 면역저하자, 기저질환을 가진 고위험군의 경우 증상이 심하면 호흡 곤란이 올 수 있다. 올해 들어 이처럼 레지오넬라균에 의한 감기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50% 이상 늘어났다는 게 질병 당국의 분석이다. 1~4월 전국에서 이 같은 증세로 신고된 환자는 모두 247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58명)보다 56.3% 증가했다. 지난해 레지오넬라균에 의한 감기를 신고한 환자는 599명으로 2001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날씨가 더워지는 7~8월 환자가 급증하는 점을 감안하면 올해는 지난해 수준을 넘어설 가능성이 크다. 레지오넬라균에 의한 감기는 2000년 제3급 법정감염병에 지정됐다. 2023년과 2024년 각각 28명이 목숨을 잃었다. 날씨가 더워지고 수영장, 분수대 등 레지오넬라균이 번식할 수 있는 대형 시설이 많아지는 데다 고령인구가 늘면서 환자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기후 변화로 수온이 올라간 점, 대형시설의 (급수)설비가 노후화한 점 등이 환자 증가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외출 후 손 씻기 등 위생수칙을 지키는 게 필수다. 건강의 중요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지지대] 까막딱따구리

뭔가 떨떠름하다. ‘딱~딱~’이라는 의성어에서 유래됐을 것 같은 이름부터 딱 그렇다. 까막딱따구리 이야기다. 이 녀석이 등장하는 동화를 소환해보자. “그때는 굴참나무를 도와 꾀꼬리와 산비둘기, 청설모 등의 반대에도 이사를 했다. 굴참나무가 병이 들자 꾀꼬리와 청설모는 다른 곳으로 가 버렸지만 굴참나무를 정성스럽게 치료해줬다. 산비둘기가 다른 나무들한테 병을 옮긴다고 소문이 나서 얼어 죽고 마법 부리로 좋은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동화 속의 까막딱따구리는 나무들한테 사랑을 받았다. 역설적으로 꾀꼬리, 산비둘기, 청설모 등으로부터는 미움을 받은 것으로 표현됐다. 현실에서도 과연 그럴까. 겉모습은 크낙새와 영락없이 닮았지만 몸은 까마귀처럼 온통 검은색이다. 수컷은 머리와 목 뒤가 붉다. 암컷은 목 뒤만 붉다. 한반도의 대표적인 텃새다. 천연기념물 제242호이자 멸종위기 야생생물Ⅱ급이기도 하다. 삼각형의 뾰족한 부리로 나무를 잘 쫀다. 그럴 때마다 산이 울릴 정도로 둔탁한 소리를 낸다. 그래서 이름도 그렇게 붙여졌다. 거구의 둔한 행동에 독특한 울음소리 등으로 소란을 피워 존재와 위치를 쉽게 알 수 있다. 알 3~5개를 4~6월에 낳아 14~16일간 포란한다. 먹이는 개미 등의 곤충이며 천적은 담비 등의 육식동물과 나무구멍 집을 빼앗는 찌르레기, 날다람쥐 등이다. 새끼는 부화한 뒤 24~28일은 암수를 같이 키운다. 식성은 동물성으로 딱정벌레의 성충과 유충을 즐겨 먹으며 개미류와 파리류도 잘 먹는다. 때로는 식물의 열매도 먹는다. 한자로는 나무를 쪼는 새라는 뜻으로 ‘탁목조(啄木鳥)’라 한다. 국립수목원이 최근 세계자연기금(WWF)과 공동으로 광릉숲에 서식하는 까막딱따구리의 현지 내 보전을 위한 장기 모니터링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생태, 서식 현황, 개체수 변화, 위협 요인 등을 지속적으로 관찰·기록한다. 안정적인 서식지 보전과 종 보전 기초자료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장기적으로는 관련 자료를 축적하는 보전 협력 모델도 구축해야겠다. 잘 관리하지 않으면 우리 세대가 끝나기 전에 지구촌에서 사라질 수도 있어서다.

[지지대] 북극성을 향해

편의점에서 물 한 병은 1달러에 팔린다. 하지만 동일 제품의 물 한 병이 헬스장에선 2달러, 공항에서는 4달러, 심지어 비행기 안에서는 7달러에 판매된다. 당신이 사막 한복판에 떨어진다면 물 한 병의 가격은 책정 불가로 표기될 수도 있다. 성분과 맛 차이는 없다. 물이 있는 곳이 그 가치를 결정할 뿐이다. 이 논리를 사람의 가치 평가에 그대로 대입시킬 순 없겠지만 분명 누구에게나 강점이 있고 자신의 가치가 가장 잘 빛날 수 있는 분야도 존재한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후보자 등록이 14일부터 이틀간 진행된다. 다양한 직업군, 천차만별의 나이대의 도전자들. 각양각색의 정책 공약을 내세우며 민심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증명받고자 이미 8천명이 넘는 후보자가 선거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비정치인의 가치 향상을 위한 모험과 도전도 다를 바 없다. 회사 내에서 부서 이동을 희망하는 직장인, 더 나아가 수년간 쌓아온 커리어를 버리고 새로운 미래를 준비 중인 자발적 취준생. 이들 모두 안전지대 밖에서 변화를 시도하며 자신의 성장과 가치를 발전시킬 수 있는 신대륙을 찾아 나선 것이 아닐까. 그렇다고 무조건적인 변화와 이탈이 능사라는 얘기는 아니다. 수십년간 특정 분야에만 몰두해 현재 위치에서 자신의 가치를 극대화한 사람들에 대한 평가는 마땅히 존중받아야 한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만약 안주라는 그물을 걷어낼 때가 왔다고 느낀다면 자신의 가치와 야망을 알아봐 주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서 있으면 그저 땅이지만 걸으면 길이 된다. 작은곰자리에서 가장 빛나는 별, 북극성(北極星). 걷고 또 걷다 보면 도달하게 될 안착지. 그곳이 당신의 가치를 가장 밝게 비쳐줄 당신의 북극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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