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네팔이 주는 일침

가짜뉴스 확산을 막는다며 유튜브, 페이스북 등 26개 소셜미디어의 접속을 차단하자 이에 반발한 청년들의 시위가 시작됐다. 더욱이 부패 척결과 경제 발전에 소극적인 정부에 실망한 젊은층이 대거 가담하면서 시위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경찰이 최루탄을 비롯해 물대포와 고무탄을 쏘며 강경 진압을 해 사상자는 늘어갔고 이후 시위대가 대통령관저와 총리관저, 경찰서에 불을 지르는 등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히말라야의 나라, 네팔의 이야기다. 네팔 보건부에 따르면 이번 시위로 사망자 72명, 부상자가 최소 2천113명으로 집계됐다.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지속되자 수실라 카르키 전 네팔 대법원장(73)이 임시 총리로 취임했다. 이후 빠르게 국정에 착수하면서 통행금지를 해제하는 등 일상 회복 조치를 취하며 폭력 사태가 일단 가라앉고 있다. 카르키 총리는 2016년 7월부터 약 1년간 여성 첫 대법원장을 맡아 강단 있는 판결과 부패에 강경히 맞서는 입장으로 대중적 지지를 받은 인물이다. 하지만 여전한 불씨 속 한 사람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듯 싶다. 변화하고 공감대를 형성해야 국민들이 수긍할 문제일 테니 말이다. 비단 네팔만의 문제일까. 대한민국 정치도 국민의 깊은 불신과 혐오감에 점점 더 노출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요즘이다. 경제발전 및 국내외적 이슈 등이 산재해 있는데도 여야는 여전히 힘을 모으기보다는 분열을 택하고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국민을 위한 정책 경쟁은 사라진 지 오래다. 이 무능을 언제까지 받아들여 줄 수 있을까. 네팔의 현 상황을 반면교사(反面敎師·사람이나 사물 따위의 부정적인 면에서 얻는 깨달음이나 가르침을 주는 대상을 이르는 말)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임계점에 달해 새로움을 추구하는 이들로 대한민국 거리도 넘쳐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지지대] 자기다움

“남자가 소심하네”, “집은 남자가 장만해야지”, “남자는 울면 안 된다”, “주도권을 가지고 리드해야지....” 평범한 한 남성은 어릴 적부터 이러한 세상 이야기와 요구를 듣고 살아간다. ‘남자기 때문에’, ‘~기 때문에’ 갖춰야 하는 좋은 직업과 연봉, 주도권, 강함의 갑옷을 겹겹이 입고 남들과 경쟁하며 꾸역꾸역 짜여진 박스에 자신의 몸을 끼워 맞춘다. 남성은 어느 날 세상의 요구와는 다른 길을 걷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또 이 틀에서 벗어나 변화하며 자신을 찾고 다양한 삶을 인정하고 ‘함께 변화를 만들어 가자’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경기도여성가족재단이 경기도 양성평등주간을 맞아 제작해 9월1일 소셜미디어에 게재한 웹툰 ‘남자기 때문에’의 이야기다. 놀라운 것은 이야기가 아니다. 웹툰 공개 후 공공기관의 소셜미디어로선 이례적으로 500여건의 댓글이 달리며 큰 공감을 얻었다. ‘사회적 역할에 나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나답게 살아가는 것의 소중함을 알게 됐다’, ‘사회적 기대 속에서 잃어버린 나를 돌아보게 했다’, ‘남자기 때문에라는 말이 얼마나 많은 선입견과 부담감을 줄 수 있는지 알게 됐다’, ‘외부의 기대보다 내 목소리와 선택을 존중하는 것이 중요함을 느꼈다’ 등 그동안 짜여진 옷을 맞춰 입고 자신을 부단히 감췄던 수많은 이들이 공감과 심정을 댓글로 표현했다. 온라인을 기반으로 출산, 선거, 연애 등 삶의 전 영역에서 성별 갈등이 치닫는 요즘이다. 웹툰 하나의 사례이나 댓글들은 청년 남성들이 전통적 성 역할에 대해 사회적으로 느끼는 불안이나 압박, 어려움을 살펴보고 이해하는 장이 확산돼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성별을 떠나 세상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모두 자기다움을 찾아가는 여정을 꿈꾼다는 점도. 댓글에서 문득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속 구절이 떠오른다. “내 속에서 솟아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더 많은 어른이 사회의 잣대에서 벗어나 자기다움을 찾아가길, 끝내 알을 깨뜨리고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하길.

[지지대] 공유학교

‘공유학교’는 학교에서 배우는 일반 교과과정이 아니다. 지역의 인적·물적 자원을 활용해 초등생부터 고등학생, 그 또래의 학교 밖 청소년까지 참여할 수 있는 교과서 밖 배움의 장이다. 과천 ‘과학특화교육’, 양주 ‘항공우주’, 광주 ‘국악’, 이천 ‘반도체’, 구리 ‘라온제나’, 부천 ‘미래클’ 등 지역 특색을 반영한 공유학교가 있다. 학생들은 공유학교를 통해 학교 교육과정에서 접하기 어려운 심화 학습, 예체능, 진로 탐색 등의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지역맞춤형, 공헌형, 대학연계형을 비롯해 학점인정형, 학생기획형, 수업위탁형 등 형태도 다양하다. 지역맞춤형은 지역의 문화·예술·역사와 연계된 특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공헌형은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 등 미래 사회에 필요한 역량을 키우는 학습을 하고 있다. 대학연계형은 대학이나 전문기관과 연계해 심화 전공 탐색 기회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이런 가운데 9월 초 부천교육지원청은 ‘공유학교’를 경험한 학생, 교사, 학부모의 성장 스토리를 담아 ‘원하는 배움으로 더 큰 성장’이라는 책을 펴냈다. 이 중 이주배경 아동을 지원하는 ‘배움공동체 공유학교’ 마을교사의 이야기가 잔잔한 감동을 전한다. 베트남, 필리핀, 몽골, 중국, 미얀마 출신 부모를 가진 다양한 국적의 초등생 17명이 부천시 협조로 어르신들과 경로당에서 생활하게 됐다. 처음엔 소란스럽고 낯선 환경에 불만이 있었지만 함께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분위기가 바뀌어 갔다. 텃밭을 가꾸고 김장을 담그고 설날에는 세배와 덕담이 오갔다. 그렇게 아이들은 할머니가 생기고 할머니들에겐 손주가 생겼다. 공동체가 만든 이런 풍경으로 마을은 따뜻한 온기가 더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교육의 힘과 공동체의 가능성을 실감하게 하는 순간이다. 마을교사의 바람처럼 따뜻한 배움의 자리가 오래도록 지켜졌으면 한다.

[지지대]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아침저녁 불어오는 바람에 선선함이 실렸다. 햇볕도 많이 누그러졌다. 하늘도 더 높아졌다. 추석이 가까워서일까. 해마다 이맘때면 새들의 거대한 이동이 시작된다. 겨울새들의 움직임이다. 시베리아와 블라디보스토크가 서식지였다. 겨울이 되면 뺨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이 면도날보다 더 예리한 고장이다. 공포와 절망의 서사를 자랑하는 곳을 거쳐 한반도 하늘로 날아온다. 월동을 위해서다. 오리, 기러기, 독수리, 콩새, 칡부엉이, 논병아리, 두루미, 밭종달, 쑥새, 양진이 등의 삶이 그렇다. 학계는 이 같은 생태계 습성을 갖춘 새가 줄잡아 112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녀석들은 창공에서 땅을 내려다보며 유유히 이동했을 터다. 마음껏, 소신껏 도약할 수 없는 세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말이다. 어쩌면 자신들이 지나쳐 왔던 베링해협과 오호츠크해의 쪽빛 바다를 떠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이듬해 따뜻한 계절이 오면 다시 같은 경로로 북녘으로 돌아간다. 이들의 이동은 생존의 방식이다. 여유로운 삶을 위해서나 욕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사치가 결코 아니다. 자연과의 약속을 실천할 뿐이다. 이 같은 속성을 이행해야 살아갈 수 있는 조류를 철새라 부른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정당을 옮겨 다니는 정치인들을 비하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씁쓸하다. 불현듯 떠오르는 시가 있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삼천리 화려 강산의/을숙도에서 일정한 군락을 이루며/갈대 숲을 이륙하는 흰 새떼들이/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일렬 이렬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우리도 우리들끼리/낄낄대면서/깔쭉대면서/우리의 대열을 이루며/한 세상 떼어 메고/이 세상 밖 어디론가/날아갔으면 하는데/대한 사람 대한으로/길이 보전하세로/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 황지우 시인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의 마지막 구절이 삼삼하다.

[지지대] 콩꼬투리버섯

땅 위에서 눈에 보일 정도로 웃자라는 곰팡이가 있다. 버섯을 일컫는 표현이다. 가끔 반찬으로 식탁에 오르는 버섯에 대해 우린 어느 정도까지 알고 있을까. 이 생물처럼 지구촌에서 소신껏 성장해온 존재도 없다. 버섯이라고 부르는, 볼 수 있고, 먹을 수 있는 모습의 덩어리는 사실은 버섯의 자실체(子實體)다. 자실체는 식물로 치면 꽃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꽃은 잠시 피었다 열매를 맺고 사라진다. 버섯도 마찬가지다. 1년 중 대부분을 땅속에서 지내다 잠깐 자손을 만들기 위해 자실체를 형성해 포자를 번식시킨다. 그리고 이 세상을 뜬다. 거룩한 울림이 있는 대목이다. 생존 방식도 매우 특이하다. 유성생식을 할 수 있다. 무성생식(포자법)도 가능하다. 종류와 사는 곳도 다양하다. 보통 축축하고 어두운 곳이면 어디든지 돋아난다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는 까닭이다. 균류의 특성상 버섯이 난 곳이면 그 주변은 이미 균사가 점령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된다. 낯선 존재가 있다. 콩꼬투리버섯이 딱 그렇다. 몸은 가냘프고 길쭉하다. 끝은 뾰족하거나 촉수처럼 생겼다. 줄기 길이도 보통 1~5㎝다. 갓 부분은 난형에서 산형으로 변한다. 표면에는 인편(鱗片)이라 불리는 작은 비늘이 수북하다. 서식지도 경이롭다. 썩은 낙엽 밑이나 나무 뿌리 부근, 표고 골목 등지다. 식용도 가능하지만 대부분은 독성이 있을 수 있다는 게 학계의 권고다. 눈에 잘 띄진 않는다. 하지만 낙엽과 고사목 등을 분해해 영양 순환을 돕거나 나무와 더불어 사는 숲의 숨은 일꾼이다. 생태계를 지켜 주는 근사한 파수꾼이기도 하다. 광릉숲에서 신종 콩꼬투리버섯이 발견됐다는 보고서가 나왔다. 국립수목원이 관리하는 이곳은 콩꼬투리버섯을 포함한 버섯의 보고(寶庫)다. 국내에 기록된 버섯은 2천302종이고 약 30%인 707종이 광릉숲에서 자생한다. 신종 콩꼬투리버섯 발견으로 광릉숲이 생물의 다양성이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지지대] 중장년 은둔형 외톨이

‘한국의 20년 후가 일본’이라는 말이 있다. 과거 일본의 입시, 교육, 경제 정책 다수를 벤치마킹한 영향에 효과와 부작용이 20년 주기로 흡사하게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일본은 현재 ‘8050 문제’ 본격화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80대 부모가 히키코모리, 우리말로 하면 ‘은둔형 외톨이’가 된 50대 자녀를 부양하고 있다는 뜻이다. 일본에서 은둔형 외톨이가 사회 문제로 부상한 시기는 ‘버블 경제’가 붕괴한 1990년대 중후반이다. 이때 사회 초년생들이 극심한 경제난과 취업난으로 사회와의 단절을 선택했다는 게 중론이다. 그때 청년들이 50대에 들어서면서 일본은 △고령층 빈곤 심화 △가족 간 범죄 증대 △경제 성장 저하 문제 등을 겪고 있다. 이에 일본 사회는 전 연령 히키코모리 실태조사 결과를 토대로 지자체별 지원을 전개하고 있으며 아예 ‘히키코모리 기본법’ 제정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그럼 우리나라는 ‘20년 뒤 미래’를 보고 대비했을까. 문제는 더 빠른 속도로 겪었지만 대응은 한참 늦다. 외환위기가 있던 2000년 은둔형 외톨이가 부상, 입시·취업 무한경쟁으로 급증했고 이들의 50대 진입이 임박한 것까지는 일본과 같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연령별 은둔형 외톨이 규모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지원 제도 역시 지자체별로 조례 유무가 갈리며 중장년 은둔형 외톨이 문제는 거론조차 제대로 되지 못한 상태다. 타산지석, 반면교사 모두 옆에 있는데도 전혀 활용하지 못한 것이다. 국민권익위원회는 10월7일까지 ‘은둔형 외톨이 지원 제도 개선’을 위한 국민 의견 수렴 기간을 가진다고 한다. 늦은 감이 있지만 어쩌면 일본보다 심화할 수 있는 중장년 은둔형 외톨이 문제 해결에 정부와 지자체가 시급히 나서야 할 때다.

[지지대] 두 편의 영화와 금융위기

영화 ‘빅쇼트’를 여러 번 봤다. 재미있어서가 아니라 영화 속 사건을 이해하는 게 어려웠기 때문이다. 작품은 미국 최악의 금융위기로 불리는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다뤘다. 이 사태를 이해 못하는 사람이 많았던 모양인지 영화는 유명 배우들을 동원해 경제학 용어와 금융위기 과정을 관객들에게 친절하게 설명한다. 부동산 거품, 부채, 파생상품으로 위기가 터졌고 거대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고 미국 중산층이 타격을 입었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중산층이 겪은 불행은 어디서 본 듯했다. 10년 앞서 우리가 먼저 겪었던 IMF 외환위기와 닮아서다. 그때를 다룬 영화 ‘국가 부도의 날’은 한 번만 봤다. 그 당시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던 필자는 영화에 등장하는 실직, 해고, 파산, 부도, 죽음이 불편했다. 빅쇼트를 여러 번 본 이유는 또 있다. 미국 상황을 교훈 삼아 위기를 대비했으면 하는 개인적 바람에서다. 얼마 전 대통령이 금융위기를 언급했다. 한 언론 인터뷰에서 미국에 투자하기로 약속한 3천500억달러를 한미 간 통화 스와프 없이 미국 요구대로 다 줬다간 4천억달러 수준인 국내 외환보유액이 바닥나 금융위기가 올 수 있다는 얘기다. 그리고 대통령은 22일 미국으로 떠났다.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은 다름 아닌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최고경영자(CEO) 래리 핑크다. 돈과 투자 얘기가 오갔다. 실제 투자가 얼마나 될지, 국내 금융시장에 어떤 영향을 줄지 두고 볼 일이다. 금융위기, 외환위기란 말은 듣기만 해도 등골이 서늘하다. 채무를 갚지 못했을 때 가정과 나라가 휘청이는 과정을 지켜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두 영화가 주는 교훈은 간단하다. 탐욕과 안일함이 금융위기를 불렀고, 약자가 가장 큰 피해를 입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금융위기가 다시는 반복돼서는 안 될 일이다.

[지지대] 말뿐인 ‘명절 특수’

명절을 앞둔 시점이면 늘 등장하는 통계들이 있다. 4인 가족 기준의 상차림 비용이 평균적으로 얼마인지, 전통시장에서의 성수품 값이 예년보다 얼마나 오르내렸는지 등이 대표적이다. 이 같은 지표들이 정기적으로 조사·발표되는 이유는 명절을 소비 진작과 지역상권 활성화의 기회로 삼자는 뜻이 숨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곱씹어 보면 의구심이 든다. 오늘날 명절이 정말 소비 진작과 지역상권 활성화의 기회가 될 수 있는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올 추석 연휴는 최장 열흘에 달한다. 소비자공익네트워크가 최근 진행한 ‘2025 추석 지출 계획’ 조사 결과를 보면 집에서 가족과 휴식하겠다는 응답이 46.8%로 귀성길에 오른다는 응답(36.4%)보다 많았다. 전통적 의미의 ‘상차림 비용’이 과거만큼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또 국내여행(23.2%)을 간다는 사람과 해외여행(5.7%)을 간다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명절이 지닌 각종 인식과 풍습들이 옅어진 상황에서 성수품 가격 변동 등은 딱히 관심을 받지 못한다. 더욱이 ‘4인 가족’, ‘전통시장’ 통계라니. 현실과 동떨어진 지표다. 어쨌건 각종 지출이 내수로 향하면 좋으련만 대형 유통사와 온라인 플랫폼에 집중된 게 현실이다. 소상공인과 골목상권은 각종 할인 행사와 무료 배송, 대규모 광고의 공세를 이기지 못하고 있다. 결국 명절 특수에서 소외될수록 경쟁력은 약화하고 남는 건 매출 편차와 상권의 피로뿐이다. 붐비던 골목에 빈 상가가 늘고 남은 점포가 임대료와 인력난에 시달리는 게 예삿일이 아닌데 뻔한 ‘명절 통계’를 왜 봐야 하나. 소상공인도, 소비자도 체감도 높은 실질적인 소비 지원책이 필요하다. 그 일환에서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좋아한다. 가타부타 말이 붙을지언정 1차 신청 당시 국민 100명 중 99명이 받았고 음식점, 마트, 편의점에서 가장 많이 쓰였다. 이번 주부터 시작된 2차 신청이 기대되는 이유다. 소비가 지역으로 순환될 때 비로소 명절 특수가 진짜 의미를 가질 수 있기에 정부와 지자체의 유용한 대책이 더 보태지길 희망한다.

[지지대] 죽음에 이르는 병, 고독

까다롭고 묵직했다. 덴마크 철학자 키르케고르의 저서 ‘죽음에 이르는 병’이 그랬다. “절망은 고독과 싸워야 하는 질환이다. 그 끝에는 늘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됐다. 홀로는 이 세상과 맞짱 뜨지 말라는 서사였다. 그렇지 않고는 절망을 치유할 수 없어서다. 죽음을 극복해야 근사한 세상을 누릴 수 있다는 게 결론이었다. 더불어 살면서 이 무서운 질병을 막아 내자는 가르침도 녹아 있었다. 고독사 극복이 메시지였다. 현실은 어떨까. 절망보다는 사회 시스템이 고독사의 주원인이라는 내용을 담은 보고서가 나왔다. 200년 전 분석과는 다르다. 한국사회보장정보원이 고독사를 분석한 결과다. 보고서에 따르면 고독사의 44.3%는 국가의 보호를 받던 기초생활수급자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개인의 비극을 넘어 사회적 재난임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사회안전망 안에 있던 이들조차 왜 쓸쓸한 죽음을 피하지 못했을까. 특정 연령대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고도 경고한다. 매년 고독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50~60대 남성들은 실직과 사업 실패, 이혼 등으로 사회와 단절되며 위험에 내몰린다. 이들은 도움을 요청하는 데 익숙지 않아 고립을 자초하는 경우가 많다. 더 이상 개인의 나약함으로 치부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다. 더욱 가슴 아픈 건 숨겨진 주검이다. 가족과 함께 살아도 발생할 수 있다. 치매나 와상 상태의 노부모를 돌보던 자녀가 먼저 세상을 떠나는 사례가 그렇다. 도회지 골목을 나가보면 원룸·고시원마다 일자리를 찾아 잠시 머무는 청장년이 많다. 이웃 간 유대감도 형성되기 어렵다. 익명성이 높은 주거환경은 고독사의 숙주다.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먼저 다가가야 한다. 기초생활보장제도가 되레 가족관계를 단절시키는 역설을 낳지 않도록 제도도 개선하자. 지역공동체를 회복해 사회적 관계망도 복원해야 한다. 방 안에 갇힌 이웃의 조용한 비명에도 귀를 기울이자. 그리고 손을 내밀어 줄 사회적 시스템도 만들자.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다.

[지지대] 그곳에 별은 없었다

열병식은 승전을 기리는 군대 의식이다. 중국에선 매년 9월3일 열린다. 일본이 1945년 중국에 항복문서를 전달한 날을 기념해서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최근 열린 열병식에서다. 사열하는 병사들의 경례를 받아줄 장성들이 단상에 없었다. 올해가 80주년 기념일인데 말이다. 도대체 어떤 사정이 숨겨져 있는 걸까. 차근차근 들여다보자. 올해 중국 열병식 주제는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이었다. 늘 그랬던 것처럼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펼쳐졌다. 중국 역사상 최대 규모였다. 육·해·공·로켓군 병력과 첨단 무기를 포함한 장비가 대거 동원됐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열병식에 참석한 장성은 한성옌 공군 중장 1명뿐이었다고 외신이 전했다. 열병식 총지휘관으로 공군 중장을 선정한 것도 이례적이었다. 중국 열병식의 총지휘관은 상장이 맡아온 게 관례였다. 물음표가 붙는 대목은 이밖에도 수두룩하다. 2015년 전승절 70주년 열병식에선 50명이 넘는 장성이 참석했다. 2019년 열병식에선 이보다 많은 89명이 59개 부대를 이끌고 퍼레이드를 펼쳤다. 많은 중국 전문가들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이 같은 배경에는 군대에 대한 사정 작업과 관련이 있다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중국에선 군대 인사 이동이 1급 기밀이다. 이 때문에 군대 관련 행사 때 새 장성 등장 여부 또는 열병식 때 책임자가 누구인지에 따라 인사 이동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열병식을 중계하는 국영방송 아나운서가 병사들이 연단 앞을 지날 때 장성들을 소개한다. 이번 열병식에선 그마저 생략됐다. 중국 당국은 군대 인사 변경 내용을 확인해 주지 않았고 조사를 받는 대상이 누구인지도 밝히지 않고 있다. 중국 전문가들은 “최근의 변화는 중국군 부패 방지 활동의 결과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 당국의 반부패 작업이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 한 건의 에피소드를 통해서도 베일에 가려진 사회주의 국가의 민낯이 엿보인다.

[지지대] 거리의 무법자

“쑤웅~.” 하교 시간과 늦은 밤 학원 밀집지역 또는 아파트 단지 인근 도로 위나 인도에서 위험천만하게 무리 지어 지나치는 폭주(?) 자전거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헬멧도 쓰지 않고 자전거를 몰고 다니는 이들은 다름 아닌 초·중학생들. 브레이크 없이 자전거를 급제동하면서 미끄러지듯 멈추는 기술, 스키딩(skidding)에 열광하는 무리에 언제든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불안감이 엄습해온다. 이들이 타는 자전거는 모두 ‘픽시 자전거’다. 고정 기어 자전거(fixed-gear bike)의 영문 명칭을 줄여 픽시(fixie)라 부른다. 그냥 경기장에서 사이클 선수들이 타는 자전거다. 브레이크, 즉 제동장치가 없다 보니 일반 자전거보다 제동거리가 4~5배 길다. 그만큼 돌발 상황에서 바로 멈추기 어렵다는 얘기다. 본인만 다치는 것도 문제지만 어린아이나 어르신들과 부딪힐 경우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지난달 21일 서울 관악구에서 픽시 자전거를 타던 한 중학생이 내리막길에서 속도를 늦추지 못하고 에어컨 실외기에 부딪쳐 사망하기도 했다. 픽시 자전거는 여러 문제를 야기한다. 보급형이 30만~40만원, 고급형은 100만~200만원이 넘고 심지어 최고급형은 1천만원을 훌쩍 넘기기도 한다. 그야말로 신종 등골 브레이커라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이 픽시를 갖지 못해 무리에 못 끼면 남학생들 사이에서 왕따를 당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또 픽시를 타는 아이들 사이에서 손발 골절 한두 번은 영광스러운 훈장이나 다름없다. 경찰청은 17일부터 집중 단속에 나선다. 단속된 운전자는 즉결심판 청구 대상이지만 픽시를 타는 대다수는 18세 미만 아동이기에 부모에게 통보하고 경고 조치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소 잃고 외양간은 고친다 치자. 그럼 사람을 잃고서는 무엇을 고칠 것인가. 좀 더 근본적이며 강력한 대책이 선행돼야 한다. 대한민국의 미래인 우리 아이들이 한 명이라도 도로에서 쓰러져 나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지지대] 소셜미디어

인터넷이 탄생하고 컴퓨터와 스마트폰 등 전자기기가 우리 손에 쥐어지면서 온라인 활용은 바퀴가 탄생한 이래 자동차를 몰고 직장에 출근하는 것처럼 일상의 반복이 됐다. 특히 소셜미디어(SNS)는 소통의 창구이자 다양한 정보를 취득하는 중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흔히 ‘도파민 과다 분비’를 일으킨다는 자극적인 영상과 ‘좋아요’를 누르게 만드는 각종 사진이 범람하면서 유해성 논란도 확산하고 있다. 개인정보 유출 문제도 심각하다. 최근 KT의 무단 소액결제 피해 사태가 발생했다. 얼마 전 SKT 고객정보 유출 사태의 악몽이 되풀이됐다. 이 정도면 국민 모두 개인정보 유출 피해를 보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마저 든다. KT 피해 규모가 커질 것으로 보이는 만큼 온라인상의 보안과 규제에 대한 엄격한 통제가 요구된다. 더불어민주당 한병도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2024년 사이버 사기 범죄 발생 건수가 전년보다 약 24.6% 늘어났다. 온라인 범죄가 유형을 달리하며 일상으로 다가오고 있다. 실제 지인들을 보면 해킹 등 사이버 범죄에 대한 우려로 노트북 상단의 카메라에 테이프를 붙이거나 스마트폰 화면의 카메라를 가린 후 사용한다. 하지만 노트북을 활용한 화상회의를 자주 해야 한다면 불편할 수밖에 없다. 스마트폰은 안면인식 잠금해제 편의를 포기해야 한다. ‘기술을 이용하는 편의성이냐’, ‘기술을 배제하는 안전성이냐’는 선택의 갈림길에 놓인다. 히말라야의 나라 네팔에 세계인의 눈길이 쏠렸다. 최근 온라인 통제로 마치 활화산이 폭발한 것과 같은 혼돈을 겪었다. ‘가짜 뉴스’로부터의 보호를 이유로 유튜브 등 일부 SNS 접속을 차단한 정부에 대한 Z세대 중심의 시위는 부패 척결의 강력한 행동으로 이어졌다. 사태 수습을 위해 임기 중 부패에 대한 강단 있는 판결로 대중적 지지를 얻었던 수실라 카르키 전 대법원장이 임시 총리로 취임하면서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지만 수십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하루 1분1초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를 넘나드는 시대다. 매일, 매시간 들여다보는 SNS를 차단한다면 생각만으로도 숨이 막힌다. 통제와 자유, 안전과 편의 사이에서 최상의 시스템을 찾아야 한다.

[지지대] 먹사니즘 정부의 첫 명절

무더운 여름의 끝을 지나 어느덧 추석이 3주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올해 추석 연휴는 개천절과 한글날이 앞뒤로 붙어 최대 10일간의 장기 연휴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번 추석은 이재명 정부 출범 후 처음 맞는 명절이다. 그동안 ‘먹사니즘’을 강조해온 이재명 대통령인 만큼 정부도 다양한 대책을 내놓으며 많은 신경을 쓰는 모습이다. 정부가 내놓은 ‘추석 민생안정대책’을 보면 추석 연휴 나흘 동안 고속도로 통행료를 모두 면제하고 인구감소지역 철도여행상품을 50% 할인한다. 특히 정부는 각종 쿠폰으로 내수 활성화를 꾀하는데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의 신청 절차를 간소화하고 사용처도 확대한다. 소비증가분의 20%를 디지털 온누리상품권으로 환급해 주는 ‘상상페이백’도 다음 달 15일 지급하도록 추진한다. 5만원권 상품권을 1인 최대 3장씩 배포하는 ‘어르신 스포츠 상품권’ 지원 대상을 만 65세 이상 기초연금수급자에서 전체 만 65세 이상으로 넓히고 31개 특별재난지역 숙박시설에서 사용할 수 있는 쿠폰 15만장을 발행한다. 최대 관심사인 추석 물가를 잡기 위해서는 추석 성수품을 역대 최대 규모인 17만2천t 공급하고 900억원을 투입해 과일, 한우 등 선물 세트를 최대 50% 할인한다. 이와 함께 전국에 2천700여개소의 직거래장터를 개설하고 과일, 축산물, 전통주, 홍삼 등 국산 농식품 94개 선물세트를 농협 등에서 최대 50% 수준으로 할인 공급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한국물가정보가 발표한 4인 가족 기준 차례상 비용(전통시장)이 29만9천원으로 집계됐다. 차례상 비용이 30만원 아래로 떨어진 것은 4년 만이다. 수치상으로는 물가가 관리되고 있다는 것인데 실제 체감물가는 어떨까. 이번 추석이 지나고 국민은 먹사니즘 정부에 어떠한 평가를 내릴지 관심이 모아진다.

[지지대] 도루묵에 대한 편견

도루묵만큼 천덕꾸러기 생선은 없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서다. 우선 이름부터 그렇다. 연유를 따져보면 구차스럽기 짝이 없다. 조선시대 선조는 임진왜란 피난 시절 반찬으로 올라온 물고기를 맛있게 먹었다. 전쟁 한복판이었으니 어느 것인들 다 맛이 있었을 터이다. 이름을 물으니, 내관들이 ‘묵’, 한자로는 ‘목어(木魚)’라고 대답했다. 임금은 ‘은어(銀魚)’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한양으로 돌아와 그 생선을 다시 밥상에 올렸더니 피난 당시 맛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임금은 ‘다시 묵’이란 뜻의 ‘도루묵’, 한자로는 ‘환목어(還木魚)’라고 불렀다. 허균의 저서 ‘도문대작(屠門大嚼)’에 나오는 이야기다. 조선의 변방 함경도에서도 곱지 않은 사연이 전해져 내려온다. 이곳 백성들이 이성계를 도와 조선왕조를 창업하는데 이바지했다. 이들은 한동안 ‘목어’가 ‘은어’로 변신하듯 대우받았다. 60여 년 지난 후 함경도에서 일어난 이시애의 난으로 다시 이들은 변방 백성으로 멸시받았다. 이후 자신들의 처지를 도루묵에 빗대 ‘말짱 도루묵’이라며 자조했다. 비운의 야사다. 억울하긴 이 생선도 마찬가지다. 맛은 담백하다. 그래서 양념으로 버무리지 않아도 온갖 맛을 낼 수 있다. 조림은 물론 소금구이나 찜, 찌개 등으로 조리된다. 다른 생선에 비해 크기는 작지만, 비늘이 없고 비린내도 거의 없다. 알이 입안에서 터지는 경쾌한 소리와 맛 등으로 가을철 최고의 별미다. 동해 북쪽 바다에서 잡히는데 길이는 대략 10㎝ 남짓하다. 복부는 불룩하면서 둥글지만 꼬리 근처는 깎여있다. 배와 옆구리는 운모 가루를 발라 놓은 듯 빛이 난다. 도루묵이 한자로 ‘목어’가 아니라 ‘은어’로 불린 배경이다. 조선 후기까지 임금 제사상에도 올려졌다. 조선 후기 실학자 서유구가 그의 저서 ‘난호어목지(蘭湖漁牧志)’에서 분석한 스펙이다. 합리적이고 사실적이다. 삐뚤어진 정보로 본의 아니게 멸시받고 편견 때문에 피해를 보는 것들이 어디 도루묵뿐이랴.

[지지대] 라스코 동굴 벽화

호기심 많은 연령대가 소년이다. 여러 명이면 허투루 지나치는 법이 없다. 그들이 일을 냈다. 강아지를 데리고 동구 밖을 달음박질치다 수상한 동굴을 발견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벽마다 개구쟁이가 그린 것 같은 그림투성이었다. 야생동물들이 들녘을 질주하는 모습도 담겼다. 그렇게 발견된 게 프랑스 도르도뉴 데파르트망의 몽티냐크 마을 라스코 동굴 벽화다. 1940년 9월12일이었다. 지금까지 발견된 선사시대 예술품 중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밀 조사 결과 동굴 벽면에 그려진 채화와 각화(刻畵) 등은 800여점이다. 조각도 1천500점을 훌쩍 넘고 선묘도 남아 있다. 들소, 야생마, 사슴, 염소 등이 뛰고 있다. 고양이나 주술사 같은 인물도 묘사됐다. 이 동굴에 그려진 벽화는 알타미라 동굴 벽화와 함께 프랑코 칸타브리아 미술의 가장 유명한 구석기시대 그림으로 평가받고 있다. 추상적인 기호도 그려져 있다. 밝은 바탕에 노란색, 붉은색, 갈색, 검은색 등 다양한 색채로 그려졌다. 색소는 적철광, 황철석, 망간 등 자연 재료에서 추출했다. 원근법이나 스프레이 방식, 브러시 등 다양한 기법이 사용된 흔적도 있다. 일부 학자들은 벽화가 별자리와 운석 충돌 등 천문학적 사건을 기록한 것일 수 있다는 가설도 제시한다. 대부분 큼지막하게 그려졌다. 주동굴에 있는 검은 소 등은 가로가 5m 이상이다. 역동적이고 생기도 넘친다. 기법도 발달했다. 구석기인들은 동굴 벽에 사냥의 대상이 되는 동물을 그리고 사냥의식을 한 것으로도 추측된다. 벽화는 기원전 3만5천년에서 기원전 1만년 사이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일반인에게 공개하다 훼손되자 1963년 폐쇄했고 200m 떨어진 곳에 인공 동굴인 라스코II를 조성해 공개 중이다. 1979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됐다. 우리 주변에서도 언제든지 제2의 라스코 동굴 벽화가 발견될 수 있다. 숱한 인류의 흔적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지지대] 골든타임 사수

지난 4일 조국혁신당 강미정 대변인이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탈당 기자회견을 했다. 탈당의 이유는 최근 정치권을 뒤흔든 조국혁신당 성비위 사건. 당의 주요 의사 결정이나 대표의 입장을 공식적으로 알려야 할 당의 얼굴 격인 대변인이 연신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한 채 “더는 기다릴 수 없다”며 수많은 카메라 앞에서 피해자들의 절규를 외면하고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 당의 치부를 힘겹게 폭로했다. 대외적으로 사건이 알려지자 조국혁신당은 뒤늦게 부랴부랴 책임을 지겠다며 지도부 총사퇴라는 극약 처방에 나섰고 이에 따라 혁신당은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됐다. 가해자를 비롯한 몇몇 관계자들의 처벌로 사건을 마무리할 수 있는 기회를 조국혁신당은 놓쳤다. 적절한 시기에 온당한 조치가 이뤄졌더라면 창당 이래 최대 위기라고 평가되는 이번 사태를 피해갈 수 있지 않았을까. 우리는 지나간 과거의 일들을 후회하며 곱씹는다. ‘만약 그때 그 충고를 받아들였다면 어떻게 됐을까.’, ‘만약 당시 그 선택을 하지 않았으면 내 인생이 달라졌을까.’ 이미 흘러간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만약~했더라면(What-if)’이라는 가정을 끊임없이 반복하며 스스로 마음의 감옥에 갇혀 긴 밤을 지새우기도 한다. 불가항력으로 벌어진 일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후회와 반성의 지난날 중 그 상황을 바꿀 수 있는 기회와 시간도 분명 존재했을 것이다. 골든타임. 사고 발생 후 환자의 생사를 결정지을 수 있는 치료가 이뤄져야 하는 최소한의 시간.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것 중 하나가 시간이다. 시간은 아무도 기다려 주지 않는다. 지금도 비난과 두려움에 혹은 출세와 야욕에 눈이 멀어 진실을 외면하고 있을 우리에게 필요한 건 적절한 타이밍에 취해야 할 행동하는 양심이다.

[지지대] 꿈이 담겨야 할 직업들

어린시절, 꿈이 뭐냐는 질문을 받으면 특정 직업을 말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다 대학 때 한 선배가 ‘너는 꿈이 뭐였어’라고 물은 적이 있다. 같은 답을 하자 ‘그건 갖고 싶은 직업이고. 너의 꿈 말이야’라는 답을 들었다. 아마 그때부터 직업에 꿈을 담기 시작했던 것 같다. 막연히 ‘기자’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 ‘내가 쓴 기사가 누군가의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해소해줄 수 있는 기자이길’ 바라는 형식으로 말이다. 단순히 생계 유지를 넘어 나름대로의 꿈을 담아야 할 직업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교권이 무너져가고 있다지만 여전히 대한민국의 백년지대계를 책임질 인재의 본보기가 되는 교사가 그렇다. 필수의료 현장에서 숨져가는 사람을 살려내며 그들을 위해 청춘을 바치는 의사도 그렇다. 기자는 말할 것도 없이 직업에 꿈을 담아 주어진 사명을 다해야 하며 소방관 역시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고 싶다는 꿈을 직업에 담는 이들이다. 또 한 가지 직업을 꼽자면 필자는 단언컨대 정치인을 꼽는다. 무엇보다 지방의원은 국민의 바로 곁에서 국민과 함께하며 그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더 나은 길로 바꿔 나가겠다는 간절한 꿈을 정치인이란 직업에 담아야 하는 이들이다. 그 신성하고 고마운 일에 사사로운 이윤 추구나 권력욕이 끼어들면 언제나 끝이 좋지 않았다. 지금 경기도의회는 4명의 의원이 수뢰 혐의로 검찰에 넘겨졌고 이 중 3명은 구속된 상태다. 한 명의 의원은 직원에게 성희롱성 발언을 해 모욕했다는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경기도의회 의원들은 처음 정치인이 되겠노라 다짐했던 그 순간, ‘정치인’이란 직업에 어떤 꿈을 담았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지지대] 아시아드주경기장, 케이팝 ‘보물단지’로

2014년 9월22일. 인천 서구 ‘인천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는 아시아인의 축제인 ‘2014 인천아시아경기대회(AG)’ 개막식이 열렸다. 3만석의 가변석을 포함해 무려 6만명이 이곳에 가득 찼다. 하지만 이 경기장은 10여년이 지나도록 유의미한 대형 행사가 열리지 않으면서 사실상 비어 있다. 심지어 인천AG의 상징인 성화대도 철거해 이제는 AG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이 때문에 이 경기장은 그동안 ‘혈세 먹는 하마’라는 비판을 받으면서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이런 아시아드주경기장이 최근 케이팝의 성지로 조금씩 떠오르고 있다. 글로벌 13인조 아이돌 보이그룹인 ‘세븐틴(Seventeen)’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이곳에서 콘서트를 연다. 또 곧 ‘스트레이 키즈’ 그룹도 이곳에서 월드투어 앙코르 공연을 한다. 왜 이처럼 아시아드주경기장이 아이돌 그룹의 콘서트장으로 주목받는 걸까. 우선 인천국제공항과 가깝다는 점이다. 세븐틴이나 스트레이 키즈의 콘서트를 관람하려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인천국제공항에서 버스를 타면 고작 30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 한국에 들어와 곧바로 공연을 즐기고 이후 인천이나 서울을 찾기 좋은 코스인 셈이다. 그렇다면 발상의 전환으로 이제 경기장을 포기하고 아예 콘서트장으로 바꾼 뒤 케이팝 등 공연을 적극 유치하는 것은 어떤지 정책적으로 고민해 볼 시점이다. 이미 철거한 3만석의 가변석을 다시 설치한다면 인천은 수도권에서 유일한 6만석의 대규모 콘서트장이라는 랜드마크가 생기는 것은 물론이고 애물단지를 보물단지로 바꿀 수 있는 셈이다. 다만 최근 새로 들어서는 공연장 추세를 감안하면 비나 더위, 추위 등 기후에 상관없이 콘서트를 열 수 있도록 경기장에 대형 지붕을 씌우는 것은 필요하다. 대형 지붕을 씌우는 비용이 막대하겠지만 타 지역에 별도의 콘서트홀을 만드는 비용이나 이 경기장이 해마다 수십억원씩 운영 적자를 보는 점을 감안하면 충분히 검토할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지지대] “노쇼 사기 근절해야”

세계적인 축구 스타의 경기를 지켜보려는 관중이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하지만 단 1분도 출전하지 않았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이야기다. 2019년 7월26일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렸던 K리그 대표팀과 유벤투스 FC와의 경기에서였다. 노쇼 사기였다. 이 용어는 예약이나 약속을 해놓고 이를 어기는 행위를 가리킨다. 운동경기에선 이례적이고 대부분 음식점에서 발생한다. 특히 대형 식당이나 고급 음식점에선 심각한 문제가 된 지 오래다. 예약석으로 잡힌 테이블에 다른 손님을 받을 수도 없고 미리 준비된 식재료도 사용할 수 없어서다. 요즘 관련 업계의 최대 골칫거리다. 모바일 예약 앱 정례화로 예약이 간단해지면서 이러한 행위도 늘고 있다. 일부이긴 하지만 예약을 지키지 않고도 적반하장격으로 항의하거나 차명계정을 만들기도 한다. 음식점에서 두드러지는 이유는 소규모 개인업체가 많아 조직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워서다. 이를테면 특정 식당이 예약금을 받기 시작하면 손님은 예약금이 없는 다른 업체로 가 버릴 수도 있다. 예약금을 걸었어도 안 먹었으니 예약금을 되돌려 달라고 생떼를 부려도 적극 대응하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예약을 아주 받지 않을 수도 없다. 관련 법령 제정 이외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 전국에서 올해 노쇼 사기가 2천892건 발생했고 피해 금액만 414억원에 이르지만 검거율은 0.7%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청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박정현 국회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다. 지역별로는 경기도가 577건(피해액 79억원)으로 가장 많고 경북 284건(38억원), 서울 281건(33억원), 전북 216건(35억원) 등의 순이었다. 세종, 서울, 부산, 울산, 경기 북부, 경북, 제주 등지에선 범인 검거율이 0%인 것으로 나타났다. 노쇼 사기는 소상공인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히는 악질 범죄다. 이를 척결하기 않고는 문명 국가라 할 수 없다.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지지대] 1세기 만에 귀환하는 나무들

줄기 색깔은 검은빛이 옅게 깔린 회색이다. 잎은 마주 난다. 끝은 뾰족하다. 잎자루의 길이는 8~12㎜다. 꽃은 4월에 핀다. 잎보다 먼저다. 물푸레나뭇과에 딸린 떨기나무다. 만리화의 이력서다. 또 다른 녀석이 있다. 키는 다 자라면 7m 남짓하다. 껍질은 회색이다. 줄기는 각진 채로 네모지다. 마주 나게 달리는 잎은 타원형이다. 가장 자리가 밋밋하게 뒤로 젖혀진다. 잎자루에 털이 수북하다. 회양목이다. 이들 나무의 공통점은 뭘까. 한반도가 친정이라는 점이다. 일제강점기 타국으로 떠나야만 했다는 점도 그렇다. 이런 가운데 만리화가 귀환했다. 한 세기 만이다. 그동안 강산은 열 차례나 바뀌었다. 이 나무가 고국을 떠났던 시기는 1917년으로 추정된다. 당시 하버드대 아놀드수목원의 식물탐험가 어니스트 헨리 윌슨이 금강산에서 채집해 미국으로 가져갔다. 국내 여러 곳에서 자생했지만 금강산의 개체는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당시에도 정원수로 많이 활용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회양목의 서사도 다르지 않다. 일반적으로 나무 이름은 학명(學名), 영명(英名), 국명(國名) 등으로 불린다. 이 중 학명은 국제적 약속으로 발견지와 발견자, 명명자 이름 등이 들어간다. 회양목은 미국 식물학자가 신종으로 처음 발표할 당시 기준이 된 개체였다. 1919년 국내에서 활동한 일본 식물학자가 아놀드수목원과의 교류 과정에서 반출됐다. 이들 나무는 반출 당시 개체에서 삽수 형태로 돌아왔다. 삽수는 꺾꽂이를 하기 위해 일정한 길이로 잘라 낸 식물의 싹이다. 아놀드수목원은 최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세계식물원 교육총회 때 국립수목원과 업무협력의향서를 맺고 이들 나무를 삽수, 묘목, 종자 등의 형태로 제공했다. 고국으로 돌아오면서 한반도 식물 집단의 유전적인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한반도 밖으로 반출됐던 나무들에 대한 관리와 보전 방안은 더욱 강화돼야 한다. 그것도 나라를 사랑하는 방법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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