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뮤지엄의 마법, 경기도에선...

연일 인산인해다. 문이 열리자마자 입장해 ‘뮷즈’(MU:DS·뮤지엄과 굿즈의 합성어)를 사려고 달려가는 진풍경은 일상이 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이라는 ‘위엄’에 박물관이 풍기는 고리타분함과 지루함의 이미지는 오래전에 벗어던졌다. 이젠 재밌고 힙한 곳이다. ‘국중박’이란 줄임말, ‘굿즈 맛집’ 등으로 친근하게 불리고 박물관에서 판매하는 뮷즈 구매, 포토존 공유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올해 방문객만 431만명을 넘어서며 사상 처음으로 500만명 관람객 시대를 열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서울의 중심에서 이젠 세계적인 문화 허브가 됐다는 말이 과언이 아니다. 국중박의 히트 비결로 흔히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열풍을 꼽는다. 하지만 국중박의 히트는 오래전부터 준비된 결과물이다. 명소로 꼽히는 ‘사유의 방’은 국보 제83호 금동반가사유상을 명상과 성찰의 매개체로 재해석하는 공간으로 만들어졌다. 관람객들은 어두운 방 은은한 조명 속에서 1천400년 전 조각상이 전하는 고요한 사유의 순간을 오롯이 경험할 수 있다. 이곳에서 자신만의 기억을 위한 체험프로그램과 콘텐츠도 다변화되고 있다. 선사고대관은 2월 리뉴얼하며 유물 하나하나의 이야기를 강조하는 전시 방식을 택했다. 여기에 국보 제228호 천상열차분야지도 전시실은 관람객이 직접 별자리를 찾아보고 당시 우리 조상들의 우주관을 체험할 수 있도록 꾸렸다. 박물관 곳곳을 돌아다니는 지능형 로봇 ‘큐아이’는 귀여운 외형에 신기함과 관람 편의성을 높여 박물관의 또 다른 인기 아이템으로 꼽힌다. 유리 너머의 유물을 보고 감상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유물이 자신만의 경험으로, 이야기가 새로 새겨지는 박물관은 관람객의 영혼을 풍요롭게 만든다. 사람의 영혼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뮤지엄이 본래 가진 역할이자 미래의 모습이기도 하다. K-컬처의 핵심 문화시설로 박물관과 미술관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는 요즘이다. 고유의 특성을 가진 대표 공립 뮤지엄을 일곱 곳이나 가진 경기도에서는 이 공식이 거꾸로 가는 듯한 느낌이 드는 건 괜한 기우일까.

[지지대] 데드 포인트

마라톤이든 수영이든 격렬한 운동을 하다 보면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는 순간을 맞닥뜨린다. 바로 ‘데드 포인트(Dead Point)’다. 이 지점에 이르면 호흡은 가빠지고 근육은 굳어 포기하고 싶은 유혹이 거세게 밀려온다. 데드 포인트는 스포츠에만 국한된 현상은 아니다. 우리의 삶 역시 수많은 데드 포인트와 마주한다. 끝없이 이어지는 업무에 치여 번아웃을 겪을 때, 아무리 노력해도 목표에 도달하지 못할 때, 인간관계의 벽에 부딪혀 좌절할 때 삶의 데드 포인트를 만난다. 그때마다 포기할지 이겨낼지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많은 사람들은 이 순간에 좌절하고 포기한다. “여기가 한계”라며 무릎 꿇는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그 순간을 성장의 기회로 받아들인다. 그들은 잠시 멈춰 서서 숨을 고르고 자신을 믿으며 한발 더 내딛는다. 5년 전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가 ‘근육긴장이상증’이라는 난치병 판정을 받고 목이 꺾인 듯한 모습이 공개되면서 충격을 안겨줬다. 병원을 다니고 수술을 해도 나아지지 않아 오랫동안 불빛이 없는 터널을 지나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아내는 그런 상황에 좌절하지 않고 직접 제철 식재료로 식단을 짜고 마사지를 해주며 2년 반 동안 자가치료를 했다. 이봉주의 상태는 점차 나아지면서 지난해에는 마라톤대회에 나설 정도로 회복됐다. “아플 때 30분이라도 뛰어 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그 꿈이 현실이 됐다”고 했다. 이봉주는 20년 동안 41차례 공식 마라톤대회를 완주했다. 경기 중 수없이 데드 포인트를 이겨냈을 세계 정상의 마라토너가 ‘참가만으로도 꿈이 현실이 된 순간’이라니, 인생 중반에 마주한 데드 포인트의 무게에 숙연해질 따름이다. 무더운 여름, 그러나 이 계절조차 느끼지 못할 혹독한 인생의 데드 포인트와 마주하고 있는 이들에게 파이팅을 외쳐본다.

[지지대] 가치 상실 사회의 단면, ‘공중협박’

8월15일, 경북 옛 안동역 광장에 폭발물 설치 협박글이 올라와 시민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발생했다. 그날은 꼭 10년 전인 2015년 8월15일, 당시 KBS ‘다큐멘터리 3일’ 제작진과 여행 중이던 20대 여성 두 명이 재회를 약속한 날로 많은 인파가 모인 상황이었다. 낭만으로 가득했던 일대는 아수라장이 됐고 경찰 수사 결과 해당 글은 서울의 한 고교생이 장난으로 올린 것이었다. 불특정 다수에 대한 테러 협박, 즉 ‘공중(公衆) 협박’은 8월 범인이 잡힌 사건만 △5일 서울 명동 신세계백화점 △6일 하남 스타필드, 용인 신세계백화점 △17일 수원 햄버거 매장 △19일 서울 고척스카이돔 등 다수를 형성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검거된 범인 모두 20대 이하 젊은층이었고 동기를 장난 또는 억하심정이라 진술했다는 점이다. 자신의 테러 협박이 어떤 피해를 줄지 생각하지 않고 호기심 또는 불만을 해소하고자, 더 나아가 사회가 ‘뒤집어지는 것’을 보고 쾌감을 느끼고자 스스럼없이 범죄 행위를 한 것이다. 이들에 대한 엄벌은 꼭 필요하다. 하지만 그게 전부일까. 내 기분과 안위를 위해 공동체에 아무렇지 않게 위해를 가하겠다는 젊은층의 급증은 우리 사회가 어떤 ‘가치’를 상실했다는 방증이 아닐까. ‘7세 고시’부터 시작하는 무한 경쟁 교육, 커지는 빈부 격차와 갈등은 우리 사회가 구성원에게 더불어 사는 가치가 아닌 각자도생과 이기심을 가르치고 있고 공중 협박 급증은 공동체 의식 없는 사회가 마주할 단면일지 모른다. 이미 전문가들은 공중 협박이 사회적 소외와 좌절감, 많은 사람과 공권력을 움직인다는 희열이 뒤틀린, 사회에 대한 경고음이라 해석하고 있다. 수능의 한 과목으로 치부되는 윤리를 가르치는 사회, 그것을 준수하는 게 손해나 도태로 치부되지 않도록 구조화된 더불어 사는 사회가 절실한 순간이다.

[지지대] ‘9월이 오면’

“한 미국 청년이 기업을 착실하게 경영해 중견 경제인으로 성공했다. 이 젊은이는 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이탈리아 지중해 별장에서 햇빛을 즐겼다. 어느 날이었다. 해당 별장에 들어서니 관리인이 별장을 불법으로 호텔로 둔갑시킨 뒤 손님을 받아 돈벌이를 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 흑백 TV를 통해 시청했던 할리우드 영화의 도입부다. 배우 록 허드슨과 지나 롤로브리지다의 연기가 돋보였던 기억이 새롭다. 영화 속으로 더 들어가 보자. “청년은 역정을 내면서 투숙객을 내쫓으려 했다. 그때 그의 이탈리아 여자 친구가 출입문을 열었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대학생들이 손님으로 들이닥쳤다. 관리인은 그들에게 ‘전쟁에서 뇌를 다쳐 그러니 이해하라’고 얼버무렸다.” 다음 장면이 궁금하다. “청년은 별장에 머물고 있던 10대 소년소녀들과 그들의 인솔자에게 즉시 떠날 것을 재촉했다. 그런 와중에 청년이 샴페인을 떨어뜨렸다. 그 마개에 인솔자가 미끄러 넘어지면서 다쳤다. 그래서 청년은 어쩔 수 없이 그들을 당분간 머물 수 있도록 배려했다. 10대 남학생들이 별장 바로 밖에서 텐트를 치고 소녀들에게 구애하기 시작했다. 젊은이는 소녀들을 보호하기 위해 여자 친구와 함께 소녀들의 후견인이자 보호자 역할을 맡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관객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던진다. 그리고 결말도 그렇게 매듭이 지어졌던 기억이 난다. 영화의 제목은 ‘9월이 오면(Come September)’이다. 영화의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도 감동적이었다. 늦은 밤에도 바람 한 줌 없었던 폭염이 주춤거리고 있다. 땅거미가 내려앉으면 불어오는 바람도 제법 시원하다. 가을 냄새가 풍긴다. 뜬금없이 추억의 영화가 떠오른 까닭이다. 곧 찬 이슬과 서리가 내리길 기대한다. 제비는 강남으로 돌아가고 기러기가 돌아올 수도 있다. 들녘에 국화꽃이 활짝 필 수도 있다. 그러다 보면 단풍도 들 것이다. 그런데 올해는 좀 다를 것 같다. 아무튼 새로운 계절을 맞이할 채비를 해야 할 때다.

[지지대] 옌스 카스트로프

중원이 눈 깜짝할 사이에 뚫린다. 역습에 골망이 출렁인다. 어김없이 한마디가 터져 나온다. “미드필더는 어디 갔어.” 외국 프로축구 경기를 볼 때마다 부러운 포지션이 수비형 미드필더다. 우리 국가대표팀에도 있었다. 김남일 전 성남FC 감독이 그랬다. 별명이 ‘진공청소기’였다. 2002 한일 월드컵 경기에서 보여준 고(故) 유상철 선수와의 호흡은 예술이었다. 현재 국가대표팀에도 다시 그런 미드필더가 가세한다. 올해 독일 프로축구 분데스리가에 데뷔한 옌스 카스트로프 선수(22·묀헨글라트바흐)가 주인공이다. 국가대표팀 사상 첫 국외 출생 태극전사이기도 하다. 어머니가 한국인이고 부친이 독일인이다. 이 선수의 공격적인 수비는 유별나다. 2023~2024 시즌 독일 프로축구 분데스리가2부 27경기에서 옐로카드 12회, 경고 누적 퇴장 1회, 레드카드 퇴장 1회 등을 기록했다. 2024~2025 시즌 분데스리가2부 25경기에선 옐로카드 11회를 받았다. 두 경기에 한 번꼴로 옐로카드를 받은 셈이다. 그만큼 수비가 적극적이라는 얘기다. 중원에서 거친 플레이를 불사하는 ‘카드캡터’(옐로카드를 많이 받는 선수)다. 카스트로프 선수의 터프한 성향은 홍명보 국가대표팀 감독도 잘 알고 있다. 홍 감독은 9월 A매치 국가대표팀 명단을 발표하면서 “굉장히 파이터 성향의 선수이고 그 안에서 아주 거칠게 하는 선수”라고 소개했다. 물론 거친 성향은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 기존 미드필더들과 다른 플레이를 펼치면서 새로운 중원 조합을 시도할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거친 플레이가 상대의 기세를 꺾고 육체·심리적으로 위축시키는 선에서 그친다면 팀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선’을 넘어 경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잦아지면 ‘리스크’가 된다. 우리 국가대표팀은 9월7일 미국 뉴저지에서 미국, 10일 테네시에서 멕시코와 친선경기를 치른다. 그의 각오가 새삼스럽다. “그토록 원했던 꿈을 이뤘습니다.”

[지지대] 알고리즘

세계적 부호 빌 게이츠가 얼마 전 한국을 방문했다. 방한 기간 방송에 출연하고 SK 최태원 회장도 만나며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돌아갔다. 그는 세계적 정보기술(IT) 기업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다. 그의 타이틀만 보면 IT 기기에 둘러싸여 살 것 같지만 그는 자신만의 아날로그 생활로 잘 알려져 있다. 빌 게이츠는 종종 읽고 싶은 책을 싸 들고 자신의 숲속 오두막에 들어가 칩거하며 책을 읽는다. 독서로 새로운 혜안을 얻고 다시 세상으로 돌아온다. 종이책뿐 아니라 종이신문도 빼먹지 않고 읽는다고 한다. IT 업계를 선도하는 빌 게이츠는 문제 해결을 위해 책과 신문에서 인사이트(통찰력)를 얻고 있었다. 알고리즘이란 게 있다. 스마트폰을 열면 바로 접할 수 있다. 사용자가 무엇을 보고 듣고 읽었는지 알아채고 ‘좋아할 만한 비슷한 콘텐츠’를 예측하고 자동으로 추천한다. 알고리즘 덕에 디지털세상엔 사용자가 보고 싶은 것들로 가득 차 있다. 편리하고 많은 것을 보는 것 같지만 알고리즘은 내가 보고 싶은 세상만 강화하는 경향이 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확증편향이라고 부른다. 자신의 기존 생각을 뒷받침하는 정보만 받아들이고 반대되는 정보는 무의식적으로 배제하는 경향이다. 알고리즘은 이런 확증편향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보고 싶은 세상’ 속에 갇힐 수 있다. 갇힌 새장을 깨고 나오기에는 빌 게이츠의 아날로그 행보만한 게 없다. 종이책과 종이신문에서 혜안을 얻는 것이다. 종이신문은 사용자가 관심 없는 분야까지 균형 있게 배열된 정보를 담고 있다. 정치, 경제, 사회, 국제, 문화가 고르게 배치된 지면을 넘기다 보면 사용자가 선택하지 않은 정보와 자연스럽게 마주한다. 알고리즘과 디지털이 속보와 확산이 강점이라면 종이신문은 폭넓음이 강점이다.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적절히 쓰고 활용하기. 세상을 보는 균형 잡힌 시각이 아닐까.

[지지대] 경기도와 조선업의 숨은 연결고리

한미 정상회담이 이뤄지자마자 26일부로 수많은 양해각서(MOU)가 체결되고 있다. 특히 눈에 들어오는 건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 관련 내용이다. 국내 대표 조선사인 HD현대도, 삼성중공업도 미국과 협력해 상호 해양 역량을 강화하자며 발 빠르게 맞손을 잡았다. 시간을 조금 돌려 지난 관세 협상 때의 에피소드다. 우리나라는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 따라 3천500억달러 규모의 펀드를 구성하겠다고 했고 이 중 1천500억달러를 들여 미국 조선업에 국내 조선 기술력을 싣는다고 밝혔다. ‘임시휴업’ 상태나 다름없는 미국의 조선업을 재건하는 동시에 우리나라 조선업엔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겠다는 취지였다. 그때 누군가가 “경기도처럼 항구도, 배도 없는 지역은 득 볼 게 없다”는 얘기를 했다. 조선기술로 먹고사는 지역엔 일자리도 창출되고, 인구도 유입되고, 부동산도 활성화될 텐데 경기도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혼자 계속 곱씹었다. 정말 그런가. 그 말마따나 제조, 반도체를 주력으로 하는 경기도는 조선업과 동떨어져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득이 될 수도 있다. 2021년 발표된 논문 ‘우리나라 조선산업의 지역산업 연관 효과 분석’을 보면 조선업의 생산·수출 활동은 전국으로 파급됐다. 경남, 울산, 전남, 부산 등은 물론이고 서비스 산업의 비중이 큰 서울과 기계, 전기, 금속이 발달한 경기도에서도 파급력이 크게 나타났다는 내용이다. 조선업의 부흥은 관련 부품·기계·서비스 시장의 확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경남 등을 시작으로 경기도의 여러 분야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특히 미국의 규모를 고려했을 때 조선업에 힘을 싣기 시작하면 경기도의 부품, 장비 등도 빠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게 마스가 프로젝트에 주목했던 이유이기도 했다. 앞으로는 더 지켜볼 여지가 많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목전에 두고 숙청이나 혁명(Purge or Revolution)을 언급한 것처럼 언제 ‘거센 워딩’으로 태도를 바꿀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도 조선업의 재가동이 절실한 만큼 당분간 큰 변동이 없으리라 보고 변화무쌍한 정세 속에서 조선업으로 인한 파급 효과가 경기도에 어떤 기회를 만들지 지역사회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지대] 원투펀치

‘원투펀치’. 야구 종목에 있어 팀에서 가장 믿을 만한 투수 2명을 묶어 부르는 용어다. 1선발만큼 2선발이 강력하다는 뜻이며 확실한 원투펀치는 팀의 승률을 상당 부분 책임지기에 너무나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한화 이글스’. KBO에서 만년 꼴찌 후보이자 가장 많은 보살 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성적이 좋은 팀으로 기억되기보다는 말이다. 마지막으로 우승을 한 해도 1999년이다. 한 세기 전 얘기다. 그런 이글스가 올해 달라졌다. 아니 강해졌다. 이유는? 그렇다. 확실한 원투펀치가 상승세에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2025년 8월25일 기준 이글스는 2위다. 한화가 따낸 67승 중 29승이 폰세(15승), 와이스(14승) 원투펀치의 몫이였다. 여기에 ‘관록’의 류현진과 ‘대전의 왕자’ 문동주까지 가세하며 이글스는 올해 환골탈태했다. 그만큼 원투펀치의 위력은 대단한 것이다. 특히 강력한 원투펀치는 페넌트레이스에서도 중요하지만 포스트시즌에서 더욱 극대화되기에 올해 이글스 팬들은 우승에 대한 열망을 그 어느 때보다 크게 품고 있을 것이다. 화제를 전환해보자. 현 시점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쉬운 것도 정치요, 가장 낙후된 것도 역시 정치다. 서로에게 긍정적 시너지를 발산해주는 원투펀치는 없고 그저 힘센 ‘독고다이’와 나약한 ‘독고다이’만 있다. 융합하지 못하고 독불장군식의 독고다이는 어떤 형식으로든 금세 지치고 대중들로부터 외면당한다. 그런데 그 독고다이로 고스란히 피해를 보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이다. 대한민국의 발전과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이라는 공통된 목표를 갖고 원투펀치를 자처하는 성숙한 여야를 기대하고 있는 오늘이다. 강력한 시너지를 발휘하면서도 아름다운 원투펀치가 하루속히 정치권에서도 나타나길 희망한다.

[지지대] 사라지는 나팔고둥

발길에 차일 정도로 흔했다. 물이 다 빠진 모래 위를 걸으면 그랬다. 갯벌에서다. 늘 늠름했다. 지금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동사의 시제를 굳이 과거완료형으로 쓴 까닭이다. 나팔고둥 이야기다. 중국 고대 문헌에선 벼슬의 등용이 공명하고 선발이 공정하며 잘난 자와 못난 자를 뒤섞어 관직에 나아가게 할 때 이 녀석의 지혜를 빌렸다. 당나라 시인인 한유(韓愈)의 ‘진학해(進學解)’에 나온다. 이 녀석은 어느 정도 자라면 어른 손보다 훨씬 커진다. 껍데기 높이는 약 22㎝에 너비는 10㎝ 정도다. 조선시대 임금 행차나 군대 행진 시 뱃고동 같은 소리를 내는 관악기 나각의 재료였다. 그래서 나팔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껍데기는 단단하다. 황백색 바탕에 불규칙한 적갈색 무늬가 있다. 아름다운 껍데기 때문에 관상용으로도 쓰임새가 많다. 식성이 궁금하다. 놀랍게도 육식이다. 주식은 불가사리다. 불가사리는 천적이 드물어 바다의 골칫덩어리다. 불가사리 한 마리를 해치우는 데 3시간 정도 걸린다. 3시간에 1마리씩 먹는다고 치면 하루에 최대 8마리 정도의 불가사리를 줄일 수 있다. 바다 생태계 먹이사슬의 균형을 잡아주는 고마운 존재다. 최근 들어 애달픈 서사를 들려주고 있다.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생물 I급에 이름이 올라서다. 무분별한 남획 탓이다. 껍데기 무늬가 아름다운 데다 식용으로 왕창 잡아 올린다. 수집가들이 함부로 채집하거나 바다로 흘러 들어간 생활하수 때문에 개체수도 급감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녀석들이 사라진 바다에는 불가사리가 활개치면서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 환경부가 나팔고둥을 8월의 멸종위기종으로 선정했다. 나팔고둥 같은 1급 멸종위기종을 허가 없이 포획·채취·훼손하거나 죽이면 5년 이하의 징역형이나 500만원 이상 5천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은 후손들에게 빌린 소중한 자산이다. 사라지는 게 어디 나팔고둥뿐이랴.

[지지대] “올여름 유난히 길다”

수증기를 머금은 공기 덩어리가 경사면을 타고 오른다. 곧이어 물줄기가 뿌려진다. 온도는 1도씩 뚝뚝 떨어진다. 높은 산에 가로막히면 거친 숨을 몰아쉰다. 그리고 굽이굽이 돌아 다시 무겁게 발걸음을 옮긴다. 푄현상의 일대기다. 학창 시절 이후 오랜만에 들어보는 기상용어다. 그때로 더 들어가 보자. 한때는 인문계 고교 교과서에 지구과학이 있었다. 입시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배워야 했다. 문과 학생들은 점수를 따기 위해 논리적으로 이해하기보다는 억지로 머릿속에 주입했다. 그러니 딱딱하고 지루할 수밖에 없었다. 여름방학이 끝나는 시기에 이 용어가 나왔다. 아주 오래된 기억의 단편이다. 원래는 독일에서 알프스 산맥을 넘어 부는 건조한 열풍을 뜻하던 용어였다. 우리나라에선 여름 끝 무렵에 자주 등장했다. 이 현상과 비슷한 용어가 있다. 우리말로 높새바람이 그렇다. 늦은 봄부터 여름에 걸쳐 동해안에서 태백산맥을 넘어 서쪽 사면으로 분다. 강원도와 경북에선 샛바람이라고도 부른다. 매우 건조해 농작물과 풀잎의 끝을 마르게 한다. 심하면 말라죽게도 만든다. 농민들에게는 반갑지 않은 불청객이다. 보통 한반도 북동쪽의 오호츠크해에서 발달한 오호츠크해 기단이 한반도까지 세력을 미칠 때 나타난다. 기상 당국이 북태평양 고기압 가장자리를 따라 고온다습한 공기가 계속 유입되고 있다고 예보했다. 서울 등 도심과 강릉 등 해안을 중심으로 열대야가 계속되고 있다. 서울은 일주일, 강릉은 열흘째 열대야다. 후텁지근할 수밖에 없다. 낮 최고 기온은 여전히 30~36도다. 푄현상이 부쩍 잦다. 백두대간 동쪽이 다른 지역보다 좀 더 더운 날씨가 지속되고 있다. 곳곳에서 국지성 소나기가 쏟아질 때도 있다. 물줄기가 뿌려지는데도 더위는 가시지 않는다. 비가 내릴 때만 기온이 일시적으로 떨어졌다가 그치면 곧바로 올라서다. 푄현상이면 어떻고 높새바람이면 어떠랴. 이 계절만 마무리된다면 말이다. 올여름은 유난히 길다.

[지지대] 80년

80년 전,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졌다. 피폭의 한복판에는 당시 강제징용 등으로 끌려간 한국인 수만명이 있었다. 그들의 고통은 일본이 겪은 피해에 비해 기록되지 않았고 기억되지 못 한 채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2025년 8월 경기도는 경기도원폭피해자협의회와 함께 공식적인 추모식을 처음으로 열고 희생자의 넋을 기렸다. 추모 전시회도 지난 8일까지 도의회 로비에서 열어 누구나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 역사 속 깊은 곳에 묻힌 상처를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셈이다. 경기도를 비롯한 대한민국의 피폭 생존자와 가족들은 제대로 된 보상이나 지원 없이 오랜 시간 버텨 왔다. 그러나 무관심으로 일관됐던 정부와 지자체의 관심이 조금씩 커졌고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깊은 위로의 말을 전하며 정부 차원의 지원 의지를 밝히기에 이르렀다. 이 대통령은 이미 경기도지사 시절 원폭피해자에게 관심을 보이며 도 차원의 정책을 펼쳤으며 피해자의 2·3세대까지 지원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도는 2022년부터 국내 최초로 도내 원폭피해자 1세대에게 생활지원수당을 지급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광복 80년을 맞은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 한국의 문화를 널리 퍼뜨리며 우뚝 섰다. 영화와 음악, 음식과 뷰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최근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로 한국의 아이돌그룹문화는 물론이고 음악까지 세계인의 열띤 호응을 얻고 있다. K-컬처가 여러 지표에서 세계 정상에 오르면서 한편으로는 K-국민의 위상은 어떠한지 되짚어보게 한다. 한국에 대한 이미지와 별개로 한국인에 대한 인식은 어떠할까. 삶의 모습이나 행복감, 경제적 혹은 국가 정책에 대한 만족도 등은 세계 속에서 어떤 위치일까. 조국을 위해 희생하거나 피해를 입은 국민에 대한 국가의 대우와 존중도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러울 것 없는 ‘월드 클래스’ 수준인지도 궁금하다.

[지지대] 침묵하는 어른의 마음이 닫히기 전에

얼마 전 피식하고 웃었지만 생각이 많아지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어른스러운 사람들이 신기하다고. 넘어져도 조용히 툭툭 털고 일어나는 사람들. 자신은 넘어지면 ‘저기요. 저 넘어졌습니다. 저 너무 아픕니다. 혹시 일어나게 좀 잡아주실 수 있나요’라며 세상 사람들이 자신의 넘어짐을 다 알게 한다고. 정말 조용히 툭툭 털고 일어나는 쪽이 어른스러운걸까 생각해봤다. 자신의 아픔을 입 밖으로 꺼내고 주변에 도움까지 청할 수 있는 용기를 지녔는데 진짜 어른은 후자 쪽이 아니었을까 하고 말이다. 과거 언제나 최선을 다해 일하고 누구보다 열과 성을 다하던 동료가 회사를 그만두게 됐다고 해 한참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때 그는 그랬다. ‘언젠가 제가 힘들어도 노력하고 있다는 걸 알아줄거라 생각해서 묵묵히 있었는데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르더라고요. 존중받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드니까 일하는 게 너무 힘들어졌어요’라고 말이다. 보통, 아니 적어도 필자가 어린 시절에는 묵묵하게 버티는 것이 정답처럼 교육됐다. 우직하고, 듬직하고, 묵묵하고 같은 단어들로 침묵을 좋은 것으로만 봤다. 하지만 요즘은 이런 것에 완전한 동의를 보내기 어려워졌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함께 상의하고 힘들 때는 짐을 조금 나눠 갖기도 하며 가끔 부딪히더라도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게 더 어른스럽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부터다. 그래서 지금 이 글을 읽는 이들이 홀로 깊숙이 지니고 있다가 이제 막 문을 닫아 버리려던 마음을 한번은 주변과 나누길 소망해 본다. 그리고 바쁜 나날이지만 자신의 주변에 곧 마음이 닫히려는 이들을 알아봐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는 하루가 되길 바라본다.

[지지대] 8월18일은 ‘쌀의 날’

8월18일은 정부가 지정한 ‘쌀의 날’이다. 한자 쌀 미(米)를 숫자 팔·십·팔(八·十·八)로 풀어 쌀을 생산하려면 여든여덟 번의 농부 손길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쌀은 5천여년 전부터 한반도에서 재배되기 시작했다고 알려졌으며 오래전부터 한국인의 주식이었다. 그러나 1인 및 맞벌이 가구가 증가하고 식습관에도 변화가 생기면서 ‘쌀’ 소비량은 크게 줄어들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1인당 쌀 소비량은 2000년 93.6㎏에서 지난해 55.8㎏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삼시 세끼’, ‘아침밥의 힘’ 등이 이제는 옛말이 돼 버린 지금. 이러한 상황에서 맞는 쌀의 날에 농민들에게 희소식이 전해졌다. 이날 이재명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통해 양곡관리법 개정안 공포안을 의결한 것. 이번 개정안은 정부가 쌀 수급 균형 면적과 논 타 작물 목표 면적을 미리 계획하는 방안이 담겼으며 타 작물 전환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도록 논에 다른 작물을 심는 농가에 재정적 지원도 충분히 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 불가피하게 쌀이 과잉 생산돼 쌀값이 하락하면 생산자 단체 5명 이상이 참여하는 ‘양곡수급관리위원회’가 수급 대책을 심의하고 정부가 이 대책을 의무적으로 시행하도록 했다. 일부에서는 이번 개정안이 농촌의 부익부 빈익빈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기도 했고 정부의 재정 부담이 커지는 만큼의 쌀값 지지 효과는 없을 것이라는 우려를 표하기도 한다. 그러나 쌀은 여전히 우리의 주식이고 식량 안보 차원에서 일정 수준의 쌀 생산량은 유지해야 한다. 예부터 ‘농부의 땀’은 근면 성실의 상징이었다. 이번 개정안으로 농민들의 시름이 조금이나마 덜어지기를, 또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이 제대로 보상을 받는 사회로 조금씩 더 나아가길 바란다.

[지지대] 마오타이주의 역설

중국만큼 술이 다양한 나라가 또 있을까. 100리만 가도 달라질 정도다. 원료는 대부분 볏과의 한해살이 풀인 수수다. 그들은 고량이라고 부른다. 중국 술을 고량주라고도 부르는 배경이다. 가장 눈길을 끄는 건 마오타이주(茅台酒)다. 중국 구이저우(貴州)성 마오타이(茅台)에서 생산된다. 지명이 이름으로 사용됐다. 향이 강렬하다. 삼키면 숨이 턱 막힌다. 아일랜드의 위스키, 프랑스의 코냑 등과 함께 세계 3대 명주로 꼽힌다. 기원전 130년 한무제가 즐겨 마셨다고 한다. 역사가 2천년이 넘는다. 공산당이 국민당과의 내전에서 밀리자 대장정에 나섰다. 1930년대 중반이었다. 마오타이 주민들이 이를 대접했다. 중국 공산당이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함께했다. 마오쩌둥이 나라의 술이라고 치켜세웠다. 그때부터 중국 공산당을 대표하는 술이 됐다. 이런 일도 있었다. 1915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평화박람회에서 중국인들이 이 술을 들고 참석했다. 그런데 포장이 촌스러워 심사위원들이 관심을 갖지 않았다. 중국 대표가 술을 바닥에 실수한 척 떨어뜨렸다. 진한 향기가 행사장으로 퍼졌다. 심사위원들이 그 향기에 감명을 받아 금상을 수여했다. 이 술은 중국 경제를 가늠하는 바로미터다. 풍족할 땐 많이 팔리지만 어려울 땐 매기가 떨어진다. 최근 이 술의 수익성이 추락하고 있다. 내수 부진에 공무원 금주령까지 내려져서다. 외신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총매출은 2015년 이후 가장 저조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불과 9.16% 늘어난 910억9천400만위안(약 17조4천억원)에 그쳤다. 순이익은 8.89% 증가한 454억위안(약 8조7천억원)으로 집계됐다. 중국은 5월 마오타이주를 포함한 음주를 제한했다. 금주령은 지방에서 더욱 강화됐다. 공직자들에게 ‘3인 이상 식사 금지’ 등 경쟁적으로 규제를 강화하는 흐름도 이어졌다. 현재 중국에서 진행 중인 마오타이주의 역설이 그래서 수상하다.

[지지대] 관심과 구설수

5일 서울 중구 신세계백화점에 폭발물을 설치했다고 온라인상에 협박글을 게시한 10대. 6일 경기지역의 신세계백화점 등을 상대로 폭파 협박을 한 20대. 8일 게임사 넵튠의 자회사 님블뉴런 본사에서 폭탄을 터뜨리겠다는 협박글을 업로드한 30대. 12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구속 수감된 서울구치소를 폭파하겠다고 협박한 50대. 웃프게도 이 글을 쓰고 있는 13일 오전 11시27분 ‘용인 에버랜드 폭파 협박’이라는 정보원의 제보. 8월 들어서만 폭파, 테러를 예고하는 거짓 신고가 활개를 치고 있다. 이들이 키보드 위에서 행한 손가락 장난질의 파장은 컸다. 경찰 특공대를 비롯한 경찰력이 대거 투입됐고 수천명의 시민이 대피하는 등 공권력 낭비와 시민 불안이 극심해졌다. 신문과 방송사들도 속보 경쟁까지 하며 관련 내용을 전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거짓 신고자들의 심리도 살짝 이해가 될 듯도 싶다. 자신의 타이핑이나 말 몇 마디에 즉각적으로 세상이 반응을 하니 묘한 쾌감도 생길 것 같다. 장삼이사(張三李四)로 살아가며 언제 대규모 공권력을 움직여 보고 수천명의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 수 있겠나. 또 언제 굴지의 언론 매체들이 자신들의 행위를 앞다퉈 보도하겠는가. 대단한 관심(關心)을 끌었다는 착각에 빠질 만도 하다. 우리는 살아가며 소소한 관심을 주고받는다. “옷 새로 사셨어요.”, “헤어 스타일 바꾸셨네요.” 당신의 변화를 느끼고 건네는 상대방의 말 한마디도 작은 관심의 표현이다. 관심은 호감을 전제로 한다. 비호감일 수밖에 없는 양치기 소년에게 그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구설수(口舌數). 남에게서 헐뜯는 말을 듣게 될 운수. 거짓 언행의 결과는 세상의 관심이 아니라 구설수에 오르는 것 뿐이다. 물론 법적 처벌은 말할 것도 없고.

[지지대] 이름 없는 영웅들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엘리트도, 주목받는 존재도 아니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사회적 위치는 그러했다. 평범한 누군가의 자식이었고 농민이었고 날품팔이 노동자였다. 후세는 이들을 ‘의병(義兵)’이라 했지만 낡아빠진 한복을 입을 만큼 무기도 의복도 식량도 변변찮았다. 정규 군대의 훈련을 받지 않았지만 침략국 일본에 저항했다. 그리고 이름 없이 사라졌다. 1907년 영국 데일리메일 신문기자 프레드릭 아서 매켄지가 만난 이들은 말했다.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좋습니다. 일본의 노예로 살기보다 자유로운 인간으로서 죽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독립투쟁에 앞장선 순국선열을 기리는 마음들이 올해 더욱 남다르다. 외세의 폭력 앞에 맞서 수많은 민초들이 함께 싸워 되찾은 역사를 기억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들의 공동체를 위한 헌신과 희생은 조국 독립의 단초가 됐고 오늘의 역사를 만들었다. 수많은 열사들의 이름이 거론되고 승리한 전투와 용맹스럽고 뛰어난 활약이 뒤따른다. 역사는 이름을 남긴 이들의 활약으로만 완성되지 않았다. 저마다의 조국애와 사명감, 자부심과 연대의식으로 똘똘 뭉쳐 외세의 침략에 맞서 국권 회복을 위한 투쟁의 기반을 마련한, 이름 없이 스러져간 무명의 의병들이 있다. 일본의 ‘토벌’ 기록에 사살자 수로만 기록됐거나 숫자로도 존재하지 않은 이들이다. 경기도는 이름 없이 역사의 뒤안길에 묻힌 무명의병을 기리는 여정을 이어가고 있다. 2023년 경기도의회가 ‘경기도 무명의병 기억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고 지난해부턴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이 본격적인 기념사업을 추진 중이다. 경기도 한말 무명의병 실태조사 및 기념사업 중장기계획 용역, 강연과 포럼 등에 이어 하반기엔 더 많은 도민과 무명의병의 가치를 공유하고 기리는 일들이 진행된다. 광복 80주년을 맞은 지금, 어둠에 묻혀 있는 무명의 용사들을 이젠 역사의 앞으로 불러내고 기려야 할 때다.

[지지대] 인천 송도달빛 ‘축제’ 공원의 정체성은?

인천의 대표축제, 대한민국 3대 축제인 ‘인천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이 지난 1~3일 15만명이 찾아 뜨거운 열기를 내뿜으며 막을 내리고, 내년을 기약했다. 인천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이 열리는 곳은 송도국제도시의 제23호 근린공원인 송도달빛축제공원. 2013년 이곳에는 인천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을 위한 야외공연장, 즉 현재의 메인 무대 등의 시설이 만들어졌다. 메인 무대 옆에는 빨간 펜타포트 로고와 영문 이름이 써 있다. 오롯이 인천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을 위한 공원이 만들어진 셈이다. 이 공원의 이름에는 ‘축제’가 들어 있다. 송도의 북측 물길을 끼고 긴 형태의 달빛공원과는 엄연히 다르다. 당초 공원을 만든 목적에 축제가 있는 것이다. 당시 주변은 이 무대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허허벌판. 하지만 야외공연장은 주민 소음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갯벌이 있는 북쪽을 향하도록 설계했다. 이후 송도달빛축제공원 주변에는 2018년부터 6·8공구에 속속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입주를 시작했다. 현재는 메인 무대 앞 방향 왼쪽으로 최소 3개 단지가 음악 소리의 영향권에 들어 있다. 이로 인해 인천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은 물론이고 다른 축제 등이 열릴 때마다 인천시나 인천경제자유구역청, 연수구청 등에는 소음으로 인한 민원이 끊이지 않고 있다. 공원이 만들어진지 12년이 지난 지금은 송도달빛축제공원의 정체성에 대해 다시 고민을 해봐야 할 시점이다. 첫 번째로 주변에 아파트 등이 많이 들어서면서 축제가 열릴 때마다 소음 민원 등이 많으니 이젠 이름에서 ‘축제’를 빼고 일반 공원화하는 것이 있다. 이 경우 인천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을 비롯해 이곳에서 해마다 열린 각종 축제는 다른 개최 장소를 알아봐야 한다. 인천에 지하철 등 대중교통이 좋고 메인 무대 등을 갖춘 장소를 쉽게 찾을 수는 없겠지만. 두 번째로 당초 목적대로 ‘축제’를 특화시키는 방안이 있다. 축제 특화 공원으로 재탄생시켜 되레 타 지역의 유명 축제까지 유치, 지역경제 활성화를 이뤄내는 것이다. 또 하나 인천의 명물 공원이 생기는 셈이다. 다만 메인 무대의 방향을 바꾸거나 인근에 새로 지어 주민들의 소음 피해를 최소화하는 대책이 필요하다. 인근 나대지로 남아 있는 곳까지 공원을 더 넓히고, 축제 특화 공원답게 화장실 등의 인프라도 추가해야 한다. 또 관계자나 관람객을 위한 대규모 주차장도 이젠 필수적으로 필요하다. 인천의 미래, 그리고 송도의 앞날을 위한 진지한 고민과 선택이 필요하다.

[지지대] 中 최정예 부대 지휘관의 경질

붉은색 깃발을 들고 전투에 임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홍군(紅軍)이라 불렀다. 무기도 변변찮았다. 개인화기인 소총도 병사 3명당 한 정꼴이었다. 기관총이나 박격포 등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1927년 8월1일 창건된 중국인민해방군의 서사다. 현재는 상황이 확 달라졌다. 병력 규모는 예비역 80만여명을 포함해 310만여명이다. 지휘는 자본주의 국가처럼 국방부가 아니라 공산당(군사위원회)이 통솔한다. 5세대 전투기와 항공모함, 이지스급 구축함 등 첨단 방어시스템도 갖췄다. 지난해 국방예산은 309조원으로 아시아 1위, 세계 2위다. 현재 중국군에서 최강의 전투력을 자랑하는 부대는 북부전구 산하 제79집단군구다. 두만강과 접한 영역을 담당한다. 전구(戰區)는 우리의 지상군작전사령부, 집단군구는 군단사령부 등에 해당된다. 중국군 전체 서열 1위다. 이 부대 지휘관을 지내야 중국군 최고위층으로 승진할 수 있다. 유일하게 미사일 공격에 대비한 방어체계도 구축됐다. 이런 가운데 이 부대 지휘관인 황밍(黃銘)이 주요 행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여러 추측이 나오고 있다. 외신의 분석이다. 경질됐다는 데 무게가 실린다. 최근 열린 건군절 기념 좌담회에도 불참했다. 그는 지난해 7월31일 선양에서 열린 랴오닝성 군사정치 좌담회에 처음 등장해 북부전구 지휘관 보임 사실이 확인됐다. 5월 온라인에 위기설이 돈 데 이어 지난 1일 행사에도 나타나지 않아 경질설이 더욱 증폭되고 있다. 중국군 수뇌부가 흔들리고 있다. 중국군 핵심 전력인 로켓군 지휘관(상장)을 지낸 리위차오·저우야닝이 시작이었다. 이어 국방부장(장관)을 지낸 웨이펑허·리상푸, 그리고 군서열 5위 먀오화 전 중앙군사위원회 정치공작부 주임 등도 잇따라 낙마했다. 황밍 경질설이 나오는 배경이다. 중국군 최정예 부대 지휘관의 신상 변동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적을 알아야 이길 수 있다는 ‘손자병법’을 굳이 꺼내지 않아도 말이다.

[지지대] 억새 이야기

문득 어깨를 빌려주고 싶을 때가 있다. 이 풀 앞에 서면 그렇다. 억새 이야기다. 사촌뻘인 갈대와는 다르다. 갈대는 문학작품이나 대중가요 등에 곧잘 등장한다. 하지만 억새는 늘 푸대접받는다. 차이는 간단하다. 산이나 언덕 등 마른 곳에서 자라면 억새다. 연못이나 갯벌 등 습한 곳에서 서식하면 갈대다. 그런 와중에 돋보이는 시가 눈에 띈다. “정확히는 해안이 아니었어/북해를 하염없이 내려다보고 있는 능선/그 언덕에 핀 지천의 은빛 억새꽃이/며칠째 메아리의 날개를 내게 팔았지/저녁 바람을 만나는 억새의 황홀을 정말 아니?”. 마종기 시인의 ‘북해의 억새’다. 억새에 대해 좀 더 들여다보자. 여러해살이 풀이다. 키는 1~2m 남짓하다. 뿌리 줄기는 모여 나고 굵으면서 원기둥 모양이다. 잎은 줄 모양이다. 끝이 갈수록 뾰족해지고 가장자리는 까칠까칠하다. 꽃은 9월 줄기 끝에 부채꼴이나 산방꽃차례로 달린다. 작은 이삭이 촘촘히 달린다. 꽃차례 길이는 10~30㎝다. 최근 억새가 8월의 정원식물로 선정됐다. 반갑다. 국립수목원의 결정이다. 이삭이 고요하고 우아한 정원 경관을 연출한다는 이유다. 여러 포기를 모아 심으면 정원 공간을 자연스럽게 채울 수도 있다. 꽃이 활짝 피면 하얀 구름이 정원 위에 내려앉은 듯한 풍광도 연출한다. 키우기도 쉽다. 물이 잘 빠지는 흙에 심고 식물 사이에 약 30㎝ 간격을 두는 게 좋다. 그래야 땅속줄기(뿌리줄기)를 통해 해마다 늘어나는 억새를 잘 관리할 수 있어서다. 처음 심을 때는 물을 충분히 줘야 하지만 뿌리가 자리를 잡은 뒤에는 약간 건조한 환경이 좋다. 한국의 자연을 대표하는 식물로 정원에 우아한 경관미를 더할 뿐 아니라 다양한 생물에 서식처도 제공하는 등 더불어 사는 생태적 가치도 뛰어나다. 입추가 지났고 곧 말복이니 무더위도 한풀 꺾이지 않을까. 억새는 해마다 이맘때면 들녘에서 벗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헹가래를 친다.

[지지대] 달라진 여름방학 풍경

여름방학이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친구들과 골목을 누비던 시절이 있었다. 기성세대라면 공감할 만한 그 시절 방학 풍경이다. 그때도 더웠지만 골목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오후 뙤약볕 아래서도 친구들과 뛰어놀며 아이스크림 하나면 더위는 금세 잊었다. 소나기라도 내리면 그대로 맞으며 마냥 즐거웠다. 그때 여름방학은 더위도 그저 즐거운 놀잇감이었다. 하지만 지금 아이들의 여름방학은 과거와 사뭇 달라졌다. 30도만 넘어도 덥다고 하던 여름은 이제 35도를 훌쩍 넘나드는 폭염의 계절이 됐다. 툭하면 폭염특보가 울리고 국지성 폭우가 쏟아진다는 긴급재난문자는 일상이 됐다. 골목에 뛰놀던 아이들의 모습은 사라졌다. 골목은 뜨거운 열기만 머무는 텅 빈 공간으로 남았다. 요즘 아이들에게 방학은 ‘집 안’이라는 공간에서 디지털 기기와 보내는 시간으로 변했다. 폭염과 폭우의 위험이 도사리는 골목 대신 안전하고 시원한 집과 건물 안이 놀이터가 됐다. 친구들과 뛰어놀며 배우던 사회성과 감정적 교류는 이제 스마트폰과 태블릿PC를 통해 이뤄진다. 온라인 게임을 하고 유튜브 콘텐츠를 만들거나 소비하며 직접 몸을 움직이는 활동 대신 디지털 세계에서 가상 체험을 한다. 이러한 변화가 아이들의 삶과 관계 맺는 방식을 완전히 바꾸고 있다. 한편으론 안전을 위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몸과 마음이 함께 자라는 ‘진짜 놀이터’를 잃은 아이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사회도, 기후도 변하고 있다. 이 변화에 무감각하게 적응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우리가 스스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아이들이 진정으로 행복한 방학을 보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더 나아가 우리 스스로 기후 위기 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말이다. 아이들이 다시 골목으로 나와 함께 뛰놀 수 있도록 어른들의 행동이 필요하다. 어른들이 어릴 적 마음껏 뛰놀던 여름방학을 지금의 아이들도 누릴 수 있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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