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이름 없는 영웅들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엘리트도, 주목받는 존재도 아니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사회적 위치는 그러했다. 평범한 누군가의 자식이었고 농민이었고 날품팔이 노동자였다. 후세는 이들을 ‘의병(義兵)’이라 했지만 낡아빠진 한복을 입을 만큼 무기도 의복도 식량도 변변찮았다. 정규 군대의 훈련을 받지 않았지만 침략국 일본에 저항했다. 그리고 이름 없이 사라졌다. 1907년 영국 데일리메일 신문기자 프레드릭 아서 매켄지가 만난 이들은 말했다.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좋습니다. 일본의 노예로 살기보다 자유로운 인간으로서 죽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독립투쟁에 앞장선 순국선열을 기리는 마음들이 올해 더욱 남다르다. 외세의 폭력 앞에 맞서 수많은 민초들이 함께 싸워 되찾은 역사를 기억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들의 공동체를 위한 헌신과 희생은 조국 독립의 단초가 됐고 오늘의 역사를 만들었다. 수많은 열사들의 이름이 거론되고 승리한 전투와 용맹스럽고 뛰어난 활약이 뒤따른다. 역사는 이름을 남긴 이들의 활약으로만 완성되지 않았다. 저마다의 조국애와 사명감, 자부심과 연대의식으로 똘똘 뭉쳐 외세의 침략에 맞서 국권 회복을 위한 투쟁의 기반을 마련한, 이름 없이 스러져간 무명의 의병들이 있다. 일본의 ‘토벌’ 기록에 사살자 수로만 기록됐거나 숫자로도 존재하지 않은 이들이다. 경기도는 이름 없이 역사의 뒤안길에 묻힌 무명의병을 기리는 여정을 이어가고 있다. 2023년 경기도의회가 ‘경기도 무명의병 기억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고 지난해부턴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이 본격적인 기념사업을 추진 중이다. 경기도 한말 무명의병 실태조사 및 기념사업 중장기계획 용역, 강연과 포럼 등에 이어 하반기엔 더 많은 도민과 무명의병의 가치를 공유하고 기리는 일들이 진행된다. 광복 80주년을 맞은 지금, 어둠에 묻혀 있는 무명의 용사들을 이젠 역사의 앞으로 불러내고 기려야 할 때다.

[지지대] 인천 송도달빛 ‘축제’ 공원의 정체성은?

인천의 대표축제, 대한민국 3대 축제인 ‘인천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이 지난 1~3일 15만명이 찾아 뜨거운 열기를 내뿜으며 막을 내리고, 내년을 기약했다. 인천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이 열리는 곳은 송도국제도시의 제23호 근린공원인 송도달빛축제공원. 2013년 이곳에는 인천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을 위한 야외공연장, 즉 현재의 메인 무대 등의 시설이 만들어졌다. 메인 무대 옆에는 빨간 펜타포트 로고와 영문 이름이 써 있다. 오롯이 인천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을 위한 공원이 만들어진 셈이다. 이 공원의 이름에는 ‘축제’가 들어 있다. 송도의 북측 물길을 끼고 긴 형태의 달빛공원과는 엄연히 다르다. 당초 공원을 만든 목적에 축제가 있는 것이다. 당시 주변은 이 무대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허허벌판. 하지만 야외공연장은 주민 소음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갯벌이 있는 북쪽을 향하도록 설계했다. 이후 송도달빛축제공원 주변에는 2018년부터 6·8공구에 속속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입주를 시작했다. 현재는 메인 무대 앞 방향 왼쪽으로 최소 3개 단지가 음악 소리의 영향권에 들어 있다. 이로 인해 인천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은 물론이고 다른 축제 등이 열릴 때마다 인천시나 인천경제자유구역청, 연수구청 등에는 소음으로 인한 민원이 끊이지 않고 있다. 공원이 만들어진지 12년이 지난 지금은 송도달빛축제공원의 정체성에 대해 다시 고민을 해봐야 할 시점이다. 첫 번째로 주변에 아파트 등이 많이 들어서면서 축제가 열릴 때마다 소음 민원 등이 많으니 이젠 이름에서 ‘축제’를 빼고 일반 공원화하는 것이 있다. 이 경우 인천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을 비롯해 이곳에서 해마다 열린 각종 축제는 다른 개최 장소를 알아봐야 한다. 인천에 지하철 등 대중교통이 좋고 메인 무대 등을 갖춘 장소를 쉽게 찾을 수는 없겠지만. 두 번째로 당초 목적대로 ‘축제’를 특화시키는 방안이 있다. 축제 특화 공원으로 재탄생시켜 되레 타 지역의 유명 축제까지 유치, 지역경제 활성화를 이뤄내는 것이다. 또 하나 인천의 명물 공원이 생기는 셈이다. 다만 메인 무대의 방향을 바꾸거나 인근에 새로 지어 주민들의 소음 피해를 최소화하는 대책이 필요하다. 인근 나대지로 남아 있는 곳까지 공원을 더 넓히고, 축제 특화 공원답게 화장실 등의 인프라도 추가해야 한다. 또 관계자나 관람객을 위한 대규모 주차장도 이젠 필수적으로 필요하다. 인천의 미래, 그리고 송도의 앞날을 위한 진지한 고민과 선택이 필요하다.

[지지대] 中 최정예 부대 지휘관의 경질

붉은색 깃발을 들고 전투에 임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홍군(紅軍)이라 불렀다. 무기도 변변찮았다. 개인화기인 소총도 병사 3명당 한 정꼴이었다. 기관총이나 박격포 등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1927년 8월1일 창건된 중국인민해방군의 서사다. 현재는 상황이 확 달라졌다. 병력 규모는 예비역 80만여명을 포함해 310만여명이다. 지휘는 자본주의 국가처럼 국방부가 아니라 공산당(군사위원회)이 통솔한다. 5세대 전투기와 항공모함, 이지스급 구축함 등 첨단 방어시스템도 갖췄다. 지난해 국방예산은 309조원으로 아시아 1위, 세계 2위다. 현재 중국군에서 최강의 전투력을 자랑하는 부대는 북부전구 산하 제79집단군구다. 두만강과 접한 영역을 담당한다. 전구(戰區)는 우리의 지상군작전사령부, 집단군구는 군단사령부 등에 해당된다. 중국군 전체 서열 1위다. 이 부대 지휘관을 지내야 중국군 최고위층으로 승진할 수 있다. 유일하게 미사일 공격에 대비한 방어체계도 구축됐다. 이런 가운데 이 부대 지휘관인 황밍(黃銘)이 주요 행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여러 추측이 나오고 있다. 외신의 분석이다. 경질됐다는 데 무게가 실린다. 최근 열린 건군절 기념 좌담회에도 불참했다. 그는 지난해 7월31일 선양에서 열린 랴오닝성 군사정치 좌담회에 처음 등장해 북부전구 지휘관 보임 사실이 확인됐다. 5월 온라인에 위기설이 돈 데 이어 지난 1일 행사에도 나타나지 않아 경질설이 더욱 증폭되고 있다. 중국군 수뇌부가 흔들리고 있다. 중국군 핵심 전력인 로켓군 지휘관(상장)을 지낸 리위차오·저우야닝이 시작이었다. 이어 국방부장(장관)을 지낸 웨이펑허·리상푸, 그리고 군서열 5위 먀오화 전 중앙군사위원회 정치공작부 주임 등도 잇따라 낙마했다. 황밍 경질설이 나오는 배경이다. 중국군 최정예 부대 지휘관의 신상 변동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적을 알아야 이길 수 있다는 ‘손자병법’을 굳이 꺼내지 않아도 말이다.

[지지대] 억새 이야기

문득 어깨를 빌려주고 싶을 때가 있다. 이 풀 앞에 서면 그렇다. 억새 이야기다. 사촌뻘인 갈대와는 다르다. 갈대는 문학작품이나 대중가요 등에 곧잘 등장한다. 하지만 억새는 늘 푸대접받는다. 차이는 간단하다. 산이나 언덕 등 마른 곳에서 자라면 억새다. 연못이나 갯벌 등 습한 곳에서 서식하면 갈대다. 그런 와중에 돋보이는 시가 눈에 띈다. “정확히는 해안이 아니었어/북해를 하염없이 내려다보고 있는 능선/그 언덕에 핀 지천의 은빛 억새꽃이/며칠째 메아리의 날개를 내게 팔았지/저녁 바람을 만나는 억새의 황홀을 정말 아니?”. 마종기 시인의 ‘북해의 억새’다. 억새에 대해 좀 더 들여다보자. 여러해살이 풀이다. 키는 1~2m 남짓하다. 뿌리 줄기는 모여 나고 굵으면서 원기둥 모양이다. 잎은 줄 모양이다. 끝이 갈수록 뾰족해지고 가장자리는 까칠까칠하다. 꽃은 9월 줄기 끝에 부채꼴이나 산방꽃차례로 달린다. 작은 이삭이 촘촘히 달린다. 꽃차례 길이는 10~30㎝다. 최근 억새가 8월의 정원식물로 선정됐다. 반갑다. 국립수목원의 결정이다. 이삭이 고요하고 우아한 정원 경관을 연출한다는 이유다. 여러 포기를 모아 심으면 정원 공간을 자연스럽게 채울 수도 있다. 꽃이 활짝 피면 하얀 구름이 정원 위에 내려앉은 듯한 풍광도 연출한다. 키우기도 쉽다. 물이 잘 빠지는 흙에 심고 식물 사이에 약 30㎝ 간격을 두는 게 좋다. 그래야 땅속줄기(뿌리줄기)를 통해 해마다 늘어나는 억새를 잘 관리할 수 있어서다. 처음 심을 때는 물을 충분히 줘야 하지만 뿌리가 자리를 잡은 뒤에는 약간 건조한 환경이 좋다. 한국의 자연을 대표하는 식물로 정원에 우아한 경관미를 더할 뿐 아니라 다양한 생물에 서식처도 제공하는 등 더불어 사는 생태적 가치도 뛰어나다. 입추가 지났고 곧 말복이니 무더위도 한풀 꺾이지 않을까. 억새는 해마다 이맘때면 들녘에서 벗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헹가래를 친다.

[지지대] 달라진 여름방학 풍경

여름방학이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친구들과 골목을 누비던 시절이 있었다. 기성세대라면 공감할 만한 그 시절 방학 풍경이다. 그때도 더웠지만 골목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오후 뙤약볕 아래서도 친구들과 뛰어놀며 아이스크림 하나면 더위는 금세 잊었다. 소나기라도 내리면 그대로 맞으며 마냥 즐거웠다. 그때 여름방학은 더위도 그저 즐거운 놀잇감이었다. 하지만 지금 아이들의 여름방학은 과거와 사뭇 달라졌다. 30도만 넘어도 덥다고 하던 여름은 이제 35도를 훌쩍 넘나드는 폭염의 계절이 됐다. 툭하면 폭염특보가 울리고 국지성 폭우가 쏟아진다는 긴급재난문자는 일상이 됐다. 골목에 뛰놀던 아이들의 모습은 사라졌다. 골목은 뜨거운 열기만 머무는 텅 빈 공간으로 남았다. 요즘 아이들에게 방학은 ‘집 안’이라는 공간에서 디지털 기기와 보내는 시간으로 변했다. 폭염과 폭우의 위험이 도사리는 골목 대신 안전하고 시원한 집과 건물 안이 놀이터가 됐다. 친구들과 뛰어놀며 배우던 사회성과 감정적 교류는 이제 스마트폰과 태블릿PC를 통해 이뤄진다. 온라인 게임을 하고 유튜브 콘텐츠를 만들거나 소비하며 직접 몸을 움직이는 활동 대신 디지털 세계에서 가상 체험을 한다. 이러한 변화가 아이들의 삶과 관계 맺는 방식을 완전히 바꾸고 있다. 한편으론 안전을 위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몸과 마음이 함께 자라는 ‘진짜 놀이터’를 잃은 아이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사회도, 기후도 변하고 있다. 이 변화에 무감각하게 적응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우리가 스스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아이들이 진정으로 행복한 방학을 보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더 나아가 우리 스스로 기후 위기 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말이다. 아이들이 다시 골목으로 나와 함께 뛰놀 수 있도록 어른들의 행동이 필요하다. 어른들이 어릴 적 마음껏 뛰놀던 여름방학을 지금의 아이들도 누릴 수 있게 말이다.

[지지대] ‘기후 뉴노멀’ 대비해야

최근 몇 년 새 우리 사회 곳곳에는 ‘뉴 노멀’(New Normal), ‘새로운 표준’이 자리 잡고 있다. 2020년부터 3년 가까이 전국을 휩쓸었던 코로나19는 교육, 업무 등에 ‘비대면’을 정착시켰고 인공지능(AI) 기술은 기업은 물론이고 스마트폰에도 속속 적용 중이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극한 호우’라는 또 다른 뉴 노멀을 맞이하고 있다. 시간당 수십, 많게는 100㎜가 넘게 내리는 극한 호우도 이제는 몇십년에 한 번 일어나는 기현상이 아니다. 지난달 20일 가평군 일대는 시간당 100㎜의 폭우가 쏟아지며 마을 곳곳은 산사태와 침수로 쑥대밭이 됐다. 남부지방에서는 마을, 읍 전체가 침수되는 사례가 잇따랐다. 특히 6일 또다시 극한 호우가 예보돼 수해지역은 그야말로 초주검, 초긴장 상태다. 하지만 재난 대응 체계는 기후 변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경기지역만 해도 오산시에서는 ‘폭우 시 붕괴 우려가 있다’는 시민 신고가 제기됐음에도 별다른 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탓에 지난달 16일 가장교차로 옹벽이 붕괴해 사망자가 발생했다. 가평군에서는 극한 호우로 산지 지반이 약화돼 지난달 20일 산사태로 펜션이 붕괴하며 사망자가 발생했다. 특히 해당 사고는 2020년 일가족 사망으로 이어진 펜션 붕괴 사고와 유사해 산지 건축물 관리 체계가 부실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일기도 했다. 이미 많은 전문가들은 지금의 하천 범람 기준, 정부와 지자체의 재난 대응 매뉴얼로는 극한 호우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우려한다. 예년 수준을 훨씬 웃도는 폭우가 예측 불가능하게 내리기에 아예 전과 다른 대응 체계를 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행히 이번 극한 호우를 계기로 현재 정부가 폭우 매뉴얼 보완을 논의 중이라고 한다. 점차 ‘평균’이 돼가는 극한 호우에 충분히 대응해 시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킬 수 있는 체계가 도입되기 바란다.

[지지대] 반려견 ‘초롱이’

13세 반려견 ‘초롱이’는 6개월 동안 치매를 앓았다. 밤새 울부짖거나 머리로 벽을 치는 등 고통스러운 몸부림이 계속됐다. 그 모습에 가족들도 힘겨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러다 초롱이가 3일간 식음을 전폐했다. 한밤 걱정스러운 마음에 가봤더니 초롱이는 이미 무지개 다리를 건넌 상태였다. 초롱이를 끌어안고 한참을 울다 보니 날이 밝았다. 고운 이불에 감싸안고 평소 산책하던 곳으로 향했고 함께 뛰며 마냥 행복했던 그때의 추억을 되뇌며 마지막을 기렸다. 그리고 성당에 가서 그동안 못해준 것에 대한 미안함을 사과하고 좋은 곳으로 가기를 기도했다. 지인이 반려견을 떠나 보내며 눈물과 함께 쏟아낸 이야기다. 이렇듯 많은 이들이 반려견을 가족으로 여긴 지 오래다. 요즘은 ‘애완견’이라는 말보다 ‘반려견’으로 부를 만큼 인식이 바뀌었다. 애완견은 개를 장난감이나 소유물처럼 가까이 두고 귀여워한다는 의미가 강한 반면 반려견은 사람과 함께 삶을 공유하는 동반자, 즉 가족 구성원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최근 이웃집 개에게 물림사고를 당한 반려견 주인에게 정신적인 피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와 주목을 끌고 있다. 원고측은 재판 과정에서 반려견이 단순한 재산을 넘어선 ‘가족’이라는 점에서 교환가치로 산정해 손해배상 범위를 제한할 수 없다고 주장했고 법원이 그 주장을 받아들였다. 이처럼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삶은 기쁨과 행복으로 가득하지만 동시에 책임감과 에티켓이 요구된다. 반려동물을 통해 조건 없는 사랑을 배우고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익힌다. 하지만 그 사랑이 깊어질수록 더욱 세심한 배려와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반려 인구 1천500만명 시대, 국민 네 명 중 한 명 이상이 반려동물과 산다는 요즘,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에티켓을 지킬 때 더욱 아름다운 동행을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지지대] 장수하늘소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하다 중퇴한 청년이 있었다. 그는 어린 시절 매몰사고로 광부였던 아버지를 여의었다. 어머니는 생활고에 시달리다 결국 인근 소도시로 이사했다. 전방에서 군복무하던 시절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떴다는 전보를 받았다. 휴가를 나왔지만 이미 장례를 치른 뒤였다. 제대 후 복학을 포기하고 곤충채집 아르바이트를 하고 희귀하고 아름다운 곤충들을 일본인에게 파는 일에 전념했다.” 작가 이외수가 1981년 발표한 장편소설 ‘장수하늘소’의 얼개다. 배경은 강원도 화천이다. 장수하늘소 등을 잡아 일본인에게 밀매하는 일인칭 시점에서 풀어나갔다. 인간의 물질적인 쾌락과 한없는 탐욕을 고발했다. 검은색 갑옷을 입은 것처럼 늠름하다. 이 녀석의 생물학적 계보는 딱정벌레목에 속한다. 넓은 잎을 가진 나무들이 울창한 활엽수림 등지에서 주로 자라고 활동한다. 몸 길이는 다 크면 끝에서 앞턱까지 7∼9㎝ 남짓하다. 턱과 더듬이도 수컷이 훨씬 길다. 애달픈 서사가 있다. 20세기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우리 곁을 떠나고 있어서다. 그래서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으로 지정돼 있다. 숲 파괴와 남획 등이 원인이다. 이런 가운데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인 광릉숲에서 장수하늘소 서식이 또 확인됐다. 12년 연속이다. 국립수목원은 광릉숲에서 장수하늘소 수컷 한 마리를 관찰했다고 발표했다. 이번에 발견된 장수하늘소는 몸 길이 7.44㎝에 체중 7.1g 등으로 상태는 양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립수목원은 2014년부터 광릉숲에서 장수하늘소 서식을 확인 중이다. 국립수목원은 “장수하늘소가 12년 연속 확인돼 개체군이 광릉숲을 기반으로 안정적이고 건강하게 보전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국립수목원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장수하늘소 사육과 복원을 연구하고 있으며 자연 방사 등을 통해 서식지 복원 활동도 함께 진행 중이다. 인간의 헛된 욕망으로 사라지는 게 어디 장수하늘소뿐일까.

[지지대] 흑염소 단상

“가마솥 속에서 끓여지면서도 힘이 세다. 수염도 시커멓다.” 김승옥 작가의 단편소설 ‘염소는 힘이 세다’ 첫 구절이다. 발표 시기는 1966년이다. 제목은 염소지만 원래는 흑염소를 보고 작품을 구상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이 작품의 주어는 모두 흑염소다. 좀 더 들여다보자. 털 색깔은 검은색이다. 체구가 작고 암수 모두 뿔이 난다. 수컷은 검은 수염을 달고 있다. 몸 길이는 60~80㎝, 어깨 높이는 50㎝ 안팎이다. 평균 수명은 10년이다. 이런 가운데 어느 순간부터 한여름 보양식으로 흑염소가 급부상(경기일보 7월30일자 1면)하고 있다. 대표 보양식이던 개고기가 2년 뒤 법적으로 전면 유통이 금지되면서다. 하지만 국산 여부 판별시스템이 없어 소비자 피해는 물론이고 체계적인 유통관리 및 품질검증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타 축종에 비해 제도적 기반이 미흡해서다. 소·돼지·닭이 ‘축산물이력법’(가축 및 축산물 이력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식별번호를 받고 유통 단계 관리를 받는 것과 달리 흑염소는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유전형질관리 및 질병방역체계에서도 배제된다. 소비자 입장에선 원산지가 불분명하거나 위생관리가 미흡한 제품을 구매할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에 따르면 전국의 흑염소를 포함한 염소 수입량은 2022년부터 매년 평균 57%씩 늘어 지난해만 8천143t을 기록했다. 전년(5천995t) 대비 2천t 이상 늘었다. ‘개식용종식법(개의 식용 목적의 사육·도살·유통 종식에 관한 특별법)의 영향이다. 2016년 국내 첫 개식용 금지 국제콘퍼런스 이후 개식용종식법 논의 본격화로 개고기 소비가 감소했다. 특히 올해 2월 이 법이 제정되면서 2027년부터는 식용 목적의 개 사육과 도살, 유통, 판매 등도 전면 금지된다. 앞으로는 한여름 보양식 식탁에서 개고기 대신 흑염소를 자주 만날 듯 싶다. 세태의 변화가 주는 아쉬움의 무게가 제법 묵직하다.

[지지대] ‘소비쿠폰’, 작지만 분명한 회복 징후

민생은 통계보다 표정에서 드러난다. 소비자물가나 매출액, 기준금리 등 각종 숫자들이 어떻게 변하든 실물경제를 가장 생생하게 체감하게 하는 건 결국 거리 곳곳을 걸어 다니는 사람들의 얼굴이다. 최근 한 주는 모처럼 활기찼던 것 같다. 코로나19 이후 좀처럼 풀리지 않던 경제 불황에서 너도나도 어둡고 예민하더니 ‘민생회복 소비쿠폰’이 풀리기 시작하면서 각자의 표정이 한결 나아졌다. 민생회복 소비쿠폰은 내수 활성화와 소상공인·자영업자 매출 확대를 위해 지난 21일부터 지급됐다. 동네 상권이나 재래시장 곳곳에 ‘소비쿠폰 활용처’를 알리는 안내 문구가 붙어 있고 일부 지역은 소비 촉진 캠페인까지 지자체 차원에서 전개하고 있다. 여전히 국내외 경제 위기는 이어지고 있지만 바닥을 찍었던 골목들이 다시 기지개를 켜는 데 아주 작은 불씨가 된 건 확실하다. 식당가건 편의점이건 유통업계 전반의 매출이 늘고 있어서다. 혹자는 ‘돈 낭비’라고 지적하거나 ‘거창한 정책’은 아니라고 꼬집는다. 다만 내 골목에서 내 이웃들에게 실효가 나타나고 있으니 누군가의 ‘점심 한 끼’나 ‘새로운 안경’이 돼주고 있으니 의미 없는 일이라 볼 수 없다. 가끔은 숫자보다 마음이 먼저다. 소비쿠폰이 풀린 첫 주(7월21~27일) 경기도에선 1천85만182명, 인천에선 252만6천630명이 신청했다. 2020년 긴급재난지원금이나 2021년 국민지원금보다도 전국적인 신청 속도가 빠른 편이다. 그만큼 ‘더 힘들었고 더 간절했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소비는 또 다른 소비를 낳는 순환 구조를 만든다. 그 안에서 지역이 숨 쉰다. 쿠폰 하나가 만든 시장경제 회복의 기운이 올여름 더 많은 민생에게 이어지기 바란다.

[지지대] 이적 사가(Saga)

사가(Saga)는 북유럽 중세문학의 한 장르다. 구조는 서사시, 전설이나 무용담 등이며 북유럽 신화에서도 언급된다. 어떤 특정한 이야기, 사건, 상황 등의 긴 전말, 시리즈 같은 상황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어떤 이야기를 사가로 부르려면 일단 규모가 좀 커야 하고 이야기가 발단부터 완결까지 마무리가 잘돼야 한다는 특징이 있다. 요즘엔 스포츠 분야에서 많이 언급된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리오넬 메시 등 슈퍼스타들이 팀을 옮기기 전에 ‘○○○ 이적 사가’란 기사가 봇물을 이룬다. 그리고 최근 들어 그 이적 사가의 중심에 ‘대한민국 월드클래스 Sonny’ 손흥민 선수가 서 있다. 유로파컵을 들어올린 토트넘 홋스퍼의 세 번째 주장이자 아시아 최초의 주장인 손흥민 선수는 이제 토트넘과의 계약 기간이 1년밖에 남지 않았다. 에이징 커브 및 감독 교체에 따른 여러 이슈가 매일 쏟아지고 있고 그에 따른 이적 사가는 사우디아라비아, 튀르키예, 미국 MLS 등 전 세계를 넘나들고 있다. 그 내용 또한 매우 구체적이다. 사가의 조건을 충족한다. 일주일 후면 이재명 정부가 취임 두 달째를 맞이하게 된다. 그 사이 현역 의원들의 입각에 따른 청문회가 잇따라 열렸고 각 부처의 수장으로 자리를 옮기기 전 수많은 사가가 꼬리 물어 언론에 노출됐다. 그런데 그 사가의 중심에 선 현역 의원 대다수는 이적(장관 임명)에 성공했다. 국민들의 납득 여부는 크게 개의치 않는 모양새다. 프로스포츠와 마찬가지로 정당 정치에서 선택을 받는 중요한 기준은 바로 ‘인기’다. 아무리 실력이 출중해도 제멋대로거나 오만한 선수는 금방 대중의 눈밖에 나기 마련이다. 현 정부는 60%가 넘는 지지를 받으며 초기 연착륙에 성공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기란 것을 잊지 말자. 정당 및 정치인의 이적 사가는 좋든 싫든 국민들에게 언제나 열려 있기 때문이다.

[지지대] 관세마니아

미국 월드레슬링엔터테인먼트(WWE)의 아이콘 중 한 명인 헐크 호건(본명 테리 진 볼리아)이 지난 24일(현지 시간) 별세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그는 전 세계 팬들을 즐겁게 만들었고 그의 문화적 영향력은 거대했다”며 추모했다. 헐크 호건은 지난해 미 대선을 앞두고 공화당 전당대회 무대에 올라 “트럼프 마니아들이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게 하라”며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한 바 있다. 헐크 호건은 1980, 1990년대 미 프로레슬링을 엔터테인먼트 쇼로 각광받게 한 스타다. 마블 캐릭터인 헐크처럼 상의를 찢고 객석의 호응을 유도하며 손을 귀에 가져가는 퍼포먼스, 피니시 기술인 ‘레그드롭’ 등 한국 소년들을 TV 앞으로 몰려들게 했다. 특히 ‘헐크 마니아’라는 팬덤으로 레슬링 신드롬을 일으켰다. 링 위에서 그는 냉전시대 소련을 견제하며 세계경찰을 자임한 미국 그 자체와 같았다. 등장곡마저 ‘리얼 아메리칸’이다. 현재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한 ‘레그드롭’을 전 세계에 날리고 있다. 한국도 상호관세 유예 기한이 다가오면서 미국과의 협상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열세를 극복하고 결국 상대 선수를 바닥에 눕히는 헐크 호건을 대신해 트럼프 대통령이 링 위에 섰다. 협상 테이블에 오른 상대국을 향해 어떤 공격에도 데미지가 없는 ‘헐크업’을 하면서 기를 죽이고 있다. 최근 태국과 캄보디아가 국경에서 무력 충돌을 일으켰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중재에 나섰다. 그는 휴전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자국과의 무역협상을 중단하겠다며 압박했고 결국 양측이 휴전 협상을 위해 회담을 열기로 합의했다고 직접 소식을 전했다. ‘헐크 마니아’를 넘어 ‘관세 마니아’가 펼쳐지고 있다. 적극적인 군사 개입으로 패권을 일궜던 미국이 이제 머니게임으로 국제사회의 링 위에서 챔피언 벨트를 움켜쥐려 하고 있다. 여기서 한국은 2 대 2 태그매치의 파트너일지, 상대 선수일지 주목된다.

[지지대] “섬기린초를 아십니까”

잎은 삐쭉빼쭉 어긋난다. 늦잠을 잤다고 꾸지람을 듣는 개구쟁이 얼굴 같다. 양쪽 가장자리는 둔한 톱니 모양이다. 옆에서 보면 주걱에 가깝다. 노란색이 엷게 깔린 초록색이다. 키는 50㎝ 남짓하다. 30㎝ 정도는 살아 남았다가 다시 자라지만 그 이상은 자라지 못하고 옆으로 쓰러진다. 이 정도로는 어떤 식물인지 가늠할 수 없겠다. 조금만 더 들여다보자. 꽃은 7월 하순에 피고 노란색이다. 산방꽃차례에 20~30송이가 달린다. 꽃받침은 선형이고 꽃잎은 5개다. 수술은 10개이고 꽃밥은 노란색을 머금은 붉은색이다. 암술은 5개다. 암술머리는 연하고 가늘다. 열매는 5개 정도 열리고 끝은 가시처럼 뾰족하다. 그래도 모르지 않을까. 육지에선 거의 볼 수 없어서다. 섬기린초가 이 풀의 이름이다. 국토의 아픈 손가락인 독도가 서식지다. 돌나물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뿌리가 제법 굵고 튼튼하다. 줄기는 뿌리줄기에서 많이 나와 옆으로 비스듬히 뻗는다. 줄기의 중부 이하 부분이 목질화되면서 겨울에도 버틴다. 일제강점기에 아픈 역사가 있다. 학명이 ‘Sedum takesimense’인데 유래가 일본 식물학자 이름으로부터 나왔다. 나카이 다케노신(Nakai Takenoshin)이 한국의 식물을 찾아 정리하면서 자신의 이름과 함께 독도의 일본식 표기인 ‘Takeshima’를 사용해 붙였다. 최근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가 이를 알리는 다국어 영상을 공개했다. 술패랭이, 해국, 참나리 등 독도에 자생하는 식물 56종 가운데 섬기린초가 세계에서 독도에서만 서식하는 특산 식물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일본은 1세기 전 독도 자생식물의 잠재적 가치를 노리고 연구권을 선취하기 위해 학명을 일본식으로 등록했다며 이를 되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 국토에서 자라는 생물의 명칭이 일본식으로 표기된 게 어디 섬기린초뿐일까. 일제강점기의 잔재는 아직도 수두룩하다. 그걸 말끔하게 정리하는 게 후손들로부터 부여받은 숙제다.

[지지대] 뱃길 열리는 시화호

‘바다가 육지라면’이라는 대중가요가 있었다. 어렸을 적 라디오에서 자주 흘러나왔다. 노랫말이 애틋했다. 망망대해를 건너 멀리 떠난 이를 그리워하는 내용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게 하는 바다가 얼마나 미웠을까. 그래서일까. 당시 정부는 국토 면적에 비해 인구가 많다는 이유로 바다를 메우는 간척사업을 많이 벌였다. 시화호 방조제는 그런 사업의 일환으로 탄생했다. 1987년 첫 삽을 떴고 1994년 완공됐다. 바다로 떨어졌던 시흥 정왕동과 안산 대부동도 편도 2차선 도로로 연결됐다. 확 트인 바다를 보며 달릴 수 있다. 이곳에 여객선이 뜬다. 시화호에 여객선 운항이 처음 거론된 건 2014년이었다. 코스는 안산시내에서 배를 타고 대부도를 갈 수 있도록 검토됐다. 국내 최초로 전기유람선 도입도 추진됐다. 그 시점은 2018년이었다. 충전 횟수에 따른 운행거리 문제 등이 장애물이었다. 시화호 옛 뱃길에 8월부터 여객선이 운항(본보 7월22일자 10면)할 것으로 보인다. 안산시에 따르면 최근 관리위탁 사업자로 ㈜안산해운을 선정하고 2028년 5월까지 여객선 운영을 맡겼다. 여객선은 반달섬에서 시화호 방조제 안쪽 대부도 옛 방아머리 선착장까지 편도 13㎞를 운항한다. 연료는 디젤이며 승무원 3명을 포함해 32인승으로 운행된다. 시화호 배수갑문의 크기는 폭 6.6m, 길이 25m, 높이 4.5m 등이다. 시화호 물이 빠지는 시간 등을 고려해 3개 항로를 운항한다. 12월부터 다음 해 2월까지는 쉰다. 여객선 외 유람선도 운행한다. 시점은 내년 5월을 목표로 진행한다. 현재 도입을 위해 준비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여객선은 운영업체가 공유수면 및 물품 관리법 등 관련 법령에 따라 사용료를 안산시에 납부한다. 안산시는 “안산 도심권역과 대부도를 잇는 관광수요를 창출하고 반달섬 활성화 효과도 기대된다”고 말했다. 우여곡절 끝에 여객선과 유람선이 모두 닻을 올리는 셈이다. 앞으로는 배에서 육지 풍광을 즐길 수 있다. 그 모습이 눈에 삼삼하다.

[지지대] 위정자·위선자

백경현 구리시장이 국민에게 공식 사과했다. 최근 경기 북부 일대에 쏟아진 집중 호우로 많은 시민이 피해를 입은 가운데 관외 지역인 강원도의 한 식당에서 열린 야유회에 참석한 것에 대해서다. 백 시장은 야유회 당일 오전 11시까지 피해 상황을 점검했고 구리시민들로 구성된 단체 요구로 20분가량만 참석한 것으로 술도 마시지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언론에 공개된 백 시장이 식당에서 노래 부르는 영상은 국민에게 큰 실망감을 안겼다. 수해가 발생했을 때 정치인들이 국민을 실망시킨 사례는 앞서 몇 차례 있었다. 2020년 7월에는 민주당 국회의원 7명이 의원실에 모여 화기애애한 모습을 촬영한 사진 한 장이 이슈가 됐다. 사진 속 밝게 웃는 국회의원들 뒤로 호우경보 뉴스가 방송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사진에는 수해 발생 지역의 지역구 국회의원도 함께하고 있었다. 해당 사진을 본 국민들은 할 말을 잃었고 민주당은 당 차원에서 사과의 뜻을 밝혔다. 2022년 8월에는 대통령실의 국정홍보용 카드뉴스가 논란을 빚었다. 당시 기록적인 폭우로 반지하에 거주하고 있던 시민들이 큰 피해를 입었는데 현장을 직접 찾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반지하 창문 앞에서 쪼그려 앉은 채 피해 상황을 바라보는 모습이 카드뉴스에 담긴 것이다. 이 카드뉴스가 공개된 뒤 ‘수해 현장을 구경거리로 만들고 있다’는 비판이 쇄도하자 대통령실은 사과의 뜻을 밝히고 카드뉴스를 삭제했다. 우리는 정치 하는 사람을 ‘위정자(爲政者)’라 부른다. 겉으로는 착한 척, 도덕적인 척하지만 실제 다른 모습을 보이는 사람은 ‘위선자(僞善者)’라 일컫는다. 위정자들에게서 위선자의 모습을 언제까지 봐야 하나.

[지지대] 소중한 인연<因緣>

2001년 여름. 일병 계급장을 갓 달고 군 복무를 하던 중 한 부사관이 부대 인근으로 이사를 하게 됐다. 사적 용도로 쓰인 군용 트럭에는 한가득 이삿짐이 실려 있었고 이를 정리하기 위해 기자를 포함한 몇몇 부대원이 차출됐다. 오전과 오후 내내 허드렛일을 해가며 짐을 옮기는 동안 지금 생각해 보면 일처리가 미숙한 부대원들은 부사관의 부인으로부터 핀잔을 듣기도 했다. 국방의 의무와 전혀 무관한 상관의 사적 용도로 쓰인 그 상황이 군생활을 하며 당연히 인내해야 할 부당함 정도라고 느꼈지만 이후 노동(?)의 대가로 당일 저녁 그들이 주문해 준 짜장면과 탕수육은 남아 있던 앙금마저 사라지게 만들었다. 24년이 지난 현재. 시대가 변했다. 사회생활을 하며 인내의 범위 안에 포함돼 있었던 수많은 부조리가 갑질의 영역으로 자리를 옮겼다. 현재 대한민국 국민정서법을 건드리는 가장 예민한 키워드 갑질. 최근 이재명 정부 1기 내각 인사 임명 절차 과정에서 드러난 한 장관의 갑질 의혹에 여론이 들끓고 있다. 갑질. 사회적 지위와 권력의 우위에 있는 갑이 권리관계에서 약자인 을에게 하는 부당 행위를 통칭하는 개념. 사전적 정의처럼 상대방이 반드시 있어야 성립되는 갑질이 만연한 세상에서 타인에 대한 소중함을 돌아봐야 할 때다. 송정림 작가의 글 중 일부다.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에 기대어 살아갑니다. 내가 건네는 인사는 타인을 향한 것이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나 아닌 타인입니다. 나를 울게 하는 사람도 타인, 나를 웃게 하는 사람도 타인입니다.” 계급은 중세사회에만 있는 게 아니다. 표면적으로 명시된 계급은 없지만 현대사회에서도 거주지역, 직업, 교육 수준 등에서 계층 간 격차가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구조와 체제를 바꿀 힘이 없다면 주변인에 대한 자신의 인식만이라도 바꿔보자. 그가 바로 당신과 서로 기대고 더불어 살아가는 소중한 인연(因緣)이다.

[지지대] 일어탁수(一魚濁水)에 빠진 경기도의회

일어탁수(一魚濁水).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린다’는 뜻이다. 미꾸라지로 인해 물이 흐려졌다고 그 물에 사는 모두를 탓할 수 없다. ‘흐린 물에 살고 있으니 너도 맑지 못한 사람이다’라고 손가락질하는 건 선량한 물고기들에겐 억울한 일일 수 있다. 하지만 미꾸라지가 물을 흐리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묵인하거나 미꾸라지를 응원해 그가 흐린 물 사이로 먹이사냥에 나서며 이익을 챙겼다면 얘기가 다르다. 경기도의회가 일어탁수 상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경기도의회, 국민의힘 연관검색어에 성희롱이 오르는 불명예를 뒤집어쓰고도 개선책 없이 한 사람에게 끌려다니는 모양새 때문이다. 운영위원회는 도의회에서 가장 선임 상임위다. 의회사무처부터 경기도지사 비서실 및 보좌기관 등 핵심 부서를 소관한다. 그런 곳의 위원장이 직원을 상대로 ‘쓰○○’, ‘스○○’이란 변태적 성행위를 일컫는 단어를 썼다는 폭로가 나왔다. 경찰 수사서 혐의 일부를 인정했다고 한다. 1천420만, 전국 최대 광역의회의 최선임 상임위를 이끄는 이가 치기 어린 장난으로도 하지 않을 말을 입에 담고도 여전히 직을 유지 중이다. 사과는 없다. 미꾸라지의 양심은 차치하고라도 이 사태가 터진 뒤 사퇴하라고 외치던 의원들은 어디 갔나. 남성 간 대화이니 문제 없다며 사안을 축소하던 이들의 반성은 어디 있나. 양당이 운영위원장, 기획재정위원장을 맞바꿀 시기가 왔다. 그는 사퇴 후 본회의 표결을 거칠 의사가 없어 보인다. 반성 의지도 없어 보인다. 그러니 자신에 대한 윤리특위가 진행되는 동안 아무 상관 없다는 듯 직원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하지 않았을까. 155명의 도의원이 한 명의 도의원 때문에 같은 취급을 받는 현실이 언제쯤 끝이 날까. 단언컨대 행동이 없다면 흐린 물에서 빠져나올 길은 없다.

[지지대] 스페인 내전

전쟁과 내전은 다르다. 전쟁은 두 곳 이상의 나라 충돌이다. 한쪽이 패배를 인정할 때까지 계속된다. 한 나라 내부에서 일어나는 무력 충돌은 내전이다. 정치·경제 불안, 종교 갈등, 인종 갈등 등이 원인이다. 다른 나라들도 끼어든다. 특히 내전은 특정 집단이나 세력 간의 갈등과 반목의 종착역이다. 스페인 내전도 그랬다. 파시즘과 민주주의, 공산주의 등 다양한 이념이 부딪쳤다. 공화파와 국민파가 서로 총부리를 겨눴다. 이념의 대립, 특히 가톨릭 교회와 지주층의 기득권 유지 시도가 배경이었다. 모로코 주둔 군대가 먼저 반란을 일으켰다. 1937년 7월21일이었다. 프랑코가 이끄는 국민파가 수도 마드리드로 진격했다. 이와 동시에 나치 독일과 이탈리아가 국민파를, 소련과 국제여단(자원병)이 공화파를 지원하며 전쟁이 국제화됐다. 영국, 프랑스 등 유럽 열강은 중립을 표방했지만 무기 수출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개입했다. 1939년 4월 총성이 멈췄다. 국민파가 이겼고 프랑코가 군사독재 정권을 수립했다. 이 내전으로 많은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대표적이다. 그의 장편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가 탄생한 배경이다. 게릴라 작전을 수행하는 미국인 로버트 조던과 마리아의 사랑과 희생을 그렸다. 제목은 존 던 신부의 시에서 따왔다. “누군가의 죽음은 곧 나의 일부”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파블로 피카소도 그랬다. 그의 작품 ‘게르니카’는 나치 공군의 민간인 폭격을 담았다. 마을에 주둔한 공화국 군대의 퇴로를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이후 일어난 먼지 구름 탓에 정확한 목표 식별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무차별 2차 폭격을 시행했다. 민간인 1천여명이 숨졌다. 내전은 민간인들에 대한 억울한 희생과 묻지마 학살이 뒤따른다. 불가피한 손익계산서다. 막지 못하면 최소화해야 한다. 하지만 이론은 쉽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스페인 내전을 복기한 까닭이다.

[지지대] 기후 복합재난

또다시 물난리다. 찜통더위가 언제 가시나 했더니 폭우가 찾아왔다. 끝난 줄 알았던 장마인데 주말까지 큰비가 예보됐다. 지난 16일 밤과 17일 오전 사이 충남 서산에는 400㎜ 넘는 비가 내렸다. 1968년 기상 관측을 시작한 이래 7월 일 강수량으로는 역대 최고치라 한다. 비바람에 관측장비도 멈췄다. 경기도도 16일 오후 1시부터 재난안전대책본부 비상 2단계를 발령했다. 각 지자체에서도 만반의 대책을 마련해 부지런히 대응에 나서겠다 했다. 그럼에도 재난은 언제든 다양한 형태로 불쑥 찾아온다. 오산에선 폭우로 무너진 옹벽에 매몰됐던 차량의 40대 운전자가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전국의 학교 400곳에서 휴교령을 내렸고 산사태 등 사고 소식이 잇따른다. 한국의 근대적인 기상 관측은 1904년부터 시작됐다. 그 120년가량의 기간을 살펴본 전문가들은 △기온의 지속적인 상승 △이에 따른 강수량 증가 △강수일수 감소 및 비강수일수 증가로 변하고 있음을 분석했다. 특히 비가 한번 내리면 굉장히 강하게 쏟아붓는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강수에 관한 모든 기록은 최근 20년 동안 경신됐다. 이처럼 온난화된 기후에서는 폭염과 폭우, 돌발적인 가뭄 등이 상시화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앞으로 8월 중순까지 무더위가 지속되고 폭염과 폭염 사이에 강한 비가 예고됐다. 변동성이 심한 ‘복합재난’이란 용어도 나왔다. 폭염이 오면서 가뭄이 오고, 이 기후의 발달로 산불이 발생할 우려가 있고, 산불이 발생하다 비가 갑자기 많이 와 산사태까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주로 봐왔던 다층적인 재난이다. 여러 경고에도 안전망 구축을 위한 대비·예방 시스템, 예산 투입, 기후재난 취약계층에 대한 실질적인 논의는 아직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기후 복합재난은 더 이상 영화의 배경이나 세계 어느 나라의 이야기, 먼 미래의 일이 아닌데 말이다.

[지지대] 평양냉면과 함흥냉면

메밀국수에 여러 가지 고명을 얹는다. 그리고 이내 식힌 고기 국물과 동치미 국물 등 찬 국물을 붓는다. 아주 더울 때는 가끔 얼음도 섞는다. 평양냉면의 대표적인 조리법이다. 과거에는 꿩고기 육수도 썼다고 한다. 요즘 들어선 쇠고기 등 다른 고기로 육수를 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옛 방식대로 꿩고기 육수를 쓴 건 ‘꿩냉면’이라고 따로 구분해 부른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됐다. 2022년 11월30일이었다. 어떻게 유래됐을까. 고려 중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평양의 한 주막집에 얹혀살던 달세라는 사내가 있었다. 그는 몹시 더운 어느 여름 낮에 한 가지 메뉴를 생각했다. 그리고 실행에 옮겼다. 메밀 반죽을 국수틀에 눌러 뺀 것을 삶은 후 찬물에 헹궜다. 그런 뒤 동치미 국물에 말아 먹었다. 주위에서 입맛을 다시며 달려들었다. 그때부터 비롯됐다. 6·25전쟁과 분단 이후 북녘이 고향인 실향민들을 울리고 있다. 북한의 또 다른 향토음식이 있다. 함흥지방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른바 함흥냉면이 그렇다. 어떻게 만드는지 궁금하다. 녹말국수에 양념장을 얹어 비벼 먹거나 찬 국물을 붓는다. 메밀국수를 쓰는 평양냉면과는 초반부터 다르다. 감자녹말로 만든 국수의 면발이 가늘고 질긴 게 특징이다. 좀 더 들여다보자. 북한에선 감자녹말국수를 파, 마늘, 고춧가루, 참기름, 깨소금, 쇠고기 국물, 간장 등으로 만든 다진 양념으로 버무린다. 이후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등과 오이, 무김치, 실고추, 알고명(실닭알) 등을 고명(꾸미)으로 얹고 쇠고기 국물을 부어 낸다.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은 요즘처럼 앉아만 있어도 등에서 땀이 줄줄 흐르는 계절이면 즐겨 찾는 음식이다. 그런데 궁금한 게 또 있다. ‘한 촌사람 하루는 성내 와서’라는 노랫말로 시작하는 가곡 ‘냉면’에서 먹고 싶었던 냉면은 평양냉면일까, 아니면 함흥냉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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