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실록 사고(史庫)를 보면 아버지 문종에 이어 조선 제6대 임금으로 즉위한 단종은 숙부 세조(수양대군)의 야욕으로 왕위를 뺏기고 강원도 영월 청령포로 유배된다. 1698년 숙종은 단종의 왕위를 추복시킨다. 단종대왕릉은 강원 영월군 영흥면 영흥리 능동 을지산에 있다. 대왕릉 동쪽으로는 단종에게 충성했던 신하들의 충신단이 있다. 단종의 유배 당시는 심심산천 오지였다. 사관들은 임금의 언행 및 임금과 신하의 정책 대담을 빼놓지 않고 기록해야 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국정 상황도 자세하게 기록해 놓는다. 사관들이 근무하는 관청 이름은 예문 춘추관이라 불렀다. 영의정이 사관 업무를 총괄했다. 선원록과 실록을 사관들이 기록한 것을 각 지역 사고에 보관했다. 선원록은 조선 왕실의 계보다. 숙종이 태조 1392년부터 선조 1608년의 시기 왕실 종친을 모은 51권의 책을 인쇄해 경복궁 종박사에 보관하고 있다. 관청의 이름에 절 사(寺) 자를 사용한 것은 고려시대부터다. 조선 중기에 건립된 사고는 네 곳이다. 강화 정족산 사고, 강원 강릉 오대산 사고, 경북 봉화 태백산 사고, 전북 무주 적상산 사고다. 조선왕조실록은 4부만 인쇄해 네 곳의 사고에 보관해 왔다. 사고가 있는 부근에는 사찰이 있었다. 사찰은 사고를 관리하는 관청 역할도 했다. 승려들이 공부하면서 사고를 지키는 임무도 했다. 승려군이라 하여 조선 왕실의 사고를 지키며 공부했다. 사고는 깊은 산골에 위치해 재난에 안전하게 실록을 보전할 수 있었다. 오대산 사고 부근에 상원사가 있다. 사고는 강릉부 관할이면서 승군을 조직해 사고의 방어 임무를 맡았다. 승군에는 총섭과 승장이 지휘했다. 오대산 사고의 실록은 총독부에서 도쿄제국대학으로 보냈다. 경북 봉화 태백산 사고에는 지역 관찰사가 참봉 2인을 선발해 사고를 관리했다. 태백산 사고의 실록은 총독부 문고로 옮겨졌다. 반출되지는 않았는지 관계자들이 확인하면 좋겠다. 전북 무주 적상산 사고는 1614년 건립됐다. 왜란 때도 실록은 완전하게 보관됐다. 실록은 이왕직에서 보관했다. 강화 정족산 사고는 1660년 건립되고 1678년 실록을 보관했다. 1707년 강화유수 황흠이 재건했다. 김노진은 강화부지에 이러한 내용을 기록해 놓았다. 별관인 취향당에 선원보와 실록을 보관했다. 각 지역 사고 외에 해인사, 득일사, 칠장사에도 국사를 보관했다. 규장각에 보관했던 승정원일기는 조선 시대별 정치일기라고도 불렸다. 임금과 신하들이 주고받은 것을 사관들이 기록한 것이다. 조선시대 중요한 정치일기인 승정원일기는 인조 때부터 사관들이 기록했다. 비서원일기, 궁내부일기, 규장각일기, 전객사일기, 일성록, 병자록, 윤발록 등이 있다. 조선 왕실과 조정의 정사와 자료를 모아 펴낸 실록을 사고에 보관해 오면서 특별한 일이 아니면 임금도 마음대로 열람할 수 없었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경기일보
2026-03-26 19: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