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나무위키’ 법적 모순과 규제의 필요성

온라인 검색 상단에 노출되는 ‘나무위키’는 현재 대형 언론사를 압도하는 트래픽을 기록하며 여론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누구나 편집할 수 있다는 집단지성의 이면에는 검증되지 않은 허위 정보와 악의적 루머의 무분별한 유통이라는 치명적인 부작용이 존재한다. 엄격한 팩트체크를 거치는 기성 언론과 달리, 최소한의 사실 확인 절차나 편집 책임자조차 없는 구조는 심각한 법적 분쟁의 온상이 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책임의 파편화를 통한 법망 회피다. 허위 사실 등재로 명예훼손이나 영업 피해가 발생해도 현실적으로 책임을 묻기란 쉽지 않다. 다수가 문서를 수정하는 위키 특성상 악의적 편집자를 특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본인 인증의 부재와 가상 사설망(VPN)을 이용한 우회 접속은 수사 난이도를 극단적으로 높이며, 결국 피해자가 고소를 포기하게 되는 ‘책임 증발 현상’을 낳는다. 플랫폼에 책임을 묻는 것 역시 한계가 뚜렷하다. 정보통신망법 제44조의2에 따르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정보가 유통될 경우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는 피해자의 요청에 따라 해당 정보를 삭제하거나 임시조치할 의무가 있다. 나무위키 역시 이에 따라 권리 침해 정보에 대해 임시조치(문서 잠정 삭제)를 시행 중이다. 그러나 권리 구제를 요청한 피해자의 정보와 사유를 공개하는 '투명성 보고서'가 또 다른 가해를 낳고 있다.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해 논란을 증폭시키는 ‘스트라이샌드 효과’를 유발하며 2차 가해를 조장하기 때문이다. 삭제된 문서도 30일 후면 재작성이 가능해 피해자는 무한 삭제 요청의 굴레에 빠지게 된다. 나아가 대법원은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가 명예훼손적 게시물을 방치해 수익을 냈다면 방조에 의한 공동불법행위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판시한 바 있다(대법원 2008다53812 판결 등 참조). 파라과이에 본사를 둔 나무위키가 막대한 국내 광고 수익을 올리면서도 실효성 없는 자체 규정 뒤에 숨어 불법 정보의 재유통을 방관하는 것은 판례의 취지를 형해화하는 행위다. 이처럼 견고해 보이는 법적 사각지대 속에서도 훼손된 권리를 되찾을 돌파구는 존재한다. 필자가 속한 법무법인 대륜을 비롯해 일부 대형 로펌들이 한국과 미국의 법체계를 동시에 활용해 숨은 가해자를 추적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미국 법원의 디스커버리(증거개시) 제도를 활용해 해외 서버를 경유한 우회 접속자의 신원 정보를 파악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한·미 변호사의 긴밀한 공조를 통한다면 익명성 뒤에 숨은 유저에게 직접적인 민·형사상 책임을 묻는 실질적인 대응이 가능해진다. 물론 개별적인 대응이 가능해졌다고 해서 구조적인 문제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 입법 및 규제 당국은 해외 법인이라는 이유로 법망을 피하는 거대 플랫폼에 대해 국내대리인 지정 제도를 엄격하게 적용해 법적 관할권을 확립해야 한다. 나아가 정보통신망법상 플랫폼의 관리 의무를 고의로 해태할 경우 실효성 있는 제재를 가할 수 있는 제도적 정비가 시급하다. 플랫폼이 누리는 권한과 수익에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책임이 따라야 한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기고] 안전한 드론문화 정착 위한 우리의 과제

최근 드론은 촬영, 물류, 공공안전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며 생활 속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특히 봄철에는 각종 축제와 지역 행사, 야외 활동이 늘어나면서 드론 촬영 수요도 함께 증가하는 추세다. 따뜻한 날씨와 아름다운 풍경을 기록하려는 수요가 늘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만큼 안전사고와 법규 위반의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어 이용자의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우선 취미용 드론이라 하더라도 안전관리 대상에서 제외되지 않는다. 모든 조종자는 기본적인 준수사항을 지켜야 하며 이는 타 항공기와의 충돌 방지와 추락 사고 예방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특히 공항 주변 관제권(약 9.3㎞)이나 비행금지구역에서는 반드시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한다. 자격 요건 또한 드론의 무게에 따라 달라진다. 최대 이륙중량 250g 이하의 드론은 별도의 자격증이 필요 없지만 이를 초과할 경우 온라인 교육과 시험을 이수해야 한다. 2㎏을 초과하면 정식 자격증 취득이 필수다. 이는 단순한 규제가 아니라 조종자의 책임과 안전 의식을 높이기 위한 장치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비행 전 사전 점검도 필수적이다. 전용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비행 가능 지역, 기상 상황, 일출·일몰시간 등을 확인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불필요한 위반을 예방할 수 있다. 특히 봄철 행사장 주변은 인파가 밀집되고 임시 통제구역이 설정되는 경우가 많아 평소 같은 기준으로 판단했다가는 예상치 못한 법규 위반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이용자들이 간과하는 부분이 촬영 허가다. 비행 승인과 촬영 허가는 별개의 절차로 군사시설이나 주요 시설, 행사장 등에서는 반드시 별도의 촬영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를 위반할 경우 형사처벌로 이어질 수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조종자의 준수사항도 명확하다. 야간비행과 가시거리 밖 비행은 원칙적으로 제한되며 인구 밀집지역에서의 비행 역시 엄격히 관리된다. 특히 축제나 행사 현장은 대부분 많은 인파가 모이는 공간이기 때문에 안전거리 확보 없이 촬영을 시도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행위다. 또 음주 상태에서 드론을 조종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되며 위반 시 벌금이나 자격정지 등 강력한 처벌이 뒤따른다. 성숙한 드론문화는 법규를 지키는 기본적인 태도에서 시작된다. 이용자 스스로 경각심을 갖고 책임 있는 비행을 실천할 때 드론은 우리 사회에 더욱 안전하고 긍정적인 가치를 제공할 것이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기고] 10년의 약속과 비정한 세법, 장애인의 일터가 위태롭다

장애인에게 일자리는 단순한 생계 수단을 넘어 사회와 연결되는 유일한 통로이자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다. 정부는 그동안 중증장애인을 다수 고용하는 ‘장애인 표준사업장’이 민간 영역에서 막중한 사회적 책무를 다할 수 있도록 세액 감면이라는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 왔다. 하지만 2026년 2월 시행된 조세특례제한법 시행령 개정안을 마주한 현장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행정 효율’이라는 차가운 명목 아래 장애인 고용의 특수성을 외면한 독소 조항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최근 파주에서 장애인 표준사업장을 운영하는 한 대표를 만났다. 그는 새로 채용하기로 했던 중증장애인 근로자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됐다며 고개를 떨궜다. “행정사님, 세제 지원이 이렇게 깎이면 저 친구들의 인건비를 감당할 길이 없습니다. 함께 일하고 싶어도 보낼 수밖에 없는 제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고용의 기쁨이 절망으로 바뀐 현장의 비명이었다. 정부는 지원 기간을 10년으로 늘렸다고 홍보하지만 실상은 산정 방식의 개악(改惡)으로 인해 지원의 문턱이 몰라보게 높아졌다. 가장 뼈아픈 대목은 ‘1년 미만 근로자 배제’ 규정이다. 중증장애인은 건강 상태가 수시로 변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 비장애인보다 훨씬 많은 인내와 시간이 필요하다. 입사·퇴사가 잦을 수밖에 없는 이들의 삶을 외면한 채 ‘1년 이상 근속’을 조건으로 거는 것은 기업에 ‘건강하고 효율적인 장애인만 골라 뽑으라’는 비정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과 다름없다. 단시간 근로자에 대한 인정 비율 하향 역시 중증장애인의 자립 의지를 꺾는 조치다. 체력적 한계로 하루 몇 시간밖에 일할 수 없는 이들을 위해 어렵게 일자리를 쪼개어 만든 ‘맞춤형 터전’들이 이번 개정으로 세제 혜택이 반 토막 날 위기에 처했다. 결국 파주의 기업인처럼 채용을 포기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갈 곳 없는 장애인 근로자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세법은 차가운 숫자 뒤에 숨은 사람의 눈물을 닦아줘야 한다. 조세 행정의 통합도 중요하지만 표준사업장이 가지는 ‘보호된 일터’로서의 숭고한 가치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 장애인 고용은 특정 개인의 장기 근속 여부보다 우리 사회가 그들에게 얼마나 많은 기회의 문을 열어 두고 있느냐는 ‘공동체의 성의’로 평가받아야 마땅하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현장의 절규를 경청해야 한다. 표준사업장에 한해서는 획일적인 통합고용세액공제의 잣대를 거두고 장애인 근로자의 특성을 반영한 예외 규정을 복원해야 한다. 세액 감면은 기업에 주는 특혜가 아니라 장애인 고용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이들에 대한 국가의 최소한의 격려여야 한다. 행정 편의주의에 밀려 장애인의 소중한 일터가 사라지지 않도록 정부의 전향적인 제도 보완을 간절히 촉구한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기고] ‘이중 중대성 평가’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최근 기업 사이에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은 선택이 아닌 생존의 필수 조건이 되고 있다. 특히 기업의 비재무적 성과를 공개하는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발간이 활발해지면서 그 핵심인 이중 중대성(Double Materiality) 평가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과거에는 기업이 재무적 성과에 경영의 초점을 맞췄다면 이제는 외부 사회, 환경이 기업의 재무 상태에 미치는 영향까지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 국제적인 흐름이다. 왜 ‘이중’ 중대성인가. 이중 중대성은 크게 두 가지 관점을 결합한다. 첫째, 사회·환경적 중대성으로 기업의 경제적 성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둘째는 재무적 중대성으로 외부 사회, 환경 변화로 기업과 관련된 핵심 이해관계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분석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탄소 배출 규제가 강화되는 상황을 가정해 보자. 단순히 우리 기업이 탄소를 많이 배출해 환경적인 오염으로 인한 피해와 향후 탄소세 부담이 얼마나 늘어나고 기업의 수익성에 어떤 타격을 줄지를 함께 분석하는 것이 이중 중대성 평가의 핵심이다. 이중 중대성 평가가 중요한 이유 세 가지가 있다. 첫째, 투자자와 이해관계자의 신뢰를 확보할 수 있다. 오늘날 투자자들은 단순한 홍보성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속지 않는다. 이중 중대성 평가를 거친 보고서는 기업이 직면한 실질적인 위기와 기회를 데이터로 투명하게 공개하기 때문에 투자 의사 결정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둘째, 글로벌 공시 표준에 부합한다. 유럽연합(EU)의 지속가능성 공시 지침(CSRD)과 국제지속가능성표준위원회(ISSB) 등 글로벌 기준은 이미 이중 중대성을 기본 원칙으로 채택하고 있다. 수출 비중이 높은 제조 기업이 글로벌 공급망에서 배제되지 않으려면 반드시 갖춰야 할 글로벌 통행증인 셈이다. 셋째, 실질적인 리스크 관리 도구가 된다. 평가 과정에서 기업은 자신들이 놓치고 있던 잠재적 위험 요소를 발견한다. 이는 단순한 기록을 넘어 기업의 중장기 전략을 수정하고 자원을 어디에 우선적으로 배분해야 할지 알려주는 나침반 역할을 한다. 지속가능경영보고서는 기업의 ‘소개서’이자 ‘성적표’다. 하지만 알맹이 없는 그린워싱(Greenwashing) 지속가능경영보고서는 오히려 기업 가치를 깎아내릴 수 있다. 우리 기업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사회가 우리 기업에 주는 영향을 입체적으로 분석하는 이중 중대성 평가야말로 기업과 관련한 이해관계자들의 요구사항을 경영활동에 반영하는 ESG 시작의 첫걸음이며 중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중요성이 크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기고] 국내 농산업 브랜드 새로운 기준 ‘대왕님표 여주쌀’

‘대왕님표 여주’는 경기 여주시가 생산하는 우수 농산물의 품질과 가치를 대외적으로 알리기 위해 운영하는 공동브랜드로 대한민국 농산물 브랜드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는 대표 사례다. 여주시는 전국 최초의 쌀 산업특구이자 예부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쌀 생산지로 자리해 왔다. 특히 여주쌀은 조선시대 왕실에 진상되던 기록이 전해질 만큼 역사성과 상징성을 동시에 지닌 농산물이다. 여기에 남한강 유역의 비옥한 토양, 풍부한 수량, 큰 일교차 등 천혜의 자연조건이 더해지며 특유의 찰기와 단맛, 윤기를 갖춘 고품질 쌀로 평가받고 있다. 이 같은 경쟁력을 바탕으로 여주시는 공동브랜드 대왕님표 여주를 운영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표시 브랜드가 아니라 엄격한 품질 기준을 충족한 농산물에만 사용을 허가하는 인증 브랜드로 쌀을 비롯해 고구마, 가지 등 다양한 농산물에 적용되고 있다. 브랜드 자체가 곧 품질 보증의 역할을 수행하며 소비자 신뢰를 구축하는 핵심 수단으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여주시는 이러한 브랜드 전략을 체계화하기 위해 2024년 ‘여주시 농산업 공동브랜드 활성화센터’를 설립했다. 이를 통해 브랜드 관리, 유통, 마케팅을 전문적으로 추진하며 ‘여주쌀’을 중심으로 농산물의 부가가치를 높이고 소비 시장 확대에 나서고 있다. 특히 디지털 광고와 온라인 유통 채널을 적극 활용하고 ‘어진마루 농특산물 쇼핑몰’을 구축해 전국 단위 소비 접근성을 크게 높였다. 또 식품기업 및 외식업계와 협업해 여주 농산물을 활용한 다양한 메뉴와 제품을 개발하고 있으며 ‘쌀밥 미식의 도시 여주 프로젝트’를 통해 여주쌀 사용 음식점 인증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농산물 판매를 넘어 농업과 외식 산업이 연계되는 새로운 브랜드 모델로 평가된다. 스포츠 마케팅과 문화 콘텐츠를 활용한 홍보 전략도 주목할 만하다. 대한배구협회와 협력해 ‘국가대표가 먹는 쌀’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하고 다양한 지역 축제와 문화 콘텐츠를 통해 브랜드 인지도를 지속적으로 확장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대왕님표 여주쌀은 한국능률협회컨설팅이 주관하는 ‘한국 산업의 브랜드 파워(K-BPI)’ 농산물 부문에서 2025, 2026년 2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여주시의 지속적인 브랜드 전략 및 협업 확대는 농업인의 소득 증대와 소비자 만족을 동시에 실현하는 지속가능한 농업생태계 구축으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기고] 흔들리는 美 출생시민권, 자녀의 미래 위한 통합 대응 전략은?

미국 수정헌법 제14조, 이른바 ‘속지주의 시민권’의 근간을 흔드는 법적 논쟁이 다시 미 대법원의 시험대에 올랐다. 현재 대법원에서는 자녀의 시민권 인정 범위를 둘러싼 치열한 법리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부모의 체류 자격과 상관없이 미국 땅에서 태어나면 시민권을 부여하던 오랜 원칙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형국이다. 오는 6월에서 7월 사이로 예상되는 최종 판결 결과에 따라 한인 이민자 가정의 법적 지위와 가족 전체의 거주 계획은 한순간에 뒤바뀔 수 있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정헌법 제14조의 시민권 조항에 명시된 ‘관할권에 있다 (subject to the Jurisdiction thereof)’ 부분의 해석 범위다. 그동안은 미국 영토 내 출생자에게 일관되게 시민권을 부여해왔으나, 이제는 부모 중 최소 한명이 미국 시민이거나 영주권자인 경우로만 그 범위를 제한하려는 움직임이 뚜렷하다. 새로운 판결로 법리가 뒤집히기 전인 현재까지는 기존의 속지주의 원칙이 그대로 유효하다. 하지만 대법원이 관할권 범위를 축소할 경우 상황은 반전된다. 유학생, 주재원 등 일시 체류자 자녀의 시민권 취득이 올여름 이후 사실상 차단될 수 있다는 점이 이번 사태의 본질적인 위기다. 법리적 해석의 변화가 초래하는 가장 큰 위협은 아이의 시민권이 부모의 체류 신분에 종속된다는 점이다. 그간 자녀의 시민권은 단순히 국적의 문제를 넘어, 한 가정이 미국에 계속 머무를 수 있는 ‘법적 방패’ 역할을 해왔다. 만약 부모의 비자가 만료되었을 때 자녀에게 시민권이라는 독립적인 체류 권한이 없다면, 가족 전체의 교육과 거주 기반은 통째로 무너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제는 아이의 서류뿐만 아니라 부모의 비자 연장 가능성까지 하나의 가족 단위 리스크로 보고 통합 관리해야 하는 시점에 직면했다. 리스크 관리의 첫 시작은 ‘자료 아카이빙’에 있다. 아이 출생 당시의 병원 기록과 진료 내역은 물론, 부모가 미국 내에서 적법하게 체류하며 경제 활동을 이어왔음을 증명할 수 있는 자료를 체계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이는 향후 시민권 소급 적용이나 자격 논쟁이 벌어졌을 때 아이의 신분을 지켜줄 법적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또한 현재 보유한 비자가 '한시적 체류'에 머물러 있다면, 보다 안정적인 체류 지위를 확보할 수 있는 비자로의 전환 가능성을 전문가와 함께 점검하는 등 '관할권' 논란의 소지를 최소화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아울러 미국 시민권 확보가 불투명해질 경우를 대비해 한국의 출생신고 및 국적 유지 절차를 병행하되, 이 과정이 미국 이민법상 ‘거주 의사’와 충돌하지 않도록 정교하게 타이밍을 조율해야 한다. 미국 절차와 한국의 가족관계등록 신고를 분리해 접근할 경우, 국적과 거주자격 판단이 중첩되거나 충돌하면서 장기적으로 불리한 법적 위치에 놓일 가능성도 있다. 이처럼 복잡하게 얽힌 양국의 법리적 실타래는 어느 한 국가의 법률 지식만으로는 결코 풀 수 없다. 미국 이민법의 변화가 한국의 가족법과 병역법에 미치는 나비효과를 정교하게 예측하고 대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 사안의 실질적인 해법은 양국 법률을 통합적으로 조망하여 최적의 동선을 설계하는 '크로스보더(Cross-border)' 대응 능력에서 찾아야 한다. 국내의 전문성과 현지 로펌의 실무 네트워크가 실시간 원팀(One-team)으로 공조하며 단일 창구에서 양국의 절차를 동시에 조율하는 체계적인 시스템만이, 거대한 제도의 변화 앞에 선 한인 이민자들에게 유효한 안전망이 될 수 있다. 대법원 판결까지 남은 시간은 이제 두 달 남짓이다. 아이가 태어난 순간부터 법적 시계는 이미 돌아가기 시작했다. 판결을 기다리기보다 발생 가능한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점검하고 대응 방향을 세우는 것만이 자녀의 미래와 가족의 일상을 지키는 확실한 길이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기고] 평화, 경기도의 강력한 성장 엔진

1910년 뤼순 감옥, 사형 집행을 앞둔 안중근 의사는 붓을 들어 ‘동양평화론’을 써 내려갔다. 그는 단순히 침략자를 처단한 군인이 아니었다. 한국, 중국, 일본 등 3개국이 공동 은행을 설립하고 공용 화폐를 발행하며 평화군을 창설해 함께 번영하자는 파격적인 ‘경제·안보 공동체’를 제안한 시대를 앞선 정책 기획자이자 실행자였다. 그가 못다 그린 이 거대한 설계도가 116년이 지난 지금 경기도의 접경지에서 ‘평화경제특구’라는 이름으로 부활하고 있다. 안중근의 외침이 독립을 향한 절규였다면 오늘날 경기도의 추진은 그 독립을 넘어선 ‘번영의 완성’이다. 그동안 경기도 북부 접경지역은 ‘안보’라는 이름 아래 수많은 중첩 규제를 감내해 왔다. 주민들에게 평화는 늘 ‘긴장’과 동의어였고 경제는 ‘정체’된 상태였다. 하지만 이제 패러다임이 바뀐다. 특별한 희생에 대한 특별한 보상은 정부 차원의 정책 방향과도 결을 같이한다. 평화경제특구는 갈등의 현장을 ‘돈이 돌고, 돈이 되는 기회의 땅’으로 바꾸는 연금술이다. 경기도가 그리는 평화경제특구는 단순히 공장 몇 개를 짓는 단지가 아니다. 남북의 자본과 우수한 기술이 만나고 유라시아 대륙철도의 출발점이 될 물류 허브이자 안중근이 꿈꿨던 ‘동북아 경제 허브’의 실사판이다. 경기도가 이 프로젝트에 사활을 거는 이유는 명확하다. 평화가 유지될 때 얻는 경제적 이익, 즉 ‘피스 프리미엄(Peace Premium)’이 우리 도민의 삶을 질적으로 바꿀 유일한 열쇠이기 때문이다.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역에서 “코레아 우라(대한 만세)”를 외쳤을 때 그것은 주권 회복을 향한 마침표였다. 이제 경기도는 그 정신을 이어받아 경제적 주권을 확장하는 쉼표 없는 행정을 펼치고 있다. 평화경제특구가 조성되면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옛말이 된다. 경기도의 중소기업은 새로운 시장을 맞이하고 청년들은 서울을 넘어 평양과 유라시아를 가슴에 품는 일자리를 갖게 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안중근 의사가 바랐던 ‘진정한 동양평화’의 현대적 해석이자 경기도가 도민에게 약속하는 ‘더 많은 기회, 더 고른 기회’의 실현이다. 얼마 전 경기도 접경지역 시·군을 대상으로 평화경제특구 후보지 선정(세 곳)이 마무리됐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어느 지역, 정당 할 것 없이 너도나도 유치 경쟁과 치열한 다툼이 우려되지만 평화경제특구는 갈등을 돈이 되는 평화로 바꾸는 것이라 생각한다. 먼저 준비가 된 지자체와 미처 준비가 덜된 지자체들이 어떤 평화 마케팅과 특구유치 전략을 마련하는 것이 성공의 핵심 요소가 될 것이다. 안중근 의사는 ‘동양평화론’ 서문에서 “평화는 기다리는 자의 것이 아니라 쟁취하는 자의 것”임을 시사했다. 경기도는 기다리지 않는다. 중앙정부와 협력하고 지자체와 소통하며 평화경제특구라는 거대한 퍼즐을 하나씩 맞춰 가고 있다. 접경지역은 더 이상 변방이 아니다. 대한민국을 넘어 동북아 경제의 심장으로 도약할 준비를 마쳤다. 100년 전 영웅이 차가운 감옥에서 그렸던 뜨거운 평화의 꿈, 이제 경기도가 경제라는 온기를 불어넣어 완공할 차례다. 도민의 일상이 평화롭고 그 평화가 곧 풍요가 되는 ‘평화경제 시대’의 문을 경기도가 당당히 열어젖혀야 한다. 평화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사자성어가 있다. 우보천리(牛步千里)와 유무상통(有無相通)이다. 즉,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준비하면 성공에 다다를 것이고 그냥 북한에 퍼주기가 아닌 평화가 유지될 때 얻는 경제적 이익(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과 미래를 설계하는 전략이라는 차원에서 조금은 넉넉한 형님이 부족한 동생에게 도움을 줘 모두가 행복하게 잘살 수 있는 희망적인 그날이 오기를 마음속으로 기대해 본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기고] 데이터가 말해주는 경기농업의 정밀함

과거의 농업이 경험과 직관 그리고 하늘의 운에 의존한 ‘운칠기삼(運七技三)’의 영역이었다면 오늘날의 농업은 철저히 데이터에 기반한 ‘과학의 영역’으로 진화했다.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사람들이 매년 건강검진을 통해 건강을 확인하듯이 안전한 농산물 생산과 작물 생산성 향상을 위해 논밭 토양의 영양과 작물의 건강 상태에 대해 2000년부터 시·군농업기술센터에서 토양검정 등 과학영농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특히 수도권 농업을 책임지고 있는 경기도는 지난해 과학영농사업으로 토양검정과 잔류농약 분석 등 9만4천건의 과학영농 분석 데이터를 확보해 수도권 경기농업의 ‘정밀함’을 한 차원 높였다. 데이터가 증명하는 첫 번째 가치는 ‘지속가능한 토양 관리’에 있다. 전체 분석의 55%에 해당하는 5만2천건의 토양검정 데이터로 각 토양 상태에 맞는 비료 처방전을 제공했다. 내 땅의 영양 상태를 정확히 알고 그에 맞는 비료와 퇴비량을 조절함으로써 농업인 입장에서는 불필요한 경영비를 절감하고 소비자들에게는 비료 적량 사용으로 환경오염을 예방하는 공익적 혜택을 돌려줬다. 두 번째는 ‘안전’이라는 이름의 신뢰 자산 구축이다. 연간 2만5천건에 달하는 잔류농약 분석 실적은 경기농업의 ‘안전 보증서’와 같다. 농약허용기준강화제도(PLS) 시행 이후 소비자의 잔류농약 불안감 해소와 잔류농약 부적합 농산물이 시장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원천 차단하는 파수꾼 역할을 톡톡히 해낸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데이터들은 ‘디지털 경기농업’의 초석이 된다. 경기농업은 이제 단순 분석정보 제공을 넘어 각종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디지털 전환(DX)과 인공지능(AI) 전환을 준비하고 있다. 축적된 데이터를 활용해 농업인별 토양·비료관리 맞춤형 기술을 제공하고 강화된 잔류농약 분석 기술은 부적합 농산물의 유통을 입구에서부터 차단한다. 이러한 9만4천개의 데이터 조각은 앞으로 경기농업의 미래를 이끌 거대한 지도의 밑바탕이 되고 있는 셈이고 농업인 1천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만족도 조사 결과 2023년 대비 3.1%포인트 상승한 96.3%라는 높은 평가는 농업 현장에서 이 데이터가 얼마나 절실했는지를 방증한다. 수도권 농업 특성상 경기도 농촌진흥사업의 본질은 단순한 농업기술 보급을 넘어 농업인의 안정적인 영농 활동과 소비자의 안심을 책임지는 데 있다. 9만4천건의 데이터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소비자에게 약속하는 ‘정밀하고 안전한 경기농업’의 실천적 증거다. 봄비로 온갖 곡식을 기름지게 하는 곡우(穀雨)를 눈앞에 두고 있는 시점에 경기도는 이 정밀함의 깊이를 더해 경기농업의 백년대계를 튼튼히 세워 나갈 것이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기고] 북핵 위협 대응태세 구축해야

미중 패권 경쟁은 단순히 경제·군사적 우위를 넘어 민주주의(미국 중심)와 전체주의(중국 중심)라는 가치와 체제의 대결로 치닫고 있다. 중국은 미국 중심의 서방 진영에 맞서 북한, 러시아 등과 반(反)서방 공조를 강화하며 이른바 신냉전 구도를 심화시키고 있다. 미중 패권 경쟁의 본질은 무역, 기술(AI, 반도체), 군사적 긴장, 이데올로기 경쟁이 복합된 전방위적 경쟁인데 미국은 민주주의 국가들과의 연대를 통해 중국을 견제하려 하며 중국은 이를 일방주의라 비판하며 반서방 진영의 결집을 도모하고 있다. 북한 김정은은 2021년 노동당 제8차 당 대회 사업총화보고에서 “통일이라는 꿈은 더 아득히 멀어졌다”고 선언했다. 2023년 말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대한민국 것들과는 그 언제가도 통일이 성사될 수 없다”는 김정은의 인식은 이미 제8차 당 대회를 통해 어느 정도 예고됐다고 볼 수 있다. 그 대신 김정은은 “강력한 국방력만이 조국통일위업 달성의 수단”이라고 강조하며 민족 대단결과 연방제 등 기존의 북한식 통일론과는 거리를 유지했다. 향후 북한은 핵보유국 지위 획득이라는 성과를 발판으로 ‘영토완정(領土完整)’을 내세운 공세적 무력통일전략을 지속적으로 추구할 것으로 보인다. 선대로부터 이어져 온 통일노선 전환의 이유를 내부적으로 설명하는 데도 이러한 전략이 유리할 것이다. 2026년 1월 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도한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체포작전과 이후 이어진 대이란 강경책은 미국의 미주 대륙 내 패권 재확립, 마약·테러 조직 척결, 그리고 석유 자원 및 지정학적 주도권 확보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들 작전은 서로 연계돼 있으며 트럼프 행정부의 ‘힘을 통한 평화 독트린’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진행됐다. 두 작전의 공통적인 배경과 의도는 베네수엘라와 이란이 미국의 반대편에 선 주요 국가들로 마두로 체포는 남미의 좌파 정권 척결을, 그리고 이란 압박은 중동의 반미 정권 타격을 목적으로 하며 두 작전 모두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와 강력한 마약·테러·핵전쟁을 명분으로 전체주의 국가 연대를 와해시키고 미중 패권 경쟁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차단하려 한 패권확장전략이다. 한반도 유사시 대한민국의 짧은 작전적 종심을 고려할 때 대담한 전격전을 통한 단기 결전 전략은 북한이 언제라도 채택할 수 있는 대안이다. 북한은 핵을 앞세우고 비대칭 전력을 이용해 국지적인 분쟁을 일으킨 다음 상황의 추이를 보며 확전 가능성을 판단하는 변칙적이고 유연한 방식의 핵융합 전략을 추구할 수 있다. 개전 초기 단계에서 북한은 핵, 미사일, 방사포, 특수전 요원으로 초반 기선을 제압한 뒤 미군이 개입하기 전에 제1전선의 대규모 재래식 전력으로 전격전식으로 대한민국을 석권하려 할 수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해 대한민국은 한미 연합방위체제를 기반으로 한국형 3축 체계(킬체인, KAMD, KMPR)를 고도화하고 제4차 산업혁명 기술을 적용한 비핵 첨단 전략무기를 전력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사이버전자전(CEW)은 전자기 스펙트럼과 사이버 공간을 융합해 적의 지휘통제 및 무기체계를 교란, 파괴, 마비시키는 소프트킬(Soft-kill) 군사활동이다. 물리적 타격 없이 적의 지휘통제체계를 마비시키고 전자장비를 무력화해 전쟁 주도권을 확보하는 것이 핵심이다. 사이버전자전으로 전쟁의 주도권을 확보하면 고위력 탄도미사일(현무 시리즈), 전술지대지유도탄(KTSSM), 스텔스전투기 및 정밀타격 드론, 전자공격 무기체계(EW)와 한국형 3축체계 등 고도화된 비핵 첨단 전략무기체계를 활용해 지휘부와 군사 핵심 시설을 즉각적이고 압도적으로 타격해 정권 차원의 종말을 가져오겠다는 전략을 구사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북핵 위협에 대비해 첨단 재래식 전력의 우위를 바탕으로 북한의 핵 도발을 억제하고 실제 도발 시에는 미국의 확장 억제와 결합해 사이버전자전과 비핵 첨단 전력의 융합작전으로 이를 무력화하는 대응태세를 구축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기고] 보이스피싱 형량을 좌우하는 숨은 변수, ‘사건 병합’

보이스피싱 사건에 연루되어 찾아온 의뢰인들이 자주 묻는 질문이 있다. 하나의 범행에 가담했을 뿐인데 왜 전국 여러 경찰서에서 연락이 오냐는 것이다. 이는 피해자가 발생한 지역을 기준으로 수사 관할이 정해지는 보이스피싱 사건의 특성에서 비롯된다. 피의자 입장에서는 같은 조사를 여러 번 반복해야 하는 피로감도 크지만, 진짜 문제는 재판까지 각각 받게 될 경우 최종 형량이 예상보다 훨씬 무거워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실무상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전략이 바로 흩어진 사건을 하나로 모으는 ‘병합’이다. 여러 사건을 하나의 재판에서 한꺼번에 심판받는 것이 각각 따로 선고받는 경우보다 피고인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는 형법 제37조 이하에서 규정하는 경합범 처리 원칙에 따른 것으로, 실무적으로는 각각 선고를 받을 때마다 전체 형량이 낮아지는 결과로 이어진다. 경험상 체감하는 형량 감소 효과가 약 20%에 달하는 만큼, 병합은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라 피고인의 방어권을 위한 실질적인 대응책인 셈이다. 다만 수사기관이 사건을 알아서 합쳐주는 경우는 드물다. 특히 경찰 단계에서는 관할권 문제로 인해 병합을 기대하기 어렵기에, 실질적인 병합 시도는 사건이 검찰로 넘어가는 시점부터 본격화된다. 이때는 단순히 서면을 제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담당 검사실에 동일 피의자에 대한 여러 사건이 진행 중임을 상세히 설명한 뒤 주소지 관할청으로 사건을 모으는 과정이 필요하다. 수사기관과의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흩어진 사건의 흐름을 하나로 묶어내는 노력이 수반돼야 하는 지점이다. 만약 일부 사건이 이미 재판으로 넘어갔다면 더욱 정교한 대응이 필요하다. 핵심은 전체 사건의 ‘진행 속도’를 맞추는 것이다. 먼저 기소된 사건은 선고가 빨리 이뤄지지 않도록 기일을 조정하고, 아직 수사 중인 사건들은 최대한 빠르게 기소가 이뤄지도록 촉구해야 한다. 선고가 이뤄지면, 나중에 기소된 사건과의 병합이 사실상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결국 보이스피싱 사건은 이 복잡한 타이밍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양상이 달라진다. 물론 전국에 흩어진 사건을 하나로 묶는 일은 쉽지 않다. 경찰, 검찰, 법원의 각기 다른 진행 상황을 일일이 확인하고 조율하는 지난한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전략적 노력을 통해 사건을 병합해냈을 때의 법적 결과는 그렇지 못한 경우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결국 보이스피싱 사건의 실질적인 형량을 낮추는 결정적인 열쇠는 수사 초기부터 치밀하게 설계된 대응 전략에 있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기고] 불안감이 만든 사재기, 결국 이기적인 소비일 뿐

주말에 대형마트에 장보러 갔다가 ‘종량제봉투 소진, 1인당 5매 한정 판매’라는 공고문을 보고 요즘 사재기 현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최근 미국-이란전쟁의 장기화 우려로 인해 우리 사회 곳곳에서 소비자의 불안심리가 확산되고 있는 모양새다. 문제는 이러한 불안 심리 상태에 그치지 않고 일부 소비자들의 특정 품목을 과도하게 미리 구매하는 이른바 ‘매점매석’ 혹은 ‘사재기’ 행위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일부 생활용품과 식료품을 중심으로 평소보다 구매량이 크게 증가했다는 뉴스가 이어지고 있으며 특정 품목은 일시적인 품귀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종량제 봉투, 요소수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생수, 화장지, 물티슈 등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제품들까지 들썩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실제 공급 부족이 발생했기 때문이라기보다 ‘앞으로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불안과 ‘나만 못 사게 될지 모른다’는 심리가 결합해 촉발된 측면이 크다. 소비자의 사재기 행위는 몇 가지 구조적인 불안감에서 비롯된다. 우선 전쟁 같은 외부 충격이 유류 공급망 불안과 물가 상승에 대한 우려를 자극한다. 더욱 심각한 점은 온라인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한 잘못된 정보 확산이 오히려 공포를 빠르게 증폭시킨다는 것이다. 나아가 과거 코로나 시기에 발생했던 마스크 대란 등 위기 상황에서의 경험이 학습효과로 작용하면서 ‘미리 사두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인식을 갖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은 결코 바람직한 소비 행태라고 볼 수 없다. 무엇보다 사재기는 시장의 정상적인 수급 균형을 왜곡시킨다. 일부 소비자의 과도한 구매는 실제로는 충분한 공급이 가능한 상황에서도 일시적인 품절을 초래하고 이는 다시 더 큰 불안을 불러오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결국 가장 큰 피해는 정보에 늦거나 구매 여력이 부족한 고령자, 장애인, 이주민 등 정보 취약계층뿐만 아니라 선량한 다수의 소비자에게 돌아간다. 또 매점매석은 가격 상승을 더욱 부추기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수요가 급격히 증가하면 유통 과정에서 가격 인상 압력이 커지고 이는 결국 모든 소비자가 부담해야 할 비용으로 전가된다. 개인의 ‘합리적 선택’처럼 보이는 행동이 사회 전체로는 비합리적인 결과를 낳는 전형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소비는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지만 동시에 사회적 책임이 수반되는 행위이기도 하다. 특히 위기 상황일수록 소비자는 보다 신중하고 절제된 판단을 할 필요가 있다. 불확실성에 대한 과도한 반응보다 정확한 정보에 기반한 합리적 소비가 중요하다. 필요한 만큼만 구매하고 일시적인 불안에 휩쓸리지 않는 자세야말로 우리 공동체의 안정을 지키는 첫걸음이다. 정부와 기업 역시 이러한 상황을 방치해서는 안 될 것이다. 투명한 정보 제공과 공급 안정, 그리고 유통질서 교란 행위에 대한 엄중한 관리를 병행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소비자 스스로의 인식 전환이다. 소비자는 자유시장경제를 구성하는 주체로서 올바르게 선택하고 권리를 정당하게 행사해야 한다. 지금 중요한 것은 ‘먼저 사는 사람의 이익’이 아니라 ‘함께 상생하는 우리 사회의 평화와 안정’이다. 위기일수록 냉정함을 유지하는 성숙한 소비문화가 절실히 요구된다. 사재기는 현명한 소비가 아니라 이기적인 소비일 뿐이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기고] 기록되지 않은 삶은 망각된다

2025년 가을, 학생들과 21세기 인문가치포럼에 다녀왔다. 강연장을 가득 채운 질문을 들으며 한 가지를 확인했다. 인문의 가치에 진지하게 반응하는 학생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문제는 그 관심을 지속적으로 키울 수 있는 구조가 학교 안에 충분히 갖춰져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포럼을 계기로 커리큘럼을 정비하고 학생들이 수업 안에서 능동적 주체로 설 수 있는 과목을 새로 개설했다. 새로운 시도는 늘 예측 불허의 상황을 동반하지만 학생들이 교실 밖 세계와 접속할 수 있도록 조건을 만드는 것이 선생의 역할이라 생각했다. 그 연장선에서 2026년 봄, 재단법인 지관 이서련 선임연구원의 연락으로 ‘회고 네트워크’ 출범에 합류했다. 2020년부터 11곳의 지관서가를 만들고 인문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넣어온 철학전공자이고 우리 학생들을 21세기인문가치포럼에 초대해 발표자리를 만들어 주기도 한 분이다. 그의 노력으로 철학자·작가·개발자·지역 기자·농부·시민 등 각계 50인의 발기인이 모여 ‘전 국민 회고록 쓰기’ 캠페인의 첫발을 내딛었다. 서울대 인류학과 강정원 교수가 임시운영위원회를 이끌며 방향을 잡았고 출범식에서는 인공지능(AI) 시대 회고하는 인간을 위한 선언문이 발표됐다. 그 선언의 핵심은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기록되지 않은 삶은 망각되지만 회고하는 삶은 역사가 된다.” 이 선언이 단순한 구호로 들리지 않는 이유가 있다. 오늘날 AI는 방대한 양의 정보를 학습하며 인간의 언어와 서사를 모방한다. 그러나 그 학습의 재료가 되는 서사를 누가, 어떤 목소리로, 어떤 삶의 무게를 담아 써 내려가는가의 문제는 기술의 영역이 아니라 인간의 영역이다. 알고리즘에 의해 정의되는 삶이 아니라 스스로의 목소리로 기록한 삶만이 자아의 고유성을 증명한다. 회고는 그 증명의 행위다. 경기 북부지역은 이 문제를 가장 구체적으로 제기하는 장소다. 이 지역에는 오랫동안 기록되지 않은 삶들이 있다. 의정부와 동두천에는 수십년간 학교를 묵묵히 지켜온 미화원·경비원 선생님들이 계신다. 동두천에는 낯선 언어와 문화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텨온 난민 아이들, 연천을 지켜오셨으나 연세가 들어 기억이 서서히 흐려지는 어르신들. 이들의 이야기는 주요 언론에 실리지 않고 공식 기록에 남지 않으며 세대를 넘어 전달되지 않은 채 사라진다. 유명인의 연대기만이 역사가 아니다. 시장 상인의 하루, 학교를 돌보는 이름 없는 선생님의 삶, 난민 아이의 목소리가 모여야 비로소 온전한 시대의 초상이 완성된다. 이 믿음을 수업으로 실천하려 한다. 동두천 난민 아이들과 어르신의 이야기를 직접 담는 기록 수업, 우리 대학의 미화원·경비원 선생님들과 함께하는 자서전 쓰기 및 인생 매뉴얼 수업을 준비하고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소외된 이들의 기록이 사회적 연결의 시작이 될 수 있다는 가정을 교실에서 검증하는 작업이다. 회고는 개인의 치유에 머물지 않는다. 고립된 개인이 기록을 통해 타인과 연결될 때 지역 공동체는 세대 간 지혜를 전수하는 회복탄력성을 갖는다. 4월9일 낮 12시, 학생들과 함께 회고 방법론을 배우고 동두천 방식의 실천 계획을 구체화할 예정이다. 화려한 선언보다 한 사람의 기록이 먼저다. 그 첫 문장을 이 도시에서 쓰고자 한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특별기고] 이남식 재능대 총장 “인천 송도, 亞 바이오 중심지 도약 ‘골든타임’”

인천 송도는 지금 아시아의 바이오 클러스터로 가느냐, 제자리에 멈춰 서느냐 기로에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셀트리온 등 세계 최정상급 CDMO(위탁개발생산) 기업이 자리 잡은 송도는 명실상부한 글로벌 바이오 생산의 심장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신약 연구, 즉 바이오 혁신의 씨앗을 싹틔우는 인큐베이터와 성장을 가속하는 액셀러레이터 인프라는 심각하게 결핍돼 있다. 웅장한 생산 공장에 생명을 불어넣을 바이오 스타트업 생태계가 없는 것이다. 이것이 ‘미싱 링크(Missing Link)’, 송도 바이오 클러스터의 아킬레스건이다. 세계 3대 바이오 클러스터의 성공 DNA는 강력한 인큐베이터·액셀러레이터 시스템이다. 세계 1위 바이오 클러스터인 미국 보스턴 켄달스퀘어에는 랩센트럴(LabCentral)이라는 독특한 인큐베이터가 있다. 하버드와 매사추세츠공대(MIT)가 배출한 아이디어를 사업으로 전환하는 이 플랫폼은 2013년 설립 후 206억달러(약 28조원)의 투자금을 유치하고 7천178개의 일자리를 만들었다. 싱가포르 정부는 2000년대 초 주력 산업이던 물류·금융·관광이 흔들리자 여의도공원의 1.5배(34만㎡)에 달하는 ‘싱가포르 바이오폴리스’를 조성했다. 이곳에는 노바티스, 화이자 등 글로벌 제약사 38곳이 입주했다. 바이오 산업은 싱가포르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26%를 차지하며 2만여개의 일자리를 일궈냈다. 단 15년 만의 성과다. 미국 샌디에이고 바이오 클러스터는 UC샌디에이고(UCSD)를 중심으로 바이오 관련 연구기관과 기업 등이 밀집한 서부의 대표 바이오 생태계다. 대학이 만든 기업가적 생태계 UCSD는 캠퍼스 내에 ‘CONNECT’라는 산학 협력 프로그램과 벤처 인큐베이터를 만들어 대학 연구 결과의 특허화·기술 이전·창업 지원을 선순환화했다. 대학이 ‘기업가적 대학’으로 진화하며 지역경제 전체가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한 것이다. 세계적 바이오 클러스터가 송도에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바이오 인큐베이터와 액셀러레이터 소프트웨어가 필수라는 점이다. 지금 송도에 시급한 것은 갖춰진 하드웨어에 혁신적 후보물질을 공급할 소프트웨어, 즉 바이오—AI 혁신 인큐베이터다. 특히 주목할 것은 AI 기술의 결합이다. 송도는 삼성바이오로직스·셀트리온의 생산 역량과 AI 기반 혁신 인큐베이터를 결합 ‘아시아형 바이오—AI 클러스터’라는 독자적 모델을 창출할 수 있다. 오송 K—바이오 스퀘어, 판교 바이오 허브 등 국내 다른 지역들도 이미 인큐베이터 구축 경쟁에 본격 뛰어들었다. 충북도는 이미 랩센트럴 창립자를 초청해 협력을 모색 중 이다. 먼저 판을 짜는 곳이 아시아 바이오 혁신의 중심지가 될 것이다. 송도는 삼성바이오와 셀트리온이라는 세계 최강의 앵커 기업을 이미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바이오—AI 인큐베이터라는 마지막 퍼즐 조각만 끼워 넣으면 보스턴 켄달스퀘어가 수십년에 걸쳐 이룬 것을 송도는 훨씬 빠른 속도로 달성할 수 있다. 6월 지방선거에 나선 인천시장 후보들은 송도 바이오산업의 중요성을 이미 잘 이해하고 있는 만큼 민선 9기의 주요 정책으로 삼을 것으로 기대된다. 성공적인 송도 바이오 클러스터를 위해 후보들에게 제안한다. 범정부 차원의 송도 바이오—AI 혁신 인큐베이터(BAIC) 설립이 필수적이다. 인천 경제자유구역 ‘K—바이오 혁신 특구’ 지정도 필요하다. 글로벌 바이오 클러스터와 협약을 통해 해외 우수 바이오 스타트업을 유치해야 한다. 인천의 대학을 공식 운영 파트너로 지정해 지역의 바이오 인재 육성에도 나서야 한다. 이번 지방선거가 ‘아시아 바이오 클러스터 송도’의 골든타임이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기고] 국가 서적 보관소 ‘사고의 역사’

조선 실록 사고(史庫)를 보면 아버지 문종에 이어 조선 제6대 임금으로 즉위한 단종은 숙부 세조(수양대군)의 야욕으로 왕위를 뺏기고 강원도 영월 청령포로 유배된다. 1698년 숙종은 단종의 왕위를 추복시킨다. 단종대왕릉은 강원 영월군 영흥면 영흥리 능동 을지산에 있다. 대왕릉 동쪽으로는 단종에게 충성했던 신하들의 충신단이 있다. 단종의 유배 당시는 심심산천 오지였다. 사관들은 임금의 언행 및 임금과 신하의 정책 대담을 빼놓지 않고 기록해야 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국정 상황도 자세하게 기록해 놓는다. 사관들이 근무하는 관청 이름은 예문 춘추관이라 불렀다. 영의정이 사관 업무를 총괄했다. 선원록과 실록을 사관들이 기록한 것을 각 지역 사고에 보관했다. 선원록은 조선 왕실의 계보다. 숙종이 태조 1392년부터 선조 1608년의 시기 왕실 종친을 모은 51권의 책을 인쇄해 경복궁 종박사에 보관하고 있다. 관청의 이름에 절 사(寺) 자를 사용한 것은 고려시대부터다. 조선 중기에 건립된 사고는 네 곳이다. 강화 정족산 사고, 강원 강릉 오대산 사고, 경북 봉화 태백산 사고, 전북 무주 적상산 사고다. 조선왕조실록은 4부만 인쇄해 네 곳의 사고에 보관해 왔다. 사고가 있는 부근에는 사찰이 있었다. 사찰은 사고를 관리하는 관청 역할도 했다. 승려들이 공부하면서 사고를 지키는 임무도 했다. 승려군이라 하여 조선 왕실의 사고를 지키며 공부했다. 사고는 깊은 산골에 위치해 재난에 안전하게 실록을 보전할 수 있었다. 오대산 사고 부근에 상원사가 있다. 사고는 강릉부 관할이면서 승군을 조직해 사고의 방어 임무를 맡았다. 승군에는 총섭과 승장이 지휘했다. 오대산 사고의 실록은 총독부에서 도쿄제국대학으로 보냈다. 경북 봉화 태백산 사고에는 지역 관찰사가 참봉 2인을 선발해 사고를 관리했다. 태백산 사고의 실록은 총독부 문고로 옮겨졌다. 반출되지는 않았는지 관계자들이 확인하면 좋겠다. 전북 무주 적상산 사고는 1614년 건립됐다. 왜란 때도 실록은 완전하게 보관됐다. 실록은 이왕직에서 보관했다. 강화 정족산 사고는 1660년 건립되고 1678년 실록을 보관했다. 1707년 강화유수 황흠이 재건했다. 김노진은 강화부지에 이러한 내용을 기록해 놓았다. 별관인 취향당에 선원보와 실록을 보관했다. 각 지역 사고 외에 해인사, 득일사, 칠장사에도 국사를 보관했다. 규장각에 보관했던 승정원일기는 조선 시대별 정치일기라고도 불렸다. 임금과 신하들이 주고받은 것을 사관들이 기록한 것이다. 조선시대 중요한 정치일기인 승정원일기는 인조 때부터 사관들이 기록했다. 비서원일기, 궁내부일기, 규장각일기, 전객사일기, 일성록, 병자록, 윤발록 등이 있다. 조선 왕실과 조정의 정사와 자료를 모아 펴낸 실록을 사고에 보관해 오면서 특별한 일이 아니면 임금도 마음대로 열람할 수 없었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기고] 지방선거 신뢰·투명성 확보 위한 ‘공동책임 의식’

6월3일은 동네 민주주의의 출발점이며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치러지는 날이다. 이번 선거는 단순한 정치 행사가 아니라 주민의 삶과 가장 밀접한 정책을 결정하는 일꾼을 뽑는 과정인 만큼 그 결과뿐만 아니라 과정의 투명성과 공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선거 절차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곧 민주주의 견고함을 측정하는 척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선거를 둘러싼 각종 가짜뉴스와 부정선거 의혹은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며 민주적 정당성을 위협하고 있다.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키고 도민이 안심하고 투표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경기도선거관리위원회는 이번 전국동시지방선거 대비 투·개표 관리 인력에 대한 현장 중심의 실무교육을 강화하는 한편 사전투표소별 사전투표자수 공개, 도선관위를 통한 사전투표함 보관 상황 24시간 공개, 개표 시 수검표 진행 등 선거의 전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검증하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경기도선거관리위원회는 이번 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처음으로 공정선거참관단을 운영한다. 참관단은 외부 학회와 시민단체 추천자 등 각계각층의 인사들로 구성되며 사전투표, 투표 및 개표 등 선거 절차에 직접 참여해 선거의 모든 과정을 투명하게 지켜보며 도민을 대신해 선거의 전 과정을 꼼꼼히 검증한다. 특히 후보자 등록부터 사전투표함의 보관 및 이송 과정, 그리고 투·개표소 현장에서의 공정선거참관단의 활동은 선거 과정에 대한 유권자의 이해와 지방선거의 투명성 및 신뢰성을 한 단계 높이는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선거관리위원회의 각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선거 절차의 신뢰성과 투명성을 확보하는 일은 하루아침에 완성되기 어렵다. 선거관리위원회의 엄정 중립·공정한 관리, 선거 절차의 투명한 공개와 더불어 후보자와 정당의 법과 원칙 준수, 그리고 유권자의 적극적인 참여가 함께할 때 비로소 완성될 수 있다. 이번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투명하고 신뢰받는 선거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공동책임 의식이 요구된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신뢰성와 공정성은 민주주의의 근간뿐만 아니라 우리의 미래를 지키는 일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기고] 돌아오지 못한 55용사를 추모하며

중동 사태가 한 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요즘 비교적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는 우리에게도 전쟁의 위기는 과거가 아닌 현재진행형이다. 이전부터 꾸준히 북한의 무력 도발이 있었고 그 현장에는 언제나 나라를 위해 희생한 영웅들이 있었다. 그 영웅들의 희생과 공훈을 기리고 국토수호 결의를 다지기 위해 지정된 ‘서해수호의 날’을 맞이해 그 의미를 되새겨 보고자 한다. 27일은 제11회를 맞는 서해수호의 날(매년 3월 넷째 금요일)이다. 제2연평해전,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 등 북한의 도발에 맞서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호국영웅을 추모하고 국민 안보의식을 결집하기 위해 2016년부터 법정기념일로 지정됐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2년 6월29일 온 나라가 월드컵의 열기에 휩싸여 있을 당시 북한 경비정 2척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했다. 북한 경비정은 우리 해군의 퇴거 경고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남하했으며 선제 기습포격을 가해 순식간에 교전이 벌어졌다. 우리 해군 윤영하 소령을 비롯해 6명이 전사하고 19명이 부상을 당하는 피해를 남겼다. 이른바 ‘제2연평해전’이다. 그로부터 8년 후 2010년 3월26일 차디찬 서해 바다에서는 북한에 의해 1천200t급 초계함인 천안함이 피격, 침몰해 우리 군 40명이 전사하고 6명이 실종됐으며 수색 과정에서 1명이 사망했다. 그리고 같은 해 11월23일에는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로 우리 군 2명이 사망하고 16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정전 협정 이후 최초로 민간인 사망자까지 발생했다. 정부는 서해수호의 날을 계기로 국가를 위해 희생·공헌한 장병을 추모하기 위해 서해수호 상기 주간(3월16~27일)을 정하고 국가보훈부 주관으로 기념행사를 거행할 예정이며 같은 날 전국 각지에서 지방자치단체와 민간단체 주도로 각종 추모행사가 국민의 참여 속에 진행된다. 이와 뜻을 같이해 국립이천호국원에서도 서해수호 희생 장병을 추모하고 한반도의 평화 및 국민 안보의식을 다지고자 호국원장을 비롯한 전 직원 및 여주제일중 학생들과 함께 현충탑 참배, 서해수호 55용사 롤콜 행사, 서해수호 사진전 등의 행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이번 기념행사는 ‘튼튼한 안보가 국가발전의 기본 토대’임을 상기시킬 뿐만 아니라 ‘끝까지 책임지는 일류보훈’을 국정의 주춧돌로 삼은 정부의 의지를 확산시켜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데 의의가 있다. 만물이 소생하는 따뜻한 봄날 서해수호의 날이 있는 이번 주는 호국영령들이 잠들어 있는 국립이천호국원을 찾아 나라를 위해 헌신한 국가유공자 묘역에 꽃 한 송이를 바쳐보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서해수호를 위해 희생·공헌한 장병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소임일 것이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기고] 명령 딜레마와 국방부의 신의

군 조직의 근간은 상명하복(上命下服)의 질서에 있다. 이는 군대의 효율성을 위한 장치를 넘어 국가 안보를 지탱하는 최후의 실존적 원리다. 최근 12·3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현장 지휘관들에게 내려진 ‘파면’ 조치는 우리에게 근본적인 의문을 던진다. 지휘계통의 상층부에서 발령된 엄중한 명령을 수행한 군인에게 사후적 정치 상황을 근거로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과연 조직의 정의에 부합하는가 하는 점이다. 현장의 지휘관은 법률의 정당성을 매순간 가려내는 헌법학자가 아니다. 특히 국가 통수 체계의 정점에서 내려온 명령을 마주할 때 군인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지극히 제한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방부가 내란 음모라는 정치적 프레임에 편승해 현장 집행자들에게 연금 삭감과 파면이라는 극단적인 징계를 내린 것은 군 조직 스스로가 자신의 작동 원리를 부정하는 위험한 선례가 될 수 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지점은 국방부가 조직구성원을 보호해야 할 최소한의 신의(信義)를 보여주고 있느냐는 것이다. 김현태 전 단장이 부하들을 “안타까운 피해자”라 칭하며 흐느꼈던 장면은 현장의 지휘관이 짊어진 고독한 책임감과 동시에 자신들을 지켜주지 않는 상급기관에 대한 무언의 항변이다. 국방부가 사태의 본질을 규명하기보다 정치적 파고에 휩쓸려 소속 군인을 방패 삼아 위기를 모면하려 한다면 이는 조직의 심장부인 충성심과 사기를 스스로 잠식하는 행위다. 조직이 구성원을 지키는 울타리가 돼주지 못할 때 그 조직은 존재 이유를 상실한다. 국방부가 정치적 논리에 밀려 제복 입은 이들의 헌신을 ‘내란 가담’으로 손쉽게 규정하고 그들을 사지로 내모는 것은 비겁한 면피에 불과하다. 책임의 추궁은 엄격해야 하나 그것은 명령의 최종 설계자와 긴박한 현장의 집행자 사이에서 정의롭게 분별돼야 한다. 집행자에게 모든 사법적·행정적 단죄를 몰아넣는 방식은 책임 있는 기관의 자세가 아니다. 국방부는 단순한 법 집행 기구가 아니라 국가를 위해 헌신한 이들의 명예를 수호하는 최후의 보루여야 한다. 군인이 국가의 명령을 따르는 이유는 내가 조직의 지시를 이행했을 때 조직 또한 나의 삶을 지켜줄 것이라는 굳건한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국방부가 이 믿음의 고리를 스스로 끊어낸다면 앞으로 그 어떤 군인이 국가의 절박한 부름에 주저 없이 응답하겠는가. 제복의 무게를 감당하는 것은 군인 개인이지만 그 제복의 명예를 지켜내는 것은 국방부의 몫이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기고] 반도체는 밤낮이 없는데, 법만 시계를 본다

세계반도체무역통계기구(WSTS)는 2026년 글로벌 반도체 시장이 전년보다 25% 이상 성장해 그 규모가 약 9천75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 가운데 메모리반도체는 전체 시장 평균을 웃도는 30%대 성장률을 기록하며 호황을 주도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서버·데이터센터용 메모리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일부 분석에서는 2026년 메모리 시장 규모가 4천400억달러를 넘어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인공지능(AI) 학습·추론용 고성능 서버 확산과 함께 HBM, DDR5, 고용량 낸드플래시 중심의 수요 확대가 성장을 견인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투자 확대와 기술 경쟁도 한층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이 호황 국면에 접어드는 동안 한국 반도체의 위상은 오히려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일본 미쓰이글로벌전략연구소의 ‘첨단 반도체 주도권 경쟁’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한국의 첨단 반도체 생산 점유율은 12%로 미국과 공동 2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미국의 점유율이 17%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는 2027년에 한국은 1%포인트 늘어난 13%에 그쳐 순위가 3위로 내려갈 것으로 전망됐다. 점유율 0%에 그치고 있는 일본마저 4%로 점유율을 끌어올리며 순위권에 새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주요 반도체 제조국 중 한국만 상승폭이 가장 작아 상대적 위상이 약화되는 구조다. 이 같은 위기 상황에서도 국회는 지난해 12월 ‘주52시간 근무제 예외 적용’을 제외한 반도체 특별법을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통과시켰다. 반도체 산업은 본질적으로 ‘시간과의 전쟁’이다. 대만의 세계 1위 파운드리 업체인 TSMC는 2014년부터 ‘나이트호크 프로젝트’라는 3교대 체제로 24시간 운영되는 연구 환경을 구축해 파운드리 시장의 약 70%를 장악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중국의 일부 테크기업은 ‘996’(오전 9시~오후 9시, 주 6일)과 이를 넘어 ‘007’(24시간, 주 7일) 같은 극단적 근무 관행까지 불사하며 추격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한국만 근로시간 규제를 그대로 둬 탄력 근로를 허용하지 않는다면 경쟁국과의 속도 격차는 더욱 벌어질 수밖에 없다. 시간과 속도가 곧 기술력인 반도체 산업에서 법과 제도에 묶인 현실은 한국 반도체 경쟁력의 발목을 잡는 중대한 장애물이다. 지금이라도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절박함을 현업 엔지니어로서 매일 체감하고 있다. 반도체 특별법이 산업 현장의 긴박함을 외면한 채 형식적 지원에 그친다면 이는 지원이 아니라 현장을 묶어 두는 족쇄에 가깝다. 주52시간제의 전면적 완화가 아니라 하더라도 최소한 연구개발(R&D) 인력에 대해서는 산업 특성과 프로젝트 단위의 집중 근무를 허용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글로벌 반도체 경쟁은 이미 국가 총력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시간을 다투는 기술 전쟁에서 한국만 원칙 논쟁에 머물러 있을 여유는 없다. 법과 제도를 현실에 맞게 조정하지 못한다면 한국 반도체의 미래 역시 시간 앞에서 속절없이 밀려날 수밖에 없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기고] 정치의 계절, 다시 묻는 ‘정직과 의리’

정치의 계절이 다가올수록 말은 많아지고 진정성은 흐릿해지기 쉽다. 화려한 수사와 계산된 메시지는 넘쳐나지만 그 말의 무게를 끝까지 감당하려는 태도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역사 속에서 정치와 인간의 본질을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1801년 정조 사후 권력 교체기에 벌어진 신유박해는 그런 질문을 던지는 대표적인 사건이다. 표면적으로는 종교 문제였지만 실제로는 정치적 갈등이 낳은 비극에 가까웠다. 노론 벽파가 남인 시파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천주교를 ‘사학(邪學)’으로 규정하며 대대적인 숙청을 벌였고 수백명이 처형되거나 유배되는 참혹한 일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실학자 가문 역시 화를 피하지 못했다. 셋째 형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고 둘째 형과 막내는 유배길에 올라야 했다. 권력의 광풍 속에서 가족과 사상이 함께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특히 널리 전해지는 한 문장이 있다. 국문장에서 남겼다고 전해지는 말이다. “어찌 감히 위로 임금을 속일 수 있으며 아래로 형을 증거로 삼을 수 있겠습니까.” 권력의 압박 속에서 거짓 자백을 하거나 가족을 밀고하는 길을 택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그것은 정치적 선언이라기보다 한 인간의 중심을 보여주는 말이었다. 공포가 지배하던 시대에도 양심과 천륜을 지키겠다는 선택이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역사는 종종 형태만 바꾼 채 반복된다. 당시에도 밀고와 권력의 횡포가 있었고 지금도 갈등과 분열은 정치의 일상이 된 듯하다. 말은 점점 거칠어지고 신뢰는 얇아진다. 서로를 설득하기보다 상대를 무너뜨리는 데 에너지를 쓰는 정치 속에서 시민의 피로감도 커지고 있다. 그렇기에 지금 정치에 필요한 것은 거창한 구호보다 기본적인 원칙일지 모른다. 공직의 본령은 권한이 아니라 책임에 있고 정치의 출발점은 계산이 아니라 신뢰에 있다. 마음을 잃지 않는 정치, 그것이 가장 어렵지만 가장 기본적인 덕목이다. 18년의 유배 속에서도 수많은 저술을 남기며 후대에 깊은 영향을 끼친 한 실학자의 삶은 또 다른 메시지를 전한다. 역경은 좌절의 다른 이름이 아니라 오히려 원칙을 더 또렷하게 만드는 시간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공동체를 향한 고민과 스스로에 대한 엄격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정치의 시간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 누가 더 큰 목소리를 내는가보다 누가 더 오래 원칙을 지킬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 어떤 상황에서도 정직과 책임을 붙드는 태도, 그것이야말로 오늘 우리 정치가 회복해야 할 최소한의 의리일지 모른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기고] 이혼, 가족구성원 충분한 논의 있어야

‘한 집 걸러 이혼이다’라는 말이 낯설지 않다. 2024년 기준 혼인 건수 22만2천건, 이혼 건수 9만1천건으로 단순 비교하면 이혼율은 약 41% 수준이다. 수치만 보면 이혼은 이제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비교적 흔하게 접하는 가족 변화의 한 형태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 이혼과 재혼을 준비 또는 결정한 사람들을 상담 현장에서 만나 보면 상황은 결코 가볍지 않다. 이혼 후 결혼생활을 돌아보는 시간에서 많은 성인이 눈물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관계가 끝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자기 삶의 의미와 관계의 실패, 책임과 상처를 다시 마주하는 심리적 과정이다. 가족 체계의 변화를 스스로 납득하고 수용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고, 이 과정은 이혼 당사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이혼·재혼 가정에서 자라는 자녀들이 부모의 이혼을 실감하고, 새로운 가정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순간들을 헤아려볼 필요가 있다. 생일이나 졸업식, 명절은 이혼 가정의 현실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한쪽 부모와 함께하는 시간에 자연스럽게 다른 쪽 부모를 떠올리게 되고, 그 순간 자녀는 미묘한 긴장감과 불편감을 느끼게 된다. 반가움과 미안함, 안도감과 서운함처럼 서로 다른 감정이 동시에 밀려오는 것이다. 이러한 감정은 단순히 일시적인 반응에 그치지 않는다. 반복적으로 쌓이는 경험 속에서 자녀가 사람을 대하는 방식과 정서적 유대를 형성하는 방식에 조용히, 그러나 깊이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혼 가정의 자녀를 상담하다 보면, 상처를 피하려는 마음에 스스로를 필요 이상으로 독립적인 사람처럼 내세우거나 친밀한 관계 자체를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아이들을 만나게 된다. 이혼가정에 대해 숨기고 싶은 마음이 섞여 애초에 친구들과 가까워지지 않는 방식으로 자신을 지키는 것이다. 겉으로는 별 탈 없이 일상을 보내는 것처럼 보여도, 속으로는 오랫동안 관계의 균형을 고민하고 눈치를 살피느라 정작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는 불편함을 안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그런 아이들에게 부모는 “요즘 괜찮니”라고 묻기보다 “엄마 아빠는 헤어졌어도 너를 사랑하는 마음은 변함없어”라는 말을 더 자주 건넨다. 부모의 의도는 아이의 상실감을 덜어주려는 것이겠지만, 아이의 입장에서는 사랑이 변하지 않았다는 말과 달리 실제로는 함께 살지 않는 현실을 매일 경험한다. 또한 아이들은 누구의 편이 되고 싶지 않아도 어느 쪽에서든 편을 가르는 시선을 의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고 그때는 정체성과 소속감 사이에서 또 다른 심리적 불편감을 겪게 된다. 부부의 이별, 이혼은 가족 전체의 삶의 구조를 바꾸는 사건이다. 성인 남녀 두 사람의 선택이 아닌 자녀를 포함해 가족 구성원 모두의 동의로 결정되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성인은 여러 질문과 마주해 보기 바란다. 나는 어떤 삶을 원했는가. 나는 관계를 지키기 위해 충분히 노력했는가. 지금의 선택이 나와 가족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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