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미래] 우크라이나에 공격용 무기 지원, 어떻게 할 것인가

북한이 러시아에 병력 1만명을 파견하면서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공격용 무기 제공을 미국 및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협의하고 있다. ‘적의 적은 나의 친구’라는 논리에 따르면 우리의 주적인 북한이 러시아를 지원하면 우리는 러시아의 주적인 우크라이나를 도와주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이 지원이 우리나라 국가안보를 강화하는 데 기여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을 언제 어떻게 줄 것인가에 대한 다각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모든 국가안보 정책의 가장 중요한 평가 기준은 ‘국가이익’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이 우리나라의 이익에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아직 없다. 현재 우리가 당면한 가장 큰 위협은 북한의 핵무기 공격이다. 그런데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지원이 대북 억지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에 개입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안보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연루 위험도 고려해야 한다. 어느 동맹국이 개입한 전쟁에 나머지 동맹국들이 자국의 의지와 관계없이 휘말리게 되는 상황에서 이 위험은 더욱 커진다. 미국은 러시아와 직접적 군사 충돌을 막기 위해 개전 후 2년 동안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직접 타격할 수 있는 공격용 무기를 제공하지 않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노골적으로 주장했듯이 미국은 이 전쟁이 러시아와 전면전으로 비화하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다. 더 나아가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 요구에 계속 미온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가입하면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에서 러시아-NATO 전쟁으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연루 위험은 대리전에 대한 우려와 연결돼 있다. 대리전은 분쟁의 당사국이 직접 충돌하지 않고 동맹국이나 관련국이 적대국과 싸우도록 만드는 전쟁을 의미한다. 현재 우크라이나는 NATO를 대신해 러시아와 싸우고 있다. 만약 우리가 보낸 공격용 무기가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북한군을 살상하는 데 사용되면 한반도의 긴장은 급속하게 고조될 것이다. 최악의 경우 우리나라가 NATO와 우크라이나를 대신해 북한과 무력으로 충돌하게 되는 상황이 조성될 수도 있다. 정부는 NATO 회원국도 아니며 군사동맹국도 아닌 우크라이나를 위해 병력과 무기를 희생해야 할 명분과 근거를 충분히 제공하고 있지 않다. 공격용 무기 지원의 실질적 효과에도 주목해야 한다.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지난 6월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 조약 체결 이후 러시아와 북한의 밀착을 견제하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에 지원은 러-북 관계의 약화가 아니라 강화로 귀결될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 파병의 대가로 러시아는 북한에 식량과 에너지는 물론이고 핵 및 미사일과 관련된 기술을 제공하고 있다. 북한이 러시아로부터 정찰 및 항법위성, 대륙간탄도탄(ICBM) 재진입, 핵잠수함 건조,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기술을 전수받는다면 그동안 국제사회가 부과했던 대북 제재는 사실상 무력화된다. 중차대한 국가안보 문제가 정쟁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정부는 이 문제들을 국회와 우선적으로 협의해야 한다. 초당적 합의에 기반을 두지 않은 정책은 정치적 양극화를 심화시킬 것이다. 여야가 잘 논의해 안보 불안을 조속히 해결해 주길 기대한다.

[함께하는 미래] 행운•불운을 비추는 거울 ‘고양이’

고양이 하면 뭐가 떠오르는가. 작지만 다부진 체격, 게으름, 날렵함, 반짝이다가도 게슴츠레한 눈, 에드거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 일본의 마네키네코, 행운과 불행. 이처럼 다양하고 대조적인 개념이 동시에 떠오르는 대상이 있나 싶다. 개뿐만 아니라 고양이는 자연스럽게 사람과 함께 지낸 반려동물이다. 그러나 그 역사는 사뭇 개와 다르다. 반려견이 인간 생활사에 풍덩 담긴 ‘묵은지’라면 고양이는 잘 익은 ‘김치와 겉절이’다. 열 반려견 안 부러운 애교쟁이 ‘실내냥이’에서부터 독립성을 유지하는 ‘길냥이’까지 사는 모양이 다양하다. 고양이는 1만년 전 농경이 태동한 마을에 쥐를 잡기 위해 먼저 왔고 스스로 길들여졌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그들은 적절한 거리 두기로 야생성을 간직하고 있다. 나를 잃지 않고 남에게 물든 이 현명함이 고양이가 지닌 정체성이 아닐까 한다. 나 자신을 지키는 힘은 세상을 사는 원동력이다. 또 남을 돕는 유용한 그릇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 그릇은 거울과도 같아 나와 남을 동시에 비춘다. 고양이의 조상, ‘아프리카 들고양이(Felis lybica)’는 인류와 함께하면서 ‘집고양이(Felis catus)’가 됐다. 그들은 이집트에서 쥐로부터 식량 창고를 지켜낸 공을 높이 인정받아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고양이는 파라오를 보호하고 서민의 식량을 지키는 신으로 칭송됐고 행운, 정의, 다산의 상징이 돼 수많은 미라, 조각상, 벽화로 재탄생했다. 이집트인들은 고양이가 가져온 이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감사해했다. 세월이 흘러 유럽까지 퍼진 고양이들은 농업 사회에 큰 도움을 주며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이어갔다. 그러나 13세기부터 균열이 생겼다. 중세 유럽에서는 과학을 반기독교적 사상으로 믿고 지식을 탐구하는 사람들을 마녀로 몰았다. 무지가 낳은 미신은 고양이를 악마로 규정했고 오랜 기간 마녀사냥과 동시에 고양이 숙청이 자행됐다. 우연의 일치였을까. 쥐벼룩에 기생하는 세균으로부터 발생한 흑사병은 14세기부터 발생해 10년 동안 최소 3천만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18세기까지 창궐했다. 원인은 여전히 논란 중이나 당대에 만연했던 사회 풍조에 대해 한 번쯤 인과관계를 생각해 볼 일이다. 중세 유럽인들은 고양이의 유입을 비뚤어진 사회적 시각으로 해석했고 되돌아온 부메랑은 처참했다. 고양이는 먼저 인간에게 다가왔고 공생(共生)했다. 서로에게 식량을 줬고 터전을 나누며 존엄을 인정해 왔다. 그러나 세상에 대한 인간의 관점이 왜곡되고 정신이 황폐해질 때, 고양이는 악행의 피해자가 돼 인간이 지닌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소설 ‘검은 고양이’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고양이를 아꼈다. 그러나 알코올 중독이 심해질수록 파괴된 자아상은 학대로 대변됐다. 이런 모습은 주변에서도 볼 수 있다. 최근 기사를 검색하면 동물 학대의 동네북은 늘 고양이다. 가끔 생각한다. “고양이야 도망가”라고. 왜 이렇게 당하면서 사람 곁에 있는지 묻고 싶기도 하다. 그럴 때 이 작은 생명체는 느긋한 눈빛으로 이런 대답을 하는 것만 같다. 고마우니까 곁에 남는 거라고. 그래서 사람이 사람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때까지 거울이 돼 비춰 주고 싶다고.

[함께하는 미래] AI 시대와 예술적 창의성

윌 스미스 주연의 영화 ‘아이로봇’에서 주인공은 인류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킨 로봇에게 이렇게 묻는다 “로봇이 교향곡을 작곡할 수 있어? 로봇이 빈 캔버스를 아름다운 걸작으로 채울 수 있나?” 이에 로봇은 차갑게 반문한다. “그럼 너는 할 수 있어?” 이 대사는 생성 인공지능(AI)의 급격한 발전으로 인해 다시 쓰여져야 할 상황에 처했다. 이제 AI는 음악을 작곡하고, 그림을 그리며, 영화와 문학작품까지 창작하는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한때 인간의 고유 영역으로 여겨졌던 창의력과 상상력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2024년의 로봇은 이렇게 답할지도 모른다. “나는 할 수 있는데 너는?” AI는 인간의 역할을 놀라운 속도로 대체해 나가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가까운 미래에 전 세계적으로 3억개에 달하는 일자리가 자동화될 수 있으며 유럽과 북미에서는 약 25%의 일자리가 AI로 대체될 것으로 예측했다. 이렇게 급변하는 상황에서 개인이 경쟁력을 확보하는 방안 중 하나는 인류가 만든 최고의 도구인 AI를 적극 활용해 생산성과 창의력을 높이는 것이다. ‘AI가 예술가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AI를 활용하는 예술가가 그렇지 않은 예술가를 대체할 것’이라는 말은 단순히 예술뿐만이 아니라 모든 분야에 적용될 수 있다. 그러나 AI가 우리의 충직한 도구로만 남아 있기에는 발전 속도가 너무 빠르다. 챗GPT는 단 1년 만에 IQ 테스트에서 하위 2%에서 상위 37%로 급등했고 많은 전문가가 2년에서 10년 이내에 인간을 뛰어넘는 지능을 가진 AGI가 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인류는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의 답은 AI와의 경쟁이 아니라 AI가 하지 못하는 영역에 있다. 가장 중요한 영역이 독창성이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연결해 결과물을 생성하는 데 능숙하지만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완전히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데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 고흐의 그림을 모방하거나 그의 스타일로 다른 이미지를 그릴 수는 있어도 고흐처럼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완전히 독창적 작품을 창조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인간은 또 직관과 통찰력을 통해 데이터 이면의 미묘한 맥락과 감정을 포착할 수 있으며 서로 다른 개념과 분야를 융합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러한 비선형적 사고와 감성지능과 융합 능력 역시 AI가 쉽게 모방할 수 없는 인간만의 고유한 영역이다. 위에서 언급한 독창성, 비선형적 사고, 공감 능력 등은 모두 예술적 감수성과 깊이 연결돼 있다. ‘아이로봇’에서 주인공은 AI에게 “인간은 꿈을 꿔. 하지만 너는 꿈을 꾸지 못해. 너는 그저 기계일 뿐이야”라고 말하며 AI와 인간의 본질적 차이를 강조한다. AI는 어떤 인간보다도 더 빠르게 데이터를 처리하고 패턴을 분석할 수 있지만 꿈을 꾸는 것은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비논리적이고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틀 속에 무한한 상상력과 복합적인 감정을 담는 것, 이것이 AI가 다다를 수 없는 꿈과 예술의 영역이다. AI 시대를 대비해 많은 사람이 코딩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AI가 가장 먼저 대체하고 있는 분야 역시 코딩이다. 인공지능 시대에 프로그래머에게 가장 중요한 프로그램 랭귀지는 ‘자연어 (어휘 구사 능력)’라는 말이 있다. 모두가 최첨단 기술을 향해 빠르게 달려가는 지금, 인문학과 예술 교육의 중요성이 다시 한번 강조돼야 하는 이유다.

[함께하는 미래] 美·中의 경기부양책, 우리도 실기하지 말아야

사사건건 대립하던 미국과 중국이 오랜만에 동일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달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정책금리를, 중국 런민은행은 지급준비율을 각각 대폭 인하했다. 이러한 중앙은행의 정책 전환은 양국 경제뿐만 아니라 글로벌 경제의 침체를 막는 데 기여할 것이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지난달 18일 정책금리를 5.25~5.5%에서 4.75~5.0%로 내린 가장 중요한 이유는 고용 둔화와 성장률 하락이다. 연준은 인플레이션을 2% 이내로 억제하기 위해 금리를 2022년 3월부터 10차례 연속 인상했다. 아직 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업률이 4.0%에서 4.4%로 증가, 성장률이 2.1%에서 2.0%로 하락한다는 전망이 나오자 연준은 2년 반 만에 통화정책 기조를 전환한 것이다. 중국의 정책 전환은 미국보다 더 포괄적이었다. 판궁성 런민은행장, 리윈쩌 국가금융감독관리총국장, 우칭 증권감독관리위원회 주석이 지난달 24일 합동 기자회견을 통해 통화정책 완화, 부동산 부양, 주가 상승 방안을 예고했다. 지급준비율은 대형은행 8.5%에서 8.0%, 중소형 6.5%에서 6.0%로 각각 인하됐다. 2주택 대출 계약금 비중을 25%에서 15%로 낮추고 기존 모기지 금리는 0.5% 인하했으며 지방 국유 기업들의 주택매입 대출 지원이 주택가격의 60%에서 100%로 확대됐다. 보험·증권회사 등에 주식 매입을 위한 5천억위안 규모의 대출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자사주 매입을 위해 3천억위안 규모의 재대출 자금이 제공됐다. 지난달 26일 개최된 공산당 중앙정치국회의는 이러한 조치의 효과가 일시적이라는 비판을 불식시켰다. 이 회의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은 경제성장률 목표 5%를 달성하기 위해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했다. 중국의 경제 수도인 상하이시에는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지난달 28일부터 5억위안(약 944억원) 규모의 외식, 숙박, 영화, 스포츠 소비쿠폰을 발행한다고 발표했다. 자본시장은 이러한 부양책을 즉각 환영했다. 실제 지난 9월23~27일 홍콩 항셍지수는 13%, 상하이종합지수도 12.8% 각각 급등했다. 우리나라의 1, 2대 교역국인 중국과 미국의 경기부양책은 우리 경제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은 미국 정책금리 1%포인트 인하가 우리 수출을 0.6% 증가시킬 것으로 추정했다. 중국의 경기 회복도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 무선통신기기의 수출 증가로 이어질 것이다. 다만 현재 당면한 우리 경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수출 증대뿐만 아니라 내수 진작이 필요하다. 한국개발연구원은 8월 수출 증가세는 분명하지만 민간소비와 설비투자의 회복은 지연되고 있다고 진단하면서 2024년 경제성장률 전망을 기존 2.6%에서 2.5%로 낮췄다. 현 정부 들어 재정적자를 축소하고 부동산 과열을 진정시키기 위한 긴축정책을 추진했음에도 불구하고 작년 56조원, 올해 30조원의 세수 결손이 발생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기 위한 기업가치 제고(밸류업) 프로그램이 추진되고 있지만 주가지수가 상승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이 장기간 유지돼 장기 불황에 빠지는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거시경제 정책이 요구된다. 정부는 미국과 중국이 조성한 우호적인 대외여건을 활용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함께하는 미래] 펠라그라의 단서를 준 반려동물 ‘개’

어느 날 얼굴과 팔 전체가 붉게 부어오른다. 놀라 몸을 훑는데 갑자기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큰 병이다 싶어 밖을 나왔는데 보이는 사람마다 피부가 울긋불긋하다. 누군가는 침울하고 누군가는 혼잣말을 한다. 우는 소리를 따라가니 유명을 달리한 자 옆에 가족이 애처롭게 있다. 갑자기 뒤바뀐 세상,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이 이야기는 영화가 아니다. 1907년 미국 조지아주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다. 미국 남부는 옥수수 주 생산지이고 옥수수는 20세기 초 가난한 농민들의 주식이었다. ‘펠라그라(pellagra)’는 염증으로 피부염과 설사가 나타나고 치매와 같은 정신병적 증상을 동반하다가 사망하는 무서운 질병이다. 1907년부터 1940년까지 사망자는 10만명으로 추산됐다. 당시 미국 공중보건의 조지프 골드버거 박사는 농업지역, 요양병원, 보육원을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퍼진 것을 보고 전염병이라 여겼다. 그러나 정치인, 자본가, 의사, 교사의 발병 수준이 낮은 점을 발견하고 마침내 펠라그라의 원인이 ‘비타민B3(니아신)’ 결핍임을 밝혀냈다. 부유층보다 고기, 우유, 채소를 섭취할 기회가 거의 없었던 서민들은 비타민B3 흡수율이 낮은 옥수수를 주로 섭취했기 때문에 이렇게 끔찍한 병에 시달렸다. 그러나 원인을 밝히면 해결될 것 같던 펠라그라의 장막은 쉽게 걷히지 않았다. 그러나 골드버거 연구진은 포기하지 않고 서민을 살릴 차선책으로 비타민B3가 풍부한 저가형 식품원을 찾았다. 이 과정에서 개와 관련된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당시 비타민B3 결핍 실험으로 개의 혀에 검은 점이 생기는 ‘흑설병(黑舌病)’을 발견했다. 연구진은 흑설병과 펠라그라의 유사성에 주목했고 이때 효모가 치료에 탁월했다는 사실이 결정적 단서로 작용했다. 결국 연구진은 빵을 만드는 효모를 대량 보급했고 이런 조치는 펠라그라 치료와 예방에 크게 이바지했다. 당시 개는 펠라그라 종식의 숨은 공신이자 국민을 외면한 정치로부터 서민 건강을 지켜낸 동반자였다. 반려동물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본다. 한자로는 짝 반(伴), 짝 려(侶)자를 쓰며 영어로는 동반자를 뜻하는 ‘companion animals’로 삶을 같이 살아가는 존재, 같이 숨 쉬고 걷고 웃을 수 있는 대상을 동반자라고 한다. 사람과 개가 공존한 역사는 오래됐다. 독일에서 발견된 1만4천년 전 개 화석은 함께한 시기를 가늠할 증거다. 최근 유전자 분석 연구에 의하면 사람과 개의 역사를 4만년 전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사냥으로 도움을 주던 동반자는 현재 집지킴이, 경호견, 경찰군견, 구조견, 도우미견, 반려견으로 탈바꿈하며 사람과의 공존을 이어가고 있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개는 사람에게 스스로 다가와 길들여진 최초의 동물이다. 개의 특별한 역사를 가늠한다면 어쩌면 펠라그라 종식을 위한 도움은 우연이 아닌 필연이다. 늘 그래왔듯 또다시 도왔을 뿐이다.

[함께하는 미래] ‘기후시민’으로 살아가기

기후위기가 일상화된 시기에 시민은 ‘1.5℃ 라이프스타일’ 계산기를 활용해 스스로 개인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계산해 보며 ‘기후시민’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하며 무엇을 실천할지를 고민하는데 정책 당국자들은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누군가 세상을 구한다는, 아니 구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는 듯하다. 파리협정과 함께 매년 열리는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에서 합의되고 과학적으로 검증된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경로를 이행하기보다는 아직도 그들의 정치·경제적 토대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구조와 욕망 어느 하나도 포기하지 못한 듯하다. 탐욕과 과잉으로 점철된 성장 중심의 자본주의와 화석연료에 의존해 기형적으로 파생된 탄소경제를 주도한 이들은 서로의 이해관계가 일치해 현재의 기후위기와 불평등을 고착화시켰다는 과학적이고 역사적인 사실을 더 이상 부정하기 어렵다. 자본주의는 자연과 인간 모두에게 지속가능한 재생에너지가 아닌 탄소경제라는 무기로 돌파구를 찾았고 더 많은 부와 잉여를 쌓기 위해 수탈과 분열을 앞세운 경쟁 체제로 공동체를 붕괴시키며 ‘생태 학살’을 통해 시공간적 제약이 있는 자본주의를 옹호했다. 이후 세대는 현재를 어떻게 평가하고 기록할까. 영국 경제학자 케이트 레이워스는 ‘도넛경제학(Doughnut economics)’을 통해 성장을 목표로 낡은 20세기 경제학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지구 구성원으로서의 민주적 합의를 기초로 공동체적인 삶을 추구하며 인간이 살기 위한 사회적 기초를 유지하면서도 지구의 생태적 한계를 지키는 방안을 주창했다. 도넛경제 모델은 탈(脫)탄소사회, 탈탄소경제, 탈탄소도시로의 국가와 사회경제적 시스템을 바꾸는 노력과 함께 온실가스 문제를 기후시민의 관점에서도 접근해야 당면한 위기를 더 빠르고 더 과감하게 변화를 이끌 수 있다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 임계점에 다다른 기후위기를 해결하고 사회적 기초와 생태적 한계를 지키는 공동체의 한 사람, 기후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 유엔환경계획(UNEP)은 누리집을 통해 ‘기후위기와 싸우는 것을 도울 수 있는 10가지 방법’을 권고했다. 그 답은 매우 간단하며 명료하다. ‘목소리를 내라’, ‘정치적 압박을 가하라’, ‘교통수단을 바꿔라’, ‘전력사용량을 줄여라’, ‘식단을 바꿔라’, ‘지역에서 구매하고, 지속가능한 상품을 구매하라’, ‘음식물을 버리지 마라’, ‘기후에 맞춰 스마트하게 입어라’, ‘나무를 심어라’, ‘지구친화적 투자에 집중하라’다. 서로 간의 용기를 북돋우고 연대를 통해 지치지 않고 도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겨우 200년이란 짧은 시간 동안 자연과 에너지를 독점해 수만년 자연과 동화돼 형성한 인류의 모든 자산의 흔적을 흔들고 있는 시대를 넘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삶의 사회적 기초를 유지하며 지구 생태적인 한계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기후시민으로서의 삶이 우리의 미래다. 기후부정의에 대한 책임을 묻고 하나하나 바로잡는 것, 낡은 틀을 바꾸는 것, 모든 것의 삶을 존중하는 것, 현재 세대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기후시민의 권리를 제대로 행사해야 기후가 아닌 세상을 바꿀 수 있다.

[함께하는 미래] 해리스 대 트럼프⋯ 중국의 선택은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미국과 대립하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6일 공개적으로 카멀라 해리스 후보를 지지하고 나섰다. 반면 지난달 29일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접견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의중을 전혀 드러내지 않고 있다.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명하는 러시아와 달리 중국이 언급을 극도로 자제하는 이유는 미국의 역공을 피하기 위해서다. 린젠(林劍) 외교부 대변인은 4월 “미국의 대선은 미국의 내정”이라며 “중국은 그 어떤 방식으로도 관여하지 않는 대신 미국도 선거를 목적으로 중국을 비난하고 중국의 국익을 침해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렇다면 중국에서는 어느 후보가 자신들에게 유리하다고 보고 있을까. 단기적으로 중국은 해리스 후보의 당선을 선호한다. 해리스 후보가 조 바이든 대통령의 노선을 그대로 유지할 가능성이 매우 크기에 중국은 정책 변경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즉, 미중 관계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증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민주당 고위층과도 여러 차례 소통해 온 터라 새로운 인맥을 찾아야 하는 수고도 덜 수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대만, 홍콩, 신장웨이우얼(新疆維吾爾)자치구의 인권 및 반도체 제재 등을 통해 중국을 압박했지만 기후변화 및 AI 안전 등에서는 중국과 긴밀하게 협조하고 있다. 군사적 차원에서도 바이든 대통령과 시 주석이 지난해 11월 샌프란시스코 회담에서 합의한 핫라인을 통해 우발적 충돌이 전면전으로 확대되지 않도록 관리하고 있다. 반면 바이든 행정부보다 훨씬 더 강경한 대중 정책을 예고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은 중국에 엄청난 충격을 줄 수 있다. 모든 중국산 수입품에 6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는 트럼프 후보는 대만해협, 남중국해, 반도체 제재 등에 대해서도 중국을 최대한 압박할 것이다. 이런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협상 상대를 새로 찾는 일도 쉽지 않을 뿐더러 그동안 중국이 공들여온 딸 이방카와 사위 재러드 쿠슈너가 트럼프 후보의 총애를 잃었다. 중국에 그나마 위안이 되는 일은 대만 반도체 산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다. 이전에 트럼프 후보는 대만이 미국 반도체 산업을 탈취했으며 미국의 군사적 지원에 대한 비용을 충분히 분담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중국은 누가 당선되든 미중 관계가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으리라고 예상하고 있다. 대중(對中) 정책에 관해 해리스와 트럼프 사이에는 큰 차이가 없다. 두 후보 모두 중국을 미국의 패권을 위협하는 가장 심각한 경쟁자로 간주하고 있다. 또 미국의 국익을 증진하기 위해 중국과의 교류를 축소해야 한다는 입장도 공유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에 부과한 보복관세를 철폐하겠다는 선거공약을 지키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6월에는 중국산 전기차와 배터리에 대한 관세를 25~100%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 양당의 대중 정책이 수렴하는 이유는 급증하는 반중(反中) 정서에 있다. 2018년 개시된 무역전쟁과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미국에서 중국에 대한 비호감이 유례없이 상승했다.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2017년 호감과 비호감의 차이가 4%에서 2024년 65%까지 벌어졌다. 이런 추세가 역전되지 않는 한 어느 후보도 미중 관계를 전면적으로 전환하기 위한 시도를 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선 이후 중국의 대미(對美) 정책의 목표는 관계 개선보다는 현상 유지로 하향될 것으로 보인다.

[함께하는 미래] 고대 인류와 동물

스페인 알타미라 동굴에서 고개를 들면 이름 모를 화가들의 천장 벽화가 펼쳐진다. 거대한 사슴과 말, 들소가 금방이라도 아래로 달려들 것 같은 생동감 넘치는 그림은 놀랍게도 구석기인의 작품이다. 인류의 먼 조상은 예술작품을 통해 그들의 뛰어난 정신세계를 보여준다. 그런데 구석기의 훌륭한 모습은 사냥과 관련된 생활사에서도 드러난다. 여러분이 원시시대로 돌아갔다고 가정하자. 여러분에게는 두 길이 있다. 곡류와 과채류 위주의 채식만 하는 길과 채식과 육식을 같이 하는 길. 단, 고기를 먹기 위해서는 동물을 직접 사냥해야 한다.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는가. 채식을 선택한다면 사냥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거나 과도한 에너지를 쏟을 일이 없고 생명을 죽여야 하는 부담도 없다. 그러나 균형 잡힌 영양원을 지속적으로 섭취하지 못할 우려가 있다. 특히 살기 위해 다른 생명을 직접 죽여야 한다면 누구나 크고 작은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사람과 동물은 삶과 죽음 앞에 평등한 생명체이므로 고대 부족의 사냥과 육식 과정에는 희생된 동물에 대한 경건하고 겸허한 의식이 수반됐다. 아메리카 대륙의 곰부족은 곰을 사냥하기 전 의식을 치렀다. 사냥에 성공하면 바로 마을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 대신 쓰러진 곰에게 담뱃대를 물려주고 하늘을 바라보며 부족의 식량원이 된 것에 대한 감사를 표했다. 새끼는 절대로 죽이거나 데려오지 않았다. 고기는 남김없이 먹고 남은 뼈는 신성한 터에 고이 묻어 그 넋을 오래도록 기렸다. 원시 인류에게는 사람과 동물 중 누구나 포식자인 동시에 피식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있었으므로 사람의 위치를 동물과 평등하게 뒀다. 현대를 사는 우리 인류는 어떨까. 고기가 필요하면 마트에 가면 된다. 나를 대신해 누군가가 키우고 도축하고 유통한 고기에 대한 값을 지불하면 될 일이다. 여기에는 희생된 동물에 대한 경외나 미안함과 감사함이 없어도 된다. 고대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껴야 했던 뜨거운 양심은 퇴화라도 한 것일까. 현 인류는 명실상부한 최상위 포식자이며 의식주의 범위를 넘어 인류의 안녕과 번영을 위해 수많은 형태로 동물을 희생해 왔다. 그 결과 사람의 활동지역은 야생동물을 서식지로부터 내몰았고 사냥, 밀렵, 기후변화로 19세기 이후 멸종하거나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은 공식적으로 국제자연보전연맹 추산 11만8천600여종에 달한다. 야생동물은 동물원에 전시되거나 실험으로 이용됐고 사람에게 길들여진 가축과 가장 가까이서 지내온 반려동물은 자연환경에서의 생존본능을 잃은 지 오래다. 이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가를 판단하기에 앞서 우리가 생각할 일은 인류가 동물이라는 지구상의 생명체들을 어떤 관점으로 대해 왔는가 하는 일이다. 하등한 착취의 대상이었는가, 동등한 동반자였는가. 모든 관점은 이 범위 안에서 한쪽으로 기울여져 있을 것이다. 동물을 바라보는 관점이 중요한 이유는 이 관념이 앞으로 인류와 지구의 지속가능한 공존 여부를 결정지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미래 후손들이 지구에서 무사히 살아나갈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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