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더하기] 세계에서 가장 로맨틱한 장애인의 날

봄이 오면 꽃이 피듯 4월20일이면 장애인의 날 기념식이 어김없이 열린다. 복지부와 17개 광역시, 226개 기초지방자치단체는 비슷한 현수막을 걸고, 비슷한 축사를 내고, 상장과 꽃다발이 오갈 때마다 큰 박수를 보낸다. 행사의 백미는 여전히 기념품이다. 물론 기념품은 끝까지 자리를 지켜야 받을 수 있다. 참으로 익숙한 풍경이다. 그런데 왜 하필 4월20일일까. 우리 법은 매년 4월20일을 장애인의 날로 정하고 그날부터 1주간을 장애인주간으로 두고 있다. 지금의 법정기념일은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니다. 1972년 민간에서 시작된 ‘재활의 날’ 행사가 있었고 이후 ‘장애인재활대회’라는 이름으로 이어지다 1991년 장애인복지법 개정을 통해 법정기념일이 됐다. 첫 법정기념일 행사를 ‘제1회’가 아니라 ‘제11회’로 부른 일은 상징적이다. 이날이 정부가 갑자기 만든 날이 아니라 민간의 오랜 축적 위에 세워진 날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2026년 4월20일은 제46회 장애인의 날이다. 왜 날짜가 4월20일이 됐는가를 떠올려 보면 이날에는 다소 한국적인 정서가 배어 있다. 4월은 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때이고 20일 무렵은 긴 겨울을 지나 바깥 활동이 가능해지는 시기다. 4월20일은 장애인을 생각한 제도 이전에 장애인이 세상 밖으로 나오기 좋은 계절감과 생활감각을 담은 날이기도 했다. 이 지점에서 생각은 갈라진다. 우리는 참 따뜻한 나라다. 그러나 따뜻함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가 어느 봄날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동안 다른 나라들은 장애인이 일상에서 차별받지 않도록 제도와 구조를 바꾸는 데 더 많은 힘을 기울여 왔다. 유엔은 12월3일을 세계 장애인의 날로 기념하고 영국은 ‘장애인 역사의 달(Disability History Month)’을 통해 역사와 권리를 돌아본다. 스웨덴은 보편 설계와 접근성을 장애 정책의 중심 원리로 삼는다. 중요한 것은 기념 그 자체보다 장애인이 이동하고 배우고 일하고 살아가는 일상의 구조다. 그래서 묻게 된다. 우리는 장애인의 날에 너무 오래 머물러 있었던 것은 아닐까. 기념품에 담긴 따뜻한 마음은 넘치는데 정작 교통과 교육, 고용과 주거에서 보편적 권리를 구현하는 일은 더디지 않았는가. 특별한 하루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 하루가 장애인에게만 주어지는 위로로 끝나서는 안 된다. 날마다 동등한 하루가 보장되는 사회로 가야 한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가능성이 있다. 우리나라는 장애인의 삶을 다루는 다수의 법률과 제도를 이미 갖고 있다. 문제는 법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것들이 통합적으로 작동하지 못해 왔다는 데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권리의 실현이다. 따뜻한 마음이 제도로 이어지고 배려의 언어가 접근 가능한 구조로 바뀔 때 비로소 장애인의 날은 하루의 행사가 아닌 사회의 수준이 될 것이다.

[생각 더하기] 백제 ‘피리’ 유물 발굴의 한계

우리가 사용해 온 피리는 신락적, 횡적, 고구려적 세 종류다. 신락적은 ‘제천의례’에서부터 전해지고 있다. 피리의 길이는 33㎝, 구멍은 3개·7개다. 중국에서는 당나라 구중이라는 사람이 피리를 처음 제작했다. 전통 음악에서 사용되는 악기 ‘패’는 ‘소각’이라고도 하는데 불교 전통악기로 불교에서는 교리를 음악으로 표현해 보급하기도 했다. 국립부여문화연구소는 백제 부여 사비왕궁터에서 1천500여년 전 피리와 목간을 발굴했다. 피리는 사비왕궁 경내 화장실로 추정되는 구덩이에 부러져 있었다. 피리의 탄소연대가 642년까지 나오며 568~642년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백제 사비왕궁이 멸망한 660년과 큰 차이가 없다. 일본에서는 백제 부흥을 위해 제38대 사이메이 일왕(655~661)이 일본군 파견을 준비했다. 663년 일본군 수만명이 금강지역 등에서 신라와 당나라군에게 격퇴되는 일도 있었다. 백제와 고구려는 신라와 당나라의 교류를 막으려고 군사 연합작전으로 신라의 중국 교역 뱃길을 차단했다. 백제, 고구려와 앙숙 관계가 된 신라는 당나라의 백제 공격에 합의했고 소정방이 이끄는 당나라 군사 13만명이 산둥성 내주를 출발해 백제 바닷가를 지나 부여 사비왕궁으로 향했다. 김유신이 이끄는 신라 5만 군사는 탄현을 넘어 황산벌로 진격하고 당나라 군사는 논산지역으로 육군과 수군이 공격하는 양면 작전으로 백제를 멸망시켰다. 660년 7월의 일이다. 사비왕궁을 점령한 신라와 당나라는 이곳에서 10여년 머물며 고구려 공격을 준비하고 각종 행사를 통해 가무를 즐겼다. 중국 대륙에서 생활하던 우리 선조 동이인은 봄과 가을 제천의례를 열어 북과 피리 등을 연주했다. 제례를 마친 후에는 모두가 모여 가무를 즐겼다. 동이인의 문화가 중국 은허지역 상나라에 전파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삼국시대에 들어서면서 우리의 음악과 무용이 더욱 발전했다. 고구려는 수와 당나라에 고구려 악단의 상설 무대를 설치했다. 고구려의 무용 호정무·지서무·괴뢰무와 내원성·연양·명주 등의 노래에 중국인은 매혹됐다. 신라에는 회소·가야·무애·처용 ·지백 등의 무용과 동경·본주·처용 등의 노래, 백제 음악은 30가지가 넘었다. 일본 황실 궁내청 의례에서 연주된 ‘납소이곡’은 백제의 고유 음악이 전래된 것이다. 제천의례부터 사용돼 온 우리의 악기 제작은 중국, 일본보다 앞선다. 당나라는 백제를 멸망시킨 후 우이·신구·윤성·인덕·산곤·안원·빈문·지심·노산·고사 등 주와현 56개 지역의 행정구역을 재설정했다. 피리와 함께 발굴된 하서·개비·감라·고란·이림 등의 목간은 당나라 행정구역명이었다. 피리의 구멍이 3개, 7개인 것은 백제뿐이 아닌데 혹 가야·신라·당나라·일본인들이 사용하던 피리를 백제 것으로 판명한 건 아닌지 의문을 품게 된다. 피리의 탄소연대를 검사하면서 가야·신라·백제·당나라·일본지역의 대나무 재질 및 유전자형 검사도 함께 이뤄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역사·유적·유물 조사는 국적, 연대, 생활사, 문화 등을 알 수 있는 것이므로 완벽할수록 좋다.

[생각 더하기] 고령자 이동권과 교통안전

최근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 이슈가 대두되고 있다. 2025년 부천제일시장 트럭 사고, 2024년 서울 시청역 사고 등 이 사고들의 공통점은 ‘페달 오조작’이었다. 멈춰야 할 순간에 오히려 가속페달을 밟는 이 실수는 단순한 운전 미숙이 아니다. 고령화에 따른 근력 저하와 인지 반응의 지연, 이른바 ‘고령자의 인지능력 저하’가 빚어낸 물리적 결과다. 한국교통연구원과 서울연구원 등 주요 연구기관은 고령 운전자의 면허 반납이 교통사고 감소에 유의미한 효과가 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실정은 엄중하다. 경찰과 지자체의 끊임없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고령 운전자의 면허 반납률은 3년 연속 2% 초반대에 머물고 있다. 그렇다면 왜 고령자들은 면허 반납에 주저할까. 고령자가 면허를 반납하는 순간 그들은 이동의 자유를 상실하고 사회적 고립이라는 또 다른 위기에 직면한다. 헌법 제34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하며 특히 ‘국가는 노인의 복지 향상을 위한 정책을 실시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동권은 이러한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조건이자 기본권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대중교통 서비스의 심각한 양극화를 겪고 있다. 대중교통 인프라가 열악한 농어촌지역에서 노인들에게 운전면허는 단순히 편리함을 넘어 병원에 가고 장을 보기 위한 ‘생존 면허’와 같다. 대안 없는 면허 반납 독려는 이들에게 이동권의 포기, 즉 삶의 질 포기를 강요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제는 ‘면허 반납’이 아닌 ‘안전한 이동’으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이를 위해 세 가지 방향을 제시한다. 첫째, 수요응답형교통(DRT) 및 자율주행을 통한 대중교통서비스 제공이다. 고정된 노선버스로는 교통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어렵다. 고령자가 원하는 시간에 이용할 수 있는 DRT 등의 서비스를 도입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자율주행 기술을 도입해 경제적, 물리적으로 효율적인 수요응답형버스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둘째, 고령 운전자의 인지능력을 보완할 기술적 지원이다. 일본의 ‘사포카’제도처럼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 등을 국가 및 지자체 차원에서 지원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2029년 1월부터 신차에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를 의무적으로 장착하도록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고령 운전자의 보유 차량에 대해서도 애프터마켓을 활용해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 장착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최근 한국교통안전공단 시범사업 결과에 따르면 이 장치는 오조작 53%, 과속 21%를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고령 운전자의 인지 능력 저하를 기술로 보완한다면 면허를 유지하면서도 사고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주기적인 전국 교통서비스 양극화 진단이 필요하다. 도시와 지방의 교통 서비스 격차를 정밀하게 진단할수 있는 지수를 개발해 교통 서비스 낙후지역을 우선적으로 선별해야 한다. 이러한 낙후지역에 노인 친화형 인프라(Age-friendly SOC) 예산을 투입하고 교통 서비스를 제공해 지역 간 이동권 격차를 해소하는 솔루션이 필요하다. 이제는 고령 운전자를 잠재적인 사고 유발자로 간주해 규제하는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고령 운전자의 실수를 방지하는 기술적 안전망을 구축하고 대중교통 소외지역에 모빌리티 서비스를 보급해 ‘이동권과 교통안전이 공존’하는 교통체계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생각 더하기] 남양주 스토킹 범죄 ‘사후 대응’ 이대로 괜찮은가

남양주에서 벌어진 이번 스토킹 살해 사건은 결코 ‘우발적 범죄’로 치부할 수 없다. 충분히 막을 수 있었고 반드시 막았어야 할 예견된 참사였다. 그리고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이 범죄를 ‘끝나지 않는 일상’으로 견디고 있을지 모른다. 심지어 그 끝이 죽음일 것이라는 두려움 속에서 하루를 버티고 있을지도 모른다. 피해자가 제도가 자신을 보호해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느꼈을 공포와 절망을 생각하면 그 무게 앞에 쉽게 말을 잇기 어렵다.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 사회의 안전망이 여전히 충분히 작동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피해자는 여러 차례 구조신호를 보냈다. 신고를 반복했고 위치추적 장치까지 발견해 경찰에 알렸다. 이 정도라면 위험은 명백했고 대응은 즉각적이어야 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형식적인 조치와 안일한 대응뿐이었다. 접근금지 명령, 전자장치 지급. 이미 수차례 한계를 드러낸 조치들이 또다시 반복됐고 결국 한 생명은 보호받지 못한 채 사라졌다. 이쯤 되면 묻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이 나라의 법과 제도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피해자가 스스로 몸을 숨기고 일상을 포기해야 하는 현실, 가해자는 경고만 받은 채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구조. 이것이 과연 정상적인 국가의 모습인가. 더 심각한 문제는 정치의 무책임이다. 국회에는 스토킹 범죄 대응과 피해자 보호 강화를 위한 법안이 수십건이나 계류 중이다. 그러나 정쟁에 밀려 논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입법은 뒤로 밀린 채 정치적 유불리만 따지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 이 무책임이 결국 또 하나의 죽음을 만들었다. 국민의 일상과 직결된 이른바 ‘민생 법안’이 시급성을 이유로 처리되는 상황에서 정작 가장 기본적인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법안들이 충분한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한 채 계류돼 있다는 점은 우리 정치가 무엇을 우선해야 하는지 되묻게 한다. 왜 이 문제는 ‘민생 법안’들과 함께 다뤄지지 못했는가. 지금 필요한 것은 보여주기식 대책이 아니다. 전자발찌나 스마트워치 같은 보조 수단에 기대는 수준을 넘어 위험 신호가 감지되는 순간 즉각 가해자를 분리·격리하는 강제적이고 선제적인 시스템이 작동해야 한다. 반복 신고가 있었다면 더 이상의 판단 유예는 없어야 한다. 그 즉시 신병 확보와 접근 차단이 이뤄지는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 스토킹 범죄는 더 이상 개인의 불운이 아니다. 명백한 구조적 실패이며 국가 책임의 영역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피해자에게 ‘설마’, ‘조심하라’는 말만 되풀이하는 사회라면 우리는 또 다른 비극을 준비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국가는 더 이상 변명해서는 안 된다. 왜 피해자가 숨어야 하는지, 왜 위험을 알리고도 보호받지 못했는지에 대한 답을 내놓아야 한다. 그리고 그 답은 말이 아니라 제도로 증명돼야 한다. 이번 사건이 또 하나의 ‘안타까운 일’로 소비된다면 다음 희생자는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구조신호를 보내고 있다. 그 신호를 또 외면할 것인가.

[생각 더하기] 호리 카즈오와 태정관 지령, 독도는 일본령이 아니다

일본 시마네현에서는 올해도 어김없이 2월22일 ‘다케시마의 날’ 행사를 강행했다. 독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되풀이하는 이 장면은 이제 낯설지 않다. 뉴스 화면을 통해 익숙해진 그 풍경 앞에서 독도는 늘 감정의 언어로 먼저 다가왔다. 그러나 독도 문제의 이면에는 감정과는 별개의 이야기가 존재한다. 소리 높인 주장이나 외교적 수사가 아니라 오래된 문서 한 장이 묵묵히 전하는 기록의 이야기다. 그 기록을 다시 세상에 드러낸 인물이 일본 학자 호리 가즈오(堀和生)다. 1987년 당시 30대 후반의 교토대 사학자였던 호리 박사는 일본 국립공문서관에서 ‘태정관 지령’(1877년)을 발굴했다. 메이지 정부 최고 행정기관이었던 태정관이 내무성에 전달한 이 문서에는 분명한 문장이 적혀 있었다. “울릉도(죽도) 외 1도는 일본과 관계없음을 명심할 것.” 이는 단순한 내부 검토 의견이 아니라 중앙정부가 공식 절차를 거쳐 행정 판단으로 내려졌다. 지령에는 한참 뒤인 2006년 발견된 ‘기죽도약도’라는 부속지도도 함께 첨부돼 있었다. 지도 속에서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 영토와 분명히 구분된 모습으로 확인된다. 19세기 후반 일본 정부가 이 섬들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지 더 이상의 해석이 필요 없을 만큼 분명히 알 수 있다. 독도 문제는 여기서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기록과 법리의 문제로 실체를 밝혀 주고 있다. 이 문서는 1905년 시마네현의 독도 편입 고시와 자연스럽게 대비된다. 일본 정부는 러일전쟁 중 독도를 무주지로 보고 선점했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약 30년 전 같은 정부가 “관계없다”고 판단했던 섬이 어느 순간 주인 없는 땅이 됐는지에 대한 논리적 근거가 제시되지 않은 상태다. 더구나 영토 편입이라는 중대한 사안을 중앙정부가 아닌 지방 고시 형식으로 처리했다는 점도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국제법에서는 국가의 말과 행동의 일관성을 중요하게 판단한다. 한 국가가 공식적으로 표명한 입장은 이후의 주장과도 연결돼 해석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른바 ‘금반언(禁反言·Estoppel)의 원칙’이 거론되는 이유다. 물론 구체적인 법적 적용을 둘러싼 논의는 신중해야 한다. 다만 과거의 공적 기록과 이후의 정책 사이에 놓인 간극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는 여전히 남는 질문이다. 이 대목에서 호리 가즈오라는 이름은 깊은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는 한국의 주장을 대변한 인물이 아니다. 일본 학자로서 일본 정부의 문서를 읽고 그 문서가 말하는 바를 그대로 세상에 내놓았을 뿐이다. 국가의 입장에 편승하지도, 시대의 분위기에 침묵하지도 않았다. 그의 작업은 외부의 비판이 아니라 내부의 기록이 스스로 말하게 한 결과였다. 독도는 우리에게 역사적·정서적 의미가 깊은 공간이다. 그렇기에 더욱 이성적인 언어가 필요하다. 감정이 앞서기 쉬운 문제일수록 기록은 오히려 차분하게 읽혀야 한다. 호리 가즈오가 찾아낸 ‘태정관 지령’은 독도 문제가 단순한 외교 분쟁이나 민족 감정의 대상이 아님을 보여준다. 동시에 근대 국가가 남긴 문서와 그 일관성을 묻는 문제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조용히 증언한다. 독도를 둘러싼 논쟁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목소리가 커질수록 기록은 더 낮은 자리에서 오래 남는다. 150여년 전 일본 정부 스스로 남긴 한 장의 문서는 오늘의 주장에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 질문 앞에서 우리가 할 일은 분노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문서를 다시 펼치는 일일지 모른다. 독도를 지키는 또 하나의 방식은 그렇게 기록을 끝까지 읽는 데서 시작된다.

[생각 더하기] 베풀수록 커지는 평등의 힘

3월의 이른 봄기운이 만연해지면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날이 있다. 바로 매년 3월8일 ‘세계 여성의 날’이다. 이날은 단순한 기념일을 넘어 여성 노동자들이 생존권과 참정권을 외치며 거리로 나섰던 용기 있는 발걸음을 되새기는 날이다. 그 시작은 1908년 미국 여성 노동자들의 궐기였다. 열악한 노동환경과 안전의 부재, 참정권 박탈에 맞선 그들의 외침은 인간다운 삶을 향한 절박한 요구였다. 이후 이는 세계 여성 인권운동의 상징이 됐고 우리나라도 2018년 법정기념일로 지정하며 성평등이 사회 전체가 지켜야 할 약속임을 공고히 했다. 권리는 선언을 넘어 실천으로 완성된다. 1898년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인권선언문인 ‘여권통문’은 교육·정치·경제 영역에서 여성의 동등한 권리를 선언했다. 하지만 100여년이 흐른 오늘날에도 여성들은 여전히 일터와 가정,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는 차별과 불평등을 마주한다. 경제활동 참가율과 임금 격차, 의사결정 영역에서의 낮은 대표성은 성별 격차가 여전히 구조적 장벽으로 존재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여기에 경력중단과 돌봄 부담, 디지털 성범죄와 스토킹, 혐오 표현에 이르기까지 여성의 안전과 존엄을 위협하는 과제들은 여전히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 깊게 남아 있다. 인천시는 이러한 현실을 해소하기 위해 성평등을 시정의 핵심 가치로 두고 정책과 제도를 정비해 왔다. 2023년부터 2027년까지 추진 중인 ‘제2차 인천양성평등정책 종합계획’은 일·생활 균형과 돌봄안전망 강화, 여성폭력 근절, 성인지 교육과 행정 역량 강화, 대표성 확대를 주요 목표로 삼고 있다. 공직사회와 지역사회 전반에 성인지 관점을 확산하기 위해 공무원과 시민 대상 교육을 확대하고 정책 수립, 집행, 평가 전 과정에서 성별 영향을 분석하는 체계를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 돌봄 공백을 줄이고 취약계층 여성의 안전과 권리를 보호하며 디지털 환경에서 발생하는 새로운 유형의 폭력에 대응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성평등을 향한 여정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고용과 돌봄 등 삶의 전 영역에서 성별 격차는 구조적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디지털 공간의 혐오와 왜곡된 인식은 사회적 갈등을 키우는 위험 요소가 되고 있다. 성평등은 특정 계층의 요구가 아닌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결정짓는 보편적 인권의 문제다. ‘모두를 위한 도시’ 실현의 필수 토대인 성평등 없이는 진정한 도시 발전도 시민의 행복도 기대하기 어렵다.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우리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일상에서 차별 대신 존중을 선택하고 있는지, 불평등한 관행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 말이다. 성평등은 여성만의 과제가 아니다. 남성과 청년, 어르신 등 모든 시민이 함께 짊어져야 할 공동의 책임이다. 서로의 경험에 공감하며 불평등을 한 걸음씩 고쳐 나갈 때 비로소 ‘함께 사는 도시’는 완성될 수 있다. 3·8 세계 여성의 날은 과거의 용기를 기리며 더 나은 미래를 약속하는 날이다. 인천시는 앞으로도 성평등 가치를 시정 전반에 확산시켜 시민이 일상에서 체감하는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한다. 안전한 일터와 공정한 평가, 돌봄의 무게를 함께 나누는 공동체라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정책을 정교하게 다듬고 세대와 성별을 아우르는 상생의 틀을 넓혀 나갈 것이다. 특히 2026년 세계 여성의 날 주제인 ‘베풀수록 커진다(#GiveToGain)’는 성평등 실천이 서로의 권리를 존중하는 바탕이 되고 나아가 공동체 전체의 가치를 키운다는 상생의 원리를 담고 있다. 인천이 앞장서 평등의 기준을 높이고 변화를 앞당기기를 소망한다. 거창한 구호보다 중요한 것은 오늘 내 자리에서 공정과 존엄을 선택하는 작은 실천이다. 모두가 각자의 잠재력을 온전히 펼칠 수 있는 인천의 미래를 시민의 일상 속에서 실현해 나가겠다.

[생각 더하기] 고령사회에 진입하며

고령사회에 진입하면서 기대수명이 증가해 남자 80.8세, 여자는 86.6세로 늘어남에 따른 사회적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경제가 발전해 선진국에 진입하면서 보건과 의료기술이 발달하고 절식과 운동, 영양가 높은 음식 섭취, 위생 상태가 양호해 사회적으로 인간의 수명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고령사회는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7% 이상인 사회를 말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인구가 1천만명을 넘어 초고령사회가 됐으며 출산율의 감소로 고령화가 가속화하고 있다. 고령화는 생산 주체인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하거나 비경제활동인구가 증가해 재화 및 용역의 부가가치는 물론이고 국내 총생산도 감소해 국가 몰락의 요인이 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저출산 현상으로 육아 부담, 주거 문제, 여성의 사회 진출, 고용 불안 등으로 결혼 및 출산을 기피하고 의료기술의 발달, 영양 상태 개선, 생활 수준 향상 등으로 노년층 인구가 증가하며 사회적 구조 변화로 결혼연령이 높아지거나 비혼 가구가 늘어 유소년층이 감소하는 등 인구 구조 변화가 지속되기 마련이다. 이런 현상은 생산가능인구 감소, 노동력 부족, 경제성장 둔화, 노인 부양비 증가 등의 문제를 유발한다. 즉, 생산가능인구 감소로 노동력이 부족해지고 경제성장률이 하락한다. 사회적 비용 부담 증가와 노인 비중 증가로 인해 연금, 건강보험, 요양비용 등 사회복지 지출이 늘고 노인 빈곤 및 소외는 퇴직 후 소득 감소, 사회적 역할 상실로 고독·빈곤율·유병률·자살률이 증가하고 인구 구조 불균형으로 인해 지방도시의 소멸 위기가 발생한다. 도시 및 지방의 인구 감소로 학령인구가 줄어 입학생이 거의 없는 학교가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이로 인해 많은 학교가 폐교된 상태이고 심지어 지방에서는 유치원·초중등 미래통합형 학교를 신축한 곳도 있다. 폐교를 놀이시설, 숙박시설로 활용해 지역경제 활성화 및 일자리 창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또 지방대에서는 폐교를 피하기 위해 입학하는 학생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외국인 유학생 유치, 편법으로 입학해 학기시험 및 출석 등 불법이 드러나 물의를 빚곤 한다. 고령사회의 해결 방안으로 일자리 창출 및 정년제도 개편은 물론이고 정년을 연장시키고 임금체계 개선, 고령 노동 활용도를 상향 조정하는 한편 돌봄 체계 강화와 치매 국가책임제 등 의료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아울러 사회보장 및 연금개혁으로 재정건전성 확보, 연금 및 건강보험제도를 지속가능하게 개선하고 지자체는 문화·복지·스포츠·시스템 및 프로그램을 개발해 고령층을 위한 분위기 및 공간을 만들어 주고 여가 시간을 보내면서 즐길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고령층이 건전한 사고와 건강한 생활로 즐거운 시간을 보낼수 있게 해 치매, 우울증, 자살을 예방하면 밝은 사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생각 더하기] 서해5도 주민들도 명절 고향길 갈 권리를

병오년 설 연휴 전날인 2월13일. 이날 새벽부터 연안여객터미널은 사람들로 북적댔다. 민족 최대의 명절 설날을 맞아 고향을 찾는 옹진섬 주민들이었다. 오랜만에 고향을 찾는 사람들의 얼굴은 들떠 있었다. 저마다 양손 가득 선물꾸러미를 들고 있었고 터미널에서 만난 친구, 친지들이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의 표정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인천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던 1980년대의 악몽이 떠올랐다. ‘안개주의보 때문에 배가 지연된다’는 방송이 나오고 만 것이다. 그렇게 오전 8시30분 출발해야 하는 배의 출항시간이 오전 11시까지 늘어졌고 결국 ‘출항통제’라는 방송이 나왔다. 마음을 졸이며 출항을 기다리던 사람들이 뒷모습을 보며 나 역시 인파 속에 휩쓸려 여객터미널을 나왔다. 다음 날인 14일 다시 연안부두를 찾았다. 방송에선 오늘까지 안개와 풍랑주의보로 고향 방문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말과 함께 오전 9시, 10시, 11시까지 대기하라는 방송만 나왔다. 또다시 불안함과 아쉬움, 화가 뒤섞인 감정이 속에서 소용돌이쳤다.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이 하나둘 힘없는 표정으로 돌아서려는 순간 ‘출항통보가 났다’는 방송이 터져 나왔다. 터미널에 있던 사람들은 마치 우리나라 선수가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이라도 딴 것처럼 “와아” 하고 환호성을 질렀다. 민선 7기 옹진군의원이던 시절 ‘시계 완화 촉구결의안’을 국회에 건의한 적이 있었다. 시계 제한을 1㎞에서 700m로 완화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즉, 1㎞의 시계가 확보돼야 배가 뜨는데 700m만 보여도 배를 띄울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었다. 자연인으로 돌아와 백령주민으로 살고 있는 지금 다시 한번 시계 완화를 촉구한다. 과거와는 달리 현재 항법장치가 첨단화됐고 자율주행까지 일상화된 정보기술(IT) 강국 대한민국에서는 시계를 완화해도 충분히 정상 운항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야간운항을 허가해야 한다. 대한민국에서 해상 야간운항이 금지된 곳은 서해5도 항로가 유일하다. 대형 여객선의 건조와 운항도 시급하다. 5천t급 카페리호가 취항해 오후 10시 인천에서 출항해 오전 6~7시 섬에 도착하거나 역으로 섬에서 출발해 육지에 도착할 수 있다면 섬 주민들은 명절에 고향을 오가는 것은 물론이고 육지와 일일생활권으로 연결돼 백령, 대청, 소청 주민들의 해상교통주권이 보장될 것이다. 해상교통 개선을 위한 제안을 하나 더 한다면 여객선 운임을 현실화해야 한다는 점이다. 현재 ‘인천i-바다패스’ 제도시행으로 인천시민은 편도 1500원, 타지 사람들은 1박 이상을 하는 조건으로 뱃삯의 70%를 할인해주고 있다. 이러다 보니 배표를 예약하고 나타나지 않는 ‘노쇼’가 비일비재해 정작 배표가 필요한 사람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또 부담 없이 섬을 오가며 쓰레기를 마구 버리고 불법 해루질을 하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뱃삯을 올려 차액을 지역상품권으로 되돌려주는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서해5도 주민들도 명절에 마음 졸이지 않고 사랑하는 가족, 친지를 만날 수 있는 날을 기다려본다.

[생각 더하기] 인천지역 경제 해법은 ‘인천공항’

공항이 도시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과연 어디까지일까. 이제 공항은 단순한 여객의 이동 통로를 넘어 도시의 생존과 성장을 결정짓는 거대한 경제 엔진으로 진화했다. 2024년 기준 인천국제공항이 인천지역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실로 막대하다. 항공 운송과 공항 운영은 물론이고 관광, 레저 등 연관 산업을 포함한 경제적 가치는 약 51조원에 달한다. 이는 인천지역 명목 지역내총생산(GRDP)의 약 41%에 육박하는 수치다. 취업 유발 효과 또한 약 21만명으로 인천 전체 취업자의 12%가 공항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다. 인천공항은 단순한 기반시설이 아니라 지역경제를 떠받치는 거대한 산업 플랫폼이자 최대의 고용처인 셈이다. 이제 인천시는 이 거대한 동력을 지역경제 전반으로 확산시키고 도시의 삶과 유기적으로 융합할 수 있는 전략적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사실 지금까지 인천공항의 비약적인 성장은 정부의 국제선 집중 정책과 내국인 항공 수요의 폭발적 증가, 그리고 저비용항공사(LCC)의 급성장이라는 삼박자가 맞물린 결과였다. 하지만 이러한 ‘여객 중심’의 수익 구조는 외부 환경 변화에 대단히 취약하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있다. 우리는 이미 사스(SARS), 글로벌 금융위기, 그리고 전 세계를 멈춰 세운 코로나19 팬데믹을 통해 그 취약성을 뼈저리게 경험했다. 특히 코로나19 시기 공항 여객 수요는 무려 98% 급감했다. 연간 수천억원 규모의 흑자를 기록하던 공항이 하루아침에 대규모 적자의 늪에 빠지는 것을 목격하며 우리는 공항의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함을 깨달았다. 단순히 사람과 짐을 실어 나르는 공간을 넘어 스스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공항경제권’으로의 진화가 절실해진 것이다. 세계 주요 공항은 이미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공항을 중심에 두고 다양한 산업을 융복합하고 있다. 싱가포르 창이공항은 초대형 복합문화공간 ‘주얼 창이’를 통해 공항 자체를 세계인이 찾는 목적지로 만들었다. 네덜란드 스키폴공항은 고도화된 물류 네트워크와 첨단 산업 클러스터를 결합해 글로벌 기업을 불러 모으고 있으며 일본 하네다공항 역시 공항 인접 지역을 연구개발(R&D)과 혁신 산업의 거점인 ‘하네다 이노베이션 시티’로 육성 중이다. 이들에게 공항은 비행기를 타기 위해 거쳐 가는 경유지가 아니라 비즈니스가 일어나고 문화가 소비되는 도시 그 자체다. 인천 역시 공항이 주도하고 민간이 동반 성장하는 비즈니스 허브로 거듭나야 한다. 항공기정비(MRO), 관광·마이스(MICE), 스마트 물류, 첨단 항공산업 클러스터를 공항경제권 내에 집적시켜야 한다. 공항을 중심으로 한 창업 생태계와 고용 시장이 활성화될 때 인천공항은 비로소 인천을 넘어 대한민국 경제의 실질적인 중심으로 기능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의 약 70%가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들이 인천에 머무는 비율은 단 6.3%에 불과하다. 서울, 경상, 경기, 제주에 이어 전국 5위에 그치는 초라한 성적표다. 대한민국 최대의 경제자유구역을 보유하고 전 세계 190여개 도시를 연결하며 비행시간 3시간 이내에 61개 핵심 도시가 포진해 있는 천혜의 요충지 인천으로서는 실로 뼈아픈 현실이다. 인천은 이제 ‘관문’이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기회비용을 되찾아 와야 한다. 단순히 통과하는 도시가 아니라 사람이 머물고 산업이 꽃피며 양질의 일자리가 쏟아지는 ‘공항 중심 도시’로 변모해야 한다. 공항의 경쟁력이 곧 도시의 경쟁력이 되는 시대다. 인천 경제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할 미래지향적인 선택이 필요한 시점이다. 인천공항이 인천의 자부심을 넘어 글로벌 경제의 표준이 되는 길, 그 길 위에 인천의 내일이 있다.

[생각 더하기] 평화·기회 결합될 도시, 포천

경기도가 2월11일부터 3월10일까지 도내 8개 시·군을 대상으로 ‘평화경제특구’ 후보지 공개 모집을 하고 있다. 이번 공모는 단순한 지역개발 사업이 아니다. 접경지역이라는 이유로 수십년간 감내해 온 안보 부담과 구조적 제약에 대해 국가가 어떤 방식으로 응답할 것인지를 가늠하는 중요한 정책적 분기점이다. 이 질문 앞에서 포천은 더 이상 뒤로 밀려나서는 안 된다. 포천은 법적으로 수도권에 속해 있다. 수도권정비계획법에 따른 각종 규제는 예외 없이 적용돼 왔다. 그러나 산업 인프라, 인구 유입, 재정 여건, 도시 기능 어느 하나 수도권다운 혜택을 온전히 누려본 적이 없다. 군사시설보호구역, 사격장과 훈련장, 반복되는 소음과 진동, 출입 통제와 토지 이용 제한은 포천시민의 일상이었다. 국가는 안보를 이유로 포천의 발전 가능성을 제약해 왔고 포천은 그 제약을 오랜 시간 감내해 왔다. 이제는 분명히 짚어야 한다. 안보를 위해 희생이 요구됐다면 그에 대한 보상 역시 국가의 책임이라는 점이다. 같은 접경지역으로 분류되고 이번 평화경제특구 후보지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는 고양·파주·김포·양주와 포천의 현실은 분명히 다르다. 이들 도시는 이미 자족 기능을 갖춘 성장 궤도에 올라섰고 산업과 인구, 도시 인프라 면에서 포천과는 다른 단계에 도달해 있다. 접경이라는 행정적 분류만으로 모든 지역을 동일선상에 놓고 정책을 설계하는 것은 형평이 아니다. 국가 전략사업은 가장 절실한 곳에 우선 배치돼야 하며 평화경제특구 역시 그 원칙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 특히 이번 평화경제특구 지정과 관련해서는 현재 포천시가 유치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 기회발전특구와의 정책적 연계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기회발전특구는 기업의 이전과 대규모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세제 감면, 재정 지원, 규제 특례, 정주 여건 개선 등을 종합적으로 제공하는 제도로 포천시 역시 이를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기 위해 지속적인 준비와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기회발전특구와 평화경제특구가 함께 지정되면 정책 효과는 단순한 합이 아니라 상호 증폭되는 시너지로 나타날 수 있다. 평화경제특구가 접경지역의 안보·평화·경제를 결합한 국가 전략 공간을 제시하는 제도라면 기회발전특구는 그 공간 안으로 기업과 자본을 실제로 유입시키는 강력한 실행 장치가 된다. 두 특구가 결합될 경우 포천은 국가 전략사업의 실증과 사업화, 산업 집적과 일자리 창출이 동시에 이뤄지는 핵심 거점으로 도약할 수 있다. 이는 접경지역 정책이 선언을 넘어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가 될 것이다. 포천은 이미 군사·안보 인프라가 도시 전반에 내재된 지역이다. 이를 규제의 대상으로만 둘 것이 아니라 방위산업과 안보 기술, 드론·로봇, 재난·안전 분야 등 첨단 산업의 실증과 제조, 인력 양성이 집적되는 공간으로 전환해야 한다. 여기에 평화경제특구의 정책적 틀과 기회발전특구의 투자 유인책이 함께 작동한다면 접경지역의 구조적 한계를 기회로 전환하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할 수 있다. 이는 포천만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수도권 과밀 해소와 접경지역 안정이라는 국가적 과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합리적인 전략이기도 하다. 한편 경기도는 이번 평화경제특구 후보지 선정 이후 그 결과를 토대로 ‘경기도 평화경제특구 개발계획 수립 연구용역’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이 연구용역은 형식적인 절차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접경지역이 실제로 겪어온 제약과 희생, 그리고 각 지역이 가진 잠재력을 어떻게 정책 패키지로 묶어 투자와 일자리로 연결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계도가 돼야 한다. 특히 포천은 수도권 규제와 안보 제약이 중첩된 지역인 만큼 이 현실이 초기 단계부터 충실히 반영되지 않는다면 평화경제특구의 실효성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필자는 포천시의회 의장으로서 평화경제특구 유치를 위한 노력에 어떠한 역할도 아끼지 않을 것이다.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면 적극 나서고 정책적 논의와 공론화가 요구된다면 그 책임을 회피하지 않을 것이다. 동시에 집행부 역시 이번 공모 대응을 단순한 형식적 신청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평화경제특구와 기회발전특구의 연계를 포함해 포천이 무엇을 할 수 있고 국가가 무엇을 얻게 되는지를 분명히 보여주는 전략적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포천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 평화경제특구는 먼 미래의 구상이 아니라 지금 반드시 잡아야 할 현재의 기회다. 국가가 안보를 이유로 포천의 발전을 제약해 왔다면 이제 국가는 정책으로 그 책임을 응답해야 한다. 그리고 그 응답은 선언이 아니라 지정이어야 한다. 평화와 기회가 결합될 도시, 포천은 선택의 대상이 아니라 답이어야 한다.

[생각 더하기] 쿠팡 사태가 통상 이슈가 되는 이유

전순환 중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前 한국무역학회장 유럽연합(EU)이 최근 플랫폼 시장의 질서를 재편하기 위해 강력한 규제를 시행하자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이를 미국 기업을 겨냥한 차별적 조치로 규정하며 통상 긴장을 예고했다. 국제 통상 관계의 상호 신뢰가 마찰의 불꽃으로 변하는 변곡점은 바로 이 대목이다. 규제 자체의 옳고 그름을 넘어 그 조치가 특정 국가나 기업을 겨냥했다는 ‘신호’로 읽히는 순간 국내 정책은 글로벌 신뢰를 흔드는 통상 이슈로 비화한다. 최근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을 둘러싼 정부의 파상공세 역시 이 같은 맥락에서 차분히 짚어볼 필요가 있다. 개인정보 보호라는 정책 목표의 정당성과는 별개로 이 사안은 이미 국내 담론을 넘어 국제 투자 및 통상 질서의 시험대에 올랐기 때문이다. 디지털 플랫폼 규제는 현대 통상 질서와 분리될 수 없다. 개인정보 보호는 소비자 권익인 동시에 외국인 투자 보호, 비차별 원칙, 그리고 규제의 예측 가능성과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해외에서는 이번 사안을 단순한 개별 기업의 일탈로 보지 않는다. 정부 부처 11곳이 동시다발적으로 개입하고 경찰과 국회까지 전례 없는 강도로 가세한 현 상황은 단순한 법 집행을 넘어 미국계 디지털 기업 전반에 대한 한국 정부의 규제 기조를 가늠하는 척도가 되고 있다. 과거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을 겪은 여타 기업 사례와 비교해 봐도 이번 대응은 유독 이례적이며 압도적이다. 이러한 전방위적 압박은 정책 당국의 의도와 무관하게 해외시장에서 특정 국적의 기업을 겨냥한 ‘과잉 대응’이라는 강력한 신호로 인식되기 쉽다. 국제 통상 질서에서는 정부가 내세우는 정책의 정당성보다 더 빠르게 확산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인식이다. 그리고 일단 형성된 인식은 정부의 해명만으로 쉽게 되돌릴 수 없다. 특히 한미 통상 환경이 민감한 시점이라는 점이 우려를 더한다. 관세와 공급망 이슈로 긴장이 고조된 상황에서 특정 기업에 대한 과잉 대응 논란은 불필요한 외교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미 미국 내 투자자와 의회 및 행정부 차원에서 이 사안이 언급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따라서 정부는 대응의 ‘강도’를 높이는 데 골몰할 것이 아니라 고도의 ‘행정적 관리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쿠팡에 대한 조사는 국내법에 따라 엄정히 집행하되 그 과정이 국제사회가 납득할 만한 절차적 합리성을 갖추고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이는 특정 기업을 비호하기 위함이 아니라 한국의 정책 환경이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하다는 점을 국제사회에 공표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결국 지금 필요한 것은 감정적 대응이나 과도한 공권력의 결집이 아니다. 국내 정책 목표를 관철하면서도 국제사회의 오해를 사지 않는 정교한 균형 감각이다. 한국의 규제 행정이 ‘국내용 정서’에 머무를지, ‘글로벌 규범’으로 인정받을지는 이번 사안을 다루는 정부의 태도에 달려 있다.

[생각 더하기] 한국식 옴부즈만제도의 필요성

현재 전 세계는 글로벌 무한 경쟁시대에 돌입하고 있다. 수일 전 트럼프는 다보스포럼에서 한국과 일본을 포함한 미국 중심의 보호관세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한국이 이제 글로벌 경제 강대국으로 자리매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한국은 아직도 동남아 및 남미 국가 수준의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특히 지난 윤석열 정부의 12·3 비상계엄 선포는 전 세계인의 눈에는 한국이 정치와 경제 및 문화가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인식을 심었다. 한국이 정치적으로 발전하지 못하는 것은 대통령 중심제의 삼권분립제도가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중 입법부 다수당의 횡포로 인해 민주주의가 퇴보하고 있다. 입법부와 행정부의 교착 상태에서 입법부의 독주를 막기 위한 행정부 대통령의 잘못된 판단은 12·3 비상계엄 선포로 이어졌다. 방법론적 차원에서 법의 한계를 넘어선 대통령의 권한 남용이 역사의 오점으로 남았으며 정권 역시 막을 내렸다. 그렇다면 입법부의 독주를 막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국회의원 수를 줄이는 것 역시 한 방법이다. 그중 현재 48명인 서울시의 국회의원 수를 4명(동서남북)으로 줄여야 한다. 서울시는 광역 및 기초지방의회가 충분히 정책을 대신할 수 있다. 나머지 지역의 국회의원 수는 그대로 유지하면 된다. 그리고 그 대안으로 국회의원 44명의 비용을 이용해 한국식 옴부즈만제도를 체택해야 한다. 옴부즈만제도란 유럽에서 공직자의 비리를 감시하기 위한 제도다. 현재 서울시 등에서 옴부즈만제도를 채택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필자가 주장하는 옴부즈만제도는 새로운 제도를 마련하고자 한다. 옴부즈만제도에서 선택하는 감시자는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열정을 가진 사람들에게 자격을 부여해야 한다. 그리스의 철인 플라톤은 정치는 예술 중의 예술이라고 한다. 그의 이상국가론에서 철인정치를 주장하면서 정의를 가진 자들이 정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의, 즉 지혜, 용기, 절제 및 열정을 겸비한 사람들만이 사회정치 발전을 이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공정한 판단을 위해서는 정의를 갖춘 감시자로 선택해야 한다고 본다. 둘째, 국회의원 자격은 현재 당이 규율을 정해 공천하고 있다. 그러나 장래 공천은 국가가 엄격한 절차(인격 및 전문성)를 거쳐 통과한 자에게만 국회의원 출마할 자격을 부여해야 한다. 이러한 규정은 여야의 정치권 및 국민 공청회, 시민단체 등을 포함해 국민 전체의 의사를 반영, 결정해야 한다. 현재 케이팝을 비롯해 K-콘텐츠가 전 세계를 주도하고 있다. 우리의 정치가 경제와 같이 선진화된다면 이제 한국은 글로벌 초강대국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할 것으로 사료된다.

[생각 더하기] 전쟁의 신이 된 알고리즘

필자는 오랫동안 안보와 보훈의 현장에서 교육을 해왔다. 전쟁의 그 무게와 책임을 어떻게 시민에게 전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올바른 판단으로 자신을 지키고 결국 나라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르치고, 쓰고, 조용히 활동해 왔다. 그 과정에서 점점 분명해진 질문이 있다. 기술이 전쟁의 양상을 바꾸는 시대에 인간의 판단은 과연 어디까지 책임질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다. 이 질문은 오늘날 우크라이나전쟁을 바라보며 더욱 무겁게 다가온다. 인류의 전쟁사는 언제나 도구의 진화와 함께 잔혹해졌다. 돌과 창에서 화약으로, 다시 핵무기로 이어진 파괴의 역사는 결국 ‘더 효율적으로 죽이는 방법’을 향해 질주했다. 그리고 지금, 전쟁은 인공지능이라는 차가운 두뇌를 장착한 채 전혀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오늘날의 전장은 더 이상 병사들의 함성이나 포연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보이지 않는 알고리즘이 표적을 고르고, 전기를 끊고,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테크노 전장’의 실험실처럼 보인다. 전쟁은 이제 물리적 충돌을 넘어 시스템과 인식 자체를 무너뜨리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과거의 전쟁이 영토를 점령하고 국기를 꽂는 일이었다면 알고리즘이 주도하는 전쟁의 목표는 ‘시스템의 총체적 붕괴’다. 가장 먼저 공격받는 것은 문명의 혈관인 에너지 인프라다. 인공지능은 어디를 끊어야 가장 넓은 지역이 암흑에 빠지는지, 어떤 순서로 차단해야 복구 의지를 꺾을 수 있는지를 계산한다. 미사일이 날아오기 전 이미 사이버 공간에서는 전기가 끊기고 난방이 멈춘다. 도시는 서서히 얼어붙는다. 더 서늘한 장면은 인간의 정신을 향한 공격이다. 딥페이크로 조작된 지도자의 영상과 AI 봇이 퍼뜨리는 거짓 정보는 무엇이 진실인지 판단할 시민의 능력을 마비시킨다. 이는 단순한 선전이 아니라 공동체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인지 전쟁이다. 총성이 울리기 전 전선은 이미 우리의 스마트폰 화면과 생각 속으로 옮겨 왔다. 전장에서의 살상 방식 또한 점점 기계의 얼굴을 닮아간다. AI 드론은 은폐된 병사의 체온을 순식간에 포착하고 얼굴 인식 기술은 생명을 데이터로 치환한다. 이름과 사연을 가진 인간은 ‘처리해야 할 정보’로 바뀐다. 연민과 망설임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은 확률과 연산뿐이다. 이 장면 앞에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전쟁의 효율이 극대화될수록 인간의 존엄은 어디에 남는가. 알고리즘의 오판으로 무고한 민간인이 희생될 때 그 책임은 누구의 몫인가. 그동안의 교육 현장에서 필자는 한 가지를 반복해 강조해 왔다. 나라를 지키는 힘은 언제나 무기보다 먼저 사람의 판단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이다. 기술이 아무리 정교해져도 그것을 멈출지 밀어붙일지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인간이다. 전쟁의 신이 된 알고리즘은 지금 우리에게 묻고 있다. 편리함과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넘겨준 판단을 우리는 다시 되찾을 준비가 돼 있는가. 기술은 중립일지 모르지만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은 중립일 수 없다. 이 시대의 마지막 방어선은 코드가 아니라 깨어 있는 시민의 의지다.

[생각 더하기] 구조적 차별 넘어 ‘생존·존엄’

지난해 10월 여성가족부가 성평등가족부로 이름을 변경했을 때 반가웠다. 성평등부보다는 미흡하지만 그래도 새 정부 들어 조금씩 제 길을 찾아가나 싶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성평등정책 전반을 기획하고 추진하는 주무 부서인 성평등정책과가 밀려나고 그 자리를 남성 역차별을 조사 및 분석하기 위해 신설된 성형평성기획과가 대통령실의 의지로 주무 부서를 꿰찼다. 역차별은 사전적 의미로 ‘부당한 차별을 받는 쪽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한 제도나 장치가 너무 강해 오히려 반대편이 차별을 받음’이다. 여성들이 차별과 안전에서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인데 대통령만 모르고 있나. 성차별은 임금이나 승진 같은 지표를 넘어 이제 여성의 생존과 존엄에 대한 근본적인 위기로 치닫고 있다. 차별금지법은 아직도 제정되지 않았다. 한국의 심각한 구조적 차별은 잘 알려져 있다. 세계경제포럼의 2025년 세계 성격차 보고서에 나타난 한국의 성별 임금격차는 29.3%, 회원국 평균 11.3%의 두 배가 넘는 압도적 1위다. 영국의 유리천장지수에서도 12년 연속으로 조사 대상국 중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는 여성을 동등한 경제 주체로 인정하지 않고 차별함으로써 가부장제를 유지하려는 사회적 분위기를 방증한다. 더욱 참혹한 것은 여성들이 마주하는 안전의 격차다. “남자는 여자가 무시할까 봐, 여자는 남자가 죽일까 봐 두려워한다”는 캐나다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의 말은 현재의 젠더 위계를 적확히 포착한다. 한국의 여성들은 남자의 기분을 망쳤다는 이유로 삶의 기본과 생명까지 위협받는다. 대검찰청 강력범죄 통계를 보면 흉악범죄 피해자의 85~90%가 여성이다. 지난해 한국여성의전화 상담 통계는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해 살해당한 여성이 최소 138명으로 1.3일에 한 명꼴로 여성들이 죽음의 문턱에 서는 것을 보여준다. 최근 급증한 딥페이크 성범죄 또한 여성을 성적 도구로 소비하려는 여성 혐오적 인식이 기술 발전과 결합해 폭발한 결과다. 여성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졸업 앨범에서 얼굴을 지우는 등 일상 속에서 불안함을 전제로 살아가며 자신의 의견조차 당당하게 말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이런 비참한 현실 앞에서 성평등가족부가 남성 역차별 운운하는 것이 말이 되는가. ‘여성도 군대 가라’는 정치권의 젠더 위계 물타기 대신 병역을 1년 반의 억울함과 징벌처럼 생각하게 만든 군대의 비민주적 형태부터 바로잡기 바란다. 단순히 역차별로 치환한다고 해서 남성의 상대적 박탈감이 해결되지 않는다. 지난해 12월 스위스의 ‘여성 징병’ 국민투표에서 여성에게는 이미 돌봄과 가사 노동이라는 무급 노동이 있기에 추가 부담을 지울 수 없다는 이유로 반대가 84.15%나 나온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성차별과 여성 혐오의 해소는 특정 성별만을 위한 시혜가 아니다. 공동체의 절반이 공포와 차별 속에서 산다면 그 사회의 미래는 너무나 암담하다. 디지털 성범죄와 혐오 표현에 강력히 대처하고 성평등 교육을 의무화해야 한다. 여성이 안전하게 존엄을 지키며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유일한 길이다.

[생각 더하기] 붉은 무지개로 차별을 넘어

우리는 모두 일상 속에서 차별을 경험한다. 사실 차별 속에서 일상을 경험한다. 여성이어서, 장애인이어서, 성소수자여서, 민족이 달라서, 노동자여서, 키가 커서, 작아서, 살이 쪄서, 너무 말라서…. 모두 다른 조건 때문에 차별받지만 우리는 이른바 ‘정상’이 아니어서 차별받는다. 이 모든 부당한 차별을 모두가 견디고 살고 어쩌면 익숙해진다. 우리가 딛고 선 이 땅에는 너무나 많은 차별이 존재한다. 차별 속에서 일상은 그저 스쳐 지나가기만 하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광장은 지금까지 우리에게 평등수칙의 이름으로 든든한 성벽을 제공하는 안전하고 평등한, 하지만 닫힌 공간이었다. 광장에 나와 노래를 부르고 스스로를 드러내는 일이야말로 스쳐 지나가는 일상이었다. 광장에서 본 세상은 금방이라도 모두가 해방될 듯한 강력한 에너지를 품고 있는 공간이었다. 우린 자유로웠고, 우리 자신으로 있을 수 있었고, 모든 게 다 잘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탄핵 이후 광장이 쪼그라들고 그 밖에서 다시 마주한 세상은 차갑기 짝이 없었다. 광장의 결과로 탄생한 대통령은 광장의 요구보다는 자본의 요구와 ‘협치’를 중요시 여기며 중도보수 대통령이 되기를 자처했다. 그런 대통령이 대표하는 사회의 일터와 학교에서, 그리고 더 많은 세상과 부딪치는 공간은 마치 광장을 전혀 모르는 듯했다. 거기서 뼈가 시리도록 느꼈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차별을 경험한 게 아니었다. 평등을 겪고 나서는 더욱 확실해졌다. 우리는 차별로 가득한 세상에서 평등수칙이라는 일상에 잠시 스쳐 지나갔을 뿐이었던 것이다. 평등수칙이라는 너무도 달콤하고 꿈같은 일상에서 벗어난 우리는 또다시 비일상의 억압 속에 내던져졌다. 윤석열이 1년 전 계엄령을 내리기 전에도 우리의 삶은 언제나 계엄 상태였던 것이다. 민주당은 일상으로의 복귀를 외쳤지만 애초에 차별받고 혐오당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에게 일상이란 없었다. 존재하지 않은 것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건 절벽에 발을 내딛는 것과 같다. 일상은 우리가 이제부터 만들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연대와 투쟁의 무기로 낡은 세상을 물리치고 새로운 세상, 새로운 일상을 쟁취해야 한다. 복귀할 일상을 우리가 만들어 내야 한다. 우리가 돌아갈 일상은 차별금지법이 있는 일상, 동성혼이 법제화된 일상, 혐오 발언을 하면 안 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있는 일상, 비동의강간죄가 있는 일상, 법적 성별 자기 기입제가 있는 일상이다. 하지만 이 ‘일상’은 이 세상에 없다. 그래서 차별철폐대행진이란 결국 이 세상을 철폐하기 위한 행진이 돼야 한다. 우린 차별을 넘기 위해 이 세상을 넘어야 한다. 광장에서 넘쳐 흐른 평등의 파도로 세상을 뒤덮어 지우기 위해, 혐오의 먹물로 점철된 세상을 뒤집어엎기 위해. 이재명이 만든 개혁의 허상을 지워내고, 이준석이 만든 새로운 혐오를 쫓아내고, 윤석열이 만들어낸 노골적인 억압의 반동으로 우리의 권리를 찾아 나가며. 우리는 그렇게 세상에서 차별을 철폐해 나갈 것이다. 우리의 행진이 세상이 될 것이다.

[생각 더하기] 도시 성장, 개발과 공익의 ‘균형’

미래 도시는 단순히 외형적 성장이 아닌 도시의 활력이 시민 삶의 질을 높이는 질적 성장을 추구해야 한다. 도시개발은 강력한 동력이지만 이 역동적인 힘이 공익이라는 지속가능한 가치와 균형을 이뤄야만 진정한 도시 번영이 가능하며 미래 세대까지 이어질 수 있다. 용도지역 변경 등으로 발생하는 ‘계획 이익’은 도시 발전에 활용하는 한정적인 공적 자원이다. 도시계획의 관점에서 단기적인 재정 이익에만 집중하면 학교, 상하수도, 공원 등 미래 세대를 위한 필수 인프라 부족을 초래해 도시의 미래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 반면 자치단체가 특혜 논란을 지나치게 의식해 도시관리계획 변경을 신중하게 다루는 행정의 경직성이 도시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오히려 공공의 이익을 실현할 기회마저 잃게 만드는 비효율성을 낳는다. 결국 도시 관리에서 균형 잡힌 시각을 갖지 못하면 발전 대신 정체를 가지고 온다. 그러므로 도시 성장을 위해서는 시장 변화와 수요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행정이 필수다. 이 유연성이 특혜로 변질되지 않도록 의사결정 과정에서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해 시민 신뢰를 얻는 것이 행정의 핵심이다. 유연성을 상실한 계획은 민간 투자와 혁신 동력을 잃게 해 도시 경쟁력을 약화시킨다. 도시관리계획 변경은 도시 혁신을 위한 필수 수단으로 사회·경제적 변화 그리고 지역 수요를 반영해야 한다. 자치단체는 민간의 창의적인 개발 동력을 지원하되 그로 인해 발생하는 이익 일부를 적정하게 환원받아야 한다. 개발과 공공기여의 균형 잡힌 ‘조정능력'을 보여주는 것이 필수다. 이 공공기여는 개발 이익을 공원, 도서관, 주차장 등 시민이 누릴 수 있는 공공복리로 전환하는 현명한 장치다. 결론적으로 공공기여 사전협상제도의 성공을 위해 지방자치단체의 전문성 강화는 필수다. 도시의 질서 유지와 성장동력을 위해서는 공정성 확보와 도시관리의 효율성이라는 두 핵심축에서 유연한 전략이 필요하다. 이를 위한 네 가지 정책 제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 정책 연계성 강화다. 도시계획, 교통, 환경 등 전문지식을 갖춘 전문가를 배치해 환수하는 공공기여를 전략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미래 수요에 맞춰 부족한 교육, 복지, 문화 인프라 등 지역에 필요한 시설로 공공기여를 연계하는 방안을 적극 찾아야 한다. 둘째, 협상 역량 강화다. 잦은 순환 보직을 지양하고 전문가 배치를 확대해 민간과의 협상 역량과 행정 서비스의 일관성을 강화해야 한다. 셋째, 공공기여 성공의 열쇠는 상호 신뢰다. 공공기여 과정에서 자치단체와 민간 등 상호 신뢰가 부족한 공공기여는 행정적 마찰 비용을 증가시키고 예측 불가능한 추가 이행 요구를 낳아 사업이 지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공공기여제도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 자치단체는 법과 조례를 벗어난 임의적 부담 요구를 금지해 공정성을 확보해야 하며 투명한 업무 처리 원칙을 확립해 자의적이거나 불공정한 행정 판단을 배제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리가 개발과 공익의 균형을 깊이 있게 고민하는 이유는 단순히 과거의 경험에 머무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올바른 길을 찾기 위함이다. 과거를 되돌아보는 성찰의 과정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현명한 방향 설정의 핵심이다. 결국 도시 성장은 개발과 공익 확보라는 두 기둥 위에 서 있을 때 비로소 오래도록 지속할 수 있다.

[생각 더하기] 사설 장애인 이동권 위한 민주주의

1981년 유엔 총회에서 ‘장애인의 완전한 참여와 평등’을 주제로 12월3일을 세계장애인의 날로 선포했다. 매년 정부는 이날을 전후로 세계장애인의 날을 기념하는 페스티벌을 열고 여러 기념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장애인의 삶을 돌아봤을 때 명확한 것은 세계장애인의 날을 ‘기념’하는 것만으로는 장애인의 완전한 참여와 평등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에서는 매년 12월3일 세계장애인의 날에 거리로 나선다. 1박2일간 집회와 노숙 농성을 결의하며 장애인의 권리를 외쳤다. 지난해도 국회 앞을 낮부터 밤까지 지켰다. 그리고 국회의사당역에서 100여명의 활동가가 남았을 무렵 비상계엄이 선포됐다. 전장연 활동가들은 비상계엄이 해제되고 다음 날까지 국회 앞을 지키며 민주주의를 외쳤고 하루도 빠짐없이 광장에 나갔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광장에서 민주주의를 말하고 ‘평등’, ‘정의’, ‘차별 철폐’가 어느 때보다도 뜨겁게 울려퍼졌던 날들이 지나간 이후에도 장애인 권리를 말하는 활동가들은 그 자리에 남아 있다. 올해 12월3일에도 여전히 추위 속에서 국회 앞을 지키며 밤을 새우는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단 한 가지다. 장애인의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하는 사회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장애인은 아직까지도 이동권, 노동권을 비롯해 지역사회에서 평범하게 살아갈 권리조차 침해받고 있다. 비장애인들은 자유롭게 살아가는 동네에서조차 위험과 불편에 노출돼 시설로 배제되고 격리돼 왔다. 경기도 또한 그렇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장애인 거주시설이 있는 데다 저상버스는 아직도 탑승이 어렵고 장애인 특별교통수단도 한번 타려면 2시간씩 기다려야만 한다. 경기도는 2021년 당시 이재명 경기도지사 이름으로 ‘경기도 장애인 탈시설 자립생활 선언문’을 선포했으나 여전히 정책과 예산은 부족하고 단기적인 지원에 머물러 있다.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이웃으로 살기 위해 필요한 그 어떤 정책도 충분하게 보장돼 있지 않다. 정책을 만들고 결정하는 과정은 대부분 비장애인 위주로 돼 있고 장애인에게 돈을 쓰는 건 후순위라는 시혜적인 시선이 만들어낸 결과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누군가를 빼놓고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어떤 약자를 배제하고 먼저 챙길 수 있는 평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20여년 전 휠체어 장애인이 지하철 리프트를 이용하다 추락해 사망하는 참사에서 장애인의 이동권 투쟁이 시작됐다. 투쟁으로 만들어진 지하철 엘리베이터는 장애인을 비롯한 노인, 유아차 이용자 같은 사람들이 이동할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했다. 장애인의 권리는 장애인만의 권리가 아니다. ‘누구도 뒤에 남겨 두지 않을 때’ 모두가 함께 평등하고 민주적인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다. 모두가 존엄하게 살아가기 위한 차별 철폐의 길을 지금부터 함께 해나가야 하는 이유다.

[생각 더하기] 당신의 이름으로 짓는 미래

‘뚜안’, ‘강태완’, ‘속헹’, 이 이름을 아는가. 누군가에겐 낯설 수도 있는 이름, ‘뚜안’, ‘태완’, ‘속헹’으로 불렸던 청년들은 죽음을 맞이하고서야 이름이 알려졌다. 그들이 꿈꾸던 미래와 수고로웠던 일상, 사랑하는 이들과 나눴던 희망과 좌절의 이야기도 죽음의 소식 뒤에 우리에게 다가왔다. 뚜안은 10월28일 대구 성서산업단지 안의 자동차부품공장에 들이닥친 대구출입국·외국인사무소의 강제 단속으로 목숨을 잃었다. 25세의 여성, 대학 졸업 후 다른 대학으로 편입까지 해 학사 학위를 두 개나 받고 취업을 준비하던 청년, 사랑하는 가족, 친구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살아왔다는 것까지만 들으면 주변 여느 사람들과 별다를 것이 없다. 좋아했다던 볼 터치, 늘 덮었던 무릎담요는 평범함 속에서도 자신만의 다름으로 빛났을 뚜안을 상상케 한다. 뚜안은 단지 공장에서 일했다는 이유만으로 불안에 떨다 고통 속에서 죽음에 이르렀다. 대구출입국은 무작위로 사람들을 체포한 뒤 ‘명단’을 대조해 미등록 노동자로 확인된 34명을 골라내 끌고 갔다고 한다. 그 무자비한 현장에서 ‘뚜안’이라는 이름은 제압해 붙잡고, 감금하고, 추방해도 되는 존재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만 불렸다. 그날 붙잡혀 간 34명의 미등록 노동자들은 단속 과정의 공포와 동료의 죽음이라는 충격적인 소식 앞에서 애도할 시간도 없이 구금되고 추방됐다. 목격자들은 그렇게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증언자로서의 자격조차 얻지 못하고 이 땅에서 사라졌다. 강태완, 다섯 살에 한국에 와서 20여년간 미등록 이주민 신분으로 살다 천신만고 끝에 안정적 체류 자격을 얻은 지 4개월여 만에 산업재해로 작년 이맘때쯤 사망한 서른두 살 청년의 이름이다. 속헹, 2020년 난방이 되지 않는 농장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한파 속에서 사망한 채 발견된 청년 여성 노동자의 이름이다. 이들의 안타까운 죽음 이후 한국 사회에서 강태완은 미등록 이주 아동을, 속헹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열악한 환경에서 살고있는 농촌 이주노동자를 상징하는 이름이 됐다.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며 우리는 그 존재의 고유함을 인정하고 사회적 존재로, 의미 있는 존재로 자리 매긴다. 뚜안과 강태완과 속헹은 출입국통계월보 속 데이터의 숫자 더미로 존재하는 체류 외국인, 미등록 체류자, 난민, 외국 국적 동포 중 하나가 아니다. 누군가의 곁에서 다정하게 이름 불리며 관계맺고 살아왔던 고유한 존재인 것이다. 11월6일 밤 세종로에서는 고(故) 뚜안을 추모하고 죽음을 초래하는 강제단속을 규탄하는 추모집회가 열렸다. 그 자리에는 고인 또래로 보이는 청년들이 다수 참석했다. 학업과 취업을 위해 애쓰며 살아가는 자신들과 다를 바 없는 뚜안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보였다. 11월5일 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국어 교원들은 ‘우리가 가르친 학생 중 하나’라며 뚜안의 죽음을 애도하며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체류권을 보장하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대구출입국의 단속 대상 명단이 차별과 분리,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한 호명이라면 그 반대편에는 내 곁에서 살아 숨 쉬는 존재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며 말 거는 다정한 호명이 있다. 피부색으로, 성별로, 나이로, 종교로, 성적 지향으로, 그 어떠함으로도 차별하거나 차별받지 않고 모두가 평등하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힘차게 외치는 이름 부름이 있다. ‘아픈 내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는 시인 박준의 시구처럼 뚜안, 강태완, 속헹, 이 이름은 차별과 혐오로 병들고 아픈 한국 사회를 치유하고 일깨우는 이름일지도 모른다. 이들의 이름으로 밥을 짓고 약을 짓고 집을 지어 든든히 연결된 존재들이 만드는 새로운 세상, 그것이 우리의 미래다.

[생각 더하기] 버스요금 인상... 반드시 서비스 개선 뒤따라야

지난달 25일부터 경기도 버스요금이 200~400원 인상됐다. 유가 인상과 인건비 상승, 차량 안전 설비 개선 투자 확대, 광역교통망 확충 등을 고려한 결정이라고 한다. 그러나 요금 인상만큼 중요한 것은 서비스 개선이다. 요금이 오르면 시민의 기대도 함께 높아지기 마련이지만 현실의 버스 서비스는 여전히 시민 눈높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하차벨을 잘못 눌렀다고 출발을 하지 않고 승객을 노려보는 사례, 급출발로 승객이 넘어져도 사과 한마디 없이 그대로 출발하는 사례, 승객들의 안전은 뒤로하고 장시간 휴대폰을 보거나 통화하는 사례, 방향지시등도 켜지 않고 차선을 넘나들며 막무가내로 끼어드는 사례, 횡단보도에서 일단 멈춤을 무시하고 지나가는 사례 등은 아직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이런 경험은 버스를 이용하는 시민들에게 불안과 불쾌감, 불신을 남긴다. 버스요금 인상 전에 열렸던 공청회에서 버스사업자 측 참석자가 “햄버거값이 오른다고 서비스 개선을 요구하느냐”고 질문하는 것을 보고 일부 버스업계 종사자의 서비스 인식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었다. 햄버거값이 오르면 사 먹지 않을 수도 있고 김밥이나 라면을 사 먹을 수도 있다. 즉, 다른 대체수단이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버스요금이 오르면 택시나 전철로 대체하기 어렵다. 전철은 노선이 제한적이며 택시나 자가용은 고령자나 청소년, 장애인 등에게는 비용이 많이 들어 대체수단이 될 수 없다. 농어촌이나 전철 택시 등이 없는 지역에서는 버스가 사실상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버스요금 인상은 단순한 가격 조정이 아니라 시민생활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공공적 요금이 인상되는 것이다. 따라서 버스업계는 이번 인상을 계기로 서비스 혁신에 나서야 한다. 급출발과 난폭운전, 불친절 문제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고 고령자, 청소년, 농어촌 주민 등 교통약자를 세심히 배려하는 문화가 확산돼야 한다. 아울러 요금 인상분은 반드시 버스 운전기사와 정비사 등 현장 노동자의 처우 개선에 반영돼야 한다. 시민들은 버스업체의 배를 불리기 위한 인상을 원하지 않는다. 현장의 근로자들이 안정되고 자부심을 느낄 때 비로소 서비스의 수준도 향상될 것이다. 버스는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라 시민의 일상과 지역 공동체를 잇는 공공의 발이다. 공공 서비스 성격이 강한 버스요금 인상이 시민에게 경제적 부담을 지운 만큼 그 이상의 서비스 개선과 책임 있는 변화가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그래야만 시민이 버스요금 인상을 받아들일 수 있고 불가피한 비용 부담을 감수할 수 있을 것이다. 승차할 때 따뜻하게 인사하는 사례, 고령자가 좌석에 앉을 때까지 출발하지 않고 기다리는 사례, 정차 전에는 일어서지 말라고 안내하는 사례, 버스카드나 현금이 없어 당황하는 시민을 친절하게 태워준 사례 등 미담이 많이 들리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생각 더하기] 이동권과 친환경

경기도의 수송 부문 온실가스 배출량은 19.3%다. 국가 전체에서 수송 부문이 차지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13%라는 점에 비춰 볼 때 심상치 않은 수치다. 자동차는 이렇게 온실가스를 신나게 내뿜으며 돌아다니는데 도시의 주인인 사람들은 이동에 제약이 있다. 특히 장애인의 이동권 쟁취 투쟁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자동차는 도시를 질주하고 사람은 최소한의 권리인 이동권마저 쟁취의 대상이 되는 상황은 상식적이지 않다. 장애인 이동권을 가로막는 가장 큰 요소는 자동차 중심 도시체계다. 똑같은 시민이지만 누군가에겐 당연한 권리이고 누군가는 쟁취해야 할 과제가 된다. 자동차 중심 도시체계는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와 사람을 분리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고 그 역할은 도로 턱과 볼라드가 수행한다. 턱과 볼라드를 통과할 수 없는 장애인들은 주저앉거나 타인의 도움으로 그 길을 건너야 한다. 대중교통은 어떨까. 장애인들의 지하철 탑승 시위로 인해 출근길이 불편하다는 호소가 담긴 보도를 어렵지 않게 접한다. 투쟁을 이어가는 당사자인 장애인과 활동보조인, 연대자는 이 시위를 ‘지하철 탑승 투쟁’이라 부른다. 누구나 운임을 지불하면 이용할 수 있는 지하철을 이용하겠다는 건데 서울교통공사는 이를 극악스럽게 막아선다. 전쟁 시기가 아닌 일상 시기임에도 장애인들에겐 보행로도, 대중교통도 넘어야 할 고지다. 결국 장애인의 이동권 투쟁은 일상에서의 전쟁이다. 결국 장애인의 이동권 투쟁은 턱과 볼라드를 넘어 모두가 평화롭게 걷고 이동하는 도시를 향한 투쟁이다. 자동차 중심 도시체계로 인해 매년 온실가스 배출량은 늘어나고 누군가는 기본권을 빼앗긴다. 그 이면에는 자동차 회사들의 생존전략이 숨어 있다. 최초의 자동차는 환경 문제의 대안이었다. 마차가 다니던 1900년대 뉴욕은 거리에 말의 분변이 끊이지 않았다. 그 대안으로 자동차가 도로를 거닐었다. 자동차 공정이 발달하며 대량생산이 가능해지자 포드사는 자사 노동자들도 자동차를 탈 수 있을 만큼 가격을 낮췄다고 자랑했다. 최근 자동차 회사들은 사람들이 빨리, 많이 자동차를 바꾸도록 종용한다.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더 크고 새로운 자동차를 사라고 시민들을 현혹한다. 친환경 에너지를 사용한다는 그린워싱도 빼놓지 않는다. 유행을 부추기는 자동차 회사 때문에 중형차에 들어가는 차체와 부품도 자원 고갈과 지구온도 상승을 가속화한다. 그 과정에서 걷는 사람들과 휠체어 장애인들의 이동권은 삭제된다. 대안은 느리고 포용적인 도시다. 자동차로 빨리 이동해야 하는 도시의 템포를 늦춰야 한다. 걷거나 휠체어를 타는 사람들이 도시를 더 많이 누벼야 한다. 자동차로 인해 생긴 턱과 볼라드, 다차선 대로를 줄여 시민들 사이에 연결성을 높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삶터 안에 주거와 일, 여가, 의료, 교육, 복지 등 사회 서비스가 있어야 한다. 파리의 15분 도시가 대표적인 모델이다. 바르셀로나의 슈퍼블록도 좋은 사례다. 슈퍼블록은 소규모 블록 안에서 대부분의 사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자동차 최고 속력은 매우 느리게 규제하는 도시정책이다. 막막하고 먼 길이지만 그렇다고 첫걸음부터 망설이면 안 된다. 우리에겐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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