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디자이너 안상수와 정우영 시인의 시집 북디자인을 위해 시인의 고향인 임실의 산골 생가를 방문한 것이 벌써 열 몇 해 전 일이다. 시인을 길러준 대지와 시어 그리고 시집을 ‘흙’의 이미지로 갈무리하는 느린 디자인이 속도의 시대를 명상하는 디자이너의 철학이었다. 현란한 표지와 띠지를 더해 독자들을 유혹하느라 각축을 벌이고 있는 독서 시장에서 시집만이라도 영혼의 가난을 추구하자는 뜻이었다. 녹록지 않은 과정과 비용이 예상됐지만 습관적인 출판 행위를 성찰해보자는 출판사의 의지도 함께했다. 흙은 획일화된 시선이나 관습에 질문을 던지는 문학의 자질에 참으로 합당한 물질이어서 섬을 만나면 모래가 오고, 산골을 만나면 바위가 오고, 논을 만나면 논흙빛 같은 다채로운 이미지를 선보인다. 탄광을 만난다면 탄광촌의 일상과 만난 예술이 색상도에 없는 오묘한 검정의 뉘앙스를 파문지게 할 것 같았다. 오래전 폐가가 돼버린 정우영 시인의 생가에서는 잿빛이었다. 마을을 산책하던 우리는 시인의 유년시절과 가족사의 내밀한 대목뿐만 아니라 그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한 권의 두툼한 소설책처럼 탐독하면서 폐가의 아궁이 벽에 묻어 있는 흙벽의 그을음에 멈췄다. 그 그을음은 가족들을 기다리며 생솔가지 불을 때던 시인의 소년시절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추억과 만난 폐가는 쓸모를 다한 공간이길 멈추고 심해의 폐어처럼 폐호흡을 하며 잃어버린 기억들을 풀어내 줬다. 폐가의 물질성이 영혼의 생가로서 생생히 복원되는 마술 같은 시간이었다. 삶을 무화시키지 않고 회복하게 하는 이 같은 흔적기관들과의 만남은 소멸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유한성의 세계에 긍지를 주는 힘이 아닌가 싶다. 이탈로 칼비노의 소설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서 주인공 마르코는 세계제국을 건설한 황제에게 이야기한다. “폐하의 손짓 한 번에 따라 하나밖에 없는 마지막 도시의 성벽들이 흠 하나 없이 높이 세워지는 동안 저는 그 새 도시에 자리를 넘겨 주기 위해 사라졌을 다른 가능한 도시, 다시 세워지거나 기억될 가망이 없는 그 도시의 재를 긁어 모을 겁니다. 그 어떤 보석으로도 보상할 수 없는 불행의 잔재들을 인식하실 수 있을 때만 폐하께서는 마지막 다이아몬드가 가져야 하는 정확한 캐럿을 계산하실 수 있을 겁니다.” 다이아몬드의 찬란한 광채에 가려진 재의 기억은 권력의지의 실현인 대도시 건설에 의해 추방당한 풍경들을 폐허가 아니라 잠재된 가능성의 세계로 있게 한다. 도시의 충격과 상실의 경험을 통해 새 장소에 자리를 넘겨 주기 위해 사라졌을 다른 가능한 장소, 다시 세워지거나 기억될 가망이 없는 장소와 연대케 한다. 그리하여 오늘, 여기의 풍경은 도래할 또 다른 질서에 의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문화적 퇴적 지층의 심연을 갖게 된다. 심연 속에서 과거와 미래가 만나고 그것은 진정한 현재의 시간이 된다. 인문지리학에선 ‘장소의 획일화’와 ‘상품화된 가짜 장소의 생산’을 무장소성의 두 가지 양상으로 보고 있다. 장소를 기능성, 효율성, 공공성의 입장에서만 바라본다거나 대중 소비사회에 의해 조장된 키치화된 관광지, 박물관, 디즈니화된 명소들이 그 사례라고 하겠다. ‘획일화’와 ‘상품화’ 속에서 인간답다는 것은 의미 있는 장소로 가득한 세상에 산다는 것이다. 문학관 일을 하면서 한 사업 중 하나가 신도시가 건설되면서 잊힌 지역의 문학을 아카이빙하는 일이었다. 도시 전체를 하나의 텍스트로 삼고 천천히 산책하며 기록하고, 스케치하고 작품화하는 일 또한 병행했다. 요즘은 한참 동탄 신도시의 지명들을 시의 풍경으로 옮겨 오는 일을 하고 있다. 특히 사라진 옛 지명들과의 만남은 이주민인 나로선 오래된 부식토를 품는 일과도 같아 고고학 발굴이라도 하듯 일상의 고단함을 유장한 호흡 속에 있게 한다. 그리하여 나는 소망한다. 지상의 모든 것이 나를 잊게 될 때 내가 노래한 이 땅의 나무와 강과 산이 내 사랑을 기억해주길.
경기일보
2025-09-09 19: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