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의 시시각각] 소수 의견 존중, 민주주의의 최소 안전장치

필리버스터의 어원을 살펴보면 그다지 긍정적인 의미가 아님을 알 수 있다. 필리버스터는 16세기에서 17세기에 걸쳐 카리브해 일대에서 활동하던 해적 혹은 약탈자를 가리키는 스페인어 ‘필리부스테로(filibustero)’에서 유래했다. 합법적인 의사 진행 방해 행위를 이러한 약탈 행위나 해적 행위에 비유한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이를 부정적으로만 보지는 않는다.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는 소수 의견이라도 배제하지 않고 제도에 반영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만약 소수 의견이 반영될 수 없는 상황이 초래된다면 소수 정당들이 이에 저항하는 것은 오히려 민주주의의 가치를 실현하는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 소수의 목소리가 무시되지 않도록 보장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셈이다. 이러한 이유로 국회 내에서의 필리버스터를 제도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12월10일 국회에서는 필리버스터를 둘러싼 논란이 발생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필리버스터 발언을 중단시킨 것이다. 공식적인 사유는 두 가지였다. ▲나 의원의 발언 내용이 필리버스터 대상 법안과 직접적 관련이 없다는 점 ▲ 무단으로 사적인 마이크를 사용했다는 점이다. 법리적으로 검토하면 이러한 사유가 존재할 경우 국회의장이 필리버스터를 제지할 수는 있다. 실제로 국회법 제102조는 ‘의제와 관계없는 발언이나 허가받은 발언의 성질과 다른 발언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발언의 내용이 상정된 의안과 관련이 있는지는 의장의 주관적 판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문제다. 표면적으로는 의제와 무관해 보이더라도 간접적이거나 포괄적 차원에서는 관련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국회의장 단독의 판단만으로 특정 의원의 발언 적절성을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 과거 사례를 봐도 국회의장이 필리버스터 발언을 중단시킨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2016년 테러방지법에 대한 필리버스터 당시 민주당 의원들이 총선에서 야당을 지지해달라고 호소했을 당시에는 이러한 행위가 모두 허용됐다. 그런데 이번에는 마이크를 끄고 발언을 제지했으니 국민의힘이 강하게 반발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현재 국민의힘은 분명 소수 정당이지만 동시에 제1야당이다. 제1야당은 여권의 주요 국정 운영 파트너이고 동시에 이들의 목소리는 소수 의견이기에 존중받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이유에서든 우 의장은 나 의원의 필리버스터를 중단시켜서는 안 됐다. 우 의장의 이번 조치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제기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그가 민주당 강성 지지층에게 정치적 존재감을 각인시키기 위한 행동이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과거 비상계엄 정국에서 존재감을 보였던 우 의장이 시간이 흐르며 점차 주목을 덜 받게 되자 자신의 정치적 위치를 부각시키기 위해 이처럼 이례적인 결정을 내렸다는 주장이다. 물론 이러한 해석은 어디까지나 일각의 주장일 뿐 그것이 옳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만큼 드문 선례였기에 이런 해석이 등장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우 의장의 필리버스터 중단 조치 외에도 주목해야 할 사안은 또 있다. 현재 민주당은 이른바 '필리버스터 제한법'을 추진 중인데 이 법안에 따르면 필리버스터 연설자를 국회의장이 지정하고 해당 정당 의원의 5분의 1 이상이 본회의에 출석하지 않으면 필리버스터를 중단시킬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자주 필리버스터를 시도하면서도 정작 연설하는 의원 외에는 대부분 본회의장을 이석한다며 이를 방지하기 위해 해당 법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여기서 고려해야 할 점이 있다. 국민의힘이 빈번히 필리버스터를 시도하는 이유는 자신들이 반대하는 법안을 민주당이 단독으로 강행 처리하는 데 맞설 수 있는 수단이 필리버스터밖에 없다는 점이 그것이다. 현재 여권은 입법권과 행정권 모두를 장악하고 있다. 그렇기에 더욱 민주주의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책임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소수 의견을 존중하고 다양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 그것만이 진정한 민주주의를 지키는 길이다.

[신율의 시시각각] 대장동 분노의 본질은 공정성 문제

사회과학에 ‘사회 자본’이라는 용어가 있다. 이 개념을 처음 사용한 인물은 알렉시스 드 토크빌로 그는 이미 19세기에 이를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이후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다가 1980년대 들어 다시 등장했다. 당시만 해도 일반적으로 널리 쓰이는 개념이라고 보긴 어려웠다. 사회 자본이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시점은 20세기 후반 동유럽 사회주의권이 붕괴했을 때였다. 자유민주주의에 기반한 시장경제 체제가 옛 사회주의 국가들에 성공적으로 이식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척도로 사회 자본이 활용됐기 때문이다. 사회 자본의 개념은 학자마다 약간씩 다르게 정의되지만 공통적으로 강조되는 핵심 요소는 바로 ‘사회적 신뢰’다. 사회적 신뢰가 높은 사회에서는 시민사회가 활성화돼 자율성을 기반으로 한 시장경제 체제가 안정적으로 정착될 가능성이 크다. 제도나 사회 전반에 대한 신뢰가 높을수록 자율에 기반한 경제 시스템이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사회적 신뢰가 낮은 사회에서는 사회 구성원 전체가 수용할 수 있는 제도나 장치의 형성이 어렵다. 대표적 사례가 우리나라의 ‘입시 지옥’이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나라, 일본, 중국 등 유교 문화권에서 두드러지는데 그 배경에는 제도의 공정성에 대한 신뢰 부족이 자리 잡고 있다. 제도에 대한 신뢰가 낮기 때문에 비교적 객관적인 시험 성적만이 유일한 입학 기준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유럽식 입시 시스템처럼 철학적 사고력을 평가하는 방식은 명확한 정답이 존재하지 않아 우리나라와 일본, 그리고 중국 같은 나라에서는 결과에 대한 사회적 수용도가 낮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사회적 신뢰가 부족한 사회일수록 시민들은 공정성 문제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다. 제도가 제대로 작동한다는 믿음이 확고하다면 공정성에 대한 의구심은 상대적으로 약하지만 신뢰가 부족하면 모든 영역에서 공정성을 의심하게 되고 불공정 이슈에 격렬하게 반응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최근 우리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킨 대장동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검찰의 항소 포기 결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대장동 일당에 대한 1심 판결 이후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자 국민의 분노는 급격히 고조됐다. 이 사안을 둘러싼 쟁점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검찰의 항소 포기 결정이 상부의 압력에 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고 둘째는 이들이 수천억원대의 부당이득을 온전히 ‘보전’할 가능성이다. 이 중 국민적 분노가 집중된 지점은 단연 후자로 대장동 일당이 천문학적인 이익을 대부분 자신의 수익으로 만들 수 있다는 점에 대해 국민의 분노가 상당 수준이라는 것이다. 민주당과 정부는 민사소송을 통해 이들의 부당이득을 상당 부분 환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장동 사건 관련자 중 한 명인 남욱이 검찰에 수백억원대 자산 동결 해제를 요청하며 해제되지 않을 경우 국가배상 청구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는 언론 보도가 이어지자 국민은 이런 여권의 주장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 눈치다. 남욱의 사례처럼 1심에서 추징금을 한 푼도 내지 않게 된 다른 일당들도 이런 조치를 요구하면 국민의 분노는 더욱 커질 것이다. 물론 민사소송을 통한 이득 환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정치는 국민의 ‘인식의 영역’에 존재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평생 성실히 일해도 꿈조차 꿀 수 없는 금액을 이들이 가져갈 것이라는 인식을 국민 다수가 가지면 이는 상당한 파급력을 지닌 정치적 사안이 될 것이다. 한마디로 조국 사태에 이은 또 하나의 ‘불공정’의 문제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럴수록 이재명 대통령을 비롯한 여권은 국민이 느끼는 분노와 박탈감에 진지하게 공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사안은 정권 운영에 지속적인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이들의 수익 환수 방법을 내놓아야 하는 이유다.

[신율의 시시각각] 언어마저 무기가 된 대한민국 국회

요사이 국회 선진화법의 존재가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국회 선진화법이 없었다면 아마 이번 국정감사는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의 난투극으로 점철됐을 것이기 때문이다. 국회 선진화법의 제정 취지는 잃어버린 국회의 품격을 찾자는 것이었다. 난투극을 벌이지도 말고, 회의실을 점거하지도 말며, 품격 있는 언어로 좀 국정을 풀어 달라는 취지였다는 것이다. 사실 이런 국회 선진화법이 있다는 사실도 우리 정치판의 서글픈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언어와 글 이외에는 인간의 사고(思考)를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은 없는데 국회 선진화법이 필요할 정도로 말보다 ‘행동’이 앞섰다면 이는 국회의원의 품격은 고사하고 인간적 됨됨이를 의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국정감사를 보면 인간의 사고를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인 언어조차 무기가 되고 있는 것 같아 참담하다. 일단 자신들이 속한 상임위와 무관한 문제를 두고 여야 의원들 간 비속어가 오간 것은 정말 유감스러운 일이다. 결국 해당 의원들의 갈등은 사법 영역으로 넘겨질 모양이다. 다른 상임위에서는 이른바 반말 논란이 벌어졌는데 이런 갈등은 이번 국감의 ‘주제’가 두 가지밖에 없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조희대 대법원장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김현지 대통령실 제1부속실장 문제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문제는 공통점이 있다. 아무리 여야 의원들이 격돌한들 자신들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그것이다. 우선 조 대법원장의 문제를 생각해 보면 이렇다. 민주당이 조 대법원장에게 따지려는 것은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사건 파기 환송 문제다. 그런데 해당 문제는 정치적 영역도 존재하기는 하지만 사법부의 판결에 대한 내용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즉, 사법적 판단 영역이라는 것인데 이럴 경우 민주당이 아무리 의회의 절대적 다수당이라 하더라도 사법권의 독립성을 침해해 삼권분립을 훼손한다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또 조 대법원장이 민주당의 요구에 응답할 가능성도 거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자칫 민주당은 소기의 목적도 달성하지 못하면서 삼권분립을 훼손한다는 역풍에만 직면하는 난처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 이런 민주당에 대항하기 위한 카드로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장 문제를 꺼내 들고 있다. 그런데 김 실장이 현재 실정법을 어겼다는 구체적인 증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의혹 제기 수준이어서 과도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국민의힘이 계속 김 실장의 국감 출석을 요구할 경우 역시 여론의 역풍을 맞을지 모른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 국민의힘이 계속해서 ‘사법부의 수장인 조 대법원장은 국정감사장에 불러냈으면서 왜 김 실장은 부를 수 없느냐’고 파상공세를 펼치면 여론은 국민의힘의 주장에 동조할 수도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정치는 구구절절이 설명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말 한마디로 끝내야 하는 존재라는 점이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지금 국민의힘은 김 실장이 조 대법원장보다 위에 있느냐고 주장하는데 이런 말 한마디는 여론을 움직일 수 있다. 어쨌든 이번 국감은 이 두 인물이 지배하는 국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유감스럽게도 국감에 임하는 양 정당의 소재 빈곤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진짜로 따질 것이 있었다면 두 인물이 국감의 중심에 서지는 않았을 것이다. 국감은 본래 입법부가 행정부의 업무를 감사하는 것이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모두 입법부의 일원이다. 여당도 대통령 소속 정당이기 이전에 입법부의 일원이라는 말이다. 정권은 5년이지만 민주당의 생명력은 그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길 것이기 때문에 여당이기 이전에 입법부의 일원으로 행동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 정치판에서는 이런 합리성을 찾을 수 없다. 그러니 지금 국정감사가 이 모양인 것이다. 우리나라 정치판에 합리성이 돋보이는 날이 올까 정말 궁금하다.

[신율의 시시각각] 이춘석과 주식대금

경찰은 무소속 이춘석 의원이 차명으로 10억원이 넘는 규모의 주식을 매입한 정황을 포착하고 자금 출처를 추적 중인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의원이 최근 4년간 공직자윤리위원회에 신고한 재산이 4억2천만원에서 4억7천만원대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이에 대해 이 의원 측은 경찰 조사에서 “출판기념회와 경조사비 등을 통해 주식 투자금을 마련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대목이 있다. 정치인들은 자금 출처를 해명할 때 ‘출판기념회’와 ‘경조사비’를 마치 ‘마법의 지팡이’처럼 활용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이다. 물론 이 의원의 해명이 사실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과거 사례들을 살펴보면 어떤 정치인의 자택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다량의 현금이 발견되면 이를 출판기념회 수입이라고 주장하거나 수입을 초과하는 지출을 설명하면서 경조사비를 언급한 경우가 반복돼 온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일련의 사례를 보면 해당 주장들이 사실이든 거짓이든 모두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 만약 사실이라면 출판기념회가 거액의 정치자금을 합법적으로 모금하는 창구로 기능하기 때문에 문제이고 거짓이라면 말할 것도 없이 문제다. 출판기념회를 둘러싼 이런 문제점은 오래전부터 지적돼 왔다. 일부에서는 아예 출판기념회를 금지하자는 주장도 제기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그다지 현실적인 대안으로 보기 어렵다. 출판기념회를 금지하면 다른 정치자금 모금 방식이 등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서예전이나 미술전 같은 방식이 그 대안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 서예작품이나 미술작품은 정해진 시장 가격이 없고 구매자의 주관적 평가에 따라 가격이 매겨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출판기념회보다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 이번에 김건희씨 오빠 집에서 발견된 이우환 화백의 그림 가격 논란을 봐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대만에서 해당 그림은 3천만원에 거래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일각에서는 해당 그림이 그 정도 가격에 팔렸다는 점과 다른 이유를 들어 위작일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위작이 아니더라도 그림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면 그런 가격에 팔릴 수도 있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출판기념회조차 책을 정가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구매하는 경우가 많은 상황에서 예술품을 통한 자금 모집은 더 큰 문제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따라서 출판기념회 자체를 금지하기보다는 출판기념회에서의 거래 규모를 철저히 관리하고 책을 반드시 정가에만 판매하도록 하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이를 위한 첫 번째 조치는 출판기념회에서 책을 카드 결제로만 구매할 수 있도록 의무화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정가 판매 원칙을 효과적으로 지키게 할 수 있다. 동시에 한 사람이 1부를 초과해 구매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조치도 필요하다. 아무리 정가로 판매하더라도 한 사람이 수십부를 구매한다면 제도의 취지가 무색해지기 때문이다. 더불어 출판기념회에서 발생한 판매 금액을 선거관리위원회에 정확히 보고하고 이를 기반으로 지출 내역까지 함께 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출처가 불분명한 자금이 발견되거나 신고 재산보다 많은 지출이 드러날 경우 출판기념회를 자금 출처의 ‘알리바이’로 삼는 일이 불가능해질 것이다. 우리는 흔히 ‘돈 안 드는 정치’를 이야기하지만 현실적으로 돈이 들지 않는 정치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돈 적게 드는 정치’를 지향하는 것이 현실적이며 합리적인 접근이다. 그런 점에서 합법적인 정치자금 모집 창구는 반드시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합법의 외피를 쓴 탈법을 철저히 차단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지금이라도 제도 정비가 절실하다.

오피니언 연재

지난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