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해사전문법원 설치를 위한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하며 인천 해사법원 입지 선정이 지역 최대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어느 곳에 인천해사법원을 설치하느냐에 대한 답을 하기 위해서는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관습적 기준을 과감히 걷어내야 한다. 해사법원은 일반 민형사 재판을 담당하는 곳이 아니다. 선박 충돌과 국제 보험, 복잡한 해상 중재 등 전 세계 해운 선주와 글로벌 법률 대리인들이 참여하는 ‘국제 사법 비즈니스’의 현장이다. 해사법원은 연간 5천억원의 국외 유출 법률 비용을 막고 대한민국 사법부의 위상을 세계적 수준으로 격상시킬 전략 국가적 자산이다. 그래서 입지 선정은 지역 균형발전이 아닌 사법적 작동성과 국제적 접근성이 최우선 기준이어야 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제물포 르네상스’ 프로젝트와의 시너지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이는 도시의 기능적 측면에서 다소 무리가 있는 설명이다. 제물포 르네상스의 본질은 명확하다. 내항의 항만 기능을 걷어내고 그 자리에 상상플랫폼과 수변 산책로를 조성해 시민과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수변 관광·문화 명소’를 만드는 것이다. 즉, 이 프로젝트는 내항의 ‘항만 폐쇄’를 전제로 하고 있다. 배가 떠난 자리에 항만 물류 분쟁을 다루는 해사법원을 유치하겠다는 명분은 그래서 이해하기 어렵다. 해사법원은 관광객을 위한 ‘랜드마크’가 아니라 고도의 비즈니스 인프라와 보안이 필수적인 국가 전략 거점이어야만 한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연수구는 해사법원의 설립 취지와 가장 정확히 맞닿아 있는 곳이다. 연수구에는 유엔국제상거래법위원회(UNCITRAL) 아태센터를 비롯해 20여개의 국제기구가 집적돼 있다. 여기에 해양경찰청, 재외동포청, 인천항만공사, 인천본부세관까지 포진해 있어 해사 분쟁과 국제 상거래, 해양 행정이 한 도시 안에서 원스톱으로 연결되는 구조를 갖췄다. 무엇보다 연수구의 지리적 강점은 압도적이다. 전국 해운·항만·물류 업체의 약 54.9%가 수도권에 밀집해 있다. 특히 선주의 64.2%, 국제물류 중개업의 79.9%가 수도권 기반이다. 관련 종사자 59.4%도 수도권에 거주한다. 해사법원을 이용할 고객층은 KTX 송도역이나 GTX-B 노선을 통해 1시간 안에 연수구에 닿을 수 있다. 인천항과 인천국제공항을 품은 연수구는 해외 소송 당사자들이 입국 후 가장 빠르게 접근할 수 있는 글로벌 관문의 도시이기도 하다. 경제적 확장성 또한 무궁무진하다. 해사법원 유치는 단순히 판사 몇 명의 상주를 의미하지 않는다. 해사 전문 변호사, 보험사, 선급 단체 등 수천명의 전문직 인구가 유입되는 경제 생태계의 탄생을 의미한다. 연수구는 풍부한 호텔, 송도컨벤시아 등 마이스(MICE) 인프라와 결합하면 싱가포르나 런던처럼 도시 전체가 국제 분쟁 해결 플랫폼으로 도약할 수 있는 유일한 도시다. 우리는 역사적 정통성도 잊지 않는다. 1883년 개항 당시 설치된 ‘인천항감리서’는 오늘날 해사법원의 실질적인 효시다. 당시 감리서는 단순한 판결 기구가 아니었다. 감리사는 행정·외교·사법을 총괄하며 외국인과의 무역 및 선박 분쟁을 전문적으로 조정했다. 중요한 것은 당시 감리서가 인천에서 가장 교류가 활발했던 ‘항만 요충지’에 자리 잡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인천신항을 품고 있는 연수구에 해사법원을 설치하는 것은 선조들의 실용주의 정신을 진정으로 잇는 길일 것이다. 최근 사법부 역시 연수구의 글로벌 생태계와 인프라에 주목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이는 사법부 스스로도 실무적 관점에서의 정답을 알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제 정치적 배려라는 낡은 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한민국 사법 서비스의 글로벌 경쟁력을 위해, 그리고 백년대계 해양 강국의 꿈을 위해 ‘해사법원 연수구 유치’는 선택이 아닌 필연이다. 연수구는 이미 준비를 마쳤다. 이제 사법부와 국회의 명확한 결단만이 남았다.
경기일보
2026-02-12 1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