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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01 (화) 메뉴 메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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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현장체험]돼지고기 전문업체 ‘아이포크’ 육가공

막노동보다 힘겹다는 고기 가공ㆍ포장… ‘맛있는 부위’ 감 잡겠네

돼지가격 폭락으로 양돈농가들이 사상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는 가운데 화성시에 위치한 돼지고기 전문업체 아이포크 영농조합법인을 찾았다. 모두가 죽겠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지만 묵묵히 위기를 헤쳐나가고 있는 비법이 궁금했다.

아이포크영농조합법인은 수입개방과 FTA로 어려워진 국내양돈산업을 지키고 안전한 돈육생산·유통으로 농가소득증대를 하고자 지난 2002년 경기도양돈연구회원을 중심으로 설립, 브랜드 ‘아이포크’를 탄생시킨 곳이다.

봉독으로 돼지의 질병을 예방하고 정수된 물과 한약재를 첨가한 사료를 먹여 육질이 부드러운 것이 아이포크의 특징. 이를 바탕으로 아이포크는 경기도지사 인증 G마크와 HACCP 인증 등을 획득했으며, 현재 수도권 농협유통센터에 전문 판매점을 운영하는 한편 경기도내 105개 초·중·고교의 학교급식에도 참여하고 있다. 기자는 각 학교에 공급될 고기를 가공하고 포장하는 일을 해보기로 했다.

작업장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위생을 위해 ‘완전무장’을 해야 한다. 발목까지 내려오는 흰 가운을 입고 그 위에 앞치마를 맨 뒤 위생모와 마스크, 고무장화, 장갑과 팔토시까지 껴야 했다. 이 상태에서 에어샤워로 소독을 거쳐야만 작업장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다. 힘겹게(?) 들어간 작업장에서는 작업대 앞에서 4명의 직원이 기계를 이용해 쉴새 없이 고기를 자르고 있었다. 한 쪽에서는 카레용 고기가 깍둑썰기로 썰려나오고 있고 비닐에 일정량을 넣고 저울에 달아 무게를 맞추는 작업이 반복됐다. 작업장 너머 발골실에는 통돼지들이 매달려 있었고 10여명의 직원들이 고기를 해체하고 뼈를 발라내는 발골 작업에 여념이 없었다. 하루 평균 180마리 가량을 발골하고 있다고 한다.

엄청난 양의 고기들에 압도당해 눈이 휘둥그레진 기자에게 박부규 생산부장의 특명이 내려졌다. 앞다리살을 크게 토막내보라는 것. 기계에 들어가기 전 너덜한 부분을 잘라내야 일정한 형태의 고기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3㎏이 넘는 고기덩어리를 내려다보며 칼을 쥐고 있으니 어디에 칼을 대야 할지조차 난감했다. 잘라낸 부분은 불고기용으로 따로 모아놓고 정리된 덩어리는 다시 절단기에 밀어넣어야 한다. 기계 속에는 수십개의 칼날이 일정간격으로 배치돼 빠른 속도로 돌고 있었다. 고기들은 칼날에 살짝만 닿아도 바로 빨려들어갔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어야지 긴장이 풀어졌다가는 다치기 십상일 것 같았다.

박 부장은 “막노동보다 더 힘든 게 이 일”이라며 “건설현장에 있던 사람들도 하루 일하면 안 온다”고 말했다. 매일 납품 시간에 맞춰야 하다보니 쉬는시간 없이 하루종일 서서 고기를 만져야 하기 때문이다.

막노동보다 더 힘들다는 말에 잠시 고개가 갸우뚱해졌지만 그 말이 이해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고기를 썰다보니 허리가 뻐근해지고 다리가 저려오면서 손목도 시큰거렸다. 낮은 실내온도 탓에 시간이 지나자 몸에 한기가 스며들었고 냉장실에서 갓 나온 고기를 계속 만지다보니 고무장갑 위에 목장갑까지 꼈는데도 손이 시려웠다.

앞다리살 썰기가 끝나자 이번에는 삼겹살이 기다리고 있었다. 둥근 덩어리 형태의 앞다리살과 달리 삼겹살은 네모반듯한 모습이었다. 네 토막 정도로 자르고 마찬가지로 기계에 넣어야 했다. 앞다리살은 고기의 갈라진 부분을 썰면 돼 큰 힘이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삼겹살은 두께가 일정한데다 두껍기까지 해 한번에 썰리지도 않았다. 무게도 7~8㎏에 달해 일단 고기를 들어올리기도 쉽지 않았다.

낑낑대는 기자를 보더니 박 부장은 “장수도 칼을 잘 써야 명장이 될 수 있다”면서 재차 시범을 보였다. 칼끝만 사용할 게 아니라 칼 전체를 이용해 칼날을 밀어넣은 뒤 앞으로 당겨야 한다는 것. 설명을 듣고 다시 도전해보니 한결 쉬워지긴 했지만 여전히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다.

박 부장은 삼겹살의 단면을 가리키며 “돼지비계는 무조건 안 좋은 것인 줄 알고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돼지 지방은 불포화산이라 건강에 나쁘지 않고 이렇게 지방이 적당히 붙어야 맛도 있다”면서 “마트에서 시식해보니 맛있어 사왔는데 집에서 먹으면 맛이 다른 이유도 시식용에는 지방이 많이 붙어있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이번에는 기계에서 나오는 고기를 포장비닐에 담는 작업을 했다. ‘써는 것보다 훨씬 쉽겠지’라고 생각했지만 빠르게 기계에서 나오는 고기를 속도에 맞게 담아야만 하기 때문에 역시 어렵기만 했다. 잠시 주춤하는 사이 고기들이 아래로 후두둑 떨어졌고 위생상 한번 떨어진 고기를 다시 주워담을 수도 없어 당황스러웠다.

중량을 맞춰 담은 고기는 이물질 검색대를 통과한 뒤 진공포장돼 박스에 담긴다. 진공포장지에는 소비자가 믿고 먹을 수 있도록 학교명, 중량, 원료, 원산지, 등급, 영업허가번호, 도축장 등 세부정보가 빠짐없이 적혀있었다.

박 부장은 “33년간 이 업에 종사했지만 정직함과 사명감이 없으면 하지 못 한다”며 “내가 시작할 때만 해도 대우가 좋아 일을 배우겠다는 사람이 많았지만 요즘은 배우려는 젊은이들이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런 그에게 “아이포크 직원들은 회식할 때 돼지고기를 잘 먹냐”는 엉뚱한 질문을 던져봤다. 온 종일 고기와 씨름하다보면 고기 냄새도 맡기 싫지 않을까 싶었지만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그는 “돼지고기를 즐겨 먹고 심지어 구내식당 반찬에 고기가 안 나오면 직원들이 서운해 한다”며 “돼지고기는 먹을수록 더 먹고 싶은 중독성이 있는 것 같다. 또 여기서 일하다 보면 어떤 고기가 좋은 고기인지, 어떤 부위가 맛있는지 고기맛을 더 잘 알게 된다”고 웃으며 말했다.

포장작업이 마무리된다고 끝이 아니다. 작업장 구석구석 깨끗이 청소와 소독을 해야 한다. 작은 고기 찌꺼기와 먼지라도 남아있으면 곰팡이가 슬어 병균이 침투할 수 있기 때문에 직원들이 가장 신경쓰는 부분이다.

청소가 끝난 뒤 김종필 대표와 생햄 제조실로 자리를 옮겼다. 유럽에서 즐겨먹는 생햄은 아직 국내에 대중화되지는 않았지만 최근 와인안주로 각광받으며 호텔이나 고급 레스토랑에서 인기를 얻어가고 있다. 아이포크는 수입산이 대부분인 생햄의 국산화를 시도하고 있는 중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수십개의 돼지 뒷다리가 거꾸로 매달려있었다. 꼭 썩은 것처럼 색깔은 거무튀튀했고 꼬릿한 냄새까지 풍겼다. 제조일자에는 2010년, 2011년이 적혀 있었다. 생햄을 만들기 위해서는 간수가 충분히 빠진 천일염을 돼지 뒷다리에 뿌려 3개월간 덮어놨다가 소금을 털어내고 세척해서 2~3년간 매달아놓아야 된다. 이 때 온도와 습도를 잘 맞춰야 유충이 생기지 않고 발효가 잘 된다. 김 대표는 딱딱한 겉부분을 잘라낸 뒤 붉은 속살을 얇게 저며 먹어보라고 내밀었다. 한 조각 입에 넣어보니 육포 맛이 나면서 씹을수록 고소하고 향이 느껴졌다.

김 대표는 “생햄은 일반고기의 10배에 달하는 부가가치를 갖고 있다”며 “앞으로 시장성만 생긴다면 농가 소득 향상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양돈업계의 위기 속에서도 새 시장을 개척해가고 있는 그에게 요즘 무엇이 가장 힘드냐고 물었다.

김 대표는 “학교급식이 지난해부터 최저가 입찰제로 바뀌어 업체 간 과당경쟁으로 생산비도 안 나올 정도”라며 “장기적으로는 돈 많은 기업이 독점하고 우수축산물을 생산하는 중소규모 업체와 농가는 도산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축산물은 가격경쟁이 아닌 품질경쟁이 돼야 한다’고 강조하는 김 대표와 아이포크 직원들을 보면서 품질에 대한 강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런 업체가 흔들림 없이 꿋꿋하게 제 길을 갈 때 양돈업계가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는 길이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구예리기자 yell@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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