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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현장체험]도로교통공단 사고조사분석연구원

피해자ㆍ가해자 밝히는 막중한 책무… 팽팽한 긴장감에 땀 뻘뻘

최근 몇년 사이 미드(미국 드라마의 줄임말)가 유행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범죄수사 관련 드라마를 즐겨보게 됐는데, 사건을 과학적으로 조사해 재구성하고 진상을 규명하는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기 때문이다.

특히 연속극의 묘미(?)인 결정적인 장면에서의 ‘끊어줌’은 나를 더욱 더 이야기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했다.

성범죄수사대, 해군전담수사대, 퇴마사, 미술품 등 각양각색의 테마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교통사고를 주제로 한 드라마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아볼 수 없었다.

미국은 자동차 1만대당 교통사고 사망자수 세계 2위(1.4명)다. OECD 평균(1.3명)보다 높다. 재미있는 스토리를 만들어내기 어려운 까닭일까.

그렇다면 자동차 1만대당 교통사고 사망자수에서 독보적인 세계 1위(2.9명)에 오른 대한민국은 어떨까.

눈으로 보기 어려우니 그냥 직접 몸으로 체험해보기로 했다. 도로교통공단 ‘사고분석조사’요원이 돼 보기로 한 것이다.

도로교통공단 사고조사분석요원이란 민원 또는 복잡ㆍ난해한 교통사고에 대해 사고 당시 상황을 재연하는 직업이다.

이들은 사고 당시 상황을 재연해 이 사고가 어떻게 발생했으며 누가 피해자인지, 누가 가해자인지를 밝혀내는 막중한 책무를 갖고 있다.

그렇다고 모든 사고에 대해 조사분석을 하는 것은 아니다.

국가가 공인해 조사를 하는만큼 경찰과 법원, 검찰 등에서 조사분석을 의뢰한 사고만 취급한다.

흔히 강력사건의 증거물 등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규명하는 등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하는 일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대형교통사고 규모 이하의 사망사고에 한해 운영되며 경찰 초동조치 후 사망사고 원인이 불명확할 경우 경찰 등과 함께 합동조사를 벌인다.

원인규명은 물론, 책임소재도 분석하며 사고요인별 문제점과 예방대책(안)도 검토해야 한다. 교통안전대책과 정책개발도 해야 한다.

이처럼 교통사고에 대해 공학적 분석결과를 제공함으로써 의뢰기관의 정확한 사법적 판단에 기여하고 국민의 권익을 보호하는 일이다보니 자격요건 역시 까다롭다.

무시무시한 물리(?)를 포함 운동역학, 마찰계수 등 차량운동학과 교통관리 법규와 조사론 등을 모두 마스터하고 국가공인 도로교통사고감정사 자격증을 취득해야만 사고분석조사요원이 될 수 있다.

22일 오전 9시 찾아간 도로교통공단 경기도지부에서 총 5명의 사고분석조사요원이 기자를 반겼다.

권순종 안전조사검사부장은 “잘 오셨어요. CSI처럼(?) 워낙 전문적인 분야라 어렵겠지만, 몸으로 하는 일도 많으니 열심히 해보세요”라고 웃음지며 말했다.

권 부장의 반 농담, 반 으름장을 뒤로 한채 심재귀 사고조사분석연구원(46), 김민중 사고조사분석연구원(45)과 출동(?) 준비를 시작했다.

심 연구원은 “경기도 31개 시ㆍ군에서 벌어진 교통사고 가운데 경찰 등 사법기관이 조사분석을 의뢰한 사건만 취급한다”면서 “인명피해가 발생했으며 분쟁있는 사고가 하루 1건 이상이라 5명의 연구원은 쉴틈이 없다”고 말했다.

이들을 따라 사진기와 광파측정기, 경사도측정기, 굴림자, 줄자, 스타프(막대자) 등의 장비를 챙기기 시작했다.

얼핏봐도 상당한 무게가 나가는 조사분석물품 등을 다 챙겨 도로교통공단 마크가 새겨진 승합차에 몸을 실었다.

밝은 녹색의 조끼와 짙은 녹색의 카우보이모자도 챙겼다.

김 연구원은 “햇볕이 뜨겁다보니 야외에서 활동하는 우리는 선크림 등이 필수”라고 말하면서 자외선 차단제 등을 건넸다.

얼굴과 목, 팔 등을 자외선 차단제 등으로 무장(?)시키고 승합차에 올라 현장에 출동했다.

A시에서 벌어진 중앙선침범 분쟁 사망사고의 조사분석을 위해 출발하면서 김 연구원이 운을 뗐다.

김 연구원은 “저희가 하는 일이 법적인 구속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국가기관에서 조사분석을 해 사고원인 등을 규명하기 때문에 법적 참고자료로 쓰인다”면서 “더욱이 사고조사분석을 할 때마다 이해관계자들이 함께 참여하기 때문에 잠시라도 긴장의 끈을 놓칠 수 없다”고 조언했다.

사고 현장에 도착해 경찰ㆍ이해관계자들과 함께 조사분석업무를 시작했다. 물론, 기자가 아닌 신입조사분석요원으로 위장(?)하고 말이다.

뜨거운 햇볕때문에 광파측정기를 설치하고 굴리자, 스프레이 등을 이용해 작업을 시작하자마자 땀이 비오듯이 쏟아졌다.

얼굴과 목, 팔 등은 듬뿍 바른 자외선 차단제와 뒤섞이면서 꼴이 말이 아니였다.

이 모습을 본 심 연구원은 작은 목소리로 “벌써부터 이렇게 땀을 흘리시면 어떻해요. 이제 시작인데…”라며 장난기 섞인 말을 했다.

뜨거운 햇살때문인지, 어제 먹은 술때문인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연구원들의 작업을 도왔다.

경사도측정기의 조그만 렌즈를 들여다보자 마치 현미경처럼 사물이 확대돼 보였으며, 이들 장비를 가지고 도로기하구조와 타이어마크, 차량의 최종위치 등 사고관련 흔적을 취합했다.

차량이 파손된 부분은 가로 세로 스타프를 이용해 정확한 위치 등을 파악하고 디지털카메라로 자료를 남겼다.

더운 날씨때문인지 김 연구원을 도와 스터프를 잡고 쭈그려앉는데도 힘이 들었다.

왕복 2차선 도로에서 승용차와 3.5t 화물차가 정면으로 충돌한 사망사고였기에 중앙선 침범 등을 조사할 때는 극도의 긴장감이 밀려왔다.

사고당사자와의 면담을 통한 증언을 확보하는 일도 잊지않았다.

2시간여에 걸친 꼼꼼한 현장 조사를 마치고 사무실로 복귀하는 승합차의 에어컨 바람이 그렇게 시원할수 없었다.

사무실로 복귀했다고해서 조사분석업무가 끝난 것은 아니다.

현장조사는 사고 관련 흔적을 측량하는 기초조사 과정일 뿐, 사고당사자와 면담조사를 포함해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업무에 시작이었다.

PC크래쉬, 마디모 등 수천만원을 넘나드는 고가의 사고재현 프로그램과 캐드 프로그램 등을 이용해 현장에서 확보한 기초자료를 대입해 사고현장을 도면화, 분석하기 시작했다.

일 자체가 워낙 전문적인 부분이라 연구원들 옆에서 설명을 들으며 지켜보는 수 밖에 없었다.

심 연구원은 “사고의 원인을 도출하는데, 한 차량이 과속을 했다면 얼만큼 과속을 했는지도 파악을 해야한다”고 귀뜸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김 연구원은 “사실 오전에 현장에서 조사를 한 뒤 오후에 분석작업을 하는 것도 버거운데 경기도가 워낙 넓고 사람이 많다보니 하루 2건의 사고조사분석 업무를 진행할 때는 정말 진이 다 빠진다”고 전했다.

캐드로 도면화시키는 작업을 보다보니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었는데, 사고재현 프로그램을 보니 이해가 빨랐다.

3D로 동영상으로 사고를 재현해주기 때문이다.

조사분석을 마치고 보고서를 작성, 경찰과 법원, 검찰에 보내줄 참고자료도 만들었다.

물론, 옆에서 연구원들이 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고개만 끄덕일 수 밖에 없었지만….

김 연구원은 “영화나 미국드라마를 보면 사건, 사고를 조사 분석하는 모습을 화려한 영상미로 편집해 멋있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말 까다롭고 책임감이 무거운 일”이라면서 “우리가 조사분석한 자료가 법적인 구속력이 없더라도 국가가 공인한 참고자료로 법정 등에서 쓰이기 때문에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특히 어린이 교통사고를 조사분석하다보면 너무나 안타까운 일들이 많다”면서 “아이 부모의 슬퍼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사고원인을 냉정하게 규명해야 하다보니 마음도 무거워 지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하루종일(?) 뜨거운 햇볕 아래서 오랫만에 운동 아닌 운동을 하다보니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찝찝했다.

하지만 하루에도 수십, 수백건 발생하고 나와 내 가족, 친구들이 언제 교통사고로 인한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고 생각해보니 교통사고의 원인과 진상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주는 사고조사분석연구원들에 노력에 가슴만큼은 시원한 하루였다.

안영국기자 ang@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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