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주택 철거현장에 들어서자 두 세명의 폐지수거 할머니가…
10일 오전 9시 수원 송죽동의 한 골목 모퉁이에서 기자는 오 씨와 만남을 가졌다. 그에게서 이날 하루 동안만 리어카를 양도 받기로 했기 때문이다. 폐지 줍기를 일일체험 기획 소재로 택한 점도 있었지만 몸 상태가 조지 않은 오 씨를 대신하고자 하는 목적도 있었다.
왜소한 체격의 오 씨는 군 복무시절 트럭에 치여 젊은 시절부터 허리가 좋지 않다. 게다가 최근에는 평소 앓아오던 관절염이 악화돼 약을 먹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통증도 심해졌다. 이 때문에 지난 10년간 유일한 생계수단인 폐지 수거를 최근 못하고 있다.
간혹 이웃주민이 오 씨의 리어카에 폐지를 실어주거나 인근 고물상에 대신 넘겨주기도 하지만 돈벌이는 되지 않는다. 폐지 값이 많이 떨어져 사나흘에 한번 겨우 수레를 가득 채워도 수익이 1만원도 채 되지 않기 때문이다.
오 씨에게 리어카를 넘겨받고 시험 삼아 골목 시작점에서 끝점까지 100m가량의 거리를 끌어봤다. 개인적으로는 군대에서 작업할 때 끌어본 이후로 정확히 5년 만이다. 적재된 폐지가 많지 않아 쉽게 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빗물을 가득 머금은 탓이다.
처음 한, 두시간은 오 씨가 기자의 폐지 줍기 체험에 동행했다. 몸이 좋지 않은 그를 대신하는 일이라 죽이든 밥이든 혼자 해결하고 해쳐나가야 하는 일이었지만 생각보다 리어카 끄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게 오 씨가 말하는 동행의 이유였다. 일종의 운전 연수(?)인 셈이다.
결과적으로 그 선택은 탁월했다. 60kg가 넘는 리어카를 끌고 가는 일도 쉽지 않았지만 진행 방향을 잡고 리어카를 움직이는 일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적재된 폐지 무게도 만만치 않아 힘도 적지 않게 들었다.
일단은 리어카 운전대 안에 들어가 끌거나 제동을 거는 등의 힘이 들어가는 일은 기자가 하고 운전과 방향을 트는 일은 오 씨가 맡았다. 그나마 평지는 이동하는 데 큰 무리가 없었지만 오 씨의 구역인 수원 송죽동과 파장동 골목 일원은 길이 좁고 경사가 많아 운전이 쉽지 않았다.
이 때문에 언덕길을 넘지 못해 한, 두 번 위험천만한 뒷걸음질을 하거나 방향을 잘못 틀어 주차된 차량에 스크래치를 낼 뻔 한 위기도 여러번 넘겼다.
오 씨는 “가끔 뒤에서 차량이 소리 없이 다가오거나 모퉁이를 돌 때 갑자기 나타나는 경우가 있어 자칫 리어카 모서리 부분으로 차에 기스를 낼 경우가 있다”며 “보통은 그냥 넘기지만 끝까지 받아 가는 경우고 있어 조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렇게 한 시간을 돌았지만 간간히 비가 내린 탓인지 거리에는 폐지가 거의 없었다. 음식점이나 슈퍼를 지날 때 오 씨를 알아보고 폐지를 건네는 분들을 제외하고는 가뭄이었다.
그곳을 향해 리어카를 돌리려는 데 오 씨가 손사레를 쳤다. 주인이 있는 물건이라는 뜻이다. 최근에는 중ㆍ소규모의 전문 폐지 수거 업체가 늘어나면서 대량의 폐지가 배출되는 대형마트나 아파트 단지는 계약한 업체 이외 오 씨와 같은 개인은 절대 출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배출량에 따라 1천만원에서 3천만원까지 예치금을 걸고 계약 당사자에게만 폐지 등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전에는 폐지 줍는 노인들이 대형마트 앞을 지나다가 간혹 쌓여 있는 폐지를 주어가도 별말이 없었지만 최근에는 경고를 하거나 심지어 고소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고 오씨는 말했다.
한 마디로 ‘빛 좋은 개살구’라는 의미다. 수북하게 쌓여있는 종이박스를 뒤로 텁텁한 감추고 송죽동 골목길에 들어서자 약속한 두 시간이 지났다. 오 씨는 기자가 걱정되는 지 리어카를 가볍게 해주겠다며 거래하는 고물상으로 향했다.
들어서자 서너명의 노인들이 각각의 리어카에 수집한 물건을 가득 채우고는 전자저울 위에 올랐다. 전방에 설치돼 있는 무게에 킬로그램(kg)이 표시됐다.
앞선 노인 분들의 무게가 차례로 표시되고 우리 차례가 왔다. 무게는 200kg. 생각보다 많이 나왔다고 안심하는 순간 60kg이 빠졌다. 리어카의 무게다. 그리고 20kg가 추가적으로 빠졌다. 빗물의 무게다. 그래서 순순하게 빠진 무게는 120kg으로 낙점됐다. 이중 폐지는 100kg정도 됐다. 1kg당 100원으로 1만원이 나왔다. 나머지 20kg는 고철로 1kg당 200원이다. 그렇게 최종 받은 금액은 1만4천원. 오 씨의 리어카에 나흘 동안 모인 고물의 가치다. 하루 벌이가 4천원이 채 안 되는 셈.
이곳 고물상의 주인인 김영환 사장(57)은 “2년 전 시작된 펄프시장 불황으로 200∼300원하던 폐지 가격이 올해 100원으로 반에 반 토막이 났다”며 “그나마 대부분 단골분이라 다른 손님이나 업체보다 조금 더 챙겨주고 있다”고 말했다.
파지를 비우자 리어카가 제법 가뿐해졌다. 리어카 뒤에 오 씨를 태우고 집으로 모셔드렸다. 오 씨는 무리하지 않아도 사방팔방 주의하며 차량을 조심하라고 재차 당부하고는 집으로 들어갔다.
오 씨의 당부를 마음에 새기며 이번에는 혼자 골목길에 들어섰다. 함께 있을 때와는 달리 혼자서 리어카를 끌고 만석공원을 지나려는 데 조금 창피함도 들었다. 옆을 스쳐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가슴에 꽂혔다. 특히 신호등을 건널 때 ‘끌끌’ 대며 혀를 차는 어르신도 있었다. 한편으론 억울한 마음도 있었지만 폐지 줍는 일을 바라보는 사회적 편견이라는 생각에 씁쓸함도 동시에 느꼈다.
아무 소득 없이 만석공원 한 바퀴를 돌자 모 웨딩홀 부근 골목으로 폐기물 트럭 한 대가 진입하는 게 보였다. ‘뭔가 있겠다’ 싶은 마음에 자석에 끌리 듯 골목으로 빨려 들어갔다.
오 씨를 대신 해 폐지를 수거하려고 온 것이기는 하지만 내놓고 할머니의 일감을 뺏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조금 고생하기로 하고 배출되는 고물을 할머니의 리어카에 함께 실어 드렸다.
그러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함께 했다. 경기일보 근처 단칸방에 지체장애 1급 딸과 함께 살고 계신다는 김정선 할머니(71)는 한 눈에 봐도 삶에 지쳐 보였다. 앙상하게 마른 손가락 끝으로 손톱 밑에 낀 시커먼 기름때가 보였다.
폐지를 줍고 버는 수익이 변변치 않아 밤에는 공장에서 허드렛일을 하면서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다는 김 씨는 성실함을 무기로 하는 이 바닥에서도 부지런하기로 정평이 난 분이셨다. 그렇게 악착같이 돈을 벌어도 사는 건 더 힘들어졌다며 서둘러 말을 끊고는 제 갈 길을 가셨다.
그렇게 두, 세 시간을 더 돌아 리어카에는 3분의 1가량의 폐지가 찼다. 그나마 기자가 몸담고 있는 경기일보 창고에 쌓여있던 폐지와 인근 아웃도어 매장과 전자제품 매장을 지나며 받은 종이박스들이었다. 값이 나가는 고철이나 의류는 구하지 못했다. 죄송함을 가지고 오 씨의 집으로 향했다. 오 씨는 편안한 미소로 ‘많이 채웠다’며 머쓱해하는 기자의 마음을 달랬다.
쉽지만은 않았던 폐지 수거를 하면서 수많은 장면들이 스쳐갔다. 그것은 단순히 빈곤으로 대체될 수 없는 근본적인 문제들이었다. 오후 내내 수거한 폐지를 팔아 손에 쉰 3천원의 돈을 오 씨에게 쥐어 드렸을 때 마음 한구석에 차오른 먹먹함과 다르지 않을 테다. 그제서야 아침에 오 씨의 뺨에 흐르던 물방울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박광수기자 ksthink@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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