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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현장체험]환경미화원

바닥에 달라붙은 낙엽을 쓸어담기를 무한반복하는 사이…

요즘, 말문이 트인 네 살짜리 딸아이는 기자엄마를 당황하게 만들 때가 많다. 얼마전엔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아파트 청소 아줌마를 보곤 “안녕하세요. 17층 혜원이에요. 힘내세요.”라며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것이었다. 내심 딸아이의 예의 바른 인사성에 뿌뜻해 하는데 갑자기 “엄만 왜 인사 안해요?”라며 돌직구를 날렸다. 뜨끔했다.

언제부턴가 도시생활 속에서 타인에 대한 간단한 인사조차 힘든 일이 돼 버렸다. 특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이들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 그래서 도심 속 ‘거리의 마법사’로 불리는 환경미화원 1일 체험을 해보기로 했다. 마흔에 새로운 직장을 구한 수원시 여성 환경미화원 1호 이남희씨를 만났다.

남희씨는 수원시가 11년 만에 실시한 환경미화원 공채를 통해 채용됐다. 당초 33명을 뽑는데 297명이 지원해 9대1의 경쟁률을 보인 올해 공채에는 대졸자가 87명, 전문대졸자가 14명이나 지원해 환경미화원직의 달라진 위상을 실감케 했다.

남희씨는 현재 수원시 환경미화원 263명 가운데 유일한 여성이다. 환경미화원의 신분은 무기 계약직이고, 일반 공무원과 같이 만 60세까지 정년이 보장된다. 이러한 장점 때문에 남희씨도 어려운 선택을 하게 됐다. 그녀는 환경미화원 옷을 입은 자신의 몸을, 빗자루를 든 자신의 손을 창피해 하지 않았다. 몸도 마음도 건강한 남희씨와 함께 영화동 일대 청소에 나섰다.

■수원시 환경미화원 263명 중 유일한 여성, 이남희씨와의 오전 청소 시작

11월 25일 오전 10시 영화동주민자치센터 환경미화원 휴게실. 새벽 5시 30분부터 시작된 오전 청소를 마친 총 11명의 환경미화원들이 둘러 앉아 커피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경기일보 강현숙 기자입니다. 오늘 하루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큰소리로 씩씩하게 인사를 건넸다. 인사가 끝나자마자 여기저기서 우려와 걱정의 목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아이고, 고생일텐데. 마음 단단히 먹고 청소해야 할꺼야”, “그 많은 직업 중에 왜 하필 환경미화원을 해서 사서 고생이랴”, “그래도 낙엽철 끝물이라 덜 고생하겠네”

그 중에는 “생각했던 것 보다 힘들껀데 도망가면 안돼”라며 잔뜩 겁을 주는 환경미화원도 있었다. 작업 반장 김성복(47)씨는 친절하게 미화원 바지와 잠바, 털모자까지 챙겨주면서 용기를 복돋아 주었다. 달달한 다방커피 한잔으로 몸을 녹이고 나서 남희씨를 따라 담당구역으로 나갔다.

오늘의 오전 청소 구역은 장안구 영화동어린이공원. 주택가에 소재하고 있는 공원 주변은 그야말로 ‘차 반, 낙엽 반’이었다. 환경미화원 생활 5개월인 남희씨의 손놀림은 생각보다 민첩하고 빨랐다. 주차된 차를 피해 삭삭 낙엽을 긁어 모아 쓸어 담는 모습이 마치 떡 주무르듯 마음대로 갖고 노는 것 같았다.

“우선 갈퀴나 빗자루로 낙엽을 한 곳에 모으고 쓰레받기로 200ℓ짜리 낙엽전용 쓰레기 봉투에 담으면 되는 단순 작업이에요. 그런데 복병들이 숨어 있어요. 공원 주변이다 보니 먹다 남은 라면, 술병은 기본이고 각종 쓰레기들이 낙엽 속에 숨어 있어 손이 많이 가죠.”

아니나 다를까 낙엽을 쓸어 담은 지 5분도 채 되지 않아 각종 전단지, 썩은 양말, 파 껍질, 여행가방, 컵라면, 막걸리병 등 툭툭 튀어나왔다. 게다가 이틀 전 내린 비로 낙엽이 바닥에 달라붙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비에 젖은 낙엽은 무거웠다. 환경미화원들은 낙엽이 쏟아지는 11월부터 12월 초까지가 가장 바쁜 시기다. 그래서 요즘 같은 땐 자고 나면 낙엽이 쌓이고, 치우고 나면 낙엽이 쌓이는 정말이지 ‘고난의 계절’인 셈. 허리를 굽혔다 폈다를 반복하며 낙엽쓸기와 담기를 무한반복하는 그 사이에도 뚝뚝 떨어지는 낙엽이 한없이 무정했다. 시민들에겐 거리의 낙엽이 ‘볼거리’이지만, 환경미화원에겐 ‘일거리’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게다가 골목길을 쌩쌩 달리는 자동차를 피하면서 청소를 해야하기 때문에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초짜 환경미화원이 안쓰러웠는지 이남희씨가 인근에서 청소하고 있는 18년차, 14년차 베테랑 미화원에게 SOS를 쳤다.

“점심시간 다 되가는데 아직도 멀었네. 아이고 밤 새겠어. 어 눈 오네, 눈이 와”

어르신 미화원들은 낙엽과 씨름하는 기자를 보자마자 힘을 보탰다. 그때 마침, 하얀 눈이 펄펄 내리기 시작했다. 기자와 남희씨의 일손을 돕던 K미화원은 어린 아이 마냥 기념사진을 찍자고 했다. 기자는 “눈이 계속 오면 힘들텐데” 걱정이 앞섰다. 걱정도 잠시 남성 미화원 덕분에 후다닥 공원 주변 낙엽청소를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청소 시작 2시간 만에 200ℓ짜리 포대 20자루가 가득 찼다. 작업 2시간 만에 손가락 마디가 저리고, 허리가 뻐근했다. 환경미화원들의 두꺼운 손마디와 거친 피부를 보면서 노곤함을 속으로 삭혔다. 새벽 4시부터 시작해서, 아침 8시까지 대부분 각자 맡은 구역을 돌면서 낙엽과 쓰레기를 치운 미화원들에 비하면 오전 시간대 2시간 청소는 식은 죽 먹기였다.

경력 18년차의 김성영(57)씨는 “거리에서 일하는 환경미화원은 생명의 위협에 많이 노출돼 있어요. 차량에서 담배꽁초를 버리면 도로 중앙까지 빗질하러 가야 하고. 통계적으로 보면 환경미화원의 산재 사망률이 일반 직업의 10배에 달한다고 하니깐 얼마나 위험해. 남희씨도 절대 새벽청소할 때 큰 대로로는 나가지마. 알았지? 내 몸은 내가 챙겨야지. 정년 바라보고 이 고생 참고, 또 참는건데 몸 다치면 다 소용없어”라며 푸념 아닌 푸념을 털어놓았다. 푸념 속에는 여성 환경미화원에 대한 진심 어린 걱정이 묻어있었다.

■ 사회적 편견 때문에 겪은 에피소드나 설움 여전해

오전 작업을 마친 환경미화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점심 메뉴를 고민했다. 청소하는 내내 뛰어난 유머감각을 자랑하던 K 환경미화원은 “날도 추운데 뜨끈한 부대찌개 어때요? 원래 환경미화원들은 각자 점심을 해결해요. 집이 가까운 분들은 집에 가서 먹는데 오늘은 특별한 손님가 왔으니 외식하는 겁니다”며 해맑게 웃었다.

즐거운 점심시간, 환경미화원들의 수다잔치가 이어졌다. 수다잔치의 절반은 씁쓸하게도 직업에 대한 사회적 편견 때문에 겪은 에피소드나 설움들이 차지했다.

최근 들어 계속되는 경기 불황과 실업난의 여파로 정년 보장되는 환경미화원이 인기가 있지만 10년전만 해도 꼬마들이 ‘쓰레기 아저씨’라고 놀리고, 냄새 난다고 택시 승차거부도 당하는 등 수치스러운 일을 많이 당했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경력 14년차 K미화원은 “아직 어디 가서 직업이 환경미화원이라고 떳떳하게 말 못한다. 여전히 환경미화원이라면 무시하는 시선을 많다. 요즘엔 시민들의 민원이 갈수록 많아진다. 환경미화원을 자기 집 앞 쓰레기, 눈 안치우는 사람으로 취급하기도 하고 심지어 집에서 죽은 고양이나 쥐를 처리해달라는 요구까지 한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경력 20년차 진대일(55)씨는 “요즘엔 근무환경이 조금은 개선됐지만 정말 옛날엔 사람 취급도 못 받았지. 93년도에는 10명 9명은 강도 높은 노동에 혀를 내두르며 도망가고 그랬어. 95~96년도에는 환경미화원이 620여명이었던 것이 해마다 줄고 있어. 호매실지구, 광교신도시 등 청소 수요는 갈수록 늘고 있고. 그래도 승진 때문에 싸울 일 없고, 슬퍼할 일 없는 직업이니 그거면 됐지 뭐”라며 옛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수원시 여성 환경미화원 1호’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이남희씨도 공채 합격 소식을 듣도 남편과 세 딸에게 가장 먼저 알렸다고 했다.

“딸들에게 ‘엄마가 너희들 학교 앞에 가서 청소해도 부끄럽지 않겠니’라고 묻자 초등학교 다니는 막내딸이 인사할 거라고 해서 일을 할 수 있었어요. 만약 환경미화원 엄마가 창피하다고 했으면 이 일을 못했을 겁니다.”

환경미화원들은 서로의 아픔과 옛날 이야기 하며 밥 한그릇을 비웠다. 그들은 고된 업무보다 더 힘든 사회적 편견과 매일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또 후진성을 면치 못하는 시민의식도 미화원들의 주름을 깊게 하기는 마찬가지. 환경미화원들은 “예전에 더운 여름날엔 시원한 물 한잔 얻어 마실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소소한 정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반면 “청소하는데 담배꽁초 안 버리고, 침 안 뱉으면 다행”이라고 했다.

든든하게 속을 채운 기자는 본격적인 오후 작업에 돌입했다. 오후 청소할 장소는 수성로 일대. 식당과 상점이 즐비한 2차선 도로에는 도로가와 인도 가릴 것 없이 나뭇잎들로 뒤덮혀 있었다. 남희씨와 기자는 도로와 인도를 오가며 흩어진 낙엽을 한곳에 모아 미리 펼쳐놓은 200ℓ짜리 낙엽전용 봉투에 담는 작업을 1시간 넘게 반복했다. 베테랑 환경미화원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눈치껏 행동했다.

오후 취재 일정으로 환경미화원 1일 체험은 오후 3시쯤 마무리했다. 세 딸을 둔 어머니이자 항상 웃음을 잃지 않는 쾌활한 수원시 유일한 여성 환경미화원 이남희씨와 남성 환경미화원 10명의 하루는 건강하고 솔직했다. 땀 흘린만큼 장안구 영화동이 깨끗해졌기 때문. 이들은 남에게 해로운 행동을 하지 않았다. 주어진 일에 귀하고 천함을 따지지 않고 최선을 다했다. 어떤 이들은 환경미화원을 무시할지 몰라도, 쓰레기는 그들을 무시하지 않았다. 정년이 보장된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열어주고 처자식에게 가장으로서 체면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준 쓰레기는 그들에게 밥이자, 인생이었다.

강현숙기자 mom1209@kyeonggi.com

사진_추상철기자 scchoo@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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