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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01 (화) 메뉴 메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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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현장체험]가수 하예 매니저가 되다

때론 친구로… 때론 선생님으로… 스타의 그림자 ‘팔방미인’

그들에 대한 궁금증은 TV보다가 생겼다. 간혹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해 연예인 못지않은 예능 감각을 뽐내는 그들. 뭔가 가려진 듯한 사람들. 연예인을 위해 뒤에서 일하는 매니저라고 불리는 이들.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는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고, ‘희생’이라는 키워드에도 잘 어울리는 느낌이다.

‘전면에 나서기를 꺼리는 사람’일거 같기도 하다. 과연 그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마침 단 하루지만 ‘연예인 매니저’라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 뭔지, 이들의 정체가 뭔지에 대해 알아볼 기회가 생겼다. SBS ‘일요일이 좋다-K팝스타 시즌2’에서 예쁜 외모와 매력적인 보이스로 ‘TOP8’까지 오른 가수 하예(본명 송하예) 양의 1일 매니저를 하기로 한 것. 물론 TV에서만 보던 연예인을 바로 앞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도 내심 좋았다.

아무튼 오늘 하루 나는 가수 하예의 매니저다. 만나기로 한 장소에는 하예 양과 매니저들이 나와 있었다.

만나자마자 대뜸 그들에게 매니저가 무슨 일을 하는 거냐고 물었다. 내 예상대로 매니저들은 쭈뼛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할 수 없이 하예 양에게 직접 물었다. “매니저들은 무슨 일해요?”

■ 엄마가 하는 일? 그냥 엄마 같아요

엄마? 와 닿지 않았지만 문제될 건 없었다. 조금 전 선배 매니저가 옆에서 잘 보살피기만 하면 된다고 했으니.

첫 일정은 ‘운동’. 5월 음반 발매를 앞둔 상황에서 운동은 필수코스. 여기는 트레이너가 따로 있어 매니저가 할 일은 없다. 하지만 의욕 넘치는 나에겐 들리지 않았다. 하예 양 옆에 붙어 서서 도움을 주기 위해 애썼다. 부담스러워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지만 ‘적극적인 엄마’로 변신한 나의 행동을 막진 않았다.

일정을 마치고 차에서 나름 일을 잘 한 것같아 뿌듯해하고 있는데 선배 매니저가 웃으며 말했다. ‘과잉보호’하는 거 아니냐고. 챙겨주는 건 좋은데 부담스러워할 수 있다며 조절하라고 조언했다.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든든하다는 느낌을 주는 정도면 된단다.

처음부터 잘 설명해줬으면…. 옆에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안정감을 주는 ‘엄마’. 매니저는 엄마여야 했다.

엄마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하예 양의 표정을 살폈다. 그런데 이상하게 조금씩 표정이 굳어가고 있었다. 하예 양에게 엄마처럼 다정하게 이유를 물었다.

■ 연습할 때는 매니저 언니·오빠들이 무서운 선생님으로 변해요

어느덧 연습실 근처에 다다르고 있었다. 하예 양의 말에 조심스럽게 선배 매니저들의 표정을 살폈다. 선배 매니저들의 표정이 아까와는 많이 달랐다. 그들의 얼굴엔 어느새 진지함이 묻어났다.

이날은 보컬과 댄스 트레이닝이 예정돼 있었다. 보컬 트레이너가 오기 전 하예 양이 목을 풀기 시작했다. 이내 선배 매니저의 지적이 연습실을 울린다. “연습도 실전처럼”

엄마가 잔소리를 하는 느낌은 아니었다. 엄한 선생님이었다. ‘과잉보호 엄마’였던 나도 변해야 했다. 곧바로 한 마디 거들었다. “슬픈 노래가 슬프게 들리지 않아요”

하예 양의 표정이 굳어졌다. 신경이 쓰였다. 본격 보컬 트레이닝에 앞서 쉬는 시간. 의기소침해진 듯한 하예 양에게 아까는 미안했다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리고 정말 잘했는데 매니저들이 괜히 그러는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 괜찮아요. 그래도 막 뭐라고만 하는 건 아니에요. 격려도 해줘요

의외로 덤덤했다. 가만 생각해보니 무섭게 지적하다가도 간간히 파이팅을 외친 거 같기도 했다. 엄한 분위기에 압도돼 응원도 지적으로 들렸나 보다. 아니나 다를까. 가장 심하게 지적하던 선배 매니저가 오더니 집중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며 격려했다. 이후에도 엄한 선생님들은 어느덧 치어리더로 변해 하예 양을 치켜세우고 있었다. 이런 변화무쌍한 사람들을 봤나.

이유는 있었다. 치열한 가요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늘 긴장해야 한단다. 당근과 채찍을 잘 활용하는 것이 하예 양에게 도움이 된다는 건 공감할 수 있었다.

한참 생각에 빠져있는 그때 선배 치어리더(?)가 종이 뭉치를 꺼냈다. 5월에 나올 음반 콘셉트 관련해서 회의가 예정돼 있었던 것. 내가 뭔가 보여줄 수 있는 기회였다. 이때 하예 양이 옆에 와서 한 마디 거든다.

■ 매니저 언니, 오빠들 거의 전문가 수준이에요

실제로 그랬다. 음반 콘셉트 회의에서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들은 현재 가요계 전반에 대한 흐름을 꿰뚫고 있었다. 또 현재 가요계에 대한 분석은 물론 앞으로의 전망까지 내놨다. 거의 대중문화평론가 수준이었다. 나도 음악을 소비하는 대중 입장에서 하예 양에게 잘 어울릴 만한 콘셉트를 제안했다. 물론 선배 매니저들만큼 전문적인 의견이진 않았지만 그들은 내 제안을 참고하겠단다. 다가오는 5월 하예 양의 앨범 콘셉트에 내가 제안한 내용이 들어갈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꽤 오래 이어진 회의가 끝나니 살짝 피로가 몰려왔다. 아마 끊임없이 하예 양에게만 집중하다보니 쉴 틈이 없었던 것 같았다. 그러고 보면 선배 매니저들은 이때까지 개인적인 일을 하는 것을 못 봤다. 그냥 ‘하예’ 양이 그들의 전부인 듯했다.

지쳐있는 내 표정이 안쓰러웠던지 잠깐 쉬면서 이야기 나누자는 내 제안에 흔쾌히 응했다. 하예 양에게 이런 생활이 힘들지 않냐고 물었다.

■ 힘들 때면 매니저 언니가 많은 얘기를 해줘요. 고민 상담사처럼?

또 변신해야했다. 그래도 이번에는 자신이 있었다. 하예 양보다 9년을 먼저 살았으니 지금 가지고 있는 고민에 대한 답은 내려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게 웬 걸. 그녀의 고민은 ‘자신의 목소리가 경쟁력이 있을까’, ‘좋은 음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등 진지한 것들이었다. 조언을 해주고 싶었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답은 ‘땀은 배신하지 않는다’ 등 식상하기 짝이 없는 말뿐이었다. 자신감을 심어주는 조언을 쉽게 하는 매니저들의 스킬은 정말 전문 상담사 못지 않았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이들의 정체는 뭘까. 일상에선 엄마로 활동하고, 연습 때는 엄한 선생님으로 변했다가 이내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는 치어리더가 되기도 한다. 또한 그들은 음악에 관해서는 전문가 뺨치는 지식을 가지고 있고, 고민을 토로할 때는 상담사로 변신해 뛰어난 상담 스킬을 발휘한다.

그들은 능력자였다.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을 그때 하예 양이 충격적인 말을 건넨다.

■ 이것뿐만이 아닌데…

또 있다는 말인가… 어쩌면 매니저라는 이름보다 ‘하예 전문가’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듯했다.

일정을 마무리하고 밖으로 나왔다. 오랜 시간 함께 한 건 아니지만 서로가 꽤 편해졌나보다. 경직된 모습을 보이던 매니저들도 한결 편해진 듯했다. 어울려 대화를 나누다 신발 끈을 묶으려 잠깐 멈춰 섰다. 잠깐 기다려달라고 말하려던 순간, 하예 양과 매니저들 뒷모습에서 이날 본 다섯 가지 모습과는 다른 무언가가 느껴졌다. ‘친구’

그들은 친구였다.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며 걸을 수 있는 그들은 아주 가까운 친구이기도 했다.

방송에 가끔 나오던 매니저의 모습. ‘어떤 사람들일까’ 에서 시작된 이번 체험에서 그 궁금증을 모두 해소하진 못했다. 그들은 엄마, 엄한 선생님, 치어리더, 대중문화평론가, 고민상담사, 아주 편한 친구라는 것 정도만 알았을 뿐이었다.

이날 내가 본 매니저는 하나로는 단정 지을 수 없는 ‘카멜레온(?)’ 같은 사람들이었다.

신지원기자 sj2in@kyeonggi.com

사진=전형민기자 hmjeon@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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