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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현장체험]전통된장 담그기ㆍ된짱 뜨기

국산 재료로 까다롭게, 옛 방식으로 정성껏… 나, 진짜 ‘된장녀’ 됐다!

‘좋은 날을 골라 고사를 지낸다. 3일 전부터 불경스러운 일을 피하고 외출을 삼간다. 당일에는 목욕재계를 하고 음기를 발산하지 않기 위해 한지로 입을 막는다.’

이 철저하고도 경건한 의식은 모두 우리 조상들이 장을 담글 때 치른 일들이다. 수백년, 수천년 전부터 우리 밥상 한켠에 자리했던 된장은 여전히 한국인의 주요 식품이지만, 요즘에는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내고 있는 만큼 그 의미가 가벼워진 것 같다. ‘젠장’이라는 단어와 발음이 비슷하다고 해서 대신 쓰이거나 자기 분수에 맞지 않게 명품을 애용하고 사치를 부리는 여성을 비하하는 ‘된장녀’라는 단어가 사회 전반에서 통용되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봄이 올락말락하는 3월의 어느 날, 된장의 소중함을 몸으로 느껴보겠다며 양평군 지평농협 전통장류 가공공장을 찾았다. 옛 방식으로 된장을 직접 담가보고 된장의 모든 것을 파헤쳐보며 오늘 하루 ‘진짜 된장녀’가 되어 보기로 한 것. 결론부터 말하자면 장 담그기는 지극히 전통적이면서도 놀랄 정도로 과학적이었고, 예상보다 몸이 힘든 육체노동이기도 했다.

이 날은 마침 농협중앙회 경기지역본부와 농가주부모임 경기도연합회 시군회장단 70여명이 소외계층을 돕기 위한 전통된장 담그기 및 된장 뜨기 행사를 실시한 날이었다.

농가주부모임 경기도연합회는 지난 2007년부터 매년 회원들이 직접 담근 전통 된장을 기금마련을 위한 공동소득사업으로 펼쳐 왔으며, 수익금으로 소외계층과 사회복지시설 등을 돕는 사랑의 나눔 활동을 전개해 오고 있다.

앞치마와 위생모, 고무장갑까지 끼고 유리온실로 들어서자 수천개의 항아리가 햇빛을 받으며 줄을 지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항아리보다는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장이 익숙한 기자는 그 모습만으로도 감탄이 터져나왔다.

한쪽에는 농가주부모임이 만드는 장이 담긴 배꼽까지 오는 큰 항아리들이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저마다 표식을 단 작은 항아리들이 자리했다.

작은 항아리들은 매년 장담그기 체험을 오는 이들의 것으로 항아리 하나하나에는 표식에 장 담그기 체험자 이름과 장 담그는 날, 장 뜨는 날이 적혀 있었다.

양점남 농협중앙회 경기지역본부 여성복지실장은 “한번 장 담그기 체험을 해본 사람들은 매년 이 곳을 다시 찾을 정도로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곳의 된장은 주재료인 콩부터 작은 부재료에 이르기까지 순수 국산을 사용한다. 양평 관내에서 생산한 믿을 수 있는 콩, 농협을 통해 공수한 대추와 고추, 천일염과 지하 160m 암반수, 숨쉬는 독까지 말이다. 공산품에 들어가는 방부제와 색소, 화학조미료는 일절 첨가하지 않는다.

“자, 이제 된장을 한번 담가 볼까요?”

눈이 휘둥그레져 있는 기자를 김정자 반장(57)이 잡아끌었다.

작업대에는 네모난 모양의 메주들이 쌓여 있었다. 지난해 가을 햇콩이 날 때 좋은 콩을 골라 만들어 말려 놓은 것이다.

김 반장은 “좋은 메주는 겉이 단단하고 속은 말랑말랑하며 밝은 갈색을 띤다”고 설명했다. 손에 들어보니 묵직하면서도 탄력이 느껴졌다.

메주를 항아리에 넣기 전에 꼭 거쳐야 할 순서가 있다. 항아리를 깨끗이 소독하는 일이다. 항아리에 달군 숯을 넣고 꿀을 한 수저 떨어뜨리면 연기가 피어오르면서 항아리가 소독된다.

말끔히 소독된 항아리에 메주를 여러 개 넣어봤다. 항아리가 거의 찰 때까지 채워 넣은 다음 대나무 가지를 휘게 해 물을 부어도 메주가 떠오르지 않게 고정시킨다. 메주가 물 위로 떠오르면 장이 잘 우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물을 부을 차례. 커다란 항아리에 소금물이 담겨 있었다. 각종 미네랄이 풍부한 천일염으로 만든 소금물이다.

김 반장은 “천일염의 쓴맛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간수를 제거해야 한다. 이 소금은 3년 동안 간수를 뺀 소금”이라며 “일주일 전에 이 소금에서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이물질까지 거른 뒤 깨끗한 지하수에 풀어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에는 동지가 지난 후에 내린 눈을 항아리에 받아서 녹인 ‘납설수(臘雪水)’로 장을 담그면 구더기가 생기지 않는다고 해 이 물로 장을 담갔다고 한다. 보통 까다로운 작업이 아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소금물의 농도. 지역이나 장 담그는 시기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염도를 18%에 맞췄다.

김 반장은 “염도계가 없던 시절에는 계란을 물에 띄워봤다”며 “떠오른 부분이 500원 동전 만한 크기라면 18%로 맞춰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왔다갔다 하며 바가지에 소금물을 길어 된장 항아리에 부었다. 물 항아리에서 물이 비어갈수록 허리를 굽히고 팔을 쑥 집어넣어 물을 길어올리기가 쉽지 않았다.

물을 항아리에 가득 찰 정도로 부은 뒤에는 홍고추 3개, 대추 3개, 그리고 숯을 띄운다.

여기에도 각각의 중요한 역할이 있다. 숯은 흡습성이 있어 잡내를 빨아들이는 작용을 하고 통고추는 살균 효과가 있을 뿐 아니라, 대추와 함께 붉은색이어서 나쁜 것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는 액막이용이다. 물론 단맛과 매콤한 맛도 가미해준다.

이제 다 됐나 싶었더니 또 할일이 남아있었다.

고추와 숯을 엮어놓은 금줄을 항아리 입에 빙 둘러 놓는 것이다. 금줄은 벌레는 물론 잡귀까지 막아준다.

과학과 미신이 오묘하게 섞이면서도 각각 제 역할을 해내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여기까지 완성했다면 이제 남은 것은 기다림과 정성이다. 40~50일간 항아리 주변을 깨끗이 닦으며 햇볕을 쬐어주면 숙성과 발효를 거쳐 장이 익어간다.

이 때 바로 ‘장 띄우기’가 진행된다. 된장과 간장의 운명은 여기서 갈라진다.

항아리에서 메주덩어리를 건져내 으깬 뒤 깊은 맛을 내기 위해 메주가루와 섞어주면 된장이 된다. 메주를 건져낸 물을 달인 뒤 식히면 간장이다.

한쪽에서는 이미 농가주부모임 경기도연합회 시군 회장단들이 지난해 담갔던 된장을 포장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커다란 대야에 옮겨놓은 된장을 1㎏ 투명용기에 담고 스티커를 붙이는 일이다.

대부분의 회원들이 매년 이 행사에 참여하고 있는지라 호흡을 맞춰가며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지난번보다 색깔이 좋네” “올해는 더 맛있다”라는 대화를 주고받으며 작업에 여념이 없었다.

기자와 함께 된장을 담던 회원 오정해씨(59·여·의정부)는 “3년째 장 담그기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며 “시판 된장과 확실히 다르다. 직접 담가 먹으니 안심이 되고 맛도 더 좋다”고 말했다.

이 때다 싶어 장을 살짝 찍어먹어 보니 짜고 달큰한 맛과 함께 시판된장에서는 잘 느끼지 못 했던 치즈 맛이 났다.

기자의 반응을 눈치챈 듯 김 반장은 “된장과 치즈는 단백질을 원료로 한 재료를 발효시켜 만든다는 점에서 닮은 꼴”이라고 말했다.

농가주부모임이 이날 완성한 전통된장은 총 1천㎏. 이 중 360㎏은 가정의 달인 5월 소년소녀가정, 홀몸어르신 및 복지시설 등 관내 소외계층에 전달하고 나머지 640㎏은 불우이웃돕기 기금마련과 다음 번 된장을 만들기 위한 공동소득사업의 일환으로 일반 소비자에게 판매할 예정이다.

전통 장을 직접 담가보면서 우리 먹거리의 소중함을 느끼고 소외계층과 농민을 돕는 값진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다가온 점심시간. 우리콩으로 만든 두부에 김치를 싸서 먹고 푹 끓인 된장국을 한술 뜨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얼마나 정성스레 만든 된장인지 알고 나니 그 맛이 더 구수하고 깊게 느껴졌다.

햇볕과 바람, 물, 콩, 소금 등 수많은 변수에 따라 장의 맛은 미묘하게 달라진다. 그리고 그 맛은 짧게는 한 해, 길게는 수년간 가족들의 식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왜 그렇게 장 담그는 일을 신성시 하며 공을 들였는지 알 것 같았다. 역시 된장은 가볍게 볼 식품이 아니었다.

구예리기자 yell@kyeonggi.com

사진= 전형민기자 hmjeon@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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