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에 번쩍 西에 번쩍… ‘인명구조’ 최일선
어릴 적 꿈은 자주 바뀐다. 직종도 대통령, 과학자, 의사, 판사, 경찰, 소방관 등 다양하다.
나도 한때 소방관을 꿈꾼 적이 있다. 물론, 어렸을 때 한순간이었지만 동네에 큰불이 났을 때 소방관이 불을 끄는 모습을 보며 멋있다고 동경했던 것 같다.
하지만, 어린 나이였지만 본능(?)적으로 어렵고 힘든 소방관의 꿈은 일찍 접었다. 그 후 30여 년이 지나 소방관을 꿈꿨던 아이가 어릴 적 꿈을 이룰 기회가 생겼다.
초등학교 소풍 가기 전날처럼 설렘에 잠을 뒤척이다 새벽 일찍 잠에서 깨 소방관 현장체험에 나섰다.
솔직히 장비를 착용하고 멋있게 불을 끄는 체험을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화재현장의 위험성이나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아 소방관 업무 중 구조대에서 현장체험을 하기로 했다.
소방조직의 업무 분담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무지로 인해 9시간에 걸친 진한(?) 구조대 소방관 체험기를 지금부터 공개한다.
■ 심폐소생술 무식자·기계치서 ‘우등생’으로 거듭
1일 현장체험을 위해 최근 부천소방서에 오전 8시30분께 도착했다. 애초 계획은 아침 교대점검부터 체험해야 하지만 이날 아침 화재가 발생해 교대점검은 건너뛰고 심폐소생술과 제세동기 사용법 교육을 받았다.
심폐소생술 교육을 맡은 부천소방서 조은혜 소방교는 “심폐소생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위치와 속도, 누르는 깊이”라고 강조했다. 누르는 위치는 젖꼭지 사이 한가운데이며 압박 속도는 분당 100회 이상, 깊이는 5㎝ 이상 압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나는 심장이 멈췄기 때문에 심장이 있는 왼쪽을 압박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만약 교육을 받지 않고 실제 현장에서 왼쪽을 압박했다면 갈비뼈가 부러져 장기손상을 줄 수도 있어 압박 위치는 매우 중요했다.
심폐소생술을 마치자 기계에서 기자의 심폐소생술 성적표가 나왔다. 평균깊이 5.9㎝, 평균압박속도 105회(분당), 정확도 97%. 성적표를 본 조 소방교의 칭찬에 우쭐한 것도 잠시 제세동기 교육에 긴장했다. 기계치까지는 아니지만, 기계를 다루는데 서툴러 심폐소생술 우등생 이미지가 사라질까 염려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세동기 장치에 부착된 두 장의 패치를 왼쪽과 오른쪽 가슴에 한 장씩 붙이고 기계 전원버튼을 누르면 자동으로 환자의 심박 수를 체크하고 판독, 안내멘트에 따라 번개모양의 버튼을 누르는게 전부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수평·수직레펠 훈련 중 ‘사이렌’…긴장된 첫 출동
기본응급처치 교육을 받은 후 본격적인 체험을 위해 오전 11시 구조대로 배속됐다.
소방서는 크게 화재진압대, 구급대, 구조대로 나뉜다. 화재진압대는 불이 났을 때 주로 불을 끄는 것을 주 임무로 하고 있으며 구급대는 신속히 출동해 응급처치하며 병원으로 후송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기자가 배속된 구조대는 주로 사건·사고 현장에서 인명을 구출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여기서부터 고난이 시작됐다. 화재진압대를 피하고자 선택한 구조대는 인명구조와 화재진압, 생활민원까지 처리해야 했기 때문이다.
구조대에 배치된 기자는 부천소방서 이은오 구조대장이 속한 2팀(구본학 소방장, 이재호 소방교, 지창민 소방사)과 함께 훈련을 시작했다.
특전사 출신으로 특채로 임용된 지창민 대원의 수평·수직 레펠 시범 후 기자가 훈련을 위해 자리를 옮기자 갑자기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오전 11시36분, 역사적인 첫 출동이었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울리며 구조대 차량이 소방서를 나서자 묘한 기분과 함께 흥분됐다. 출동하며 신고 내용을 확인했다. 신고 내용은 중동의 한 건물 창틀 난간에 사람이 있다는 것이었다. 자살기도자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4분여 만에 현장에 도착한 구조대는 신속히 건물로 올라갔다. 다행히 자살기도자는 아니었지만 좁은 창틀 사이에서 청소하다 창문이 닫힌 사고로 다친 곳 없이 무사히 구조에 성공했다.
■ 무게 25㎏ 방화복·장비 갖추고 화재진압 특명
점심 시간이 끝나자마자 바로 오후 훈련인 화재 인명구조 훈련이 이어졌다.
화재 인명구조 훈련은 방화복을 입는 것부터가 훈련이었다. 대원들은 화재 출동 시 좁은 차량 안에서 5분 이내 옷을 입지만 초보 구조대원인 기자에게는 차량 밖에서 입을 수 있는 특혜(?)가 주어졌다.
섭씨 500도까지 버틸 수 있게 만들어진 방화복을 입고 공기호흡 세트 등 장비를 착용한 무게는 25㎏.
훈련을 위해 장비와 마스크를 착용한 상태에서 옥상에 마련된 훈련장으로 이동했다. 마스크를 쓴 상태에서 5층 높이의 옥상에 도착하자 숨이 턱 밑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40여 분의 훈련시간이 지나자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구조대장은 “화재신고니까 방화복 입은 그대로 출동하면 된다”고 말하며 신속히 출동차량에 탑승할 것을 지시했다.
구조대장은 안전상 화재현장에는 들어오지 말라며 대원들과 화재가 발생한 주택 내부로 들어갔다.
잠시 후 불길이 순식간에 번지며 샌드위치 패널로 된 지붕 위로 불길이 올라오며 연기가 심해지자 시커먼 연기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매캐한 연기를 한 모금 들이마시자 숨을 쉬기도 어렵고 기침도 나왔다.
그때 어디선가 기자를 부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한 소방관이 나를 부르며 장비를 가져다 달라고 했다. 방화복에 장비까지 풀세팅하고 서 있는 내가 아마도 소방관인 줄 알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무슨 장비인지, 어디서 가져와야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어쩔 줄 몰라 서 있는 기자를 뒤로한 채 다른 소방관이 장비를 챙겨 위기를 모면했다. 이후에도 사이렌은 멈출 줄 몰랐고 그때마다 허둥지둥 기자는 온갖 구조현장을 누비는 행운(?)을 안았다.
■ 소방공무원 국가직 전환의 필요성 ‘공감’
9시간의 체험을 마치며 이은오 구조대장에게 소방관으로서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이에 이 대장은 지방직인 소방공무원의 신분을 국가직으로 바꾸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현재 장비, 인원 등 소방공무원들의 처우는 지방재정에 따라 다르다.
소방 서비스는 모든 국민에게 보편적인 서비스로 지역별 편차가 없어야 하지만 현실은 지방재정에 따라 지역별 편차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줄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지방재정이 좋은 곳에서 사고를 당하면 살 수 있지만 지방재정이 좋지 못한 곳에서 사고를 당하면 죽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소방관 체험을 하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게 되는 하루였다. 모든 공무원들이 국민을 위해 일 하지만 소방관처럼 타인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고 일하진 않는다. 재해현장에서 밤낮없이 뛰는 소방관들이 새삼 위대하게 느껴지는 하루다.
부천=윤승재기자
사진=전형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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