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력·실전 감각 ‘무장’… 2015프로야구 우렁찬 “스트~라이크”
영동고속도로 이천IC를 통해 장호원 방향으로 10분쯤 달리다 보면 웅장한 복합체육시설이 눈에 들어온다.
총 1천200억원을 투입해 탄생한 LG 스포츠단의 보금자리 ‘LG 챔피언스파크’다. 이 시설의 한 쪽에는 프로야구 LG 트윈스의 연습구장이 자리해 있다.
LG 선수들이 스프링캠프 훈련을 위해 따뜻한 미국으로 떠난 이 곳에서는 한국야구위원회(KBO) 소속 심판위원들이 동계 훈련캠프를 차리고 선수들 못지않은 뜨거운 열기를 뿜어냈다.
지난 21일 낮 논과 밭에 둘러쌓인 채 고요함이 감도는 이 곳을 찾았을 때 프로야구 심판원들의 쩌렁쩌렁한 기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심판위원들이 동계 합동훈련을 실시하는 건 프로야구 출범 이래 이번이 처음이다.
프로야구 심판 44명 중 미국 심판학교 연수 중인 4명을 제외한 40명이 모두 참가했다.
지난 19일부터 시작돼 이날로 사흘째를 맞이한 이 훈련은 23일까지 이어질 예정이란다. 도상훈 KBO 심판위원장은 “심판 모두가 개인 체력운동을 꾸준히 해왔지만, 부족한 실전감각을 끌어올리고자 이번 훈련을 기획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훈련 프로그램은 의외로 단순했다. ‘위치선정 훈련’과 ‘피칭머신 훈련’이 전부였다. 하지만 강도는 셌다. 한 심판위원은 “군대에서 했던 걸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며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지만 기자는 훈련 돌입 전 준비운동만으로도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 준비운동부터 밀려오는 압박감… 악~을 이끌어 내라
기자가 훈련에 합류한 시간은 오후 1시10분께. 심판들은 간단한 스트레칭을 마치고 인터벌 트레이닝을 한창 소화하고 있었다.
도 위원장은 “경기일보 조성필 기자야. 오늘 심판 훈련이 얼마나 힘든지 체험한다고 하니까. 같이 해보자고”라며 기자를 소개했다. 쉽지 않겠다고 직감했다. ‘얼마나 힘든지’라는 말에서 일말의 압박감을 느꼈던 것이다.
사이드 스텝과 러닝으로 본격적으로 1일 심판 동계훈련 체험이 시작됐다. “파이팅” “앗” 등 우렁찬 기합소리가 여기저기 울렸다. 거친 숨소리도 느껴졌다.
각 프로야구단들이 시즌에 대비해 스프링캠프에서 뿜어내는 훈련장 못지않은 열기였다. 사실 이 같은 열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홀로 겉도는 느낌이었다.
훈련 교관을 맡은 윤상원 심판위원은 이를 놓치지 않고 잡아냈다. 그리고는 기자를 위한 특별훈련을 지시했다.
‘버피 테스트’(Burpee testㆍ선 자세에서 손짚고 엎드리기를 반복하는 운동으로 민첩성을 테스트 하는 것)와 선착순 달리기 등 체력훈련을 반복적으로 시켜 ‘악’ 소리를 이끌어 내려는 의도로 비춰졌다.
선착순 달리기 직후 “목소리 크게 내십시오”라는 윤 심판위원의 말한마디가 기자의 예상을 확신으로 바꿔 놨다.
준비운동의 마지막 순서는 일명 ‘콜업’ 훈련이었다. 콜업 훈련은 판정 시 하는 특유의 몸동작과 함께 ‘아웃’ ‘세이프’ 등의 콜을 외치는 것을 말한다.
한 심판위원에게 자세를 간단히 교육받고 기자도 합류했다. 소리를 있는 힘껏 질러보지만, 배에서 나오는 심판들의 목소리 앞에선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약 30분간 진행된 준비운동은 심판 40명이 다 같이 “아웃”을 외치며 끝이났다.
한숨 돌리려던 차에 윤 심판위원이 말을 건네 왔다. “할 만 하세요?” 그랬다. 굵은 땅방울이 이마 곳곳에 송골송골 맺히고 목은 쉴 대로 쉰 상태였지만 아직 본 훈련은 시작도 안했던 것이다.
■ 4개조 나눠 피칭머신 훈련…새 스트라이크존 적응기
본 훈련은 4개조로 나뉘어 진행됐다. 피칭머신 훈련은 스트라이크와 볼을 골라내는 훈련이다.
더욱이 2015시즌부터는 프로야구 스트라이크 존이 높은 쪽 존을 공 반개만큼 높이는 형태로 바뀐다고 한다.
지나치게 심화된 ‘타고투저 현상’을 완화시키기 위한 변화로, 이로 인해 초점은 바뀐 스트라이크 존 적응에 맞춰져 있었다.
심판들은 구장 한쪽에 피칭 머신 2대를 설치한 뒤 스트라이크 존 높은 쪽 공을 던지게 했다.
새로운 존에 눈을 적응시키는 과정이었다. 경기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 심판들이 “이 높이가 (스트라이크를 불러주는) 맥심인 것 같다”며 젊은 심판들의 적응을 도왔다.
심판들의 존이 제 각각이면 논란을 불러일으키기 십상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서로를 점검하면서 공통의 존을 만들어 가는 것이었다.
기자 차례가 돌아왔다. 공의 속도는 약 65마일(105㎞) 전후. 기자가 감을 못 잡고 연신 고개를 갸우뚱하자 옆에 있던 한 심판위원이 “판정을 해야죠”라며 핀잔을 준다. 공 10개 정도를 봤을까. 이 심판위원은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그만 하시죠”라며 기자를 끌어내렸다. 그리고는 개인과외를 시작했다.
“투수가 공을 던지는 순간에 스트라이크와 볼인지는 결정이 됩니다. 포수가 공을 받았을 때는 확인만 하는 거죠. 기자님처럼 하면 실제 경기서 아무 것도 못해요.
투수들이 속구를 뿌리면 140~150㎞에 육박하는데 그에 비하면 지금 공은 초등학생이 던지는 수준이거든요. 앞쪽을 보세요.
그리고 감을 익히는 겁니다.” 과외를 받고 다시 자리에 들어서자 판정이 한결 쉬워졌다. 확실히 스트라이크와 볼은 시작점부터 달랐다.
다만 변화구는 얘기가 달랐다. 시작점에선 스트라이크라 생각했던 공이 포수가 받으니 볼로 들어왔다.
이에 대해 조금 전 심판위원에게 조언을 구하자 그는 “변화구도 변화구 나름”이라며 “포크볼은 우리같이 10년 이상 심판생활한 사람도 판정에 어려움을 겪을 때가 많다”고 털어놨다.
슬라이더나 커브와 달리 포크볼은 일정한 궤도를 갖고 있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아쉽게도 이날 포크볼을 접할 순 없었다. 포크볼을 제대로 구사할 투수도, 피칭머신도 갖춰져 있지 않은 까닭에서였다.
도 위원장에 따르면 포크볼에 대한 감각은 오는 2월6일부터 팀별로 순차적으로 오키나와, 애리조나, 미야자키 등으로 떠나 현지에서 전지훈련 중인 팀들의 연습경기에 합류해야만 익힐수 있단다.
■ 정확한 판단 위해선 위치선정 훈련도 필수
위치선정 훈련은 심판훈련 중 기본기에 해당한다. 도 위원장은 “정확한 판정을 위해선 공과 주자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위치를 찾아 자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물론 실제 경기에선 변수가 존재한다고 한다. 한 심판위원은 “위치를 잘 잡았다 생각했지만 막상 아닐 경우가 많다”며 “이럴 경우는 선수들의 표정을 살피는 등 각자의 노하우를 발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심판들이 직접주자가 되고 수비수가 돼 실전상황을 연출했다. 아웃카운트와 주자 상황에 따른 맞춤 훈련도 진행됐다.
한 심판위원은 “선수들처럼 동선이 정해져 있다”며 “‘이런 상황에 이렇게…’ 등 각 상황에 맞춰 움직여 재빨리 가장 좋은 자리를 찾아 자리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위치 선정 훈련 때 심판들 사이에선 방송 중계 때 사용되는 카메라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심판들은 “판정 시 도움도 되고, 때론 공부도 된다고 하지만 카메라에 절대적으로 의지해선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한편으론 우려 섞인 목소리도 흘러나왔다.
한 심판위원은 “카메라 기술이 발달하면서 비디오 판독이 도입되곤 했는데 이를 남발할 경우 심판들의 권위가 떨어지는 등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2015 프로야구는 kt 위즈의 1군 합류로 사상 처음으로 10개 구단, 팀당 144경기 체재로 이뤄진다. 하루 4경기였던 일정도 5경기로 늘어난다. 그만큼 심판들도 바빠졌다.
이동거리 등을 생각하면 체력적으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도 위원장은 “심판들이 체력훈련을 정말 열심히 했다”며 “나이가 든 심판들도 뒤처지지 않으려고 더욱 철저히 준비해온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2015 프로야구 개막까지 남은 시간은 60여일. 비록 단 하루의 심판 경험이었지만 KBO 심판들의 사상 첫 동계 합동훈련장에서 함께 움직이고 고함을 지르며 느낄 수 있었던 열기가 시즌 중 명판정으로 이어지길 기대하면서 훈련장을 나왔다.
조성필기자
사진=전형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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