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심 산업현장 만들기 전직원 불철주야
어린 시절 공장견학을 가면 남들은 시끄럽다고 귀를 틀어막을 때, 그 소리가 왜 그렇게 좋았는지 어른들의 제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제 집처럼 뛰어다닌 기억이 있다. 공장 아저씨는 “위험하다”며 타일렀지만, 철없는 꼬마에게는 ‘쇠귀에 경 읽기’였다.
시간이 지나 운전병으로 복무하던 군 시절, 부대 내 정비공장에서 일명 ‘타이어 도리까이’(타이어 교체) 작업을 하다 휠을 고정한 볼트가 갑자기 튀어 올라 옆에 있던 전우의 다리가 크게 다친 것(그는 6개월 가까이 국군 통합병원에 누워 있었다)을 보게 된 이후에야 깨달았다.
조금만 방심해도 언제나 위험이 도사리는 장소가 공장이라는 것을. 그러나 산업의 핵심인 공장이 멈춰서는 안 된다. 공장은 안전하고 행복한 사업장이 돼야 한다.
이런 생각으로 경기남부지역 사업장 안전과 근로자 보건을 불철주야 챙긴 안전보건공단 경기남부지사의 안전지도원으로 나섰다. 단 하루의 경험이었지만 한 가지 느낀 점이 있다. 안전은 모두가 함께해야 지킬 수 있다는 걸 말이다.
지난 7일 오전 11시30분 화성시 정남면에 소재한 선영정공사 사업장. 안으로 들어가자 기계 돌아가는 소리와 무언가를 내리찍는 듯 쿵쿵거리는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11t 트럭이 주차장에서 물품을 내렸고, 이를 옮기는 지게차도 쉬지 않고 움직였다.
오늘 하루 사수를 맡은 강현수 안전보건공단 경기남부지사 교육문화팀장을 만난 것은 이 공장 안 사무실이었다.
30년 가까이 각종 사업장의 안전을 책임져 온 강 팀장은 베테랑답게 기자의 신발을 보며 문제점을 바로 지적했다. “사업장 안전 점검을 할 때는 안전화를 신어야 한다”는 것이다. 산 지 얼마 안 돼 때 빼고 광낸 구두가 머쓱해지는 순간이었다.
준비된 재킷과 안전모를 착용하자 그럴싸한 안전지도원으로 변신했다. 색다른 마음으로 공장에 바로 들어서려는 찰나, 강 팀장은 다시 한번 ‘초짜’ 지도원을 말린다. 현장 점검에 앞서 중요한 사항이 있다는 것이다.
바로 작업장에 대한 이해와 사업주 안전 교육이다. 작업장마다 쓰는 장비와 기계도 다르고, 점검해야 할 점이 당연히 다를 터,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27년째 선영정공사를 운영하고 있는 김문곤 대표와 합석해 기본적인 제반 사항을 들었다. 프레스 금형 제작ㆍ가공 등을 하는 업체로 근로자 47명, 15대 정도의 프레스 기계가 있다는 소개가 이어졌다.
계속된 사업주 교육. 사업주 교육은 현장에 나가면 반드시 이뤄져야 하는 부분이다. 기본적인 점검 사항뿐 아니라 올해부터 바뀐 제도 등 사업장이 알아두어야 할 사항에 대한 소개도 필수다.
강 팀장과 김 대표 옆에 앉아 각종 자료를 통해 안내를 시작했다. 이날 소개의 핵심은 바로 산재보험요율 감면. 선영정공사는 50인 미만의 제조업체로 매년 3천여만원의 적지 않은 산재보험료를 납부하는 상태였다.
그러나 이러한 소규모 사업장은 ‘위험성평가’ 사업주 교육을 받으면 1년에 10%, 위험성평가 우수사업장으로 인정되면 3년 동안 20%가 감면된다.
이를 알리고 더욱 안전한 사업장이 되도록 돕는 것이 지도원의 우선적인 역할. 마지막으로 프레스가 많고 서서 일하는 작업이 많은 직원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공장 내부에 붙일 수 있도록 손 조심을 안내하는 스티커와 굳은 몸을 풀어주는 스트레칭 요령이 나온 포스터 등을 김 대표에게 건넸다.
30여분간 이어진 안내 이후, 본격적으로 현장 안전을 점검할 차례. 안전모 턱 끈도 꽉 조이고, 양손에는 장갑을 단단히 착용한 채 점검을 위한 수첩과 펜을 들었다. 공장 안으로 들어가자 먼저 눈에 띈 멈춰선 지게차.
올해부터 지게차 운전 시 안전벨트를 매지 않으면 운전자에게 15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2차에 걸리면 30만원으로 늘어난다. 당장 운행하지 않더라도 이렇게 소소한 점 하나까지 지도원은 놓쳐서는 안 된다.
이윽고 공장 작업의 핵심인 프레스 기계 안전장치 점검이 시작됐다. 프레스기는 작업 중 자칫하다가는 손을 심하게 다칠 수 있어 항상 조심해서 다뤄야 하는 장비다. 그래서 손이 가까이 가면 자동으로 멈추는 광전센서가 설치돼 있다.
크기는 조금씩 달랐지만, 15대에 이르는 프레스기 모두 이 같은 장치가 설치돼 있었다. 이 장비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포인트다. 한창 근로자들이 작업을 하는 사이 실례를 무릅쓰고 손을 센서 앞으로 댔다. 철판을 쾅쾅 찍어 누르던 프레스기가 일순간 멈췄다.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
일일이 기계마다 손을 대보고 머리를 대보며 작동 사항을 확인했다. 모든 장비가 제대로 멈춰 섰다. 근로자들의 안전한 작업이 이뤄질 수 있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었다.
다음은 천장에 매달린 크레인을 점검할 차례. 공장 내부에서 무거운 물품을 옮기는 데 사용하는 만큼 적정한 고정장치와 일정 무게 이상 옮길 수 없도록 하는 과부하 방지 장치의 작동은 필수다.
다행히 모두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크레인후크에는 물건을 걸었을 시 빠져나갈 수 없도록 하는 스프링 장치가 올바르게 설치돼 있었고, 과부하 방지 장치에도 정상을 나타내는 파란 램프가 떠 있었다.
이를 지켜보던 강 팀장은 “크레인후크에 고정장치를 빼놓으면 자칫 물건이 빠져 추락하는 위험한 상황이 일어날 수 있음에도 이를 무시하는 곳도 더러 있어 세심히 체크해야 한다”고 귀띔했다.
이와 함께 2년마다 반드시 시행해야 하는 안전검사가 제대로 이뤄졌는가도 확인 사항이다. 기계마다 붙여놓은 안전점검표를 확인했다. 지난해 2월에 점검을 받았다는 확인표가 붙어 있었다. 이 기계들은 내년 2월에 다시 안전점검을 받아야 한다.
이번엔 자리를 옆 작업장으로 옮겼다. 여러 금형 제작품이 진열된 사이에 두 대의 수동 프레스기가 있었다. 앞서 본 기계식은 설정해 두면 자동으로 작동돼 근로자의 손을 직접 이용하는 경우가 적지만, 수동은 일일이 작업자가 금형을 넣고 작동해야 해 위험성이 더 크다는 게 강 팀장의 설명이다.
언제나 안전을 염두에 둔 작업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안전지도원은 세세한 사항도 점검해야 한다. 주변의 사소한 하나가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에어 탱크의 압력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서서 장시간 근무하는 직원들이 몸은 제대로 풀고 있는지, 직원들의 안전장비 활용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하나하나 확인한 뒤에야 지도원의 일이 끝났다. 덥지 않은 날씨였음에도 안전모를 쓴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안전한 사업장 하나를 만드는 데는 수많은 노력이 들어간다. 더구나 안전은 누구 한 명의 노력으로는 얻을 수 없다.
이번에 찾은 선영정공사는 안전점검이 제대로 이뤄져 있고 사업주, 직원들의 안전인식이 소규모임에도 수준 높은 사업장이었다. 하지만, 이 시간 다른 어디에서는 안전사고로 다치는 근로자가 나오고 있다. 지난해부터 끊임없이 이어지는 대형사고가 이를 증명하는 듯하다.
조금만 더 신경을 썼다면 이런 불상사는 없지 않았을까. 끝으로 건설현장과 제조사업장 등 각종 현장 안전과 직원 건강을 챙기는 데 온 힘을 쏟고 있는 안전보건공단 직원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이관주기자
사진=전형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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