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상처 싹~ 치유하고 얘들아! 우리 집에 가자
안녕하세요. 저는 ‘달콩’이라고 합니다. 꽃피는 춘삼월, 유기견인 말티즈 엄마와 똥개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믹스견입니다. 화성시의 한 야산에서 발견됐어요. 발견 당시 엄마와 아빠는 없었어요.
형제 셋과 함께 발견됐지만 모두 무지개다리를 건넌 뒤였죠. 그래서 유기견이 됐습니다. 이 곳 ‘경기도도우미견나눔센터’에는 지난 5월 15일 입소했습니다.
여기서 도우미견으로 훈련 받고 있는 60여 마리의 유기견 중에서 가장 어립니다. 그래서 예쁨도 일등, 말썽도 일등입니다.
아직은 너무 어려서 ‘먹고 싸는데’ 집중하고 있지만 조금 더 자라면 배변훈련부터 복종훈련까지 나름 혹독한(?) 트레이닝을 받게 됩니다. 그러고 나면 내게도 새 주인이 나타나겠죠. 앞으로 몇 달 후.
나는 어떤 강아지로 자라 있을까요? 또 어떤 주인을 만나게 될까요? 벌써부터 두근대는 건 나 뿐은 아니겠죠.
■ 죽음의 위기 ‘유기견’ 훈련 통해 ‘도우미견’으로
“9시 30분부터 청소 시작입니다. 늦지 말고 오세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경기도도우미견나눔센터 여운창 팀장의 목소리가 단호하다.
계기판 시계를 보니 9시 20분. 수원에서 화성까지 굽이굽이, 우둘투둘 길을 지나 마도면 쌍송리에 소재한 경기도도우미견나눔센터까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약속시간에서 30분이 지나있었다.
미안함에 조용히 차에서 내려 센터 문을 두드렸다. ‘똑~똑.’ 기척이 없다. 들어가 보니 사람도 없다. 살짝 불안했다. 본관 건물 모퉁이를 돌아보니 ‘왈왈’ 개 짖는 소리가 선명하다.
“저 곳이군” 소리를 쫓아 간 자리에 ‘도우미견 보금자리’라고 적힌 길쭉한 건물이 눈에 들었다. 안에는 세 명의 훈련사가 분주하게 견사를 청소하고 있었다.
인사를 하려 들어가려는 순간, 여운창 팀장이 기자를 불렀다. “기자님 30분이나 늦었어요. 월요일은 대청소하는 날이라서 모두가 안으로 밖으로 박박 밀고, 쓸고, 닦고 합니다. 아무리 견사라고 해도 쾌적한 환경이 중요하니까”
말이 끝나자마자 기자에게 앞치마가 주어졌다. 한 손에는 청소기, 다른 한 손엔 대걸레. 중무장한 뒤 송민수(32), 장봉덕(31), 경지윤(21) 훈련사와 첫 대면했다. 50여 마리의 개들이 일제히 짖는 통에 인사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대강 악수만 나누고 바로 청소에 들어갔다.
유일한 청일점 훈련사인 장봉덕 훈련사가 기자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견사는 어느 정도 청소가 마무리 됐어요. 기자님께서는 본관에 있는 훈련실과 로비 청소 좀 부탁합니다.” 생각보다 넓지 않아 청소는 가뿐했다.
나름 10년의 자취생활에 터득한 노하우로, 각에 맞춰 훈련교구를 정렬하고, 개털(?)하나 없이 30분 만에 말끔히 청소를 끝냈다. 하지만 핵심은 따로 있었다.
‘이사준비’. 지난 1년여 간의 공사를 거쳐 내주 개소하는 ‘제2 도우미견 보금자리’ 건물에 사료와 기자재를 옮겨야 하는 일. 계획대로라면 여 팀장과 장 훈련사, 두 명의 몫이었다. 거기에 기자가 더해졌다.
여 팀장이 1일을 체험일로 강조한 연유가 이거였다. 30도를 웃도는 구름 한 점 없는 날씨. 귀여운 강아지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거라는 나름의 상상은 그렇게 시작부터 삐걱대고 있었다. “근데 개들은 언제 보는 거지?”
■ 민원 접수부터 훈련·치료·잡무까지… “그래도 보람차”
땡볕 아래로 하나 둘, 차곡차곡 사료포대가 쌓였다. 그 때마다 땀도 주룩주룩 흘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선크림이라도 바르고 오는 건데”. 혼잣말을 하는 데 손수레 위로 금세 열 포대가 적재됐다. 그렇게 창고와 새 건물 왕복을 수 십 차례. 시계는 점심시간을 훌쩍 지나있었다.
그때서야 여 팀장이 미안했는지 먹고 싶은 걸 이야기 해보란다. 시원한 콩국수가 생각났다. 4시간 만에 찾아온 꿀맛 같은 점심시간. 드디어 정식으로 훈련사와 수의사 선생님과 인사를 나눌 기회다.
이 곳 ‘경기도도우미견나눔센터’의 직원은 모두 다섯이다. 이곳을 총괄하고 있는 여 팀장과 세 분의 훈련사, 그리고 남영희 수의사, 멤버 구성은 이렇다. 개소 초기부터 현재까지 쭉 다섯이었다.
인구가 많은 만큼 유기견도 많다. 한 해 1만5천 마리, 그 중 절반은 주인을 찾지만 나머지 절반은 안락사 당하거나 자연사한다.
안타까운 마음에 최대한 많은 생명을 죽음에서 건져 올린다. 그 때문에 견사는 언제나 만원이다. 때문에 일은 많지만, 생사(生死)의 기로에 놓인 유기견을 구해낸다는 보람이 크다. 도우미견 훈련에, 치료에, 청소에, 민원에, 잡무에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고 힘들지만 언제나 마음만은 넉넉하단다.
여 팀장이 한마디 더 건넨다. “사실 의미가 커요. 위태로운 생명들과 마주한 일인 만큼 허술하게 할 수 없죠. 견사가 두 배 늘어나 일도 두 배 나 더 늘었지만, 그만큼 더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으니 보람도 두 배 더 늘겁니다.” 오전 내내 고된 노동을 하며 쌓였던 섭섭함이 봄 눈 녹듯 사그라졌다.
■ 5시간 만에 만난 귀여운 ‘도우미견’… 그야말로 ‘심쿵’
드디어 개들과의 만남이 허락됐다. 도착 5시간 만이다. 하명(下命)은 최근 입소한 도우미견 DHPPL 종합 예방접종. 홍역, 전염성 간염, 렙토스피라, 파보 바이러스 장염, 파라인플루엔자 등 다섯 종에 대한 예방주사를 접종해야 하는 임무다.
2주간 관찰을 통해서 이상이 없으면 DHPPL를 주사한다. ‘고니’, ‘순이’, ‘깨비’, ‘방울’ 네 마리의 도우미견이 기자의 품에 안겼다. 첫 타자는 푸들인 고니. 풋내기 냄새가 났는지, 기자에게 안기자마자 발버둥을 쳤다.
기자의 양쪽 팔뚝과 손등에 발톱으로 스크래치를 냈다. 쓰리고 따가운. 하기야 서른 넘은 나도 주사가 무서운 데 개들은 얼마나 더 무서울 까. 공감(?)하고 있을 찰나, 경지윤 훈련사가 다가와 잡는 걸 지도한다. “왼 손과 팔로 발을 감싸듯 힘주어 안고, 오른손으로 얼굴을 잡아서 몸을 끌어안아야 해요. 그래야 발버둥을 포기하고 얌전해집니다.”
스텝대로 차근차근 따라하자 신기하게 얌전해졌다. 그 사이 주사를 놓고, 콧구멍에 물약도 넣었다. 감기예방이다. 남영희 수의사가 “잘 했어”하고 고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군것질거리를 먹인다. ‘후루룩’ 받아먹은 고니가 기분이 좋은지 꼬리를 흔들며 로비를 휘 젓는다. 그 뒤로도 순이, 깨비 등 남은 네 마리의 접종을 순탄하게 마쳤다. 끝내고 보니 고니가 유별난 녀석이었다.
다음 일은 면역력 약한 강아지 관리. 이곳에서 말티즈 믹스견 ‘달콩’과 ‘방실’, ‘알콩’을 만났다. 도우미견나눔센터 일을 자처할 때 상상했던 아기견과의 만남이 6시간 만에서야 이뤄진 셈이다. 여기서 맡겨진 일은 아기견 체온재기. 몸에 열이 많은 개들이기 때문에 38도가 정상이다.
남 수의사로부터 체온계를 받고 어디에 꽂아야 할지 이리저리 재보는 데 ‘항문’에 체온계 바늘을 넣으란다. 순간 망설이는 기자에게 남 수의사는 “별로 아프지 않으니 괜찮다”고 조언한다.
‘그래 해보자’ 하는 마음에 바늘을 넣자, 수치가 바쁘게 올라간다. 35, 36, 37.8, 38.5. 언저리에 멈추자 체온계가 ‘삑삑’ 소리를 낸다. 최종온도는 ‘38.7도’. 약간의 미열이 있는 수준이지만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
긴장했는지 달콩이 배를 바닥에 붙이고는 옴짝달싹하지 않는다. 경지윤 훈련사가 머리를 살살 쓰다듬자 거짓말처럼 발가락에 힘을 주고 천천히 일어선다.
아직은 너무 어려 주사를 맞힐 때는 아니다. 일단은 관찰을 통해 상태를 지켜보고 예방접종 유무를 판별해야 하지만 나름 건강한 편이라는 남영희 수의사의 말에 안심이 됐다. 달콩은 배변과 복종훈련을 통해 누군가의 훌륭한 도우미견이 될 터다.
■ 유기견… 애견인구 1천만명 시대 ‘그늘’
일과의 마지막은 도우미견 훈련이다. 사실 센터의 가장 핵심적인 일이기도 하다. 송민수 장애인보조견 훈련사와 함께 배치됐다. 훈련 파트너는 입소 두 달차 푸들견 ‘하늘이’. 어느 정도 송민수 훈련사와 호흡이 맞춰져 있는 탓에 ‘앉아 일어서’ 정도는 쉽게 따라했다.
그에 맞는 수신호도 있다. 주먹 쥔 손에서 손가락 두 개를 펴 모은 뒤 아래에서 위는 ‘앉아’, 위에서 아래는 ‘엎드려’다.
기본적인 동작이지만 원칙은 있다. ‘하늘’하고 이름을 꼭 불러줘야 한다. 그래야 귀가 열리고, 훈련이 된다. 그래서 이곳에 입소해 있는 60여 마리의 도우미견 모두 이름이 있다. 지난 2013년부터 이곳을 스쳐지나간 200여 마리의 개들도 하나같이 이름이 있다. 모두 겹치지 않은 고유이름이다. 때문에 이름 하나 짓는 대도 나름의 고충과 고민이 있다.
기본적인 복종과 배변훈련이 끝나면 대부분의 도우미견은 ‘심리적ㆍ정서적’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무료 분양된다. 한 달에 한 번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발된 도우미견을 나눔센터 카페(http://cafe.daum.net/helpdogs)에 공고한다.
매개치료견의 역할이 큰 만큼 주로 외로운 독거노인이나 장애인에 우선권을 갖는다. 물론 일반인도 입양할 수 있다. 한번 상처 받은 개들인 만큼 파양은 원칙상 불가하다. 허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파양돼 오는 도우미견도 없지 않다. 그 때마다 여 팀장은 마음이 아프단다.
“말 못하는 동물이지만, 감정이 있어요. 전 주인에 대한 기억과, 그로인한 상실의 상처가 영원히 남습니다. 한 나라의 위대함과 도덕적 진보는 그 나라에서 동물이 받는 대우로 가늠할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인간 이외 약자인 동물에 대해서도 깊은 책임과 생명윤리가 필요합니다.”
8시간의 체험을 마치고 회사로 들어오는 길목. 오랜 시간 골목과 공원을 배회하고 있는 누렁이가 눈에 띤다. 우리의 허물이 거리를 맴돈다.
박광수기자
사진=전형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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