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사각 노인 지키는 나이팅게일 후예들
지난해 2월, 서울 송파구에 살던 세 모녀가 큰딸의 만성 질환과 어머니의 실직으로 생활고에 시달리다
‘죄송하다’는 쪽지를 남긴 채 죽음을 선택하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이른바 ‘송파 세 모녀 사건’으로 알려지며 세간에 충격을 안긴 이 사건은 우리사회 뿌리 깊이 만연한 ‘복지사각지대’ 해소라는 중요한 과제를 남겼다.
사건 이후 여야는 재발 방지를 위한 각종 법안을 발의하고, 일선 지자체에서도 앞다퉈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지만, 1년6개월여가 지난 현재까지도, 여전히 복지사각지대에 놓여 발견되지 않은 이들이 너무도 많은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 지역 곳곳을 누비며 어려운 노인을 직접 발굴, 방문해 병간호는 물론, 식단관리, 말벗을 해주며 ‘자식보다 더 자식같은 존재’로서 희망을 잃은 노인들에게 한 줄기 빛이 돼 주는 ‘방문간호사’가 주목받고 있다.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봉사를 잊고 산 기자가 봉사를 겸한 방문간호사로서의 직업체험을 해 보고자, 방문건강관리사업을 실시하고 있는 남양주시보건소로 발길을 옮겼다.
■ 걷고, 뛰고, 타고… 바쁜 일과에 주의사항 숙지까지 ‘진땀’
오전 9시, 하루 동안 체험을 도와줄 권은미 선임 방문간호사와 보건소 사무실에서 시작된 첫 업무는 내소 대상자를 점검, 확인하는 일이었다. 하루 평균 7곳 이상을 방문해야 하는 간호사에게 수혜자들의 부재는 ‘헛탕’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65세 이상의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 △건강관리 필요대상 △탈북자 및 다문화 가정 △지정대상자 등으로 우선순위를 정하고, 각 대상자의 특성을 파악한 뒤 밴드, 연고, 영양죽, 칫솔, 영양제 등 필요한 물품을 챙겨 바로 현장으로 출발했다.
읍면동 별로 1인당 2곳의 지역을 배당받은 간호사들은 대부분 자가용을 사용하지만, 차가 없는 직원들은 도보와 대중교통을 이용해 근무를 이어가기 때문에 걷고, 뛰고, 버스를 이용하며 바쁜 하루 일과가 계속된다.
이동 중에도 권 선임 간호사는 계속해서 당부를 잊지 않았다. 걱정하는 마음에서라도 먼저 가족 얘기를 꺼내는 등 무리한 대화는 절대 금물이었다. 수혜자 상당수가 사고로 자식을 잃었거나, 가족들에게 버림받은 상처 가득한 노인들이기 때문이다.
또 혈압ㆍ혈당 등 몸 상태 체크는 물론, 필요(요구)사항을 유심히 듣고, 식생활 건강을 위해 냉장고를 살피며 무엇을 먹는지, 무엇을 지급해야 하는지를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소 상태도 꼼꼼히 살피고, 우울증 해소를 위한 바깥활동도 유도해야 한다는 말을 곁들였다.
■ 방문 간호사 언제오나… 혈압·혈당 체크·위생관리까지 ‘척척’
재촉된 발걸음 끝에 금곡동의 한 허름한 노부부의 집에 도착했다.
수혜자들에겐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방문간호사들을 애타게 기다린다는 것이다. 김 간호사와 실제 신임 간호사로 소개된 기자를 보며 노부부도 아들, 딸처럼 기쁘게 맞이했다.
김윤희 간호사가 당부한 대로 가장 먼저 혈압ㆍ혈당을 체크하고, 집안 위생 등을 살핀 기자는 노부부와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서로 의지한 채 살아가는 이 노부부는 기초생활수급대상자로 월 25만 원을 지급받고 있지만, 30만 원짜리 월세에 살며 하루하루가 힘든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대장암에 당 수치가 500을 웃돌면서 병원 입원이 시급하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진료조차 받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기자는 시에서 추진하는 사업을 설명하며, 병원을 연계해 무료로 진료를 받는 방법을 설명했다. 4남매를 두고 있지만 이들에겐 십 수년째 찾아오지도 않는 ‘다 소용없는 존재’였다. 30분이라는 짧은 시간 속 아쉬운 첫 방문을 마치고 또 다른 집으로 이동했다. 더 있고 싶어도 기다리는 수혜자를 위해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 초보 간호사 등장에 경계심… 마음 연 노인 “효도하라” 당부
이어 방문한 인근의 한 독거노인 집. 5평 남짓한 공간에 캐캐한 냄새 조차 느끼지 못하며 혼자 살고 있는 이 노인은 평소 사람구경도 잘하지 못해 방문간호사가 유일한 희망이다.
새로운 간호사인 기자를 보며 경계를 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 노인은 이내 반말을 섞어가며 친딸처럼 살갑게 대하는 김 간호사의 능숙한 언변(?)에 긴장을 놓고 그동안 쌓아둔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나갔다. 이 노인 역시 하는 말은 ‘자식 다 소용없다’라는 것이었다.
씻는 것도 자원봉사자가 제공하는 이동목욕 차량에 의지해야 할 만큼 거동이 불편한 이 노인 역시 수십 년간 자녀 뒷바라지를 하며 대학도 보내고 남부럽지 않게 키웠지만, 몸이 불편하고, 더이상 돈이 없다는 이유로 가족에게 버림받은 사연을 전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이야기에 동조하며 앞서 했던 건강 및 위생상태를 점검한 기자는 ‘어머니께 잘하라’는 노인의 진심어린 당부에 가족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으며 또 다른 집으로 향했다.
■ 근무활동 일지 작성 DB구축… 비로소 업무 종료
한 가구를 더 방문하고 오후에 보건소로 복귀한 기자는 권 선임 간호사와 이날 하루 동안 대화 내용, 건강 및 심리 상태 등 근무활동일지를 작성해 DB를 구축하고, 소모품 대장에 이날 지급된 물품을 기재하는 일이 진행했다. 또 발굴한 독거노인, 추가된 질병 등 특이사항을 내부 커뮤니티를 통해 권역별 희망케어센터와 공유함으로써 병원을 연계해주거나 도움을 주는 일로 이날 일정이 마감됐다.
■ 열악한 근무환경… ‘보람’ 하나로 견디는 방문간호사들
실질적인 방문으로 그 누구보다 복지사각지대 이웃의 어려운 사정을 꿰뚫으며 ‘지역보건의료의 꽃’이라 불리는 방문간호사는 사실 ‘기간제 단기 비정규직’이라는 족쇄에 묶여 약 갖다 주는 배달꾼으로 가장 천대받는 직업이기도 하다.
수십년간 병원에 근무하며 수간호사까지 했던 한 방문간호사는 적은 임금과 비정규직이라는 틀 속에서도 이 직업을 놓지 않고 있다. 바로 보람 때문이란다. 상처 가득한 노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 같은’ 익숙함과 편안함이다.
7명의 인원이 수천 명을 상대하면서 간호사와 노인들의 만남은 2~3개월에 단 한 번에 그치게 되고, 계약 종료로 전담 간호사마저 바뀌게 되면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 수혜자들이 더욱 힘들고 위험해 질 수밖에 없다. 인근의 서울시는 최근 단계적으로 방문간호사들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며, 복지사각지대 해소에 나서고 있다. 정책적인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남양주=하지은기자
사진=오승현기자
‘찾아家는 건강-생활 돌봄 서비스’란?
남양주시, 만성질환 노약자 선별 맞춤형 통합보건복지서비스 제공
남양주시는 ‘찾아家는 건강-생활 돌봄 서비스’ 일환으로 방문간호사를 도입한 방문건강관리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이는 기존 관리대상자와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요양등급을 받지 못한 노약자 중에 만성질환 관리와 복지서비스가 필요한 노인을 선별, 가구 방문을 통해 맞춤형 통합보건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이다.
남양주시에 따르면 지역 내 전체 인구 63만6천256명 가운데 복지대상자는 9만384명(14.2%)이고, 65세 이상 노인 인구 6만7천875명(10.7%) 중 독거노인 수는 1만3천699명에 달한다. 지난 해 동안 보건소와 각 권역별 4곳의 희망케어센터에 배치된 총 7명의 방문간호사가 관리한 인원은 총 2천56세대, 2천352명이다. 1인 당 200~400여 명의 노인을 케어하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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