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현장체험] 인천 소방항공대 헬기 정비사
산 정상에서 들것에 실린 중상환자를 호이스트로 구조하거나 도서지역 응급환자를 내륙의 대형병원으로 이송하는 등 많은 역할을 수행 중인 소방 헬기를 보유한 곳, 바로 소방항공대이다.
구조·구급대원이 접근하기 어려운 악조건 속에서도 현장에 출동해야 하는 소방항공대는 언제나 시민의 안전을 지키며 드라마와 같은 극적인 상황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러한 소방항공대 헬기의 조종사는 물론, 그 안에 함께 탑승하는 구조·구급대원의 생명을 책임지는 사람은 따로 있다.
작은 사고에도 대형 인명피해를 낼 수 있는 헬기의 특성상 정비사는 헬기 조종사와 탑승자의 안전을 책임지는 최후의 보루 같은 존재다. 일일 체험으로 소방 헬기 정비사를 택한 이유도 현장에 출동하는 소방대원의 안전을 책임지는 직업적 특성 때문이다.
기자 생활을 하면서 소방대원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많았고, 한 명의 시민으로서 시민의 안전을 위해 살신성인하는 소방대원에 대한 고마움을 보답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다.
도서지역 주민의 안전을 지키는 소방항공대원이자, 소방항공대원의 안전을 책임지는 소방 헬기 정비사를 한 번 체험해 보자. 굳은 결의를 하고, 지난 6일 영종도에 있는 소방항공대를 찾았다.
지난 1995년 10월 발대한 인천 소방항공대는 항공대장을 비롯한 운항(조종사) 6명, 정비사 3명, 구급대원 3명, 구조대원 4명 등 17명이 근무 중이다. 3교대 근무체제로 운영되고 있으며, 1일 근무인원은 5명(운항 2명, 정비 1명, 구조·구급 1명씩)이다.
소방항공대의 주요 임무와 역할은 인명구조 및 응급환자 이송(의사가 동승한 응급환자의 병원 간 이송 포함), 화재 진압, 장기이식환자 및 장기 이송, 항공 수색 및 구조 활동, 공중 소방 지휘통제 및 소방 필요 인력·장비 운반, 방역·방재 업무 지원, 재난관리 관련 업무 수행 등으로 매우 다양하다.
특히 인천은 지역 특성상 유·무인도 162곳의 해상임무를 수행 중이며, 주·야간에도 수시로 도서지역 안전을 위해 비행을 해야 하는 임무도 맡고 있다.
최근 3년간 소방항공대의 운항실적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지난 2013년 환자이송 68건, 산악구조 43건, 산불진화 4건에 소방항공대 헬기가 투입됐으며, 비행시간은 327시간에 달한다.
지난해에는 292시간의 비행을 통해 환자이송 113건, 산악구조 53건, 산불진화 11건을 수행했다. 올해도 지난달까지 265시간을 비행하며 환자이송 105건, 산악구조 19건, 산불진화 13건에 투입됐다.
최근에는 소방항공대 소속의 윤관식·유홍길 소방경이 임용 후 1천 시간 무사고 운항 공로를, 배재복 소방위는 10년 이상 무사고 정비 공로를 인정받아 인천시장 표창을 받았다.
■ 단 하루도 게을리할 수 없는 ‘소방헬기’ 점검
일일 소방 헬기 정비사의 눈을 사로잡은 ‘AW-139’ 기종은 감탄사를 자아낼 정도로 늠름함을 한껏 뽐냈다. 인천에는 백령도 등 내륙과 먼 거리에 있는 섬이 있어 중장거리 운항이 가능한 소방 헬기가 반드시 필요하다.
인천소방본부는 지난 2013년 항속 거리가 798㎞인 헬기 AW-139를 도입했다. 기존에 있던 소형헬기 벨 230은 항속 거리가 450㎞에 불과해 편도 295㎞인 백령도를 왕복(기상 조건에 따라 착륙하지 못하고 기지로 복귀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어 왕복 거리로 운항 여부를 가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일 소방 헬기 정비사에게 주어진 임무는 12년 경력의 정비사 박순율 소방장(34)의 지도로 진행된 육안 검사였다. 헬기는 만약의 사고로도 큰 인명피해를 낳을 수 있어 상시 정비를 해줘야 한다. 또 운항시간에 맞춰 노후 부품을 교체해야 하는 것은 물론, 헬기 제작사의 대행 업무를 맡은 정비업체로부터 일정시간마다 종합 정비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체험 도중 긴급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것을 점검해 볼 수 없었고, 로터 부위와 헬기 앞부분의 전자기기 쪽만 육안 검사를 할 수 있었다.
그렇다 해도 점검 항목만 수십 가지에 달할 정도로 복잡했다. 또 각종 전문 용어가 난무하는 과정에서 박 소방장의 설명을 듣고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2시간이 훌쩍 지나갔을 정도다.
육안 검사를 하는 동안 박 소방장은 작은 소리로 AW-139와 대화를 나눴다. 박 소방장은 “어제는 잘 지냈니?”, “어디 아픈 곳은 없지?” 등 AW-139에게 말을 걸었다. 마치 자식을 대하는 엄마의 모습이었다.
이러한 박 소방장의 모습을 보며 어수룩한 일일 소방 헬기 정비사도 AW-139에게 대답 없는 질문을 던졌다.
“누구를 닮아서 그렇게 잘 생겼니?”, “인천 섬 중에 어디가 가장 아름답니?” 등 가벼운 질문이었지만, AW-139는 특유의 늠름함을 과시할 뿐 육안 점검이 끝날 때까지 아무런 대답을 듣지 못했다.
박 소방장은 “매일 같이 소방 헬기를 정비하다 보니 마치 자식과 같은 존재가 됐다”며 “헬기에 탑승하는 다른 대원의 안전은 물론, 정비사도 매번 헬기에 함께 탑승하기 때문에 이들의 안전을 위해 정비를 게을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소방항공대원은 업무 특성상 군인 출신이 많다. 위급상황에서 안전하게 헬기를 조종하려면 일정 시간 이상의 경력이 필수인 데다, 군대 이외에 헬기 관련 경험을 쌓고 자격을 얻을 수 있는 기관이 드물기 때문이다.
특히 헬기 조종사가 되려면 육·해·공군별로 국토교통부가 관리하는 소정의 시험을 치르고 항공학교 과정 등을 이수해야 한다.
또 소방항공대 소속 구조·구급대원이 되려면 인명 구조교육 과정 및 특수항공교육을 받아야 한다. 헬기에서의 구조·구급 기본 업무 자체는 육상과 큰 차이가 없지만, 대원 본인이나 환자가 헬기를 타고 내릴 때 안전부터 산악·수난 구조 시 기본 절차 등을 반드시 숙지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소방항공대 내 구조대원 상당수가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특수부대 출신인 것은 물론, 구급대원이 항공 응급이송에 대한 전문지식과 1급 응급조치사 자격을 갖춘 우수 인재로 구성된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이와 마찬가지로 헬기 정비사도 군대에서 경험을 쌓은 베테랑으로 이뤄져 있다. 일일체험 도우미로 나선 박순율 소방장도 군에서 헬기 정비사로 5년간 근무한 경력이 있다.
박 소방장은 군에서 쌓은 다양한 경험을 토대로 전역 후 해경에서 6년간 근무했으며, 인천 도서지역 주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소방헬기의 정비를 위해 올해 소방항공대로 이직했다.
박 소방장은 “군에서 근무하는 동안 헬기의 결함을 미리 발견해 상을 받은 경험도 있다”며 “헬기 조종부터 정비까지 다양한 경험을 군대에서 쌓을 수 있었다. 소방항공대원 대부분 군인 출신의 훌륭한 인재로 구성돼 있다”고 말했다.
■ 긴급현장 ‘1인 다역’… 주민 생명 지킨다는 ‘자긍심’
소방항공대 구조 활동의 90% 이상은 산악 인명구조다. 계곡 골바람과 수십 미터에 달하는 암벽 등은 사고를 당한 환자만이 아니라 소방항공대원에게도 위협 요소가 된다.
대원들이 위험한 만큼이나 소방항공대의 기동성은 산에서 특히 유용하다. 암벽, 돌멩이, 나뭇가지 등이 산재한 산악지형 특성상 헬기 이외의 다른 방식으로는 사고 현장에 접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주5일제 시행과 등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산악 사고는 20% 이상 늘었다.
특히 산악에서 심정지 환자가 발생하면 4~6분 이내에 생사가 판가름나기 때문에 신고 접수 후 현장에 도착하기까지 항공대원의 긴장감은 생명의 무게와도 같다.
위험한 현장만 골라 다니고, 매우 급한 현장에서 1인 다역을 소화해야 하는 등 소방항공대원의 업무는 고되지만, 그들만 가질 수 있는 특별한 보람 덕에 대원들의 자긍심은 매우 높다.
박상일 소방항공대장은 “모든 대원이 정비사를 믿기에 안심하고 헬기에 탑승할 수 있다. 헬기 정비사는 조종사와 구조·구급대원의 안전을 책임지는 1등 공신”이라며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도서지역이나 산악지형에서 일어난 위급 상황에 시민의 안전을 지킬 수 있도록 헬기 정비사는 물론, 모든 대원이 항상 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민기자
사진=장용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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