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촉한 빵! 싱싱한 채소! 든든한 패티! 줄을 서시오~
정성으로 갓 구워낸 ‘만득이’ 나왔습니다
과거 제과점을 운영하시던 아버지와 함께 시간을 보냈던 때다.
일과를 마치고 늦은 밤 자고 있는 아들을 어루만지던 아버지 손에는 항상 밀가루가 묻어 있었고, 축축한 반죽 탓에 깊게 패인 손주름에는 버터와 이스트(빵을 발효할 때 쓰는 효모) 향이 배어 있었다.
빵을 사려고 제과점을 찾을 때마다 아들을 깨우던 아버지의 거친 손에서 맡을 수 있었던 익숙한 향기에 가슴이 설렌다. 아버지는 새벽같이 빵공장(제과점에서 빵을 만드는 장소)에 들어가시면 늦은 밤에나 나오셨다.
이 때문에 유년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아버지는 햇빛도 잘 들지 않는 좁은 빵공장에서 반죽을 치대고, 더운 오븐 앞에서 빵을 굽고 있는 모습이었다. 밀가루 반죽을 가지고 놀았던 추억과 온종일 쉴 틈 없이 가족을 위해 빵을 만들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라 이참에 제빵사로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지난달 26일 수원시 영통구 망포동에 있는 제과점 ‘하얀풍차’를 찾았다. 일률적인 대기업 프랜차이즈 제과점보다 특색을 갖춘 일반 제과점을 선택했다. 하얀풍차는 1992년 개업해 현재 수원에서 가장 큰 규모의 제과점이다.
정문에 도착하니 작업복에 밀가루를 한가득 묻힌 김영일 기술상무가 맞이해줬다. 김 상무는 하얀풍차에서 빵을 만드는 과정을 관리하는 총책임자다.
김 상무는 “바쁘니까 빨리 이동하죠. 작업복 입고 위생모 쓰고 공장으로 들어오면 됩니다. 빵 만드는 일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을 거예요. 충분히 각오하고 따라오세요”라며 걸음을 재촉했다.
빵공장으로 이동하려고 매장에 들어가자 손님들로 북적댔다. 하얀풍차는 오전 6시부터 시작해 밤 9시까지 계속해서 빵이 나온다.
매장을 지나 빵공장이 있는 지하로 내려갔다. 계단을 내려갈수록 어렸을 때 맡았던 익숙한 냄새가 느껴졌다. 준비된 작업복을 받고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작업복은 직원이 입었던 옷이어서 밀가루가 곳곳에 묻어 있었다. 옷을 다 입고 거울을 보니 예전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라 감회가 새로웠다.
위생모를 쓰고 빵을 만들기 위해 빵공장으로 들어갔다. 모두 “안녕하십니까”라며 큰 목소리로 인사하며 맞이해줬다.
제빵사 모두 밀가루를 반죽하거나 반죽을 위한 계량을 하는 등 바빴다. 오븐에서 빵을 꺼내는 직원부터 빵을 빚는 직원까지 모두 고객을 위해 맛있는 빵을 만들겠다는 열정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빵을 만드는데 피해를 주지 않고자 옆에 있는 제2공장에서 빵을 만들기로 하고 이동했다.
오후에 만들 고르곤졸라에 쓸 반죽을 만드는 것이 첫 임무였다. 밀가루, 올리브유, 설탕, 물 등을 계량해서 넣었다. 같은 맛을 위해 저울에 1g 단위까지 맞춰 정확하게 계량했다. 계량한 후 재료를 반죽해주는 기계에 부었다. 갈고리 모양의 반죽기계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반죽을 시작했다. 따로 분리돼 있던 재료가 기계 안에서 서로 뒤섞이며 하나의 반죽이 돼 갔다.
기계를 끄고 넓은 스테인리스 조리대 위에 밀가루를 뿌리고 얻은 반죽은 어렸을 때 가지고 놀던 그 친숙한 모습이었다. 김 상무는 “반죽이 마르면 안 되니까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 한다”며 “고객에게 드릴 빵이니까 굼뜨고 서투르게 해서는 안된다”고 다그쳤다. 반죽한 빵을 바로 숙성기로 집어넣었다.
빵을 사려고 제과점을 찾는 고객이 몰리는 시간이 정해져 있어 빵을 계속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쉴 틈이 없었다. 빵 반죽을 마치고 만득이를 만들기 시작했다. 만득이는 하얀풍차에서 가장 유명한 빵이다.
모 방송사에서 개최한 전국 유명 경진대회에서 당당하게 1등을 차지하면서 더 유명세를 타고 있다. 촉촉한 빵 속에 양배추, 양파, 피클과 돈가스 패티가 들어가 있어 기존 빵과 확실한 차별화를 하고 있다.
처음에는 재료가 켜켜이 쌓여 있는 모습에 특별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직접 맛을 보자 생각이 바뀌었다. 하얀풍차에서 대표 빵으로 내세울 만했다. 빵은 공기가 충분히 들어가 포근하고 촉촉했고 안에 들어간 채소 재료도 신선했다. 돈가스 패티까지 들어가 있어 씹는 맛까지 잡을 수 있었다.
김 상무는 “괜히 방송에 나가고, 투표해서 1등 하는 게 아닙니다”라며 “손님들도 처음에는 모양에서 의문을 갖다가 맛을 보고 나중에는 꾸준히 사러 온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이처럼 하얀풍차가 세상에 단 하나뿐인 만득이 빵을 내놓게 된 것은 대기업 프랜차이즈와의 경쟁을 위해서다. 주온영 하얀풍차 사장이 사라져가는 일반 제과점이 대기업과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맛있는 빵을 특별하게 만드는 차별화를 대안으로 세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얀풍차의 빵은 일반 제과점과 다르다. 가장 인기있는 만득이부터 빵 안에 크림치즈가 가득 들어 있는 화이트롤까지 프랜차이즈 빵집에서는 볼 수 없는 제품이다.
만득이를 만드는 가장 첫 단계는 밀가루 반죽을 100g 단위로 맞추는 것이다. 일정한 양을 맞춰 빵 맛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지름 3㎝의 밀가루 반죽은 발효과정을 거쳐 오븐에 들어갔다 나오면 손바닥만 하게 커진다.
다 구워진 빵은 반으로 자르고 속을 채웠다. 빵이 말랑말랑해서 반으로 가르기가 쉬웠다. 가른 빵을 가지런히 놓고 나서 제빵사들이 줄줄이 서서 양배추, 양파, 돈가스 패티, 당근, 피클, 특제소스를 넣자 하얀풍차 대표 제품인 만득이 빵이 완성됐다.
고르곤졸라를 만들기 위해 숙성시킨 빵 반죽을 꺼내고 잠시 쉬려고 빵공장 밖으로 나갔다. 김 상무와 앞으로 할 일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동안 벽면에 ‘하얀풍차는 천연발효종을 사용합니다.’라는 문구를 볼 수 있었다.
김 상무는 “우리 하얀풍차는 대기업 프랜차이즈나 일반 제과점에서 사용하는 화학용 이스트는 쓰지 않고 천연발효종을 사용한다”며 “이 때문에 우리 빵은 어르신과 아이들 모두 부담없이 먹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얀풍차의 모든 빵에는 천연발효종이 들어 있어 소화가 잘되고 속이 더부룩한 현상이 없다. 천연발효종은 사과에 있는 미생물이 반죽을 발효시킬 수 있는 상태까지 키운 것으로, 빵 반죽에 공장형 이스트, 화학 첨가제를 사용하지 않고 빵을 만드는 전통적인 제빵법이다.
천연발효종 외에도 하얀풍차는 경기도농업기술원에서 기술이전 받아 쌀발효종을 이용해 쌀빵을 만들고 있었다. 경기도농업기술원이 이전한 기술은 노화지연 효과가 우수한 쌀 발효액종ㆍ쌀빵 제조기술이다.
이 기술은 발효기술을 이용해 밀가루보다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쌀의 가공성을 높여 쉽게 딱딱해지는 기존 쌀빵의 단점을 보완했다. 쌀발효종으로 만든 빵을 직접 먹어보니 밀가루 빵에서 느낄 수 있는 특유의 시큼한 맛이 나지 않아 더 고소하고 담백한 맛을 즐길 수 있었다.
일일제빵사로써 마지막으로 할 일은 구워진 빵을 꺼내는 일이었다. 오븐을 열자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열기가 가시자 향긋한 빵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빵을 꺼내려고 오븐용 대삽을 빵 밑에 밀어 넣고 빵을 들어 올렸다. 뜨거운 열기와 삽 무게 때문에 꺼내기가 쉽지 않았다. 다 만들어진 빵을 바닥에 떨어뜨릴까 봐 조마조마했지만, 무사히 쟁반으로 옮길 수 있었다.
김 상무는 “오늘 아침부터 밀가루를 계량하고 반죽하고 모양 만들고, 굽고 꺼내기까지가 제빵사의 하루 일과다”라며 “빵을 쉽게 사먹고 남기면 버리기도 하지만 빵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 제빵사들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정현 기자
사진=전형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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