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발 뽑는 그날까지~ 설거지·양파까기! 하얗게 불태웠다해~
45년의 전통을 이어온 고등반점이다. 고등동 대표 중국집으로 인근 경기도청 직원들 사이에서도 맛집으로 소문났다.
지금은 다른 지역까지 입소문이 퍼져 점심·저녁시간만 되면 발 디딜 틈 없을 정도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그 곳에서 기자가 주방 보조 체험을 위해 찾아가 보았다.
■ 시작부터 만만치 않네… 진땀나는 주방 입성기
낮 12시40분. 가게는 이미 손님들로 북적였다. 빈 테이블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직원들은 분주했다. 쉴 새 없이 음식이 담긴 접시를 옮기고 바쁘게 움직였다. 입구 바로 앞 주방에서 식기가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불 위에 올려진 냄비가 맛있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거의 다 지난 오후 1시. 주방은 여전히 바빴다. 주방 직원 7명은 일사불란하게 각자 맡은 일을 하고 있었다. 주방으로 끊임없이 음식 주문이 밀려들어 왔다. “짜장 둘, 짬뽕 하나요” “탕수육도 있습니다” 홀 직원이 주문한 음식이 적힌 메모지를 주방 한편에 붙이고 돌아갔다.
이 와중에 기자가 주방을 둘러보자 불 앞에서 볶음밥을 만들고 있던 김길태 총 주방장(50)이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오후 1시30분은 넘어야 덜 바빠요. 지금은 주방이 가장 바쁜 시간이니까 일단 창고에서 위생복으로 갈아입고 나오세요”라며 주방 안쪽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10평 남짓한 주방 안쪽에 성인 남성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복도형 창고가 있었다. 문을 열자 앞치마와 한문으로 고등반점이라고 적힌 위생복이 걸려 있었다.
첫번째, 손님이 다 먹은 그릇을 홀에서 받고서 잔반을 일명 ‘짬통’에 버린다. 두번째, 가로 170㎝·세로 50㎝의 물이 가득 찬 싱크대에 그릇을 넣는다. 마지막으로 수세미로 깨끗이 닦아 바로 옆에 설치된 식기 세척기에 넣는다. 간략하게 설명을 듣고 설거지를 시작했다.
하지만 시작한 지 5분도 채 되지 않아 위기에 봉착했다. 밀려든 손님에 그릇이 부족해졌다. 김 주방장은 “정 기자!”라며 다급한 목소리로 재촉했다. 손을 더 빨리 움직여야 했다.
■ 단무지·춘장 종지부터 탕수육 접시까지 닥치는대로(?) 닦아라! 멀고도 먼 ‘주방보조의 길’
“그릇이요! 그릇이요!” 홀 서빙을 담당하는 직원이 그릇을 가져다줄 때마다 내뱉은 말이다. 그들이 양손 가득 가져온 그릇은 어느새 탑처럼 쌓이기 시작했다. 주방에 입성한 지 20분. 100여개의 그릇을 닦았다. 단무지와 춘장을 담은 작은 종지부터 탕수육 그릇까지.
손을 부지런히 움직이지 않으면 밀려드는 그릇에 깔릴 것만 같았다. 결국 그릇이 천장(?)에 닿을 정도로 쌓이자, 보다 못한 홀 직원이 싱크대에 그릇을 밀어 넣어주기 시작했다. 가볍게 보던 설거지가 정말 어려웠던 순간이었다.
오후 2시. 바쁘게 돌아가던 주방에 평화가 찾아왔다. 그제야 정신없이 그릇을 닦던 손을 멈출 수 있었다. 이미 기자의 몸은 설거지 후유증으로 음식물이 튀어 엉망이 됐다. 위생장갑없이 설거지 하던 손은 벌써 거칠어져 있었다.
김 주방장이 다가와 오렌지 주스 한 잔을 내밀며 “중국집 주방 어때? 정말 바쁘지. 점심시간은 숨 쉴 겨를도 없어. 저녁시간은 이거에 딱 2배”라고 말했다. 이어 김 주방장은 주방 구석구석을 돌며 소개해줬다.
주방은 하나의 요리를 두고 역할 분담이 명확했다. 재료 다듬기부터 칼질, 설거지, 면 뽑기, 조리 등 크게 5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 또 1시간 만에 알아차린 사실이지만 김 주방장을 제외한 나머지는 중국인이었다. 한국말이 서툴지만, 이들은 중국에서 10년 이상 요리에 몸을 담았던 경력자들이다.
철판을 맡고 있는 형건군씨와 조리장 유경빈씨는 이미 총 주방장을 할 만큼 실력이 뛰어난데다 튀김에 궁서충씨, 면발 뽑기에 우붕씨와 막내 손립금씨는 젊은 나이지만 미래가 촉망되는 요리사다. 이들의 이야기를 듣자 새삼 10평 남짓한 주방이 대단해 보였다.
■ 설거지, 또 설거지… 어느 역할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다!
김 주방장의 주방 소개가 이어지면서 시곗바늘은 어느새 오후 3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주방은 또다시 분주해졌다. 양파와 파 등 각종 재료가 주방으로 물밀듯 들어오기 시작했다.
형건군씨는 사각형 모양의 대도를 꺼내 재료 손질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재료들을 썰어나가기 시작했다. TV에서나 보던 것을 눈앞에서 보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장인이라는 단어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놀랄새도 없이 김 주방장은 설거지 마무리 작업을 지시했다. 닦고 또 닦았다. 기계에 그릇을 넣고, 종류마다 분류해 정리했다. 작업은 30분이 넘도록 계속됐다. 주방 보조였지만 실제로 주방에서는 할 수 있는 것은 제한적이었다. 그나마 설거지와 재료 옮기기가 전부였다. 그래도 주방에서는 어느 하나라도 빼놓으면 안 된다고 한다.
이때 김 주방장의 말을 듣고 문득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냉장고를 부탁해’라는 프로그램이 떠올랐다. 중국 요리의 대가로 소개된 이연복 셰프와 그의 제자를 자칭하는 만화가 김풍. 그 둘의 관계처럼 김길태 주방장과의 짧은 만남이 아쉬움으로 진하게 남은 순간이었다.
정민훈기자
사진=김시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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