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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현장체험] 연말 나눔전도사 ‘구세군’ 도전

구두쇠도 가던 길 멈추는 세상 밝히는 땡그랑~ 땡그랑 소리
군악대 못잖은 ‘학생악대’ 함께 “소외이웃과 따뜻한 겨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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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그랑 땡그랑’ 매년 성탄절 즈음이 되면 청아한 종소리가 거리에 울려 퍼진다.

12월 추위만큼이나 얼어붙은 도시인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녹이는 구세군 종소리다. 빨간 외투를 입은 자원봉사자들의 새하얀 입김과 청아한 종소리. 

그리고 자선냄비는 이미 12월을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사실 초등학생 때만 해도 선생님과 부모님의 권유에 빨간 자선냄비에 1천원을 넣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귀에는 항상 이어폰이 꽂혀 있어 아름다운 종소리를 듣지 못했고, 바쁘다는 핑계로 구세군을 본체만체 지나쳤다.

이 겨울이 더 지나기 전, 나 자신을 돌아보며 반성하는 기회를 갖고 바쁜 취재업무 속 성탄절도 즐길 겸(?) 1일 구세군이 돼 보기로 했다.

 

■ 빨간 옷을 입고 금색 종 들고

“기자님, 간단해 보이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아요. 아! 그리고 날씨가 추울 테니 단단히 챙겨입고 오셔야 할 겁니다”

 

크리스마스가 일주일도 채 남지 않은 지난 20일 오후 3시께 수원역 광장. 주말을 맞아 수원역을 찾은 가족과 연인들 사이에서 수원구세군교회 교인들과 함께 빨간색 자선냄비를 설치하고 모금을 시작했다. 

영하 7도까지 떨어지는 등 강추위가 몰아닥쳤던 주중에 비해 춥지 않은 날씨였지만 장시간 바깥에 서 있어야 하니 단단히 준비하고 오라는 목사님의 말에 기자는 네 겹의 옷을 껴입고 수면 양말에 핫팩까지 준비했다. 선배 기자들은 ‘히말라야 가냐?’라고 놀려댔지만, 뭐든 준비는 철저히 해야 한다.

 

그렇게 시작된 1일 구세군체험은 빨간색 구세군 외투를 입고 교인들이 가르쳐 준 ‘종 흔들기’로 시작했다. ‘이 작은 종 흔드는 게 뭐 그리 힘들겠어?’라고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1㎏ 가까이 되는 종을 위아래로 흔드는 동작을 수십 번 반복하자 금세 손목이 저려왔기 때문이다. 더욱이 종소리는 기대하던 ‘딸랑딸랑’ 소리가 아니라 뚝뚝 끊기기 일쑤였고, 잔잔하게 울리지 않고 허공으로 사라지기도 했다. 30분가량이 지나자 익숙해져 이제 종 흔들기 하나만큼은 자신 있었다.

하지만 아직 기자를 쭈뼛쭈뼛하게 하는 것이 남아있었다. 바로 종소리를 듣고 쳐다봤지만 이내 기자와 눈이 마주치자 외면하던 행인들이었다. 구세군을 보고 무심코 지나쳤던 지난날이 후회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한 손에는 마이크를 들고 한 손에는 종을 흔들며 시민들에게 온정의 손길을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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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럴과 함께 ‘신나는 모금활동’

어색하고 뻘쭘했던 시간이 흐르자 구세주가 나타났다. 바로 크리스마스를 맞아 수원구세군교회 악대가 크리스마스 캐럴 연주를 위해 등장한 것.

10명의 중·고·대학생으로 꾸려진 악대는 빨간색 재킷을 맞춰 입고, 쑥스러워하는 기자와 달리 능숙하게 자리를 잡고 악기를 설치했다. 사실 이들은 어린 나이지만 같은 교회를 다니며 벌써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 가까이 매년 구세군 모금현장에서 캐럴을 연주하는 베테랑들이었다.

 

악대가 ‘징글벨’, ‘크리스마스 맘보’ 등 캐럴을 신나게 연주하자 기자 혼자 쓸쓸하게 종을 흔들었던 방금과는 달리 현장 분위기는 180도 변했다. 악대의 연주는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수원역 한복판에 멋진 캐럴이 울려 퍼지고 광장 앞 AK플라자 외벽에 설치된 크리스마스 장식에 불이 들어오자 마치 크리스마스 축제에 온 듯했다.

 

지나가던 행인들은 흥겨운 캐럴을 흥얼거리면서 바쁘게 걷던 걸음을 멈추고 구세군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금세 악대 앞을 둘러싼 관객이 생겼고, 외국인들은 신기한 듯 동영상을 찍기도 했다.

 

악대 앞에 서서 연주 도중에는 종을 흔들지 말라는 가르침에 기자는 다소곳하게 두 손을 모으고 자선냄비를 지켰다. 연주의 힘일까, 기부를 하려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부모님 손을 잡고 와 고사리 같은 손을 내미는 아이들, 삼삼오오 친구들과 쇼핑을 나와 사랑의 손길을 더하는 학생들, 퇴근길에 그냥 지나치지 않는 어른들까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자선냄비를 향한 기부가 잇따랐다. 

자선냄비에 시민들의 사랑이 더해질 때마다 기자는 ‘감사합니다’ ,‘고마워’라 말하며 그 따뜻한 마음을 함께했다. 하지만 얇은 재킷 하나만 입고 차가운 날씨에 손을 계속해서 움직여 연주해야 하는 탓에 두 시간가량의 연주를 마친 악대의 손과 얼굴은 금세 빨갛게 얼어버렸다. 어린 친구들을 뒤로하고 혼자서만 완전무장한 채 서 있던 기자는 조금 민망해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불평은 커녕 악대원인 하은별씨(23·여)는 “언니 춥죠, 이거 가져요”라며 오히려 기자를 걱정하면서 손에 핫팩을 쥐여줬다.

또 박동현씨(20)도 “누나 고생하셨어요, 같이 사진 한 장만 찍어도 돼요?”라며 수줍게 다가와 셀카 한 장을 찍기도 했다. 이웃을 사랑하고 주변을 배려하는 친구들의 마음씨에 이들과의 추억이 마음속 한편에 따뜻하게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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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눔의 의미… 올해는 우리 모두 메리크리스마스!

오후 7시가 넘어서자 찬바람이 거세져 체감 온도가 영하로 떨어지며 힘들어졌다.

추운 날씨 탓도 있었지만 힘든(?) 이유는 한 가지 또 있었다. 사실 함께 모금 활동을 한 이보람씨(24·여)와 손장재씨(26)는 서로 너무나도 아끼는 연인이었다. 매년 구세군모금 자원봉사를 한다는 여자친구를 따라 다른 교회에 다니는 손 씨가 따라나선 것.

두 사람은 종 흔드는 것이 힘들까 서로 흔들겠다며 사랑싸움(?)을 하기도 했다. 부러워하던 기자가 ‘주말인데 데이트 안 하고 이곳에 있으니 싫지 않느냐’고 묻자 ‘좋은 일도 하고 이렇게 같이 있는 게 데이트죠, 이따가 끝나고 데이트 할거에요’라며 더 부럽게 만들었다.

 

어느새 발이 꽁꽁 얼었고 무릎도 시려 왔고 몇 시간째 서 있으니 앉고 싶어졌다. 또 저녁 시간이 다가오자 바로 옆에 세워진 노점상에서 호호 불어가며 어묵을 먹는 이들을 보며 그야말로 ‘한입만’하는 생각이 절로 흘러나왔다. 하지만 한눈 판 것도 잠시 4~5살로 보이는 남자 아이가 엄마 손을 잡고 다가와 1만원짜리 지폐 한 장을 자선냄비에 쏙 집어넣었다.

‘고마워, 메리크리스마스!’라고 말해주자 아이는 쑥스러운 듯 엄마의 다리 사이로 얼굴을 숨겼다. 그리고는 엄마의 권유에 수줍게 ‘메리크리스마스’라고 답한 뒤 떠났다.

 

이날 구세군교회의 모금 활동은 오후 1시부터 밤 10시까지 이뤄졌고, 총 모금액은 57만5천200원이었다. 그동안 ‘저 자선냄비에 누가 기부하기는 할까?’라고 생각했던 기자는 아직 이 세상에는 이웃을 생각하고 나보다 더 어려운 이들을 돕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됐다. 가슴이 뭉클한 기분이었다.

 

1일 구세군이 돼 보니 기부는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단순히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작은 일이라도 하고 싶다는 마음과 마음이 만나 빨간 냄비를 가득 채우고 있다는 것이었다. 앞으로 구세군을 만나면 절대 그냥 지나치지 않으리라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하며 1일 구세군의 마침표를 찍었다. 

한진경 기자

사진=김시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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