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WPL ‘지구촌 전쟁종식 평화 선언문’... 레바논 법무부, 공표식 참석해 적극 지지
레바논 법무부는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의 한반도 평화와 세계평화를 위한 폭넓은 운동을 지지하고 동참해주는 국가기관이다. 특히 HWPL 국제법제정평화위원회가 공표한 ‘지구촌 전쟁종식 평화 선언문(DPCWㆍ10조 38항)’이 속히 현실이 되길 염원하는 마음에서 지지를 표하고 HWPL 이만희 대표에게 감사패를 선물하는 등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난 2015년 9월 18일 평화 만국회의 1주년 기념식 참석차 방한한 아시라프 리피 레바논 법무부 장관은 레바논 국기와 법무부 마크, 태극기를 넣어 제작한 감사패를 이 대표에게 전달했다. 아시라프 리피 장관은 기념식 축사에서 “세계평화는 더 이상 꿈이 아닌 목표다. 청년과 여성 지도자가 더 적극적으로 정치인을 설득하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일이다. 각 정치인들은 전쟁종식과 세계평화를 위한 국제법 제정에 동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리피 장관의 발언은 HWPL의 평화운동을 직접 강조한 것이다.
HWPL은 지구촌에서 전쟁을 종식하기 위해 전쟁의 원인을 원천적으로 방지하는 법안인 DPCW 10조 38항을 제정 공표했으며, 각국 전ㆍ현직 대통령과 정치인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HWPL의 산하기관인 국제청년평화그룹(IPYG)과 협력단체인 ㈔세계여성평화그룹(IWPG)의 회원인 청년ㆍ여성들은 세계 각국의 정치ㆍ경제ㆍ사회 지도자들에게 촉구하고 있으며, 각국 언론매체들 역시 이를 보도하고 있다. 또 종교지도자들에게는 종교연합사무실의 경서비교토론 작업을 통해 종교대통합을 이뤄 종교로 인한 분쟁을 종식짓자고 호소하고 있다.
이에 레바논 법무부는 HWPL의 이 같은 활동에 적극 지지를 표한 것이다. 지난 2016년 3월14일 진행된 ‘지구촌 전쟁종식 평화 선언문’ 공표식에도 당시 레바논 법무부 장관이었던 엘리스 샤브티니가 참석해 축사로 HWPL의 활동을 지지했다.
엘리스 샤브티니 장관은 “평화는 국제사회의 책임이므로 여성의 역할 또한 남성 못지 않게 중요하다. 특히 가정과 사회, 국가에서의 여성의 선구자적 역할을 고려한다면 말이다”라며 “그 고귀한 가치 확립을 향한 노력과 함께 그것을 이루고자 고군분투하고 있는 HWPL, IWPG, IPYG에 감사를 전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평화여 영원하라!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자”고 외쳤다.
이듬해인 2017년 9월18일 메이삼 누아이리 레바논 법무부 차관이 한국에서 열린 평화 만국회의 3주년에 참석했다. 누아이리 차관은 레바논 법무부가 다시 한 번 HWPL을 위해 제작한 감사패와 기념메달, 선물 등을 평화 만국회의 3주년 기념식 후 이 대표에게 전달했다. 감사패에는 ‘레바논 법무부와 HWPL의 협력의 증표’라고 기록돼 있다. 이후 누아이리 차관은 같은 해 12월 레바논 법무부 장관에게서 HWPL 지지 공문을 받아 HWPL 측에 전달했고, 누아이리 차관은 레바논 법무연수원에 평화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문제를 놓고 논의를 시작했다.
레바논에서는 법무부만 HWPL의 평화운동에 동참한 게 아니다. 이미 2014년 9월18일 평화 만국회의에 레바논 시아파 최고 성직자인 사예드 알리 엘 아민 그랜드 아야톨라가 참석해 종교대통합 협약식을 치렀다.
■ ‘중동의 화약고’ 레바논… 끊임없는 종교 분쟁
레바논의 정식 명칭은 레바논공화국(Republic of Lebanon)이며, 수도는 베이루트(Beirut)이다. 인구의 94%는 아랍인이며, 아르메니아인이 4%를 차지하고 있다. 종교는 이슬람교 70%, 기독교 30%로 구분되지만 이 가운데서도 매우 배타적인 17개의 종파로 나눠진다.
아랍권 국가들 중 삼권 분립을 기반으로 한 의회민주주의를 정치체제의 근간으로 하는 유일한 나라다. 1932년에 실시된 인구조사를 토대로 기독교와 이슬람교 간 권력 안배를 6:대5로 결정했다. 의회도 이에 따라 배분된다. 대통령은 기독교, 수상은 이슬람교, 국회의장은 이슬람교에서만 선출한다. 그러나 독립 이후 무슬림들의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이같은 권력 배분이 레바논 내전의 배경이 됐다. 주요 정치 정당으로는 미래당, 레바논의힘, 민주개혁당, 민주좌익당, 팔랑게당, 아말운동, 헤즈볼라, 시리아사회민족당, 자유애국운동 등이 있다.
레바논은 기원전 3000년경부터 페니키아인이 해안지대에 세운 도시국가다. 11세기 말의 십자군전쟁 때에는 셀주크투르크와 쟁탈의 대상이 됐다. 이후 오스만 터키 지배를 받다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의 통치를 받다가 1943년 11월22일 독립했다. 정부 수립 후 무슬림과 기독교인 간 대립과 갈등이 심화하면서 내전이 발생했고, 1967년 중동전쟁 이후에는 45만명의 팔레스타인 난민이 유입되면서 레바논 영토 내에서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와 이스라엘 간의 전투가 일어나게 됐다. 이같은 배경으로 기독교인과 무슬림 간 갈등은 더욱 심화했다. 1975년 내전이 발생함에 따라 시리아군이 개입했고, 이는 시리아군이 레바논 동북부에 계속 주둔하는 계기가 됐다.
이후 팔레스타인해방기구, 이스라엘군, 시리아군 등 문제와 맞물려 레바논 내에서 정부군과 기독교 민병대, 무슬림 민병대 간 무력 충돌이 격화됐다. 1984년 무슬림 민병대가 서베이루트를 장악함에 따라 친시리아 거국내각이 수립된다. 기독교와 이슬람교 간 권력 안배를 놓고 갈등은 지속됐고, 이듬해 12월 시리아의 중재로 기독교-이슬람교 시아파-이슬람교 드루즈파 사이 평화협정을 맺지만 내전은 멈추지 않았다.
1987년 2월 AMAL 민병대와 PSP 등 좌파연합 민병대 간에 격렬한 무력충돌이 일어났다. 이 때문에 법과 질서를 회복한다는 명목으로 7천여명의 시리아 군대가 서베이루트에 주둔했다. 6월1일 카라미 수상이 피살됐고, 호스 수상이 취임했다. 그러나 1988년 9월22일 제마엘 대통령이 기독교 지도자를 수상으로 임명하면서 기독교 내각과 무슬림 내각 등 2개의 정부가 병존하는 사태를 맞게 된다. 이후 기독교와 무슬림 간 갈등으로 비화해 또 다시 내전이 발생했다.
내전은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고 국회의석을 재분배하는 등 내용을 담은 ‘국민화합헌장’을 잠정 합의하면서 중단됐다. 기독교인 15명, 무슬림 15명으로 하는 30인 내각이 출범됐다.
1991년 정부가 민병대의 무장해제 및 해체를 실시하고 레바논시리아 간 우호협력조약을 체결했다. 레바논은 대외적으로 아랍제국과 선린관계를 유지한다. 공산주의에 대해서는 비우호적 정책을 천명했다. 1945년 유엔에, 1961년 비동맹회의에 가입했다. 한국과는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2005년 1월 경제무역 협정을 체결했다. KOTRA를 비롯하여 LG전자와 한전이 진출해 있다.
레바논은 북한과도 관계를 맺고 있다. 양측은 1968년 2월 무역 협정을 맺었고, 1971년 11월 북한기자동맹 및 레바논신문편집인협회 간의 상호협조 협정을 체결했다.
황선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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