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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주당현절구삼체시법 권1은 인천시 연수구 옥련동 가천박물관에 있는 인천시 유형문화재다.증주당현절구삼체시법은 송(宋)나라 주필(周弼)이 칠언절구, 칠언율시 그리고 오언율시 등 삼체시(三體詩)만을 모아 편찬한 시선집(詩選集)이다.주필은 작시(作詩)의 모범으로 여겨졌던 당시(唐詩)를 편리하게 감상하고 한시의 표현기법과 구성형식을 체계적으로 습득하고자 이 책을 편찬했다. 거기에 석원지(釋圓至)가 주를 달고 배유(裵庾)가 증주(增註)했으며, 조선 초기에 원나라에서 유입된 판본을 저본으로 삼아 번각(飜刻)한 것이다. 이후 조선시대 중기 무렵까

오피니언 | 경기일보 | 2021-10-20 20:09

북한산성 금위영 이건기비는 1715년(숙종 41) 북한산성 동소문 안에 있던 금위영 유영(留營)을 보국사(輔國寺) 아래로 옮긴 후 그 전말을 기록한 비다.조선은 임진왜란 이후 중앙 군영(軍營)인 삼군문(三軍門) 즉 훈련도감, 어영청, 금위영을 설치해 한양 도성을 직접 방어하게 했다. 그래서 1711년(숙종 37)에 이들 군영을 동원해 북한산성을 개축하고 현지 주둔 부대인 유영(留營)을 두어 산성의 수비를 구간별로 나누어 분담하게 했다. 이중 금위영 유영의 지대가 높고 무너질 위험이 있어 1715년 이건한 것이다. 북한산성 내에서 쉽

오피니언 | 경기일보 | 2021-10-19 19:40

옹진 백령도 진촌리 맨틀포획암 분포지는 인천 옹진군 백령면 진촌리 154의2 일대 6천307㎡ 부지에 펼쳐진 자연유산으로, 천연기념물이다. 우리나라에서 감람암 포획현무암이 분포하는 곳은 경기도 연천 전곡, 평택 강원도 철원 일대, 울릉도 및 제주도에 국한돼 있다.백령도 진촌리의 감람암 포획현무암 분포지는 백령면 진촌리에서 동쪽으로 1.3㎞ 정도 떨어진 해안에 있으며 해안선을 따라 지름 5∼10㎝ 크기의 노란 감람암 덩어리가 들어 있는 용암층이 만들어져 있다. 용암층은 두께가 10m 이상이며, 검은 현무암으로 이뤄져 있다.백령도 진촌

오피니언 | 경기일보 | 2021-10-13 19:43

사나사 원증국사탑은 태고화상 보우(太古和尙普愚, 1330~1382)의 사리탑이다. 보우의 본관은 홍주(洪州), 속성은 홍씨(洪氏), 첫 법명은 보허(普虛), 호는 태고(太古)로 홍주(현재 홍성) 출신이다.이 탑은 보우 스님의 입적 다음 해인 우왕 9년(1383) 건립됐다. 방형 기단과 종형 탑신으로 구성된 부도로, 기단 상면에는 복련(覆蓮) 연판문양을 표현해 탑신 받침 역할을 하고 있다. 석종형 탑신 표면은 문양 없이 간결하게 치석했고, 정상부에는 주변을 평평하게 한 후 중앙에 높은 연봉형 보주를 갖췄다. 주변에 세워진 탑비에는 스

오피니언 | 경기일보 | 2021-10-12 20:02

경은(耕隱) 조서강은 조선개국 공신 조반의 아들로 태종14년(1415) 문과에 급제하여 장령을 지내고 세종13년(1431)에 춘추관 기주관이 되어 태종실록 편찬에 참여했다. 그 뒤 우관원을 거쳐 경상도 관찰사, 형조참의 등을 역임하고 1441년에 도승지를 지냈으며, 1443년 이조참판이 됐다.세종 26년 3월 10일에 그가 세상을 떠나자 세종은 쌀과 콩 각 30석, 종이 10련, 그리고 관곽을 부의로 내려 후하게 장사지내게 했다. 그의 묘는 직사각형 기대석으로 둘러싸인 가운데 둘레돌을 두른 봉분이 있는데 봉분은 전방후원묘로 돼 있고

오피니언 | 경기일보 | 2021-10-06 19:49

‘청성사’는 통일 신라 말기의 학자인 최치원(崔致遠, 857년-?)을 모신 사당이다.최치원은 869년 중국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 과거 시험에 합격했다. 879년 중국 당나라 말기의 농민반란 주모자인 황소에 의해 ‘황소의 난’(黃巢-亂)이 일어나자, 이를 정벌하기 위한 토황소격문을 지어 적을 물리쳤던 명문장가였다.청성사는 크게 사당과 삼문으로 구성돼 있다. 사당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규모를 가진 초익공(初翼工; 처마 끝의 하중을 받치기 위해 기둥머리 같은 데 짜 맞춰 댄 새 날개 모양의 목재) 형식의 건물로 겹처마의 맞배지붕을

오피니언 | 경기일보 | 2021-10-05 19:35

고려말 조선초의 문신인 문숙공 류사눌(1375∼1440)의 묘소다.류사눌(1375~1440)의 자는 이행(而行), 본관은 문화(文化), 시호는 문숙(文肅)이다. 류사눌은 일찍 부모를 여의고 숙부 밑에서 학문에 힘써 경전에 밝고 문장에도 능했다. 특히 음악에도 조예가 깊어 예문관 대제학 재직시에는 악학제조를 겸하여 서문을 찬하기도 했으며, 세종 16년(1434)에는 를 찬하여 에 싣는 등 박연과 더불어 아악을 정리하는데 크게 기여했다.조선조 초기 16세 때 생원시에 합격했으며, 18세 때인 태조 2년(1

오피니언 | 경기일보 | 2021-09-29 17:05

김중만장군사패교지는 조선 영조 4년(1728)에 무신 김중만에게 이인좌와 정인량의 반란을 평정한 공로로 분무공신 2등에 봉한다는 공신록 1점과 교지 2점으로 구성됐다. 1728년 7월에 작성됐고 1등 공신 1인, 2등 공신 7인, 3등 공신 7 인 등 총 15인의 공신명단과 포상 내용이 기록돼 있다. 각 공신의 명단 위에는 흰색 부전지를 붙여서 이름을 가렸다. 뒷 면 마지막 부분에는 황색 부전지에 “李善行製 崔重大書”라고 기록해 글을 짓고 쓴 사람을 확인할 수 있다.문화재청 제공

오피니언 | 경기일보 | 2021-09-28 20:59

창영초등학교는 인천 최초의 공립학교로 1907년에 세워졌으며, 당시 이름은 인천공립보통학교였다.1933년 인천제일공립보통학교, 1938년 인천창영공립심상소학교, 1941년 창영공립국민학교, 광복 후 창영국민학교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3·1운동 당시 인천지역 만세운동의 진원지이기도 한 전통 깊은 곳이기도 하다.옛 학교 건물은 1924년에 세운 것으로, 一자형의 구성이다. 벽체 윗부분은 화강석으로 아치형을 이루고 있고, 현관은 근세풍 양식을 띤 무지개 모양으로 꾸몄다. 좌·우 대칭면에 넓은 창을 규칙적으로 배열해 직선을 강조했으며, 지

오피니언 | 경기일보 | 2021-09-22 19:29

청련사 큰 법당에 봉안된 삼장탱(三臧幀)이다. 제작연대는 고종 18년(1881)이다.상하 2단으로 크게 구분하고 상단에는 천장보살을 중심으로 좌우에 보살을 배치하고 그 사이에 권속들로 가득 메우고 있다. 하단에는 이들 보살의 협시와 권속들로 채워져 있다. 이들 삼장보살은 하나의 방형 수미단 위에 중앙 천장보살의 신광만 바탕을 금니로 처리하였을 뿐 나머지는 모두 이중륜광의 두 ·신광을 갖추고 결가부좌했다.채색은 주로 적색과 청색, 백색, 황색을 주로 사용하였으며 부분적으로 금니를 사용했는데, 천장 ·지지·지장보살상의 몸색은 황색을 사

오피니언 | 경기일보 | 2021-09-15 10: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