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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01 (화) 메뉴 메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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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칼럼] 제도의 역설

넘쳐나는 규제와 제도로 정신이 없다. 제도는 보편적 기준에 따라 사회적 동의를 통해 만들어진다. 제도는 시대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맞지 않은 것들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지난 제도를 바로 잡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제도를 바로 잡으려면 신중해야 한다. 제도가 임의로 만들어지거나 필요에 따라 남용될 때는 사회적 합의라는 공정성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에밀 뒤르켐(Emile Durkheim)은 사회의 규제와 규칙이 느슨해지면 무질서 현상이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사회는 신뢰가 기반이다. 사회적 신뢰를 법제화한 것이 제도이다. 제도는 수평적인 사회 연대를 통해 실현된다. 사회적 연대 없이 임의로 작동하는 제도는 제도로서 기능을 상실한 것이다.

오늘 우리 사회는 어떨까? 사회적 합의를 찾아보기 어렵다. 어느 분야이든 편이 갈리지 않는 곳이 없다. 이념을 떠나 이제는 임대인과 임차인 등 실생활까지 나누어져 상식이 무너졌다. 어느 한편에 서기를 강요한다. 편을 만들어 목소리를 높인다. 그렇지 않으면 밀려날 것 같다.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는 요인의 하나는 제도이다. 사회적 합의에 의해 마련되어야 할 제도가 깊이 있는 토론과 심의 과정, 전문가의 자문 없이 만들어져 사회 갈등을 부추긴다. 제도의 역설이다.

제도는 한 번 만들어지면, 사람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한다. 그 과정에서 상식을 방해하는 우상이 만들어진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엘리너 오스트롬(Elinor Ostrom)은 ‘공유지의 비극’으로 인위적 규제가 어떻게 사회적 신뢰를 무너뜨리는지 설명했다. 어자원이 고갈될 것을 우려한 금어기를 설정해 어족을 보호하고자 한다. 결과는 어떨까. 어민들은 정부가 어족보호를 책임질 것이라는 믿음에 마구잡이로 어자원의 고갈이 더 빨리 나타났다. 자원을 공유하는 어민들이 시행착오 끝에 스스로 체득한 어획량 조절이라는 사회적 공감대가 무너진 것이다. 상호신뢰가 우선시 되는 이유이다. 규제나 제도는 보조수단일 뿐이다.

한번 만들어진 제도는 정해진 경로에서 벗어나기 어려워진다. 볼링공이 거터에 빠지면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과거의 어느 한 시점에서 시작된 원인이 현재까지도 영향을 미치는 역사적 인과관계나 어느 시점에서 만들어진 제도가 미래의 선택을 제약하는 것도 경로의존성 때문이다. 균형과 견제가 필요한 이유이다.

항공기는 부기장이 조정할 때보다 기장이 조정할 때 사고 확률이 높다고 한다. 부기장이 조정할 때는 기장이 옆에서 쉽게 반론을 제기할 수 있지만, 기장이 조정할 때는 부기장이 반론을 제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문화이론가 헤이르트 호프스테더(Greet Hofstede)는 권력집중의 위험성을 ‘권력거리’ 현상으로 설명한다. 여당은 권력과 거리를 유지해야 하고, 야당은 견제와 협치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다수 의견이 존중 되는 것이 민주주의 체제라면 협치는 민주주의의 가치이다. 아프리카 속담에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사회적 연대가 우선시 돼야 하는 이유이다.

김성수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유럽 아프리카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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