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자가 풍부한 사회에서는 소비자가 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 풍요한 사회의 생산자들은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 제품 생산을 위해 온갖 정성을 다 기울인다. 그런 사회의 소비자들은 참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구부러진 못 하나도 구하기 힘든 사회의 소비자들은 상상도 못할 행복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에도 ‘소비자가 왕’이라는 말이 전혀 귀에 설지 않게 됐다. 우리 모두 자축할만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축이 지나쳐 자만에 빠지거나 도를 넘는 것은 화를 부를 수도 있을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왕이 되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일 수 있다. 어깨가 으쓱해지는 일일 수 있다. 그러나 왕이 된 것을 지나치게 뽐내면 화를 자초할 수도 있음을 명심하고 자중할 줄 알아야 왕의 대우를 오래 오래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요새 말로 해서 지속성 있는 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왕에도 어진 이가 있고 어질지 못한 왕이 있을 수 있다. 또 왕에도 현명한 이가 있을 수 있고 어리석은 이도 있을 수 있다. 이것은 역사가 우리에게 일러준다. 이 논리대로라면 우리의 소비자라는 왕들 가운데에도 어질고 현명한 이가 있을 수 있고 그리 현명하지 못한 이들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어질고 현명한 왕은 백성의 어려움을 내 어려움 같이 여기며 사리 판단을 합리적으로 하는 왕인 것처럼 어질고 현명한 소비자라는 왕도 생산자의 어려움을 내 어려움 같이 여기며 생산자에게 무엇을 요구할 때 항상 합리적인 판단 위에서 하는 이를 의미할 것이다.
우리 농산물을 소비하는 왕들 가운데 농사짓는 이들의 고충을 진실로 이해하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 농사의 원리를 알고 농사에서 무엇이 현실 적으로 가능하고 무엇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지를 알거나 알려고 노력이라도 하는 이는 얼마나 될까?
농사 그것은 진실로 ‘천하의 대본’인데 우리의 기초교육과정에 농사의 기본원리를 가르치는 내용이 충분히 들어 있는가? 예전에 있던 농업고등학교는 거의 사라진지 오래다. 그렇다고 그 농업고등학교들이 새 시대의 농업의 대를 이어갈 역군을 양성 할 수 있는 전문학교로 승격(요새 말로 업그레이드) 된 것도 아니다.
농업에 대한 교육의 현실이 이러니 일반 시민들의 농업에 대한 지식수준이 높기를 바라기 어려울 것이다. 어질고 현명한 왕은 저절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고 엄격한 교육과 정진을 통해 배출되는 법이다. 우리 시민들이 어질고 현명한 소비자라는 왕이 되게 하려면 국민기초교육과정에 농업의 원론만이라도 적절하게 포함시키고 시민들의 평생교육프로그램에도 급변하는 환경 중 우리농업의 입지와 현실에 대한 것이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때마침 일기 시작한 여러 형태의 ‘도시인의 농촌 알기’ 바람도 국민의 농업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는 방향으로 발전된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홍 종 운 토양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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