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대만을 방문해 기업을 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중소기업이 강한 대만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 무엇이 대만의 중소기업을 강하게 했는지 궁금증이 있어 그 일부나마 해소하고자 하는 의욕도 있었다. 맨 처음 방문한 기업은 타이베이에서 30분 떨어진 연구단지에 연구소를 가지고 있는 기업이었다. 전자제품 관련 회사에 대한 깊은 지식이 없어서 인지 기업 방문 일정을 보고 인터넷 조사로 잠깐 살펴보았지만 익숙하지 않은 기업들이었다.
안내자가 기업 연구소 입구에서 간단하게 기업 소개를 할 때도 정확한 기업의 실체를 알지 못했으나 구매 담당 이사를 만나고 30분 만에 너무 놀라운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이 기업은 대만 재계 2~3위 기업이고 전세계에서 생산되는 노트북 컴퓨터의 OEM 전문 기업이며, 연구 인력만 3천명을 보유하고 있다는 설명에 수 많은 의문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첫 번째 질문으로 어떤 기업들의 제품이 이 회사에서 생산되느냐고 물었을 때 담당 이사는 일본의 대부분의 노트북 생산회사를 열거 하였다. 첫 번째 질문에 꼬리를 물고 처음부터 완성품을 생산하였냐고 물었더니 작은 부품부터 시작하여 모듈 생산 등의 순서를 거쳐 자체 개발제품 생산까지 성장했다고 상세하게 설명했다.
그러면 왜 대만에서 이러한 기업이 탄생할 수 있느냐고 다소 애매한 질문에 담당이사는 대만은 대기업에 예속된 하청업체 중소기업이 아닌 자체 기술개발에 의한 중소기업을 지향하기 때문이라고 명쾌하게 답변을 하였다. 우리나라 중소기업이 한번쯤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러면서 담당이사는 일본의 한 기업의 주문자 생산만 하지 않고 다양한 일본 기업과 거래, 다양한 기술개발 향상 효과가 경영 안전성을 꾀하고 있다고 첨언을 해 주었다.
국내의 대기업과 거래하는 중소기업의 경우 관행상 한 대기업을 거래하면 경쟁회사의 다른 대기업과 거래를 못하게 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는 것과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이러한 대화 과정에 현재 국내 중소기업은 한 대기업과 꾸준히 거래를 해오다 대기업이 해외생산을 하므로 매출액이 급격하게 줄어 든 CEO의 어두운 얼굴이 떠올랐다.
어느 나라나 중소기업의 근로자 수가 대기업보다 많다. 일본도 예외는 아니다. 1차 산업을 제외하고 종업원 300명 이하의 중소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이 전체 근로자의 88.3%에 이른다. 그래서 일본에선 중소기업을 ‘일자리 공장’이라고도 한다.
일본의 중소기업은 우량 중소기업이 다수 포진하고 있으며 대기업과 중소기업과의 상생관계가 어느 나라보다 잘 지켜지고 있다. 정부가 요즘 강조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과의 상생관계는 정부가 강조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며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상권을 가급적 보호해주려고 하는 신뢰관계가 형성되어야 한다.
국내 대기업은 중소기업을 납품가를 인하시켜 대기업의 배를 불리는데 급급한 것과 대조적으로 일본 대기업은 중소기업을 파트너로 인식한다는 것이 큰 차이점이다.
요즘 들어 중국의 싼 부품의 견적서를 국내에 들고 들어와 국내 기업에게 그 가격을 맞추지 못하면 거래를 중단하고 중국과 거래를 할 수 밖에 없다는 방법까지 동원한다는 이야기도 있어 국내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오히려 벼랑 끝으로 내 모는 경향도 있다. 이러한 경우는 극히 드물지만 국내 중소기업에게는 남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대기업 입장에서 보면 대기업 제품이 중국의 값싼 제품에 경쟁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제품은 일본 대기업과 같이 과감하게 정리하고 부가가치 있는 제품으로 전환하면서 관련 중소기업의 기술력도 향상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며, 특히 중소기업들도 나름대로 살 궁리를 할 필요가 있다. 즉 필사적으로 기술개발에 나서서 대기업이 할 수 없는 중소기업 고유의 기술력을 가져야 하며 이 기술이 한 대기업만을 위한 기술이 아닌 전세계 어느 기업에게도 판매할 수 있는 독자 기술력을 갖추어야 하며 한 대기업이 독점을 원하더라도 ‘No’라는 기술적 자신감을 갖추어야 한다.
/현 동 훈 한국산업기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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