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곧 신입생들이 대학에서 공부를 시작하고, 신입사원들도 새 직장에서 일을 시작하게 된다. 그런데 요즘 신입사원들은, 영어는 잘하지만 국어능력이 크게 떨어진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한다. 한 마디로 말하자니 국어능력, 혹은 언어능력이라고 이야기하기는 하지만, 아마 최근 나타나는 이런 현상은, 그저 말재주가 없다거나 말이 유창하지 않는 정도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또한 우리말로 된 문서를 제대로 해독하지 못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이 현상은 요즘 젊은이들과는 의사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이는 그저 세대차이가 나 이해를 잘 못하겠다는 것과는 다르다. 상사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신입사원들이 정확하게 알아듣지 못하고 나중에 엉뚱한 일을 하거나, 혹은 상사가 잘 알아듣도록 신입사원이 제대로 말을 잘 못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말 그대로, 의사소통이 잘 안되는 현상이다.
이것이 국어교육 시간을 늘리고 말하기나 글쓰기 등을 가르치면 해결될 것인가? 학교에서 배울 것은 이미 20년 동안 징글징글하게 배웠다. 문제는 이런 차원의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상대방의 머리와 마음을 읽는 능력, 상황파악능력의 문제라고 보인다. 아주 쉽고 범박한 말로 표현하자면, ‘말귀를 못 알아듣는 것’, 또는 ‘눈치가 없는 것’이다.
직장생활과 사회생활에서 필요한 눈치와 말귀는 시험으로 길러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다양한 사람과 부대끼면서 길러진다. 평소 다양한 상황을 경험해야만, 사람들의 말과 행동의 의미를 빨리 정확하게 읽어낼 수 있으며, 자신의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이해되는지도 정확하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요즘 젊은이들이 서른이 다 되도록 만나본 상황이란 매우 단순하다. 비교적 단순한 핵가족의 가정, 주입식 교육과 시험으로 일관하는 학교, 오로지 돈을 지불하고 물건을 구매해 보는 것 이상을 경험할 수 없었던 사회생활, 자치활동 같은 경험이 전혀 없이 오로지 친구 간의 농담이나 사랑의 밀어 이상으로는 깊어져 본 적이 없는 인간관계, 이러한 한정된 경험만으로는 직장생활에서 요구하는 ‘말귀’를 제대로 틔우기 힘들 것이다.
물론 문제가 요즘 젊은이들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시대착오적인 중·장년들 역시 ‘말귀’ 못 알아듣는 ‘사오정’인 경우가 적지 않으니 말이다. 필자는 최근 화재로 소실된 숭례문을 국민성금으로 복원하자는 의견이 나온 이후, 이에 대한 국민여론이 나빠지자 대통령직 인수위가 부랴부랴 내놓은 해명을 보고 이를 실감했다. 이경숙 인수위원장의 해명의 말은 “강제모금이 절대 아닙니다”였고, 그것이 더욱 국민들을 기막히게 했다. 국민들은 ‘강제모금’이란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강제모금이란 오해 때문에 국민성금을 반대한 것이 아니라, 정부가 당연히 책임져야 할 일을, 애국심이니 자발적 성의니 하는 것들을 이용해 국민들에게 떠넘기려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문제를 예방하고 제대로 수습하지 않고, 문제만 터지면 성금이나 자원봉사의 힘만 들먹였던 여태까지의 정부의 태만에 분노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뜬금없이 ‘강제모금’으로 오해하지 말라니. 이것은 정말 의사소통 능력이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현재 국민들의 사회의식 수준과 상황파악 능력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말귀를 못 알아먹는 것은 젊은이들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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