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난 후 세워진 최초의 공연장다운 공연장은 현 세종문화회관의 전신인 (서울)시민회관이다. 시민회관이 1961년에 개관되었으니까 그 후 이미 반세기가 되어간다. ‘회관’이라는 이름이 보여주듯 이 건물이 순전히 공연만을 위해 지이진 것은 아니라 하더하도 이 공간에서 이루어진 것이 대부분 공연이므로 전쟁이 끝나고 여기서 본격적인 공연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세종문화회관에서 2011년 50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있을지 모르지만 이 해는 공연계 전반에 의미있는 해가 될 것 같다.
지난 50년 우리 주변의 상황이 변한 것을 보면 그에 따라 공연장의 모습이 변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금은 전국에 대체 몇 개의 공연장이 생겼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숫자가 늘어났고 새로 생길 때마다 이전보다 더 첨단의 장비가 갖추어지는 것 같다. 공연장의 효율성은 다시 따져보아야 할 일이지만 일단 번듯한 면모의 공연장들은 앞으로도 계속 세워지는 추세다. 문제는 공연장이 세워지는 속도만큼 의식이 따라가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반세기 전 서울에 시민회관이 생길 때는 철두철미 관주도로 운영될 수밖에 없었다. 전쟁의 후유증이 아직도 짙게 남아있던 시절 공연문화로 시민을 위로하는 한편 생활고에 허덕이면서도 실생활에 능하지 못한 예술인들에게 일자리를 주는 것이 주된 목표였다. 다시 말하면 공연장의 주체는 아직 관객이 아니었던 것이다. 실은 우리나라에 서구식 공연장이 생겨났던 개화기부터 문제의 씨가 있었다. 일본인을 통해서 도입된 서구식 공연장은 우리에게 서먹서먹하고 낯선 곳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공연장의 규모와 모습은 모두 서양 관객에 의해서 수백년 동안 반죽되고 다듬어진 모습인 것이다.(‘극장’이라는 말의 어원인 그리스어 theatron은 원래 ‘객석’을 의미한다) 반면에 우리나라에 들어온 이 낯선 형태의 건물의 중심은 객석이 아니라 무대일 수밖에 없었다.
반세기 전까지도 여전히 그런 패턴에서 공연장이 운영되었다. 그러나 이후 전세계에 유례가 없을만큼 한국은 빠른 속도로 선진국을 향해 달려왔다. 국민의 의식과 생활 패턴도 눈이 어지럽게 달라졌고 마치 가속도가 붙은 듯 변해가고 있다. 이전 무대를 쳐다보던 관객은 무대를 내려다보는 관객으로 변한지 이미 오래다. 공연장 운영자들이 특히 빨리 파악해야 할 점이 이것이다. 그러자면 공연장의 시설이 개선되듯 운영 시스템도 개선되지 않으면 안된다.
진정한 관객이란 공연물을 향유하고 서비스를 받으러 오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공연물을 비평할 줄 알고 그에 대한 감상을 표현할 줄 안다면 오히려 진정한 관객이 아니다. 진정한 관객이란 오히려 느끼기만 하고 그 느낌 자체를 의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들의 느낌이 공감대를 형성할 때 그 어느 일류 평론가의 비평보다 더 무섭고 정확한 판단을 하는 것이다. 이것을 알아내는 것이 바로 공연장 운영자들의 능력이다. 이 점에서는 이론적 분석도 한계가 있고 현란한 논쟁도 소용이 없다. 오직 오랜 경험에서 오는 ‘감각’만이 그것을 판단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기 때문에 공연장은 더욱더 전문가를 필요로 하게 되는 것이다.
공연장 운영에서 과거처럼 관에서 주도하는 ‘지침’은 이제 적절하지 않다. 공연장은 플라토니즘이 효력을 발하는 곳이 아니다. 공연장은 전쟁터처럼 철저한 ‘현장‘일 뿐이다. 각 지역의 공연장은 이제 “우리 지역 주민의 문화의식을 고취하고…” 어쩌고 하는 고리타분한 말을 늘어놓을 때가 아니다. 우리나라 모든 지역의 문화의식은 적어도 잠재적으로 이미 공연장을 내려다보고 있다. 이제 공연장 운영자들이 해야 할 일은 지역 주민을 등에 업고 세계를 향해 뛰는 일이다. 그리고 ‘세계 속의 도시’를 만들기 위하여 피가 튀는 치열한 전쟁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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